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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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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영제는 1935년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모교 교수로 36년간 재직하며 한국 디자인 교육과 발전에 기여한 디자이너이다. OB맥주 레이블 리뉴얼을 시작으로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 등의 CI 디자인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한국 기업 CI 디자인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1988 서울 올림픽 디자인을 총괄하고 한국시각디자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디자인 단체 활동에도 헌신했다. 1999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하고 2012년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으며, 2019년에는 AGI 협회 Legacy Member로 선정되는 등 한국 디자인계의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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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제 (디자이너)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조영제 교수
조영제 교수
직업디자이너
분야아이덴티티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학력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 응용미술학과
출생일1935년 5월 27일
사망일2019년 9월 6일
웹사이트조영제 공식 웹사이트

2. 생애

'''조영제'''는 1935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서 태어나 1958년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공예부에서 입선과 특선을 했으나, 졸업 후 그래픽 디자인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 초기에는 화신산업과 조흥은행 등에서 근무했으며 개인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1965년 모교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2000년 정년퇴임까지 36년간 재직하며 두 차례 학장직을 수행했고, 이후 2001년부터 7년간 동서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장을 맡아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교육자로서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도 활동하여, 1976년에는 한글 타자기에 적합한 글자꼴 디자인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디자이너 최초로 한글 탈네모꼴 모듈을 제안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조영제 디자인 연구실'(현재 CDR)을 중심으로 OB맥주, 제일제당,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 등 국내 유수 기업의 CI(Corporate Identity) 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한국 CI 디자인 분야를 개척했다. 특히 1976년 개최한 ‘조영제 디자인展: 데코마스(DECOMAS) 사례전’은 국내 기업계에 CI의 중요성을 알리고 CI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72년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KSGD, 이후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로 개칭) 창립을 주도하고 여러 차례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와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의 초대회장을 맡는 등 디자인 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국제적으로도 활발히 교류하여 일본디자인학회 해외 회원 및 객원회원으로 활동하고, 국제그래픽디자인단체협의회(ICOGRADA) 가입을 주도했으며, 다수의 국제 디자인 공모전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한국 디자이너의 위상을 높였다.

88 서울 올림픽에서는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디자인 전반을 총괄했으며, 공식 포스터와 스포츠 포스터 등을 직접 디자인하는 등 성공적인 대회 개최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 디자인의 여명기인 1960년대부터 활동하며 학계와 디자인계를 이끌어 온 그는 디자인 산업의 기초를 다지고 한국 디자인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으며, 2012년에는 국내 최초로 봉상균과 함께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2015년에는 국제디자인협회(ico-D)로부터 디자인 공로상을 수상했고, 2019년에는 국제그래픽연맹(AGI) 레거시 멤버(Legacy Member)로 선정되었다. 조영제는 디자인을 '생각하는 작업'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했고, 디자이너의 사회적 위상과 권익 향상을 위해 평생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35-1965)

'''조영제'''는 1935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서 태어났다. 1958년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1950년대 중반은 아직 디자인과 공예의 개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공예부의 영향력이 커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공예부에 작품을 출품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영제 역시 대학교 3학년 때 국전 공예부에 입선했으며, 4학년 때는 특선과 입선을 동시에 수상했다. 하지만 졸업 후 스스로 진로를 그래픽 디자인 분야로 정하면서 더 이상 공예 작업은 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화신산업과 조흥은행에서 근무했으며, 중간에 잠시 개인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한홍택의 추천으로 덕성여자대학교 생활미술과 주임교수로 근무하다가, 1965년 12월 모교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교수로 임용되어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편, 정부가 디자인 분야 진흥을 위해 제1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약칭 상공미전,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의 전신) 개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영제는 한홍택, 김교만, 염인택, 조병덕 등과 함께 제1부 상업미술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는 한국 디자인계의 초기 형성에 기여한 활동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 2. 디자인 교육 및 연구 활동 (1965-2007)

조영제는 1965년 12월, 한홍택의 추천으로 덕성여자대학교 생활미술과 주임교수로 근무하다가 모교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2000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36년간 서울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재직 중 두 차례 학장직을 수행했다. 정년퇴임 후에는 2001년부터 7년간 동서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 원장으로 취임하여 지역 디자인 교육 발전에 기여했다.

교육 활동 외에도 연구에 힘썼는데, 특히 1976년 12월 서울미대 학술지 <조형> 창간호에 발표한 '한글기계화(타자기)를 위한 구조의 연구' 논문은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는다. 이 논문에서 그는 한글 타자기에서는 기존의 네모꼴 글자를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타자기에 적합한 새로운 글자꼴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한글 탈네모꼴 모듈을 제안했다. 비록 조영제 자신이 후속 연구를 이어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제안은 이후 김인철, 이상철, 김진평, 안상수, 한재준, 석금호, 구성회 등 여러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주어 탈네모꼴 글자에 대한 실험과 개발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조영제는 디자인을 단순히 기술적인 작업이 아닌 '생각하는 작업'으로 정의하며, 디자인 콘셉트와 현대적인 감각, 새롭고 합리적인 시각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또한, 디자이너의 사회적 위상이 낮았던 시기에 활동을 시작하여 평생 디자이너의 권익 향상과 디자인 분야의 전문성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2. 3. 디자인 단체 활동 및 국제 교류

조영제는 디자인 관련 협회 활동과 국제 교류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1972년에는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KSGD)를 창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 협회는 이후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는 KSVD가 1993년 해산되기 전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회장직을 맡았다. 이후 1994년에 출범한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의 초대회장과 1995년에 만들어진 한국디자인법인단체총연합회(현재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의 초대회장을 역임하며 디자인계 발전에 기여했다.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79년에는 일본디자인학회의 첫 번째 해외 회원이 되었고, 1997년에는 객원회원(Honorary Membership)으로 추대되었다. 한국 디자인의 성장기였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KSVD와 일본그래픽디자인협회(JAGDA) 간의 교류전을 추진하고 해외 유명 디자이너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여는 등 국제 교류를 이끌었다. 특히 KSVD 회장으로 재임하던 1983년에는 국제그래픽디자인단체협의회(ICOGRADA) 가입을 주도하여 한국 디자인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또한 1984년 일본에서 열린 제1회 'Morisawa Awards International Typeface Competition'의 국제심사위원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홍콩, 중국 등 여러 국제 디자인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국제 무대에서 한국 디자이너의 역량을 알리고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4. 기업 CI 디자인 및 컨설팅 (1972-1997)

조영제는 ‘조영제 디자인 연구실’(현재 CDR)을 중심으로 국내 여러 기업의 CI(Corporate Identity) 개발을 진행했다. 그가 CI 분야에 처음 발을 들인 계기는 OB맥주 레이블 리뉴얼 디자인이었다. 1972년, 동양맥주로부터 디자인 자문을 하던 민철홍의 의뢰로 동료 교수인 조영제, 양승춘과 함께 작업했으며, 조영제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동양맥주는 이 레이블 디자인을 회사 심벌마크로 확대 적용하는 작업을 조영제에게 맡겼고, 이는 한국 최초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동양맥주와 제일제당의 CI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이듬해인 1975년에는 제일모직과 신세계백화점의 CI도 개발했다. 1976년 3월 신세계미술관에서 열린 ‘조영제 디자인展: 데코마스(DECOMAS) 사례전’은 동양맥주,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의 CI 개발 사례를 모아 소개한 전시였다. 조영제는 이 전시를 통해 당시 생소했던 CI 개념과 중요성을 기업인과 일반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알렸으며, 이는 국내 기업계에 CI 도입 붐을 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 5. 88 서울 올림픽 디자인 (1982-1988)

조영제는 88 서울 올림픽의 행사 및 디자인 콘셉트 설정을 위해 윤호섭과 함께 <88서울올림픽 마스터플랜>을 작성하고, 1982년부터 1988년 올림픽 개막 때까지의 연도별 시행계획을 마련했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의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디자인 전반을 총괄했다.

그는 역대 올림픽 포스터들이 당대의 가장 앞선 그래픽 표현 기법을 도입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88 서울 올림픽 공식 포스터에는 컴퓨터 그래픽을 시도하고자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국내 기술 여건상 구현이 어려워, 조영제가 스케치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평소 교류하던 일본의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源田悦夫|겐다 에쓰오jpn의 도움을 받아 포스터를 완성했다. 이렇게 제작된 '화합과 전진' 공식 포스터는 1985년에 발표되었다.

또한, 조영제는 1985년 1986년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의 종목별 픽토그램 32종의 제작 방향을 지도했으며, 1987년에는 서울 올림픽 스포츠 픽토그램 30종의 디렉션을 맡았다.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 스포츠 포스터 시리즈 27점을 직접 디자인했다. 조영제의 리더십과 전문성은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디자인전문위원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2. 6. 수상 및 헌정

3. 업적

대한민국의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한국 디자인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디자인 교육자이자 실무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며 기업 아이덴티티(CI), 한글 글꼴 디자인, 국제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대학 졸업 후 초기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공예부에 출품하기도 했으나, 그래픽 디자인으로 진로를 정한 후에는 디자인 분야에 집중했다. 1966년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의 전신인 제1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상공미전) 출범 당시 상업미술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한국 디자인의 제도적 틀 형성에 기여했다.

조영제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국내 기업 아이덴티티(CI) 디자인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1972년 OB맥주 레이블 디자인을 시작으로 제일제당,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 등 다수 기업의 CI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한국 최초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사례들을 만들었다. 특히 1976년 개최한 '조영제 디자인展: 데코마스(DECOMAS) 사례전'은 당시 생소했던 CI 개념을 국내 기업과 대중에게 알리고 그 중요성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한글 디자인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1976년 발표한 논문 '한글기계화(타자기)를 위한 구조의 연구'에서 타자기 환경에 적합한 탈네모꼴 한글 글자꼴 모듈을 제안했다. 이는 디자이너로서는 최초의 시도였으며, 이후 여러 디자이너들에 의해 탈네모꼴 글꼴 연구와 개발이 이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주요 디자인 단체 창립과 운영에 참여하며 디자인계 발전을 이끌었으며, 활발한 국제 교류를 통해 한국 디자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88서울올림픽에서는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디자인 전반을 총괄하고 성공적인 개최에 기여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컴퓨터 그래픽 기법을 도입하여 공식 포스터와 스포츠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디자인 교육자로서 서울대학교동서대학교 등에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디자인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내외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고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조영제는 디자인을 '생각하는 작업'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새롭고 합리적인 시각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모색했고, 디자이너의 사회적 위상과 권익 향상을 위해서도 평생 노력했다.

3. 1. 주요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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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내용
1965–2000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교수
1972–1985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 제2대, 3대, 6대, 7대 회장
1974조영제 디자인 연구실(현재 CDR) 설립
1987–1989세계그래픽디자인단체협의회(ICOGRADA) 이사
1986–1989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1997–2019일본디자인학회 객원회원(Honorary Membership)
1994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 초대회장
1994–1995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현 한국디자인진흥원) 이사
1995한국디자인법인단체총연합회 초대회장
2000–2019서울대학교 명예교수
2001동서대학교 명예 디자인학 박사
2001–2007동서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 원장
1966–1977대한민국 상공미술전람회 추천작가 및 심사위원
1978–2019대한민국 디자인전람회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1973–1975신세계백화점 상임자문위원
1974–1977조선일보 광고대상 심사위원
1976–1982대우그룹 기획조정실 디자인 고문
1983–1991대우전자 디자인 고문
1979–1981서울특별시 정책자문위원
1981–1992제일기획 자문의원
1982–1988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
1984, 1987일본 Morisawa Awards, International Typeface Competition 국제 심사위원
1986–1995체신부 정책자문위원회 우표심의분과 심의위원
1990–1993대전엑스포조직위원회 디자인 자문위원
1998홍콩디자인협회(HKDA)주최 ‘디자인98’ 국제 심사위원
2000–2019한국디자인학회 고문 및 명예회원
2001–2007일본 아시아 디지털아트 어워드 국제 심사위원
2006제1회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스 어워드 심사위원


3. 2. 주요 디자인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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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기관/단체직책/역할
1966-1977대한민국 상공미술전람회추천작가 및 심사위원
1973-1975신세계백화점상임자문위원
1974-1977조선일보광고대상 심사위원
1976-1982대우그룹기획조정실 디자인 고문
1978-2019대한민국 디자인 전람회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1979-1981서울특별시정책자문위원
1981-1992제일기획자문의원
1982-1988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
1983-1991대우전자디자인 고문
1984, 1987일본 Morisawa Awards, International Typeface Competition국제 심사위원
1986-1995체신부 (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정책자문위원회 우표심의분과 심의위원
1990-1993대전엑스포조직위원회디자인 자문위원
1998홍콩디자인협회(HKDA) 주최 ‘디자인98’국제 심사위원
2000-2019한국디자인학회고문 및 명예회원
2001-2007일본 아시아 디지털아트 어워드국제 심사위원
2006제1회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스 어워드심사위원


3. 3. 주요 수상 내역

연도수상 내역비고
1989년대통령 표창서울올림픽 디자인전문위원장 공로
1994년동탑산업훈장대전엑스포 디자인자문 공로
1999년국민훈장 모란장디자인 발전을 위한 공로
2008년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헌정부산디자인진흥원
2012년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헌정한국디자인진흥원
2015년국제디자인총회 국제디자인협회(ico-D) 디자인공로상
2019년국제그래픽연맹(AGI) Legacy Member 선정


4. 작품 활동

1958년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화신산업조흥은행에서 근무했으며 잠시 개인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한홍택의 추천으로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하다 1965년 모교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교수로 임용되어 2000년 정년퇴임까지 36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퇴임 후 2001년부터 7년간 동서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 원장을 맡아 지역 디자인 교육에도 힘썼다.

초기 디자인계 활동으로는 1966년 제1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상공미전, 현 대한민국 디자인 전람회)의 제1부 상업미술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선전(鮮展) 공예부와 해방 후 국전 공예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 디자인이 시각디자인과 공업디자인을 중심으로 제도적 틀을 갖추는 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이었다.

조영제는 '조영제 디자인 연구실'(현재 CDR)을 중심으로 수많은 국내 기업의 CI(Corporate Identity) 디자인을 수행하며 이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OB맥주, 제일제당,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 등의 초기 CI 개발을 주도했으며, 1976년 '조영제 디자인展: 데코마스(DECOMAS) 사례전'을 통해 CI 개념 확산에 기여했다. 또한 1976년 논문을 통해 타자기 환경에 맞는 '탈네모꼴' 한글 글꼴 모듈을 제안하여 후속 연구의 단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88 서울 올림픽에서는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디자인 전반을 총괄하고 공식 포스터 등을 디자인했다.

학계 활동 외에도 디자인계 발전을 위한 조직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72년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KSGD)를 창립하고 이후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로 개칭된 이 협회의 회장을 네 차례 역임했다. 1994년 출범한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와 1995년 만들어진 한국디자인법인단체총연합회(현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의 초대회장을 맡는 등 디자인 단체 활동을 주도했다.

국제 교류에도 힘써 1979년 일본디자인학회 해외 회원이 되었고 1997년에는 객원회원(Honorary Membership)으로 추대되었다. KSVD 회장 시절에는 1983년 국제그래픽디자인단체협의회(Icograda, 현 ico-D) 가입을 주도했으며, 1984년 일본 모리사와 국제 타이포그래피 공모전을 시작으로 여러 국제 디자인 어워드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제 무대에서 한국 디자이너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조영제는 디자인을 단순히 미적인 작업이 아닌 '생각하는 작업'으로 정의하고, 항상 새롭고 합리적인 시각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디자인 교육자이자 성공적인 아트디렉터로서 활동하며 디자인의 전문성과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디자이너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4. 1. 주요 작품

조영제는 CI(Corporate Identity) 디자인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CI 작업은 OB맥주 레이블 리뉴얼 디자인에서 시작되었다. 1972년, 동료 교수 민철홍, 양승춘과 함께 동양맥주(현 OB맥주)의 의뢰를 받아 레이블 디자인을 진행했으며, 조영제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동양맥주는 이 디자인을 회사 심벌마크로 확대 적용하기로 결정했고, 조영제가 이 작업을 맡아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아이덴티티 디자인 사례 중 하나를 만들었다.

동양맥주와 제일제당의 CI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조영제는 1975년에 제일모직과 신세계백화점의 CI도 개발했다. 1976년 3월 신세계미술관에서 열린 '조영제 디자인展: 데코마스(DECOMAS) 사례전'은 이들 기업의 CI 개발 과정을 소개하며 국내 기업계에 CI의 중요성을 알리고 CI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조영제는 한글 디자인 연구에도 기여했다. 1976년 12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술지 《조형》 창간호에 '한글기계화(타자기)를 위한 구조의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기존의 네모 틀 한글 글자꼴이 타자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타자기 환경에서도 미려한 한글 표현이 가능한 새로운 글자꼴, 즉 '탈네모꼴' 한글 모듈을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제안했다. 비록 조영제 자신이 후속 연구를 이어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제안은 이후 김인철, 이상철, 김진평, 안상수, 한재준, 석금호, 구성회 등 여러 디자이너에 의해 탈네모꼴 글자 실험과 개발로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1988년 88 서울 올림픽에서는 디자인 분야 전반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다. 윤호섭과 함께 <88서울올림픽 마스터플랜>을 작성하여 행사 및 디자인 콘셉트를 설정하고, 1982년부터 올림픽 개막까지의 연도별 시행 계획을 마련했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공식 포스터와 스포츠 포스터 디자인을 직접 수행했다. 특히 공식 포스터 '화합과 전진'에서는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하고자 일본의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겐다 에쓰오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 이는 역대 올림픽 포스터들이 당대의 가장 앞선 그래픽 표현 기법을 도입했던 흐름을 따른 것이었다.

그 외에도 한겨레신문의 제호 디자인(1996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디자인 작업을 남겼다.

다음은 조영제의 주요 작품 및 디자인 개발 목록이다.

연도구분내용
1956공예대한민국미술전람회 공예부 입선 '가리개'
1957공예대한민국미술전람회 공예부 특선 월정(月情), 입선 '석류( 柘榴)'
1963심벌마크대한중석 심벌마크 현상 공모 당선
1963그래픽 디자인조흥은행 캘린더 디자인
1965공간 디자인서울은행 집회소(현 전국은행연합회) 현관 모자이크 제작
1966공간 디자인조흥은행 본점 신축 로비 모자이크 및 외벽 부조 제작
1966포스터제1회 대한민국 상공미술전람회 출품 KOREA 관광포스터
1971심벌마크한국과학기술원(KAIST) 심벌마크 디자인
1974CIOB맥주 레이블 및 동양맥주(현 OB맥주) CI 개발
1975CI제일모직 CI, 제일제당 CI 개발
1976CI/VI신세계백화점 CI, 서울대학교 VI 리뉴얼 개발
1978CI/심벌마크제일합섬 CI 개발, 한국종합금융 심벌마크 디자인
1979CI/심벌마크한국외환은행 CI 개발, 리버사이드호텔 심벌마크 디자인
1980CI삼립식품 CI 개발
1981CI국민은행 CI, 대림산업 CI,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보험) CI, 한국산업은행 CI 개발
1982CI경기은행(현 하나은행) CI 개발
1983CI동아제약 CI, 피어리스(현 스킨푸드) CI, 한국투자신탁(현 한국투자증권) CI 개발
1984CI주식회사 럭키(현 LG화학) CI 개발
1985포스터서울올림픽대회 공식 포스터 디자인 발표 '화합과 전진'
1985픽토그램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종목별 픽토그램 32종 디렉션
1985CI/BI/심벌마크동서식품 CI·BI, 한국교원대학교 심벌마크 디자인
1986CI/심벌마크기아자동차 CI,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심벌마크 디자인
1986그래픽 디자인월간 디자인 창간 10주년 기념호 표지 및 포스터 디자인
1987픽토그램서울올림픽대회 스포츠 픽토그램 30종 디렉션
1988포스터서울올림픽대회 스포츠 포스터 시리즈(27점) 디자인
1988CI/VI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 CI, 충북은행(현 신한은행) CI, 동남증권 CI, 이건산업 CI, 한국무역협회 CI, 코오롱패션연구원 VI 개발
1989CI/BI한국장기신용은행(현 국민은행) CI, 동양맥주 OB슈퍼드라이 BI, 주식회사 남성 CI 및 CROWN BI 개발
1991CI/VI/BI삼성중공업 CI, 동양화재해상보험(현 메리츠화재) VI, 삼도그룹 CI, 삼미그룹 CI, 전북은행 CI, 데이콤(현 LG유플러스) CI, 동서식품 맥스웰, 맥심, 프리마, 동서벌꿀 BI 개발
1991포스터대전세계박람회 공식 포스터 디자인
1992CI/BI강원은행(현 신한은행) CI, 동양맥주 OB Sky BI, 두산음료 미니라운지 BI, 두산식품 그린빌 BI 개발
1993CI/VI/BI기아자동차 CI, OB씨그램(현 디아지오 코리아) CI, 패션브랜드 타임 BI, 현대건설 주택사업본부 VI, 미라스트로 BI, 더 메자닌 BI, 모든아이 BI 개발
1994BI코오롱상사 르페 BI, 남양알로에(현 유니베라) 비베르 BI, 한섬 시스템 BI 개발
1995포스터2002년 FIFA 월드컵 유치 포스터 디자인
1996제호 디자인한겨레신문 제호 디자인
1997CI아남그룹 CI 개발
2003제품 디자인한샘인테리어 아트 에이프런(Art Apron) 27종 디자인


4. 2. 전시 및 초청 강연

1976년 3월, 신세계백화점 미술관에서 '조영제 디자인展: 데코마스(DECOMAS) 사례전'을 개최하였다. 이 전시는 동양맥주,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의 CI(Corporate Identity) 개발 사례를 정리하여 보여준 것으로, 당시 생소했던 CI 개념을 기업인과 일반 대중에게 쉽게 알리고 그 중요성을 널리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시를 통해 국내 기업계에 CI 붐이 일어나는 데 기여했다.

또한, 국내외 다양한 디자인 공모전 및 행사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디자인의 수준을 알리고 국제적 교류에 힘썼다. 주요 심사위원 경력은 다음과 같다.

연도활동 내용
1966-1977대한민국 상공미술전람회 추천작가 및 심사위원
1974-1977조선일보 광고대상 심사위원
1978-2019대한민국 디자인 전람회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1984, 1987일본 Morisawa Awards, International Typeface Competition 국제 심사위원
1986-1995체신부 정책자문위원회 우표심의분과 심의위원
1998홍콩디자인협회(HKDA) 주최 ‘디자인98’ 국제 심사위원
2001-2007일본 아시아 디지털아트 어워드 국제 심사위원
2006제1회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스 어워드 심사위원


5. 평가

한국 디자인의 초기 단계인 1960년대부터 활동하며 학계와 디자인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디자인 교육자로서 서울대학교동서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설립한 디자인 회사 CDR의 성공적인 운영과 다수의 CI(Corporate Identity) 개발 경험을 통해 아트디렉터로서 새로운 디자이너 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과 디자인 매니지먼트 역량을 보여주었다.

조영제는 디자인을 '생각하는 작업'으로 여겼으며, 디자인 콘셉트와 현대적인 감각을 중시하고 항상 새롭고 합리적인 시각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다. 88서울올림픽의 디자인 전체를 총괄하고 공식 포스터를 디자인했으며,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한글 탈네모꼴 모듈을 제안하는 등 한국 디자인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또한, 디자이너의 사회적 위상이 낮았던 시기에 활동을 시작하여 디자인 분야가 하나의 독립된 전문 직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평생 디자이너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으며, 2012년에는 봉상균과 함께 한국디자인진흥원의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헌정되었다. 국제적으로도 2015년 국제디자인협회(ico-D)로부터 디자인 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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