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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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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은 1978년 4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하여 미국 앵커리지를 경유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902편이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 영공을 침범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보잉 707 여객기는 소련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날개가 파손되고, 승객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당했으며, 기체는 소련 영토에 비상 착륙했다. 사건의 원인으로는 조종사의 항법 오류가 지목되었으며, 소련은 사건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다. 이 사건 이후 대한항공은 조종사 훈련 강화 등 안전 운항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5년 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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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사고 개요
사고 유형격추
발생 날짜1978년 4월 20일
발생 위치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카렐리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로우히 인근
좌표66°02′54″N 33°04′14″E
항공편 정보
항공편 명칭대한항공 902편
IATA 코드KE902
ICAO 코드KAL902
콜사인KOREAN AIR 902
출발지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
경유지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앵커리지 국제공항
목적지대한민국 서울 김포국제공항
운항사대한항공
기종보잉 707-321B
등록 기호HL7429
탑승 및 피해 상황
탑승 인원109명
승객97명
승무원12명
사망자2명
부상자88명
생존자107명
사고 사진
소련에 착륙한 후 날개에 손상이 있는 비행기
소련에 착륙한 후 날개에 손상이 있는 비행기

2. 사건 발생 배경

대한항공 902편은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을 출발하여 미국 테드 스티븐스 앵커리지 국제공항에서 재급유한 다음 대한민국 김포국제공항으로 착륙할 예정이었다.[4] 1978년 4월 20일, 승무원 및 승객 109명을 태운 대한항공 902편(기체 기호 HL7429, 보잉 707-321B)은 현지 시간으로 13시 39분에 파리를 출발하여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향하는 북쪽 노선 정기편이었다.[15]

대한항공 902편의 예정된 비행 루트와 실제 비행 루트


사고 1년 전 찍힌 사고기


기장은 김창규 기장(46세)이었으며, 부기장 차순도, 항공 기관사 이근식이 조종실 승무원으로 구성되었다.[7][11] 대한항공은 국제 항공 운송 협회 미가맹이었고, 당시 일본항공의 3분의 1 정도의 저렴한 운임이었기 때문에[16], 서울 경유로 일본으로 귀국하는 일본인도 많았다.

902편은 북서쪽으로 비행하면서 정기적인 무선 점검을 수행했으며, 마지막 점검은 이륙 후 5시간 21분 후에 엘스미어 섬의 CFS Alert 부근에서 이루어졌다.[4] 이 항공기의 비행 경로는 거의 지자기 북극 상공을 지나면서 항공기의 자기 나침반 기반 항법 시스템에 큰 오류를 발생시켰다. 이후 비행 경로는 남동쪽으로 바뀌어 바렌츠 해 상공을 지나 소련 영공으로 진입했으며, 남쪽으로 선회한 지 약 3시간 후에 소련 해안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4]

2. 1. 항로 이탈

당시 보잉 707 기종에는 관성항법장치 (INS)가 장착되지 않아, 자기 나침반과 천측 항법에 의존하여 비행해야 했다.[17] 지자기 북극 상공을 통과하면서 자기 나침반 기반 항법 시스템에 큰 오류가 발생할 수 있었고, 북극권은 소련 영토와도 가깝고 지상 항법 시설도 적어 태양 위치로 방위를 결정하는 천측 항법으로 비행해야 했다.[17]

902편은 아이슬란드 상공에서 대기가 불안정해져 지상과의 교신이 불가능해졌고, 나침반 고장과 더불어 대한항공의 잘못된 항로 지시로 인해 그린란드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했다.[4] 이 때문에 항공기는 바렌츠해 상공을 통과하여 소련 영공으로 진입하게 되었다.[4]

대한항공 측은 자기 나침반과 실제 경로의 차이를 계산할 때 편각의 부호를 잘못 파악하여 크게 우회전했다고 설명했다.[4] 그러나 나침반 외 다른 계기로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항공사가 탑승했었기 때문에 단순한 계기 고장으로 항로를 이탈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따라 조종사, 항공 기관사, 항공사의 운항 승무원들의 주의력 부족이나 직무 태만으로 항로를 잘못 설정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17]

실제로 사건 후, 한국 내에서 운항 승무원의 음주 의혹이 제기되었고, 불시착 후 일본인 승객이 객실 승무원으로부터 "죄송합니다, 카드(게임)를 하고 있었습니다"라는 사과를 받았다는 증언도 있어, 직무 태만설이 유력하게 제기되었다.

한편, BBC는 사고 3주 전 파리발 앵커리지행 대한항공기가 항법 문제로 항로를 크게 이탈하여 영국 관제관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고 보도했다.[22]

3. 소련 영공 진입 및 요격

902편아이슬란드 상공에서 대기 불안정으로 지상과의 교신이 불가능해졌고, 나침반 고장과 항공사의 잘못된 항로 지시로 그린란드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 영공에 침범했다. 당시 902편은 극지 비행에 필요한 관성 항법 장치(INS)가 없었고, 자침 방위계도 극지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항공사[17]태양의 위치로 방위를 결정하는 천측 항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기장은 태양의 위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902편은 이미 소련 영공 침범을 한 상태였다. 소련 방공군 레이더는 20시 54분에 902편을 포착했으며, 당시 항공기는 소련 영해에서 약 40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5] 21시 19분에 902편은 소련 영공에 진입했다. 지상에서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902편이 응답하지 않자, 알렉산드르 보소프가 조종하는 Su-15 요격기가 출격했다. 소련 방공군Su-15 요격 전투기 2기에 의해 요격되었고, 위협 사격을 받았다. 902편은 전투기와의 교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주장했지만, 소련 측은 교신이 무시되었다고 주장했다. 보소프는 요격기를 따라오라는 국제 신호로 Su-15의 날개를 여러 번 흔들었지만, 902편은 소련-핀란드 국경 방향으로 90도 회전했다. 보소프는 방공 지휘관 블라디미르 차르코프에게 보고했고, 차르코프는 내부 지침에 따라 보소프에게 902편을 격추하라고 명령했다.

3. 1. 요격 과정

소련 측 보고에 따르면 대한항공 902편은 전투기의 지시를 따르라는 명령을 무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Su-15 조종사 알렉산드르 보소프 대위는 상관에게 이 비행기가 군사적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설득했으나 상부로부터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25]

국제 민간 항공 기구(ICAO) 규정에 따르면 요격기는 피요격기의 왼쪽에서 접근해야 하지만, 김창규 기장의 설명에 따르면, 요격기는 오른쪽에서 항공기에 접근했다.[5] 김 기장은 속도를 줄이고 항법등을 켜서 소련 전투기를 따라 착륙할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냈다.[5]

하지만 소련 측 보고에 따르면, 여객기는 요격기를 따라오라는 명령을 반복적으로 무시했다.[6] 902편의 부조종사 S.D. 차는 승무원들이 무전을 통해 요격기와 통신을 시도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7]

결국 보소프는 해당 항공기가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고 상관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21시 42분에 격추 명령을 받은 후[8][5] R-60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5] 이 중 1발은 빗나갔고,[5] 다른 1발은 왼쪽 날개에 명중하여 약 4m가 잘려나갔다. 미사일은 동체를 관통하여 급격한 감압을 일으켰고, 비행기 4개의 터빈 중 하나를 고장냈다.[5] 이 공격으로 한국인 승객 방태환과 일본인 승객 1명이 사망했고, 13명이 중상을 입었다.[7][18]

피격 후, 여객기는 9000m 고도에서 급강하했다.[5] 구름 속으로 들어가 소련 방공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소련은 902편에서 잘려나간 날개 부분을 순항 미사일로 오인하고, 다른 Su-15 요격기를 출격시켜 그것을 격추하려 했다.[5] 보소프의 Su-15는 연료 부족으로 인해 기지로 귀환해야 했다.

4. 비상 착륙 및 구조

대한항공 902편은 바렌츠 해 상공을 지나 소련 영공으로 진입했으며, 남쪽으로 선회한 지 약 3시간 후에 소련 해안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4] 미사일 공격을 받은 후, 902편은 객실 파괴와 여압 상실 위험에 처해 순항 고도인 약 10668.00m에서 약 1524.00m까지 급강하했다. 기체 제어는 가능했기에, 김창규 기장은 불시착할 장소를 찾기 위해 전투기의 유도를 받으며 저공 비행으로 2시간가량 비행했다. 그러나 객실 승무원들은 알래스카 앵커리지 부근이라고 안내했는데, 이는 운항 승무원에게 상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거나 운항 승무원 또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19]

소련 언론에 따르면, 여객기는 착륙할 장소를 찾기 위해 약 40분 동안 콜라반도 전체를 저공 비행했다. 몇 차례 착륙 시도가 실패한 후, 김창규 기장은 핀란드 국경에서 약 140km 떨어진 카렐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얼어붙은 코르피야르비 호수|코르피야르비 호ru 얼음 위에 비행기를 착륙시켰다.[5][9] 대한항공 902편 승객의 일기에 따르면, 착륙까지 1시간 40분이 걸렸다고 한다.[7] 현지 시각 오후 6시 45분, 무르만스크 교외 케미 시에 있는 얼어붙은 이만드라 호수에 동체 착륙하여 얼음 위를 미끄러져 호숫가에서 멈췄다. 다행히 오른쪽 날개가 나무에 부딪히기 직전에 멈춰 불시착 시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19]

소련 헬리콥터는 생존자들을 구조하여 카렐리야 켐 시로 이송했다. 승객들은 주둔지의 장교 숙소에 수용되었다.[5] 1978년 4월 22일, 조종사와 항법사를 제외한 생존자들은 아에로플로트를 통해 켐에서 무르만스크로 이송되었고, 이후 팬 아메리칸 월드 항공을 통해 핀란드의 헬싱키-반타 공항으로 이동했으며, 4월 23일 대한항공 소속 항공기가 902편 생존자들과 사망자들의 시신을 싣고 서울로 출발했다.[10]

당시 대한민국과 소련은 수교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이 대리로 협상에 나섰다.[10] 4월 29일, 902편의 조종사와 항법사가 석방되었다.[11] 소련은 승객들을 돌본 대가로 대한민국에 100000USD를 청구했지만, 대한민국은 이 청구서를 지불하지 않았다.[12]

4. 1. 비상 착륙

미사일 공격을 받은 대한항공 902편은 객실 파괴와 여압 상실 위험에 처해 순항 고도인 3만 5000피트에서 5000피트까지 급강하했다. 기체 제어는 가능했기에, 김창규 기장은 불시착할 장소를 찾기 위해 전투기의 유도를 받으며 저공 비행으로 2시간가량 비행했다. 그러나 객실 승무원들은 알래스카 앵커리지 부근이라고 안내했는데, 이는 운항 승무원에게 상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거나 운항 승무원 또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19]

소련 언론에 따르면, 여객기는 착륙할 장소를 찾기 위해 약 40분 동안 콜라반도 전체를 저공 비행했다. 몇 차례 착륙 시도가 실패한 후, 김창규 기장은 핀란드 국경에서 약 140km 떨어진 카렐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얼어붙은 코르피야르비 호수|Корпиярви (озеро, Лоухское городское поселение)ru 얼음 위에 비행기를 착륙시켰다.[5][9] 대한항공 902편 승객의 일기에 따르면, 착륙까지 1시간 40분이 걸렸다고 한다.[7]

핀란드 측은 소련 방공군이 레이더에서 비행기를 놓친 후 비행기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고 진술했다.[5] 그러나 소련 조종사 아나톨리 케레포프는 자신이 대한항공 902편의 위치를 파악하고 아프리칸다 공군 기지로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케레포프는 자신이 비행기를 코르피야르비 호수의 얼음 위에 강제로 착륙시켰다고 말했다.[5]

현지 시각 오후 6시 45분, 무르만스크 교외 케미 시에 있는 얼어붙은 이만드라 호수에 동체 착륙하여 얼음 위를 미끄러져 호숫가에서 멈췄다. 다행히 오른쪽 날개가 나무에 부딪히기 직전에 멈춰 불시착 시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19] 동체 착륙 후, 엔진과 전원이 정지된 상태에서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승객과 승무원은 기내에 머물렀다.

4. 2. 구조 및 송환

소련 헬리콥터는 생존자들을 구조하여 카렐리야의 켐 시로 이송했다. 승객들은 주둔지의 장교 숙소에 수용되었다.[5]

1978년 4월 22일, 조종사와 항법사를 제외한 생존자들은 아에로플로트를 통해 켐에서 무르만스크로 이송되었고, 이후 팬 아메리칸 월드 항공을 통해 핀란드의 헬싱키-반타 공항으로 이동했으며, 4월 23일 대한항공 소속 항공기가 902편 생존자들과 사망자들의 시신을 싣고 서울로 출발했다.[10]

당시 대한민국과 소련 사이에는 수교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대리로 협상에 나섰다.[10]

4월 29일, 902편의 조종사와 항법사가 석방되었다.[11] 소련의 공식 통신사인 타스 통신은 이들이 소련 영공 침범과 요격기의 착륙 명령을 무시한 것을 자백했다고 보도했다.[11] 타스 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최고 소비에트 간부회에 사면을 요청했고, 간부회는 이들을 사면한 후 추방했다.[11]

소련은 승객들을 돌본 대가로 대한민국에 100000USD를 청구했지만, 대한민국은 이 청구서를 지불하지 않았다.[12]

5. 사건의 원인과 결과

사건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 대한항공 측의 과실: 공식적으로는 편각 계산 오류 및 항법 장비 오작동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대한항공 측은 자기 나침반과 실제 경로의 차이를 계산할 때 편각의 부호를 잘못 파악하여 크게 우회전했다고 설명했다.[25] 사고기는 극지 비행에 필수적인 관성항법장치(INS)가 장착되지 않았고, 자침 방위계도 극지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천측 항법을 사용했으나, 아이슬란드 상공에서 대기 불안정으로 교신이 불가능했고, 나침반 고장 및 항공사의 잘못된 항로 지시가 겹쳐 항로를 이탈했다.[17]
  • 추가 의혹: 조종사, 항법사, 항공사의 부주의 및 직무 태만 의혹도 제기되었다. 나침반 외의 계기로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항로를 이탈한 점, 사건 후 한국 내에서 운항 승무원의 음주 의혹이 제기된 점, 불시착 후 일본인 승객이 객실 승무원으로부터 "카드(게임)를 하고 있었습니다"라는 사과를 받았다는 증언[18] 등이 그 근거이다.

  • 소련 측의 과잉 대응: 소련 방공군은 902편을 미국 공군의 정찰기 RC-135로 오인하고[26] 수호이 Su-15 요격기를 출격시켰다. 소련 측은 902편이 요격기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902편 부조종사는 요격기와 무선 통신을 시도했지만 응답받지 못했다고 반박했다.[7] 결국 소련 요격기는 미사일을 발사하여 902편을 격추했다. 이처럼 민간 항공기에 대한 군사적 대응의 적절성 문제가 국제 사회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사건으로 소련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대공 방어력을 강화했고, 이는 5년 뒤인 1983년에 발생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의 일부 원인이 되었다.[28][29] 1991년 소련군 전투기 조종사가 "즉시 격추하라"는 명령에 반하여 위협 사격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당시 소련 국방 당국은 침범기가 군용기인지 민간기인지 구별이 안 되는 상태에서 격추를 지시하는 등 관습 국제법을 무시한 대응을 현장에 지시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5. 1. 사건 원인

공식적으로는 편각 계산 오류 및 항법 장비 오작동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대한항공 측은 자기 나침반과 실제 경로의 차이를 계산할 때 편각의 부호를 잘못 파악하여 크게 우회전했다고 설명했다.[25] 사고기는 극지 비행에 필수적인 관성항법장치 (INS)가 장착되지 않았고, 자침 방위계도 극지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천측 항법을 사용했으나, 아이슬란드 상공에서 대기 불안정으로 교신이 불가능했고, 나침반 고장 및 항공사의 잘못된 항로 지시가 겹쳐 항로를 이탈했다.[17]

그러나 조종사, 항법사, 항공사의 부주의 및 직무 태만 의혹도 제기되었다. 나침반 외의 계기로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항로를 이탈한 점, 사건 후 한국 내에서 운항 승무원의 음주 의혹이 제기된 점, 불시착 후 일본인 승객이 객실 승무원으로부터 "카드(게임)를 하고 있었습니다"라는 사과를 받았다는 증언[18] 등이 그 근거이다.

소련 측의 과잉 대응 또한 비판받았다. 소련 방공군은 902편을 미국 공군의 정찰기 RC-135로 오인하고[26] 수호이 Su-15 요격기를 출격시켰다. 소련 측은 902편이 요격기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902편 부조종사는 요격기와 무선 통신을 시도했지만 응답받지 못했다고 반박했다.[7] 결국 소련 요격기는 미사일을 발사하여 902편을 격추했다. 이처럼 민간 항공기에 대한 군사적 대응의 적절성 문제가 국제 사회의 도마 위에 올랐다.

5. 2. 사건의 영향

소련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대공 방어력을 강화했고, 이는 5년 뒤인 1983년에 발생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의 일부 원인이 되었다.[28][29] 1991년 소련군 전투기 조종사가 "즉시 격추하라"는 명령에 반하여 위협 사격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당시 소련 국방 당국은 침범기가 군용기인지 민간기인지 구별이 안 되는 상태에서 격추를 지시하는 등 관습 국제법을 무시한 대응을 현장에 지시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6. 논란과 의혹

이 사건에는 여러 논란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6. 1. 격추 정당성 논란

소련 측은 대한항공 902편이 전투기의 지시를 따르라는 명령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Su-15 조종사 알렉산드르 보소프 대위는 해당 항공기가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고 상관을 설득하려 했으나, 상부로부터 요격 명령을 받았다.[25]

902편 부조종사 S.D. 차는 승무원들이 무전을 통해 요격기와 통신을 시도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7] 반면, 김창규 기장은 국제 민간 항공 기구(ICAO) 규정에 따라 요격기가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접근했으며, 속도를 줄이고 항법등을 켜서 착륙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고 주장했다.[5]

결국 보소프는 항공기가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고 상관을 설득하려 했지만, 21시 42분에 격추 명령을 받고[8][5] R-60 미사일을 발사했다.[5]

7. 대한항공 902편 이후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이후, 대한항공은 조종사 훈련을 강화하고 항법 장비를 개선하는 등 안전 운항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902편은 현재 파리인천행 노선에 존치되어 있으며, 보잉 747-8I 기종으로 운항된다.[13]

7. 1. 대한항공의 변화

대한항공은 902편 사건 이후 조종사 훈련 강화, 항법 장비 개선 등 안전 운항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902편은 영구 결번되지 않고 현재까지 파리인천행 노선에 존치되어 있다.[13] 이 노선은 앵커리지에 기착하지 않고, 김포국제공항 대신 인천국제공항으로 바로 운항한다.[13] 대한항공은 파리 오를리 공항으로는 운항하지 않으며, 별도의 항공편은 504편이다. 2023년 10월 3일 기준으로, 이 노선은 보잉 747-8I로 운항한다.[13]

7. 2. 902편의 현재

대한항공 902편은 현재까지도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노선에 존치되어 있다.[13] 그러나 이 노선은 더 이상 앵커리지에 기착하지 않으며, 김포국제공항 대신 인천국제공항으로 바로 운항한다.[13] 대한항공은 파리 오를리 공항으로는 더 이상 운항하지 않으며,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으로만 운항한다. 다른 항공편의 편명은 504편이다. 2023년 10월 3일 기준으로, 이 노선은 보잉 747-8I로 운항한다.[13]

8. 같이 보기

참조

[1] 웹사이트 ASN Aircraft accident Boeing 707-321B HL7429 Korpijärvi Lake https://aviation-saf[...] 2018-12-17
[2] 논문 The Worst, But Not The First. Time 2012-11-09
[3] 논문 The Mystery Of Flight 902 Why Did A South Korean Jet Make a 180° Turn over the Arctic?. Time 2012-11-09
[4] 웹사이트 Flight of South Korean Airliner 'Very Puzzling' to U.S. Officials https://www.nytimes.[...] 1978-04-22
[5] 웹사이트 Весна 1978-го. Як СРСР збив над Карелією корейський "боїнг". ФОТО http://www.istpravda[...] 2022-05-31
[6] 웹사이트 2 Killed on South Korean Airliner That Was Forced to Land in Soviet https://www.nytimes.[...] 1978-04-22
[7] 뉴스 Agony of Flight 902 https://www.washingt[...] 1978-04-24
[8] 웹사이트 Criminal Occurrence Description at the Aviation Safety Network http://aviation-safe[...]
[9] 웹사이트 Увидеть Париж — и не умереть – Константин Сорокин, Артур Берзин http://www.autorevie[...]
[10] 웹사이트 South Korean Plane Plunged 30,000 Feet After Being Fired On https://www.nytimes.[...] 1978-04-23
[11] 웹사이트 Soviet Frees Last 2 in Korean Plane Case https://www.nytimes.[...] 1978-04-30
[12] 웹사이트 Past Attacks on Commercial Airliners https://time.com/300[...] Time 2014-07-17
[13] 웹사이트 Flight Finder ✈ Charles de Gaulle/Roissy (CDG) – Incheon Int'l (ICN) ✈ FlightAware https://flightaware.[...]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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