장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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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혁주는 대구 출신의 소설가로, 아나키즘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 초기에는 식민지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발표했으나, 이후 통속적인 경향의 소설과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 친일 문학인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광복 후 일본으로 귀화하여 일본어로 소설을 썼다. 그의 작품과 생애는 다양한 연구의 대상이 되었으며,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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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은 팔봉이라는 호를 사용한 한국의 문학평론가, 소설가, 시인으로, KAPF에서 활동하며 경향파 문학 이론을 이끌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에는 반공주의 문인으로 활동했다. - 일제강점기의 문학 평론가 -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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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환은 강력 및 특수 분야 수사를 담당한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 변호사 개업 후 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검사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및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 추천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 - 경북고등학교 동문 - 이관섭
이관섭은 행정고시 합격 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거쳐 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비서실장을 역임한 관료이다.
2. 생애
대구 출신으로,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아나키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했다.[3] 1929년 이후 대구 희도(喜道)소학교 훈도로 근무했고, 1932년 소설 〈아귀도(餓鬼道)〉를 발표하여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3] 1933년 장편 《무지개》로 한국 문단에도 등단했으며, 이후 통속적인 경향의 소설을 발표하며 평론가로도 활동했다.[3]
1938년 각본을 쓴 「춘향전」이 무라야마 토모요시의 신협극단(新協劇団)에 의해 일본과 조선에서 순회 공연되었다.[1]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일본인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다룬 〈가등청정〉(1939)을 시작으로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3] 1939년 대륙 개척 문예 간담회에 참가하면서 일본 전시 체제에 협력했으며, 1943년 황도 조선 연구 위원회 위원이 되었다.[1]
광복 후 일본에서 활동하며 일본에 귀화했고,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했다.[3]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05년 10월 7일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광역시)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장은중(張殷重)이다. 경주의 계림보통학교 및 간이농업학교에서 오사카 로쿠손의 영향을 받아 역사와 일본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4, 5세 무렵 결혼했다.[1]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0세 무렵 아나키스트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9년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1932년 4월 잡지 『개조(改造)』의 현상 소설에 「아귀도(餓鬼道)」가 입선했고, 호코 도쿠조의 『문예수도(文芸首都)』 동인이 되었다. 1934년 개조사(改造社)에서 소설집 『권(權)이라는 남자』를 출판했다. 이때는 한국어로도 글을 써서 동아일보 등에 발표하기도 했다. 1937년 초여름, 병상에 있는 동안 간병해 준 노구치 하나코(통칭 "게이코")와 친해져 이후 결혼했다.
2. 2. 문단 활동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아나키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했다.[3] 1929년 이후부터 대구 희도(喜道)소학교 훈도로 근무했고, 1932년 소설 〈아귀도(餓鬼道)〉를 발표하여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3] 일본어로 쓰인 소설이지만, 식민지의 참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계급문학에서 유행하던 농민소설에 못지않은 현실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3]1933년 장편 《무지개》로 한국 문단에 등단했다.[3] 도시를 배경으로 한 《무지개》는 초기의 사실주의적 작풍이 살아있는 작품이나, 이후 남녀간의 복잡하게 얽힌 애정 관계가 묘사된 《삼곡선(三曲線)》(1934~1935) 등 점차 통속적인 경향의 소설을 발표했다.[3] 이 무렵 평론가로도 활동했다.[3]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일본인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다룬 〈가등청정〉(1939)을 시작으로 전시 체제에 협력하는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3]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3]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3]
2002년까지 발견된 친일 저작물 수는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들어 태평양 전쟁에 용감히 참전할 것을 권유하는 〈화랑도 정신의 재현 - 젊은 학도의 갈길은 하나〉 (1943) 등 8편이고[2], 이 시기에 황도조선연구회, 대륙개척문학위원회 등의 친일단체에 가담한 바 있다.[2]
1932년 4월 잡지 『개조(改造)』의 현상 소설에 「아귀도(餓鬼道)」가 입선했고, 호코 도쿠조의 『문예수도(文芸首都)』 동인이 되었다.[1] 1934년, 개조사(改造社)에서 소설집 『권(權)이라는 남자』를 출판했다.[1] 이때는 한국어로도 글을 써서 동아일보 등에 발표하기도 했다.[1]
1938년, 장혁주가 각본을 쓴 「춘향전」이 무라야마 토모요시의 신협극단(新協劇団)에 의해 일본과 조선에서 순회 공연되었다.[1]
1939년에 대륙 개척 문예 간담회에 참가하면서 서서히 일본의 전시 체제에 편입되는 형태로, 수많은 조선인 만주 개척 소설을 간행했다.[1] 장혁주는 전시기를 일본 작가들이 반 강제적으로, 혹은 주체적으로 참가했던 종군 작가나 보도반원, 황군 위문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어디까지나 조선인 만주 개척 소설로 한정했던 면이 있다.[1] 1943년에는 황도 조선 연구 위원회 위원이 되었다.[1] 1944년에는 국책에 따른 소설집 『이와모토 지원병(岩本志願兵)』을 출판했다.[1]
2. 3. 친일 행적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일본인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다룬 〈가등청정〉(1939)을 시작으로 전시 체제에 협력하는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2]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2002년까지 발견된 친일 저작물 수는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들어 태평양 전쟁에 용감히 참전할 것을 권유하는 〈화랑도 정신의 재현 - 젊은 학도의 갈길은 하나〉 (1943) 등 8편이다.[2] 이 시기에 황도조선연구회, 대륙개척문학위원회 등의 친일단체에 가담했다. 1939년에 대륙 개척 문예 간담회에 참가하면서 서서히 일본의 전시 체제에 편입되는 형태로, 수많은 조선인 만주 개척 소설을 간행했다. 장혁주는 전시기에 일본 작가들이 반 강제적으로, 혹은 주체적으로 참가했던 종군 작가나 보도반원, 황군 위문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어디까지나 조선인 만주 개척 소설로 한정했던 면이 있다. 1943년에는 황도 조선 연구 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44년에는 국책에 따른 소설집 『이와모토 지원병(岩本志願兵)』을 출판했다.[1]
2. 4. 광복 이후
광복 후 일본에서 활동하며 일본에 귀화했다.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했다.[3] 종전 직전에 만주 취재에서 일본으로 도망쳐 돌아왔다. 1952년에는 귀화 신청을 하여 "노구치 미노루"(1944년에 경성에서 간행한 『이와모토 지원병』의 판권 페이지에는 "저자 노구치 미노루(장혁주)"[1])가 되었다.1952년에 출판한 『아! 조선(嗚呼朝鮮)』이 장혁주 명의로 쓴 마지막 작품이 되었고, 차기작 『무궁화(無窮花)』에서는 노구치 혁주(野口赫宙)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그 후에도 자전 작품, 역사 소설, 미스터리,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린 『검은 지대(黒い地帯)』(결핵), 『암 병동(ガン病棟)』(말기 암), 『검은 한낮(黒い真昼)』(나병)을 간행했다. 만년에는 남미와 중동 취재 여행을 떠나 영문으로 장편 소설을 썼다.
3. 주요 작품
장혁주는 소설, 역사 소설, 전기 소설, 르포르타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다. 초기에는 단편 소설을 통해 사회 현실과 인간 내면을 묘사했으며,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삶을 그린 작품들은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은 한국과 일본 문학계에 영향을 미쳤고, 일부는 영어로 번역되었다.
3. 1. 일본어 작품
4. 평가 및 연구
장혁주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 그의 작품과 생애에 대한 평가는 복합적이다.
권영민은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서 장혁주를 다루고 있으며,[1] 정영진은 매일신문의 기사에서 장혁주를 친일 문인으로 언급했다.[2]
4. 1. 연구 현황
장혁주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어 왔다.
참조
[1]
서적
岩本志願兵
ゆまに書房
2001-09-25
[2]
저널
친일문학 작품목록
http://www.artnstudy[...]
2007-10-02
[3]
뉴스
テイクオフ:野口稔(本名・張ヒョククジュ)
http://news.nna.jp/f[...]
NNA.ASIA
2008-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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