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리시다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리시다스는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헤로도토스의 《역사》, 테오크리토스의 《목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루카누스의 《파르살리아》 등에 등장한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 존 밀턴은 친구 에드워드 킹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목가적 애가 "리시다스"를 통해 이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 시는 죽음, 불멸, 기독교적·이교적 이미지의 혼합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18세기 문학 평론가 새뮤얼 존슨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리시다스"는 이후 여러 문학 작품과 음악에 영감을 주었으며, 윌리엄 딘 하웰스, 토마스 울프, 존 브루너, 존 베리먼 등의 작품 제목에 영향을 미쳤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존 밀턴의 시 - 실낙원
    존 밀턴의 《실낙원》은 창세기를 바탕으로 사탄의 반란과 인류의 타락, 구원의 가능성을 다룬 5음보격 암시경 서사시로, 자유 의지, 선악, 죄와 구원 등의 주제를 탐구하며 기독교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지만 논쟁적인 해석과 비평의 역사를 지닌다.
  • 존 밀턴의 시 - 최근 피에몬테에서의 대학살
    최근 피에몬테에서의 대학살은 1663년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가 발도파의 종교적 이단성을 척결하고 재산을 약탈하려는 의도로 피에몬테 지역의 개신교도인 발도파를 박해한 사건으로, 마을 파괴와 살인이 발생했으며 유럽 각국의 비난과 지원을 받았다.
리시다스

2. 리시다스라는 이름의 역사

"리시다스"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전통적인 목가적 인물의 이름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살라미스의 아테네 의원 "리시다스"(Λυκίδας)가 페르시아와의 타협안을 제안했다가 돌에 맞아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2] 이후 이 이름은 테오크리토스의 《목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루카누스의 《파르살리아》 등에도 등장한다.[2]

2. 1. 헤로도토스의 역사

헤로도토스는 그의 저서 《역사》 제9권(기원전 5세기)에서 살라미스의 아테네 의원 "리시다스"(Λυκίδας)라는 인물을 언급한다. 그는 동료 시민들에게 적국인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가 제안한 타협안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다. 이 타협안을 제안한 것에 대해 적과의 공모 혐의를 받은 리시다스는 "의회에 있던 자들과 밖에 있던 자들[이] 격분하여..." 돌에 맞아 죽었다.[2] 살라미스에서 리시다스에 대한 소란이 있자, 아테네 여성들은 곧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차렸다. 이에 남자들의 말 한마디 없이, 그들은 함께 모여 서로를 부추기고 군중과 함께 리시다스의 집으로 몰려가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돌을 던졌다.[2]

2. 2. 테오크리토스와 베르길리우스

리시다스는 테오크리토스의 《목가》에서 "목가 7"의 여행 중 만나는 시인이자 염소치기 목동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이 이름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에도 여러 번 등장하며, 도리아 계열의 전형적인 목동 이름으로, 전원시 형식에 적합하다.[2]

2. 3. 오비디우스와 루카누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켄타우로스 리시다스가 등장한다.[2] 루카누스의 《파르살리아》 3.636절에는 리시다스라는 이름의 선원이 쇠 갈고리에 의해 배의 갑판에서 찢겨 나가는 장면이 묘사된다.[2]

3. 목가적 애가로서의 "리시다스"

밀턴은 〈리시다스〉에서 친구 에드워드 킹의 죽음을 애도하며, 목가시의 전통을 따랐다.[1] 그는 킹을 성직자임에도 "사심 없는" 인물로 묘사하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잉글랜드 국교회의 부패하고 이기적인 성직자들과 대조된다고 비판한다.[1]

〈리시다스〉는 단순한 목가적 애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구조와 다양한 스타일, 패턴이 중첩되어 있다.[5] 이 시는 무례한 시골뜨기(양치기)와 성 베드로를 암시하는 "갈릴리 호수의 사공"의 두 목소리를 특징으로 한다. 시골뜨기는 리시다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세상의 질서에 대한 믿음을 잃지만,[7] 결국 "불멸에 대한 믿음"으로 슬픔을 극복한다.[10]

109행에서 "갈릴리 호수의 사공"은 잉글랜드 교회 성직자들의 타락을 비난한다.[13] 그는 구약성경의 예언자처럼 행동하며, 부도덕한 교회 지도자들을 양떼 속의 늑대에 비유하고 "양손 엔진"을 경고한다.[13] 이는 밀턴이 잉글랜드 성직자들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된다.[15] 교회는 이 시에 당황하여 밀턴 사후 거의 20년 동안 금서로 지정했다.

3. 1. 르네상스 시대의 목가

르네상스 시대 작가와 시인들은 목가적 방식을 통해 이상적인 삶을 표현했다.[5] 존 밀턴은 〈리시다스〉에서 이 방식을 사용하여 죽음과 기억의 병치를 드러냈다.[3]

시는 "시적 명성의 상징"인 월계수와 미르테의 목가적 이미지로 시작한다.[4] 화자는 리시다스의 죽음에 대한 슬픔으로 비가를 쓴다.[4] 밀턴은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의 경험을 우화적으로 표현했다. 대학은 화자와 리시다스가 "양육"된 "바로 그 언덕", 연구는 목동들이 "들판을 몰고" "가축을 살찌우는" 일에 비유된다.[4] 케임브리지 교수는 "우리의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했던 늙은 다모에타스"이다.[4] 리시다스가 떠난 후 자연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데, 이는 버드나무, 개암나무 숲, 숲, 동굴이 리시다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 이입'이다.[4]

포이보스는 명성은 죽지 않고 영원하며 유피테르 (신)가 심판의 날에 직접 증언한다고 대답한다.[1]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킹/리시다스는 부활한 인물로 나타나, 그리스도의 부활력을 통해 죽음으로 이끄는 물에서 구출된다.[1]

18세기 문학 평론가 새뮤얼 존슨은 목가적 형식을 "쉽고, 저속하며, 따라서 혐오스럽다"고 비판했다.[6] 그는 밀턴 시대와 자신의 시대에 목가적 표현이 무관하고 진정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 비효율적이라고 보았다.[6] 또한 "리시다스"에서 기독교적 이미지와 이교도적 이미지를 혼합한 것을 비판했다.[6]

3. 2. 월계수와 도금양

월계수와 미르테(도금양)는 시의 시작에 등장하며, "시적 명성의 상징"이다.[4] "그 열매가 아직 익지 않았으므로 시인은 아직 펜을 잡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4]라는 구절은 시인의 미성숙함을 나타낸다.

3. 3. 케임브리지에서의 추억

밀턴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킹과 함께 했던 시절을 목가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은 케임브리지의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함께 공부하며 "바로 그 언덕"에서 "양육"되었고,[4] 이들의 학문은 목동들이 "들판을 몰고" "가축을 살찌우는" 일에 비유되었다.[4] 급우들은 "거친 사티로스"와 "굽 갈린 파우누스"로 묘사되었고,[4] 이들이 함께 즐긴 드라마와 코미디, 오락은 "시골 노래… / 오트 피리에 맞춰 조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4] 케임브리지 교수는 "우리의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했던 늙은 다모에타스"로 표현되었다.[4]

킹의 죽음 이후, 밀턴은 자연의 변화를 통해 슬픔을 드러냈다. 버드나무, 개암나무 숲, 숲, 동굴이 리시다스(킹)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 이입'을 보였다.[4]

3. 4. 포이보스의 삽입

포이보스의 목소리는 고전 로마 시의 신화에 나오는 이미지로 삽입되어, 명성은 죽지 않고 영원하며 유피테르(신)가 심판의 날에 직접 증언한다고 대답한다.[1]

3. 5. 부활 모티프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킹/리시다스는 부활한 인물로 나타난다. 그는 새벽에 태양 광선에 의해 빛나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의 죽음을 초래한 물에서 구원받고 영원한 보상을 위해 하늘로 웅장하게 승천한다.[1]

3. 6. 새뮤얼 존슨의 비판

18세기 영국의 문학 평론가 새뮤얼 존슨존 밀턴의 "리시다스"에 나타난 인위적인 목가 형식과 이교도적 이미지, 기독교적 이미지가 혼합된 것을 비판했다.[6] 존슨은 목가적 표현이 진부하여 진정한 감정을 전달하기에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6]

존슨은 화자와 죽은 이를 목동으로 묘사하는 전통적인 목가적 이미지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개연성이 부족하여 "항상 마음에 불만을 강요한다"고 주장했다.[6]

특히 존슨은 "리시다스"에서 기독교적 이미지와 이교도적 이미지 및 주제를 혼합한 것을 비판하며, 이를 시의 "더욱 심각한 결점"으로 보았다. 그는 "리시다스"가 "이교 신들—유피테르와 포이보스, 넵투누스와 아이올루스"의 "사소한 허구"를 "가장 끔찍하고 신성한 진실과 나란히 놓는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조합이 결코 경외심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6]

존슨은 "분명히, 그 저자를 알지 못했다면 리시다스를 즐겁게 읽었다고 상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6]

4. 무례한 시골뜨기 (The Uncouth Swain)

《리시다스》는 무례한 시골뜨기(양치기)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그는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고 세상의 질서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7] 시골뜨기는 슬픔 속에서 기독교와 이교도의 개념을 모두 사용하며, 리시다스의 시신을 두 설정 모두에 정신적으로 위치시킨다.[9] 리시다스는 익사했기 때문에 시신을 찾을 수 없었고, 이는 시골뜨기에게 큰 관심사였다.[9] 궁극적으로 시골뜨기의 슬픔과 믿음의 상실은 "불멸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된다.[10]

4. 1. 슬픔과 믿음의 상실

"리시다스"는 일반적으로 단가로 여겨지지만, 사실 두 개의 뚜렷한 목소리를 특징으로 하는데, 그 중 첫 번째는 무례한 시골뜨기(또는 양치기)의 목소리이다. 이 작품은 시골뜨기가 그의 친구 리시다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목가적인 세상에서 펼쳐진다. "리시다스에서의 믿음과 불신"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로렌스 W. 하이먼은 시골뜨기가 "죽음이 젊은이를 덮치는 세상을 허용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믿음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7] 마찬가지로 로렌 쇼헤트는 시골뜨기가 이 애가의 이 시점에서 목가적 배경의 고전적인 이미지에 자신의 슬픔을 투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8]

시 전체에서 시골뜨기는 기독교와 이교도의 개념을 모두 사용하며, 러셀 프레이저에 따르면 리시다스의 시신을 두 설정 모두에 정신적으로 위치시킨다.[9] 예로는 생명체로서의 죽음에 대한 언급, "거룩한 우물의 자매들", 오르페우스, 리시다스를 덮친 눈먼 푸리, 그리고 리시다스가 익사 후 지역 신(해안의 "지니어스)이 되었다고 상상되는 장면이 있다. 킹과 마찬가지로 리시다스도 익사했기 때문에 시신을 찾을 수 없고, 시신의 부재는 시골뜨기에게 큰 관심사이다.[9]

궁극적으로 시골뜨기의 슬픔과 믿음의 상실은 "불멸에 대한 믿음"에 의해 극복된다.[10] 많은 학자들은 이 결론에 대한 시 내의 논리적 근거가 거의 없지만, "리시다스"가 효과적이기 위해 합리적인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11] 프레이저는 밀턴의 목소리가 시골뜨기의 목소리에 잠시 끼어들어 다른 시골뜨기들에게 리시다스가 실제로 죽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주장할 것이다(여기서 불멸에 대한 믿음을 볼 수 있다). 이 지식은 화자의 "무례한" 특성과 일치하지 않는다.[12]

4. 2. 기독교와 이교도의 개념

시골뜨기는 기독교와 이교도의 개념을 모두 사용하여 리시다스의 죽음을 슬퍼한다.[9] 예로는 생명체로서의 죽음, "거룩한 우물의 자매들", 오르페우스, 리시다스를 덮친 눈먼 푸리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리시다스가 익사 후 해안의 지니어스가 되었다고 상상하는 장면이 있다.[9]

4. 3. 시신 없는 죽음

킹과 마찬가지로 리시다스도 익사했기 때문에 시신을 찾을 수 없었고, 시신의 부재는 시골뜨기에게 큰 관심사였다.[9]

4. 4. 불멸에 대한 믿음

시골뜨기는 친구 리시다스의 죽음을 애도하며, 목가적인 세상에서 슬픔을 느낀다. 로렌스 W. 하이먼은 시골뜨기가 "죽음이 젊은이를 덮치는 세상을 허용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믿음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7] 로렌 쇼헤트는 시골뜨기가 이 애가의 이 시점에서 목가적 배경의 고전적인 이미지에 자신의 슬픔을 투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8]

시 전체에서 시골뜨기는 기독교와 이교도의 개념을 모두 사용하며, 리시다스의 시신을 두 설정 모두에 정신적으로 위치시킨다.[9] 예로는 생명체로서의 죽음에 대한 언급, "거룩한 우물의 자매들", 오르페우스, 리시다스를 덮친 눈먼 푸리 등이 있다. 리시다스는 익사했기 때문에 시신을 찾을 수 없고, 시신의 부재는 시골뜨기에게 큰 관심사이다.[9]

궁극적으로 시골뜨기의 슬픔과 믿음의 상실은 "불멸에 대한 믿음"에 의해 극복된다.[10]

5. 사공 (The Pilot)

109행에서 등장하는 "갈릴리 호수의 사공"은 성 베드로를 상징하며, 잉글랜드 교회의 부패한 성직자들을 비판한다.[13]

5. 1. 성 베드로의 역할

109행에서 시에 등장하는 "갈릴리 호수의 사공"은 일반적으로 성 베드로를 의미하며, 심판관 역할을 하면서 잉글랜드 교회 성직자들 사이에서 발견된 무가치한 다수의 구성원들을 비난한다.[13] 성 베드로는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그들의 지도력의 심각한 결과에 대해 말할 때 구약성경의 예언자 역할을 한다.[13] 그는 이 부도덕한 교회 지도자들을 양떼 속의 늑대에 비유하며 "양손 엔진"을 경고하는데, E. S. 드 비어에 따르면, 이 "양손 엔진"은 강력한 무기로 여겨지며 스가랴서의 일부를 빗댄 것이다.[13]

드 비어는 성 베드로가 "예언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그 용어가 현대적 의미가 아닌 성경적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성경 예언자들은 예언자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사자 역할을 더 자주 했기 때문에, 밀턴은 성 베드로를 통해 교회의 미래를 예언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14]

드 비어는 "리시다스"에서 성 베드로의 등장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서의 그의 지위와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한다. 또한 성 베드로는 잉글랜드 교회 내에서 어떤 특정 지위도 부여받지 않았다. 대신 드 비어는 밀턴이 성 베드로를 통해 잉글랜드 성직자들의 무가치한 구성원들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도적 권위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15] 프레이저 역시 성 베드로가 밀턴의 목소리가 시에 들어갈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데 동의한다.[16]

교회는 이 시에 의해 매우 당황하여 밀턴 사후 거의 20년 동안 이 시를 금지했다.

5. 2. 밀턴의 목소리

109행에서 시에 등장하는 "갈릴리 호수의 사공"(성 베드로)의 목소리는 심판관 역할을 하며, 잉글랜드 교회 성직자들 사이에서 발견된 무가치한 다수의 구성원들을 비난한다. 성 베드로는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그들 지도력의 심각한 결과에 대해 말할 때 구약성경의 예언자 역할을 한다.[13] 그런 다음 그는 이 부도덕한 교회 지도자들을 양떼 속의 늑대에 비유하며 "양손 엔진"을 경고한다. E. S. 드 비어에 따르면, 이 "양손 엔진"은 강력한 무기로 여겨지며 스가랴서의 일부를 빗댄 것이다.[13]

드 비어는 성 베드로가 "예언자"로서의 역할은 현대적 의미가 아닌 성경적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성경 예언자들은 예언자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사자 역할을 더 자주 했기 때문에, 밀턴은 성 베드로를 통해 교회의 미래를 예언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고 드 비어는 말한다.[14]

드 비어는 "리시다스"에서 성 베드로의 등장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서의 그의 지위와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한다. 또한 성 베드로는 잉글랜드 교회 내에서 어떤 특정 지위도 부여받지 않았다. 대신 드 비어는 밀턴이 성 베드로를 통해 잉글랜드 성직자들의 무가치한 구성원들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도적 권위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15] 프레이저 역시 성 베드로가 밀턴의 목소리가 시에 들어갈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데 동의한다.[16]

5. 3. 교회에 의한 금지

Lycidas영어에서 성 베드로는 잉글랜드 교회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그들의 무가치함을 비난한다.[13] 성 베드로는 잉글랜드 교회 내에서 특정 지위를 부여받지 않았지만, 밀턴은 성 베드로를 통해 자신의 불만을 표현했다.[15] 교회는 이 시에 매우 당황하여 밀턴 사후 거의 20년 동안 이 시를 금지했다.

6. 결말 (The conclusion)

〈리시다스〉의 결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17] 이 시는 죽음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20] 애가는 분명히 죽음과 절대적인 끝으로 끝나지만, 뒤돌아보며 버려진 목가적인 세계를 바라보면서 나아가 완전한 원을 그리며 끝난다. 이러한 결말의 양면성은 창조와 파괴의 혼합이다.[21] "너의 큰 보상(thy large recompense)"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폴 알퍼스는 리시다스의 천국에서의 감사가 그의 상실에 대한 대가라고 말한다.[22] "너의(thy)"라는 단어는 "큰 보상(large recompense)"의 대상이자 중재자이며, 신성한 존재 또는 이교도적 천재의 의미를 지닌다.[23]

시의 마지막 구절은 존 밀턴이 곧 이탈리아로 떠날 것을 언급하는 것일 수 있으며, 베르길리우스의 10번째 ''목가''의 마지막 부분을 연상시킨다.

Surgamus; solet esse gravis cantantibus umbra; iuniperi gravis umbra; nocent et frugibus umbrae. Ite domum saturae, venit Hesperus, ite capellae.la자, 일어나자: 그림자는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해롭다; 향나무가 드리운 그림자는 해롭다, 그림자는 작물에도 해롭다. 이제 집으로 가자, 배불리 먹고 — 저녁별이 떠오른다 – 가자, 나의 암염소들아, 가자.


6. 1. 회고적 그림

조나단 포스트는 이 시가 시인이 시를 "불러" 창조하는 회고적인 그림으로 끝난다고 주장한다.[18] 비평가 로렌 쇼엣에 따르면, 리시다스는 너무나 관련되거나 그를 만든 대상에 얽매여 있는 목가적인 평원에서 초월하여 땅을 떠나 불멸이 된다.[8] 그녀는 "그는 확산되어 그의 시체의 마지막 위치, 즉 몸을 객체로 경험하는 곳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 완전히 내재적이지도 (그의 몸은 사라졌으므로) 완전히 초월적이지도 않다 (그는 여전히 땅에 있으므로)."라고 설명한다.[19]

6. 2. 초월과 불멸

여러 가지 해석이 결말에 대해 제시되었다.[17] 조나단 포스트는 이 시가 시인이 시를 "불러" 창조하는 회고적인 그림으로 끝난다고 주장했다.[18] 비평가 로렌 쇼엣에 따르면, 리시다스는 너무나 관련되거나 그를 만든 대상에 얽매여 있는 목가적인 평원에서 초월하여 땅을 떠나 불멸이 된다.[8] 그녀는 "그는 확산되어 그의 시체의 마지막 위치, 즉 몸을 객체로 경험하는 곳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 완전히 내재적이지도 (그의 몸은 사라졌으므로) 완전히 초월적이지도 않다 (그는 여전히 땅에 있으므로)."라고 하였다.[19]

6. 3. 이중성

결말에 대해 여러 해석이 제시되었다.[17] 조나단 포스트는 이 시가 시인이 시를 "불러" 창조하는 회고적인 그림으로 끝난다고 주장한다.[18] 비평가 로렌 쇼엣에 따르면, 리시다스는 그를 만든 대상에 너무 얽매여 있는 목가적인 평원에서 초월하여 땅을 떠나 불멸이 된다.[8] 그녀는 "그는 확산되어 그의 시체의 마지막 위치, 즉 몸을 객체로 경험하는 곳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 완전히 내재적이지도 (그의 몸은 사라졌으므로) 완전히 초월적이지도 않다 (그는 여전히 땅에 있으므로)."라고 말한다.[19]

이 시는 모호한 결말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된다.[20] 이 애가는 분명히 죽음과 절대적인 끝으로 끝나지만, 뒤돌아보며 버려진 목가적인 세계를 바라보면서 나아가 완전한 원을 이루며, 결말의 양면성은 창조와 파괴의 혼합이 된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thy large recompense(너의 큰 보상)"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폴 알퍼스가 말했듯이, 리시다스의 천국에서의 감사는 그의 상실에 대한 대가이다.[22] "thy(너의)"라는 단어는 "large recompense(큰 보상)"의 대상이자 중재자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또한 신성한 고위 존재 또는 이교도적 천재의 의미를 유지한다.[23]

시의 마지막 구절은 존 밀턴이 곧 이탈리아로 떠날 것을 언급하는 것일 수 있으며, 베르길리우스의 10번째 ''목가''의 마지막 부분을 연상시킨다.

자, 일어나자: 그림자는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해롭다;
향나무가 드리운 그림자는 해롭다, 그림자는 작물에도 해롭다.
이제 집으로 가자, 배불리 먹고 —
저녁별이 떠오른다 – 가자, 나의 암염소들아, 가자.


6. 4. "너의 큰 보상"

이 시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된다.[20] 이 애가(monody)는 분명히 죽음과 절대적인 끝으로 끝나지만, 뒤돌아보며 버려진 목가적인 세계를 바라보면서 나아가 완전한 원을 이루며, 결말의 양면성은 창조와 파괴의 혼합이 된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thy large recompense(너의 큰 보상)"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폴 알퍼스가 말했듯이, 리시다스의 천국에서의 감사는 그의 상실에 대한 대가이다.[22] "thy(너의)"라는 단어는 "large recompense(큰 보상)"의 대상이자 중재자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또한 신성한 고위 존재 또는 이교도적 천재의 의미를 유지한다.[23]

6. 5. 베르길리우스의 영향

시의 마지막 구절:

:And now the Sun had stretch'd out all the hills,

:And now was dropt into the Western bay;

:At last he rose, and twitch'd his Mantle blew:

:To morrow to fresh Woods, and Pastures new

는 밀턴이 곧 이탈리아로 떠날 것을 언급하는 것일 수 있으며, 베르길리우스의 10번째 ''목가''의 마지막 부분을 연상시킨다.[17]

Surgamus; solet esse gravis cantantibus umbra; iuniperi gravis umbra; nocent et frugibus umbrae. Ite domum saturae, venit Hesperus, ite capellae.|자, 일어나자: 그림자는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해롭다; 향나무가 드리운 그림자는 해롭다, 그림자는 작물에도 해롭다. 이제 집으로 가자, 배불리 먹고 — 저녁별이 떠오른다 – 가자, 나의 암염소들아, 가자.la


7. Justa Edouardo King Naufrago

"리시다스"는 원래 에드워드 킹을 추모하는 시집 ''Justa Edouardo King Naufrago''에 수록된 작품 중 하나였다.[24]

7. 1.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시집

"리시다스"는 원래 에드워드 킹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35편과 함께 시적 선집으로 처음 출판되었다. 이 시집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집되었으며, 대부분 로드 대주교의 보수적인 교회 정치에 헌신한 대학교 학자들이 썼다. 시인들 중에는 존 클리블랜드, 조셉 보몬트, 헨리 모어가 있었다.[24]

7. 2. 밀턴의 입장

밀턴은 "주교에 의해 교회에서 쫓겨났다"고 보고했는데,[25] 졸업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자리를 얻는 데 실패했고, 그의 종교적 견해는 더욱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7. 3. 스타일과 형식의 대조

밀턴의 시는 시집의 다른 작품들과 스타일과 형식 면에서 강하게 대조된다.[26] 밀턴은 구식의 전원시 스타일로 "리시다스"를 썼지만, 대부분의 시는 1630년대에 유행했던 로드 대주교의 의식주의와 관련된 바로크 미학을 채택했다.[26] "리시다스"는 ''Justa Edouardo King Naufrago''에 실린 시적 작품을 풍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27]

7. 4. 풍자 가능성

"리시다스"는 원래 에드워드 킹의 죽음을 애도하는 35편의 다른 시와 함께 시적 선집에 처음 출판되었다.[24]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집되었으며, 대부분의 시는 로드 대주교의 보수적인 교회 정치에 헌신한 대학교 학자들에 의해 쓰였다. 시인들 중에는 존 클리블랜드, 조셉 보몬트, 헨리 모어가 있었다.[24] 반면에 밀턴은 "주교에 의해 교회에서 쫓겨났다"고 보고했는데,[25] 졸업 후 케임브리지에서 자리를 얻는 데 실패했고, 그의 종교적 견해는 더욱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의 시의 스타일과 형식 역시 선집의 다른 텍스트와 강하게 대조된다. 대부분의 시가 1630년대에 유행했던 로디안 의식주의와 관련된 바로크 미학을 채택한 반면, 밀턴은 구식의 전원시 스타일로 "리시다스"를 썼다.[26] "리시다스"는 실제로 ''Justa Edouardo King Naufrago''에 실린 시적 작품을 풍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27]

8. 1645년 재수록

밀턴은 1645년 자신의 시집 《존 밀턴 씨의 시집》에 〈리시다스〉를 재수록하면서, 짧은 산문 서문을 추가했다. 서문에는 "이 단가에서 저자는 1637년 아일랜드 해의 체스터에서 항해하던 중 불행히도 익사한, 학식이 풍부한 친구를 애도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당시 절정에 달했던 부패한 성직자들의 파멸을 예언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28]

8. 1. 장기 의회와 밀턴

밀턴은 1645년에 이 시를 재수록했는데, 이때는 그가 충성을 바치던 장기 의회가 집권하고 있었다. 따라서 밀턴은 시에 "부패한 성직자", 즉 "눈 먼 입들"(119)의 파멸에 대한 예언적 메모를 추가할 수 있었다.[28]

9. 영향

이 시는 매우 인기가 많았다. 존 밀턴의 최고의 시로, 어떤 사람들은 영어에서 가장 위대한 서정시로 칭송했다.[29] 그러나 새뮤얼 존슨은 인위적인 면 때문에 이 시를 혐오하며 "어조가 거칠고, 운율이 불확실하며, 리듬이 즐겁지 않다"라고 평가했고, "이 시에는 진실이 없으므로 자연이 없고, 새로운 것이 없으므로 예술도 없다"라고 불평했다.[30]

9. 1. 문학 작품에 미친 영향

"리시다스"의 구절들은 다양한 문학 작품의 제목과 주제에 영감을 주었다. 윌리엄 딘 하웰스는 1895년 시집 ''다양한 펜촉의 정지(Stops of Various Quills)''의 제목과 주제를 이 시에서 따왔다.[31] 토마스 울프 또한 "리시다스"의 한 구절에서 소설 ''고향으로, 천사여(Look Homeward, Angel)''의 제목을 따왔다.

:이제 고향으로, 천사여, 연민으로 녹아내리소서:

:오, 돌고래들아, 불행한 젊은이를 실어 나르소서. (163–164)

하워드 스프링의 1940년 정치 소설 ''명성은 박차다(Fame Is the Spur)''의 제목과 존 브루너(소설가)의 ''양은 위를 쳐다본다(The Sheep Look Up)''의 제목은 각각 이 시의 구절과 125행에서 따온 것이다.

존 베리먼의 단편 소설 "씻겨져 멀리 사라져(Wash Far Away)"의 제목은 시집 ''시인의 자유(Freedom of the Poet)''에서 따왔다.

:아, 슬프다! 너는 해안과 울리는 바다로 인해

:네 뼈가 던져질 곳으로 멀리 씻겨져 가니, (154–155)

Cardiacs의 1992년 앨범 ''천국에서 태어나 영원히 밝게(Heaven Born and Ever Bright)''에 수록된 "알파벳 비즈니스 컨선(페이들리스 스플렌더의 고향)(The Alphabet Business Concern (Home of Fadeless Splendour))"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맹목적인 분노가 혐오스러운 가위와 함께 다가온다

그리고 가늘게 꼬인 생명을 찢는다. (75–76)

9. 2. 음악 작품에 미친 영향

Cardiacs의 앨범 ''천국에서 태어나 영원히 밝게(Heaven Born and Ever Bright)''(1992)에 수록된 "알파벳 비즈니스 컨선(페이들리스 스플렌더의 고향)(The Alphabet Business Concern (Home of Fadeless Splendour))"에는 〈리시다스〉의 다음 구절이 인용되었다.[29]

:맹목적인 분노가 혐오스러운 가위와 함께 다가온다

:

:그리고 가늘게 꼬인 생명을 찢는다. (75–76)

참조

[1] 논문 On the Value of Lycidas 1997-01-01
[2] 서적 Herodotus: The Histories Penguin Classics
[3] 뉴스 Milton, John http://search.eb.com[...] Encyclopædia Britannica 2008-11-03
[4] 간행물 Lycidas. http://ezp.slu.edu/l[...] Masterplots II: Poetry 2008-11-03
[5] 논문 The Pastoral Elegy and Milton's Lycidas 1910-01-01
[6] 서적 The Lives of the Most Eminent English Poets https://archive.org/[...] Printed for C. Bathurst, [etc.]
[7] 논문 Belief and Disbelief in Lycidas 1972-01-01
[8] 간행물 Subjects and Objects in Lycidas. http://muse.jhu.edu/[...] 2005
[9] 간행물 Milton’s Two Poets. http://ezp.slu.edu/l[...] 1994
[10] 문서 Hyman, 532
[11] 문서 Hyman, 532–533
[12] 문서 Fraser, 116
[13] 논문 St. Peter in 'Lycidas' 1947-01-01
[14] 문서 de Beer, 62
[15] 문서 de Beer, 60
[16] 문서 Fraser 109
[17] 간행물 Helpful Contraries: Carew's 'Donne' and Milton's Lycidas. 2008-11-03
[18] 간행물 Helpful Contraries: Carew's 'Donne' and Milton's Lycidas. 2008-11-03
[19] 문서 Shohet 113
[20] 간행물 Heroic Contradiction: Samson and the Death of Turnus. 2008
[21] 문서 Kilgour 224
[22] 논문 Lycidas and Modern Criticism 1982-01-01
[23] 문서 Alpers 494
[24] 논문 '"Who would not sing for Lycidas?": Milton\'s Satirical Reform of the Justa Edouardo King' 2018
[25] 문서 CPW 1:823
[26] 문서 Gadaleto, p. 156
[27] 문서 Gadaleto, p. 158
[28] 서적 Milton's Lycidas https://books.google[...] Ginn and Heath
[29] 서적 The best poems of the English language: From Chaucer through Frost HarperCollins Publishers 2004
[30] 웹사이트 Clement A. Price Institute on Ethnicity, Culture, and the Modern Experience – Rutgers SASN https://sasn.rutgers[...]
[31] 서적 Continuing Bonds with the Dead: Parental Grief and Nineteenth-Century American Authors The University of Alabama Press 201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