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역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역사는 신라 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했으나, 1990년대 이후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시작되면서 점차 변화했다. 신라 시대에는 혜공왕의 남색 기록을 통해 성적 다양성을 엿볼 수 있으며, 고려 시대에는 왕실의 동성애 관련 기록이 존재한다. 조선 시대에는 순빈 봉씨 사건과 같이 동성애가 엄격하게 처벌받았다. 1948년 이후에는 6.25 전쟁과 서구 문화 유입을 거치며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가 부분적으로 전달되었지만, 차별과 억압이 지속되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시작되었고, 1990년대에는 초동회 결성, 2000년대에는 홍석천의 커밍아웃과 하리수의 데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 등이 이루어졌다. 2010년대에는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성소수자 관련 사건과 논쟁이 이어졌다. 2020년대에는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사건,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불허 사건 등이 발생하며 사회적 차별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 대한민국 차별금지법
    대한민국 차별금지법은 차별 금지를 위한 법률 제정 시도와 관련되어 2005년 법 제정 추진이 무산된 후 여러 차례 발의되었으나 국회 통과에 이르지 못했고, 2020년에는 차별금지법안 및 평등법안이 발의되었으며, 국민 여론은 긍정적이나 세부 내용과 사회적 파장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 대한민국 국군의 성적 지향 및 성정체성
    대한민국 국군의 성적 지향 및 성정체성은 군형법과 징병 신체검사 규정으로 인한 성 소수자 차별, 이로 인한 위헌성 및 찬반 논쟁, 그리고 성 소수자 군인들이 겪는 어려움과 인권 단체의 개혁 요구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 대한민국의 역사 - 색동회
    색동회는 1923년 방정환을 중심으로 창립되어 어린이들에게 다채로운 꿈과 희망을 주고자 아동 문화 운동을 펼친 단체로, 잡지 발간, 어린이날 제정, 행사 개최 등을 통해 아동문학과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광복 후 활동을 재개하여 현재까지 이어지며 아동 교육에 공헌한 사람들을 시상하는 색동회상을 제정했다.
  • 대한민국의 역사 - 6.25 전쟁
    6.25 전쟁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휴전 협정으로 종결되었으며, 한반도의 분단과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한국 전쟁을 의미한다.
  • 한국의 역사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지속된 시기로, 강제 병합, 경제적 착취, 정치적 억압, 문화적 동화 정책 등이 특징이며, 3·1 운동과 같은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고, 위안부 문제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한국의 역사 - 국가재건최고회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수립된 군사 정권 기구로, 헌법 일부 조항 효력 정지, 국회 해산 등 권위주의적 통치를 펼치며 경제 개발을 추진했으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았고, 1963년 제3공화국 출범과 함께 해산되었다.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역사
지도 정보
개요
주제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역사
역사적 사건 및 법률
주요 사건1930년대: 한국 최초의 동성애 관련 소설 등장
2007년: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용
2017년: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한 헌법소원 기각
법적 지위동성 결혼: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음
차별 금지법: 포괄적인 차별 금지법 제정 논의 중, 일부 지역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례 시행
사회적 상황
사회적 인식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존재, 긍정적인 인식 변화 노력도 진행 중
주요 이슈군대 내 동성애 처벌, 성소수자 차별 금지법 제정, 트랜스젠더의 법적 지위
관련 단체 및 행사
주요 단체행동하는 성소수자 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주요 행사퀴어문화축제
문화
문학동성애를 다룬 소설 및 시
영화 및 드라마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영화 및 드라마 제작
기타성소수자 관련 독립 출판물 및 예술 활동
같이 보기

2. 역사

한국사 기록에는 현대의 성소수자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족이나 궁중 인물들을 중심으로 동성애적 관계나 성별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신라혜공왕[1], 고려의 목종[2]과 공민왕[3], 조선순빈 봉씨[4] 등의 사례는 당시 사회에도 성적 다양성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각 시대의 사회적 인식과 규범 속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엿볼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성소수자의 존재가 점차 가시화되고 인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50년대에는 초기 성전환 수술 기록[5][6]이 나타났으며, 1990년대에는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 단체들이 결성[7]되고 PC 통신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홍석천, 하리수 등 유명인의 커밍아웃과 데뷔, 퀴어문화축제의 시작,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 등 중요한 진전이 있었으나, 동시에 인터넷 검열 시도나 차별금지법 제정 무산과 같은 사회적 갈등과 좌절도 겪었다. 2010년대 이후 성소수자 이슈는 대중문화 영역으로 확장되고 학생인권조례 제정, 대법원의 성별 정정 관련 판결[9] 등 긍정적 변화가 있었지만, TERF 등 새로운 형태의 혐오와 배제 움직임도 나타났다. 2020년대에도 변희수 하사 사건, 숙명여자대학교 입학 포기 사건 등 성소수자 인권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사회가 풀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2. 1.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시기인 삼국시대, 고려, 조선의 역사 기록에서도 동성애 또는 현대의 성소수자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례들이 나타난다. 신라혜공왕[1], 고려의 목종[2] 및 공민왕과 관련된 자제위[3], 조선 세종 시대의 세자빈이었던 순빈 봉씨[4] 등의 기록이 그 예이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들은 해당 시대의 성 관념이나 특정 인물의 성적 지향 및 정체성에 대한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 1. 1. 신라 시대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제36대 국왕 혜공왕이 여자 모습을 하기를 좋아하고 '도사와 함께 희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1] 이는 당시 사회의 동성애적 관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경덕왕이 본래 딸로 태어났어야 할 아이를 기도를 통해 아들로 바꾸어 혜공왕이 태어났다는 설화도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과 혜공왕이 여성적인 행동을 선호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대적인 관점에서 트랜스젠더의 사례로 해석하기도 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 안정복동사강목에서 "왕이 여자로서 남자가 되었으므로 어렸을 때 항상 여자의 놀이를 하였다 하니, 우습도다!"라고 기록하며 혜공왕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보았는데, 이는 당시의 유교적 관점이 반영된 평가로 이해할 수 있다. 혜공왕의 사례는 신라 시대에도 현대의 성소수자 개념과 유사한 정체성이나 행동 양식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 1. 2. 고려 시대

공민왕


고려 목종이 동성애 성향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2]

고려의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고 신돈을 통한 개혁이 실패하자 향락에 빠지게 되었다. 1372년 음력 10월 1일, 공민왕은 자제위라는 특수기구를 설치하고[3], 자신의 동성애 상대로 알려진 대언 김흥경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자제위는 고위 관료의 자제 중 용모가 뛰어난 미소년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주로 왕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으며, 홍륜, 권진, 한안, 노선, 홍관 등이 왕의 총애를 받았다. 고려사에는 자제위가 왕과 함께 여러 음란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왕의 지시로 후궁들과 관계를 맺거나, 왕이 여성 복장을 하고 있다가 홍륜 등과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다.

1374년 음력 9월, 술에 취한 공민왕은 환관 최만생으로부터 익비 한씨가 홍륜과의 관계로 임신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왕이 이 사실을 아는 모든 이를 죽이겠다고 하자, 두려움을 느낀 최만생은 자제위와 공모하여 왕을 시해했다. 다음 날 시해 사실이 밝혀지면서 자제위와 최만생은 처형되었다.

2. 1. 3. 조선 시대

순빈 봉씨조선 문종이 세자 시절 맞이한 두 번째 세자빈으로, 휘빈 김씨가 폐출된 후 1429년 음력 10월 15일 책봉되었다. 그러나 다혈질적인 성격[4] 탓에 문종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고, 이에 세종은 세자의 후궁으로 권씨(현덕왕후), 홍씨, 정씨를 들였다.

이 중 권씨가 경혜공주를 임신하자 위기감을 느낀 봉씨는 거짓 임신 소동을 벌이고 외간 남자를 엿보거나 술에 취해 폭언을 하는 등 문제 행동을 보였다. 휘빈 김씨 폐출 경험이 있던 세종은 처음에는 왕비 소헌왕후 심씨와 함께 타이르는 선에서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봉씨는 빈궁의 궁녀 소쌍과 동침하는 등 동성애 관계를 이어갔고, 이 소문이 퍼져 세종에게 알려졌다. 세종은 이전부터 궁궐 내 시녀 간의 동성애를 인지하고 곤장 70대로 다스린 바 있었기에, 세자빈의 행동에 격분하여 1436년 음력 10월 26일 봉씨를 폐서인시켜 서인으로 강등했다. 같은 해 음력 12월 28일, 문종의 자식을 낳았던 후궁 권씨를 의빈(懿嬪)에 봉하니, 이가 곧 현덕왕후이다.

2. 2.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성소수자의 존재는 점진적으로 사회에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인권 운동 또한 발전해왔다. 초기에는 성전환 수술 사례가 기록되었으나[5][6],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외국의 에이즈 위기 담론이 국내에 유입되고 이것이 남성 동성애자와 연관되면서, 성소수자, 특히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는 동시에 이들의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가시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시기부터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주로 남성 동성애자로 대표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종로이태원 등 특정 지역의 클럽이나 바를 중심으로 하위문화를 형성하며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반면 여성 동성애자들은 여성주의 운동과 연관을 맺으며 활동했지만, 사회적 가시성이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본격적인 성소수자 인권 운동은 1990년대에 시작되었다. 1993년 대한민국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모임인 초동회가 결성되었고, 이후 남성과 여성 그룹으로 분리되어 각각 친구사이끼리끼리로 발전했다.[7] PC 통신의 발달은 온라인 동성애자 모임의 활성화를 가져왔고, 이를 기반으로 1995년부터는 여러 대학 내 동성애자 모임들이 조직되기 시작하며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 설립의 기반을 마련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여성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 사례가 나타나고, 1997년서울퀴어영화제와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등[8] 성소수자 운동이 점차 조직화되고 공개적인 활동으로 나아갔다.

2000년대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있어 중요한 전환기였다. 배우 홍석천커밍아웃(2000년)과 하리수의 데뷔(2001년)는 성소수자 이슈를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1회 퀴어문화축제(2000년)가 개최되었고, 국가인권위원회법(2001년)에 성적 지향이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되는 법적 진전도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성소수자 사이트에 대한 검열 시도와 이에 대한 저항(엑스존 폐쇄 사건) 등 사회적 갈등도 존재했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동성애 차별 조항이 삭제되고 검열이 중단되는 성과가 있었으며, 민주노동당이 정당 최초로 성소수자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대법원이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제한적으로 허가하는 판결을 내렸고, 2007년에는 법무부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했으나 일부 종교계와 재계의 반발로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2008년에는 성소수자 인권 단체 연대체인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이 결성되었고, 2009년에는 대구에서 첫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며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2010년대에는 성소수자의 모습이 대중문화에 등장하고(인생은 아름다워, 2010년), 학생인권조례에 성적 지향이 포함되는 등 제도적 변화가 이어졌다. 2013년 대법원은 성기 성형 없는 트랜스남성의 성별 정정을 허가하고, 동성애를 다룬 영화가 청소년 유해물이 아니라고 판결[9]하는 등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진일보한 입장을 보여주었다. 2015년에는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에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당선되는[10] 등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지는 모습도 보였으나, 한편으로는 TERF와 같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배제 움직임이 나타나며 새로운 갈등 양상이 드러나기도 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 및 사후 명예 회복 소송, 숙명여자대학교 트랜스여성 입학 포기 사건 등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 인권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유행 초기 이태원 클럽 관련 보도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이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 남아있음을 시사한다.

2. 2. 1. 1950년대

1955년 8월 13일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조기철에게 한국 최초의 성전환 수술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9월 30일에는 서울 경전병원 산부인과에서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석천리 출신 백기화(白基花)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되었다.[5][6] 백기화는 내부 생식기는 여성이었지만 남성 호르몬 과다 분비로 남성의 외부 생식기를 갖고 태어났으며, 스스로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수술을 받았다.

2. 2. 2. 1990년대

1993년 대한민국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모임인 초동회가 결성되었다. 하지만 1994년 초동회는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와 여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끼리끼리로 분리되었다.[7]

이 시기 PC 통신 내 동성애자 모임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며, 1995년에는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각 대학을 중심으로 동성애자 모임들을 조직하기 시작하여 여러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여성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커밍아웃을 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첫 서울퀴어영화제와 함께 대규모 성소수자 집회가 열렸으며, 현재의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전신인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이 결성되었다.[8]

2. 2. 3. 2000년대

2000년 배우 홍석천이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본격적으로 높아졌다. 같은 해, 제1회 퀴어문화축제가 대학로에서 열렸다. 2001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성전환 연예인인 하리수가 데뷔하여 성전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성적 지향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포함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되었다.

한편,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인터넷 상의 성소수자 사이트들을 유해 사이트로 지정하고 검열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동성애자 웹 커뮤니티인 엑스존이 자진 폐쇄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논란 끝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서 동성애 차별 조항을 삭제하고 성소수자 사이트에 대한 검열을 중단했다. 같은 해, 민주노동당은 대한민국 정당 중 처음으로 당내에 성소수자위원회를 설치하여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을 보여주었다.

2006년에는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법제정을 위한 공동연대가 발족되었다. 여러 인권 단체들의 노력 끝에 대법원은 성기 성형 수술을 받은 성전환자에 한해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렸다. 2007년 10월, 법무부는 성적 지향을 포함하여 성별, 장애, 나이, 인종, 종교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입법을 예고했다. 그러나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 단체와 재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법안 제정은 결국 무산되었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정치인 최현숙이 종로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같은 해, 여러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이 연대하여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을 결성하고 첫 LGBT 인권포럼을 개최하였다. 2009년에는 서울 외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대구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며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였다.

2. 2. 4. 2010년대

2014년 12월 8일,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성소수자들이 서울시민인권헌장의 폐기를 항의하며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0년 대한민국의 지상파 방송사 SBS는 황금시간대에 처음으로 게이 커플이 등장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약 8개월간 방영하였다. 이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각 지역의 교육청들은 2011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기 시작했다. 서울과 경기도 등 일부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에는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이 포함되어,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도입되었다.

2012년에는 한 성소수자 인권 단체가 LGBT 인권 운동을 위한 현수막을 게시하려 했으나, 서울특별시 마포구청이 이를 불허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해당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마포구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행정을 시정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2013년 대법원트랜스남성이 외부 성기 성형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도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2006년의 유사 판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결정으로 평가된다. 같은 해 대법원은 20대 초반 남성들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 “친구사이?”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분류된 것에 대해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동성애를 유해한 것으로 취급하여 관련 정보의 생산과 유포를 규제하는 것은 성소수자의 인격권, 행복추구권에 속하는 성적 자기결정권 및 알 권리, 표현의 자유,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해당 영화를 청소년 관람불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동성애 자체만으로는 청소년에게 유해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9]

2015년에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과 고려대학교 동아리연합회 부회장에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후보가 당선되는 등,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수용과 지지가 점차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10] 2017년에는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에서 외부 성기 재구성 수술 없이 고환만을 적출한 트랜스여성에게도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2010년대 중후반, 여성주의 커뮤니티 메갈리아가 분열되고 워마드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경향인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트랜스젠더 배제적 급진 페미니스트)가 일부 세력화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에 맞서 트랜스젠더 인권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인권 단체들도 조직되어 활동을 이어갔다.

2. 2. 5. 2020년대

2020년, 군 복무 중 여성화 성전환 수술을 받고 귀국한 변희수 하사가 강제 전역되었다. 변 하사는 성별 정정을 마친 상태에서 인사 소청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같은 해, 한 트랜스여성숙명여자대학교에 합격했으나 일부 TERF 성향 페미니스트 등의 반대로 인해 입학을 포기했다.

또한, 임푸른과 김기홍이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김기홍은 과거 발언 논란으로 인해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확산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2021년 초에는 정치인 김기홍변희수 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말, 법원은 변희수 하사가 제기한 전역 취소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3. 정치

2007년 5월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은 자신이 개신교 장로임을 언급하며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사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동성애는 반대입장"이라고 발언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는 사이버 시위를 통해 항의하기도 했다.[11]

2012년에는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김진표 국회의원이 개신교계와의 만남에서 "앞으로도 동성애·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라고 발언하였다.

2016년에는 새누리당 소속의 이혜훈 전 국회의원이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신년하례회에서 정교분리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성애자가 에이즈의 주된 매개체라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다고 발언하여 비판을 받았다.

한편, 한국의 동성애자들은 스스로를 '이반'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자신들이 다르다는 의미를 담은 은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여러 매체와 일상에서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12]

3. 1. 정당

대한민국 정당 중에서는 민주노동당이 2000년 최초로 성소수자위원회를 설립하여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는 2004년에 헌혈 전 문진에서 에이즈 감염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동성과의 성 접촉 여부’를 묻는 것이 성소수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보였다.[13] 또한 5월 17일 국제 동성애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하여 여기동 당시 성소수자위원장과 곽정숙, 이정희 당선자가 국회 정론관에서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 등과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했고, 통합진보당 내에도 성소수자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분당된 후, 정의당에서는 '정의당 레인보우'라는 이름의 성소수자 당원 모임이 만들어졌고, 현재는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이 외에도 녹색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새민중정당 등 여러 정당들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3. 2. 성소수자 인권단체

1993년 대한민국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모임인 초동회가 게이, 레즈비언들이 함께 모여 결성되었다.[7] 그러나 활동 방향의 차이로 인해 1994년 초동회는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와 여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끼리끼리로 분리되었다.[7] 이 중 끼리끼리는 이후 활동을 이어가다 2005년 레즈비언상담소로 전환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PC 통신을 중심으로 동성애자 모임들이 활성화되었고, 1995년에는 친구사이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각 대학 내에 동성애자 모임들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결성된 대학 성소수자 모임은 1995년 연세대학교의 컴투게더이다. 이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마음001(現 큐이즈), 고려대학교 사람과 사람 등 여러 대학에서 성소수자 모임이 만들어지며 대학 사회 내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여성 동성애자들의 사회적 커밍아웃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1997년에는 첫 서울퀴어영화제와 대규모 성소수자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8] 같은 해 말, 여러 대학 성소수자 모임들이 연합하여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대동연)을 출범시켰다.[8] 이 단체는 1998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전신인 동성애자인권연대로 이름을 변경하며 활동을 확장했다.

2013년을 기준으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레즈비언상담소, 친구사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이 주요 성소수자 인권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여러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연대하는 무지개행동과 같은 연대체도 활동 중이다. 대학 사회에서는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를 비롯하여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여러 대학의 성소수자 모임과 '차별 없는 사회를 실현하는 대학생 네트워크 [결]'과 같은 대학생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참조

[1] 서적 삼국사기·삼국유사 누리미디어
[2] 뉴스 토론이 있는 인터넷신문 - 데일리안 http://www.dailian.c[...]
[3] 역사서 고려사
[4] 역사서 조선왕조실록
[5] 뉴스 "男性의 受難時代? 또 한 名이 女子로 轉換" 경향신문 1955-09-02
[6] 뉴스 "壇上壇下" 동아일보 1955-09-03
[7] 웹인용 초동회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http://kscrc.org/bbs[...]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2013-12-03
[8] 웹인용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 동성애자 단체) http://kscrc.org/bbs[...]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2013-12-03
[9] 판례 대법원 2013.11.14. 선고 2011두11266
[10] 뉴스 30여 개 대학에 성소수자 동아리, 예비 신입생도 가입 문의 http://sunday.joins.[...] 중앙선데이
[11] 웹인용 이명박, 동성애 반대 발언 파문 관련기사 https://web.archive.[...] 2016-07-17
[12] 웹인용 동성애자를 '이반'이라 부르는 의미에 관련된 동성애자 단체의 공동 성명서 http://www.cyberhuma[...] 2016-07-17
[13] 뉴스 민주노동당 성적소수자 위원회 관련기사 http://www.ohmynews.[...]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