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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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화 이글스는 1986년 빙그레 이글스로 창단하여 KBO 리그에 참여한 프로 야구팀이다. 1994년 팀명을 한화 이글스로 변경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역대 감독으로는 배성서, 김영덕, 강병철, 이희수, 이광환, 유승안, 김인식, 한대화, 김응용, 김성근, 한용덕, 최원호, 카를로스 수베로, 김경문 등이 있으며, 장종훈, 구대성, 류현진 등 MVP 수상자를 배출했다. 현재 김경문 감독, 김연정 등 치어리더, 위니, 비니, 수리, 후디 등 마스코트, 홍창화 응원단장으로 구성된 응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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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 |
---|---|
기본 정보 | |
이름 | 한화 이글스 |
로마자 표기 | Hanwha Eagles |
고유 한국어 이름 | 한화 이글스 |
고유 한국어 표기 | 한화 이글스 |
창단 | 1985년 |
연고지 | 대전광역시 |
리그 | KBO 리그 (1986년–현재) |
이전 팀명 | 빙그레 이글스 (1986년–1993년) |
마스코트 | 위니, 비니, 수리, 후디 |
구단주 | 김승연 |
감독 | 김경문 |
단장 | 손혁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팀 색상 | |
색상 | 주황색 네이비 블루 회색 흰색 |
영구 결번 | |
영구 결번 선수 | 21 23 35 52 |
홈구장 | |
현재 홈구장 | 대전베이스볼드림파크 (2025년–현재) 청주야구장 (1986년–현재) |
이전 홈구장 |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 (1986년–2024년) |
우승 기록 | |
리그 우승 | 1989년, 1992년 |
한국시리즈 우승 | 1999년 |
한국시리즈 출전 |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 1999년, 2006년 |
플레이오프 진출 | 1988년, 1991년, 1994년, 1999년, 2005년, 2006년, 2007년 |
준플레이오프 진출 | 1990년, 1994년, 1996년, 2001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18년 |
2. 역사
1985년 빙그레(Binggrae)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한화 이글스는[1] 1986년 리그에 7번째 구단으로 데뷔했다.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1988년부터 1992년까지 4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3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되면서 팀 이름이 한화 이글스로 바뀌었다.[1] 1999년에는 댄 로어마이어, 제이 데이비스 등 외국인 선수와 송지만, 장종훈 등 국내 선수의 활약으로 팀 장타율 .487을 기록하며 KBO 리그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우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5]
송진우와 정민철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송진우는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200승과 20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한 투수로 남아있다.[2][3]
2006년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후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긴 암흑기를 겪었다. 이 기간 동안 김응룡, 김성근 등 유명 감독들이 팀을 이끌었지만, 반등에 실패했다.
2018년 한용덕 감독 부임 후, 팀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6] 하지만 2020년 시즌 중반 14연패를 기록하며 한용덕 감독이 사퇴하고, 최원호 감독 대행 체제로 전환되었다.[7] 이후 팀은 KBO 리그 최장 연패 타이 기록인 18연패를 기록하기도 했지만,[10]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노태형의 끝내기 안타로 연패를 끊어냈다.[11]
2020년 11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새롭게 부임했다.[12]
2. 1. 빙그레 이글스 (1985년 ~ 1993년)
1985년, 당시 한화그룹의 제과 사업부였던 빙그레의 이름을 따 빙그레 이글스로 창단되었으며,[1] 1986년 리그 7번째 프랜차이즈로 데뷔했다. 일본 출신 투수 장명부는 1986시즌 1승 18패, 평균자책점 4.98을 기록했고, 팀은 31승 76패로 시즌을 마쳤다. 장명부는 시즌 후 은퇴했다.빙그레 이글스는 창단 후 7년 동안(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 네 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모두 패했다. 1993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되면서 팀 이름을 한화 이글스로 변경했다.
빙그레 이글스 시절 송진우와 정민철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팀의 원투펀치 역할을 했다. 송진우는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200승과 20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한 투수이다.[2][3] 정민철은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했다.[4]
빙그레 이글스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강력한 장타율을 자랑했다.
빙그레 이글스 연도별 성적은 다음과 같다.
시즌 | 리그 | 최종 순위 | 정규 시즌 | 포스트시즌 | 수상 | ||||||||
---|---|---|---|---|---|---|---|---|---|---|---|---|---|
순위 | 경기 수 | 승 | 패 | 무 | 승률 | 팀 타율 | 팀 홈런 | 팀 평균자책점 | |||||
1986년 | KBO | 7위/7팀 | 7위/7팀 | 54 | 12 | 42 | 0 | .222 | .236 | 46 | 3.67 | rowspan="2"| | |
6위/7팀 | 54 | 19 | 34 | 1 | .358 | ||||||||
1987년 | KBO | 6위/7팀 | 6위/7팀 | 54 | 24 | 28 | 2 | .463 | .274 | 48 | 3.78 | rowspan="2"| | 이정훈 (신인왕) |
5위/7팀 | 54 | 23 | 29 | 2 | .444 | ||||||||
1988년 | KBO | 2위/7팀 | 2위/7팀 | 54 | 34 | 20 | 0 | .630 | .266 | 73 | 3.72 | 플레이오프 승리 (삼성 라이온즈전 3-0) 한국시리즈 패배 (해태 타이거즈전 2-4) | |
3위/7팀 | 54 | 28 | 25 | 1 | .528 | ||||||||
1989년 | KBO | 2위/7팀 | 1위/7팀 | 120 | 71 | 46 | 3 | .604 | .276 | 97 | 3.50 | 한국시리즈 패배 (해태 타이거즈전 1-4) | |
1990년 | KBO | 4위/7팀 | 3위/7팀 | 120 | 68 | 50 | 2 | .575 | .270 | 112 | 3.41 | 준플레이오프 패배 (삼성 라이온즈전 0-2) | |
1991년 | KBO | 2위/8팀 | 126 | 72 | 49 | 5 | .591 | .274 | 136 | 3.35 | 플레이오프 승리 (삼성 라이온즈전 3-1) 한국시리즈 패배 (해태 타이거즈전 0-4) | 장종훈 (MVP) | |
1992년 | KBO | 2위/8팀 | 1위/8팀 | 126 | 81 | 43 | 2 | .651 | .267 | 146 | 3.68 | 한국시리즈 패배 (롯데 자이언츠전 1-4) | 장종훈 (MVP) |
1993년 | KBO | 5위/8팀 | 126 | 61 | 61 | 4 | .500 | .238 | 81 | 3.46 |
KBO 리그 창설 후 첫 신설 팀(7번째)으로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었다. 대전광역시(당시 대전)를 연고지로 하는 조건으로 창단되었다. 구단명은 "빙그레"에서 "한화"로 변경되었지만, 운영 모체는 줄곧 한화그룹이다.
홈구장은 구단 창단 때부터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현 명칭: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을 사용하고 있다. 준홈구장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에 있는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이다.
2. 1. 1. 창단 초기 (1985년 ~ 1987년)
1985년 한국 프로 야구 리그 참가를 희망한 한화그룹에서 1월 15일 창단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켰다.[1] 다음 날인 1월 16일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제 7구단으로 승인받게 되고, 3월 11일 연고지를 대전으로 삼은 '''빙그레 이글스''' 야구단이 설립되고 감독으로 배성서 감독이 취임했다. 그 해엔 2군 리그에 참가했다.1986년 3월 8일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3월 9일 청주 청주야구장에서 빙그레 이글스 창단식을 개최했다.[1] 그 해 처음으로 1군 리그에 참가했다. 전기 리그는 7위로 마감했으나, 후기 리그엔 삼미 슈퍼스타즈의 해체로 트레이드 된 장명부와 이상군의 활약으로 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신생 구단의 한계와 얕은 선수 층으로 정규 리그 7위를 기록했다.
1987년 빙그레 이글스의 2번째 시즌에는 전기리그 6위와 후기리그 공동 5위로 정규리그 6위를 달성했다. 그 해 처음으로 빙그레 이글스에서 외야수 이정훈 선수가 신인왕으로 올랐다. 선수들의 부진으로 배성서 감독은 사임하고 다음 감독으로 김영덕이 취임했다.
KBO와 기존 6개 구단은 빙그레의 리그 참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보유 선수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1984년과 1985년 드래프트에서 각각 10장의 특별 지명권을 부여했다. 이로써 빙그레 이글스는 당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출신 선수를 포함하여 당시 드래프트의 최대어였던 대졸 신인 선수들을 많이 영입하여 팀을 꾸리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빙그레 이글스는 신구단의 리그 참가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86년 시즌부터 리그 경기에 참가하기로 했다.
2. 1. 2. 김영덕 감독 시대 (1988년 ~ 1993년)
김영덕 감독은 OB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를 우승으로 이끈 경험을 바탕으로 1988년 빙그레 이글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1] 부임 첫 해, 팀은 전기리그 2위, 후기리그 3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 삼성을 3연승으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비록 해태 타이거즈에 2승 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1군 진입 3년 만의 쾌거였다.1989년, 빙그레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리는 강력한 타선을 앞세워 정규시즌 1위를 차지,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강돈이 선동렬에게 1회말 선두 타자 홈런을 기록하는 등[1] 1차전에서 승리했지만, 장종훈의 실책으로 인한[1] 2차전 역전패를 시작으로 내리 4연패하며 또다시 준우승에 그쳤다.
1990년에는 부상 선수 속출로 3위에 그쳤고,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패했다. 1991년, 장종훈을 중심으로 한 타선의 활약으로 정규시즌 2위를 기록,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해태 타이거즈에 4연패로 무릎을 꿇었다. 특히, 3차전에서는 송진우가 8회 2사까지 완벽투를 펼쳤으나, 이종호의 실책성 플레이로[1] 역전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1992년, 송진우와 장종훈의 활약으로 80승을 달성하며 정규시즌 1위를 차지,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 박동희의 호투에 막혀 1승 4패로 패하며, 네 번의 한국시리즈 도전 모두 준우승에 머무르는 아픔을 겪었다.
1993년,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 신인들의 적응 실패 등으로 팀은 5위로 추락했고, 김영덕 감독은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1]
2. 2. 한화 이글스 (1994년 ~ 현재)
1993년, 모기업인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되면서 팀 이름을 한화 이글스로 변경했다.[1]송진우와 정민철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팀의 원투펀치 역할을 했다. 송진우는 1989년부터 2009년까지 21시즌 동안 팀에서 활약하며 210승, 2048탈삼진, 3003이닝을 기록하며 KBO 여러 투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2][3] 그는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200승, 20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한 투수이다. 정민철은 1992년부터 1999년까지, 그리고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이글스에서 16시즌 동안 활약하며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했다.[4]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화는 그룹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폭발물과 관련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강력한 장타율을 자랑했다. 1999년 우승팀은 미국 출신 용병 댄 로어마이어와 제이 데이비스, 그리고 한국인 선수 송지만과 장종훈을 중심으로 팀 장타율 .487을 기록하며 KBO 리그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5]
이글스는 2006년 한국시리즈에 다시 진출했지만,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후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1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는데, 이 기간 동안 김응룡 감독(2013~2014), 김성근 감독(2015~2017) 등 KBO 역대 최다 승리 감독 2명을 포함해 5명의 감독을 거쳤다.
한용덕은 2012년 감독 대행을 역임한 후 2018년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했고, 첫 시즌에 2007년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6] 그러나 2020년 6월 7일, 14연패 이후 한용덕 감독은 사퇴했고, 팀의 퓨처스리그 감독이자 전 방송 해설가였던 최원호가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다.[7] 팀은 선수단 개편을 단행하여 안영명, 장시환, 이태양, 송광민, 이성열 등 베테랑 선수 10명을 KBO 퓨처스리그로 내리고,[8] 9명의 선수를 1군으로 콜업했다.[9] 2020년 6월 14일 KBO 최장 연패 기록과 동률인 18연패를 기록한 후,[10]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노태형의 9회말 끝내기 안타로 연패를 끊었다.[11]
2020년 11월 27일, 카를로스 수베로가 이글스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12]
2. 2. 1. 강병철 감독 시대 (1994년 ~ 1998년)
강병철 감독이 부임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한화는 5년 동안 두 차례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1994년 길배진, 1995년 신재웅 등 1차 지명 선수들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세대 교체 작업도 순탄치 않았다.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영우, 송지만, 김수연, 임수민, 이상열, 심광호, 홍원기 등을 지명하며 세대 교체의 물꼬를 텄다. 이들 중 임수민, 이영우, 송지만은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투수진에서는 송진우와 정민철이 좌·우 에이스로 활약했고, 구대성은 '대성불패'라는 별명을 얻으며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았다.[42]강병철 감독은 부임과 함께 북일고 출신 선수들을 대부분 홀대하거나 퇴출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김상국, 이상군 등 북일고 출신 선수들[42]은 강병철 감독 때문에 다른 팀으로 강제 이적되거나 은퇴식 없이 은퇴하는 등 선수 생활을 좋지 않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북일고 출신 한용덕은 팀에서 독보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계속 잔류했다.[43]
2. 2. 2. 이희수 감독 시대 (1998년 ~ 2000년)
주어진 원본 소스에 이희수 감독 시대 (1998년 ~ 2000년)에 대한 내용이 없어 해당 섹션을 작성할 수 없다.2. 2. 3. 이광환, 유승안 감독 시대 (2001년 ~ 2004년)
2001년 구대성의 공백으로 한화는 마무리 투수 부재에 시달렸고, 2002년에는 장종훈이 타율 .248, 12홈런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급격한 노쇠화를 보였다.[44] 2001년 5할이 안 되는 승률로 4위에 올랐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그 해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신인 내야수 김태균이 신인왕을 차지했다.2002년 7위를 기록한 후 이광환 감독은 경질되었으며, 후임으로는 유승안 전 코치가 발탁되었다.[44] 이광환 감독 부임 당시 수석코치를 맡았던 지역 연고(대전) 출신 윤동균 코치가 후임으로 거론되었지만,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면서 좌절되었고,[44] 이광환 감독의 LG 감독 1기 시절 후임이었던 천보성 전 LG 감독에게도 제안이 갔으나[45] 불발되었다. 유승안 감독은 이광환 감독 후임 물망에 올랐던 윤동균 전 코치의 OB 감독 시절 후임 물망에 올랐던[46] 백인천 감독처럼 경동고 - MBC 출신[47] 포수였고, 엽기적이면서 이상한 성격, 늙은 선수들을 좋아하지 않는[48][49] 점, 서북식 발성과 발음 등의 공통점을 가졌다.
유승안 감독 부임 이후에도 2003년 5위, 2004년 7위로 부진하였으며, 유승안 감독은 세대교체에 의욕적으로 나섰으나 노장 선수들을 지나치게 외면하여[50]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03년 시즌 후 프런트와의 마찰로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였던 외야수 송지만을 잃게 되었다.
2. 2. 4. 김인식 감독 시대 (2005년 ~ 2009년)
김응룡 감독이 2012년 10월에 취임하였으나, 류현진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하고, 팀은 2013년에 한국 프로야구 최다 기록인 개막 13연패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2013년 시즌에는 NC 다이노스의 참가로 9개 구단 체제가 되면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근우, 이용규 등 국가대표 선수 2명을 FA로 영입했지만, 2014년에도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12]2. 2. 5. 한대화, 김응용, 김성근 감독 시대 (2010년 ~ 2017년)
김응용 감독이 새로 선임되어 현장에 복귀하였다.[1] 류현진은 포스팅에 입찰하여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해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였으며, 한용덕 감독대행은 사의를 표명한 이후 류현진이 이적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났다.[1] 박찬호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FA로 부진하였던 송신영은 NC 다이노스의 전력 보강 선수로 이적했다.[1] 2012년 시즌 이후에는 장성호와 롯데가 선발한 신인 투수 송창현을 트레이드하였다.[1] 김태완과 정현석은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했다.[1]김응용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를 지휘하며 10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감독이었으나, 7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감독으로 취임했다.[1] 2013년 시즌에는 한국 프로야구 최다 기록인 개막 13연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고, NC 다이노스의 참가로 9개 구단 체제가 되면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근우, 이용규 등 국가대표 선수 2명을 FA로 영입했지만, 2014년에도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다.[1]
2014년 10월,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를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김성근 감독이 취임하여[1] 배영수, 권혁, 송은범 등의 FA 선수와 계약하는 등 전력 보강에 힘썼다. 2015년에는 6위를 차지하며 3년 연속 최하위에서 벗어났으나, 2016년에는 7위에 머물렀다. 2017년 5월 21일 김성근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혀, 23일에 공식적으로 수리되어 이상군 투수 코치가 감독 대행에 취임했다.[15] 같은 해 8위에 그치며 2003년부터 2012년까지 LG가 기록한 한국 프로야구 타이 기록인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를 기록했다.[1]
2. 2. 6. 한용덕, 최원호, 카를로스 수베로, 김경문 감독 시대 (2018년 ~ 현재)
한용덕은 2012년 감독 대행을 역임한 후 2018년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했고, 첫 시즌에 2007년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6] 그러나 2020년 6월 7일, 14연패 이후 한용덕 감독은 사퇴했고, 팀의 퓨처스리그 감독이자 전 방송 해설가였던 최원호가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다.[7] 팀은 선수단 개편을 단행하여 안영명, 장시환, 이태양, 송광민, 이성열 등 베테랑 선수 10명을 KBO 퓨처스리그로 내리고,[8] 9명의 선수를 1군으로 콜업했다.[9] 2020년 6월 14일 KBO 최장 연패 기록과 동률인 18연패를 기록한 후,[10]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노태형의 9회말 끝내기 안타로 연패를 끊었다.[11]2020년 11월 27일, 카를로스 수베로가 이글스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12] 2023년 5월 11일, 수베로 감독이 경질되고 최원호 감독이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18] 2024년 5월 27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최원호 감독이 해임되었고, 정경배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2024년 6월 3일 김경문 감독이 취임했다.[19]
3. 역대 감독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
1 | 배성서 | 1986년 ~ 1987년 | 초대 감독 |
2 | 김영덕 | 1988년 ~ 1993년 |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감독 역임 |
3 | 강병철 | 1994년 ~ 1998년 | 롯데 자이언츠 감독 역임, 시즌 중 경질 |
4 | 이희수 | 1998년 ~ 2000년 | 감독 대행 이후 정식 감독 승격 |
5 | 이광환 | 2001년 ~ 2002년 | LG 트윈스 감독 역임 |
6 | 유승안 | 2003년 ~ 2004년 | |
7 | 김인식 | 2005년 ~ 2009년 | 두산 베어스 감독 역임 |
8 | 한대화 | 2010년 ~ 2012년 | 시즌 중 사퇴 |
9 | 한용덕 | 2012년 | 감독 대행 |
10 | 김응룡 | 2013년 ~ 2014년 |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감독 역임 |
11 | 김성근 | 2015년 ~ 2017년 | SK 와이번스 감독 역임, 시즌 중 사퇴 |
12 | 이상군 | 2017년 | 감독 대행 |
13 | 한용덕 | 2018년 ~ 2020년 | 시즌 중 사퇴[6] |
14 | 최원호 | 2020년 | 감독 대행[7] |
15 | 카를로스 수베로 | 2021년 ~ 2023년 | [12] |
16 | 최원호 | 2023년 ~ 2024년 | [13] |
- | 정경배 | 2024년 | 감독 대행 |
17 | 김경문 | 2024년 ~ | [14] |
4. 선수단
한화 이글스에서 가장 많은 시즌을 뛴 외국인 선수는 제이 데이비스이다. 그는 2003년 한 해 공백이 있기는 했지만, 1999년부터 2006년까지 7시즌을 뛰며 통산 타율 0.313을 기록했다.
구분 | 등번호 | 이름 | 비고 |
---|---|---|---|
감독 | 74 | 김경문 | |
수석코치 | 88 | 양승관 | |
투수코치 | 79 | 양상문 | |
타격코치 | # | 김민호 | |
외야수비/1루 주루코치 | 77 | 박재상 | |
메인타격코치 | 78 | 김남형 | |
3루 주루코치 | 80 | 고동진 | |
작전/3루 주루코치 | 82 | 김재걸 | |
수비코치 | 83 | 김우석 | |
트레이닝코치 | 84 | 이지풍 | |
수비코치 | 86 | 최윤석 | |
배터리코치 | 90 | 김정민 | |
트레이닝코치 | -- | 김연규 | |
트레이닝코치 | -- | 김형욱 | |
트레이닝코치 | -- | 최우성 | |
퓨처스 감독 | 71 | 이대진 | |
퓨처스 투수코치 | 72 | 박승민 | |
퓨처스 투수코치 | 92 | 마일영 | |
퓨처스 타격코치 | 89 | 정경배 | |
퓨처스 타격코치 | 100 | 정현석 | |
퓨처스 배터리코치 | 73 | 이희근 | |
퓨처스 배터리코치 | # | 쓰루오카 | |
퓨처스 작전/3루 주루코치 | 87 | 추승우 | |
잔류/재활군 총괄코치 | 81 | 김성갑 | |
잔류/재활군 투수/플레잉코치 | 57 | 정우람 | |
잔류/재활군 투수코치 | 75 | 박정진 | |
잔류/재활군 투수코치 | 76 | 윤규진 | |
잔류/재활군 배터리코치 | 85 | 정범모 | |
잔류/재활군 타격코치 | 91 | 이상훈 | |
2군/재활군 재활트레이닝코치 | -- | 김소중 | |
2군/재활군 트레이닝코치 | -- | 김재민 | |
2군/재활군 재활트레이닝코치 | -- | 배민규 | |
2군/재활군 트레이닝코치 | -- | 서진영 | |
투수 | 04 | 김승일 | |
투수 | 62 | 김도빈 | |
투수 | 1 | 문동주 | |
투수 | 5 | 윤대경 | |
투수 | 15 | 김기중 | |
투수 | 18 | 이상규 | |
투수 | 19 | 이충호 | |
투수 | 26 | 한승혁 | |
투수 | 27 | 이민우 | |
투수 | 28 | 장시환 | |
투수 | 29 | 황준서 | |
투수 | 31 | 정이황 | |
투수 | 36 | 장민재 | |
투수 | 38 | 김종수 | |
투수 | 39 | 배민서 | |
투수 | 40 | 장지수 | |
투수 | 46 | 이태양 | |
투수 | 47 | 김범수 | |
투수 | 53 | 김민우 | |
투수 | 54 | 김서현 | |
투수 | 55 | 와이스 | |
투수 | 58 | 박상원 | |
투수 | 60 | 김규연 | |
투수 | 61 | 배동현 | |
투수 | 63 | 박성웅 | |
투수 | 66 | 주현상 | |
투수 | 68 | 조동욱 | |
투수 | 93 | 김범준 | |
투수 | 97 | 성지훈 | |
투수 | 99 | 류현진 | |
투수 | 101 | 문승진 | |
투수 | 104 | 양경모 | |
투수 | 106 | 박재규 | |
투수 | 107 | 이기창 | |
투수 | 110 | 원종혁 | |
투수 | 112 | 승지환 | |
투수 | 113 | 이성민 | |
투수 | -- | 엄상백 | |
투수 | -- | 폰세 | |
포수 | 10 | 허관회 | |
포수 | 13 | 최재훈 | |
포수 | 32 | 이재원 | |
포수 | 42 | 박상언 | |
포수 | 44 | 안진 | |
포수 | 96 | 장규현 | |
포수 | 94 | 허인서 | |
포수 | 109 | 이승현 | |
내야수 | 3 | 안치홍 | |
내야수 | 4 | 최원준 | |
내야수 | 5 | 정안석 | |
내야수 | 6 | 한경빈 | |
내야수 | 7 | 이도윤 | |
내야수 | 8 | 노시환 | |
내야수 | 16 | 하주석 | |
내야수 | 43 | 정은원 | |
내야수 | 48 | 조한민 | |
내야수 | 49 | 이민준 | |
내야수 | 56 | 김건 | |
내야수 | 64 | 문현빈 | |
내야수 | 95 | 황영묵 | |
내야수 | 102 | 송호정 | |
내야수 | -- | 심우준 | |
외야수 | 17 | 권광민 | |
외야수 | 22 | 채은성 | (주장) |
외야수 | 24 | 임종찬 | |
외야수 | 33 | 유로결 | |
외야수 | 41 | 최인호 | |
외야수 | 45 | 이진영 | |
외야수 | 50 | 이원석 | |
외야수 | 114 | 신우재 | |
외야수 | 25 | 김태연 | |
외야수 | 37 | 김인환 | |
외야수 | 65 | 이상혁 | |
외야수 | 108 | 최준서 | |
외야수 | 111 | 권현 | |
외야수 | 106 | 유민 | |
외야수 | -- | 플로리알 | |
군입대 | 김예준 | ||
군입대 | 노석진 | ||
군입대 | 박정현 | ||
군입대 | 박준영 | ||
군입대 | 윤산흠 | ||
군입대 | 정민규 | ||
군입대 | 한서구 | ||
군입대 | 강재민 | ||
군입대 | 김관우 | ||
군입대 | 민승기 | ||
군입대 | 김겸재 | ||
군입대 | 남지민 | ||
군입대 | 김해찬 | ||
군입대 | 최원준 | ||
2025년 1라운드 | 정우주 | ||
2025년 2라운드 | 권민규 | ||
2025년 3라운드 | 한지윤 | ||
2025년 4라운드 | 배승수 | ||
2025년 5라운드 | 이동영 | ||
2025년 6라운드 | 박상현 | ||
2025년 7라운드 | 이지성 | ||
2025년 8라운드 | 엄상현 | ||
2025년 9라운드 | 엄요셉 | ||
2025년 10라운드 | 최주원 | ||
2025년 11라운드 | 이민재 |
5. 기록
한화 이글스는 1986년 리그에 처음 참가한 이후[1] 여러 기록을 남겼다.
송진우는 1989년부터 2009년까지 21시즌 동안 한화 이글스에서만 활동하며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200승과 20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한 투수이다.[2][3] 정민철 또한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하는 등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4]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화 이글스는 강력한 장타력을 바탕으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1999년에는 댄 로어마이어, 제이 데이비스, 송지만, 장종훈 등을 중심으로 팀 장타율 .487을 기록하며 KBO 리그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5]
한용덕은 2018년 감독 부임 후 첫 시즌에 팀을 2007년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6] 그러나 2020년 6월 7일, 14연패 이후 한용덕 감독은 사퇴했고, 최원호가 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7] 팀은 선수단 개편을 통해 베테랑 선수들을 KBO 퓨처스리그로 내리고, 9명의 선수를 1군으로 콜업했다.[8][9] 2020년 6월 14일에는 KBO 최장 연패 기록과 같은 18연패를 기록하기도 했지만,[10]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노태형의 끝내기 안타로 연패를 끊었다.[11]
다른 구단에 비해 한 팀에 오래 속한 선수들이 많았다. 송진우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43세)로 21년간 한 팀에서만 활동했고, 정민철, 구대성 등도 오랜 기간 팀에 헌신했다. 야수 중에서는 장종훈이 19년간, 김태균이 18년간 한화 이글스에서만 뛰었다. 2009년 이후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장기 소속 선수들은 줄었지만, 정근우, 이용규 등 FA를 통해 유명 선수들을 영입하기도 했다.
한화 이글스는 KBO 리그 창설 멤버 6개 구단보다 4년 늦게 리그에 참가했지만, 현재 KBO 소속 구단 중 가장 많은 4명의 100승 투수를 배출했다. 송진우와 정민철은 150승 이상을 기록했으며, 송진우는 한국 프로야구 유일의 200승 투수이다. 이들 4명 모두 다른 한국 구단에서 뛴 적이 없는 한화 이글스 원클럽맨이다.
한화 이글스는 4개의 영구결번을 가지고 있다.
송진우(宋津宇) | 정민철(鄭珉哲) | 장종훈(張鍾勲) |
- '''21''' 송진우(宋津宇) (2009년 9월 22일 -)
- '''23''' 정민철(鄭珉哲) (2009년 9월 10일 -)
- '''35''' 장종훈(張鍾勲) (2005년 8월 29일 -)
- '''52''' 김태균(金泰均) (2021년 5월 18일 -)
5. 1. 정규 시즌
한국시리즈 패배 (해태전 2-4)한국시리즈 패배 (해태전 0-4)
플레이오프 패배 (태평양전 0-3)
한국시리즈 승리 (롯데전 4-1)
플레이오프 패배 (두산전 0-3)
플레이오프 승리 (현대전 3-1)
한국시리즈 패배 (삼성전 1-1-4)
플레이오프 패배 (두산전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