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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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태균(1982년)은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로, 포지션은 1루수였다. 북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KBO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2009년에는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로 이적하여 2년간 활동했다. 2011년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여 2020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KBO 리그에서 신인왕, 타격왕, 홈런왕 등을 수상했으며,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맹활약하며 국제적인 선수로도 이름을 알렸다. 은퇴 후에는 한화 이글스 스페셜 어드바이저와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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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1982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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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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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태균 |
로마자 표기 | Gim Tae-gyun |
한자 표기 | 金泰均 |
출생일 | 1982년 5월 29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천안시 |
신장 | 185 |
체중 | 110 |
포지션 | 1루수 |
투구 | 우투 |
타석 | 우타 |
프로 입단 정보 | |
드래프트 | 2000년 KBO 1차 지명 |
계약금 | 1억 6,000만원 |
소속 구단 | 한화 이글스 (2001년 ~ 2009년) 지바 롯데 마린스 (2010년 ~ 2011년) 한화 이글스 (2012년 ~ 2020년, 2021년 은퇴 경기 특별 엔트리) |
선수 경력 | |
KBO 리그 데뷔 | 2001년 4월 17일, 수원 현대 유니콘스전 |
NPB 데뷔 | 2010년 3월 20일, 세이부 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 |
NPB 최종 출장 | 2011년 6월 15일, 도쿄 돔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
KBO 리그 최종 출장 | 2021년 5월 29일, 대전 SSG 랜더스전 |
수상 | |
KBO 신인왕 | 2001년 |
KBO 골든글러브 | 2005년, 2008년, 2016년 |
KBO 홈런왕 | 2008년 |
KBO 장타율왕 | 2008년 |
WBC 우수 선수 | 2009년 |
KBO 출루율왕 | 2012년 ~ 2014년, 2016년 |
KBO 타격왕 | 2012년 |
국가대표 경력 | |
야구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아시안 게임 | 2010년 광저우 |
야구 월드컵 | 2003년 쿠바 |
메달 기록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 샌디에이고 동메달 2009 로스앤젤레스 은메달 |
아시안 게임 | 2010 광저우 금메달 |
기타 정보 | |
배우자 | 김석류 (아나운서) |
은퇴 후 | 한화 이글스 단장 어드바이저 (2021년 ~ 현재) KBS N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 (2021년 ~ 현재) |
영구 결번 | 52번 |
2. 선수 시절
2. 1. 아마추어 시절
천안남산초등학교에서 2학년 2학기부터 아버지에 이끌려 야구를 시작했다.[25] 천안북중을 거쳐 북일고에 진학했다. 북일고 시절 야구 유망주에게 주는 박찬호 야구 장학금을 받았다. 2000년에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뽑혀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2000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동갑인 이대호, 정근우, 추신수와 함께 청소년 대표팀 우승을 이끌었다.[25] 이 대회에서 타율 0.433(30타수 13안타), 3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연도 | 개최지 | 대회 | 팀 | 개인 기록 |
---|---|---|---|---|
2000 | 캐나다 |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 .433 타율(30타수 13안타), 홈런 3개, 타점 11점 |
2. 2. 한국 프로야구 시절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계약 조건은 계약금 1억 6,000만원, 연봉 2,000만원이었다.[26] 2001년 4월 17일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선발 1루수로 KBO 데뷔전을 치렀다. 그 해 88경기에 출전해 타율 0.335, 20홈런, 54타점을 기록하며 KBO 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2] 한화 이글스 선수로는 최초의 신인왕이었다. 고졸 루키임에도 개막 1군에 선출되었지만, 결과를 내지 못하고 2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타격 폼을 개조하여 2군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고, 다시 1군으로 승격되어 대타나 찬스에서 좋은 결과를 내며 규정 타석 미달에도 신인왕을 차지했다.2002년에는 10번을 달고 2년차 징크스를 겪으며 타율 0.255, 7홈런을 기록했다. 이후 등번호를 52번으로 교체했고, 이는 그의 상징이 되었다. 2003년에는 타율 0.319, 31홈런, 95타점을 기록하며 팀 내 4번 타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시즌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2005년 시즌에는 3할대 타율, 146안타, 23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첫 골든 글러브(1루수 부문)를 수상했다. 2007년 올스타전에 출전해 홈런 레이스에서 9홈런을 쳐서 우승했다.
2006년에는 제1회 WBC한국 대표팀에 선출되었지만, 같은 1루수인 이승엽의 백업에 머물렀다. 3타석에서 2사사구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대표팀은 대 일본전 2전 2승을 포함한 쾌진격을 이어가며 개막 6연승을 기록, 특례로 병역 면제를 획득했다.
2008년 시즌에는 타율 5위, 홈런 1위, 타점 4위, 장타율 1위를 기록하며 홈런왕과 최고 장타율 타이틀을 수상했다.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골든 글러브(1루수 부문)를 수상했고, 유효표 346표 중 332표를 얻어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27] 베이징 올림픽에는 이승엽, 이대호와의 포지션 중복, 병역 면제 등의 이유로 선발되지 않았다. 신임 타격 코치 장종훈의 지도로 타율 3할 2푼 4리, 31홈런으로 최다 홈런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9년 WBC에서는 대표팀 합류를 거절한 이승엽을 대신하여 전 경기에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9경기에서 타율 3할 4푼 5리, 3홈런, 11타점(당시 WBC 역대 최다 기록)의 맹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9(1루수 부문 만장일치)에 선정되며 팀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WBC 후 인터뷰에서 이와쿠마 히사시를 인상 깊었던 선수로 언급하며, "일본 대표팀 투수진은 대한민국의 에이스급보다 더 뛰어났다"고 말했다.
2009년 시즌 중에는 4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홈으로 쇄도 중 포수 최승환과의 충돌을 피하려다 넘어져 뇌진탕으로 병원에 후송되었다. 이 후유증으로 한때 2군에서 재활했지만, 19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하여 11월 13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 최장 3년간 총액 7억엔(90억)에 계약을 맺었다.
2012년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여 KBO 리그 복귀 첫 시즌에 타율 0.363으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2014년과 2016년 모두 타율 0.365를 기록하며 두 시즌 모두 타격왕 2위에 올랐다. 2016년 그의 136타점 역시 리그 2위였다.
2020년 6월 6일, KBO에서 통산 3,500 루타를 달성한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이는 양준혁의 38세 2개월 9일보다 약 두 달 빠른 기록이었다.[2] 양준혁, 이승엽, 박용택에 이어 통산 3,500루타를 달성한 네 번째 선수이자, 최초의 우타자였다.
2. 2. 1. 한화 이글스 시절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계약금 1억 6,000만원, 연봉 2,000만원의 조건이었다.[26] 2001년에 88경기에 출전해 3할대 타율, 20홈런을 기록하며 그 해 신인왕을 수상했다.[2] 한화 이글스 선수로는 최초의 신인왕이었다. 고졸 루키임에도 개막 1군에 선출되었지만, 결과를 내지 못하고 2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타격 폼을 개조하여 2군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고, 다시 1군으로 승격되어 대타나 찬스에서 좋은 결과를 내며 규정 타석 미달에도 신인왕을 차지했다.2002년에는 10번을 달고 2년차 징크스를 겪었다. 이후 등번호를 52번으로 교체했고, 이는 그의 상징이 되었다. 2003년에는 31홈런을 기록하며 팀 내 4번 타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시즌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2005년 시즌에는 3할대 타율, 146안타, 23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첫 골든 글러브(1루수 부문)를 수상했다. 2007년 올스타전에 출전해 홈런 레이스에서 9홈런을 쳐서 우승했다.
2006년에는 제1회 WBC한국 대표팀에 선출되었지만, 이승엽의 백업에 머물렀다. 3타석에서 2사사구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대표팀은 일본전 2승을 포함해 6연승을 기록하며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2008년 시즌에는 타율 5위, 홈런 1위, 타점 4위, 장타율 1위를 기록하며 홈런왕과 최고 장타율 타이틀을 수상했다.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골든 글러브(1루수 부문)를 수상했고, 유효표 346표 중 332표를 얻어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27] 베이징 올림픽에는 이승엽, 이대호와의 포지션 중복, 병역 면제 등의 이유로 선발되지 않았다. 신임 타격 코치 장종훈의 지도로 타율 3할 2푼 4리, 31홈런으로 최다 홈런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9년 WBC에서는 이승엽을 대신하여 전 경기에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9경기에서 타율 3할 4푼 5리, 3홈런, 11타점(당시 WBC 역대 최다 기록)의 맹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9(1루수 부문 만장일치)에 선정되며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WBC 후 인터뷰에서 이와쿠마 히사시를 인상 깊었던 선수로 언급하며, "일본 대표팀 투수진은 대한민국의 에이스급보다 더 뛰어났다"고 말했다.
2009년 시즌 중에는 4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홈으로 쇄도 중 포수 최승환과의 충돌을 피하려다 넘어져 뇌진탕으로 병원에 후송되었다. 이 후유증으로 한때 2군에서 재활했지만, 19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하여 11월 13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 최장 3년간 총액 7억엔(90억)에 계약을 맺었다.
2020년 6월 6일, KBO에서 통산 3,500 루타를 달성한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이는 양준혁의 38세 2개월 9일보다 약 두 달 빠른 기록이었다.[2] 양준혁, 이승엽, 박용택에 이어 통산 3,500루타를 달성한 네 번째 선수이자, 최초의 우타자였다.
2. 3. 일본 프로야구 시절
2009년 11월에 FA를 신청했다. 많은 국내외 구단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나 13일에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등번호는 한화 이글스에서 쓰던 52번으로 결정했다. 등록명은 본명과 같고, 유니폼 백 네임은 ‘TAEKYUN’으로 정했다. 일본 프로 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활동했다. NPB 첫해에는 타율 0.268, 21홈런, 92타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2]일본에 진출한 한국 선수로는 임창용에 이어 두 번째로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1위와 최다 득표 선수로 뽑혔다. 한국 선수가 리그 최다 득표 선수로 뽑힌 것과 일본 진출 첫 해에 팬투표 1위를 차지한 것 모두 최초였다. 그는 일본 진출 첫 해에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를 넘고 일본 시리즈에서 안타와 타점을 올리는 등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개인 첫 우승을 기록했다.
등번호는 한화 재적 당시와 같은 "'''52'''"로 결정되었다. 등록명은 본명인 "김태균"이지만 유니폼의 등 네임은 "'''TAEKYUN'''(테균)"으로 하였다. 롯데리아에서는 그의 활약을 기대하며 김치가 들어간 햄버거 '김치 테균 버거'를 지바 마린 스타디움의 매장에서 한정 판매를 시작했다. 주최 경기에서 홈런을 쳤을 경우 그 순간부터 52개 한정 (등번호에 기인)으로, 통상 가격 400엔에서 8분의 1 가격인 '''50엔'''으로 가격을 인하하여 판매했다(첫 실시 2010년 5월 3일 대 니혼햄전). 2010년 6월 22일부터는 홋카이도, 미야기현, 사이타마현, 지바현, 오사카부, 효고현, 후쿠오카현의 롯데리아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 이들 매장에서는 홈런 다음 날, 52개 한정으로 반값에 판매했다. 롯데에서의 응원가는 한국 가수인 다비치의 "8282"라는 곡이 사용되었다.
2010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4번 타자로 출장하여, 니혼햄과의 경기에서 다케다 히사시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는 등 6월까지 18홈런, 65타점으로 선두 경쟁을 하고 있는 팀의 4번 타자로서 활약했지만, 7월 이후에는 타율 .250, 홈런 3, 타점 27으로 크게 부진하여 9월 이후에는 주로 6번이나 7번 타자로 출장했다. 결국 타율 .268, 홈런 21, 타점 92, 득점권 타율 .236의 성적으로 1년차 시즌을 마쳤다. 포스트 시즌도 그대로 7번(DH가 없는 주니치 주최 경기에서는 6번)에 정착. CS, 일본 시리즈 통산 15경기에서 타율은 .310이었지만, 모든 안타가 단타였고 장타율도 .310, 타점 6이라는 성적에 그쳤다. 8월에는 KBS 아나운서(N 스포츠) 김석류와 오프에 결혼할 것을 발표했다. 김석류는 이에 따라 담당하고 있던 '아이 러브 베이스볼'을 8월 22일 방송분에서 하차, 일본 유학을 위해 퇴사[10]했다. 12월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국 대표로 선출되어, 일본 시리즈 종료 후에 팀에 합류했지만 거의 활약하지 못했고, 팀은 우승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다.
2011년은 시즌 초부터 전년 후반과 마찬가지로 부진한 성적이 이어져 5월 19일 손목 부상으로 등록 말소, 6월 초에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허리 통증으로 동월 19일에 다시 등록 말소되어, "치료를 위해"라는 칭호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7월 27일, 올해를 끝으로 퇴단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발표되었다[11]。11월 19일, 구단 홈페이지에서 내년 시즌의 계약을 맺지 않는다는 것이 공식 발표되었다[12]。 김태균은 롯데에서의 플레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야구가 재미없었다[13]"라고 말했다.
2. 3. 1.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2009년 11월에 FA를 신청했다. 많은 국내외 구단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나 13일에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등번호는 한화 이글스에서 쓰던 52번으로 결정했다. 등록명은 본명과 같고, 유니폼 백 네임은 ‘TAEKYUN’으로 정했다. 일본 프로 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활동했다. NPB 첫해에는 타율 0.268, 21홈런, 92타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2]일본에 진출한 한국 선수로는 임창용에 이어 두 번째로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1위와 최다 득표 선수로 뽑혔다. 한국 선수가 리그 최다 득표 선수로 뽑힌 것과 일본 진출 첫 해에 팬투표 1위를 차지한 것 모두 최초였다. 그는 일본 진출 첫 해에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를 넘고 일본 시리즈에서 안타와 타점을 올리는 등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개인 첫 우승을 기록했다.
등번호는 한화 재적 당시와 같은 "'''52'''"로 결정되었다. 등록명은 본명인 "김태균"이지만 유니폼의 등 네임은 "'''TAEKYUN'''(테균)"으로 하였다. 롯데리아에서는 그의 활약을 기대하며 김치가 들어간 햄버거 '김치 테균 버거'를 지바 마린 스타디움의 매장에서 한정 판매를 시작했다. 주최 경기에서 홈런을 쳤을 경우 그 순간부터 52개 한정 (등번호에 기인)으로, 통상 가격 400엔에서 8분의 1 가격인 '''50엔'''으로 가격을 인하하여 판매했다(첫 실시 2010년 5월 3일 대 니혼햄전). 2010년 6월 22일부터는 홋카이도, 미야기현, 사이타마현, 지바현, 오사카부, 효고현, 후쿠오카현의 롯데리아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 이들 매장에서는 홈런 다음 날, 52개 한정으로 반값에 판매했다. 롯데에서의 응원가는 한국 가수인 다비치의 "8282"라는 곡이 사용되었다.
2010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4번 타자로 출장하여, 니혼햄과의 경기에서 다케다 히사시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는 등 6월까지 18홈런, 65타점으로 선두 경쟁을 하고 있는 팀의 4번 타자로서 활약했지만, 7월 이후에는 타율 .250, 홈런 3, 타점 27으로 크게 부진하여 9월 이후에는 주로 6번이나 7번 타자로 출장했다. 결국 타율 .268, 홈런 21, 타점 92, 득점권 타율 .236의 성적으로 1년차 시즌을 마쳤다. 포스트 시즌도 그대로 7번(DH가 없는 주니치 주최 경기에서는 6번)에 정착. CS, 일본 시리즈 통산 15경기에서 타율은 .310이었지만, 모든 안타가 단타였고 장타율도 .310, 타점 6이라는 성적에 그쳤다. 8월에는 KBS 아나운서(N 스포츠) 김석류와 오프에 결혼할 것을 발표했다. 김석류는 이에 따라 담당하고 있던 '아이 러브 베이스볼'을 8월 22일 방송분에서 하차, 일본 유학을 위해 퇴사[10]했다. 12월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국 대표로 선출되어, 일본 시리즈 종료 후에 팀에 합류했지만 거의 활약하지 못했고, 팀은 우승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다.
2011년은 시즌 초부터 전년 후반과 마찬가지로 부진한 성적이 이어져 5월 19일 손목 부상으로 등록 말소, 6월 초에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허리 통증으로 동월 19일에 다시 등록 말소되어, "치료를 위해"라는 칭호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7월 27일, 올해를 끝으로 퇴단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발표되었다[11]。11월 19일, 구단 홈페이지에서 내년 시즌의 계약을 맺지 않는다는 것이 공식 발표되었다[12]。 김태균은 롯데에서의 플레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야구가 재미없었다[13]"라고 말했다.
2. 4. 한국 프로야구 복귀
2011년 일본 프로 야구에서 복귀하여 12월 12일에 역대 최고 연봉인 15억원을 받으며 한화 이글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28][15] 등번호는 '''52'''로 결정되었다. 2012년에는 한때 4할이 넘는 타율로 한국 프로 야구 사상 두 번째 4할 타자 탄생을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9월에 부진하여 타율 0.363으로 본인 첫 타격왕이 되었다.2013년 시즌에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됐으나, 시즌 초반 팀과 함께 부진에 빠졌다. 상대 팀의 집중 견제로 성적 부진에 시달렸고, 허리 부상까지 겹쳤으나 10월 2일 LG전에서 우규민을 상대로 9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28] 2013년 이후에도 주력 타자로서 활약을 이어갔으며,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쳐 한국 프로 야구 기록인 86경기 연속 출루를 기록했다. 2018년에는 한국 프로 야구 개인 통산 300홈런, 2000안타(역대 11번째)를 달성했다.
2019년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해 1년 총액 10억원에 잔류했다.[29]
2020년 10월 21일에 은퇴를 선언했다.[30][15] 10월 22일 은퇴 기자 회견을 열었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은퇴 경기는 갖지 않고 2021년에 은퇴식을 거행하기로 했다.[16] 은퇴 후 2021 시즌부터 한화의 정민철 단장을 보좌하는 스페셜 어드바이저로 취임할 예정이다.[15]
2. 4. 1. 한화 이글스 복귀
2011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후 12월 12일에 역대 최고 연봉인 15억원을 받으며 복귀하였다.[28] 2011년 12월 12일, 롯데 이적 전에 소속했던 한화와 1년 계약을 발표했다. 2012년 연봉 15억 원은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고액으로, 최초의 연봉 10억 원 이상 선수로 기록되었다. 등번호는 '''52'''로 결정되었다.2012년 전체적으로 장타력이 감소해 홈런이 줄었으나 9월까지 4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2년에는 한때 4할이 넘는 타율로 한국 프로 야구 사상 두 번째 4할 타자 탄생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9월에 부진했지만, 타율 0.363으로 본인 첫 타격왕이 되었다.
2013년 시즌에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됐으나 시즌 초반 팀이 심각한 부진에 빠지며 주저앉았고, 상대 팀의 집중 견제로 성적 부진에 시달려 시즌 중후반 타율은 3할 초반대, 홈런은 7개밖에 치지 못했다. 여기에 허리 부상까지 겹쳤으나 10월 2일 LG전에서 우규민을 상대로 9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28] 2013년 이후에도 주력 타자로서 활약을 이어갔다.
2019년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해 1년 총액 10억원에 잔류했다.[29] 2019년 오프 시즌에 세 번째 FA를 행사하여, 한화와 계약 기간 1년으로 재계약을 맺었다.
2020년 10월 21일에 은퇴를 선언했다.[30] 2020년 10월 21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15] 앞으로는 2021 시즌부터 한화의 정민철 단장을 보좌하는 스페셜 어드바이저로 취임할 예정이다.[15] 10월 22일 은퇴 기자 회견을 열었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은퇴 경기는 갖지 않고 2021년에 은퇴식을 거행하기로 했다.[16]
3. 야구선수 은퇴 후
2021년부터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단장 어드바이저 겸 KBS N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17] 현역 시절의 등번호 52번은 구단 역사상 4번째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2021년 5월 29일, 은퇴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특별 엔트리되어 "4번·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경기 시작 전에 수비를 맡았고, 딸들의 시구 행사를 지켜본 후, 경기 시작 직후 벤치로 물러났다.[18]
4. 에피소드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일본 롯데리아에서 그의 활약을 기대하며 김치가 들어간 햄버거인 ‘김치 태균 버거’를 홈 구장인 지바 마린 스타디움 내 점포에서 한정 판매했다. 홈 경기에서 홈런을 쳤을 때 홈런을 친 순간부터 그의 등번호와 같은 숫자인 52개 한정으로 통상 가격 400엔의 8분의 1인 50엔으로 가격 인하해 판매했다. 2010년 5월 3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7차전에서 홈구장 첫 홈런이자 시즌 6호 홈런을 치면서 ‘김치 태균 버거’의 첫 가격 인하가 실시됐고 8분 만에 52개가 모두 팔려나갔다. 그러나 5회말에 그의 연타석 홈런이 터지며 다시 ‘김치 태균 버거’의 가격 인하가 실시됐는데 이미 이 날 준비했던 ‘김치 태균 버거’가 모두 팔려나가고 없었기 때문에 통상 가격 410엔의 치즈 버거를 급하게 52개 한정 50엔으로 인하해 판매하는 해프닝이 생겼다. 이 기획의 발안은 당시의 팀 메이트였던 지바 롯데 마린스의 이구치 감독으로 그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의 정말 빛나는 표정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김태균은 2009년 4월 충청남도 청주시 홍보대사였다.[3] 그는 2009년 5월 네오위즈 게임즈 슬러거 홍보대사였다.[3] 그는 2013년과 2014년 5월에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였다.[3] 그는 2013년 7월 착한 운전 마일리지 홍보대사였다.[3]
5. 미디어
2008년 8월 14일 한화 이글스의 팀 동료인 정민철과 함께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했다. 2009년 12월 22일에는 LG 트윈스의 봉중근, 정성훈, 이택근과 함께 KBS2 여유만만에 출연했다. 2009년 12월 26일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에 다시 출연했다. 2010년 1월 15일에는 LG 트윈스의 봉중근과 함께 SBS 절친노트 3에 출연했다. 2021년 10월 24일부터 2022년 6월 3일까지 두 자녀와 함께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다.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참고 |
---|---|---|---|---|
2021 | 국가부도의 날 | 출연자 | 1–12화 | [5] |
2021–현재 | 슈퍼맨이 돌아왔다 | 출연자 | [6] | |
2022 | Back to the Ground | 참가자 | [7] | |
내일은 천재 | 출연자 | [8] | ||
2023 | 지옥법정 | 고정 멤버 | [9] | |
6.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활약
2001년 야구 월드컵에서 김태균은 타율 .286 (7타수 2안타), 2 볼넷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6위에 기여했다.[31] 2003년 야구 월드컵에서는 타율 .382 (34타수 13안타), 3홈런, 9타점, 10득점, 6볼넷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지만, 팀은 8위에 그쳤다.[32]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는 3경기에 출전하여 1타수 무안타, 2볼넷, 1득점을 기록했고, 대한민국은 동메달을 획득했다.[33]
연도 | 개최지 | 대회 | 팀 | 개인 기록 |
---|---|---|---|---|
2006 | 미국/USA영어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파일:https://cdn.onul.works/wiki/source/194c96cfa57_a5100771.svg | 타율 .000 (1타수 0안타), 2 볼넷 |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1점 홈런 포함 5타수 2안타 3타점, 일본전에서 2타수 1안타 2볼넷(1고의사구),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에서 2점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1홈런 1볼넷을 기록하는 등 맹타를 휘둘렀다.[34][35] 이 대회에서 김태균은 타율 .345(29타수 10안타), 3홈런, 11타점, 9득점, 8볼넷을 기록하며 홈런, 타점, 득점 3관왕에 올랐고, 1루수 부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36]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연도 | 개최지 | 대회 | 팀 | 개인 기록 |
---|---|---|---|---|
2009 | 미국/USA영어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타율 .345 (29타수 10안타), 3 홈런, 11 타점, 9 득점, 8 볼넷 올스타 (1루수), 홈런 / 타점 / 득점 타이틀 |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이스라엘전, 네덜란드전에 선발 3번 타자로, 대만전에 박건우의 대타로 출전했다. 대만전에서 2점 홈런을 기록하는 등 총 3경기에서 8타수 1안타(1홈런) 타율 0.125, 1볼넷,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대만전에서 4타석 모두 볼넷으로 출루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연도 | 개최지 | 대회 | 팀 | 개인 기록 |
---|---|---|---|---|
광저우 아시안 게임 |
6. 1.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본선 미국전을 포함 총 3경기에 출전하여 1타수 무안타, 2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31]연도 | 개최지 | 대회 | 팀 | 개인 기록 |
---|---|---|---|---|
2006 | 미국/USA영어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파일:https://cdn.onul.works/wiki/source/194c96cfa57_a5100771.svg | 타율 .000 (1타수 0안타), 2 볼넷 |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09년 3월 16일 멕시코와의 본선 경기(펫코 파크)에 선발 1루수로 출전, 5타수 2안타, 3타점, 1홈런, 2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4회 무사에서 올리버 페레스를 상대로 1점 홈런을 기록했다.[32] 2009년 3월 18일 일본과의 본선 경기(펫코 파크)에서는 선발 1루수로 출전, 2타수 1안타, 볼넷 2개를 기록했다. 8회말에는 일본 투수 와쿠이로부터 고의사구를 얻어냈다.[33] 2009년 3월 22일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 경기(다저 스타디움)에서는 선발 1루수로 출전, 4타수 2안타, 1홈런, 1볼넷을 기록했다. 2회 1사에서 카를로스 실바를 상대로 좌월 2점 홈런을 기록했다.[34] 이 대회에서 김태균은 3개의 홈런으로 홈런왕, 11타점으로 타점왕에 올랐다.[35]
연도 | 개최지 | 대회 | 팀 | 개인 기록 |
---|---|---|---|---|
2009 | 미국/USA영어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타율 .345 (29타수 10안타), 3 홈런, 11 타점, 9 득점, 8 볼넷 올스타 (1루수), 홈런 / 타점 / 득점 타이틀 |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예선 3경기(이스라엘전, 네덜란드전 선발 출전 3번 타자, 대만전 7번 타자 박건우 교체 출전)에 나와 이스라엘전 3타수 무안타 1볼넷 2삼진, 네덜란드전 4타수 무안타, 대만전 10회초 2점 홈런을 기록하며 1타수 1안타(1홈런) 2타점 1득점을 기록해 총 3경기에서 8타수 1안타(1홈런) 타율 0.125, 1볼넷,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6. 1. 1. 2006년
본선 미국전을 포함 총 3경기에 나와 1타수 무안타, 2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31]연도 | 개최지 | 대회 | 팀 | 개인 기록 |
---|---|---|---|---|
2006 | 미국/USA영어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파일:https://cdn.onul.works/wiki/source/194c96cfa57_a5100771.svg | 타율 .000 (1타수 0안타), 2 볼넷 |
6. 1. 2. 2009년
2009년 3월 16일 멕시코와의 본선 경기(펫코 파크)에서 선발 1루수로 출전, 5타수 2안타, 3타점, 1홈런, 2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4회 무사에서 올리버 페레스를 상대로 1점 홈런을 기록했다.[32]2009년 3월 18일 일본과의 본선 경기(펫코 파크)에서는 선발 1루수로 출전, 2타수 1안타, 볼넷 2개를 기록했다. 8회말에는 일본 투수 와쿠이로부터 고의사구를 얻어냈다.[33]
2009년 3월 22일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 경기(다저 스타디움)에서는 선발 1루수로 출전, 4타수 2안타, 1홈런, 1볼넷을 기록했다. 2회 1사에서 카를로스 실바를 상대로 좌월 2점 홈런을 기록했다.[34]
이 대회에서 김태균은 3개의 홈런으로 홈런왕, 11타점으로 타점왕에 올랐다.[35]
연도 | 개최지 | 대회 | 팀 | 개인 기록 |
---|---|---|---|---|
2009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타율 .345 (29타수 10안타), 3 홈런, 11 타점, 9 득점, 8 볼넷 올스타 (1루수), 홈런 / 타점 / 득점 타이틀 |
6. 1. 3. 2017년
예선 3경기( 이스라엘전, 네덜란드전 선발 출전 3번 타자, 대만전 7번 타자 박건우 교체 출전)에 나와 이스라엘전 3타수 무안타 1볼넷 2삼진, 네덜란드전 4타수 무안타, 대만전 10회초 2점 홈런을 기록하며 1타수 1안타(1홈런) 2타점 1득점을 기록해 총 3경기에서 8타수 1안타(1홈런) 타율 0.125, 1볼넷,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6. 2.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김태균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대만전에서 4타석에 나와 4볼넷을 기록했다.연도 | 개최지 | 대회 | 팀 | 개인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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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아시안 게임 |
7. 수상 경력
김태균은 2001년 프로야구 신인왕을 수상했다.[4] 2005년, 2008년, 2016년에는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4] 2008년에는 프로야구 홈런왕과 장타율왕을 차지했다.[4]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는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4]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그리고 2016년에 KBO 리그 출루율왕을 차지했으며,[4] 2012년에는 프로야구 타격왕에도 올랐다.[4] 2017년에는 프로야구 '스포츠서울' 올해의 기록상을 수상했다.[4]
KBO에서는 홈런왕 1회(2008년), 수위타자 1회(2012년)를 기록했다.[4] 신인상(2001년)과 골든글러브 3회(2005년, 2008년, 2016년)를 수상했다.[4] NPB에서는 2010년 올스타전 제2전에서 홈런 더비 우승을 차지했다.[4] WBC에서는 2009년 제2회 대회에서 베스트 9 1루수 부문에 선정되었다.[4]
8. 주요 기록
wikitext
- 홈런왕:1회 (2008년)
- 수위타자:1회 (2012년)
8. 1. 대한민국
김태균은 KBO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로, 특히 한화 이글스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팀의 간판 타자로 자리매김했다.2001년, 김태균은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5월 19일 대전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프로 첫 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 인상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2001년 시즌 기록은 88경기 출장, 타율 0.335, 20홈런, 54타점, 51득점이다.
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2001 | 한화 | 88 | 245 | 51 | 82 | 13 | 2 | 20 | 54 | 2 | 0 | 40 | 4 | 72 | 4 | 3 | .335 | .649 | .436 |
2003년에는 6월 10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프로 첫 만루홈런을 기록하는 등 133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319, 31홈런, 95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2003 | 한화 | 133 | 479 | 67 | 153 | 24 | 2 | 31 | 95 | 3 | 6 | 79 | 9 | 106 | 13 | 6 | .319 | .572 | .424 |
2008년에는 7월 17일 대전 LG 트윈스전에서 5회말 2-3 풀카운트에서 투수 이재영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2008 | 한화 | 115 | 410 | 81 | 133 | 27 | 1 | 31 | 92 | 2 | 5 | 64 | 5 | 67 | 8 | 3 | .324 | .622 | .417 |
2009년에는 4월 21일 목동 히어로즈전에서 5회 마일영을 상대로 개인 통산 1,000안타를 기록했고(역대 56번째),[36] 7월 7일 히어로즈전에서 조용훈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기록하는 등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2009 | 한화 | 95 | 336 | 63 | 111 | 15 | 0 | 19 | 62 | 2 | 2 | 51 | 4 | 71 | 12 | 1 | .330 | .545 | .416 |
2012년 한화 이글스로 복귀한 김태균은 7월 8일 대전 SK 와이번스전에서 6회말 투수 윤희상을 상대로 KBO 리그 통산 200홈런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2년 시즌 126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363, 151안타, 16홈런, 80타점, 81볼넷을 기록하며 타율 1위를 차지했다.
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2012 | 한화 | 126 | 416 | 61 | 151 | 24 | 0 | 16 | 80 | 3 | 5 | 81 | 11 | 69 | 11 | 2 | .363 | .536 | .474 |
2016년에는 10월 3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KBO 최초로 한 시즌 300출루를 기록하는(1회초 투수 안규영 상대) 대기록을 달성하며, 여전히 리그 정상급 타자임을 입증했다.
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
2016 | 한화 | 144 | 529 | 94 | 193 | 39 | 0 | 23 | 136 | 1 | 6 | 108 | 9 | 97 | 11 | 4 | .365 | .569 | .475 |
8. 1. 1. 2001년
5월 19일 대전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2001년 시즌 기록은 88경기 출장, 타율 0.335, 20홈런, 54타점, 51득점이다.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2001 | 한화 | 88 | 245 | 51 | 82 | 13 | 2 | 20 | 54 | 2 | 0 | 40 | 4 | 72 | 4 | 3 | .335 | .649 | .436 |
8. 1. 2. 2003년
6월 10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프로 첫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2003년 시즌 133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319, 31홈런, 95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2003 | 한화 | 133 | 479 | 67 | 153 | 24 | 2 | 31 | 95 | 3 | 6 | 79 | 9 | 106 | 13 | 6 | .319 | .572 | .424 |
8. 1. 3. 2008년
- 7월 17일 대전 LG 트윈스전에서 5회말 2-3 풀카운트에서 투수 이재영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2008 | 한화 | 115 | 410 | 81 | 133 | 27 | 1 | 31 | 92 | 2 | 5 | 64 | 5 | 67 | 8 | 3 | .324 | .622 | .417 |
8. 1. 4. 2009년
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2009 | 한화 | 95 | 336 | 63 | 111 | 15 | 0 | 19 | 62 | 2 | 2 | 51 | 4 | 71 | 12 | 1 | .330 | .545 | .416 |
8. 1. 5. 2012년
- 7월 8일 대전 SK 와이번스전에서 6회말 투수 윤희상을 상대로 KBO 리그 통산 200홈런을 기록했다.
- 2012년 시즌 126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363, 151안타, 16홈런, 80타점, 81볼넷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타율은 리그 1위를 기록했다.
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2012 | 한화 | 126 | 416 | 61 | 151 | 24 | 0 | 16 | 80 | 3 | 5 | 81 | 11 | 69 | 11 | 2 | .363 | .536 | .474 |
8. 1. 6. 2016년
연도 | 팀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SF | BB | HBP | SO | GIDP | E | AVG | SLG | OBP |
---|---|---|---|---|---|---|---|---|---|---|---|---|---|---|---|---|---|---|---|
2016 | 한화 | 144 | 529 | 94 | 193 | 39 | 0 | 23 | 136 | 1 | 6 | 108 | 9 | 97 | 11 | 4 | .365 | .569 | .475 |
리그 1위.
8. 2. 일본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2010년 3월 20일, 세이부 라이온즈 1차전(세이부 돔), 4번·1루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석: 동일, 1회 초 와쿠이 히데아키에게 헛스윙 삼진. 다음 날 호아시 가즈유키에게 2삼진을 당하여, 첫 타석부터 6타석 연속 삼진이 되었다.
- 첫 안타: 2010년 3월 22일, 세이부 라이온즈 3차전(세이부 돔), 5회 초 노가미 료마로부터 우전 안타
- 첫 타점: 2010년 3월 27일,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즈 2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3회 말 다르빗슈 유로부터 중견 희생 플라이
- 첫 홈런: 2010년 4월 2일, 오릭스 버팔로즈 1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5회 초 곤도 가즈키로부터 중월 2점 홈런
- 올스타전 출장: 1회 (2010년)
8. 2. 1.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2010년 3월 20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차전(세이부 돔), 4번·1루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석: 동일, 1회 초 와쿠이 히데아키에게 헛스윙 삼진. 다음 날 호아시 가즈유키에게 2삼진을 당하여, 개막 6연타석 삼진
- 첫 안타: 2010년 3월 2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3차전(세이부 돔), 5회 초 노가미 료마로부터 우전 안타
- 첫 타점: 2010년 3월 27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3회 말 다르빗슈 유로부터 중견 희생 플라이
- 첫 홈런: 2010년 4월 2일, 오릭스 버펄로스 1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5회 초 곤도 가즈키로부터 중월 2점 홈런
- 첫 만루 홈런 : 2010년 6월 7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4차전 (메이지 진구 구장), 7회 초 마스부치 다쓰요시에게 좌월 만루 홈런
8. 3. 기타
9. 등번호
- '''52''' (2001년, 2003년 - 2020년)
- '''10''' (2002년)
9. 1. KBO (한화 이글스)
wikitext- '''52''' (2001년, 2003년 ~ 2009년, 2012년 ~) (영구 결번)
- '''10''' (2002년)
9. 2. NPB (지바 롯데 마린스)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등번호 '''52'''번을 달았다.10. 가족 관계
김태균은 2010년 김석류와 결혼하였다. 슬하에 김효린, 김하린 두 딸을 두고 있다.
11. 출신 학교
12. 통산 기록
도
속
이
장
석
수
점
루
타
루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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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런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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