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앤 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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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앤 제트는 미국의 록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배우이다. 1958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1970년대 중반 펑크 록 밴드 더 런어웨이즈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1980년 솔로 데뷔 앨범을 발매했으며, 이후 조앤 제트 앤 더 블랙하츠를 결성하여 1982년 "I Love Rock 'n' Roll"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여러 앨범을 발표했으며, 영화와 TV에도 출연했다. 2015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동물 권리 운동을 지지하는 등 사회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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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제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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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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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조앤 마리 라킨 (Joan Marie Larkin) |
출생일 | 1958년 9월 22일 |
출생지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윈우드 |
국적 | 미국 |
활동 연도 | 1975년–현재 |
장르 | 록 하드 록 펑크 록 |
악기 | 보컬 기타 |
레이블 | 블랙하트 레코드 (Blackheart Records) |
관련 활동 | 더 러너웨이즈 조앤 제트 앤 더 블랙하츠 |
웹사이트 | joanjet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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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그룹 | |
현재 멤버 | 조앤 제트 앤 더 블랙하츠 |
과거 멤버 | 더 러너웨이즈 Evil Stig |
직업 | |
직업 | 뮤지션 가수 작곡가 음반 프로듀서 배우 |
악기 | 보컬 기타 |
기타 정보 | |
영향 | 불명 |
주목할만한 악기 | Gibson Melody Maker |
2. 초기 생애
조앤 마리 라킨은 1958년 9월 22일 펜실베이니아주, 윈우드에 있는 랭케나우 병원(Lankenau Hospital)에서 제임스와 도로시 라킨 사이에서 태어났다.[6] 그녀는 세 자녀 중 장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험 판매원이었고, 어머니는 비서였다.[1] 그녀의 가족은 개신교 신자였으며, 교회와 주일학교에 다녔지만, 종교적 신념에 엄격하지는 않았다.[7]
조앤 제트는 더 런어웨이즈의 창립 멤버로, 드러머 샌디 웨스트와 함께 밴드를 시작했다. 마이클 스틸, 재키 폭스, 리타 포드, 셰리 커리가 합류하면서 모든 멤버가 갖춰졌다. 초기에는 커리가 밴드의 간판 보컬이었지만, 제트도 몇 곡의 리드 보컬을 맡았고, 리듬 기타를 담당하며 많은 곡을 작곡했다. 밴드는 5장의 LP를 녹음했으며, 일본에서의 라이브 음반은 미국과 영국의 음악사상 최대의 수입반 판매를 기록한 음반 중 하나가 되었다. 밴드는 전 세계를 투어하며 치프 트릭, 반 헤일런,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 등과 함께 공연했고, 특히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67년, 제트의 가족은 메릴랜드주, 록빌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랜돌프 중학교와 휘튼 고등학교를 다녔다.[8] 그녀는 13살에 첫 기타를 갖게 되었다.[9] 기타 레슨을 받기도 했지만, 곧 강사가 포크 음악을 가르치려 해서 그만두었다.[10] 그 후 그녀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군, 웨스트 코비나로 이사했고, 제트는 음악적 관심사를 추구할 기회를 얻었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은 이혼했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본명보다 더 록 스타의 느낌이 난다고 생각하여 이름을 조앤 제트로 바꿨다. "제트"가 실제로 어머니의 처녀 시절 성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11] 로스앤젤레스에서 제트가 가장 좋아했던 나이트 스폿은 글램 록 스타일을 제공하는 장소인 로드니 빙겐하이머의 잉글리시 디스코(Rodney Bingenheimer's English Disco)였다.[12][13]
3. 경력
더 런어웨이즈는 유럽, 아시아, 호주, 캐나다, 남미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미국 본토에서는 비슷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커리와 폭스가 탈퇴한 후에도 밴드는 두 장의 앨범을 더 발매했지만, 1979년 봄에 해산했다.[113] 해산 직후 제트는 잼스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스튜디오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1979년 봄, 제트는 잉글랜드에서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전 섹스 피스톨즈의 폴 쿡, 스티브 존스와 함께 3곡을 녹음했는데, 그 중 한 곡은 The Arrows의 곡 "I Love Rock 'n' Roll"의 초기 버전이었다. 같은 해 후반, 제트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여 런어웨이즈의 활동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출연했고, 이 과정에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케니 라구나와 친구가 되어 함께 일하게 되었다.
제트와 라구나는 라구나의 제안으로 더 후의 램포트 스튜디오에 들어갔고, 제트의 솔로 데뷔 앨범은 1980년 유럽에서 발매되었다. 미국에서는 23개의 주요 레이블로부터 거절당했기 때문에,[114] 라구나가 딸의 대학 진학을 위해 모아둔 자금으로 시작한 새로운 독립 레이블 "블랙하트 레코즈"에서 발매되었다. 라구나는 "우리는 직접 레코드를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서, 블랙하트 레코즈가 탄생했다. 이것은 대체로 조앤의 발상이었다"라고 회상했다.[115] 제트는 우연히 자신의 레이블을 시작한 최초의 여성 뮤지션이 되었다.[114]
제트는 라구나의 도움을 받아 조안 제트 & 더 블랙하츠를 결성했다. X의 존 도가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참가했고, 게리 라이언이 베이시스트로 합류했다. 라이언은 기타리스트 에릭 엠버를 추천했고, 드러머 대니 "퓨리어스" 오브라이언이 합류하여 초대 블랙하츠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할리우드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한 후, 첫 유럽 투어를 떠났다.
제트, 라이언, 엠버는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으로 이사했지만, 오브라이언은 잉글랜드에 남았다. 오디션을 통해 리 크리스탈이 새로운 드러머로 합류했고, 조안 제트 & 더 블랙하츠는 미국 전역을 투어하며 뉴욕에서 많은 팬을 얻었다. 제트와 라구나는 개인 저축을 털어 앨범을 제작하고 자체 유통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수요를 따라갈 수 없게 되자 카사블랑카 레코드의 설립자 닐 보가트의 도움을 받아 공동 사업을 시작했다. 새로운 레이블 보드워크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첫 앨범 《조안 제트》는 《배드 레퓨테이션》으로 재발매되었다.
그해 말 더 블랙하츠는 앨범 《I Love Rock 'n' Roll》을 녹음했고, 녹음 중에 기타리스트가 엠버에서 리키 버드로 교체되었다. 새 싱글 "I Love Rock 'n' Roll"은 1982년 초 7주 동안 빌보드 히트 차트 1위를 차지했고,[116] 토미 제임스 & 더 션델스의 커버곡 "크림슨 앤 클로버"도 미국 7위를 기록했다.
American Top 40에 이어, 폴리스, 퀸, 에어로스미스 등과 함께 한 투어는 매진되었다. 제트는 1969년 루마니아의 블러드, 스웨트 & 티어스에 이어 철의 장막을 넘어 공연한 두 번째 미국인이 되었고, 파나마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공연한 최초의 영어권 로커 중 한 명이 되었다.
자신의 MTV 스페셜을 받은 후, 제트는 마이클 J. 폭스가 주연한 영화 《사랑과 영광의 나날》에 출연했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제트를 위해 주제가를 썼다. 이 무렵, 라이언과 크리스탈이 더 블랙하츠를 떠났고, 토미 프라이스와 카심 설턴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해 후반, 제트는 비치 보이스, 슈가힐 갱, 달린 러브가 참여한 앨범 《굿 뮤직》을 발매했다.
조안 제트 & 더 블랙하츠는 브로드웨이 런트 폰탄 극장에서 콘서트를 연 최초의 록 밴드가 되었으며, 당시 티켓 매진 최단 기록을 깼다. 다음 앨범 《업 유어 앨리》는 미국에서 플래티넘 디스크를 획득했고, 이어진 《히트 리스트》는 커버곡을 모은 앨범이었다. 이 기간 동안, 앨리스 쿠퍼의 앨범 《트래시》에 수록된 "House of Fire"를 공동 집필했다.
더 리플레이스먼츠의 폴 웨스터버그가 참여한 1991년 앨범 《노토리어스》를 마지막으로 제트는 CBS 소니에서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로 이적했다. 1993년, 제트와 라구나는 블랙하트 레이블의 다양한 곡들을 편집한 컴필레이션 앨범 《Flashback》을 발매했다.
제트는 자신의 데뷔 전에 여러 밴드를 프로듀싱했으며, 블랙하트 레이블에서 슬래시 메탈 밴드 메탈 처치와 래퍼 빅 대디 케인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레코드를 발매했다.
언론은 제트를 "펑크의 대모", "오리지널 라이엇 걸"로 선전했다. 1994년, 베이브스 인 토이랜드의 캣 비에랜드, L7의 도니타 스파크스, 비키니 킬의 캐슬린 한나와 함께 작곡한 곡이 수록된 앨범 《퓨어 앤 심플》을 발매했다.
3. 1. 더 런어웨이즈 (1975-1979)
16세의 조앤 제트는 드러머 샌디 웨스트와 함께 더 런어웨이즈의 창립 멤버였다. 미키 스틸이 잠시 보컬과 베이스를 담당했고, 이후 재키 폭스, 리타 포드, 셰리 커리가 합류하여 밴드의 클래식 라인업을 완성했다. 커리가 초기에 밴드를 이끌었지만, 제트는 일부 리드 보컬과 리듬 기타를 연주했으며, 포드, 웨스트, 커리와 함께 밴드의 일부 곡을 쓰고 공동 작사했다. 이들은 세 개의 앨범을 녹음했다.
밴드는 전 세계를 순회하며 칩 트릭, 라몬즈, 반 헤일런,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의 오프닝 밴드로 활동했다. 특히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유럽, 아시아, 호주, 캐나다, 남미에서도 인기를 얻었지만, 미국에서는 같은 수준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13][14] 커리가 밴드를 떠난 후, 제트가 리드 보컬을 맡은 두 개의 앨범, ''Waitin' for the Night''와 ''And Now... The Runaways''를 발매했다. 1976년 런어웨이스와 함께 영국을 순회하던 중, 제트는 Arrows의 주간 영국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애로우즈가 "I Love Rock 'n' Roll"을 공연하는 것을 보고 처음 그 곡을 접했다.[15] 런어웨이즈는 1975년부터 1979년 봄 해체될 때까지 총 다섯 개의 앨범을 제작했다.[16]
3. 2. 솔로 활동 및 조앤 제트 앤 더 블랙하츠 (1980-현재)
제트와 라구나는 더 후의 램포트 스튜디오에 들어갔고, 제트의 동명 솔로 데뷔 앨범은 1980년 5월 17일 유럽에서 아리올라 레코드를 통해 발매되었다. 미국에서는 23개의 주요 음반사로부터 거절당한 후,[19] 제트와 라구나는 라구나의 딸의 대학 저축 자금으로 시작한 새로운 블랙하트 레코드 레이블을 통해 독립적으로 발매했다.[17] 라구나의 도움을 받아 제트는 더 블랙하츠를 결성했다. 이 밴드는 창립 이후 많은 라인업 변경을 겪었으며, 제트와 라구나만이 유일하게 꾸준한 멤버였다.
1981년 봄 뉴욕 시티 팔라디움에서 열린 콘서트는 전환점이 되었다. 음악 평론가들은 제트의 경력을 정의하는 공연으로 묘사했으며, 조안 제트 앤 더 블랙하츠에 대한 뉴욕 시티의 강력한 팬층을 굳건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20] 1년간의 투어와 녹음 후, 블랙하트는 레이블을 위해 "I Love Rock 'n' Roll"이라는 새 앨범을 녹음했다. 녹음 중에 기타리스트 리키 버드가 합류했다.[21][22] 이 앨범의 첫 번째 싱글은 타이틀 곡 "I Love Rock 'n' Roll"이었는데, 1982년 상반기에 ''빌보드'' 핫 100에서 7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23] 이 곡은 ''빌보드'' 역대 56위 곡이며,[24] 2016년에는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5]
제트는 ''Album''(1983)과 ''Glorious Results of a Misspent Youth''(1984)를 발매했다. 톱 40 히트곡들이 잇따랐고, 더 폴리스, 퀸, 에어로스미스 등과 함께 매진 투어를 했다. 그녀는 파나마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공연한 최초의 영어권 록 가수 중 한 명이었다.[26] 제트와 라구나는 파나마 방문 중에 폭동이 발생했으며 마누엘 노리에가가 제트에게 대통령 궁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낼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27][28]
다음으로 제트는 록 밴드에서 공연하는 남매로 마이클 J. 폭스와 함께 출연하는 영화 ''Light of Day''(1987)의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원래 폴 슈레이더 감독이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스프링스틴은 역할을 거절하고 영화를 위해 "Light of Day"를 작곡했다.[29][30]
1990년, 블랙하츠는 제트가 랜디 칸토어 및 마이클 카루소와 함께 작곡한 "Long Live the Night"이라는 곡을 ''Days of Thunder''의 사운드트랙에 수록했다. 1991년에 발매된 앨범 ''Notorious''는 더 리플레이스먼츠의 Paul Westerberg와 전 Billy Idol의 베이시스트 필 페이트가 참여했으며, 제트가 워너 브라더스로 이적하면서 Sony/CBS와 함께 한 마지막 앨범이었다. 1993년, 제트와 라구나는 자체 Blackheart Records에서 여러 곡을 모아 편집한 앨범 ''Flashback''을 발매했다. 1994년, 블랙하츠는 Babes in Toyland의 Kat Bjelland, L7의 Donita Sparks 및 Bikini Kill의 Kathleen Hanna와 함께 작곡한 트랙이 수록된 호평을 받은 앨범 ''Pure and Simple''을 발매했다.
제트는 1992년 Circus Lupus 밴드를 위해 프로듀싱을 다시 맡았고, 1994년에는 Bikini Kill을 위해 프로듀싱을 맡았다. 1997년, 제트는 ''We Will Fall: The Iggy Pop Tribute'' 앨범에 참여했다. 그녀는 Johnny O'Keefe의 곡 "Wild One"(또는 "Real Wild Child")을 커버했다. 제트는 Marky Ramone and the Intruders의 1999년 앨범 ''The Answer to Your Problems?''의 "Don't Blame Me" 트랙에 게스트 아티스트로 참여했다. 그녀는 Peaches의 앨범 ''Impeach My Bush''의 "Boys Wanna Be Her" 및 "You Love It" 트랙에 게스트 보컬로 참여했다.
1997년, 그녀는 시트콤 ''Ellen''의 에피소드 "Hello Muddah, Hello Faddah"에 출연하여 주제가를 불렀다.[36] 2000년, 제트는 로키 호러 쇼의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 컬럼비아 역으로 출연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제트는 메릴랜드 공영 텔레비전을 위해 새로운 영화 및 비디오 단편을 선보이는 쇼케이스인 ''Independent Eye''를 진행했다.[37]
2004년, 제트와 라구나는 더 아이라이너스(The Eyeliners)를 영입한 후 그들의 앨범 ''No Apologies''를 프로듀싱했다. 제트는 또한 "Destroy" 트랙에 게스트로 참여했으며 뮤직 비디오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또한 2004년, 제트는 자살 환상을 공유하는 두 십 대에 관한 단편 영화 ''Godly Boyish''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2005년, 제트와 라구나는 펑크 록 밴드 더 바캔시스(the Vacancies)를 영입하여 그들의 두 번째 앨범 ''A Beat Missing or a Silence Added''(CMJ 뮤직 차트 20위권 진입)와 2007년 세 번째 앨범 ''Tantrum''을 프로듀싱했다. 같은 해, 그녀는 스티븐 반 잔트에 의해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의 반 잔트의 ''Underground Garage'' 라디오 채널에서 자신의 라디오 쇼를 진행하도록 스카우트되었다. 그녀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방송되는 4시간짜리 쇼 ''Joan Jett's Radio Revolution''을 진행했다.[38] 이 프로그램은 2008년 6월에 취소되기 직전에 시리우스 25(''Underground Garage'')[39]에서 시리우스 28로 옮겨졌다.[40][41] 또한 2005년, 제트와 라구나는 맨해튼의 웹스터 홀에서 매진 쇼를 열어 블랙하트 레코드 창립 25주년을 기념했다.[42]
2006년 6월, 제트는 블랙하트 레코드에서 앨범 ''Sinner''를 발매했다. 앨범 홍보를 위해 밴드는 2006년 워프 투어와 2006년 가을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과의 투어에 출연했다. 제트는 더 하트 어택스(the Heart Attacks)의 2006년 앨범 ''Hellbound and Heartless''의 수록곡 "Tearstained Letters"에서 체이스 노울스와 듀엣으로 노래했다.
2008년, 제트는 다렌 린 보스만의 록 오페라/영화 ''Repo! The Genetic Opera''에 "Seventeen" 곡 동안 실로의 방에 있는 기타리스트로 카메오 출연했다.[43] 또한 2008년, 그녀는 ''Law & Order: Criminal Intent'' 에피소드 "Reunion"에 살해당하는 록앤롤 토크쇼 호스트로 출연했다.
4. 음악 스타일 및 영향
제트는 메조소프라노 음역대를 가지고 있다.[72] 그녀의 시그니처 기타는 흰색 깁슨 멜로디 메이커로, 1977년 이후 모든 히트곡에서 이 기타를 사용했다.[74] 제트는 라스베리스가 해체된 후 에릭 카르멘에게서 첫 번째 멜로디 메이커를 구입했다.[73]
5. 사회 운동 및 기타 활동
제트는 오랫동안 동물 권리 운동과 동물 보호 협회(PETA)와 같은 단체를 지지해 왔다.[55] 2022년 밸런타인데이에는 PETA가 로스앤젤레스 피자 가게 PIZZANISTA!와 협력하여 한정판 (검정색) 하트 모양 피자를 만들었다.[56]
제트는 1993년 리드 싱어이자 작사가인 미아 자파타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던 펑크 록 밴드 더 기츠의 멤버들과 함께 작업했다.[13] 그들의 협업 결과물은 라이브 앨범 ''이블 스티그''와 싱글 "밥"이었으며, 이 곡들의 수익금은 자파타의 살인 사건 수사에 기여되었다. 이를 위해 밴드와 제트는 텔레비전 쇼 ''아메리카스 모스트 원티드''에 출연하여 대중에게 정보를 요청했다. 이 사건은 2004년 자파타의 살인범인 헤수스 메즈키아가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해결되었다.
2001년 10월 9.11 테러 추모 행사에서 레드뱅크, 뉴저지,[57] 제트와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올라 "Light of Day"를 연주했다.
제트는 스포츠 팬이며 스포츠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Bad Reputation"은 UFC 여성 밴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가 UFC 157 유료 시청 이벤트에서 입장곡으로 사용했으며, 현재 WWE에서 그녀의 테마 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9년 4월, 제트는 로우지가 등장할 때 WWE의 레슬매니아 35에서 "Bad Reputation"을 공연했다.[58]
제트가 커버한 "Love Is All Around"(''메리 타일러 무어 쇼''의 주제가)는 NCAA에서 여자 파이널 포를 홍보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상업적으로 출시되지 않은 "Unfinished Business"라는 곡도 사용되었다. "Love Is All Around"는 상당한 라디오 방송을 탔고 음반 지원 없이 가장 많이 요청된 곡 1위가 되었다. 제트는 ESPN X 게임 초연의 주제가를 제공했으며, 그 이후 모든 게임에 음악을 기여했다. 칼 립켄 주니어의 요청에 따라 그녀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경기에서 미국 국가를 불렀고, 이 경기에서 그는 루 게릭의 연속 경기 출장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59] 그녀는 또한 기념 경기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에서 국가를 불렀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그녀의 노래 "I Hate Myself for Loving You"의 멜로디는 가사를 개사하고 "Waiting All Day for Sunday Night"로 제목을 변경하여 ''NBC 선데이 나이트 풋볼''의 테마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2019 시즌부터 제트는 선데이 나이트 풋볼 경기 오프닝에서 캐리 언더우드와 함께 이 곡을 공연한다.[60]
제트는 이라크 전쟁 반대를 이유로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하워드 딘을 지지했지만,[61][62] 그녀는 경력 전반에 걸쳐 미국 군대를 꾸준히 지지해 왔으며 20년 넘게 유나이티드 서비스 기구(USO)를 위해 투어를 해왔고,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공연하기도 했다.[63] 그녀는 종종 전쟁은 싫어하지만 군대는 사랑한다고 설명한다.[64]
2016년 6월, 49명의 사망자를 낸 펄스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제트는 ''빌보드'' 잡지의 총기 폭력에 관한 공개 서한에 서명하여 의회에 총기 규제 법안, 특히 보편적 신원 조사 법안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제트 다음으로 레이디 가가와 약 200명의 다른 음악가 및 음악 업계 임원들이 이 청원에 동참했다.[65]
2024년, 제트는 마크 노플러의 "고잉 홈: 로컬 히어로의 주제" 재발매에 기타 연주로 참여하여 십대 암 신탁(Teenage Cancer Trust)을 지원했다.[66]
6. 사생활
조앤 제트는 1980년대 후반부터 채식주의자이며 동물 권리를 지지한다.[97][98]
제트는 수년 동안 자신이 레즈비언인지 혹은 양성애자인지에 대한 소문을 인정하거나 부인하는 것을 거부했다. 1994년 잡지 ''아웃''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그렇다고 말하지도 않으며, 당신이 원하는 것을 믿으라고 말한다. 마음대로 추측해라, 어서."라고 말했다.[99] 2006년, 한 인터뷰어가 언제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했는지 묻자, "나는 어떤 수준에서도 내 사생활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한 적이 없다. 어떤 선언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지 모르겠다."라고 답했다.[100]
2018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LGBT 영화제에서 그녀가 "커밍아웃"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질문에, 제트는 "[목걸이를 들고] 그들이 왜 영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거지? [비속어] 그게 뭐지? 두 개의 라브리스 또는 도끼가 서로 교차하고, 두 여성의 심볼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걸 받은 이후로 떼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매일 이것을 착용한다. [그녀는 뒤돌아서서 셔츠를 들어 올려서 허리 아래쪽에 비슷한 여성 심볼의 문신을 보여준다.] 내가 얼마나 더 선언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102]
제트는 뉴욕 롱비치에 거주하며, 1970년대 후반부터 뉴욕 거주민으로 살고 있다.[103][104] 그녀는 열렬한 볼티모어 오리올스 팬이다.[105]
7. 논란
2015년 7월, 더 런어웨이즈의 전 멤버 재키 푹스는 1975년 새해 전야에 킴 포울리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16세였던 푹스는 한 남성이 준 콰알루드를 복용하고 무력해진 상태에서, 여러 파티 참석자와 밴드 동료인 커리, 웨스트, 제트가 보는 앞에서 포울리에게 강간당했다고 한다.[106] 이 사건은 록 음악 업계의 성 학대를 다룬 다큐멘터리 룩 어웨이에 포함되었다.[107]
푹스는 그날 밤 마지막 기억으로 커리와 제트가 포울리가 자신을 강간하는 동안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106] 그룹의 공동 설립자이자 작사가인 카리 크롬은 강간 당시 "제트와 커리가 방 한쪽에 앉아 킬킬거렸다"고 말했다.[106] 2015년, 제트는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친구나 밴드 동료가 폭행당하는 것을 알았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70년대 록 스타덤에 던져진 어린 십 대들에게는 기이한 관계가 있었지만, 나는 이 사건을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108][109] 빅토리 티슐러-블루는 그룹의 모든 멤버가 "항상 이 추악한 사건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110]
8. 음반 목록
(Joan Jett and the Blackhe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