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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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출발하여 아부다비를 경유,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이 미얀마 상공에서 폭발하여 탑승자 115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북한 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의 테러로 밝혀졌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고 대한민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목적이었다. 김정일의 지시로 김현희와 김승일은 일본인으로 위장하여 폭탄을 설치, 사건을 일으켰다. 김현희는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노태우 대통령의 특사로 사면되었다. 사건 이후 북한은 연루를 부인하며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으나, 국제 사회는 북한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고,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 국가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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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 [전쟁]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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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사건 이름 |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
발생 유형 | 항공기 공중 폭파, 폭탄 테러, 국가 테러 |
발생 원인 | 북한이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방해할 목적으로 일으킨 의도적인 폭파 사건 |
날짜 | 1987년 11월 29일 |
위치 | 인도양 안다만 해 상공 |
항공기 종류 | 보잉 707-3B5C |
항공기 등록번호 | HL7406 |
운영 주체 | 대한항공 |
IATA 코드 | KE858 |
ICAO 코드 | KAL858 |
호출 부호 | KOREAN AIR 858 |
출발지 | 바그다드 국제공항 (당시: 사담 국제공항), 이라크 바그다드 |
경유지 1 | 아부다비 국제공항,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
경유지 2 | 돈므앙 국제공항, 태국 방콕 |
목적지 | 김포국제공항, 대한민국 서울 |
탑승객 | 104 |
승무원 | 11 |
총 탑승자 | 115 |
사망자 | 115 (전원 사망) |
생존자 | 0 |
관련 정보 | |
관련 사건 | 랑군 폭탄 테러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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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건 발생 및 배경
1980년대 대한민국과 북한은 경제 성장과 체제 경쟁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북한은 이에 대해 극도로 경계하며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공작을 계획하였다.
이 테러의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 한국 대통령 선거 직전 여당 후보에게 타격을 입히는 동시에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 서울 올림픽 참가 신청을 50일 앞두고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동구권 국가)들의 참가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고립감을 강화한 북한이 한국의 올림픽 단독 개최 또는 개최 자체를 막기 위해[71]
북한은 "대한항공기의 원인 불명의 공중 분해"로 대한항공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도 저하를 야기하여, 그 결과로 다음 해에 열리는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동맹국이었던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올림픽을 보이콧하게 하는 동기 중 하나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서울 올림픽을 막기 위해 즉흥적으로 벌인 테러가 아니라 10년에 걸친 음모였다. 만약 김현희가 자살에 성공했다면, 동양인 시체 두 구와 위조 여권만 남게 되어, 당시 중동에서 활동하던 일본 적군이 115명을 태운 비행기를 폭파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반대로 김승일과 김현희가 탈출에 성공했다면, 탑승자 명단에는 봉야 신이치·봉야 마유미라는 신원 불명의 일본인 이름만 남게 될 것이다.[70] 어느 경우든, 많은 한국인 승객을 살해한 것은 일본인이 된다는 것이다.[70]
북한의 위장 일본인 테러는 문세광 사건(육영수 저격 사건)이 있었다.[72] 이때 일본 언론은 조총련의 정보 조작 등으로 한국 측 자작극이라는 설을 보도했다.[72] 그에 대해 한국은 반일 감정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일본 국기가 끌어내려지고 대사관 직원이 구타당하는 사태로 발전했다.[72] 만약 좌익 일본인의 테러였다면, 일한 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70]
하지만, 김현희가 헝가리에 북한 여권으로 입국하여 거기서 일본 위조 여권으로 출국한 것으로부터 헝가리 당국은 북한의 음모가 있었다고 판단하여 당시 동구권의 맹주였던 소련에 보고했기 때문에, 동구 사회주의 국가 전체에서도 “비열한 테러 국가”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서울 올림픽 참가를 애매하게 했던 소련과 중국은 공식적으로 참가를 선언했고, 다른 동유럽 국가들도 따라서 참가를 선언했다. 김현희가 우연히 자살에 실패하고 한국 당국에 모든 범죄를 자백함으로써, 일본도 예정대로 참가할 수 있었다.[70] 북한의 계획은 완전히 역효과를 냈던 것이다.
그 후, 북한은 미·한 합동 군사 훈련을 “전쟁 직전”이라고 선전하며 유사시 지원을 요청했지만, 중·소 양국으로부터 오히려 반감을 샀다.[73] 다음 해 6월에 김일성이 중·소 양국을 방문했지만, 그 자리에서 “이 이상 올림픽 방해 공작을 한다면, 북한이 1989년에 개최하는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73]
소련의 타스 통신은 당시 “사건은 사실이다”라고 전하면서 “범인의 자백만이 증거이며, 한국 당국에 의한 날조설이라는 견해도 있다”고 보도했지만,[74]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의 사실로부터, 사건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은 없었지만, 사실상 북한은 동맹국인 다른 사회주의 국가 진영으로부터도 버려졌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은 사건 및 서울 올림픽 이후 1990년에, 중국은 1992년에 북한의 강한 항의를 무시하고 각각 한국과의 국교를 수립했다.
사건 후 당사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북한에 대한 비난이 일어났지만, 북한이 의도한 “한국 신뢰도 저하”라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음 해인 1988년에는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와 비동맹 중립 국가들도 참가하는 형태로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또한, 테러 사건은, 다른 국가에 대한 주권 침해인 일본인과 한국인, 레바논인 등에 대한 납치 문제와 랑군 사건 등의 테러 사건과 함께 북한의 국가 범죄의 전형으로 알려져 북한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2. 1. 사건 이전의 정황
1987년 11월 12일,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는 평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로 이동했다.[2] 이후 다음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하여 북한 공작원의 집에서 6일간 머물렀다.[2] 11월 18일에는 자동차를 이용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동했다.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은 후 부다페스트에서 함께 머물렀던 안내 공작원으로부터 관광객인 아버지 하치야 신이치(蜂谷眞一)와 딸 하치야 마유미(蜂谷眞由美)로 위장한 위조 일본 여권 두 개를 받았다. 빈의 암 파르크링 호텔에 머무르며 오스트리아 항공을 통해 빈에서 유고슬라비아(현재 세르비아) 벨그라드로 가는 항공권을 구입했고, 이후 바그다드, 아부다비, 바레인으로 가는 항공권도 구입했다.[2] 또한 KAL기 폭파 후 탈출을 위해 아부다비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항공권도 구입했다.[2]11월 27일, 빈에서 기차로 유고슬라비아에 도착한 두 명의 안내 공작원이 시한폭탄을 전달했다. 이 폭탄은 일본산 파나소닉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위장되어 있었고, 폭발물과 폭발 장치, 폭발력을 증폭시키기 위한 액체 폭발물(술병으로 위장)이 들어 있었다.[11][14] 다음 날, 이라크 항공편으로 사담 국제공항(바그다드, 이라크)으로 출발했다.[11] 공항에서 대한항공 858편이 도착하기를 3시간 30분 동안 기다렸고, KAL 858편은 밤 11시 30분경 이륙했다.[11] 두 폭탄범은 자신의 좌석인 7B와 7C 위에 자작 폭발 장치를 설치하고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서 내렸다.[11]
2. 2. 사건 당일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1분,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은 인도양 상공에서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과 마지막 교신 후 실종되었다.[112][113] 이 여객기는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공중 폭파되었고,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2]858편은 협정세계시(UTC) 기준 1987년 11월 29일 오전 0시 1분에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제공항을 이륙하여 인도 상공을 지나 뭄바이(봄베이)에서 안다만 해를 거쳐 R468 항로를 따라 비행하였다. 이륙 후 4시간 30분이 지난 현지 시각 오전 10시 31분(UTC 4시 31분)에 미얀마 항공 관제 구역에 진입했다.
인도와 미얀마의 국경인 "TOLIS" 지점에서 양곤(랑군) 항공 관제관에게 "현재 고도 37,000피트(약 10,700m)를 비행 중입니다. 다음 "VRDIS" 지점에는 오전 11시 1분, "TAVOR"(미얀마 본토 상륙 지점)에는 오전 11시 21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라고 보고한 것이 대한항공 858편의 마지막 통신이었다.[37]
오전 11시 22분, 양곤에서 남쪽으로 약 220km 떨어진 해상에서 항공기 내 폭탄이 폭발하여 기체가 공중 분해되어 추락했다.[38] 기장은 조난 신호나 긴급 상황을 선언할 틈 없이 폭발 충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승객과 승무원 115명 전원이 실종되었다.
정시 보고 교신 두절, 레이더 상 항공기 미확인, 태국 영공 진입 예정 시각 통신 두절 등으로 KAL858편의 이상 발생이 확인되었다. 태국 항공 관제 당국과 대한항공은 통신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태국 표준시 오후 12시 05분(UTC 오전 5시 05분), 대한항공의 사내 무선 교신에도 응답이 없어 조난이 확정되었다.
미얀마와 태국 정부는 수색에 나섰다. 태국군은 태국-미얀마 국경 부근 정글 추락을 추정했으나, 실제로는 안다만 해에 추락했다. 당시 위성측위시스템과 항공 레이더 정비 미흡, 미얀마 내 분쟁 지역 문제로 사고 지점 파악과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
3. 수사 및 조사 과정
1987년 12월 1일, 아랍에미리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은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린 김승일과 김현희를 검거하였으나 이들이 음독 자살을 기도하였다고 발표했다.[40] 바레인 경찰의 조사 후, '하치야 마유미'(蜂谷真由美)라는 이름의 여성은 12월 15일 한국으로 인도되었다.[40]
1988년 1월, 김현희는 국가안전기획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자신과 김승일 모두 북한 공작원이라고 발표했다. 그녀는 바그다드 출발 9시간 후 폭발하도록 설정된 타이머가 부착된 약 350g의 C-4 폭약이 들어있는 라디오와 약 700ml의 PLX 폭약이 들어있는 술병을 여객기 짐칸 위쪽 선반에 두고 왔다고 말했다.[12] 김현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며 사망자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또한 폭탄 테러 지시는 북한 최고 지도자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이 직접 작성했으며, 김정일은 대한민국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다가오는 1988년 국회의원 선거를 방해하며, 그 해 말 서울에서 열리는 198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국제팀들을 두렵게 하려고 했다고 밝혔다.[13]
1989년 2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은 김현희에 대해 살인죄, 항공기폭파치사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1990년 3월 27일, 김현희는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4월 12일 사면되었다.
2004년 5월 22일부터 23일까지 KBS는 〈대한항공 858편의 미스터리〉를 방영하여, 수사 결과에 대한 거짓 부분을 밝히기도 하였다.
3. 1. 초기 수사
사건 직후, 대한민국 정부는 즉각적인 수사에 착수하였다. 초기에는 기체 결함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나, 생존자나 잔해가 발견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1987년 12월 1일, 아랍에미리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은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린 요주의 인물인 김승일과 김현희를 검거하였으나 음독 자살을 기도하였다고 발표했다. 12월 2일, 청와대는 대북 안보 체제 강화와 선거 방해 책동에 대한 엄단을 지시했다.
사건 직전,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경유지인 아부다비 공항에서 하기한 승객 15명 중 동아시아계 남녀 각 1명이 일본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걸프 항공편으로 바레인으로 이동, 마나마의 호텔에 숙박했다. 여권 명의는 '하지야 신이치(蜂谷真一)'와 '하지야 마유미(蜂谷真由美)'였으며,[40] 이들은 '아버지'와 '딸' 관계로 알려졌다.[40] 한국 측은 탑승 명부에서 이들의 사건 연루를 의심, 현지 한국 대사관 대리대사가 접촉했다.
한편, 1987년 11월 21일, 위조 여권 소지 혐의로 도쿄에서 체포된 일본 적군의 마루오카 오사무(丸岡修)는 서울 올림픽 방해를 위해 서울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져, 중동 거점 일본 적군의 사건 연루가 의심받았다. 초기 한국 국가안전기획부는 이들을 주시했고, 일본 정부는 '좌익 일본인에 의한 반한 테러 사건'을 우려했다. 그러나 주 바레인 일본대사관 조사 결과, 여권 위조가 확인되었다.[46]
'하지야 신이치'와 '하지야 마유미'는 로마행 비행기를 갈아타려 했으나, 일본 대사관 직원이 바레인 경찰관과 함께 출국을 막았다.[40] 공항에서 사정 청취 중, 남성은 시안화칼륨(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어 독극물 자살했다.[40] 여성은 말보로 담배에 숨겨진 독약 앰풀을 빼앗아 자살을 시도했으나, 경찰관이 저지하여 미수에 그쳤다.[40][47]
'하지야 마유미' 명의의 여성은 목숨을 건졌다. 자살한 남성의 여권 명의는 도쿄 거주 실존 인물이었으나, 니시아라이 사건(일본인 2명의 호적을 가로챈 최승철 검거 사건) 관련 재일 한국·조선인 보조 공작원 이경우(李京雨)에게 여권을 빌려준 것으로 밝혀졌다. 여권 위조로 북한 개입이 의심받게 되었다.[40]
초기 위조 여권이 일본인 명의였기에 일본 정부도 수사 협력을 요청했으나, 한국 측의 항공기 폭파라는 중대성과 비교하여 신병 인도 청구권을 포기했다.[50][51] 몬트리올 협약에 따라, 항공기 상 사건의 재판권은 국기주의에 의거, 항공기 등록 국가(이 사건의 경우 한국)에 있다.
3. 2. 용의자 체포 및 신원 확인
1987년 12월 1일, 아랍에미리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은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린 요주의 인물인 김승일과 김현희를 검거하였으나, 이들이 음독 자살을 기도했다고 발표했다.[40] 바레인 경찰의 조사 후, '하치야 마유미'(蜂谷真由美)라는 이름의 여성은 12월 15일 한국으로 인도되었다.[40] 당시 그녀는 자살 방지용 마우스피스를 물고, 입가를 큰 접착 테이프로 막은 채, 양쪽에서 부축받으며 이동했다.[40]처음에는 일본인인 척했지만,[53] 서울로 이송되는 것을 피하고 싶어 중국인인 척하며, 중국 흑룡강성 출신의 ‘백화혜’(百華恵)라고 진술하고, 혐의를 계속 부인했다.[54] 서울 국가안전기획부에서의 심문에서도 처음에는 중국 출신인 것처럼 가장했다.[54] 그러나, 수사관의 매일 이어지는 조사에서, 일본인 또는 중국인이라는 설명의 여러 모순점을 지적받았다. “일본에 살 때 사용했던 TV 제조사는?”이라는 질문에, 북한 브랜드인 ‘친달래’(チンダルレ)라고 대답하여 수사관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고,[56] 또 수사관에게 밤의 서울 시내로 데려가졌을 때, 북한의 설명과는 전혀 다른 번영에 경악하며,[57] 마침내 자신이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조사부 소속 특수공작원 김현희임을 자백하고, 항공기 폭파 범행을 자백했다.[40] 독극물 자살한 ‘하치야 신이치’(蜂谷真一)라는 이름의 남성은 마찬가지로 북한의 공작원 김승일임이 밝혀졌다.
바레인에서 심문을 받던 중 김현희는 경찰관을 공격하고 권총을 빼앗으려 시도하는 등의 행동으로 당국은 더욱 의심을 품게 되었다.[10] 심문에서 김현희에 대한 주요 증거는 담배였는데, 분석 결과 대한민국에서 체포된 다른 북한 공작원들이 사용했던 종류와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10] 또 다른 중요한 증거는 김현희의 동료인 김승일의 치아였다. 김승일의 치아에는 납으로 충전된 충치가 있었는데, 이는 북한 치과에서 흔히 사용하는 충치 치료법이었다.[9]
대한민국 대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연설한 최영진은 김현희가 대한민국에서 8일간의 심문 후 텔레비전 화면으로 대한민국 생활을 담은 영상을 보게 되었고, "서울 거리의 생활이 그녀가 믿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한민국이 가난과 부패로 가득한 미국의 괴뢰 국가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실제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을 보자, 최영진은 "그녀는 북한에서 들었던 말들이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10] 김현희는 그 후 "여성 조사관의 품에 안겨" 폭탄 테러 사실을 자백했다.[10] 한국어로 "용서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10]라고 말하며 북한 테러 활동의 도구로 이용당했다고 말했고, 자발적으로 상세한 자백을 했다.[10]
1988년 1월, 김현희는 국가안전기획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자신과 김승일 모두 북한 공작원이라고 발표했다. 그녀는 바그다드 출발 9시간 후 폭발하도록 설정된 타이머가 부착된 약 350g의 C-4 폭약이 들어있는 라디오와 약 700ml의 PLX 폭약이 들어있는 술병을 여객기 짐칸의 위쪽 선반에 두고 왔다고 말했다.[12] 김현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며 사망자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또한 폭탄 테러 지시는 북한 최고 지도자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이 직접 작성했다고 말했는데, 김정일은 대한민국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다가오는 1988년 국회의원 선거를 방해하며, 그 해 말 서울에서 열리는 198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국제팀들을 두렵게 하려고 했다.[13]
3. 3. 대한민국 정부의 수사 결과 발표
1988년 1월 15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는 김현희의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현희는 자신이 북한 공작원이며,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 방해와 1987년 대통령 선거 혼란 야기, 대한민국 내 계급 투쟁 촉발을 위해 김정일의 지시로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했다고 자백했다.[13]김현희는 바그다드에서 출발 9시간 후 폭발하도록 설정된 타이머가 부착된 약 350g의 C-4 폭약이 들어있는 라디오와 약 700ml의 PLX 폭약이 들어있는 술병을 여객기 짐칸 위쪽 선반에 두고 내렸다고 진술했다.[12]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며 사망자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했고, 김정일이 직접 작성한 지시에 따라 테러를 감행했다고 밝혔다.[13]
김현희는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과 재학 중 북한 공작원으로 소환되어,[76] 김성정치군사대학에서 일본인으로 가장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65]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田口八重子(이은혜)에게서 일본어 교육과 일본 문화 교육을 받았고,[68] '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 이름으로 일본인 행세를 했다.[69]
김현희의 자백과 더불어, 유고슬라비아가 북한 폭파범들의 종적을 조사하여 미국에 제공한 자료,[108] 오스트리아가 북한 공관 수를 감축한 조치,[109] 김승일의 치아에서 발견된 북한식 충치 치료법[9] 등 여러 증거들이 북한의 소행임을 뒷받침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한국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을 국가 지원 테러 국가 목록에 포함시켰다(2008년부터 2017년 제외).[18] 찰스 E. 레드먼(Charles E. Redman) 국무부 공보차관보는 이 사건을 "대량 살인 행위"라고 언급하며, 북한의 책임을 규탄했다.[19]
3. 4. 진실위의 재조사
2000년대 들어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114]는 이 사건을 7대 우선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하여 재조사를 실시하였다. 2006년 8월과 2007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조작이 아니다"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이는 북한의 소행임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안기부가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2007년, 희생자 가족들의 단체가 사건에 대한 공식 발표에 의혹을 제기했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조사하여 폭탄 테러가 국가정보원(NIS)의 조작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32]
4. 재판 및 처벌
김현희는 1993년 윌리엄 모로우 앤드 컴퍼니에서 출판된 자신의 책 ''내 마음의 눈물''에서 김정일이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주도하고 공격 실행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29] 이 책에는 그녀의 초기 훈련, 해외 생활, 폭파 사건 실행, 재판, 사면,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 통합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김현희는 책의 수익금 전부를 희생자 유족에게 기증했다.[28] 그녀의 이야기는 신상옥 감독의 1990년 영화 ''마유미''로도 제작되었다.[29]
1989년 2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은 김현희를 살인, 항공기 폭파 치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1990년 3월 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109] 4월 12일,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특별 사면 되었다.
김현희는 2010년 일본을 방문하여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유족들을 만났는데, 일본 정부는 그녀가 위조 여권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문을 위해 출입국 규정을 면제했다.[30] 현재 김현희는 신변 보호를 위해 비밀 장소에 거주하며, 희생자 유족이나 북한의 보복을 우려하여 지속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2007년 희생자 가족 단체는 사건 발표에 의혹을 제기했으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폭탄 테러가 국가정보원의 조작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31][32]
4. 1. 김현희에 대한 재판
1989년 2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은 김현희를 살인, 항공기 폭파 치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108] 1990년 3월 27일, 김현희는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109] 4월 12일,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특별 사면 되었다.김현희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참회의 표시로 ''내 마음의 눈물''이라는 책의 수익금 전액을 대한항공 858편 희생자 유족들에게 기증했다.[28]
4. 2. 사면 배경 및 논란
1990년 3월 27일, 김현희는 대한민국의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84][85]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김현희가 "사건의 생존 증인"이라는 점과 북한 체제의 희생양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여 1990년 4월 12일 특별사면했다.[87][88] 이는 사건 유족들의 항의 속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결정이었다.[87][88]사면 후 김현희는 1991년 6월 2일 수기집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1992년 7월 1일에는 《사랑을 느낄때면 눈물을 흘립니다》를 발간했다. 1997년 12월 28일에는 전직 안기부 직원과 결혼했다.
김현희의 사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진범이 아니며, 사건 자체가 국가정보원의 조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32]
5. 사건의 영향 및 파장
1987년 6월 항쟁 결과 민주정의당이 민주화 선언을 발표한 직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대한민국 사회는 민주화와 국제적 위상 강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의 테러 지시로 발생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은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건 발생 직후인 12월 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 사건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1988년 2월 25일 제6공화국이 출범하였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한 충격과 슬픔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1989년 2월 3일, 김현희는 국가보안법, 항공법, 항공기 운항 안전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90년 3월 27일 사형 판결이 확정되었으나, 4월 12일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1991년 6월에는 수기를 출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북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5. 1. 국제 사회의 반응
미국 국무부는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2008년부터 2017년을 제외하고 한국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을 국가 지원 테러 국가 목록에 포함시켰다.[18] 1988년 1월, 찰스 E. 레드먼 국무부 공보차관보는 이 사건을 "대량 살인 행위"라고 언급하며, "북한의 책임에 대한 증거가 압도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모든 국가에 이 테러 행위에 대해 북한을 규탄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19]이 사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최소 두 차례 논의되었으나,[20][21] 결의안은 채택되지 않았다.[22] 북한은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에 대한 연루를 계속 부인하며, 이 사건은 한국과 다른 국가들의 "날조"라고 주장한다.[23]
5. 2. 대한민국 사회에 미친 영향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특히 1987년 대통령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발생하여,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는데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 있다.1987년 12월 16일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1988년 2월 25일에는 대한민국에서 제6공화국 헌법이 시행되면서 제6공화국이 출범하였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한국 내에서 좌파 성향 세력이 활발해짐에 따라 사법부도 그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고, 2018년 7월 26일에는 본 사건이 전두환에 의한 자작극 반공 테러라는 주장을 하는 가족회에 대한 비판이 "명예훼손"이라 하여 형사 사건으로 처리된 것이 보도되었다.[96][97]
5. 3. 남북 관계에 미친 영향
이 사건으로 인해 남북 관계는 더욱 경색되었다. 미국 국무부는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한국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을 국가 지원 테러 국가 목록에 포함시켰다(2008년부터 2017년 제외).[18] 찰스 E. 레드먼 국무부 공보차관보는 1988년 1월 이 사건을 "대량 살인 행위"라고 언급하며, "북한의 책임에 대한 증거가 압도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모든 국가에 이 테러 행위에 대해 북한을 규탄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19]북한은 사건에 대한 연루를 부인하며 대한민국 정부의 조작이라고 주장하였으나,[23] 국제 사회의 비난과 고립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논의되었으나, 결의안은 채택되지 않았다.[20][21][22]
6. 의혹 및 논란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김광진 의원은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북한이 아닌 국정원의 자작극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였다.[32] 2007년 희생자 가족 단체는 사건 공식 발표에 의혹을 제기했고,[31]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사 결과 국정원 조작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32]
북한은 사건 개입을 부정하며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지만, 사건 지휘는 당시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였던 김정일이 한 것으로 여겨진다.[70] 북한은 사건 직후부터 “한국 정보기관 음모”라고 주장했고,[98] 한국인 노동자를 태운 비행기 폭파로 북한이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음모론을 지지했다.[98]
사건이 북한 공작원 소행이라는 한국 정부 발표에 대해 좌익 단체 등은 음모 또는 조작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일부에서는 북한 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주장을 받아들여 일본사회당과 일부 한일 언론 등에서 “북한 공작원 소행이 맞는가”,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 당선을 위해 한국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꾸민 음모가 아닌가”라는 자작극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본사회당은 조선로동당과 우호 관계여서 “북한은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북한 주장을 옹호했다. 일본사회당 이치이 카즈나리 국제국장이 북한 당국의 사건 관여를 인정하자 “문제 발언”으로 간주하고 철회하기도 했다.[99] 반면 일본공산당은 북한 관여가 명백하다며 일본사회당의 북한 옹호 자세를 비판했다.[99]
2005년 한국 정부는 조작설 진위를 조사해 “정치적 이용은 사실이지만, 사건 자체는 진실이다”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2020년 MBC은 대한항공 858편으로 추정되는 항공기 동체가 미얀마 해저에서 발견되었다고 보도했고, 유족들은 동체 인양과 진상 규명을 요구했으며, 한국 정부도 조사에 착수했다.[102]
7. 진상 규명 노력
사건 이후에도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2012년에는 미국의 기밀문서가 공개되어 사건 당시의 정황이 추가로 밝혀지기도 하였다.[116] 공개된 외교문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용 |
---|
김현희의 자살 기도 수법 등을 볼 때 북한 소행이 아닐 수 없음 |
추가 도발 방지를 위해 수집 증거를 구 소련과 공유 |
전두환 대통령은 김일성 부자를 "정신병자"라 칭하며 군사 보복 배제 |
한국의 침착한 대응에 미국은 놀라움을 표함 |
한국도 미심쩍어 한 범행 동기에 대해 미국은 자체 증거 확보 |
잠비아 대사의 의혹 제기와 미국의 반박 |
전두환 대통령은 올림픽을 위해 보복 자제 |
사건 발생 8일 만에 입을 연 김현희, 첫 한국말은 "미안합니다" |
북한의 "가짜" 주장에 대해 미국은 "김현희, 고정간첩 정확히 골라냈다"며 반박 |
2018년 11월 29일 JTBC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미얀마 현지취재, KAL858 잔해를 찾아서’편에서 뱅골만 안다만 해역에서 KAL858기로 추정되는 잔해를 수거했다고 보도했다.[117] 2020년 1월, 문화방송(MBC) 뉴스팀은 안다만해 수심 52m 지점에서 주요 잔해를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 어부들의 제보를 받고 음파 탐지기를 이용하여 조사한 결과, 날개 모양의 물체(길이 10m)와 동체로 추정되는 길이 27m의 물체를 발견했다. 수중 카메라로 촬영한 화질이 좋지 않은 영상이 한국 TV에서 방영되었고,[16] 비록 이것이 KAL 858의 잔해인지, 위치가 정확한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었지만, 일부 희생자 유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동체 인양을 요구했다.[17]
사건 직후부터 북한 당국은 “한국 정보기관의 음모”라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선전했다.[98] 그러나 한국인 노동자를 태운 비행기를 폭파하는 것으로 북한이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음모론을 지지했다.[98]
사건이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는 한국 정부 발표에 대해 좌익계 단체 등에서 음모 또는 조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부에서는 북한 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초기 주장을 받아들여, 일본사회당과 일부 한일 언론 등에서 “정말로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었는가”라며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현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가 꾸민 음모는 아닌가”라는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사회당은 오랫동안 북한의 지도 정당인 조선로동당과 우호 관계였기 때문에 북한 당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북한은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옹호했다. 그 때문에, 동 당의 이치이 카즈나리 국제국장이 북한 당국의 사건 관여를 인정하는 발언을 “문제 발언”으로 간주하고 철회시키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99] 반면 북한과 대립 관계였던 일본공산당은 일본사회당의 일련의 북한 옹호 자세에 대해 사건에 대한 북한의 관여는 명백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99] 그런 가운데, 일본사회당 기관지인 「사회신보」의 1988년 5월 24일자 지면은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은 일미한과 바레인 관계국에 의한 국제적인 사기극이다”라고 하는 것을 한국의 김정렬 전 총리가 인정하는 “양심 선언”을 했다는 보도를 했다.[100] 이 기사는 사실 확인 취재를 전혀 하지 않은 허위 보도였기에 기사 전면 취소와 편집장 경질이 이루어졌다. 이 보도의 뉴스 소스는 한국 정부로부터 반국가 단체로 인정받은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민통) 일본 지부 기관지 「민족시보」 1988년 5월 21일자 지면이었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중앙통신이 2월에 배포한 조작된 선전 뉴스였으며, 아사히신문이 “한국 전 총리가 이런 발언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하는 등 한일 언론도 무시했던 기사였다. 이 「사회신보」 기사를 타이핑한 것을 북한 기자가 판문점에서 “이런 정보도 있다”며 배포했다고도 한다.[101] 북한 측은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허위 정보를 발신했다.
2005년, 한국 정부는 조작설의 진위를 조사하여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건 자체는 진실이다”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0년에는 문화방송(MBC)이 대한항공 858편으로 추정되는 항공기 동체가 미얀마 해저에서 발견되었다고 보도했고, 유족들은 동체 인양과 진상 규명을 요구했으며, 한국 정부도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102]
8. 관련 인물
- 김현희: 1987년 12월 1일 아랍에미리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의해 김승일과 함께 검거되었다. 김승일은 청산가리 성분이 들어간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으며, 김현희는 자살 시도에 실패하여 대한민국으로 압송되었다.[112][113] 이후 김현희는 김정일의 사주로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 방해, 대통령 선거 혼란 야기, 대한민국 내 계급 투쟁 촉발을 위해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했다고 발표했다.
- 김승일: 1987년 12월 1일, 김현희와 함께 아랍에미리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의해 검거되었으나, 바레인에서 조사를 받던 중 청산가리 성분이 들어간 독을 먹고 자살하였다.[112][113]
- 김정일: 김현희에게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직접 지시한 인물로, 당시 북한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13]
-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로, 대한민국으로 탈북하였다. 그는 김일성이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8. 1. 김현희
1987년 12월 1일 아랍에미리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은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린 요주의 인물인 김승일과 김현희를 검거하였으나 음독 자살을 기도하였다고 발표했다. 김승일은 청산가리 성분이 들어간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으며, 자살 시도에 실패한 김현희는 재갈이 물린 채 대한민국으로 압송되었다.[112][113]1988년 1월 15일 김현희는 TV 기자 회견을 통해 김정일의 사주로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 방해와 대통령 선거 혼란 야기, 대한민국 내 계급 투쟁 촉발을 위해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했다고 발표했다.
1989년 2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은 김현희에 대해 살인죄, 항공기폭파치사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1990년 3월 27일 대법원에서 김현희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1990년 4월 12일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다.[23] 노태우 대통령은 "여기서 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북한 지도자들입니다."라며 "이 아이는 대한항공 858편 탑승객만큼이나 이 악한 정권의 희생자입니다."라고 말했다.
1991년 6월 2일 김현희는 수기집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1992년 7월 1일에는 《사랑을 느낄때면 눈물을 흘립니다》를 발간했다. 1997년 12월 28일 전직 안기부 직원과 결혼했다. 2012년 6월 17일과 2013년 1월 15일에는 TV조선과 MBC에 출연하여 대담 형식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1987년 12월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김현희는 대한민국 서울로 이송되어 독극물에서 회복되었고, 처음에는 일본에서 자란 중국 고아라고 주장하며 폭탄 테러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10] 그러나 바레인에서 심문을 받던 중 경찰관을 공격하고 권총을 빼앗으려 시도하는 등의 행동으로 당국은 더욱 의심을 품게 되었다.[10] 심문에서 김현희에 대한 주요 증거는 담배였는데, 분석 결과 대한민국에서 체포된 다른 북한 공작원들이 사용했던 종류와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10]
대한민국 대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연설한 최영진은 김현희가 대한민국에서 8일간의 심문 후 텔레비전 화면으로 대한민국 생활을 담은 영상을 보게 되었고, "서울 거리의 생활이 그녀가 믿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한민국이 가난과 부패로 가득한 미국의 괴뢰 국가라고 배워왔으나, 실제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을 보고 "북한에서 들었던 말들이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10] 그 후 김현희는 "여성 조사관의 품에 안겨" 폭탄 테러 사실을 자백하고, 한국어로 "용서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10]라고 말하며 북한 테러 활동의 도구로 이용당했다고 말했고, 자발적으로 상세한 자백을 했다.[10]
김현희는 3년 동안 잠복하며 테러를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16세 때 조선로동당에 의해 선발되어 여러 언어를 훈련받았고, 3년 후 북한 인민군이 운영하는 비밀 첩보 학교에서 손과 발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과 소총과 수류탄 사용법을 훈련받았다. 1987년 25세의 나이로 김현희는 대한항공 여객기에 폭탄을 설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 공격이 한국 통일을 영원히 가져올 것이라고 들었다.
1988년 1월, 김현희는 국가안전기획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자신과 동료 모두 북한 공작원이라고 발표했다. 바그다드 출발 9시간 후 폭발하도록 설정된 타이머가 부착된 약 350g의 C-4 폭약이 들어있는 라디오와 약 700ml의 PLX 폭약이 들어있는 술병을 여객기 짐칸의 위쪽 선반에 두고 왔다고 말했다.[12] 김현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며 사망자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또한 폭탄 테러 지시는 북한 최고 지도자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이 직접 작성했으며, 김정일은 대한민국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다가오는 1988년 국회의원 선거를 방해하며, 그 해 말 서울에서 열리는 198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국제팀들을 두렵게 하려고 했다.[13] "내 죄 때문에 백 번 죽어 마땅합니다."[14]라고 말했다.
1993년, 윌리엄 모로우 앤드 컴퍼니는 김현희가 북한의 첩보원으로 훈련받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실행한 과정을 자술한 책 ''내 마음의 눈물''을 출판했다. 김현희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참회의 표시로 이 책의 수익금 전액을 대한항공 858편 희생자 유족들에게 기증했다.[28] 이 책에는 그녀의 초기 훈련과 중국, 마카오, 유럽 전역에서의 생활, 폭파 사건 실행, 그에 따른 재판, 사면,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에의 통합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김현희는 이 책에서 김정일이 폭파 사건을 주도하고 공격 실행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녀의 이야기는 신상옥 감독이 1990년에 제작한 영화 ''마유미''로도 제작되었다.[29]
2010년, 김현희는 일본을 방문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북한에 납치되어 북한 첩보원들에게 일본인으로 위장하는 방법을 가르치도록 강요당했던 일본인 유족들을 만났다. 김현희는 일본 정부가 전세낸 전용기를 이용하여 일본에 도착했고,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 소유의 별장에 머물렀다.[30] 현재 김현희는 신변 보호를 위해 비밀 장소에 거주하며 희생자 유족이나 그녀를 배신자로 규정한 북한 정부의 보복을 우려하여 끊임없는 보호를 받고 있다.
8. 2. 김승일
1987년 12월 1일, 김현희와 함께 아랍에미리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의해 검거되었으나, 바레인에서 조사를 받던 중 청산가리 성분이 들어간 독을 먹고 자살하였다.[112][113] 김승일의 치아에는 납으로 충전된 충치가 있었는데, 이는 북한 치과에서 흔히 사용하는 충치 치료법이었다.[9] 사망한 '하치야 신이치'라는 이름의 남성은 북한 공작원 김승일로 밝혀졌다.[40]8. 3. 김정일
김정일은 김현희에게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직접 지시한 인물로, 당시 북한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13] 김현희는 1988년 1월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이 대한민국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1988년 국회의원 선거를 방해하며, 198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국제팀들을 두렵게 하기 위해 폭파를 지시했다고 증언했다.[13]
김현희의 저서 ''내 마음의 눈물''에 따르면, 김정일은 폭파 사건을 주도하고 공격 실행 명령을 내렸다.[28] 또한 김정일은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랑군 폭격 사건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9]
2001년, 희생자 유족과 우익 활동가들은 김정일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테러 혐의로 그를 체포할 것을 요구하며, 김정일의 증언을 비롯한 강력한 증거가 그가 폭파 사건의 최종 책임자임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25]
8. 4.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였던 태영호는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탈북하였다. 그는 김일성이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태영호에 따르면, 김일성은 1980년대부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 성장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을 직감했고, 특히 1988년 하계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을 질투하여 이 사건을 지시했다고 한다.[118]다만, 태영호는 김정은 건강이상설과 관련하여 99% 사망했다고 발언하는 등, 탈북자 출신 인사들이 흔히 보이는 북한 정보에 대한 과장된 발언으로 인해 신빙성이 높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119]
9. 관련 자료 및 작품
이 사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자료 및 작품들이 있다.
- 노래: RC 석세션의 시크릿 에이전트 맨(조니 리버스가 불렀던 "en" 테마송 커버)은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노래이다. 1988년에 발표한 앨범 COVERS에 수록되어 있으며, 서두에 김현희의 기자회견 음성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 영화: 한국에서는 신상옥 감독에 의해 『정치범 김현희/마유미(政治犯・金賢姫/真由美)』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1990년에 공개되었다.
- 다큐멘터리: 2020년, CNA 인사이더(CNA Insider)는 What Caused The 1987 Korean Air Flight 858 Explosion? | 아시아를 바꾼 하루영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36]
- 드라마:
- 일본에서는 2002년경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매스컴 보도가 과열되면서,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 TV 방송망(日本テレビ放送網) 계열에서 이 사건을 ‘완전 재현! 진실의 이야기 김현희 대한항공 폭파 사건~북한의 시나리오’라는 제목으로 텔레비전 드라마화하여 큰 반향을 불렀다. 이 드라마는 김현희 등 실행범 측에서 본 사건의 흐름을 추적한 것이었다.[103]
- 2007년 12월 15일, 후지텔레비전(フジテレビジョン) 계열의 토요 프리미엄(土曜プレミアム) 특별 기획으로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으로부터 20년 김현희를 잡은 남자들 ~봉인된 3일간~’이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었다. 원작은 사건에 관계된 외교관 중 한 명이었던 스나가와 마사순(砂川昌順)의 ‘극비 지령 김현희 구속의 진상’이며, 바레인과 아부다비에 주재했던 일본 외교관의 시점에서 그려진 것이다.[104]
- 2010년 12월 13일, TBS텔레비전(TBSテレビ) 계열의 월요 골든(月曜ゴールデン) 특별 기획 ‘대한항공기 폭파 23년째의 진실~독점 김현희 11시간의 고백&완전 재현 드라마・나는 이렇게 여자 테러리스트가 되었다…’가 방송되었다. 당초 11월 29일에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 및 긴박한 한반도 정세를 고려하여 방송을 연기했다.[105]
- 기타:
- 『세계! 깜짝 뉴스』(일본TV방송망(日本テレビ))의 "전직 북한 스파이! 김현희의 진실 2시간 특집"(2023년 3월 21일 방송)에서는 김현희에 대한 단독 인터뷰가 진행되었다.[106]
- 『월드 극한 미스터리』(TBS텔레비전(TBS))의 "대한항공 폭파 사건 김현희의 독점 고백"(2023년 11월 15일 방송)[107]
9. 1. 관련 영화
RC 석세션의 시크릿 에이전트 맨(조니 리버스가 불렀던 "en" 테마송 커버)은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노래이다. 1988년에 발표한 앨범 COVERS에 수록되어 있으며, 서두에 김현희의 기자회견 음성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한국에서는 신상옥 감독에 의해 『정치범 김현희/마유미(政治犯・金賢姫/真由美)』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1990년에 공개되었다.
9. 2. 관련 다큐멘터리
2020년, CNA 인사이더(CNA Insider)는 What Caused The 1987 Korean Air Flight 858 Explosion? | 아시아를 바꾼 하루영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36]일본에서는 2002년경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매스컴 보도가 과열되면서,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 TV 방송망(日本テレビ放送網) 계열에서 이 사건을 ‘완전 재현! 진실의 이야기 김현희 대한항공 폭파 사건~북한의 시나리오’라는 제목으로 텔레비전 드라마화하여 큰 반향을 불렀다. 이 드라마는 김현희 등 실행범 측에서 본 사건의 흐름을 추적한 것이었다.[103]
2007년 12월 15일, 후지텔레비전(フジテレビジョン) 계열의 토요 프리미엄(土曜プレミアム) 특별 기획으로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으로부터 20년 김현희를 잡은 남자들 ~봉인된 3일간~’이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었다. 원작은 사건에 관계된 외교관 중 한 명이었던 스나가와 마사순(砂川昌順)의 ‘극비 지령 김현희 구속의 진상’이며, 바레인과 아부다비에 주재했던 일본 외교관의 시점에서 그려진 것이다.[104]
2010년 12월 13일, TBS텔레비전(TBSテレビ) 계열의 월요 골든(月曜ゴールデン) 특별 기획 ‘대한항공기 폭파 23년째의 진실~독점 김현희 11시간의 고백&완전 재현 드라마・나는 이렇게 여자 테러리스트가 되었다…’가 방송되었다. 당초 11월 29일에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 및 긴박한 한반도 정세를 고려하여 방송을 연기했다.[105]
참조
[1]
뉴스
North Korean ex-spy who blew up jetliner: Don't trust Kim Jong Un
https://www.nbcnews.[...]
2018-05-05
[2]
Verbatim Report
1988-02-1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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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고위당국자, 수년전 KAL기 폭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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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가짜" 주장에 美 "김현희, 고정간첩 정확히 골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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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건강 이상·99% 사망" 주장 태영호·지성호 망신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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