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의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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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 기구이다. 한일 합방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 통합을 위해 설립했으며, 의원 선출 및 헌법 제정을 통해 임시정부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의원 선거 및 피선거권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예산 심의, 선전, 조약 체결 등 입법부 역할을 수행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46년 비상국민회의로 계승되었으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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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립 배경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일본 제국의 한일 합방 조약 이후,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은 국내외에서 주권 회복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각지에 산재한 임시정부를 통합하고 일본 제국에 대항하는 조직을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독립운동가들은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통합 임시정부 설치 및 국민 대표자 선출을 위한 의회 구성을 계획했다. 1919년 4월 10일, 각 도별 대표들이 무기명 투표로 선출되어 중국령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수립되었다.

3. 임시의정원 의장 및 부의장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 및 부의장의 임기는 의회의 회기와 동일하다. 의장 및 부의장은 의원들의 기명단수식 투표로 고득점자를 선출한다.

4. 임시의정원 의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의 참정권은 만 18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어졌으며,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었다. 다만, 구 대한제국 영토의 국민, 독립운동가, 재중화민국 교민 일부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정족수는 1919년 9월 11일 제정된 제2차 대한민국임시헌장 제4장 제29조에 따라 총의원 반수 이상 출석으로 규정되었다. 1925년 4월 7일 제정된 제3차 대한민국임시헌장 제3장 제22조에서는 의원 3분의 1 이상의 출석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1940년 10월 9일 제정된 제3차 대한민국임시헌장 제2장 제9조에서는 총의원 3분의 1 이상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바뀌었으며, 이 조항은 제6차 헌법까지 이어졌다.

5. 선거 및 피선거권

1919년 4월 10일 일부 독립운동가들의 무기명 투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을 선출하였다.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 헌장 제5조에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 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있다고 명시되었다.

1919년 9월 11일 제2차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헌법 제9조 제3항에는 대한민국 인민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보장하였고, 임시의정원 의원들의 입법, 의회 활동에 대한 권리를 명시하였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에 대한 연령은 1927년 4월 11일에 발표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4차 약헌 제2장 제7조에 처음 명시되었는데, 만 18세 이상에게 선거권, 만 23세 이상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하였다.

제4차 임시의정원 약헌 제2장 제5조에는 의회 구성 기준법이 제정되었는데, 제5조 1항은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인민의 직접선거한 의원으로 조직한다. 제5조 2항은 각 선거구에서 선거할 수 없을 때는 각 해당 선거구에 원적을 두고 임시정부 소재지에 교거하는 광복운동자가 각 해당 선거구인의 선거권을 대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

1940년 10월 9일의 대한민국임시약헌에는 피선거권을 만 18세로 규정하였다. 1940년 임시약헌 제4조에는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한다. 다만, 국내 각 선거구에서 선거 실시가 불능할 때에는 임시정부의 소재지의 교거하고, 각 당해 선거구에 원적을 가진 광복운동자가 각 당견 선거구인의 선거권을 대행한다고 하였다.

6. 활동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1919년 4월 10일 러시아령 연해주, 중국령, 미국령, 그리고 국내에 산재된 임시정부의 대표들 중 선출된 29명의 의원으로 개원하였다. 1919년 4월 11일까지 개최된 제1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는 초대 의장에 이동녕 부의장에 손정도를 선출하였으며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의결하였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 헌장을 채택하여 공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법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기존의 임시 헌장을 대폭 개정하여 대한민국 임시 헌법을 공포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법부 기능을 수행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출하는 예산에 대한 심의 및 의결을 담당하였고 선전, 강화, 조약 체결 등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여 광복 투쟁에 대한 인적 양성을 도모하였다.

1940년 10월 9일부터 의정원 원내 교섭단체를 시행하였다. 이때에는 1인 정당도 존재하였다.

7. 해체

1945년 8월 10일 일본의 패망과 8월 15일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각료들과 함께 제1차, 제2차로 귀국하였다. 임시의정원은 1946년 2월 1일 비상국민회의(이듬해 국민의회로 개칭)로 계승되었다.

8. 역대 의장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역대 의장은 이동녕, 손정도, 홍진, 김인전, 조소앙, 장붕, 윤기섭, 조상섭, 여운형, 최창식, 이강, 조완구(임시), 송병조, 김붕준이다. 홍진은 1939년 10월 16일부터 1939년 11월 5일까지, 그리고 1942년 10월 26일부터 1946년 2월 1일까지 의장직을 역임했다.

9. 역사적 의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역사상 처음으로 주권재민, 3권 분립의 민주정 원칙에 입각한 민주공화정제를 채택해 헌법에 반영하였다. 이는 국가권력군주에서 국민으로 옮긴 것이다.

대한민국이 독립군주제를 택한 수많은 독립국가와 비교해 정부형태와 국정운영이 민주공화정에 입각해 이루어지는 것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마련한 근대민주주의의 반석위에 있는 것이다.

10. 관련 문화재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는 등록문화재 제7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회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