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경 (조선)
1. 개요
김흥경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1699년 문과에 급제하여 설서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사서, 정언 등 삼사의 청요직을 거쳐 대사간, 도승지, 충청도 관찰사, 이조 참판 등을 역임했다. 경종과 영조 시대에 걸쳐 활동하며, 영조 즉위 후에는 도승지, 예조 판서, 이조 판서, 우참찬 등을 지냈다. 1728년 이인좌의 난 진압 후 분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이후 우의정과 영의정을 거쳐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를 역임했다. 아들 김한신이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혼인하여 왕실과 사돈 관계를 맺었으며, 그의 6촌 김선경의 손녀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되면서 이중 인척 관계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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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7년 출생 -
자크 카시니
자크 카시니는 프랑스의 천문학자이자 지도 제작자로, 파리 천문대에서 활동하며 지구 형상 연구, 프랑스 지도 제작, 탄도 진자 연구, 토성 위성 표 제작 등 천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
1677년 출생 -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는 스웨덴의 지원으로 폴란드 왕이 되었으나 폴타바 전투 패배 후 왕위를 잃었고, 이후 프랑스 루이 15세의 장인이 되어 잠시 왕위를 되찾았지만 다시 잃은 후 로렌 공작으로서 예술과 문화를 장려하며 계몽 군주로 활동했다. -
1750년 사망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바로크 시대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로, 뛰어난 대위법 기법과 독창적인 화성으로 서양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다양한 장르에 걸쳐 10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긴 거장이다. -
1750년 사망 -
주앙 5세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5세는 브라질의 금과 다이아몬드를 바탕으로 절대 왕정을 확립하고 바로크 건축 부흥을 이끌었으며, 스페인과의 조약으로 브라질 영토를 확장했으나 말년에는 병고에 시달렸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1699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설서로 임명되고 10년 동안 사서·정언·부수찬·수찬·부교리·사간·집의·응교 등 삼사의 청요직을 지냈다. 이후 승정원 승지, 사간원 대사간 등을 지냈다.
1712년 대사간을 역임하고 도승지, 충청도 관찰사, 경기도 관찰사, 사헌부 대사헌, 이조 참판 등을 지냈다. 1721년에는 대사성으로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다. 경종 때 한성부 우윤을 지냈다. 신임사화 당시 신병을 이유로 사직했다가, 예조 참판, 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한성부 우윤에 임명되었으나 민진원을 구원하다 파직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승정원 도승지가 되었다. 1725년 예조 참판, 호조 판서, 대사헌을 거쳐 음력 4월에 우참찬으로 동지사가 되어 청에 다녀왔다. 그 뒤 예조판서, 이조 판서 겸 내국 제조(內局提調)를 거쳐 음력 7월 판의금이 됐다.
1727년 한성부 판윤에 임명되었으나 신병으로 사퇴했다. 같은 해 음력 4월 좌참찬에 임명되었으나,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했다가 해임되었다. 곧 복직되어 우참찬, 판의금, 좌참찬 등을 역임했다. 1728년 다시 도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직했다가, 다시 우참찬, 판의금 등을 역임했다. 1728년 이인좌의 난 진압 직후 분무원종공신 1등(奮武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1731년 음력 11월 다시 이조판서로 임명되었으나 이듬해까지 신병을 이유로 조정에 나오지 않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 황해감사(黃海監司)로 전출되었다. 다시 기용되어 우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 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치사(致仕)한 뒤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아들 김한신이 영조의 딸 화순옹주의 부마가 되어 영조와 사돈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6촌인 김선경의 손녀이자 김한구의 딸이 뒤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되면서, 왕실과 이중 인척간이 되었다.
2.1. 초기 관직 생활 (1699년 ~ 1720년)
1699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설서로 임명되고 10년 동안 사서·정언·부수찬·수찬·부교리·사간·집의·응교 등 삼사의 청요직을 지냈다. 이후 승정원 승지, 사간원 대사간 등을 지냈다.
2.2. 경종 대의 활동 (1721년 ~ 1724년)
1712년 대사간을 역임하고 도승지, 충청도 관찰사, 경기도 관찰사, 사헌부 대사헌, 이조 참판 등을 지냈다. 1721년에는 대사성으로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다. 경종 때 한성부 우윤을 지냈다.
신임사화 당시 신병을 이유로 사직했다가, 예조 참판, 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한성부 우윤에 임명되었으나 민진원을 구원하다 파직되었다.
2.3. 영조 대의 활동과 탕평책 (1724년 ~ 1750년)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승정원 도승지가 되었다. 1725년 예조 참판, 호조 판서, 대사헌을 거쳐 음력 4월에 우참찬으로 동지사가 되어 청에 다녀왔다. 그 뒤 예조판서, 이조 판서 겸 내국 제조(內局提調)를 거쳐 음력 7월 판의금이 됐다.
1727년 한성부 판윤에 임명되었으나 신병으로 사퇴했다. 같은 해 음력 4월 좌참찬에 임명되었으나,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했다가 해임되었다. 곧 복직되어 우참찬, 판의금, 좌참찬 등을 역임했다. 1728년 다시 도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직했다가, 다시 우참찬, 판의금 등을 역임했다. 1728년 이인좌의 난 진압 직후 분무원종공신 1등(奮武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1731년 음력 11월 다시 이조판서로 임명되었으나 이듬해까지 신병을 이유로 조정에 나오지 않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 황해감사(黃海監司)로 전출되었다. 다시 기용되어 우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3. 가족 관계
* 조부 : 김세진(金世珍)이다.
* 부 : 김두성(金斗星)이다.
* 모 : 광주 김씨로 김영후의 딸이다.
* 부인 : 창원 황씨로 평시서령 황하영(黃夏英)의 딸이다.
* 장남 : 김한정(金漢楨)이다.
* 차남 : 김한좌(金漢佐)는 출계하였다.
* 삼남 : 김한우(金漢佑)이다.
* 사남 : 월성위 김한신(金漢藎)은 영조의 부마이다.
* 자부 : 화순옹주이다.
* 손자 : 김이주(金頤柱)는 양자이다.
* 사위 : 전주 이씨 이술지이다.
* 사위 : 청송 심씨 심규(沈?)이다.
* 사돈 : 조선 영조이다.
* 사돈 : 이건명(李健命)은 전주 이씨이다.
* 사돈 : 심택현(沈宅賢)은 청송 심씨이다.
4. 평가
5. 기타
5.1. 이중 인척 관계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은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혼인하여 왕실과 사돈 관계를 맺었다. 6촌 김선경의 손녀이자 김한구의 딸이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되면서, 왕실과 이중 인척 관계를 형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