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노이어는 독일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는 샬케 04,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으며, 샬케 04에서 DFB-포칼 우승,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11회, DFB-포칼 5회, UEFA 챔피언스 리그 2회 등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2014 FIFA 월드컵 우승, 2010 FIFA 월드컵 3위를 기록했으며, UEFA 유로 2024에서는 대회 최다 출장 골키퍼 기록을 세웠다. 그는 뛰어난 반사 신경과 스위퍼 키퍼 능력으로 현대 골키퍼의 역할을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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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어는 고향 클럽 FC 샬케 04의 전 연령대의 유소년팀을 거치며 성장했고 2005년에 1군으로 승격되었다.[323]
3. 구단 경력
3. 1. 샬케 04
고향 겔젠키르헨의 클럽인 샬케 04 유스 출신이다. 14세까지는 축구와 함께 테니스도 병행했다[265]。2006년 8월 19일 알레마니아 아헨전에서 분데스리가 데뷔를 하였고, 프랑크 로스트를 대신하여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했다. 겨울에 로스트는 함부르크 SV로 이적했다.
|upright=.8|thumbnail|alt=Neuer in Schalke shirt and cap|마누엘 노이어 (2007년)]]
그는 2006-07 시즌에 부상당한 프랑크 로스트 골키퍼를 대신하여 출전하며 분데스리가 첫 출전을 기록하였다. 20세의 나이로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 이후 로스트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꿰찼다.[324] 그는 구단의 신뢰를 져버리지 않았고,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그는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상인 옌스 레만의 후계자로써 적임자임을 인증받고, 훗날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그의 자리를 가져가게 되었다.[325]
노이어는 샬케 04 II에서 2003-04 시즌,[34] 2004-05, 2006-07,[35] 2007-08, 그리고 2008-09 시즌에 뛰었다.[35] 노이어는 고향팀인 샬케 04에서 모든 연령대 팀을 거쳤으며, 2005년에 프로 계약을 맺었다. 노이어는 2005-06 시즌에는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36] 하지만 벤치에 여러 번 앉았고, 2005년 DFL-리가포칼에서 출전하지 않고 우승을 경험했다.[37] 그는 2006-07 시즌 2차전에서 부상당한 프랑크 로스트를 대신해 교체 출전하며 샬케에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20세의 노이어는 로스트가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예상외로 출전하지 못하면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노이어는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는 2006-07 시즌에 리그 27경기에 출전했다.[35]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래에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그의 전 우상 옌스 레만의 잠재적인 후계자로 널리 평가받았다.[38]
|upright=.8|thumbnail|left|alt=Neuer in Schalke shirt and cap|2007년 샬케 04 유니폼을 입은 노이어]]
2007-08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전 포르투전 승부차기에서 브루누 아베스와 리산드로 로페스의 슛을 막아내며 샬케의 클럽 사상 첫 8강 진출에 기여했다. 또한 이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전 경기에 풀 출장했다(노이어 외 2명). 이러한 활약으로 UEFA 최우수 골키퍼상에 독일 선수로는 유일하게 노미네이트되었다.
노이어는 2007-08 시즌을 독일 리그컵 3경기에 출전하며 시작했다.[39] 2008년 3월 5일,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포르투를 상대로, 그는 수많은 선방으로 샬케를 거의 혼자서 지켜냈고, 승부를 승부차기로 이끌었다. 그는 브루노 알베스와 리스산드로 로페스의 페널티킥을 막아 샬케가 8강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2007-08 UEFA 클럽 올해의 골키퍼 후보에 올랐으며, 그는 최연소 선수이자 명단에 유일한 분데스리가 골키퍼였다.[40] 그는 2007-08 시즌에 매 경기 출전한 단 세 명의 분데스리가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50경기에 출전하며 시즌을 마쳤다.[41]
|upright=.8|thumbnail|alt=Manuel Neuer during a training session|2010년 샬케에서 훈련하는 노이어]]
2008-09 시즌에 샬케는 리그 순위 8위로 유로파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2009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의 활약은 바이에른 뮌헨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바이에른 회장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젊은 골키퍼 영입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러나 샬케의 새로운 감독 펠릭스 마가트는 노이어가 다음 시즌에도 샬케에서 뛸 것이라고 주장했다.[42] 11월, 그는 UEFA 올해의 팀 후보 골키퍼 5명 중 유일한 독일 골키퍼였다.[43]
노이어는 2009-10 시즌을 39경기에 출전하며 마쳤다.[44]
2010-11 시즌을 앞두고 노이어는 주장으로 임명되었고, 팀을 이끌고 첫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진출하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경기를 치렀다.[45] 그는 또한 클럽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DFB-포칼에서 우승했는데, 샬케는 MSV 뒤스부르크를 5-0으로 꺾었다.[46]
함부르크 SV로 이적한 하이코 베스터만을 대신하여 주장으로 나선 2010-11 시즌에는 선방을 연발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리그 6경기에서 3실점으로 막아내며 조 1위 통과에 기여했다. 토너먼트에서도 활약하여 샬케의 사상 첫 4강 진출에 기여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선방을 보여주며 발렌시아와 인테르나치오날레를 격파하는데 기여하였다. 2011년 4월 2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노이어는 전반전 내내 맨체스터의 공격을 막아내며 팀 골대를 무실점으로 지켰다. 전반 1분 웨인 루니의 중거리 슈팅을 몸을 던져 쳐낸 것을 시작으로,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두 번의 1대1 기회와 박지성의 아크 부근에서의 슈팅을 모두 쳐냈으며,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페널티 박스 슈팅과 라이언 긱스의 헤딩슛, 그리고 전반 종료직전 긱스의 1대1 기회를 모두 선방해냈다. 팀 수비진의 붕괴 속에서 후반전에 2실점을 내주며 패배했으나 골닷컴과 BBC, 빌트, 키커등 대부분의 언론사는 노이어를 MVP로 선정했다.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2차전에서도 안데르송과 마이클 오언의 슈팅을 선방해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팀의 패배를 막진 못했다.[329]
DFB-포칼 4강에서도 다시한번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수 차례 선방을 보여주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샬케는 결승전에서 2부 리가의 뒤스부르크를 5대 0으로 격파하며 DFB-포칼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330]
4강 진출이 결정된 2011년 4월 20일, 그는 2011-12 시즌 말에 만료될 샬케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47] 노이어는 시즌을 53경기에 출전하며 마쳤다.[48]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등 다수의 관심이 보도되었지만, 유나이티드로부터의 오퍼는 부인했다.[268]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는 유나이티드에게 0-2로 패했지만, 엄청난 선방을 연발하여 상대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으로부터 "상대해 본 선수 중 가장 훌륭한 플레이를 펼친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노이어가 유나이티드로 올 가능성은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269] 또한 본인도 경기 후, 다시 한번 유나이티드 이적 가능성을 부인했다.[270]
3. 1. 1. 10-11 시즌
함부르크 SV로 이적한 하이코 베스터만을 대신하여 주장으로 나선 2010-11 시즌에는 선방을 연발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리그 6경기에서 3실점으로 막아내며 조 1위 통과에 기여했다. 토너먼트에서도 활약하여 샬케의 사상 첫 4강 진출에 기여했다.[266][267]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선방을 보여주며 발렌시아와 인테르나치오날레를 격파하는데 기여하였다. 2011년 4월 2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노이어는 전반전 내내 맨체스터의 공격을 막아내며 팀 골대를 무실점으로 지켰다. 전반 1분 웨인 루니의 중거리 슈팅을 몸을 던져 쳐낸 것을 시작으로,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두 번의 1대1 기회와 박지성의 아크 부근에서의 슈팅을 모두 쳐냈으며,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페널티 박스 슈팅과 라이언 긱스의 헤딩슛, 그리고 전반 종료직전 긱스의 1대1 기회를 모두 선방해냈다. 팀 수비진의 붕괴 속에서 후반전에 2실점을 내주며 패배했으나 골닷컴과 BBC, 빌트, 키커등 대부분의 언론사는 노이어를 MVP로 선정했다.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2차전에서도 안데르송과 마이클 오언의 슈팅을 선방해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팀의 패배를 막진 못했다.[329]
DFB-포칼 4강에서도 다시한번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수 차례 선방을 보여주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샬케는 결승전에서 2부 리가의 뒤스부르크를 5대 0으로 격파하며 DFB-포칼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330]
4강 진출이 결정된 2011년 4월 20일, 샬케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시즌 종료 후 이적할 방침임을 발표했다.[266][267]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등 다수의 관심이 보도되었지만, 유나이티드로부터의 오퍼는 부인했다.[268]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는 유나이티드에게 0-2로 패했지만, 엄청난 선방을 연발하여 상대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으로부터 "상대해 본 선수 중 가장 훌륭한 플레이를 펼친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노이어가 유나이티드로 올 가능성은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269] 또한 본인도 경기 후, 다시 한번 유나이티드 이적 가능성을 부인했다.[270]
3. 2. 바이에른 뮌헨
2011년 6월 1일, 샬케와 FC 바이에른 뮌헨은 2011년 7월에 노이어가 바이에른으로 이적할 것임을 합의하였다.[332] 노이어는 2016년 6월까지 유효한 5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적료는 €22M으로 책정되었으며, 노이어는 역사상 두 번째로 비싼 골키퍼로 이름을 올렸다. 바이에른 팬들은 그에게 처음에 적개심을 보였고 2011년 7월 2일에 바이에른 팬그룹 우두머리들의 회의가 있었다. 다른 것을 제쳐놓고, 이 회의에서 마누엘 노이어는 "정식적인 FC 바이에른 뮌헨의 일원으로 인정되었고, 지지하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또한, 그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333]
6월 1일, 이적료 1,800만 유로와 성과에 따른 700만 유로를 포함한 5년 계약으로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이적이 결정되었다.[271] 곧바로 한스-요르크 부트로부터 등번호 1번을 물려받아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그러나 8월 7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개막전에서는 제롬 보아텡과의 연계 미스로 이고르 데 카마르고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했다.
그러나 8월 13일 VfL 볼프스부르크전(1-0) 이후 리그전에서는 10월 23일 하노버 96전(1-2)에서 패배할 때까지 리그 8경기, 770분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또한 10월 18일 UEFA 챔피언스 리그 SSC 나폴리전(1-1)에서 홀거 바트슈투버의 자책골로 실점하기 전까지 공식전 12경기, 1140분 연속 무실점도 동시에 기록했다.[272]
2012년 4월 25일,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레알 마드리드와의 2차전은 연장전에서도 승부가 나지 않아 승부차기로 돌입했다. 여기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카의 PK를 막아내 3-1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5월 20일 첼시 FC와의 결승전은 바이에른의 홈 구장인 푸스발 아레나 뮌헨[273]에서 열렸다. 토마스 뮐러의 골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경기 종료 직전에 동점골을 허용하여 레알전과 마찬가지로 연장전에서도 승부가 나지 않아 승부차기로 돌입했다. 첫 번째 키커 후안 마타의 PK를 막아냈고, 심지어 PK를 거부한 아르옌 로벤 대신 키커로 나서 페트르 체흐가 지키는 골문을 열었지만, 결국 이비차 올리치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실축했고 마지막에는 디디에 드로그바에게 골을 허용하여 4-3으로 패배했다. 홈에서 11시즌 만의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대대적인 보강을 단행한 2012-13 시즌은 개막 8연승을 기록하는 등 선두를 질주했다. 리그전에서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에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BATE 보리소프, 토너먼트에서는 아스널에게 패했지만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리그전에서는 14연승을 포함한 25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며 신기록인 승점 91점을 기록하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부터 3시즌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도 도르트문트와의 같은 국가 대결에서 승리하여 12시즌 만에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DFB 포칼 결승에서도 VfB 슈투트가르트에 승리하여 독일에서 사상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했다. 본인은 31경기 출전하여 단 18실점[274]을 기록하며 단테나 하비 마르티네스 등 새로 영입된 선수가 많은 DF 라인을 지탱했다.
2014-15 시즌,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275], UEFA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다.[276]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277]
2016년 4월 20일, 바이에른 뮌헨과 2019년 여름까지 계약을 맺고 있었지만, 기간을 기다리지 않고 2년 연장을 결정하여 계약 기간은 2021년 6월 30일까지로 연장되었다.[278] 2017년 2월 25일, 22라운드 함부르크 SV전에서는 리그 통산 100번째 클린 시트를 최단 기간에 기록했다. 4월에는 왼쪽 중족골 골절을 당했다.
다음 시즌에는 필리프 람의 뒤를 이어 팀 주장이 되었다.[279] 그러나 2017년 9월, 다시 중족골 골절로 인해 2018년 1월까지 결장할 것이 발표되었고[280], 결국 복귀는 3월까지 기다려야 했다.
2019-20 시즌 개막 전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목표로 이적설이 돌았지만 잔류했다.[281] 2020년 5월 20일, 클럽과의 계약을 2023년 6월까지 연장했다.[282] 챔피언스 리그 결승 파리 생제르맹전에서는 여러 차례 결정적인 선방을 펼쳐 팀에 우승을 안겼다.[283][284]
2020-21 시즌, 18라운드 샬케전에서, 지금까지 올리버 칸이 보유하고 있던 기록을 깨고, 리그 신기록인 197번째 무실점을 달성했다.[285] 21라운드 RB 라이프치히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골키퍼로서는 칸과 동률인 통산 310승을 거두었지만, 수술을 받게 되어 당분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286]
2022-23 시즌에도 개막전부터 주전으로 활약했고, 2022 FIFA 월드컵에서도 3경기 모두 선발 출전했다. 대회 종료 후인 12월 10일, 방문했던 국내 스키장에서 넘어져 오른쪽 다리 하퇴골 골절로 시즌을 통째로 날리는 큰 부상을 입었다.[287]
2023년 10월 28일, SV 다름슈타트 98전에서 부상에서 복귀했다.[288] 11월 28일, 클럽과의 계약을 2025년 6월까지 1년 연장했다.[289] 2024년 3월 5일, UEFA 챔피언스 리그 SS 라치오전에서 챔피언스 리그 통산 57번째 클린 시트를 달성하여 이케르 카시야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챔피언스 리그 역대 최다 타이기록을 세웠다.[290]
3. 2. 1. 11-12 시즌
바이에른에서의 첫 주에서 TSG 1899 호펜하임에 0-0으로 비기기까지, 노이어는 구단 역사상 최장시간 클린시트를 기록하였고, 1000분이 넘게 실점하지 않으며 올리버 칸의 기록을 갱신했다.[334]
2012년 4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리그 원정 경기에서, 노이어는 도르트문트 팬들의 바나나 세례를 받았다. 이 행위는 전 바이에른 골키퍼 올리버 칸에게 행해졌던 풍습이 노이어에게 이어진 일이다.[335]
2012년 4월 17일,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카림 벤제마의 두 번의 슈팅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1대1 찬스를 막아내는등 연거푸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팀의 2대 1 승리에 공헌했다. 2012년 4월 25일, 다시 한번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혈전끝에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졌고, 노이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카의 승부차기를 모두 선방하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노이어는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 상황에 준비했다. 우리 골키핑 코치 토니 타팔로비치는 랩톱 컴퓨터로 호날두가 어떻게 페널티킥을 차는지 보여주셨다. 나는 호날두가 좌측 하단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승부차기에서, 나는 그가 이곳을 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라고 그는 말하였다.[336]
|thumb|left|alt=Neuer saves a penalty in front of Bayern Munich's fans|노이어가 후안 마타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모습(2012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2012년 5월 20일, 홈 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첼시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은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디디에 드록바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내준데다 연장전에서 아르연 로번의 페널티킥 실축 등 악재가 겹치며 승부차기까지 가게되었다. 노이어는 첼시 FC의 첫 번째 키커 후안 마타의 오른쪽 구석을 향한 아웃사이드 슈팅을 바로 선방해냈으며, 본인이 직접 FC 바이에른 뮌헨의 승부차기 세 번째 키커로 나서 상대 골키퍼 페트르 체흐를 상대로 낮게 깔린 슛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바이에른의 4,5번째 키커 이비차 올리치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연이어 실축함으로 인해 홈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통한의 패배를 당하게 되며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리그 3개 대회 모두 준우승에 그치는 비극을 맛보고 말았다.[337]
3. 2. 2. 12-13 시즌
DFL-슈퍼컵 결승전에서 경기 후반 네벤 수보티치의 헤딩슛을 안정적으로 펀칭해내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고, 노이어는 이적 후 첫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338]
2013년 5월 26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경기는 골키퍼간의 선방 대결로 불렸을 만큼 노이어와 로만 바이덴펠러의 전쟁이었다. 전반전 바이에른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강력한 압박에 주도권을 내주며 수많은 유효슈팅을 허용했지만 노이어는 이를 모두 선방해냈다. 전반 11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중거리슛을 쳐낸 것을 시작으로, 1분 뒤 야쿠프 브와슈치코프스키의 슈팅을 막아냈고, 스벤 벤더의 슈팅도 안정적으로 잡아냈다. 전반 23분 마르코 로이스의 중거리슛도 쳐냈으며,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의 1대1 찬스도 막아냈다. 노이어의 활약에 힘입어 바이에른은 전반전을 무실점으로 마쳤고, 도르트문트는 체력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경기는 63분 마리오 만주키치가 선제골을 넣었으나 8분만에 일카이 귄도안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1-1 동점이 되었다. 89분 아르연 로벤의 결승골에 힘입어 바이에른은 승리했고, 노이어는 생애 첫 빅이어를 들었다.[339]
2013년 6월 1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DFB-포칼컵 결승전에서도 여러 차례 세이브를 보여주었다. 팀은 3대2로 VfB 슈투트가르트를 격파하고 우승, 노이어는 바이에른 이적 2시즌만에 독일 구단 최초로 트레블 우승을 달성하는데 기여했다. DFB-포칼에서는 톰 슈타르케가 간혹 기용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노이어가 골문을 지켰고, 바이에른의 12-13시즌 실점은 53경기 31실점에 불과했다.[339]
3. 2. 3. 13-14 시즌
노이어는 2013년 DFL-슈퍼컵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패하며 시즌을 시작했다.[340][57] 2013년 8월 30일 2013년 UEFA 슈퍼컵에서는 첼시를 상대로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승리, 2012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패배를 설욕했다.[341][58]FIFA 클럽 월드컵에서 팀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고,[342][343],[59],[60] 2014년 1월 7일에는 2013년 올해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344][61] 2014년 5월 2일, 바이에른 뮌헨과의 계약을 2019년 여름까지 연장했다.[345][62]
2014년 2월 9일, 바이에른은 아스널 FC과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서 맞붙었고, 노이어는 전반전에 메수트 외질의 페널티킥을 막아냈다. 바이에른은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노이어는 시즌을 31번의 분데스리가 출전,[63] 5번의 독일 컵 출전,[63] 12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63] 1번의 독일 슈퍼컵 출전,[57] 1번의 UEFA 슈퍼컵 출전,[58] 2번의 FIFA 클럽 월드컵 출전으로 마감하여 총 52번 출전했다.
3. 2. 4. 14-15 시즌
노이어는 올해의 독일 축구 선수 상을 수상했고,[64]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65]2014년 FIFA 발롱도르에서 3위를 차지했다.[66] 2014년 DFL-슈퍼컵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패배하며 시즌을 시작했다.[67] 2015년 1월 30일, 노이어는 18번째 경기에서 선발 출전했고, 바이에른은 VfL 볼프스부르크에게 4-1로 패했다.[69] 이는 2011년 바이에른에 합류한 이후 한 경기에서 4골을 허용한 첫 번째 리그 경기였다. 바이에른이 한 경기에서 4골을 허용한 마지막 경기는 2009년 4월 4일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였다.[69] 2015년 4월 28일, 노이어는 2014-15년 DFB-포칼 준결승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승부차기 2-0으로 패했을 때 바이에른 선수 4명 중 한 명이었다.[70] 노이어는 시즌을 32번의 분데스리가 출전,[71] 5번의 독일 컵 출전,[71] 12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71] 그리고 1번의 독일 슈퍼컵 출전으로 마감하여 총 50번 출전했다.
3. 2. 5. 15-16 시즌
2015-16 시즌은 2015 DFL-슈퍼컵에서 VfL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시작되었다.[350]VfL 볼프스부르크가 승부차기에서 승리했다.[73] 노이어는 분데스리가 34경기, DFB-포칼 5경기, UEFA 챔피언스리그 11경기, 독일 슈퍼컵 1경기에 출전해 총 51경기에 출전해 시즌을 마쳤다.[74][73] 2016년 4월 20일, 노이어는 바이에른과의 계약을 2021년까지 연장했다.[351][278]
3. 2. 6. 16-17 시즌
마누엘 노이어 (2017년)
FC 바이에른은 2016 DFL-슈퍼컵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2-0으로 꺾고 3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긍정적인 시즌 시작을 알렸다.[352]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도 FC 바이에른이 베르더 브레멘을 상대로 6-0 대승을 거두며 무실점을 기록했다.[352]
2017년 1월, 노이어는 동료 독일 선수이자 전 바이에른 팀 동료인 토니 크로스와 함께 FI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바이에른은 아스날을 상대로 합계 10-2라는 인상적인 점수로 승리했는데, 이 경기에서 노이어는 두 골을 허용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와의 8강 1차전에서 노이어는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바이에른은 1-2로 패했다. 2차전에서 노이어는 왼쪽 발 골절 부상을 입어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고, 바이에른은 논란이 된 경기에서 4-2로 패했다.[76]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챔피언으로 시즌을 마쳤다. 노이어는 DFL-슈퍼컵[75] 외에도 분데스리가 26경기, DFB-포칼 4경기, 챔피언스 리그 9경기에 출전했다.[77]
2017년 7월 19일, 필리프 람의 은퇴로 노이어는 바이에른과 독일 대표팀의 새로운 주장이 되었다.[353]
3. 2. 7. 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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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3일, 노이어는 안데레흐트를 상대로 3-0으로 승리한 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통산 100번째 유럽 대회 출전을 기록했다.[80] 하지만 9월에 노이어는 같은 발에 다시 골절 부상을 입어 2018년 1월까지 결장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81] 그의 복귀가 여러 차례 연기된 후, 7개월 만인 2018년 4월 20일에 바이에른 뮌헨과 팀 훈련에 다시 합류했지만, 4월 초에 골키퍼 훈련을 시작했었다.[82] 노이어는 프랑크푸르트와의 DFB-포칼 결승전에서 부상 이후 처음으로 경기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출전하지는 못했다.[83] 노이어는 분데스리가 3경기와 챔피언스 리그 1경기로 시즌을 마쳤다.[84]
|thumb|upright=.9|alt=Neuer trains on Bayern Munich's training ground|노이어, 2017년 바이에른 훈련]]
3. 2. 8. 18-19 시즌
2018년 8월 12일, 노이어는 2018 DFL-슈퍼컵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으로 출전하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5-0으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시즌을 시작했다.[85] 8월 24일에는 호펜하임과의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 341일 만에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86][87] 그러나 2019년 4월 14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경기에서 왼쪽 종아리 근육 파열 부상을 입어 시즌 막판 6경기에 결장했다.[88]
2019년 5월 18일, 노이어는 부상에서 복귀하여 팀의 분데스리가 7연패에 기여했다. 바이에른 뮌헨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승점 2점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일주일 후, 노이어는 2019 DFB-포칼 결승전에서 RB 라이프치히를 3-0으로 꺾고 DFB-포칼 5회 우승을 달성했다.[89] 노이어는 18-19 시즌 동안 분데스리가 26경기, 독일 컵 3경기, 챔피언스 리그 8경기에 출전했다.[89]
3. 2. 9. 19-20 시즌
노이어의 2019-20 시즌은 2019년 8월 3일 2019 DFL-슈퍼컵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2-0으로 패하면서 시작되었다.[364] 2020년 5월 21일, 노이어는 바이에른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여 2023년까지 구단에 머물게 되었다.[365] 8월 23일, 노이어는 바이에른 소속으로 두 번째이자 바이에른 주장으로서는 첫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2020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PSG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하면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366] 그는 널리 칭찬을 받았으며,[367] 분데스리가 33경기, DFB-포칼 6경기, UEFA 챔피언스 리그 11경기에 출전해 시즌을 마무리했다.[93]
3. 2. 10. 20-21 시즌
2020년, 마누엘 노이어는 독일 슈퍼컵에서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368][369]2020년 UEFA 슈퍼컵에서는 세비야의 유세프 엔네시리의 일대일 찬스를 87분에 선방했고, 바이에른 뮌헨은 연장전 끝에 2-1로 승리했다.[94] 6일 뒤, 노이어는 독일 슈퍼컵에서 우승했다.[95] 10월 21일, 2020-21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4-0으로 꺾고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394경기 만에 200번째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는 제프 마이어 (651경기 199무실점)를 넘어선 기록이며, 올리버 칸(632경기 247무실점)만이 노이어보다 앞섰다.[96]2020년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는 노이어 2021년 8월 28일, 노이어는 분데스리가에서 441경기 만에 205번째 무실점을 기록하여 올리버 칸의 557경기 204무실점 기록을 경신했다.[97]
3. 2. 11. 21-22 시즌
노이어는 2021년 10월 23일 447번째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분데스리가 통산 300승을 달성했다.[372][98]바이에른은 2021-22 시즌에 3경기를 남겨두고 분데스리가에서 우승했다.[373][99] 시즌 후, 노이어는 바이에른 뮌헨과 2024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100]
3. 2. 12. 22-23 시즌
2022-23 시즌에도 개막전부터 주전으로 활약했고, 2022 FIFA 월드컵에서도 3경기 모두 선발 출전했다. 대회 종료 후인 2022년 12월 10일, 바이에른주 로스콥프의 슈피칭제에서 스키를 타다 오른쪽 다리 정강뼈와 종아리뼈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시즌 잔여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101][102]정강뼈와 종아리뼈 골절/Schien- und Wadenbeinbruchde 노이어는 다리 골절이 나은 후 실력을 회복하기 위해 개인 훈련과 집중 회복 훈련을 진행했고, 바이에른 뮌헨은 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부터 얀 조머를 영입했다.[375][376] 2023년 5월 12일, 바이에른 뮌헨은 노이어가 개인 훈련을 마치고 팀 훈련장에 복귀했다고 발표했다.[377]
4. 국가대표팀 경력
2009년에 개최된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는 5경기에서 4실점을 기록하며 독일의 우승에 기여했다.
독일 대표팀으로는 2009년 6월 2일에 열린 UAE 대표팀과의 국제 친선 경기에서 데뷔했다[291]。
주전 골키퍼로 나선 2010 FIFA 월드컵에서는 3위 결정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 풀 출장했다. 출전한 6경기에서 2실점만을 허용하며 4번의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고, 독일의 2회 연속 3위 입상에 기여했다. 결선 토너먼트 1라운드 잉글랜드전에서는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월드컵 이후 부동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2014 FIFA 월드컵에서는 결승까지 7경기에서 단 4실점만을 허용했고, 4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다. 게다가, 대회 통산 86.2%라는 높은 선방률을 기록하며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어 독일의 우승에 기여했다[292]。
대표팀에서 은퇴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후임으로 새로운 주장에 임명되었다[293]。독일 대표팀에서 골키퍼가 주장을 맡는 것은 올리버 칸 이후 두 번째이다[294]。
2018 FIFA 월드컵 조별 리그 3차전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에 상대 진영으로 올라간 틈을 타 상대 선수에게 공을 빼앗겼고, 이것이 전방에 있던 손흥민에게 연결되어 그대로 실점하는 등 대한민국 대표팀에 2골을 내주면서 독일 대표팀의 조별 리그 탈락이 결정되었다.
UEFA 유로 2020 예선 에스토니아전에서, 지금까지 제프 마이어가 가지고 있던 최다 클린 시트 기록인 37회를 갱신했다[295]。2021년 6월 7일, UEFA 유로 2020 직전에 개최된 친선 경기, 라트비아전에서 독일 대표팀 사상 최초로 대표팀 통산 1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296]。
2022 FIFA 월드컵에서는 독일인 골키퍼 사상 최초로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을 달성했지만, 개막전 패배가 발목을 잡아,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코스타리카에 4-2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에 골득실에서 밀려 독일 대표팀의 2회 연속 조별 리그 탈락으로 이어졌다.
2022년 FIFA 월드컵
부상과 감독 교체의 영향으로 월드컵 이후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고, 대표팀 주장의 자리도 귄도안에게 넘겨주었지만[297], UEFA 유로 2024의 멤버로 선발되었다[298]。조별 리그 2차전 헝가리전에서 EURO 통산 17번째 출전을 기록했고, 이는 잔루이지 부폰과 동률인 골키퍼로서의 대회 최다 출장 기록이 되었다[299]。UEFA 유로 2024에서는 총 5경기에 풀 출전하여 2번의 클린 시트를 달성했지만, 팀은 8강에서 스페인에 2-1로 패했다.
2024년 8월 21일, 대표팀 은퇴를 발표했다[300]。
4. 1. 연령별 국가대표팀
마누엘 노이어는 다양한 연령대의 국가대표팀을 거쳤다. 2006년 8월 15일 네덜란드를 상대로 독일 U-21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378]스웨덴에서 열린 2009년 UEFA U-21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4강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마리오 발로텔리의 두 번의 강력한 프리킥을 모두 선방했고, 결승전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도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4-0 스코어로 승리하여 독일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378]
4. 2. 2010년 FIFA 월드컵
2009년 5월 19일, 노이어는 아시아 투어를 위해 독일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차출되었다.[379] 그는 6월 2일 아랍에미리트와의 아시아 투어 친선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루었다.[380] 2009년 11월, 로베르트 엥케의 별세로 인해 그는 레네 아들러의 백업 골키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아들러 또한 갈비뼈에 중상을 당하여 2010년 FIFA 월드컵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382] 그에 따라, 노이어는 대회 기간동안 팀 비제와 한스외르크 부트를 백업으로 둔 독일의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382]
노이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23인 엔트리에 들었고, 등번호 1번을 받게 되었다.[383] 독일은 이 대회의 죽음의 조로 불리는 D조에 편성되었는데, 노이어는 세르비아와의 2차전에서 밀란 요바노비치의 근거리 슈팅에 실점한 것을 제외하면, 단 한골도 내주지 않았다. 그는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였고,[384]프랭크 램파드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을 넘었지만 골로 인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이어는 그것이 정당한 골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심판이 의심하도록 행동했다고 인정했다.[128] 후반 막판 스티븐 제라드의 회심의 슛을 선방해내며 독일은 이 경기에서 4-1 대승을 거두었다.[384]
우루과이와의 3위 결정전에서 그는 국가대표팀의 마지막 고별 경기를 치르는 한스외르크 부트에게 선발 자리를 양보하였다.[385]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노이어는 3위 결정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 풀타임 출장하여 6경기 2실점, 4번의 무실점 경기를 기록하며 독일의 3위 입상에 기여했다.
4. 3. UEFA 유로 2012
마누엘 노이어는 UEFA 유로 2012 예선에서 독일 대표팀의 모든 경기에 출전하여 10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130] 특히 터키와의 원정 경기에서 3-1 승리를 이끌었는데, 하미트 알튼토프의 근거리 발리슛을 막아내고 토마스 뮐러에게 공을 빠르게 연결하여 마리오 고메스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386] 또한, 정확한 장거리 킥으로 마리오 괴체에게 연결, 토마스 뮐러의 득점을 어시스트하며 두 번째 골에도 기여했다.[386][130]
2012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독일 골키퍼 유니폼과 장갑을 착용한 노이어
UEFA 유로 2012 본선에서는 독일의 5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으며, 조별 리그 B조 개막전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했다.[131] 그러나 독일은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에게 2-1로 패배하여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387] 이 경기에서 노이어는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두 골을 허용하며 자국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387]
4. 4. 2014년 FIFA 월드컵
마누엘 노이어는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독일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292] 노이어는 이 대회에서 총 7경기에 출전하여 4번의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고, 뛰어난 선방 능력과 함께 '스위퍼 키퍼'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했다.[132]
조별 리그에서 포르투갈과 미국을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한 노이어는,[133] 16강 알제리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 승리에 기여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133] 특히, 알제리의 역습 상황에서 스위퍼 키퍼 역할을 수행하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133] 8강 프랑스전에서는 1-0 승리를 이끌며 세 번째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다.[134] 준결승에서는 브라질을 상대로 7-1 대승을 거두었지만, 후반 막판 한 골을 허용했다.[135]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난 노이어는 곤살로 이과인과 로드리고 팔라시오의 위협적인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138] 비록 눈에 띄는 선방은 없었지만, 페널티 지역을 안정적으로 지휘하며 상대 공격수들이 골대 밖으로 슛을 날리도록 유도했다.[138] 결국 독일은 연장전에서 마리오 괴체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고,[136] 노이어는 대회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136]
노이어는 이 대회에서 244개의 패스를 성공시켜 리오넬 메시(242개), 베슬리 스네이더(242개), 토마스 뮐러(221개) 등 필드 플레이어보다 많은 패스를 기록하기도 했다.[137] 그의 '스위퍼 키퍼' 플레이 스타일은 팀 동료들이 상대 진영 깊숙이 압박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138] 적극적으로 나와 상대 공격수들에게 도전하는 모습은 그들이 슛을 놓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138][139]
4. 5. UEFA 유로 2016
2016년 5월 31일, 노이어는 UEFA 유로 2016에 참가할 독일의 최종 23인 명단에 포함되었다.[395] 노이어는 지역예선에서 폴란드와 아일랜드에게 각각 패했지만, 본선에서는 우크라이나, 폴란드, 북아일랜드와의 조별 예선 3경기와 슬로바키아와의 16강전에서 무실점을 기록했다.[395][140] 2016년 7월 2일,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 레오나르도 보누치의 페널티킥으로 골을 허용했지만, 557분 동안 메이저 대회에서 무실점하며 제프 마이어(Sepp Maier)의 종전 기록(481분)을 경신했다.[396][397][141][142] 연장전 이후 1-1 무승부로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노이어는 보누치의 슛을 포함해 2개의 킥을 막아내며 독일의 6-5 승리를 이끌었고, ''Man of the Match''로 선정되었다.[396][397][141][142]
2018년 5월 15일, 노이어는 2017년 9월에 두 번째 발 골절 부상을 당한 이후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FIFA 월드컵 독일의 27인 예선 명단에 포함되었다.[399][147] 6월 2일, 노이어는 클라겐푸르트에서 오스트리아에게 2-1로 패한 친선 경기에서 부상 이후 처음으로 출전했다.[400][148] 6월 4일, 노이어는 월드컵 최종 23인 명단에 포함되었다.[401][149]
6월 17일, 노이어는 멕시코와의 월드컵 개막전에서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으나, 팀은 1-0으로 패했다.[402][150] 6월 23일, 노이어는 스웨덴과의 조별 예선 2차전에서 여러 차례 선방을 펼치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403][151]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은 대한민국을 이기면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에 2-0으로 패하면서 탈락했다.[404] 당시 독일이 대한민국에 0-1로 뒤지자 노이어는 윙어처럼 대한민국 진영 깊숙이 침투했고, 그 결과 독일 진영이 비어 손흥민에게 추가골을 허용하게 되었다.[404][152] 노이어는 주세종에게 공을 빼앗겨 손흥민이 96분에 두 번째 골을 넣는 원인을 제공했다.[153]
4. 7. UEFA 유로 2020
2019년 6월 11일, 독일의 UEFA 유로 2020 예선에스토니아를 상대로 8-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노이어는 국가대표팀 통산 37번째 클린시트를 유지하며 제프 마이어가 세운 기록을 경신했다.[405][154][295] 2021년 5월 19일, 노이어는 UEFA 유로 2020 독일 대표팀에 선정되었다.[406][157]
2021년 6월 7일, 라트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100번째 출전 기록을 달성했고, 이 기록을 달성한 최초의 독일 골키퍼가 되었다.[407][408][158][159][296]
유로 2020 결선에서 노이어는 독일의 조별 예선 세 경기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16강전 패배까지 모두 선발 출전했다.[160]
UEFA는 노이어가 토너먼트에서 프라이드 달을 기념하기 위해 무지개색 주장 완장을 착용한 것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이후 경기장 내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는 토너먼트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161]
4. 8. 2022년 FIFA 월드컵
노이어는 2022년 FIFA 월드컵 독일 대표팀에 소집되어,[409][162] 4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한 최초의 독일 골키퍼가 되었다.[410][163] 12월 1일, 그는 19번째 월드컵 경기에 출전하여, 제프 마이어와 브라질의 클라우디오 타파렐을 포함한 골키퍼의 이전 기록인 18경기를 깼다.[411][164]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일본을 맞아 아사노 타쿠마에게 실점하며 패배했다.[413]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으나,[413] 마지막 조별 리그 경기에서 코스타리카를 4-2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165]일본이 스페인을 2-1로 꺾는 이변을 일으킨 후 골득실차로 3위를 기록하며 2회 연속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413][165] 코스타리카와의 경기는 그의 19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컵 경기였으며, 이를 통해 그는 클라우디오 타파렐과 제프 마이어를 제치고 월드컵 역사상 가장 많은 출전 기록을 가진 골키퍼가 되었다.[166]
4. 9. UEFA 유로 2024
독일이 UEFA 유로 2024 개최국으로 선정되면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역 예선을 면제받았다. 하지만 독일은 평가전에서 일본에게 1-4로 대패했고, 이로 인해 한지 플리크 감독이 경질되었다. 후임으로는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은퇴한 율리안 나겔스만이 부임하면서, 노이어는 자신보다 어린 감독을 모시게 되었다.[167]
2022년 12월, 2022년 FIFA 월드컵에서 독일이 탈락한 후 노이어는 스키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167] 이로 인해 18개월 동안 독일 대표팀에서 결장했고, 주장 자리는 일카이 귄도안에게 넘겨주었다.[168]
2024년 6월, 노이어는 UEFA 유로 2024에 참가하는 독일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169] 2022년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복귀하여 6월 3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0-0 무승부를 이끌었다.[170]
6월 14일, 노이어는 유로 2024 개막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개최국 독일이 스코틀랜드를 뮌헨에서 5-1로 꺾는 데 기여했다.[171] 그는 이 대회에서 독일의 5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조별 리그에서 헝가리를 상대로, 16강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을 8강까지 이끌었지만, 스페인에 2-1로 패했다.[171] UEFA 유로 2024에서 노이어는 총 5경기에 풀 출전하여 2번의 클린 시트를 달성했다. 특히, 조별 리그 2차전 헝가리전에서 EURO 통산 17번째 출전을 기록했고, 이는 잔루이지 부폰과 동률인 골키퍼로서의 대회 최다 출장 기록이 되었다.[299] 스페인과의 패배는 그의 124번째이자 마지막 출전 경기가 되었고, 그는 이로써 전 팀 동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제치고 국제 대회에서 가장 많은 출전 기록을 가진 독일 선수가 되었다.[166]
대회가 끝난 후, 노이어는 2024년 8월 21일에 국가대표팀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124번의 국제 경기 출전에서 51번의 무실점을 기록했다.[172][173]
5. 플레이 스타일
마누엘 노이어는 언론에서 현재 세계 최고의 골키퍼이자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완벽한' 현대적인 골키퍼로 평가받는다.[414][415][416][417][418][419][420][421][422][423][424][425][426][427][428][429][430][431][432][433][434][435] 일부 전문가들은 레프 야신 이후 최고의 골키퍼라고 평가한다.[2][25][26][3][4][5][6][7][8][9][10][11][12][13][242][14][15][16][17][18][19][20]
키가 크고 운동 능력이 뛰어나며 신체적으로 강한 노이어는 속도, 체력, 평정심, 집중력, 정신력,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으로 찬사를 받는다.[414][415][416][417][418][419][420][421][422][423][424][425][426][427][428][429][430][431][432][433][434][435] 특히 뛰어난 반사 신경, 선방 능력, 민첩성, 속도, 발놀림, 핸들링, 게임 읽기 능력으로 유명하며, 페널티킥 방어에도 강점을 보인다.[414][415][416][417][418][419][420][421][422][423][424][425][426][427][428][429][430][431][432][433][434][435]
노이어는 상대 선수가 오프사이드 트랩이나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고 공격할 때를 예측하고 빠르게 골대 밖으로 나와 스위퍼 역할을 수행하는 "스위퍼 키퍼"로 묘사되며, 현대 골키퍼의 역할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다.[414][415][416][417][418][419][420][421][422][423][424][425][426][427][428][429][430][431][432][433][434][435]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은 하이 라인 수비의 후방 공간 커버를 노이어에게 맡겼다.[303]
뛰어난 볼 컨트롤과 정확한 공 분배 능력으로 팀의 빌드업에 기여하며, 넓은 커버 범위와 빠른 역습을 시작하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다.[414][415][416][417][418][419][420][421][422][423][424][425][426][427][428][429][430][431][432][433][434][435] 근거리 슈팅에 대한 반응과 강한 어깨를 이용한 빠른 롱 패스도 그의 강점이다.[304] 노이어는 독일 3부 리그에서 센터백으로 뛸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414][415][416][417][418][419][420][421][422][423][424][425][426][427][428][429][430][431][432][433][434][435] 리더십과 수비수들과의 소통 능력도 뛰어나다.[436]
하지만 규칙 위반 여부와 관계없이 공격적인 움직임에 반사적으로 항의하는 행동은 독일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437] 카잔의 기적에서는 대한민국에게 뒤지자 골대를 비우고 하프라인을 넘어와 득점을 노리는 실수를 저질렀고, 손흥민에게 추가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6. 사생활
마누엘 노이어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겔젠키르헨에서 태어났다.[176]메수트 외질과 같은 다른 많은 축구 선수들처럼 게잠트슐레 베르거 펠트를 다녔으며, 그의 형제 마르셀은 현재 페어반츠리가에서 축구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177] 그는 두 살 때 처음으로 축구공을 받았고, 5번째 생일 24일 전인 1991년 3월 3일에 첫 경기를 치렀다.[178] 노이어가 어렸을 때 영웅이자 우상은 같은 독일 출신이자 전 샬케 04 골키퍼였던 옌스 레만이었다.[179]
노이어는 가톨릭교회 신자이며, 아동 빈곤에 반대하는 겔젠키르헨 기반의 가톨릭 사회 행동 단체와 아미고니안 프라이어스가 운영하는 겔젠키르헨 기반의 청소년 클럽을 지원하고 있다.[180] 그는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 재단인 마누엘 노이어 키즈 재단을 설립했다.[181] 2011년 11월, 그는 독일판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인 ''Wer wird Millionär?''의 유명인 특집에서 자선 단체를 위해 50만 유로를 획득했다.[182]
2011년에 "프로 축구 선수가 커밍아웃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하도록 돕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183] 2013년에 공개된 픽사 영화 "몬스터 대학교"의 독일어판에서 게스트 성우로 프랭크 매케이 역을 맡았다.[311] 2017년 5월, ESPN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 100인을 발표했고, 97위에 선정되었다. 축구 선수로는 37위.[312]
2022년 11월, 노이어는 피부암 치료를 위해 얼굴에 세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밝혔고, 이후 안젤리크 케르버와 함께 선크림을 홍보하도록 했다.[185]
2014년까지 카트린 길치와 교제했다.[187] 2015년, 노이어는 니나 바이스와 교제를 시작했다.[188] 2017년 5월 21일, 노이어와 바이스는 오스트리아 타안하임에서 시민 결혼식을 올렸고, 6월 10일 이탈리아 모노폴리의 산티시마 델라 마디아 대성당에서 교회 결혼식을 올렸다.[189][190] 두 사람은 2020년 초에 헤어졌고, 노이어는 핸드볼 선수 아니카 비셀과 교제를 시작했다. 2023년 10월, 그녀가 임신으로 인해 ESV 1927 레겐스부르크에서 시즌을 마감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191] 2024년 3월 14일, 그들의 첫 아들 루카가 태어났다.[192]
마누엘 노이어는 샬케 04에서 2010-11 시즌 우승과 2005 시즌 우승을 경험했다.[200]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 후에는 분데스리가 11회 우승(2012-13 시즌부터 2022-23 시즌까지), DFB-포칼 5회 우승, DFL-슈퍼컵 6회 우승,[201] UEFA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202]UEFA 슈퍼컵 2회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2회 우승을 달성했다.[200] 독일 U-21 대표팀 소속으로는 2009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203]독일 성인 대표팀에서는 2014 FIFA 월드컵 우승,[204] 2010 FIFA 월드컵 3위,[205]UEFA 유로 2012 3위를[206] 기록했다.
개인 수상으로는 프리츠 발터 메달 U19 은메달 (2005)[207], ''키커'' 올해의 골키퍼 9회[208][209][210][211][212][213][214][215][216], 독일 올해의 선수 2회[217][218], 독일 국가대표팀 올해의 선수 1회[219], ESM 시즌의 팀 3회[220][221][222], UEFA 유로 2012 토너먼트 팀[223],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 역대 드림팀[224], IFFHS 세계 최고의 골키퍼 5회[225][226][227][228][229], IFFHS 10년 최고의 골키퍼[28], 최고의 유럽 골키퍼 5회[239], IFFHS 남자 월드 팀[230], FIFA FIFPro 월드 11 4회[231][232][233], UEFA 올해의 팀 4회[234][65][235][236],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팬 선정 최우수 선수[237], UEFA 챔피언스 리그 시즌의 스쿼드 3회[238], UEFA 챔피언스 리그 시즌의 골키퍼[239], 더 베스트 FIFA 남자 골키퍼[240], 2010 FIFA 월드컵 올스타 팀[241], 2014 FIFA 월드컵 골든 글러브[242], 2014 FIFA 월드컵 올스타 팀[243], 2014 FIFA 월드컵 드림팀[244], AIPS 올해의 선수[245], AIPS 유럽 올해의 선수 – ''프랭크 테일러 트로피''[246],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6회[247][248][249][250][251][252][253],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3회[254][255], 발롱도르 드림팀 실버[256], IFFHS 10년의 세계 팀 및 IFFHS 10년의 UEFA 팀[257][258] 등에 선정되었다. 발롱도르 3위 (2014), 7위 (2015) 그리고 UEFA 올해의 선수 : 2위 (2014), 3위 (2020), 8위 (2016)를 기록했다.
은월계수 잎[259][260],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공로 훈장[261], 바이에른 공로 훈장[262]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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