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왕비 막시마
1. 개요
네덜란드 왕비 막시마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197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금융 분야에서 일하다가 1999년 네덜란드의 빌럼알렉산더르 왕세자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과정에서 아버지의 과거가 논란이 되었지만, 2002년 결혼에 성공하여 세 딸을 낳았다. 2013년 빌럼알렉산더르가 즉위하면서 네덜란드 왕비가 되었으며, 이민자 통합, 금융 포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 직위 | 네덜란드 왕비 |
|---|---|
| 재위 기간 | 2013년 4월 30일 – 현재 |
| 출생명 | 막시마 소레기에타 |
| 출생일 | 1971년 5월 17일 |
| 출생지 |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
| 배우자 | 빌럼알렉산더르 (2002년 2월 2일 결혼) |
| 자녀 | 카타리나아말리아 알렉시아 아리아너 |
| 아버지 | 호르헤 소레기에타 |
| 어머니 | 마리아 델 카르멘 세루티 |
| 종교 | 가톨릭 교회 |
| 네덜란드어 | Máxima |
|---|---|
| 스페인어 | Máxima Zorreguieta Cerruti |
| 네덜란드어 | Máxima Prinses der Nederlanden, Prinses van Oranje-Nassau, Mevrouw van Amsbe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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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정보 | 오라녜나사우 왕가 네덜란드 왕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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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계 아르헨티나인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시인, 수필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소설,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으며, 신화, 수학, 신학 요소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풍으로 마술적 사실주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네덜란드의 왕비 -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는 나폴레옹 1세의 의붓딸로, 네덜란드 왕비가 되었으며, 예술적 재능으로 작곡 활동을 하고, 아들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 3세가 되었다. -
네덜란드의 왕비 -
에마 추 발데크운트피르몬트
발데크피르몬트 후작의 딸 에마 추 발데크운트피르몬트는 네덜란드 빌럼 3세의 왕비이자 빌헬미나 여왕의 섭정, 국모로서, 국왕 사후 섭정을 수행하며 사회 활동을 펼치다 헤이그에서 사망하여 델프트에 안장되었다. -
아르헨티나계 네덜란드인 -
오라녜 여공 카타리나아말리아
2003년 빌럼알렉산더르 국왕과 막시마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오라녜 여공 카타리나아말리아는 네덜란드의 공주이자 왕위 계승 서열 1위이며, 국무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암스테르담 대학교에서 철학, 정치, 경제학을 전공하며 사회적 관심을 받기도 한다. -
아르헨티나계 네덜란드인 -
네덜란드 공주 알렉시아
2005년생 네덜란드 공주 알렉시아는 빌럼알렉산더 국왕과 막시마 왕비의 둘째 딸이자 네덜란드 왕위 계승 서열 2위이며, 여러 학교를 거쳐 현재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공부하며 네덜란드어, 영어, 스페인어에 능통하고 하키, 승마, 피아노 등 다방면에 재능을 보인다.
2. 유년 시절과 교육
막시마 소레기에타는 1971년 5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르헤 소레기에타(1928–2017)이고, 어머니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인 María del Carmen Cerruti Carricart스페인어(1944년생)이다. 아버지 호르헤 소레기에타는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장군의 군사 독재 정권(1976–1983) 시절 농업부 장관을 지냈다. 막시마에게는 남동생 두 명과 여동생 한 명(사망)이 있으며, 아버지의 전처인 마르타 로페스 길(Marta López Gil)에게서 태어난 이복 언니 세 명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부계 증조모인 막시마 보노리노 곤살레스(Máxima Bonorino González, 1874–1965)에게서 따왔다. 부계는 바스크 혈통이며, 모계는 이탈리아 및 바스크 혈통이다. 소레기에타 가문은 대대로 지주, 전문직 종사자, 지역 정치인 등을 배출했으며, 조상 중 한 명인 호세 안토니오 소레기에타 이 오야르사발 갬보아 이 사가스투메(José Antonio Sorreguieta y Oyarzábal Gamboa y Sagastume)는 1790년경 바스크 지방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외가 쪽 증조부인 도밍고 카리카르트 에차르트(Domingo Carricart Etchart, 1885–1953) 역시 지주이자 정치인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립 은행 이사, 아돌포 곤살레스 차베스 초대 시장, 트레스 아로요스 시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아버지 쪽으로는 포르투갈의 아폰수 3세의 후손으로 포르투갈 혈통도 지니고 있다.
막시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콜레타 지역에서 자랐으며, 올리보스에 위치한 이중 언어 학교인 노스랜드 학교를 다녔다. 1995년 아르헨티나 가톨릭대학교(UCA)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이 대학의 총장은 훗날 교황 프란치스코가 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였다. 이후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여 학업을 마쳤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메르카도 아비에르토 일렉트로니코(Mercado Abierto Electrónico S.A.)에서 근무했으며, 1992년부터 1995년까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스턴 증권(Boston Securities S.A.) 판매 부서에서 금융 시장용 소프트웨어 연구를 담당했다. 졸업 후에는 국제 금융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1996년 7월부터 1998년 2월까지 뉴욕의 HSBC 제임스 카펠(HSBC James Capel Inc.)에서 근무하며 라틴 아메리카 기관 판매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1999년 7월까지 뉴욕의 드레스드너 클라인보트 벤슨(Dresdner Kleinwort Benson)에서 신흥 시장 부문 부사장으로 일했다. 2000년 5월부터 2001년 3월까지는 벨기에 브뤼셀의 도이체 방크에서 근무했다. 또한 어린이와 성인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고등학생과 신입생에게 수학을 가르친 경험도 있다.
3. 빌럼알렉산더르 왕세자와의 만남과 결혼
막시마는 199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세비야 박람회 기간 중 당시 오라녜 공이었던 빌럼알렉산더르를 처음 만났다. 인터뷰에 따르면, 빌럼알렉산더르가 자신을 단순히 '알렉산더'라고만 소개했기 때문에 막시마는 그가 왕족임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후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여 교제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여 결혼 계획이 알려지자, 네덜란드 사회는 큰 논란에 휩싸였다. 이는 막시마가 아르헨티나 평민 출신의 가톨릭 신자라는 점 외에도, 그녀의 아버지 호르헤 소레기에타가 과거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 정권(국가 재건 과정, 1976-1983) 시절 농업부 장관을 역임한 사실 때문이었다.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장군 치하의 이 정권은 소위 더러운 전쟁으로 알려진 인권 탄압으로 비판받았고, 이러한 배경은 네덜란드 헌법에 따라 왕실 결혼 승인 권한을 가진 네덜란드 국회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일부에서는 독재 정권 각료의 딸을 미래의 왕비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빌럼알렉산더르는 막시마와의 결혼을 위해 영국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기도 했으며, 결국 막시마의 아버지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졌다.
3.1. 결혼 과정
막시마는 1999년 4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세비야 박람회 기간 중 당시 오라녜 공이었던 빌럼알렉산더르를 처음 만났다. 인터뷰에서 막시마는 빌럼알렉산더르가 자신을 "알렉산더"라고만 소개했기 때문에 그가 왕족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그가 오라녜 공이자 네덜란드 왕위 계승자임을 밝혔을 때 농담으로 여겼다고 한다. 두 사람은 2주 후 막시마가 근무하던 뉴욕에서 재회하여 관계를 발전시켰다.
두 사람의 관계와 결혼 계획은 네덜란드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막시마의 아버지 호르헤 소레기에타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장군 치하의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 정권(국가 재건 과정, 1976–1983)에서 농업부 장관을 역임한 경력 때문이었다. 그의 장관 재임 기간(1979-1981)은 약 3만 명의 시민이 살해되거나 강제 실종된 이른바 더러운 전쟁(1974–1982)의 후반부에 해당한다. 네덜란드 헌법에 따라 왕실 구성원의 결혼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네덜란드 국회는 독재 정권 각료의 딸인 막시마를 왕세자비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의회의 요청으로 라틴 아메리카 연구를 전공한 네덜란드 교수 미히엘 보드(Michiel Baud)가 소레기에타의 독재 정권 시절 행적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보드 교수는 소레기에타가 직접적인 잔학 행위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장관으로서 당시 자행된 인권 침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막시마의 아버지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선에서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졌다. 한편, 빌럼알렉산더르는 아르헨티나 평민 출신의 가톨릭 신자인 막시마와의 결혼을 위해 영국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2001년 3월 30일, 빌럼알렉산더르와 막시마는 약혼을 공식 발표했다. 막시마는 네덜란드 국민들에게 생방송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당시에는 기본적인 회화 수준이었지만 네덜란드어로 직접 인사를 전했다. 같은 해 5월 17일, 막시마는 왕실 칙령에 따라 네덜란드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결혼 전에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은 일반적인 절차(최소 5년 거주 요건)에서 벗어나는 특별 대우였기에 일부 논란이 있었으나, 왕실의 일원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그녀는 현재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이중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2001년 말, 두 사람의 약혼은 빌럼알렉산더르의 왕위 계승권 유지를 위해 필요한 국회의 공식 승인을 얻었다. 결혼을 며칠 앞두고 베아트릭스 여왕은 막시마에게 네덜란드 공주(Prinses der Nederlanden) 칭호와 함께 Koninklijke Hoogheid네덜란드어(전하) 경칭을 부여했다.
막시마는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며 개신교(네덜란드 개혁교회)로 개종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는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으로부터 80년 전쟁을 통해 독립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가톨릭 신자가 군주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관례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시마의 가톨릭 신앙은 유지되었으며, 대신 그녀는 빌럼알렉산더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을 개신교 신자로 양육하는 데 동의했다. 과거 베아트릭스 여왕의 여동생들인 이레네 공주와 크리스티나 공주는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면서 의회의 승인을 얻지 못해 왕위 계승권을 상실한 사례가 있었다.
2002년 2월 2일, 막시마와 빌럼알렉산더르는 암스테르담의 옛 증권거래소 건물인 베르스 판 베를라게에서 민사 결혼식을 올렸고, 이어서 인근의 노이커르크(Nieuwe Kerk, "새 교회")에서 종교 예식을 통해 결혼했다. 막시마의 아버지 호르헤 소레기에타는 과거 경력 논란으로 인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어머니 마리아 델 카르멘 세루티 역시 남편 없이 홀로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혼식에는 스페인 소피아 왕비, 벨기에 알베르 2세 국왕, 영국의 찰스 왕세자,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 일본의 나루히토 왕세자 등 여러 국가의 왕족들과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등이 하객으로 참석하여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했다.
4. 네덜란드 왕실에서의 활동
막시마 왕비는 네덜란드 사회 내 이민자의 사회 통합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며, 이민자들이 네덜란드어를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녀는 네덜란드를 대표하여 국내외의 다양한 회의에 참석하며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금융 서비스 접근성을 높여 빈곤을 완화하고 경제적 기회를 확대하는 '포용적 금융'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다. 2009년부터 국제 연합(UN) 사무총장 특별 고문(UNSGSA)으로 활동하며, G20 금융 포용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GPFI)의 명예 후원자로서 국제적인 협력을 이끌고 있다.
또한, 막시마 왕비는 LGBT 인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몇 안 되는 왕족 중 한 명으로, 2008년 관련 컨퍼런스에 참석하여 주목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사회 복지, 교육, 기업가 정신 함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네덜란드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4.1. 왕세자빈 시절
2001년 3월 30일, 막시마는 빌럼알렉산더르 당시 왕세자와 정식으로 약혼했으며,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유창한 네덜란드어 실력을 선보였다.
2002년 2월 2일, 암스테르담의 뵈르스 판 베를라헤에서 민사 결혼식을 올렸고, 이어 암스테르담 신교회에서 종교 결혼식을 거행했다. 결혼식에는 막시마의 아버지 호르헤 소레기에타가 과거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군사독재 정권 시절 농업부 장관을 지낸 경력 때문에 네덜란드 정부의 결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으며, 어머니 마리아 역시 남편 없이 혼자 참석할 수 없다며 불참했다. 결혼식 중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Adiós Nonino스페인어, "안녕 아버지")가 연주될 때 막시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결혼 전인 2002년 1월 25일 발표된 칙령에 따라, 막시마 소레기에타는 결혼과 동시에 네덜란드 공주와 오라녜-나사우 공주 작위를 받았으며, 전하(Royal Highness)의 존칭이 공식적으로 부여되었다. 또한 "반 암스베르크 여사(Mrs. van Amsberg)"라는 칭호도 받았다. 같은 날 발표된 또 다른 칙령으로 개인 문장과 개인 기(旗)를 받았다.
왕세자빈 시절 막시마와 빌럼알렉산더르 사이에서는 세 명의 딸이 태어났다. 첫째는 카타리나아말리아 공주(현 오라녜 여공, 2003년 출생), 둘째는 알렉시아 공주(2005년 출생), 셋째는 아리아네 공주(2007년 출생)이다.
막시마는 왕세자빈으로서 네덜란드 사회로의 이민자 사회 통합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는 여성 이민자들의 노동력 참여 증진 방안을 모색하는 특별 의회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민자들이 네덜란드 사회에 완전히 참여하기 위해 네덜란드어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녀 자신도 스페인어(모국어)와 영어 외에 네덜란드어를 세 번째 언어로 구사하며, 프랑스어로도 대화가 가능하다. 2003년 7월부터 2005년까지는 소수 민족 여성 참여 위원회(PaVEM)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10월 20일에는 네덜란드의 최고 자문 기관이자 행정 법원인 네덜란드 국무원(Raad van State)의 구성원이 되었다. 또한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의 다양성 및 통합 관리 의장단 이사회, 오렌지 기금(Oranje Fonds)의 후원자, 국제 사회 연구소 및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프린스 클라우스 개발 및 형평성 의장단 이사회 의장 등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2005년, 과거 은행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국제 연합(UN)이 지정한 마이크로크레딧의 해(International Year of Microcredit) 자문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금융 포용 문제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2007년, 정부 정책 과학 위원회(WRR) 연설에서 네덜란드에 온 지 7년 동안 "'그' 네덜란드 정체성(de Nederlandse identiteit)은 찾지 못했다"고 발언하여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그녀는 네덜란드가 매우 다양하여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으나, 이 발언은 일부로부터 네덜란드 고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막시마는 LGBT 인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몇 안 되는 왕족 중 한 명이다. 2008년 3월 5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LGBT 권리 컨퍼런스에 참석했는데, 이는 네덜란드 왕실 구성원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왕실 대변인은 "공주는 네덜란드 내 모든 그룹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 것에 찬동한다"고 밝혔다.
2009년 9월, 당시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막시마를 빈곤 완화, 식량 안보, 교육 등 개발 목표 달성을 위한 포용적 금융 시스템의 중요성을 알리는 '포용적 금융 개발을 위한 UN 사무총장 특별 고문'(UNSGSA)으로 임명했다. 이 역할을 통해 그녀는 저축, 보험, 신용 등 공식적인 금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확대가 빈곤층의 의료비 부담 완화 및 식량 가격 상승과 같은 외부 충격에 대한 보호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국제 사회의 행동을 촉구했다.
2010년부터는 금융 교육과 건전한 자금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머니 와이즈 플랫폼'(Platform Wijzer in geldzaken)의 명예 의장을 맡아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금융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2011년 6월부터는 G20 금융 포용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GPFI)의 명예 후원자가 되어 G20 국가들과 협력하여 금융 포용 증진 활동을 지원했다. 같은 해, 학교에서의 음악 교육 기회 확대를 목표로 하는 '학교 음악 대사 플랫폼'(Méér Muziek in de Klas)의 명예 의장과 네덜란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기업 및 금융 위원회'(Nederlandse Comité voor Ondernemerschap en Financiering) 위원직도 맡아 활동 범위를 넓혔다.
2011년 5월 13일, 네덜란드 의회는 빌럼알렉산더르 왕세자가 즉위할 경우 막시마가 국왕 배우자(Queen Consort)가 될 것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이는 그녀의 미래 칭호와 역할에 대한 논의 끝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2013년 1월 28일, 베아트릭스 여왕이 4월 30일에 아들 빌럼알렉산더르를 위해 퇴위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막시마의 왕세자빈 시절은 마무리되었다.
4.2. 왕비 즉위 후
2013년 4월 30일, 베아트릭스 여왕이 퇴위하고 남편 빌럼알렉산더르가 네덜란드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막시마는 네덜란드 왕비가 되었다. 이는 빌럼 3세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엠마 왕비 이후 123년 만의 네덜란드 왕비이며, 평민 출신이자 유럽 밖에서 태어난 최초의 네덜란드 왕비이다.
왕비 즉위 후에도 막시마는 다양한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네덜란드 사회로의 이민자 통합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민자들이 네덜란드어를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녀는 네덜란드 국무원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남편과 함께 네덜란드 사회의 사회 복지와 결속 증진을 위한 오렌지 기금의 후원자를 맡고 있다. 또한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개발 및 형평성을 위한 프린스 클라우스 의장단 이사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는 머니 와이즈 플랫폼의 명예 의장을 맡아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국민들의 재정 교육과 건전한 자금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으며, 플랫폼의 특별 고문으로서 재정적 인식과 회복력 증진 방안을 논의한다. 2015년 6월 10일부터는 학교 음악 대사 플랫폼의 명예 의장으로서 가능한 많은 아이들이 음악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기업 및 금융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네덜란드 내 소규모 기업에 대한 코칭과 신용 제공을 통해 자금 조달 기회를 확대하고, 특히 여성 기업가의 활동과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2022년 3월부터는 정신 건강 플랫폼인 "MIND Us"의 명예 회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2009년 9월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에 의해 임명된 유엔 사무총장 포용적 개발 금융 특별 옹호관(UNSGSA)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 역할을 통해 빈곤 완화, 식량 안보, 교육 등 경제 및 개발 목표 달성을 위한 포용적 금융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히 금융 서비스 접근성 확대가 의료비 부담이나 식량 가격 상승으로부터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녀의 활동은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 달성을 위한 디지털 금융 포용, 금융 건강, 책임 기술, 농업 금융 옹호 등으로 확대되었다. 막시마는 금융 서비스 접근성 확대, 소비자 보호 개선, 금융 이해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며, 유엔을 대표하여 여러 국가를 방문하고 관련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2011년 6월부터는 G20 금융 포용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GPFI)의 명예 후원자로서 G20 금융 포용 행동 계획 추진을 위해 정부 및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다.
2014년 10월 28일부터 10월 31일까지는 남편 빌럼알렉산더르 국왕과 함께 일본을 국빈으로 방문하여 보관대수장을 수여받았다.
왕비로서 막시마의 정식 작위는 폐하 막시마 여왕, 네덜란드의 공주, 오렌지-나사우 공주이다. 그녀는 폐하 여왕 또는 폐하 막시마 여왕으로 불린다.
5. 대한민국과의 관계
(내용 없음 - 제공된 원본 소스에는 해당 섹션과 관련된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6. 자녀
* 카타리나아말리아 베아트릭스 카르멘 빅토리아 (2003년생) - 오라녜 여공, 현 왕위 계승 서열 1위
* 알렉시아 율리아나 마르셀라 로렌틴 (2005년생)
* 아리아네 빌헬미나 막시마 이네스 (2007년생)
7. 칭호, 경칭 및 훈장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 내용을 다루므로 중복을 피하기 위해 내용을 생략합니다.)
7.1. 칭호 및 경칭
* 네덜란드
* 오스트리아: 공로 훈장 대십자장
* 벨기에
레오폴드 훈장 대십자장
왕관 훈장 대십자장
* 브라질: 남십자 훈장 대십자장
* 브루나이: 라이라 우타마 왕가 훈장 멤버
* 카보베르데: 공로 훈장 수훈
* 칠레: 공로 훈장 대십자장
* 덴마크: 코끼리 훈장 기사 (RE)
* 에스토니아: 테라 마리아나 십자 훈장 1등급 멤버 (2018년 6월 5일)
*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십자장 (2023년 4월 11일)
국가 공로 훈장 대십자장 (2014년 1월 20일)
* 독일
독일 연방 공로 훈장 특별 대십자장 (2021년 7월 5일)
독일 연방 공로 훈장 1등급 대십자장 (2007년 10월 8일)
* 그리스: 구세주 훈장 대십자장 (2022년 10월 31일)
* 이탈리아: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기사 대십자장
* 일본: 보관 훈장 여대수장
* 요르단: 르네상스 최고 훈장 특별 1등급 여대수장 (2018년 3월 20일)
* 라트비아: 세 별 훈장 대십자장
*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공로 훈장 대십자장
* 룩셈부르크
나사우 금사자 훈장 여사
아돌프 나사우 훈장 여대십자장
* 멕시코: 아즈텍 독수리 훈장 대십자장
* 노르웨이: 성 올라프 훈장 여대십자장
* 오만: 술탄 카부스 훈장 여대수장
* 폴란드: 백색 독수리 훈장 대십자장
* 포르투갈
엔히크 왕자 훈장 칼라 대십자장
그리스도 훈장 칼라 대십자장
* 슬로바키아: 백십자 훈장 1등급 멤버 (2023년 3월 7일)
* 대한민국: 수교훈장 광화장 (2023년 12월 12일)
* 스페인
카를로스 3세 훈장 여대십자장 (2024년 3월 26일)
이사벨라 더 카톨릭 왕립 훈장 (GYC, 2001년 10월 19일)
* 스웨덴
세라핌 훈장 멤버 대십자장 (LSerafO, 2022년 10월 11일)
북극성 훈장 멤버 대십자장 (KmstkNO, 2009년 4월 21일)
* 아랍에미리트: 연합 훈장 대십자장
7.2.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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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 훈장
* 오스트리아: 공로 훈장 대십자장
* 벨기에:
레오폴드 1세 훈장 대십자장
국왕 훈장 대십자장
* 브라질: 남십자 훈장 대십자장
* 브루나이: 라이라 우타마 왕가 훈장 멤버
* 카보베르데: 공로 훈장 수훈
* 칠레: 공로 훈장 대십자장
* 덴마크: 코끼리 훈장 기사 (RE)
* 에스토니아: 테라 마리아나 십자 훈장 1등급 멤버 (2018년 6월 5일)
*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십자장 (2023년 4월 11일)
국가 공로 훈장 대십자장 (2014년 1월 20일)
* 독일:
독일 연방 공로 훈장 특별 대십자장 (2021년 7월 5일)
독일 연방 공로 훈장 1등급 대십자장 (2007년 10월 8일)
* 그리스: 구세주 훈장 대십자장 (2022년 10월 31일)
* 이탈리아: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기사 대십자장
* 일본: 보관 훈장 여대수장
* 요르단: 르네상스 최고 훈장 특별 1등급 여대수장 (2018년 3월 20일)
* 라트비아: 세 별 훈장 대십자장
*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공로 훈장 대십자장
* 룩셈부르크:
나사우 금사자 훈장 여사
아돌프 나사우 훈장 여대십자장
* 멕시코: 아즈텍 독수리 훈장 대십자장
* 노르웨이: 성 올라프 훈장 여대십자장
* 오만: 술탄 카부스 훈장 여대수장
* 폴란드: 백색 독수리 훈장 대십자장
* 포르투갈:
엔히크 왕자 훈장 칼라 대십자장
그리스도 훈장 칼라 대십자장
* 슬로바키아: 백십자 훈장 1등급 멤버 (2023년 3월 7일)
* 대한민국: 수교훈장 광화장 (2023년 12월 12일)
* 스페인:
카를로스 3세 훈장 여대십자장 (2024년 3월 26일)
이사벨라 더 카톨릭 왕립 훈장 (GYC, 2001년 10월 19일)
* 스웨덴:
세라핌 훈장 멤버 대십자장 (LSerafO, 2022년 10월 11일)
북극성 훈장 멤버 대십자장 (KmstkNO, 2009년 4월 21일)
* 아랍 에미리트 연합: 연합 훈장 대십자장
7.3.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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