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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퓨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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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러퓨모 사건은 1960년대 초 영국에서 발생한 정치적 스캔들로, 전쟁 장관 존 프로퓨모와 모델 크리스틴 킬러의 부적절한 관계가 주요 내용이다. 이 사건은 냉전 시대의 간첩 사건과 정치적 긴장 속에서 벌어졌으며, 킬러는 프로퓨모 외에도 소련 해군 무관 예브게니 이바노프와도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사건이 불거지자 프로퓨모는 하원에서 거짓 증언을 했고, 결국 사임했으며, 이 사건과 관련된 스티븐 워드는 매춘 알선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자살했다. 이 사건은 보수당 정부에 큰 타격을 주었고, 해럴드 맥밀런 총리의 사임과 1964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 프러퓨모 사건은 영국 사회의 도덕적 해이와 상류층의 위선을 드러냈으며, 정치인과 언론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 사건은 여러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각색되어 대중문화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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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퓨모 사건
사건 개요
존 프러퓨모
존 프러퓨모
법원 건물로 향하는 크리스틴 킬러
크리스틴 킬러
발생 시기1963년
관련 국가영국
주요 인물존 프러퓨모
크리스틴 킬러
유진 아이번스
피터 매닝엄-불러
발레리 홉킨스
스티븐 워드
윌리엄 월드롭
해럴드 맥밀런
사건 배경
주요 내용당시 영국 보수당 정치가인 존 프러퓨모크리스틴 킬러라는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이 드러나면서 발생한 정치 스캔들
연루 인물존 프러퓨모: 당시 영국 국방부 장관
크리스틴 킬러: 문제의 여성, 소련 해군 무관과도 관계를 맺음
유진 아이번스: 미국 공군 무관, 킬러와 관련
스티븐 워드: 정골요법 의사, 킬러와 고위층 연결
사건 전개
초기 의혹프러퓨모와 킬러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프러퓨모는 이를 부인
진실 폭로이후 킬러가 소련 스파이와도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국가 안보 문제로 비화
프러퓨모의 자백결국 프러퓨모는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하고 국방부 장관직에서 사임
정부 위기이 사건으로 해럴드 맥밀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큰 타격을 입음
스티븐 워드의 죽음
재판스티븐 워드는 매춘 알선 혐의로 기소되었고, 유죄 판결을 받기 직전 자살
사건 결과 및 영향
정치적 파장보수당의 지지율 하락 및 1964년 영국 총선 패배에 영향을 미침
사회적 영향영국 사회의 도덕 불감증과 고위층의 부패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기록
프러퓨모의 이후 삶프러퓨모는 사회 봉사 활동에 헌신하며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 이후 훈장 수훈
관련 사건
유사 사건워터게이트 사건, 르윈스키 스캔들 등 권력형 스캔들

2. 배경

2. 1. 정치적 배경

1960년대 초 영국은 냉전의 한복판에서 여러 간첩 사건으로 인해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1961년 포틀랜드 간첩단 사건과 조지 블레이크 체포 및 선고가 있었고, 1962년에는 존 배설이 소련에 의해 간첩 행위로 협박당한 사건이 발생했다.[1] 배설은 18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언론에서 그가 정치적 상사들에 의해 보호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책임 장관인 토머스 갈브레이스는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임했다. 갈브레이스는 이후 배설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2] 래드클리프 경은 배설의 사생활에 대한 선정적이고 근거 없는 기사에 대한 출처 공개를 거부한 두 명의 신문 기자를 감옥에 보냈다.[2] 이러한 투옥은 언론과 해럴드 맥밀런 총리의 보수 정부 간의 관계를 악화시켰다.[3] ''뉴 스테이츠맨''의 칼럼니스트 폴 존슨은 "앞으로 1년 정도 동안 스캔들에 연루된 토리당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유감스럽게도 완전한 대우를 받을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4]

2. 2. 등장인물

존 프로퓨모는 1915년에 태어난 이탈리아계 영국인으로, 보수당 소속 정치인이었다.[6]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군 복무와 정치 활동을 병행했으며, 1960년 전쟁 장관으로 임명되었다.[6] 그는 징병제 폐지 등 군대 개혁을 추진했다.[8][9]

크리스틴 킬러는 1942년생으로, 10대 후반에 머레이스 카바레 클럽에서 톱리스 쇼걸로 일했다.[10][11][12] 킬러는 정골요법 의사 스티븐 워드를 만나 그의 아파트로 이사했으나, 이후 워드를 떠나 다른 남성들과 관계를 맺었다.[13][14] 킬러는 맨디 라이스-데이비스와 함께 살기도 했으며, 프리랜서 모델로 활동하려 했으나 실패했다.[16][17]

|thumb|right|220px|크리스틴 킬러(1988년 촬영)]]

스티븐 워드는 1912년생으로, 저명한 정골요법 의사였다.[22] 런던 사교계에서 폭넓은 인맥을 가졌으며,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듣고 초상화 스케치로 부수입을 올렸다.[22] 1960년에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로부터 초상화 의뢰를 받기도 했다.[23]

|thumb|프러퓨모 사건의 주요 장소 중 하나인 클리버든 영지에 있는 스티븐 워드의 강변 별장 스프링 코티지]]

|thumb|right|220px|클리브던 하우스]]

예브게니 이바노프는 주영 소련 대사관의 해군 무관으로, MI5는 그를 GRU 정보 장교로 의심했다.[25] 워드와 이바노프는 굳건한 친구가 되었으며, 이바노프는 워드를 통해 킬러와 라이스-데이비스를 만났다.[19]

맨디 라이스-데이비스는 킬러의 친구이자 동료로, 머레이스 댄서로 일했으며 킬러와 함께 숙소를 공유했다.[16]

1961년 7월, 프로퓨모는 클리버든에서 열린 파티에서 킬러를 만나 관계를 맺었다. 이 파티에는 킬러와 관계를 맺고 있던 이바노프도 초대되었다.

3. 사건의 전개

3. 1. 만남

1961년 7월, 존 프로퓨모는 윌리엄 애스터 경의 저택 클리브덴 하우스(Cliveden House)에서 열린 파티에서 크리스틴 킬러를 처음 만났다.[30][31] 정골 요법의인 스테판 워드의 집에 머물던 킬러는[30] 나체로 수영을 하던 중 프로퓨모와 마주쳤다.[32] 프로퓨모는 킬러에게 "매우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였다고 회상하며 호감을 느꼈다.[32][33] 킬러 또한 유명 영화배우의 남편이자 자신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된 프로퓨모에게 감명을 받았다.[33]

클리버든 (Cliveden) — 프로퓨모가 킬러를 만났던 수영장 파티가 열린 버킹엄셔 소재지


다음 날, 두 사람은 수영장에서 다시 만났고, 예브게니 이바노프도 합류했다.[34] 프로퓨모는 킬러에게 연락하겠다고 약속했고,[35] 이후 두 사람은 몇 주간 비밀리에 만남을 가졌다. 킬러에 따르면, 워드는 이바노프에게 킬러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갈 것을 요청했고, 그들은 성관계를 가졌다.[36] 하지만 킬러는 자신의 성관계에 대해 솔직했지만, 이바노프와의 성관계는 18개월이 지나서야 신문에 공개했기에 일부 평론가들은 의문을 제기한다.[36][37]

1961년 7월 12일, 워드는 MI5에 이바노프와 프로퓨모가 만났으며, 프로퓨모가 킬러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고 보고했다.[38] 워드는 또한 이바노프가 서독의 핵무기 장비 계획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고 밝혔다.[37]

3. 2. 관계의 발전과 종결

클리브던 주말 며칠 후, 프로퓨모는 킬러에게 연락했다. 이어진 불륜은 짧았는데, 일부 평론가들은 몇 주 후에 끝났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1961년 12월까지 열정이 줄어들면서 계속되었다고 믿고 있다.[37][39][40] 킬러는 이 관계를 기대 없는 비낭만적인 관계, "편의를 위한 섹스"로 특징지었지만,[41] 프로퓨모가 더 장기적인 관계를 원했고 그녀에게 아파트를 마련해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42] 20년이 넘어서 프로퓨모는 아들과의 대화에서 킬러를 "성관계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완전히 무식"하고, 화장, 머리, 축음기 레코드 외에는 대화가 없는 사람으로 묘사했다.[43]

두 사람은 보통 워드가 없을 때 윔폴 뮤즈에서 만났지만, 한 번은 홉슨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프로퓨모가 킬러를 리젠트 파크의 체스터 테라스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37] 한 번은 국무장관인 존 헤어에게서 벤틀리를 빌려 킬러와 함께 런던을 드라이브했고, 또 다른 때는 전 공군 장관인 워드 자작과 함께 술을 마셨다. 프로퓨모는 함께하는 동안 킬러에게 작은 선물을 몇 개 주었고, 한 번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줄 선물로 20파운드를 주었다.[39] 킬러는 워드가 핵무기 배치에 대한 정보를 프로퓨모에게서 얻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44] 프로퓨모 역시 그러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45]

1961년 8월 9일, 프로퓨모는 노먼 브룩 경, 내각 사무총장과 비공식적인 인터뷰를 가졌다.[40] 브룩 경은 홀리스에게서 프로퓨모가 워드의 그룹과 연루되었다는 조언을 받았다. 브룩은 장관에게 워드와 얽히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당시 MI5는 그의 신뢰성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룩이 프로퓨모에게 이바노프의 망명을 확보하기 위한 MI5의 노력에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프로퓨모는 이 요청을 거절했다.[39] 브룩은 킬러와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았지만, 프로퓨모는 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바로 그날, 프로퓨모는 킬러에게 "Darling..."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써서 다음 날 하기로 한 약속을 취소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 편지로 관계가 끝났다고 추정했지만,[37] 킬러는 워드와 함께 사는 것을 멈추라는 거절이 계속되면서 불륜이 나중에 끝났다고 주장했다.[46]

3. 3. 스캔들의 확산

1961년 10월, 킬러는 워드를 따라 노팅힐로 갔는데, 그곳에서 알로이시우스 "럭키" 고든을 만나 불륜 관계를 맺었다.[39][48][49] 킬러는 11월에 윔폴 뮤스를 떠나 돌핀 스퀘어의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고든이 계속해서 킬러를 괴롭히자 경찰에 체포되어 폭행 혐의로 기소되었다. 킬러는 나중에 고소를 취하했다.[50][51]

1962년 7월, 사회 잡지 ''퀸''의 가십 칼럼에 프로퓨모-킬러-이바노프 삼각관계가 암시되었다.[52] 같은 해 9월 런던으로 돌아온 킬러는 고든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조니 엣지콤을 만나 관계를 맺었다.[55] 1962년 10월 27일 엣지콤이 고든과 충돌하여 칼로 그의 얼굴을 베었고,[56] 킬러는 엣지콤과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55]

1962년 12월 14일, 킬러와 라이스-데이비스는 워드의 윔폴 뮤스 17번가에 함께 있었는데, 엣지콤이 킬러를 만나러 왔다가 들어갈 수 없게 되자 현관에 여러 발의 총을 쐈다.[57]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었고,[58] 킬러는 워드, 프로퓨모, 이바노프, 엣지콤 총격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킬러는 자신의 이야기를 노동 국회의원인 존 루이스에게 알렸고, 루이스는 동료 의원인 위그에게 정보를 넘겨 자체 조사를 시작하게 했다.[59]

윔폴 뮤스. 17번지는 지붕이 평평한 벽돌집으로, 오른쪽에 보인다.


1963년 1월 22일, 소련 정부는 스캔들을 감지하고 이바노프를 소환했다.[60] 킬러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국 신문에 팔려고 시도했고,[61] '선데이 픽토리얼'과 '뉴스 오브 더 월드' 두 곳이 관심을 보였다. 킬러는 '픽토리얼'과 계약했지만,[63] 워드의 위협으로 신문은 제안을 철회했다.[61]

킬러는 경찰관에게 프로퓨모와의 관계에 대한 세부 사항을 알렸으나, 정보는 MI5나 법 집행 기관에 전달되지 않았다.[64][65] 프로퓨모의 많은 정치 동료들이 소문을 들었지만, 맥밀란은 그의 장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65]

엣지콤의 재판은 3월 14일에 시작되었지만, 킬러가 스페인으로 떠나 부재했다.[69] 언론은 킬러와 프로퓨모를 연결하는 소문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연결 보도는 자제했다.[70] 킬러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진행되었고, 엣지콤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69] 3월 21일, '프라이빗 아이'는 주요 등장인물들을 약간 변형하여 소문을 요약하여 인쇄했다.[70]

4. 진실의 폭로와 정치적 파장

1962년 12월, 킬러와 성적인 관계가 있던 두 남성의 총격 사건을 조사한 마스컴은 "킬러는 프로퓨모 육군 장관과, 영국 주재 소련 대사관 부속 해군 무관인 이바노프 대령과도 친밀한 관계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정치인사생활을 존중한다"는 영국의 전통 때문에, 당초 사건은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73][74][75]

1963년 3월 21일, 영국 하원에서 노동당 의원 조지 위그는 "어떤 상해 사건의 증인으로 출두 명령을 받은 킬러와, 맥밀런 정권의 각료 중 한 명이 관계가 있으며, 국가의 안전을 위해 사건을 추궁해야 한다"고 하며, 소문의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73] 의심을 받은 프로퓨모는 "그 여성은 알고 있지만, 부정한 관계는 없다"고 하원에서 결백을 주장했다.[78]

이후, 킬러가 이바노프 대령과도 육체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이 마스컴에 의해 밝혀져, 국가의 군사 기밀 누설 사건으로까지 발전했다. 영국의 마스컴도 앞다투어 이 사건의 상세한 내용을 보도, 국내의 큰 관심사가 되었고, 미국, 프랑스, 서독 등의 영국의 동맹국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다.

1963년 3월 21일, 언론의 "실종 증인"에 대한 소란이 최고조에 달하자, 노동당영국 하원 토론에서 영국의 의회 특권을 이용하여 내무 장관에게 "한 장관"을 킬러, 라이스-데이비스, 엣지컴 총격 사건과 연결하는 소문의 진실을 부인하라고 요구했다.[73] 토론 후반부, 바바라 캐슬은 "실종 증인"을 언급하며 가능한 사법 방해를 암시했다.[74][75] 헨리 브루크 내무 장관은 논평을 거부했다.[76]

토론이 끝날 무렵, 정부의 법무관과 원내총무는 프로퓨모가 하원에 개인 진술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야 한다고 합의했다.[77] 3월 22일, 프로퓨모는 만원이 된 하원에서 킬러와 워드와의 친분을 인정했고, 킬러는 1961년 12월에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말했다. 그는 "킬러 양과의 친분에는 어떠한 부적절한 점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명예 훼손 및 비방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78]

그러나 런던 경시청이 워드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킬러가 프로퓨모와의 성관계를 확인하는 증언을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86] 1963년 5월 7일, 워드는 티모시 블라이 맥밀런 총리의 개인 비서를 만나 자신의 사건에 대한 경찰 조사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며, 프로퓨모의 하원 성명이 거짓이라고 덧붙였다.[92][93]

1963년 6월 4일, 프로퓨모는 블라이에게 진실을 고백하고, 거짓말을 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에서 사임했으며, 하원 의석을 포기했다.[95] 6월 5일에 프로퓨모와 맥밀런 사이의 공식적인 서신 교환이 공개되면서 사임이 발표되었다.[95][96] ''The Times''는 프로퓨모의 거짓말을 "영국의 공직의 정직성에 대한 큰 비극"이라고 불렀고,[97] ''데일리 미러''는 "많은 찬장에 해골"이 있다고 암시했다.[98]

프로퓨모는 해럴드 맥밀런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회에서의 발언에 거짓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킬러와의 "친밀한 관계"는 인정했지만, "군사 기밀 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고백하며 사죄했다. 프로퓨모는 "보수당의 빛나는 별"이라고도 불리며 정치 생명을 치욕 속에 스스로 끝내야 했다.

해럴드 맥밀런(오른쪽)


스티븐 워드는 매춘 알선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1963년 7월 28일 올드 베일리에서 재판을 받았다.[125] 검찰은 워드를 "음탕함과 타락의 가장 깊은 곳"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묘사했으며,[127] 판사인 아치 마샬 경도 워드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128] 재판 과정에서 워드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핵심 증인인 크리스틴 키일러가 고든의 재판에서 위증을 했다는 사실이 배심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129]

7월 30일, 마샬 판사의 맹렬한 요약 진술을 들은 후 워드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130] 다음 날, 워드는 키일러와 라이스-데이비스와 관련된 혐의에 대해 ''부재 중'' 유죄 판결을 받았고,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130] 워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8월 3일 사망했으며,[130] 8월 9일 검시 배심원은 그의 사망을 바르비투르산염 중독으로 인한 자살로 판결했다.[131]

4. 1. 의회에서의 폭로

1963년 3월 21일, 영국 하원에서 노동당 의원 조지 위그는 의회 특권을 이용하여 "어떤 상해 사건의 증인으로 출두 명령을 받은 킬러와, 맥밀런 정권의 각료 중 한 명이 관계가 있으며, 국가의 안전을 위해 사건을 추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문[73]의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하원 토론에서 위그는 킬러, 라이스-데이비스, 엣지컴 총격 사건과 관련된 "한 장관"에 대한 소문의 진실을 내무 장관에게 단호하게 부인하라고 요구했다.[73] 그는 하원에 없던 프로퓨모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74] 토론 후반부에는 블랙번의 노동당 국회의원인 바바라 캐슬이 "실종 증인"을 언급하며 가능한 사법 방해 가능성을 제기했다.[74][75]

이에 대해, 의심을 받은 프로퓨모는 "그 여성은 알고 있지만, 부정한 관계는 없다"고 하원에서 결백을 주장했다.[78] 3월 22일 이른 아침, 프로퓨모는 장관들과 만나 적절한 문구를 합의했고, 그날 아침 늦게 만원이 된 하원에서 킬러와 워드와의 친분을 인정했지만, "킬러 양과의 친분에는 어떠한 부적절한 점도 없었습니다."라고 진술했다.[78] 또한 1961년에 "이바노프 씨"를 두 번 만났다고 밝혔다.[78] 그는 명예 훼손 및 비방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78]

하지만, 이후 킬러가 이바노프 대령과도 육체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이 마스컴에 의해 밝혀져, 사건은 국가의 군사 기밀 누설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4. 2. 거짓말과 사임

1963년 3월 21일, 언론의 "실종 증인"에 대한 소란이 최고조에 달하자, 노동당영국 하원 토론에서 영국의 의회 특권을 이용하여 내무 장관에게 "한 장관"을 킬러, 라이스-데이비스, 엣지컴 총격 사건과 연결하는 소문의 진실을 부인하라고 요구했다.[73] 토론 후반부, 바바라 캐슬은 "실종 증인"을 언급하며 가능한 사법 방해를 암시했다.[74][75] 헨리 브루크 내무 장관은 논평을 거부했다.[76]

토론이 끝날 무렵, 정부의 법무관과 원내총무는 프로퓨모가 하원에 개인 진술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야 한다고 합의했다.[77] 3월 22일, 프로퓨모는 만원이 된 하원에서 킬러와 워드와의 친분을 인정했고, 킬러는 1961년 12월에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말했다. 그는 "킬러 양과의 친분에는 어떠한 부적절한 점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명예 훼손 및 비방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78]

그러나 런던 경시청이 워드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킬러가 프로퓨모와의 성관계를 확인하는 증언을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86] 1963년 5월 7일, 워드는 티모시 블라이 맥밀런 총리의 개인 비서를 만나 자신의 사건에 대한 경찰 조사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며, 프로퓨모의 하원 성명이 거짓이라고 덧붙였다.[92][93]

1963년 6월 4일, 프로퓨모는 블라이에게 진실을 고백하고, 거짓말을 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에서 사임했으며, 하원 의석을 포기했다.[95] 6월 5일에 프로퓨모와 맥밀런 사이의 공식적인 서신 교환이 공개되면서 사임이 발표되었다.[95][96] ''The Times''는 프로퓨모의 거짓말을 "영국의 공직의 정직성에 대한 큰 비극"이라고 불렀고,[97] ''데일리 미러''는 "많은 찬장에 해골"이 있다고 암시했다.[98]

프로퓨모는 해럴드 맥밀런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회에서의 발언에 거짓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킬러와의 "친밀한 관계"는 인정했지만, "군사 기밀 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고백하며 사죄했다. 프로퓨모는 "보수당의 빛나는 별"이라고도 불리며 정치 생명을 치욕 속에 스스로 끝내야 했다.

4. 3. 스티븐 워드 재판과 자살

스티븐 워드는 매춘 알선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1963년 7월 28일 올드 베일리에서 재판을 받았다.[125] 검찰은 워드를 "음탕함과 타락의 가장 깊은 곳"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묘사했으며,[127] 판사인 아치 마샬 경도 워드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128] 재판 과정에서 워드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핵심 증인인 크리스틴 키일러가 고든의 재판에서 위증을 했다는 사실이 배심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129]

7월 30일, 마샬 판사의 맹렬한 요약 진술을 들은 후 워드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130] 다음 날, 워드는 키일러와 라이스-데이비스와 관련된 혐의에 대해 ''부재 중'' 유죄 판결을 받았고,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130] 워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8월 3일 사망했으며,[130] 8월 9일 검시 배심원은 그의 사망을 바르비투르산염 중독으로 인한 자살로 판결했다.[131]

5. 여파 및 평가

덴닝 경의 보고서는 대중의 큰 기대를 받으며 기다려졌다. 1963년 9월 26일 출판된 보고서는 프러퓨모 사건에 보안 누설이 없었고 보안 기관과 정부 장관들이 적절하게 행동했다고 결론 내렸다.[135] 프러퓨모는 "경솔함"을 저질렀지만, 그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136] 덴닝은 또한 정부 관계자들이 "마스크를 쓴 남자"와 같은 관련 스캔들과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137] 그는 사건의 주요 책임을 "전적으로 부도덕한" 남자였으며 외교 활동이 "잘못된 생각이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진" 워드에게 돌렸다.[138] 비록 《스펙테이터》는 보고서가 사건의 종말을 고했다고 여겼지만,[139] 많은 논평가들은 그 내용에 실망했다. 영은 많은 질문이 답을 얻지 못했고 일부 추론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했으며,[140] 반면 다벤포트-하인스는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래 후에 보고서를 수치스럽고, 부주의하며, 호색적이라고 비난했다.[141]

덴닝 보고서 이후, 사임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에 반하여 맥밀런은 계속 자리에 남을 의사를 발표했다.[142] 1963년 10월 보수당의 연례 당 대회 전날 그는 병에 걸렸다. 암에 걸렸다고 확신하고 그는 갑자기 사임했다.[143] 맥밀런의 후임 총리는 로드 홈이었고, 그는 귀족 작위를 포기하고 알렉 더글러스-홈 경으로 재직했다.[144] 1964년 10월 총선에서 보수당은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고, 윌슨이 총리가 되었다.[145] 후일의 한 논평가는 프러퓨모 사건이 낡은, 귀족적인 보수당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프러퓨모 스캔들은 결국 마가렛 대처 아래에서 등장할 능력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토리즘의 필요한 전주곡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146] 《이코노미스트》는 스캔들이 정치인과 언론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90] 다벤포트-하인스는 이 사건의 장기적인 결과를 제시한다. 즉, 전통적인 존중 관념의 점진적인 종말이다. "권위는, 아무리 사심이 없고, 자격이 충분하며, 경험이 풍부하더라도, [1963년 6월 이후] 신뢰보다는 의심으로 점점 더 환영받았다."[147]

토인비 홀


총리, 지역구 주민, 그리고 보수당에게 "깊은 후회"를 표명한 후,[148] 프러퓨모는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1964년 4월 그는 토인비 홀 정착촌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런던 동부에서 가장 가난한 거주자를 지원하는 스피탈필즈에 기반을 둔 자선 단체이다. 프러퓨모는 일생 동안 정착촌과의 관계를 지속했으며, 처음에는 잡무를 담당했고, 그 다음에는 관리자, 기금 모금자, 이사, 회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장으로 활동했다.[149] 프러퓨모의 자선 활동은 1975년에 대영 제국 사령관 훈장(CBE)을 수여받으면서 인정받았다.[150] 그는 나중에 대처에 의해 국민적 영웅으로 묘사되었고 2005년 그녀의 80번째 생일 축하 행사에 초대되었다.[149] 밸러리 홉슨과의 결혼 생활은 1998년 11월 13일 81세의 나이로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151] 프러퓨모는 2006년 3월 9일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6]

1963년 12월, 킬러는 6월 고든 재판에서 위증을 저지른 혐의를 인정하고 9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그 중 6개월을 복역했다.[152] 킬러는 그녀의 삶에 대한 여러 가지 모순된 이야기를 출판했으며, 그중 워드는 "신사", 그녀의 진정한 사랑,[154] 소련 스파이, 그리고 케임브리지 파이브와 같은 반역자로 다양하게 묘사되었다.[155] 킬러는 또한 프러퓨모가 그녀를 임신시켰고 그녀가 그 후 고통스러운 낙태를 했다고 주장했다.[156][157] 킬러는 2017년 12월 4일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라이스-데이비스는 나이트클럽 소유주, 사업가, 단역 배우, 소설가로서 스캔들 이후 더 성공적인 경력을 누렸다.[145] 라이스-데이비스는 2014년 12월 1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워드의 MI5를 위한 역할은 1982년에 확인되었는데, 《선데이 타임스》가 그의 전 연락책인 "우즈"를 찾아냈다.[160] 덴닝은 항상 워드의 재판과 유죄 판결이 공정하고 적절하다고 주장했지만,[161] 대부분의 논평가들은 그것이 심각하게 결함이 있었다고 믿는다. 다벤포트-하인스에 따르면 "역사적 불의"였으며 그는 재판이 정치적 복수의 행위였다고 주장한다.[22] 형사 사건 검토 위원회는 2014년 초부터 워드 사건을 검토했지만,[164] 2017년에는 판사의 요약 원본 사본을 찾지 못하여 항소 법원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165]

1963년 1월에 소환된 후, 이바노프는 수십 년 동안 사라졌다.[166] 1992년 그의 회고록인 《The Naked Spy》가 《선데이 타임스》에 연재되었다. 프러퓨모의 변호사들이 이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자, 출판사들은 해당 자료를 삭제했다.[167] 2015년 8월, 《더 인디펜던트》 신문은 조나단 해슬람의 다가오는 소련 정보 활동 역사의 미리보기를 게재했다. 이 책은 이바노프와 프러퓨모의 관계가 후자가 인정했던 것보다 더 가까웠다고 제안하며, 이바노프가 프러퓨모의 집을 방문했고, 보안 조치가 허술하여 장관의 서재에 놓여 있던 민감한 문서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168][169]

킬러는 1993년 모스크바에서 이바노프와 만났다고 묘사했다. 그녀는 또한 그가 이듬해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기록했다.[170] 아스토는 경찰 수사를 받게 된 것과 워드 재판 이후의 사회적 배척에 깊이 마음 아파했다.[171] 1966년 그의 사망 후, 1942년에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된 클리브던 하우스는 처음에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영국 캠퍼스가 되었고, 나중에는 고급 호텔이 되었다.[145] 킬러와 라이스-데이비스의 전 애인으로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라흐만은 부도덕한 슬럼가 주인으로 밝혀졌다. "라흐만주의"라는 단어는 세입자를 착취하거나 위협하는 집주인에 대한 표준 용어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172]

그 후 총격 사건 재판에서 키일러는 위증죄로 징역 9개월을 선고받아 1963년 12월에 투옥되었으며, 이후에도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또한 그 후 프로퓨모는 자선 사업에 전념하여 1975년에 서훈되는 등 명예를 회복하고 2006년에 사망했다.

한편 중개인 워드는 1963년에 형사 기소되어 보석 중 7월 30일에 약물 과다 복용 자살을 시도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입원 중에 배심원은 매춘 알선죄에 대한 유죄 평결과 다른 몇몇 혐의에 대한 무죄 평결을 내렸지만, 선고가 내려지기 전에 워드는 사망했다.

사건 발각 후 "이바노프 대령과 워드는 키일러에게 프로퓨모에게 미국의 핵 미사일이 언제 서독에 배치되는지 질문하도록 의뢰했다"고 전해지지만, 이후 정부 조사 결과 프로퓨모가 키일러에게 군사 기밀을 포함한 국가 기밀을 이야기했는지, 또한 키일러가 이바노프 대령에게 그 이야기를 흘렸는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키일러는 "선데이 미러"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조국에 대한 배신 행위를 저질렀고, 당시 자신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 사건의 결과로 프로퓨모뿐만 아니라 맥밀런도 사임을 면치 못했고, 보수당이 1964년 총선에서 패배하는 등 영국 정계가 혼란에 빠지면서, "영국 정계를 혼란시키기 위해 소련 정보부 (이바노프 대령)가 벌인 허니 트랩 작전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5. 1. 정치적 영향

프러퓨모 사건은 보수당 정권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해럴드 맥밀런 총리의 사임과 1964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145] 1963년 10월, 맥밀런은 당 대회 직전 병으로 갑작스럽게 사임했다.[143] 그의 후임으로는 로드 홈이 귀족 작위를 포기하고 총리직을 수행했다.[144]

이 사건으로 인해 영국 정계는 혼란에 빠졌고, "영국 정계를 혼란시키기 위해 소련 정보부 (이바노프 대령)가 벌인 허니 트랩 작전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168][169] 훗날 한 논평가는 프러퓨모 사건이 낡은 귀족적인 보수당을 파괴하고, 마가렛 대처 하에서 등장할 능력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토리즘의 전주곡이었다고 평가했다.[146]

이코노미스트는 이 스캔들이 정치인과 언론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90] 다벤포트-하인스는 이 사건이 전통적인 존중 관념의 점진적인 종말을 가져왔으며, 권위는 1963년 6월 이후 신뢰보다는 의심으로 점점 더 환영받게 되었다고 지적했다.[147]

사임 이후, 프러퓨모는 토인비 홀 정착촌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시작하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149] 그는 런던 동부의 가장 가난한 거주자를 지원하는 자선 단체인 토인비 홀에서 일생 동안 헌신했으며, 1975년에는 대영 제국 사령관 훈장(CBE)을 받았다.[150] 그는 나중에 대처에 의해 국민적 영웅으로 묘사되기도 했다.[149]

5. 2. 사회적 영향

이 사건은 영국 사회의 도덕적 해이와 상류층의 위선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147]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정치인들의 사생활 침해 문제도 제기되었다.[90] 덴닝 보고서는 사건의 주요 책임을 "전적으로 부도덕한" 워드에게 돌렸지만,[138] 많은 논평가들은 그 내용에 실망했으며,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래 후에 보고서를 수치스럽고, 부주의하며, 호색적이라고 비난했다.[140][141]

이 사건은 정치인과 언론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90] 전통적인 존중 관념의 점진적인 종말을 초래했다.[147] 권위는 1963년 6월 이후 신뢰보다는 의심으로 점점 더 환영받게 되었다.[147]

프러퓨모 사건은 낡은 귀족적인 보수당을 파괴하고, 마가렛 대처 아래에서 등장할 능력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토리즘의 전주곡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146]

이 사건은 미국의 핵 미사일이 언제 서독에 배치되는지에 대한 정보 유출 의혹이 있었으나, 정부 조사 결과 프러퓨모가 킬러에게 군사 기밀을 포함한 국가 기밀을 이야기했는지, 또한 킬러가 이바노프 대령에게 그 이야기를 흘렸는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킬러는 자신이 조국에 대한 배신 행위를 저질렀고, 당시 자신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 사건의 결과로 프러퓨모뿐만 아니라 맥밀런도 사임을 하였고, 보수당이 1964년 총선에서 패배하는 등 영국 정계가 혼란에 빠지면서, "영국 정계를 혼란시키기 위해 소련 정보부 (이바노프 대령)가 벌인 허니 트랩 작전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5. 3.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

대한민국에서는 프로퓨모 사건이 서구 사회의 성적 문란함과 정치적 부패를 보여주는 사례로 인식되었다. 이 사건은 영국 정계를 혼란에 빠뜨렸으며, 소련 정보부가 허니 트랩 작전을 통해 1964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의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 키일러는 선데이 미러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조국에 대한 배신 행위를 저질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5. 4. 대중문화에서의 재조명

프러퓨모 사건은 여러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각색되어 대중문화에서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다. 1989년 영화 ''스캔들''에는 이안 매켈런이 프러퓨모 역을, 존 허트가 워드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호평을 받았지만, 사건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프러퓨모 가족은 불편해했다.[173] 휴 화이트모어의 연극 ''사임의 편지''는 1997년 10월 코미디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맥밀런이 스코틀랜드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받은 프러퓨모의 사임 편지에 대한 반응에 초점을 맞췄다.[174]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스티븐 워드''는 2013년 12월 3일 런던의 알드위치 극장에서 개막했다. 대체로 호평을 받은 가운데,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평론가는 이 작품을 "날카롭고, 재미있으며, 때로는 진정으로 감동적"이라고 평했다.[175] 로버트슨은 대본이 "사실에 놀랍도록 충실하다"고 기록했다.[176]

ITV 시리즈 ''엔데버''의 파일럿 에피소드는 이 스캔들을 언급하며 줄거리에 유사한 요소를 사용한다. BBC는 에코스 필름스에 6부작 드라마 ''크리스틴 킬러 재판''을 의뢰하여 2019년 말 영국에서 방송했다. 빌리 조엘은 자신의 노래 "우리가 불을 지른 게 아니야"에서 "영국 정치인의 섹스"라는 가사로 이 스캔들을 언급했다. 스코틀랜드 민속 음악가 알 스튜어트 또한 앨범 ''과거 현재 미래''에 수록된 그의 노래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블루스"에서 이 스캔들을 언급한다. 1963년 7월 초를 배경으로 하는 텔레비전 쇼 ''매드맨'' 시즌 3, 에피소드 6 "가이가 광고 대행사로 들어가다"에서, 미국 사무실 관리자 조안은 영국 총리가 매춘부들을 좋아한다고 언급한다. 그녀는 영국인 존 후커로부터 그것은 국방부 장관에 관한 것이라는 정정을 받는다.[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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