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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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커즌 선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이 제안한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의 동부 국경선이다. 1919년 영국 외무 대신 조지 커즌 경이 제안했으며, 폴란드는 이 선을 수용하지 않고 폴란드-소련 전쟁을 일으켰다. 1921년 리가 조약으로 커즌 선보다 동쪽에 폴란드의 국경이 정해졌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중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따라 폴란드가 분할 점령되었고, 연합국의 승인을 거쳐 커즌 선이 폴란드의 동부 국경으로 확정되었다. 현재는 폴란드의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이 되었으며, 강대국의 결정으로 국경이 정해지고 민족 구성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한국의 분단 상황과 유사한 점을 보인다.
제1차 세계 대전 후반, 연합군은 과거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제국의 영토에서 독립된 폴란드 국가가 탄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독립된 폴란드 국가는 폴란드인이 살고 있는 명확한 영토를 포함해야 하며, 바다로 자유롭고 안전하게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르사유 조약 87조는 "현재 조약에서 정해지지 않은 폴란드 국경은 연합군과 그 동맹국에 의해서 정해져야 한다"고 규정했다.[65][66]
1939년 8월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은 산강, 비스와강, 나레프강을 따라 폴란드를 분할하기로 하였다. 이 안은 커즌선보다 더 동쪽에 있었으며, 소련에 루블린 및 바르샤바 인근 영토까지 할양하였다. 그해 10월, 소련은 커즌선 동부 및 비아위스토크와 동부 갈리치아 지방을 합병하고, 이 지역의 폴란드인 및 유대인을 소련 동부로 강제 이주시켰다. 1941년 7월, 나치 독일은 바르바로사 작전을 통해 이 지역을 점령하고, 대부분 유대인을 추방하거나 살해했다.
커즌선 동부와 서부 지역의 인구 구성은 복잡했으며, 여러 민족과 종교 집단이 혼재되어 있었다.
2. 역사
이에 따라 연합군 최고 위원회는 폴란드 위원회에 폴란드의 동부 국경을 결정하도록 요청했다. 위원회는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이 함께 살고 있는 지역에 국경을 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65][66] 1919년 4월 22일, 위원회는 19세기 폴란드의 국경과 비슷한 폴란드-러시아 국경 제안을 발표했다.[66]
몇 달 간의 논의 끝에, 1919년 12월 8일 위원회는 "다음 선 서쪽의 과거 러시아 제국에서 폴란드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선언과 함께 지도와 선의 상세한 설명을 발표했다.[66] 이와 동시에 위원회는 "폴란드의 향후 동부 국경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으며, 폴란드가 이 선 동쪽의 영토를 지배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66] 그러나 이 선언은 즉각적인 효과를 얻지 못했고, 연합군은 폴란드에 선언 채택을 권유했으나 폴란드는 이를 거부했다.[66][67]
1919년 영국의 외무대신 조지 커즌 경이 제안한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의 동부 국경선이 커즌선이다. 커즌 선은 영국이 과거에 승인했던 제3차 폴란드 분할 이후 프로이센 왕국과 러시아 제국의 경계와 비슷했다. 커즌의 안에는 A안과 B안이 있었는데, B안에서는 리비우를 폴란드 영토로 하는 안이었다.[56]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이 발발하고, 폴란드군은 동쪽으로 진격하여 1920년 5월 키예프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소련의 강력한 반격으로 폴란드 총리 브와디스와프 그라프스키는 7월에 연합군의 도움을 요청했다. 폴란드는 압박에 의해 1919년에 제안된 안을 거부하고 현재 전선 부근에서 휴전에 동의했다.[68] 1920년 7월 11일, 커즌은 볼셰비키 정부에 휴전을 요구하는 전보를 보냈고, 이 때문에 '커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66]
1920년 7월 커즌의 제안은 12월 제안과 두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69] 12월 메모는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에 있었던 갈리치아 지역을 언급하지 않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 국경은 포흐 선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에 빌뉴스 지역을 둘러싼 분쟁도 언급하지 않았다.[69] 7월 메모는 흐로드나부터 빌뉴스를 지나 라트비아 다우가프필스로 이어지는 선을 언급하여 폴란드-리투아니아 분쟁을 언급했다.[69] 또한 초기 회의에서 A안과 B안으로 나뉜 갈리치아 지방에 대한 언급이 추가되었으며, 리비우와 근처 유전을 러시아에 할양하는 A안을 지지했다.[69][70] 그러나 커즌선의 이 부분은 당시 갈리치아 전투의 전황을 포함하지 않았고, 그라프스키의 안대로 7월 메모에 포함된 것 자체가 분쟁의 소지가 있었다.[68]
소련은 이 메모를 거부하고 영국이 러시아와 폴란드 간의 평화 조약을 방해한다고 비난했다. 소련은 폴란드 측이 먼저 시작하면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으며, 당시 커즌선에서 제안한 것보다 폴란드에 더 유리한 안을 제시했다.[71] 8월에 소련은 바르샤바 근처에서 폴란드에 패배하여 후퇴해야 했다. 폴란드의 공세 속에서 폴란드 정부는 그라프스키의 안을 거부하며 연합군이 지지하지도 보호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72]
1921년 리가 조약에서 소련은 커즌선보다 동쪽의 영토를 할양하여[73] 폴란드에 빌뉴스를 포함한 빌나 정부(1920/1922년), 리비우를 포함한 동갈리치아(1919년), 볼히니아 지역 대부분(1921년)을 할양했다. 폴란드는 그 결과로 약 135000km2의 영토를 얻었고, 폴란드 동부 국경은 평균적으로 커즌선에서 250km 동쪽으로 확장되었다.[74][75] 폴란드-소련 국경은 1923년 국제 연맹에서 확정되었고, 폴란드가 새로 획득한 영토에는 새 주가 설치되었다.
폴란드 영토 확장에 대한 우려 속에서, 폴란드 정치인들은 서쪽으로 확장하자는 파와 동쪽으로 확장하자는 파로 나뉘었다. 서쪽 확장을 주장한 대표적인 정치인은 로만 드모프스키였다. 그는 범슬라브주의를 제창하며, 폴란드의 동부 국경은 인종 분포로 결정하고 독일에 맞서자고 주장했다.[76] 동쪽 확장을 주장한 정치인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였으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영토 수복을 주장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군대가 약화되자, 피우수트스키는 폴란드-소련 전쟁에 참가하여 자신의 야망을 이루었다.
2. 1.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은 독일 제국, 소비에트 연방,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에 독립된 폴란드 국가를 세우는 데 동의했다.[6] 그러나 폴란드의 동쪽은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리투아니아인, 유대인 등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사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국경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베르사유 조약에서는 폴란드 동부 국경을 "추후 결정한다"라고만 명시했다.[13][14]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14개조에서 "논란의 여지 없이 폴란드인이 거주하는 영토"를 포함하는 독립 폴란드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13] 베르사유 조약 87조는 "현재 조약에서 정해지지 않은 폴란드 국경은 연합군과 그 동맹국에 의해서 정해져야 한다"고 명시했다.[13]
이에 따라 연합군 최고 위원회는 폴란드 문제 위원회에 폴란드의 동부 국경을 제안하도록 위임했다. 위원회는 1919년 12월 8일, "이 선 서쪽의 과거 러시아 제국에서 폴란드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선언과 함께 지도와 선의 상세한 설명을 발표했다.[14] 그러나 동시에 위원회는 "폴란드의 향후 동부 국경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으며, 폴란드가 이 선 동쪽의 영토를 지배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14]
1919년에 영국의 외무 대신 조지 커즌 경은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의 동부 국경선 안을 제창했는데, 이것이 커즌 선이다. 커즌 선은 영국이 과거에 승인했던 제3차 폴란드 분할 이후의 프로이센 왕국과 러시아 제국의 경계와 비슷했다.[56] 커즌의 안에는 A안과 B안이 있었는데, B안에서는 리비우를 폴란드 영토로 하는 안이었다.[56]
그러나 당시에는 관계국 간의 대립으로 인해 이 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폴란드는 분할 이전의 영토 회복을 주장하며 커즌 선 수용을 거부했고,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이 발발했다. 연합군은 폴란드에 이 선언을 채택할 것을 권유했으나, 폴란드는 이를 무시했다.[14][15]
2. 2.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1919-1921)
폴란드군은 동쪽으로 진격하여 1920년 5월 키예프를 점령했다. 강력한 소비에트 반격 이후, 블라디슬라프 그랍스키 총리는 7월에 연합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압박을 받은 그는 폴란드가 1919년의 경계선까지 철수하는 데 동의했으며, 갈리치아에서는 현재 교전선 근처에서 휴전을 맺기로 합의했다.[16] 1920년 7월 11일, 커즌은 볼셰비키 정부에 휴전을 해당 경계선에서 설정할 것을 제안하는 전보에 서명했고, 그의 이름은 이후 이 경계선과 연관되었다.[14]
커즌의 1920년 7월 제안은 1919년 12월 발표와 두 가지 중요한 점에서 달랐다.[17] 1919년 12월의 제안은 갈리치아 문제를 다루지 않았는데, 갈리치아는 러시아가 아닌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이며, 빌뉴스 지역에 대한 폴란드-리투아니아 분쟁도 다루지 않았는데, 당시 국경선은 포흐 선에 의해 정해졌기 때문이다.[17] 1920년 7월의 제안은 그로드노에서 빌뉴스를 거쳐 북쪽으로 라트비아의 다우가프필스(디나부르크)로 이어지는 선을 언급함으로써 폴란드-리투아니아 분쟁을 구체적으로 다루었다.[17] 또한 이전 논의에서 A선과 B선이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갈리치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17] 이 제안은 A선을 지지했는데, A선은 리비우와 그 인근의 유전을 러시아 내에 포함했다.[18] 이 선의 부분은 그랍스키의 합의에 따라 갈리치아의 현재 교전선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7월 제안에 이 부분이 포함된 것은 논쟁의 여지를 남겼다.[16]
7월 17일, 소비에트는 이 제안에 거부로 답했다.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게오르기 치체린은 러시아와 폴란드 간의 평화 조약에 대한 영국의 늦은 관심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폴란드 측이 요청하는 한 협상을 시작하는 데 동의했다. 당시 소비에트 측은 커즌 선이 제시한 것보다 폴란드에 더 유리한 국경 해결책을 제시했다.[19] 8월에 소비에트는 바르샤바 외곽에서 폴란드군에 의해 패배하여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의 폴란드 공세 동안, 폴란드 정부는 연합국이 지원이나 보호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경계선에 대한 그랍스키의 합의를 부인했다.[20]
1921년 3월의 리가 조약에서 소비에트는 커즌 라인보다 훨씬 동쪽에 국경을 양보했다. 폴란드는 빌나 현 (1920/1922)의 상당 부분을 정복했는데, 여기에는 빌노(Wilno, ''빌뉴스'')와 동 갈리시아(1919), 도시 르부프를 포함하며, 대부분의 볼히니아 지역(1921)도 포함되었다. 이 조약은 폴란드에게 거의 135000sqkm의 땅을 제공했는데, 이는 평균적으로 커즌 라인에서 약 250km 동쪽에 있었다.[22][23]
2. 3. 폴란드 내 정치적 갈등
폴란드 영토 확장에 대한 우려 속에서, 폴란드 정치인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한 그룹은 폴란드를 서쪽 옛 영토를 중심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그룹은 동쪽 옛 영토를 중심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초, 서쪽 중심 복원을 주장한 대표적인 정치인은 로만 드모프스키였다. 범슬라브주의 운동을 지지했던 그는, 민족학적 원칙에 따라 폴란드의 동부 국경을 정하고, 러시아보다 더 큰 적인 독일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22] 그는 벨라루스인들을 중앙집권적인 폴란드 국가 내에서 쉽게 동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동쪽 중심 복원을 주장한 대표적인 정치인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였다. 그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경을 광범위하게 복원하여 다국적 연방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제국이 내전으로 붕괴되고 소비에트 군대가 약화되자, 피우수트스키는 이 기회를 틈타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려 했다.
3. 제2차 세계 대전
1944년, 소련군은 동부 폴란드를 탈환하고, 커즌선과 거의 일치하는 새로운 국경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 정부는 이에 반대했으나, 테헤란 회담과 얄타 회담에서 연합군은 스탈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스탈린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내가 커즌 경만큼 러시아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질문하였다.[77] 변경된 커즌선은 폴란드의 새 동부 국경이 되었고 1945년 7월 서방 연합군이 인정하였다.
4. 인구 구성
1931년 폴란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커즌선 동부에는 폴란드인이 상당수 거주했다. 1944년 ''더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1931년에는 커즌 라인 동쪽에 220만에서 250만 명의 폴란드인이 거주했다.[26] 역사가 요하난 코헨(Yohanan Cohen)은 1939년 리가 조약으로 획득한 커즌 라인 동쪽의 전간기 폴란드 영토의 인구가 총 1,200만 명으로, 50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인, 350만에서 400만 명의 폴란드인, 150만 명의 벨라루스인, 130만 명의 유대인으로 구성되었다고 추정했다.[27]
제2차 세계 대전 중 정치인들은 인구 이동의 영향을 받는 커즌 라인 동쪽의 폴란드인 인구에 대해 다양한 추정치를 제시했다. 윈스턴 처칠은 "커즌 라인 동쪽에 300만에서 400만 명의 폴란드인이 있다"고 언급했다.[28] 당시 망명 폴란드 정부의 총리였던 스타니스와프 미코와이치크는 이 인구를 500만 명으로 추산했다.[29]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을 합하면 전간기 동부 폴란드의 다수를 차지했다.[30] 이 지역에는 또한 상당수의 유대인 거주민이 있었다. 폴란드인은 빌뉴스 지역 또는 빌노 보이보데십과 같은 주요 도시(유대인 다음)와 일부 농촌 지역에서 다수를 차지했다.[30][31][32]
193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커즌선 동부 지역의 주요 도시는 르비우(인구 312,200명), 빌뉴스(인구 195,100명), 이바노-프란키우스크(인구 60,000명), 흐로드나(인구 49,700명) 등이었다.
1939-1941년 소련의 폴란드인과 유대인 추방 이후(소련의 폴란드 소수 민족 참조), 홀로코스트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볼히니아와 동갈리시아의 폴란드인 대량 학살로 이 영토의 폴란드인 인구는 상당히 감소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커즌 라인 동쪽의 폴란드인 인구는 이전 동부 폴란드와 1939년 이전의 소련의 수치를 합산하여 추정할 수 있다.지역 폴란드어 모국어 (로마 가톨릭 신자) 자료(인구 조사) 오늘날의 지역 전간기 폴란드 남동부 2,243,011 (1,765,765)[37][38] 1931년 폴란드 인구 조사[39] 우크라이나 전간기 폴란드 북동부 1,663,888 (1,358,029)[40][41] 1931년 폴란드 인구 조사 벨라루스 및 리투아니아 전간기 소련 우크라이나 476,435 1926년 소련 인구 조사 우크라이나 전간기 소련 벨라루스 97,498 1926년 소련 인구 조사 벨라루스 전간기 소련 러시아 197,827 1926년 소련 인구 조사 러시아 전간기 소련의 나머지 지역 10,574 1926년 소련 인구 조사 전간기 리투아니아 65,599 1923년 리투아니아 인구 조사 리투아니아 전간기 라트비아 59,374 1930년 라트비아 인구 조사[42] 라트비아 전간기 에스토니아 1,608 1934년 에스토니아 인구 조사 에스토니아 총계 400만에서 500만 명의 민족 폴란드인
아래는 1931년 인구 조사에 따른 전간기 남동부 폴란드(현재 서우크라이나)와 전간기 북동부 폴란드(현재 서벨라루스 및 남부 리투아니아)의 언어(모국어) 및 종교 구조를 군별로 나타낸 표이다.
남동부 폴란드:
{| class="wikitable sortable mw-collapsible"
|+ 1931년 남동부 폴란드의 언어 및 종교 구조[43][44][45][46][47]
! 군
! 인구
! 폴란드어
! %
! 이디시 & 히브리어
! %
! 우크라이나어 & 루테니아어
! %
! 기타 언어
! %
! 로마 가톨릭
! %
! 유대교
! %
! 유니에이트 & 정교회
! %
! 기타 종교
! %
|-
| 두브노
| 226,709
| 33,987
| 15.0%
| 17,430
| 7.7%
| 158,173
| 69.8%
| 17,119
| 7.6%
| 27,638
| 12.2%
| 18,227
| 8.0%
| 173,512
| 76.5%
| 7,332
| 3.2%
|-
| 호로키우
| 122,045
| 21,100
| 17.3%
| 9,993
| 8.2%
| 84,224
| 69.0%
| 6,728
| 5.5%
| 17,675
| 14.5%
| 10,112
| 8.3%
| 87,333
| 71.6%
| 6,925
| 5.7%
|-
| 코스토필
| 159,602
| 34,951
| 21.9%
| 10,481
| 6.6%
| 105,346
| 66.0%
| 8,824
| 5.5%
| 34,450
| 21.6%
| 10,786
| 6.8%
| 103,912
| 65.1%
| 10,454
| 6.6%
|-
| 코벨
| 255,095
| 36,720
| 14.4%
| 26,476
| 10.4%
| 185,240
| 72.6%
| 6,659
| 2.6%
| 35,191
| 13.8%
| 26,719
| 10.5%
| 187,717
| 73.6%
| 5,468
| 2.1%
|-
| 크레메네츠
| 243,032
| 25,758
| 10.6%
| 18,679
| 7.7%
| 196,000
| 80.6%
| 2,595
| 1.1%
| 25,082
| 10.3%
| 18,751
| 7.7%
| 195,233
| 80.3%
| 3,966
| 1.6%
|-
| 류보믈
| 85,507
| 12,150
| 14.2%
| 6,818
| 8.0%
| 65,906
| 77.1%
| 633
| 0.7%
| 10,998
| 12.9%
| 6,861
| 8.0%
| 65,685
| 76.8%
| 1,963
| 2.3%
|-
| 루츠크
| 290,805
| 56,446
| 19.4%
| 34,142
| 11.7%
| 172,038
| 59.2%
| 28,179
| 9.7%
| 55,802
| 19.2%
| 34,354
| 11.8%
| 177,377
| 61.0%
| 23,272
| 8.0%
|-
| 리브네
| 252,787
| 36,990
| 14.6%
| 37,484
| 14.8%
| 160,484
| 63.5%
| 17,829
| 7.1%
| 36,444
| 14.4%
| 37,713
| 14.9%
| 166,970
| 66.1%
| 11,660
| 4.6%
|-
| 사르니
| 181,284
| 30,426
| 16.8%
| 16,019
| 8.8%
| 129,637
| 71.5%
| 5,202
| 2.9%
| 28,192
| 15.6%
| 16,088
| 8.9%
| 132,691
| 73.2%
| 4,313
| 2.4%
|-
| 볼로디미르-볼린스키
| 150,374
| 40,286
| 26.8%
| 17,236
| 11.5%
| 88,174
| 58.6%
| 4,678
| 3.1%
| 38,483
| 25.6%
| 17,331
| 11.5%
| 89,641
| 59.6%
| 4,919
| 3.3%
|-
| 즈돌부니우
| 118,334
| 17,826
| 15.1%
| 10,787
| 9.1%
| 81,650
| 69.0%
| 8,071
| 6.8%
| 17,901
| 15.1%
| 10,850
| 9.2%
| 86,948
| 73.5%
| 2,635
| 2.2%
|-
| 보르시치우
| 103,277
| 46,153
| 44.7%
| 4,302
| 4.2%
| 52,612
| 50.9%
| 210
| 0.2%
| 28,432
| 27.5%
| 9,353
| 9.1%
| 65,344
| 63.3%
| 148
| 0.1%
|-
| 브로디
| 91,248
| 32,843
| 36.0%
| 7,640
| 8.4%
| 50,490
| 55.3%
| 275
| 0.3%
| 22,521
| 24.7%
| 10,360
| 11.4%
| 58,009
| 63.6%
| 358
| 0.4%
|-
| 베레자니
| 103,824
| 48,168
| 46.4%
| 3,716
| 3.6%
| 51,757
| 49.9%
| 183
| 0.2%
| 41,962
| 40.4%
| 7,151
| 6.9%
| 54,611
| 52.6%
| 100
| 0.1%
|-
| 부차치
| 139,062
| 60,523
| 43.5%
| 8,059
| 5.8%
| 70,336
| 50.6%
| 144
| 0.1%
| 51,311
| 36.9%
| 10,568
| 7.6%
| 77,023
| 55.4%
| 160
| 0.1%
|-
| 초르트키우
| 84,008
| 36,486
| 43.4%
| 6,474
| 7.7%
| 40,866
| 48.6%
| 182
| 0.2%
| 33,080
| 39.4%
| 7,845
| 9.3%
| 42,828
| 51.0%
| 255
| 0.3%
|-
| 카미안카부스카
| 82,111
| 41,693
| 50.8%
| 4,737
| 5.8%
| 35,178
| 42.8%
| 503
| 0.6%
| 29,828
| 36.3%
| 6,700
| 8.2%
| 45,113
| 54.9%
| 470
| 0.6%
|-
| 코피친치
| 88,614
| 38,158
| 43.1%
| 5,164
| 5.8%
| 45,196
| 51.0%
| 96
| 0.1%
| 31,202
| 35.2%
| 7,291
| 8.2%
| 50,007
| 56.4%
| 114
| 0.1%
|-
| 피드하이치
| 95,663
| 46,710
| 48.8%
| 3,464
| 3.6%
| 45,031
| 47.1%
| 458
| 0.5%
| 38,003
| 39.7%
| 4,786
| 5.0%
| 52,634
| 55.0%
| 240
| 0.3%
|-
| 페레미슐리아니
| 89,908
| 52,269
| 58.1%
| 4,445
| 4.9%
| 32,777
| 36.5%
| 417
| 0.5%
| 38,475
| 42.8%
| 6,860
| 7.6%
| 44,002
| 48.9%
| 571
| 0.6%
|-
| 라데히우
| 69,313
| 25,427
| 36.7%
| 3,277
| 4.7%
| 39,970
| 57.7%
| 639
| 0.9%
| 17,945
| 25.9%
| 6,934
| 10.0%
| 42,928
| 61.9%
| 1,506
| 2.2%
|-
| 스칼라트
| 89,215
| 60,091
| 67.4%
| 3,654
| 4.1%
| 25,369
| 28.4%
| 101
| 0.1%
| 45,631
| 51.1%
| 8,486
| 9.5%
| 34,798
| 39.0%
| 300
| 0.3%
|-
| 테르노필
| 142,220
| 93,874
| 66.0%
| 5,836
| 4.1%
| 42,374
| 29.8%
| 136
| 0.1%
| 63,286
| 44.5%
| 17,684
| 12.4%
| 60,979
| 42.9%
| 271
| 0.2%
|-
| 테레보울리아
| 84,321
| 50,178
| 59.5%
| 3,173
| 3.8%
| 30,868
| 36.6%
| 102
| 0.1%
| 38,979
| 46.2%
| 4,845
| 5.7%
| 40,452
| 48.0%
| 45
| 0.1%
|-
| 잘리시치키
| 72,021
| 27,549
| 38.3%
| 3,261
| 4.5%
| 41,147
| 57.1%
| 64
| 0.1%
| 17,917
| 24.9%
| 5,965
| 8.3%
| 48,069
| 66.7%
| 70
| 0.1%
|-
| 즈바라지
| 65,579
| 32,740
| 49.9%
| 3,142
| 4.8%
| 29,609
| 45.2%
| 88
| 0.1%
| 24,855
| 37.9%
| 3,997
| 6.1%
| 36,468
| 55.6%
| 259
| 0.4%
|-
| 즈보리우
| 81,413
| 39,624
| 48.7%
| 2,522
| 3.1%
| 39,174
| 48.1%
| 93
| 0.1%
| 26,239
| 32.2%
| 5,056
| 6.2%
| 49,925
| 61.3%
| 193
| 0.2%
|-
| 졸로치우
| 118,609
| 56,628
| 47.7%
| 6,066
| 5.1%
| 55,381
| 46.7%
| 534
| 0.5%
| 36,937
| 31.1%
| 10,236
| 8.6%
| 70,663
| 59.6%
| 773
| 0.7%
|-
| 돌리나
| 118,373
| 21,158
| 17.9%
| 9,031
| 7.6%
| 83,880
| 70.9%
| 4,304
| 3.6%
| 15,630
| 13.2%
| 10,471
| 8.8%
| 89,811
| 75.9%
| 2,461
| 2.1%
|-
| 고로덴카
| 92,894
| 27,751
| 29.9%
| 5,031
| 5.4%
| 59,957
| 64.5%
| 155
| 0.2%
| 15,519
| 16.7%
| 7,480
| 8.1%
| 69,789
| 75.1%
| 106
| 0.1%
|-
| 칼루시
| 102,252
| 18,637
| 18.2%
| 5,109
| 5.0%
| 77,506
| 75.8%
| 1,000
| 1.0%
| 14,418
| 14.1%
| 6,249
| 6.1%
| 80,750
| 79.0%
| 835
| 0.8%
|-
| 콜로미야
| 176,000
| 52,006
| 29.5%
| 11,191
| 6.4%
| 110,533
| 62.8%
| 2,270
| 1.3%
| 31,925
| 18.1%
| 20,887
| 11.9%
| 121,376
| 69.0%
| 1,812
| 1.0%
|-
| 코시우
| 93,952
| 6,718
| 7.2%
| 6,730
| 7.2%
| 79,838
| 85.0%
| 666
| 0.7%
| 4,976
| 5.3%
| 7,826
| 8.3%
| 80,903
| 86.1%
| 247
| 0.3%
|-
| 나드비르나
| 140,702
| 16,907
| 12.0%
| 11,020
| 7.8%
| 112,128
| 79.7%
| 647
| 0.5%
| 15,214
| 10.8%
| 11,663
| 8.3%
| 113,116
| 80.4%
| 709
| 0.5%
|-
| 로하틴
| 127,252
| 36,152
| 28.4%
| 6,111
| 4.8%
| 84,875
| 66.7%
| 114
| 0.1%
| 27,108
| 21.3%
| 9,466
| 7.4%
| 90,456
| 71.1%
| 222
| 0.2%
|-
| 스타니슬라비우
| 198,359
| 49,032
| 24.7%
| 26,996
| 13.6%
| 120,214
| 60.6%
| 2,117
| 1.1%
| 42,519
| 21.4%
| 29,525
| 14.9%
| 123,959
| 62.5%
| 2,356
| 1.2%
|-
| 스트리이
| 152,631
| 25,186
| 16.5%
| 15,413
| 10.1%
| 106,183
| 69.6%
| 5,849
| 3.8%
| 23,404
| 15.3%
| 17,115
| 11.2%
| 108,159
| 70.9%
| 3,953
| 2.6%
|-
| 스니아틴
| 78,025
| 17,206
| 22.1%
| 4,341
| 5.6%
| 56,007
| 71.8%
| 471
| 0.6%
| 8,659
| 11.1%
| 7,073
| 9.1%
| 61,797
| 79.2%
| 496
| 0.6%
|-
| 틀루마치
| 116,028
| 44,958
| 38.7%
| 3,677
| 3.2%
| 66,659
| 57.5%
| 734
| 0.6%
| 31,478
| 27.1%
| 6,702
| 5.8%
| 76,650
| 66.1%
| 1,198
| 1.0%
|-
| 지다치우
| 83,817
| 16,464
| 19.6%
| 4,728
| 5.6%
| 61,098
| 72.9%
| 1,527
| 1.8%
| 15,094
| 18.0%
| 5,289
| 6.3%
| 63,144
| 75.3%
| 290
| 0.3%
|-
| 비브르카
| 97,124
| 30,762
| 31.7%
| 5,533
| 5.7%
| 60,444
| 62.2%
| 385
| 0.4%
| 22,820
| 23.5%
| 7,972
| 8.2%
| 66,113
| 68.1%
| 219
| 0.2%
|-
| 도브로밀
| 93,970
| 35,945
| 38.3%
| 4,997
| 5.3%
| 52,463
| 55.8%
| 565
| 0.6%
| 25,941
| 27.6%
| 7,522
| 8.0%
| 59,664
| 63.5%
| 843
| 0.9%
|-
| 도로호비치
| 194,456
| 91,935
| 47.3%
| 20,484
| 10.5%
| 79,214
| 40.7%
| 2,823
| 1.5%
| 52,172
| 26.8%
| 28,888
| 14.9%
| 110,850
| 57.0%
| 2,546
| 1.3%
|-
| 고로도크
| 85,007
| 33,228
| 39.1%
| 2,975
| 3.5%
| 47,812
| 56.2%
| 992
| 1.2%
| 22,408
| 26.4%
| 4,982
| 5.9%
| 56,713
| 66.7%
| 904
| 1.1%
|-
| 야보리우
| 86,762
| 26,938
| 31.0%
| 3,044
| 3.5%
| 55,868
| 64.4%
| 912
| 1.1%
| 18,394
| 21.2%
| 5,161
| 5.9%
| 62,828
| 72.4%
|
4. 1. 커즌선 동부
이 지역의 인구 구성은 세계 대전 사이의 시기 및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측정하기 어려웠다. 1930년대 후반, 커즌선 동부 및 리가 조약으로 획득한 영토에는 약 1,2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했으며, 주요 민족은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벨라루스인, 유대인이었다.[80] 도시 지역은 폴란드인 또는 폴란드계 유대인이 다수였고, 농촌 지역은 우크라이나인이나 벨라루스인이 다수였다.
20세기 초반,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은 농촌 지역에서 다수였고, 빌뉴스, 리비우, 흐로드나 등 도시 지역에서는 폴란드인이 다수였다. 1939-1941년 사이의 폴란드인 및 유대인 강제 이주와 홀로코스트로 폴란드인 인구는 크게 줄었지만, 빌뉴스, 리비우, 흐로드나 등 일부 도시에는 여전히 폴란드계가 다수였다. 1945년 이후, 커즌선 동부에 살던 폴란드인들은 대부분 이주하거나 추방되었지만,[83][84] 현재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등지에 여전히 폴란드계 소수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85]
4. 2. 커즌선 서부
커즌선 서부 지역 중심에는 폴란드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8][9][10][11][12] 현재 폴란드의 비아위스토크 주변에는 벨라루스계 농촌 인구가,[8][9][10][11][12] 체움 주변에는 우크라이나계 인구가 살고 있었다.[8][9][10][11][12] 많은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비스와 작전에 의해 폴란드가 새로 획득한 독일 영토로 강제 이주당했다.[8][9][10][11][12]
5. 전후 상황과 한국에 주는 교훈
소련 해체 이후, 커즌선은 폴란드의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의 동부 국경이 되었다. 커즌선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민족, 종교, 이념 등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만들어진 국경선으로, 분단과 영토 문제를 겪은 한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55] 특히, 강대국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국경선이 정해지고, 그 과정에서 민족 구성과 주민들의 의사가 무시될 수 있다는 점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유사하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테헤란 회담 등 연합국과의 협의에서 커즌 선을 경계로 할 것을 주장하여 연합국의 승인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폴란드의 동부 국경은 대략 커즌 선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55]
커즌 선 동쪽 지역은 1939년 소련 점령 당시 1,300만 명의 인구 중 폴란드인이 500만에서 600만 명에 달했지만, 그중 수십만 명이 소련에 의해 중앙 아시아의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55] 또한 100만 명 이상이었던 유대인 대부분은 소련의 박해나 독일군의 침입으로 도망치거나 살해되었다. 1945년 이후 커즌 선 동쪽에 살던 폴란드인 대부분은 폴란드로 이주했고, 폴란드가 독일로부터 얻은 오데르-나이세 선 동부의 신 영토(회복 영토, 구 독일령의 포메라니아, 실롱스크, 동프로이센 남부)에 정착했다. 그러나 현재에도 벨라루스에 50만 명 가까이, 우크라이나에 15만 명 정도, 러시아에 10만 명 이상의 폴란드인이 거주하고 있다.[55] 커즌 선 서쪽에도 농촌 지대 등에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 있었지만, 이들 역시 제2차 세계 대전 후 폴란드 정부의 "비스와 작전" 등으로 소련 국경에서 먼 구 독일령(회복 영토)으로 강제 이주되었다.[55]
더불어민주당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며, 커즌선의 사례를 통해 강대국 중심의 외교가 아닌, 민족 자결주의와 상호 존중에 기반한 외교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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