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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테무르 토고간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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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군 테무르 토고간 칸은 1399년 엘베그 니굴세그치 칸 사후 몽골 대칸이 된 인물이다. 그는 1377년에 태어났으며, 출신에 대한 여러 설이 존재한다. 재위 기간 동안 오이라트 세력과의 갈등을 겪었으며, 명나라와 외교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402년 굴리치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굴리치는 이후 외륵 테무르 칸을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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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테무르 토고간 칸
기본 정보
칭호카간
몽골의 카간북원의 카간
이름토고칸 칸
몽골어ᠲᠣᠭᠣᠭᠠᠨ ᠬᠠᠭᠠᠨ (Toqoγan qaγan)
중국어托歡汗 (Tuō huān hán)
묘호공태무르 (Гүнтөмөр/Kün temür)
몽골어ᠭᠦᠩ ᠲᠡᠮᠦᠷ (Güng temür)
중국어坤帖木兒 (Kūn tiē mù ér)
다른 이름토곤 (Toγoγan)
쾨케 테무르 (Köke temür)
통치
몽골의 카간 통치1399년 – 1402년
즉위1400년
이전 통치자엘베그 니굴레스치 칸
후임 통치자외르그 테무르 칸
가문
가문보르지긴 가문
왕조북원
아버지엘베그 니굴레스치 칸 (?)
개인 정보
출생1377년
사망1402년
자녀토고칸 칸([http://sitemaker.umich.edu/mladjov/files/chinggisidspart1.pdf Chinggisid rulers (part 1)])

2. 생애

군 테무르의 출신에 대해서는 《몽골 비사》를 비롯한 몽골 연대기에서는 선대 엘베그 칸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7] 티무르 왕조에서 편찬된 페르시아어 사료는 아릭부케 가문의 인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몽골 비사》가 전하는 군 테무르 전후의 계보는 신빙성이 낮기 때문에, 군 테무르가 엘베그의 아들임을 의문시하는 설도 있다.[8] 많은 학자들은 군 테무르를 아릭부케 가문의 후손으로 보고 있다.

몽골 연대기에 따르면, 1399년 (묘년)에 선대 칸인 엘베그가 살해된 후, 칸위에 즉위했다고 한다.[9] 1400년 (건문 2년)에는 연왕 주체(후의 영락제)가 정난의 변 와중에 "달단 가한 쿤 테무르(坤帖木児)"와 "오이라트(와라) 왕 몽케 테무르(猛哥帖木児)"에게 사자를 파견했다.[10] 오이라트 왕 몽케 테무르의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몽골 연대기에서는 선대 엘베그 칸을 시해한 오게치 하쉬하라는 설이 있다.[8] 1402년 (오년)에 군 테무르는 사망했는데, 몽골 연대기에는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명나라의 기록에 따르면 같은 해에 귀력적(올크 테무르 칸)이 칸에 즉위했다.[11]

2. 1. 어린 시절

군 테무르는 1377년에 태어났으며, 《몽골원류》에 의하면 전임 대칸이었던 엘베그 니굴세그치 칸의 장남, 둘째 아들, 혹은 다른 아들이었고, 아리크 부케의 후손이었다. 하지만 《돌궐계보》에 의하면 그는 칭기즈 칸의 또 다른 자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쿠빌라이 칸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고, 아리크 부카의 또 다른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아버지 엘베그 칸도 이수데르 조리그투 칸의 아들이라는 설, 쿠빌라이 칸의 후손 설 및 아리크 부케의 후손 설 등이 있어, 군 테무르의 가계는 불확실하다. 페르시아어로 된 또다른 몽골 사서《전기지우》에 의하면 그는 칭기즈 칸의 또다른 자손이라는 설도 있다. 《몽골비사》에는 그와 전임 칸, 후임 칸의 정확한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부냐시리 울제이테무르 칸의 형이라는 설과 동생이라는 설도 있다. 1404년 티무르 제국사마르칸트를 방문했던 카스티야 왕국의 사절 루이 곤살레스 데 클라비호에 의하면, 군 테무르는 엘베그 니굴세그치 칸의 막내 동생으로 엘베그 칸에 저항했었다고 한다. 티무르 제국페르시아계 작가 무함마드 크완다미르의 책 하비브 알 시야르에는 그가 칭기즈 칸의 또다른 후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티무르 제국 계열의 다른 문헌에 의하면 그는 아리크 부카 가문의 또다른 후손이라 한다.

엥케 칸과 엘베그 니굴세그치 칸을 동일인물로 오해했던 문헌 항하지류에 의하면, 그는 엔케 엘베그의 아들이라고 한다.

군 테무르에서 '군'은 몽골어로 깊고, 지적인, 강한이라는 뜻이고, '테무르'는 철을 의미한다. 또는 중세 몽골어로 두꺼운 철, 또는 지혜, 지적인, 강한 이를 의미한다. 그의 초기 생애와 행적에 대한 것은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다. 몽골어 존호인 토고간 칸 혹은 황금사에 의하면 타환 카안(托歡 可汗, Тогоон хаан)으로 표기되는데, 토곤은 몽골어로 냄비, 가마를 뜻한다. 몽골 황금사에 의하면 다른 이름도 전하는데, 투란테무르라 한다.

2. 2. 북원의 대칸 즉위

1399년 엘베그 니굴세그치 칸이 여인 문제로 사이가 틀어진 오이라트에 의해 암살되자 그 뒤를 이었다.[1] 명나라의 전성기를 연 성조 영락제는 서몽골 오이라트의 수장 우게치 카스카몽골의 새로운 통치자로 승인했다. 오이라트의 우게치 카스카와 바툴라 칭상은 자신들을 공동 통치자, 오이라트와 몽골의 칸이라고 선언했다. 몽골의 지도자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군 테무르를 대칸으로 추대했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원수인 우게치 카스카를 몰아내고, 동몽골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아 카라코룸으로 입성, 정권을 차지했다. 일설에는 아수드 출신 아룩타이가 우게치 카사하를 실각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몽골 서부의 오이라트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기에, 군 테무르의 영향력은 몽골 중부와 동부에 한정되었다.

한편 우게치 카스카가 엘베그 니굴세그치 칸을 시해하고, 이듬해 군 테무르를 대칸으로 옹립했다는 설도 있다. 알탄 톱치(Алтан товч)에 의하면 1399년 그가 엘베그 니굴세그치 칸을 살해하고 몽골의 대칸으로 즉위했다고 한다. 몽골원류에 의하면 1400년에 즉위했다는 설도 있다.

1400년 2월 18일 명나라연왕 주체는 조카인 혜종 건문제를 상대로 정난의 변을 일으키기 직전, 몽골의 대칸인 군 테무르와 오이라트의 수장 몽케 테무르에게 효유하는 사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연왕 주체가 군 테무르 토고간 칸에게 보낸 서신의 정확한 내용은 《명태종실록》에 기록되지 않았다.

몽골 연대기에 따르면, 묘년(1399년)에 선대 칸인 엘베그가 살해된 후, 칸위에 즉위했다고 한다.[9]

1400년 (건문 2년)에는 연왕 주체(후의 영락제)가 정난의 변 와중에 "달단 가한 쿤 테무르(坤帖木児)"와 "오이라트(와라) 왕 몽케 테무르(猛哥帖木児)"에게 사자를 파견했다.[10]

2. 3. 오이라트와의 갈등, 피살

토고간 칸의 통치 기간 동안 서몽골의 오이라트와 동몽골의 북원 사이의 분열이 심화되었다. 토고간 칸은 자신의 권위를 굳히고자, 명나라와 동맹을 맺었던 카라델 칸국을 공격했다.[15] 토고간 칸은 카라델 칸국의 칸 엥케 테무르를 사로잡아 살해했다.[16]

명나라의 연왕 주체는 오이라트우게치 카스하, 바툴라 칭상 등을 몽골의 지도자로 승인하였다. 군 테무르는 명나라에 여러 번 사절을 보내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성과 없이 되돌아왔다.

1402년 봄, 토고간 칸은 울루그 테무르 칸 굴리치의 공격을 받았다. 이어 울루그 테무르 칸 굴리치, 오이라트의 바툴라(마흐무드), 아수드(알란, 아스, 아스트)의 아룩타이 등과 싸우다 패배했고, 결국 굴리치의 칼에 맞아 시해당했다. 명나라의 기록에 의하면 도쿠즈(脫古思)라는 인물에게 암살되었다 한다. 정확한 사망 시점은 전하지 않으나 명사(明史) 권327에 의하면 1402년 봄이었다 한다.

3. 사후

1402년 사망 당시 그의 나이가 28세였다는 설도 있다.

울루그 테무르 칸 굴리치는 토고간 칸을 시해하고 몽골의 대칸이 된 뒤, 북원이라는 국호와 황제 칭호를 폐지했다 한다.[18] 그러나 이후로도 에센 타이시, 다얀 카안 등은 스스로를 원나라의 카안을 자처하여 다소 이견이 있다. 토고간 칸 군 테무르의 시호, 묘호 추서 연도는 불명이며, 장지는 미상이다.

청나라에서 음역한 문헌에서는 그의 칭호는 토고간 카안(脫古罕可汗)으로 나타난다.

쿤 테무르 칸의 사후, 올크 테무르 칸(귀력적)이 「대원」에서 「타타르(韃靼)」로 국명을 변경했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몽골 측에서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몽골이라고 자칭하고 있으며, 에센 칸이나 다얀 칸은 「대원의 칸」을 자칭하고[13] 있어서, 『명사』의 이러한 기술은 편찬자에 의한 창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14]

4. 명칭

『명사』 권327 열전215 외국8 「타타르」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군 테무르 칸 사후, 올크 테무르 칸(귀력적)이 '대원'에서 '타타르(韃靼)'로 국명을 변경했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몽골 측에서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몽골이라고 자칭했으며, 에센 칸이나 다얀 칸은 '대원의 칸'을 자칭하고[13] 있어서, 『명사』의 이러한 기술은 편찬자에 의한 창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14]

참조

[1] PDF Chinggisid rulers (part 1) http://sitemaker.umi[...]
[2] 문서 Tsagaan Sechen-Erdenyin Tobchi
[3] 서적 Altan Tobchi
[4] 간행물 15世紀中葉前的北元可汗世系及政局 (Genealogy and political situation of the Northern Yuan Khans of the mid-15th century) 2000
[5]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Inner Asia: The Chinggisid Age 2009-09-28
[6] 문서 生年は『蒙古源流』による。
[7] 문서 『『恒河の流れ』はエンケ・エルベク([[エンケ・ハーン]]とエルベク・ハーンの事績が混同されて一人の人物とされた)の子とする。
[8] 문서 Buyandelger2000,p132-136
[9] 문서 『黄金史網』に拠る。『蒙古源流』は誤って即位年を翌年のこととする(岡田2010、228-234頁)。
[10] 문서 『明太宗実録』建文二年二月癸丑「上遣書諭韃靼可汗坤帖木児並諭瓦剌王猛哥帖木児等、暁以禍福」
[11] 문서 クン・テムルが亡くなりオルク・テムル・ハーンが即位するに至った経緯については諸説あり、岡田英弘はクン・テムル単独で、あるいはオルク・テムルの傀儡として[[オルジェイ・テムル]]と敵対していたと推測する(岡田2010、271頁)。一方、Buyandelgerはこの頃オイラト内部で親クビライ家派のチョロース部と親アリクブケ家派のケレヌート部の対立があったと想定し、チョロース部の[[マフムード (オイラト)|バトラ丞相]]が敵対派閥たるクン・テムル・ハーンとオゲチ・ハシハを殺害したのだと推測している(Buyandelger2000,p132-136)
[12] 문서 訳文は羽田1973,10-11頁より引用
[13] 문서 エセン・ハーンとダヤン・ハーンはそれぞれ明朝に対して「大元天聖大可汗」、「大元大可汗」と自称したと伝えられている。
[14] 문서 森川2008、66-67頁
[15]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Inner Asia: The Chinggisid Age 2009-09-28
[16]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Inner Asia: The Chinggisid Age 2009-09-28
[17] 문서 《明實錄‧太宗文皇帝實錄‧卷八》, "辛亥,韃靼可汗遣使來輸款"
[18] 문서 "而敵自脫古思帖木兒後,部帥紛拏,五傳至坤帖木兒,咸被弒,不復知帝號。有鬼力赤者篡立,稱可汗,去國號,遂稱韃靼云", 《明史‧ 卷三百二十七》列傳第二百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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