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보아텡
1. 개요
제롬 보아텡은 센터백을 주 포지션으로 하는 독일의 축구 선수이다. 헤르타 BSC 베를린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함부르크 SV, 맨체스터 시티 FC를 거쳐 2011년부터 2021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 등 다수의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올랭피크 리옹, US 살레르니타나 1919를 거쳐 현재 LASK 린츠에서 뛰고 있다. 독일 국가대표팀으로 2014년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UEFA 유로 2016에서도 활약했다.
| 본명 | 제롬 아기예님 보아텡 |
|---|---|
| 출생일 | 1988년 9월 3일 |
| 출생지 | 서베를린, 서독 |
| 키 | 1.92m |
| 포지션 | 센터백 |
| 현재 소속팀 | LASK 린츠 |
| 등번호 | 17 |
| 유소년 클럽 | 1994–2002: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2002–2006: 헤르타 BSC |
|---|---|
| 클럽 | 2006–2007: 헤르타 BSC II (24경기 1골) 2007: 헤르타 BSC (10경기 0골) 2007–2010: 함부르거 SV (75경기 0골) 2010–2011: 맨체스터 시티 (16경기 0골) 2011–2021: 바이에른 뮌헨 (229경기 5골) 2021–2023: 리옹 (32경기 0골) 2024: 살레르니타나 (7경기 0골) 2024–: LASK 린츠 (4경기 0골) |
| 클럽 성적 업데이트 | 2024년 10월 28일 |
| 국가대표팀 | 2004–2005: 독일 U-17 (4경기 1골) 2005–2007: 독일 U-19 (17경기 2골) 2007–2009: 독일 U-21 (15경기 1골) 2009–2018: 독일 (76경기 1골) |
|---|---|
| 국가대표팀 성적 업데이트 | 2018년 10월 13일 |
| FIFA 월드컵 | 2014년 브라질: 우승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3위 |
|---|---|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 2012년 폴란드-우크라이나: 3위 |
| UEFA 유럽 U-21 축구 선수권 대회 | 2009년 스웨덴: 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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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의 축구 선수 -
제프 헤르베르거
제프 헤르베르거는 독일의 축구 선수이자 독일과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특히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을 우승으로 이끌어 '베른의 기적'을 만들었으며 독일 축구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의 축구 선수 -
디트마어 야콥스
디트마어 야콥스는 함부르거 SV의 전성기를 이끈 독일의 전직 축구 선수로,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컵 우승 등을 달성하고 서독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나, 부상으로 은퇴 후 보험 중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가나계 독일인 -
케빈프린스 보아텡
케빈프린스 보아텡은 가나 출신의 축구 선수로, 다양한 클럽을 거치며 미드필더와 공격수로 활약했고,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가나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골을 기록했으며, 여러 개인 수상 경력과 클럽 우승 경험을 가지고 있다. -
가나계 독일인 -
베냐민 헨릭스
독일 축구 선수 베냐민 헨릭스는 주로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하며, 바이어 레버쿠젠 유소년 아카데미를 거쳐 분데스리가 데뷔 후 AS 모나코를 거쳐 RB 라이프치히에서 뛰었고, 독일 국가대표로 201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RB 라이프치히에서 DFB-포칼 준우승 및 DFL-슈퍼컵 우승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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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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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2. 클럽 경력
보아텡은 주로 센터백으로 뛰지만, 강력한 피지컬과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다른 수비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이다. 그는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2002년 헤르타 BSC 베린 유소년팀에 합류하여 2007년 1월 31일 하노버 96과의 경기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2007년 8월, 1.1의 이적료로 함부르거 SV로 이적하여 두 시즌 동안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고, 이를 바탕으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 2010년 6월에는 10.4의 이적료로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시티 FC와 5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주로 라이트 백으로 기용되는 것에 불만을 느껴 한 시즌 만에 이적을 추진했다.
2011년 7월, 13.5의 이적료로 FC 바이에른 뮌헨과 4년 계약을 체결하며 독일 무대로 복귀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10년간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2021년 바이에른 뮌헨과 계약이 만료된 후 프랑스 리그 1의 올랭피크 리옹과 2년 계약을 맺었다. 이후 2024년 2월에는 이탈리아 세리에 A의 US 살레르니타나 1919와 단기 계약을 맺고 입단했다.
2.1. 헤르타 BSC 베를린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유소년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보아텡은 2002년 7월 1일, 13세의 나이에 헤르타 BSC에 합류했다. 그는 헤르타 유소년팀을 거쳐 리저브팀에서 2시즌 동안 활약했다. 리저브팀에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시즌 | 리그 | 출전 | 득점 |
|---|---|---|---|
| 2005-06 | 레기오날리가 | 9 | 1 |
| 2006-07 | 레기오날리가 | 15 | 0 |
2007년 1월 31일, 보아텡은 처음으로 헤르타 1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날 하노버 96과의 2006-07 시즌 분데스리가 19라운드 원정 경기(AWD-아레나)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18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빠르게 1군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 잡았고, 2006-07 시즌 동안 1군에서 총 11경기에 출전했다.
2007년 여름, 보아텡은 함부르거 SV 이적설에 휩싸였다. 독일 언론은 이 때문에 보아텡이 헤르타 BSC와의 5년 계약 연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는 2007년 8월 22일까지 헤르타 소속으로 활약한 후 함부르거 SV로 이적했다.
2.2. 함부르거 SV
2007년 8월 22일, 보아텡은 약 1.1의 이적료로 함부르거 SV에 합류했다. 그는 함부르크에서 3시즌 동안 활약하며 팀 수비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특히 2008-09 시즌에는 팀이 리그 우승 경쟁을 벌이고, UEFA 유로파리그 준결승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으며, 함부르크는 2년 연속 유로파리그 준결승에 올랐다. 그는 2007-08 시즌에 37경기, 2008-09 시즌에 35경기에 출전했다. 2009-10 시즌의 인상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고, 2010년 FIFA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이 시즌 그는 4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2.3. 맨체스터 시티 FC
2010년 6월 5일, 프리미어리그 클럽 맨체스터 시티 FC는 보아텡과 5년 계약을 맺으며 10.4의 이적료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선호하는 등번호 17번을 받았다. 보아텡은 발렌시아 CF와의 프리시즌 친선 경기 전반전에 출전하며 맨체스터 시티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미카 리차즈와 센터백 및 풀백 자리를 번갈아 맡았으며, 오른쪽 측면 돌파 후 개러스 배리의 득점을 돕는 크로스를 올리기도 했다.
2010-11 프리미어리그 시즌 개막을 1주 앞두고, 보아텡은 독일 국가대표 소속으로 덴마크와의 친선 경기 중 부상을 당했다. 그는 왼쪽 무릎 힘줄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으며, 이 부상은 귀국 비행기에서 음료수 카트와 부딪히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부상 회복 후, 보아텡은 2010년 9월 25일에 열린 첼시와의 경기(1-0 승)에서 교체 투입되며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UEFA 유로파리그 유벤투스와의 경기(1-1 무)에서 라이트 백으로 처음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했다.
2010-11 시즌 동안 보아텡은 총 24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당초 주전으로 기대를 모았던 것과 달리 파블로 사발레타,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등과의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프리미어리그 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맨체스터 시티는 해당 시즌 FA컵에서 우승했지만, 보아텡은 결승전 출전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2.4. FC 바이에른 뮌헨
2011년 6월, 보아텡은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기 위해 맨체스터 시티를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면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다시 활약하기를 원했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주로 오른쪽 풀백으로 뛰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고 알려졌다.
2011년 7월 14일, FC 바이에른 뮌헨은 보아텡과 13.5의 이적료에 4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함부르거 SV와 맨체스터 시티 FC 시절과 마찬가지로 등번호 17번을 받았다. 2011년 7월 27일, 그는 AC 밀란과의 2011 아우디 컵 경기에서 하피냐와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며 바이에른 데뷔전을 치렀다. 2011년 8월 6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2011-12 시즌 리그 개막전(0-1 패배)에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새로 영입된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와의 의사소통 실수로 이고르 드 카마르고에게 결승골을 내주었다. 이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보아텡은 포칼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모두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는 2011-12 시즌 동안 총 48경기에 출전했다.
2012-13 시즌, 보아텡은 단테와 함께 중앙 수비수 콤비를 이루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바이에른 뮌헨은 이 시즌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첫 트레블을 달성했고, 시즌 시작 전 DFL-슈퍼컵에서도 우승했다. 2012년 12월 5일, BATE 보리소프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퇴장당해 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2013년 3월 9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홈 경기에서 필립 람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여 자신의 분데스리가 데뷔골이자 팀의 3-2 역전승을 이끄는 결승골을 기록했다. 4월 13일에는 이미 리그 우승을 확정 지은 상태에서 열린 1. FC 뉘른베르크와의 홈 경기(5-0 승리)에서 발리슛으로 팀의 네 번째 골을 넣었다. 그는 2012-13 시즌 동안 4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2013년 10월 2일, 전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또다시 퇴장당해 1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11월 9일,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 경기(3-0 승리)에서 경기 시작 4분 만에 코너킥 상황에서 골을 넣어 시즌 유일한 리그 골을 기록했다. 12월 11일, 보아텡은 바이에른 뮌헨과의 계약을 2018년까지 연장했다. 2014년 5월 3일, 함부르거 SV와의 경기에서 퇴장당하며 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그는 2013-14 시즌 동안 43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2015년 12월 18일, 보아텡은 바이에른 뮌헨과의 계약을 2021년까지 다시 연장했다. 2016-17 시즌에는 새로 영입된 마츠 훔멜스와 중앙 수비 콤비를 이루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21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후 주전 자리를 유지했지만, 2018-19 시즌 니코 코바치 감독 체제에서는 훔멜스와 니클라스 쥘레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겨울 이적 시장 기간에는 자신의 입지에 불만을 표했고, 구단 회장으로부터 이적을 권유받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 파리 생제르맹 FC 등 여러 구단이 영입에 관심을 보였으나 결국 팀에 잔류했다.
2019-2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에서는 준결승전에 이어 부상으로 인해 교체되었지만, 팀은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트레블을 달성했다.
2021년 4월, 2020-21 시즌 종료 후 보아텡이 계약 만료로 바이에른 뮌헨을 떠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5. 올랭피크 리옹
2021년 9월 1일, 바이에른 뮌헨과 계약이 만료된 후 프랑스 리그 1의 올랭피크 리옹과 2년 계약을 맺고 입단했다. 계약 기간은 2023년 6월 30일까지였다.
2023년 6월 9일, 리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보아텡이 계약 만료와 함께 팀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2.6. US 살레르니타나 1919
올림피크 리옹과 계약 만료 후 약 반년 동안 소속팀이 없던 보아텡은 2024년 2월 2일, 이탈리아 세리에 A의 US 살레르니타나 1919와 2023-24 시즌 종료까지 계약을 맺었다. 살레르니타나에서는 시즌 후반 부상으로 세리에 A 7경기 출전에 그쳤고, 시즌 종료 후 팀이 세리에 B로 강등되면서 자유 계약 선수로 팀을 떠났다.
2.7. LASK 린츠
2024년 5월 31일,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LASK 린츠와 2026년까지 유효한 2년 계약을 맺고 자유 계약으로 입단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보아텡은 독일의 U-17, U-19, U-21 연령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2007년 7월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UEFA U-19 챔피언십에 참가하는 U-19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독일은 이 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 이후 U-21 대표팀 소속으로 메수트 외질, 마르코 마린 등과 함께 2009년 UEFA U-21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10월 10일,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독일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후반전에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독일 국가대표팀 데뷔전에서 퇴장당한 첫 선수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러한 불안한 데뷔에도 불구하고 요아힘 뢰프 감독의 신임을 얻어 꾸준히 대표팀에 소집되었고, 11월 코트디부아르전에도 선발 출전하며 주전 경쟁자로 자리매김했다.
보아텡은 2010년 FIFA 월드컵 3위를 시작으로, UEFA 유로 2012 4강, 2014년 FIFA 월드컵 우승, UEFA 유로 2016 4강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독일 대표팀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했다. 특히 UEFA 유로 2016 16강 슬로바키아전에서는 국가대표 데뷔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201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독일은 조기 탈락했다.
2018년 9월, 동료 메수트 외질이 인종차별 문제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자, 자신도 비슷한 차별을 겪고 있다며 외질을 옹호하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3월, 요아힘 뢰프 감독은 팀의 세대교체를 이유로 보아텡과 마츠 훔멜스, 토마스 뮐러를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 발탁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 대표팀 | 연도 | 대회 | 성적 |
|---|---|---|---|
| 독일 U-19 | 2007년 | UEFA U-19 유럽 선수권 대회 2007 | 4강 |
| 독일 U-21 | 2009년 |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 2009 | 우승 |
| 독일 | 2010년 | 2010년 FIFA 월드컵 | 3위 |
| 2012년 | UEFA 유로 2012 | 4강 | |
| 2014년 | 2014년 FIFA 월드컵 | 우승 | |
| 2016년 | UEFA 유로 2016 | 4강 | |
| 2018년 | 2018년 FIFA 월드컵 | 조별리그 탈락 | |
| 2018년 | UEFA 네이션스리그 2018-19 | 리그 A 잔류 실패 (리그 B 강등) |
3.1. 2010년 FIFA 월드컵
요아힘 뢰프 감독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2010년 FIFA 월드컵 최종 23인 엔트리에 보아텡을 포함시켰다.
2010년 6월 23일,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가나를 상대했는데, 이 경기에서 보아텡은 가나 대표팀 소속인 이복형 케빈-프린스 보아텡과 맞붙었다. 경기는 독일의 1-0 승리로 끝났고, 두 팀 모두 16강에 진출했다. 이는 FIFA 월드컵 역사상 두 형제가 서로 다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맞대결한 첫 번째 사례였다.
보아텡은 이 대회에서 주로 왼쪽 측면 수비수로 활약하며 5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독일은 D조 1위로 16강에 올라 잉글랜드를 4-1로 꺾었고, 8강에서는 아르헨티나를 4-0으로 대파했다. 보아텡은 이 두 경기 모두 선발로 출전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준결승에서는 UEFA 유로 2008 우승팀인 스페인을 만나 카를레스 푸욜에게 헤딩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했다.
이후 우루과이와의 3·4위 결정전에도 선발 출전한 보아텡은 마르셀 얀센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독일의 3-2 승리를 도왔고, 독일은 2회 연속 월드컵 3위를 차지했다.
3.2. UEFA 유로 2012
보아텡은 UEFA 유로 2012 독일 대표팀 23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는 라이트백으로 활약하며 5경기 중 4경기에 출전했고, 독일이 준결승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으나 이탈리아에 패하여 탈락했다.
3.3. 2014년 FIFA 월드컵
2010년 FIFA 월드컵에 이어 4년 뒤인 2014년 FIFA 월드컵에서도 독일 대표팀으로 참가하였다. 가나와 독일이 같은 조에 편성되면서 형 케빈프린스와 다시 한번 맞붙게 되었다.
2014년 7월 8일,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는 풀타임을 소화하며 독일 대표팀의 역사적인 7-1 대승에 기여하였다.
2014년 7월 13일 열린 결승전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며 독일의 2014년 FIFA 월드컵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보아텡은 결승전에서 83%의 높은 성공률로 경합(듀얼)에서 승리했고, 동료 마츠 훔멜스와 함께 여러 차례 중요한 태클을 성공시켰다. 120분 동안 경기를 뛰면서 파울은 단 한 번만 기록하는 등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었다. 여러 언론에서 그를 경기 최우수 선수(Man of the Match)로 선정하기도 하였으나, 공식 최우수 선수는 결승골을 넣은 마리오 괴체였다.
3.4. UEFA 유로 2016
2016년 5월, 독일축구협회와 레고 그룹의 협업으로 유럽 한정판 수집용 미니피겨 시리즈가 출시되었는데, 보아텡은 16개의 미니피겨 중 세 번째로 포함되었다.
UEFA 유로 2016 본선에서는 독일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6월 13일, 조별 리그 첫 경기인 우크라이나전에서 결정적인 골라인 클리어링을 선보이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6월 26일 열린 16강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는 장거리 발리슛으로 자신의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하며 3-0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7월 8일, 준결승 프랑스전에서 후반전에 허벅지 근육 부상을 당해 교체되었고, 독일은 이 경기에서 0-2로 패배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독일은 이 대회에서 최종 4강에 머물렀다.
3.5. 2018년 FIFA 월드컵
보아텡은 2018년 6월 4일 요아힘 뢰프 감독이 발표한 2018년 FIFA 월드컵 최종 23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6월 23일, 그는 스웨덴과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두 번째 경고를 받아 퇴장당했다. 독일은 이 경기에서 2-1로 승리했지만, 보아텡은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세르비아를 상대로 퇴장당한 미로슬라프 클로제 이후 월드컵 경기에서 퇴장당한 첫 독일 선수가 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퇴장으로 인해 그는 독일이 대한민국에게 충격적인 0-2 패배를 당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월드컵 이후인 2019년 3월 5일, 국가대표팀 감독 요아힘 뢰프는 팀의 세대교체를 이유로 그의 소속팀 동료인 마츠 훔멜스와 토마스 뮐러와 함께 보아텡을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 발탁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3.6. 국가대표팀 은퇴 논란
2018년 9월, 동료 선수인 메수트 외질이 인종차별 문제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자, 보아텡은 자신 역시 비슷한 차별을 겪고 있다며 외질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3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요아힘 뢰프 감독은 팀의 세대교체를 이유로 보아텡과 훔멜스, 토마스 뮐러를 더 이상 대표팀에 선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메수트 외질은 뢰프 감독의 결정에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4. 플레이 스타일
다재다능한 수비수인 보아텡은 주로 센터백으로 활약하지만, 오른쪽 풀백으로도 뛸 수 있다. 그는 강력한 피지컬 능력과 볼을 소유했을 때의 침착함, 훌륭한 패싱 능력과 경기를 읽는 능력, 그리고 강력한 태클 능력을 갖춘 수비수로 명성을 얻었다. 젊은 시절에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수비 시 실수가 잦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꾸준히 발전하여 자신의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5. 논란 및 사건사고
제롬 보아텡은 셰린 센러(Sherin Senler)와 오랜 기간 관계를 맺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쌍둥이 딸이 있다. 두 사람은 여러 차례 헤어짐과 재결합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관계를 이어갔다. 보아텡은 2015년에 다른 관계에서 아들을 얻기도 했다.
2019년, 보아텡은 폴란드 출신 모델 카시아 렌하르트(Kasia Lenhardt)와 교제를 시작했다. 그러나 2021년 2월, 렌하르트가 보아텡 소유의 미니 쿠퍼 차량을 파손하고 음주 운전 혐의로 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한 후, 두 사람 사이에 공개적인 다툼이 벌어졌다. 이후 보아텡은 렌하르트와의 결별을 발표하며, 렌하르트가 이전 관계를 방해하고 자신을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결별 발표 일주일 뒤인 2월 10일, 렌하르트는 베를린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수사 당국은 사인을 자살로 추정했다. 당시 보아텡은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카타르에서 열린 FIFA 클럽 월드컵에 참가 중이었으나, 개인적인 사유로 대회를 중도 포기하고 귀국했다.
이후 보아텡은 레베카 실베라(Rebecca Silvera)와 약혼했다.
2024년 3월,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보아텡과 셰린 센러 사이의 양육권 소송 과정에서 제출된 보아텡 어머니의 2021년 3월 이메일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메일에서 보아텡의 어머니는 "수년 동안 내 아들은 여성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해 왔고, 이제 카시아 렌하르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슈피겔》은 또한 렌하르트의 유족으로부터 입수한 아이폰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2019년 옥토버페스트 당시 보아텡이 자신의 왼쪽 엄지손가락을 거의 부러뜨리고 잔을 던졌다는 렌하르트의 주장과 함께, 팔에 혈종이 생긴 사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렌하르트는 여러 지인에게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2021년 1월에는 보아텡이 자신의 귀를 찢고 무릎을 다치게 했다고 주장했으나, 보아텡은 이를 부인했다.
5.1. 가정폭력 유죄 판결
2021년 9월 9일, 제롬 보아텡은 뮌헨의 독일 법원에서 2018년 카리브해 휴가 중 전 여자친구인 세린 젠러(Sherin Senler)를 폭행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보아텡에게 60일의 벌금형(징역형 대신 일일 벌금)을 선고했으며, 일일 벌금은 30로 책정되어 총 1.8(1.5)의 벌금을 지불하도록 명령받았다. 뮌헨 지방 법원은 가정 폭력 유죄 판결에 대해 보아텡에게 가능한 최고 금액의 손해 배상을 부과했으며, 보아텡은 학대 혐의를 부인했다.
보아텡과 검찰 모두 판결에 대해 항소했다. 2022년 11월 2일, 항소 법원은 형량을 120일로 수정했다. 독일에서는 90일 이상의 형량은 형사 유죄 판결로 간주된다. 일일 벌금은 보아텡의 당시 수입에 맞춰 조정되어 10으로 낮춰졌고, 따라서 총 벌금은 1.2으로 줄어들었다.
6. 경력 통계
(내용 없음)
6.1. 클럽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보아텡은 2002년 7월 1일, 13세의 나이에 헤르타 BSC 베를린에 합류했다. 유소년팀과 리저브팀(헤르타 BSC II)을 거쳐 2007년 1월 31일 처음으로 1군에 차출되었다. 헤르타 BSC II 소속으로는 2005-06 시즌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에서 9경기 1골, 2006-07 시즌 15경기를 뛰었다. 1군 데뷔는 2006-07 시즌 19라운드 하노버 96과의 원정 경기로, AWD-아레나에서 치러졌다. 그는 18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1군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해당 시즌 1군에서 총 11경기에 출전했다.
2007년 여름, 보아텡은 함부르거 SV와 연결되었고, 헤르타 BSC와의 5년 재계약을 원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독일 언론을 통해 나왔다. 결국 2007년 8월 22일, 약 1.1의 이적료로 함부르거 SV로 이적했다.
함부르크에서 보아텡은 성공적인 두 시즌을 보냈다. 2008-09 시즌 팀의 리그 우승 경쟁과 2년 연속 UEFA 유로파리그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그는 2007-08 시즌 37경기, 2008-09 시즌 35경기에 출전했다. 2009-10 시즌에는 리그 27경기를 포함해 총 4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으며,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2010년 FIFA 월드컵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010년 6월 5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시티 FC는 보아텡과 5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적료는 10.4였으며, 등번호는 그가 선호하는 17번을 받았다. 그는 발렌시아 CF와의 프리시즌 친선 경기에서 데뷔하여 마이카 리처즈와 번갈아 센터백과 라이트백으로 뛰었고, 개러스 배리의 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 개막을 앞두고 덴마크와의 국가대표 친선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다. 귀국 비행기에서 음료수 카트와 부딪히며 왼쪽 무릎 힘줄 부상이 악화되었다. 그는 2010년 9월 25일, 1-0으로 승리한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유벤투스 FC와의 UEFA 유로파리그 경기(1-1 무승부)에서 라이트백으로 첫 선발 풀타임을 소화했다. 2010-11 시즌 동안 총 24경기에 출전했으며, 팀은 FA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보아텡은 결승전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2011년 6월, 보아텡은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바이에른에서 뛰는 것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 확보에 유리하며, 맨체스터 시티에서 주로 라이트백으로만 기용되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2011년 7월 14일, FC 바이에른 뮌헨은 보아텡과 4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적료는 13.5였고, 등번호는 이전 클럽들에서처럼 17번을 받았다. 그는 2011년 7월 27일 AC 밀란과의 2011 아우디 컵 경기에서 하피냐와 교체 투입되며 바이에른 데뷔전을 치렀다. 2011-12 시즌 리그 데뷔는 8월 6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홈 경기(0-1 패)였는데, 이 경기에서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와의 소통 실수로 이고르 드 카마르고에게 결승골을 내주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고, 보아텡은 포칼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모두 풀타임 출전했다. 그는 2011-12 시즌 총 48경기에 출전했다.
2012-13 시즌, 보아텡은 바이에른 뮌헨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구단 역사상 첫 트레블 달성에 기여했다. 시즌 시작 전 DFL-슈퍼컵 우승도 차지했다. 2012년 12월 5일, FC BATE 보리소프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퇴장당해 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2013년 3월 9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홈 경기에서는 필리프 람의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하며 자신의 분데스리가 데뷔골이자 팀의 3-2 역전승을 이끄는 결승골을 기록했다. 4월 13일에는 1. FC 뉘른베르크를 상대로 멋진 발리슛으로 골을 넣으며 4-0 승리에 기여했다. 이 시즌 그는 총 40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했다.
2013-14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2013년 10월 2일, 친정팀 맨체스터 시티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퇴장당해 1경기 출전 정지를 받았다. 11월 9일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 경기에서는 경기 시작 4분 만에 코너킥 상황에서 골을 넣어 3-0 승리에 기여했다. 2013년 12월 11일, 그는 바이에른 뮌헨과 2018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14년 5월 3일 리그 경기에서 또다시 퇴장당하며 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바이에른은 이 시즌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을 달성했으며, 보아텡은 총 43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이후로도 바이에른 뮌헨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다수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21년 9월 1일, 바이에른 뮌헨과의 계약이 만료된 후 프랑스 리그 1의 올랭피크 리옹과 2년 계약을 맺었다. 리옹에서는 두 시즌 동안 리그 32경기를 포함해 총 35경기에 출전했다.
2024년 2월 2일, 리옹과 계약 만료 후 약 반년 간 소속팀이 없던 보아텡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US 살레르니타나 1919와 단기 계약을 맺고 입단하여 시즌 종료까지 7경기에 출전했다.
2024년 여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LASK로 이적했다.
=== 통계 ===
|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DFB-포칼, FA컵 등) | 유럽 대항전 (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유로파리그 등) | 기타 (DFL-슈퍼컵,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 등) | 총합 | ||||||
|---|---|---|---|---|---|---|---|---|---|---|---|---|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 헤르타 BSC II | 2005–06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9 | 1 | — | — | — | 9 | 1 | |||
| 2006–07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5 | 0 | — | — | — | 15 | 0 | ||||
| 총합 | | 1 || colspan="2" | — || colspan="2" | — || colspan="2" | — || 24 || 1 | |||||||||||
| 헤르타 BSC | 2006–07 | 분데스리가 | 10 | 0 | 1 | 0 | 0 | 0 | — | 11 | 0 | |
| 함부르크 SV | 2007–08 | 분데스리가 | 27 | 0 | 3 | 0 | 7 | 0 | — | 37 | 0 | |
| 2008–09 | 분데스리가 | 21 | 0 | 5 | 0 | 9 | 0 | — | 35 | 0 | ||
| 2009–10 | 분데스리가 | 27 | 0 | 1 | 0 | 13 | 1 | — | 41 | 1 | ||
| 총합 | | 0 || 9 || 0 || 29 || 1 || colspan="2" | — || 113 || 1 | |||||||||||
| 맨체스터 시티 | 2010–11 | 프리미어리그 | 16 | 0 | 3 | 0 | 5 | 0 | — | 24 | 0 | |
| 바이에른 뮌헨 | 2011–12 | 분데스리가 | 27 | 0 | 6 | 0 | 15 | 0 | — | 48 | 0 | |
| 2012–13 | 분데스리가 | 26 | 2 | 4 | 0 | 9 | 0 | 1 | 0 | 40 | 2 | |
| 2013–14 | 분데스리가 | 25 | 1 | 5 | 0 | 9 | 0 | 4 | 0 | 43 | 1 | |
| 2014–15 | 분데스리가 | 27 | 0 | 5 | 0 | 11 | 3 | 1 | 0 | 44 | 3 | |
| 2015–16 | 분데스리가 | 19 | 0 | 4 | 0 | 7 | 0 | 1 | 0 | 31 | 0 | |
| 2016–17 | 분데스리가 | 13 | 0 | 2 | 0 | 6 | 0 | 0 | 0 | 21 | 0 | |
| 2017–18 | 분데스리가 | 19 | 1 | 3 | 1 | 9 | 0 | 0 | 0 | 31 | 2 | |
| 2018–19 | 분데스리가 | 20 | 0 | 3 | 0 | 5 | 0 | 0 | 0 | 28 | 0 | |
| 2019–20 | 분데스리가 | 24 | 0 | 4 | 0 | 9 | 0 | 1 | 0 | 38 | 0 | |
| 2020–21 | 분데스리가 | 29 | 1 | 1 | 0 | 7 | 1 | 2 | 0 | 39 | 2 | |
| 총합 | | 5 || 38 || 1 || 86 || 4 || 10 || 0 || 364 || 10 | |||||||||||
| 리옹 | 2021–22 | 리그 1 | 24 | 0 | 0 | 0 | 3 | 0 | — | 27 | 0 | |
| 2022–23 | 리그 1 | 8 | 0 | 0 | 0 | — | — | 8 | 0 | |||
| 총합 | | 0 || 0 || 0 || 3 || 0 || colspan="2" | — || 35 || 0 | |||||||||||
| 살레르니타나 | 2023–24 | 세리에 A | 7 | 0 | — | — | — | 7 | 0 | |||
| LASK | 2024–25 |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 4 | 0 | 0 | 0 | 4 | 0 | — | 8 | 0 | |
| 통산 기록 | | 6 || 51 || 1 || 127 || 5 || 10 || 0 || 585 || 12 | |||||||||||
2024년 10월 24일 경기 종료 기준
6.2. 국가대표팀
보아텡은 독일의 U-17, U-19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활동했다. 2007년 7월 5일에는 프랑크 엔켈 감독의 부름을 받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UEFA U-19 챔피언십에 참가할 U-19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보아텡은 2009년 UEFA U-21 챔피언십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같은 해 10월 10일,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독일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후반전에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독일 국가대표팀 역사상 데뷔전에서 퇴장당한 첫 선수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보아텡은 이후 대표팀의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다.
요아힘 뢰프 감독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2010년 FIFA 월드컵 최종 23인 엔트리에 보아텡을 포함시켰다.
2010년 6월 23일, 독일은 조별 리그에서 보아텡의 이복형 케빈프린스 보아텡이 속한 가나와 맞붙었다. 이 경기는 독일의 1-0 승리로 끝났으며, 두 팀 모두 16강에 진출했다. 이 경기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형제가 서로 다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맞대결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독일은 D조 1위로 16강에 올라 잉글랜드를 상대했다. 보아텡은 이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하여 독일의 4-1 승리에 기여했다. 8강에서는 아르헨티나를 만나 4-0 대승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독일은 3회 연속 월드컵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UEFA 유로 2008 우승팀 스페인에게 카를레스 푸욜의 결승골로 0-1로 패배했다. 보아텡은 우루과이와의 3위 결정전에도 출전하여 마르첼 얀젠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3-2 승리를 도왔고, 독일은 2회 연속 월드컵 3위를 차지했다.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 독일 | 2009 | 2 | 0 |
| 2010 | 10 | 0 | |
| 2011 | 7 | 0 | |
| 2012 | 9 | 0 | |
| 2013 | 8 | 0 | |
| 2014 | 14 | 0 | |
| 2015 | 7 | 0 | |
| 2016 | 10 | 1 | |
| 2017 | 1 | 0 | |
| 2018 | 8 | 0 | |
| 합계 | 76 | 1 | |
| # | 날짜 | 경기장 | 출전 경기 수 | 상대팀 | 스코어 | 최종 결과 | 대회명 |
|---|---|---|---|---|---|---|---|
| 1 | 2016년 6월 26일 | 프랑스 빌뇌브다스크 스타드 피에르 모루아 | 63 | 슬로바키아 | 1–0 | 3–0 | UEFA 유로 2016 |
* A매치 76경기 1득점 (2009년–2018년)
7. 수상 내역
* 프리츠 발터 메달 U-19 동메달: 2007
* 은월계잎 훈장: 2010, 2014
* 키커 독일 축구 순위 월드 클래스 분류: 2014/15 겨울, 2015/16 겨울, 2016 여름
*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팀: 2014–15, 2015–16
* 키커 올해의 수비수: 2014–15, 2015–16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토너먼트 베스트팀: 2016
* 올해의 독일 축구 선수: 2015–16
* 모세 멘델스존 상: 2016
* UEFA 올해의 팀: 2016
7.1. 클럽
보아텡은 센터백으로, 강력한 피지컬과 다양한 수비 포지션을 소화하는 다재다능함이 특징이다.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해 헤르타 BSC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헤르타 BSC 소속으로 2005년 독일 유스 챔피언십 우승을 경험했다. 2007년 함부르거 SV로 이적했고, 이후 맨체스터 시티 FC를 거쳐 2011년 7월 FC 바이에른 뮌헨에 합류했다.
맨체스터 시티 FC
* FA컵: 2010-11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2012–13, 2013–14, 2014–15, 2015–16, 2016–17, 2017–18, 2018–19, 2019–20, 2020–21
* DFB-포칼: 2012–13, 2013–14, 2015–16, 2018–19, 2019–20
* DFL-슈퍼컵: 2012, 2016, 2017, 2018, 2020
* UEFA 챔피언스리그: 2012–13, 2019–20
* UEFA 슈퍼컵: 2013, 2020
* FIFA 클럽 월드컵: 2013, 2020
7.2. 국가대표팀
보아텡은 독일의 U-17, U-19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활동했다. 2007년 7월 5일, 프랑크 엔켈 감독의 부름을 받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UEFA U-19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보아텡은 2009년 UEFA U-21 챔피언십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이후 2009년 10월 10일,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독일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나, 이 경기에서 후반전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독일 국가대표 역사상 데뷔전에서 퇴장당한 첫 선수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주전 자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요아힘 뢰프 감독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2010년 FIFA 월드컵 최종 23인 엔트리에 보아텡을 포함시켰다.
2010년 6월 23일, 독일은 보아텡의 이복형 케빈프린스 보아텡이 속한 가나와 맞붙었다. 이 경기는 독일의 1-0 승리로 끝났고, 두 팀 모두 16강에 진출했다. 이 경기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형제가 서로 다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맞대결한 사례였다. D조 1위로 16강에 오른 독일은 잉글랜드를 만났다. 보아텡은 이 경기에서도 출전하여 독일의 4-1 승리에 기여했다. 8강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4-0 대승을 거두는 데에도 힘을 보탰다. 독일은 3회 연속 월드컵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UEFA 유로 2008 우승팀인 스페인에게 카를레스 푸욜의 결승골로 패배했다. 보아텡은 우루과이와의 3위 결정전에도 출전하여 마르첼 얀젠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3-2 승리와 2회 연속 월드컵 3위 달성에 기여했다.
독일 U-21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2009
독일
*FIFA 월드컵: 우승 2014; 3위 2010
8. 사생활
보아텡은 독일인 어머니 마르티나 보아텡과 가나인 아버지 사이에서 베를린에서 태어난 가나계 독일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1981년 가나를 떠나 독일로 이주하여 DJ와 웨이터로 일했으며, 삼촌 로베르트 보아텡은 전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였다. 보아텡에게는 누나 아벨리나와 두 명의 이복형이 있는데, 케빈프린스 보아텡은 역시 프로 축구 선수이고, 조지 보아텡은 헤르타 BSC 베를린 유소년팀 출신이지만 프로 선수가 되지는 못했다. 제롬은 항공사 스튜어디스인 어머니와 함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1954년 FIFA 월드컵 우승 멤버인 헬무트 란의 사촌이다.
이복형 케빈프린스 보아텡과는 헤르타 BSC 베를린 시절 좋은 관계였으나, 2010년 FA컵 결승전에서 케빈프린스가 미하엘 발라크에게 부상을 입혀 그의 2010년 FIFA 월드컵 출전을 무산시키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 제롬은 당시 인터뷰에서 형들과 만나고 싶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케빈프린스는 가나 국가대표팀을 선택했고, 2010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독일 대표팀 소속의 제롬과 맞붙어 월드컵 역사상 드문 형제 대결이 펼쳐졌다. 경기는 독일의 1-0 승리로 끝났으며, 두 팀 모두 16강에 진출했다.
보아텡은 셰린 센러와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했으며, 2011년 3월 두 사람 사이에 쌍둥이 딸을 두었다. 몇 년간 헤어졌다가 2013년 11월 다시 만나는 등 관계를 이어갔고, 2015년에는 아들을 낳았다.
2019년에는 폴란드 출신 모델 카시아 렌하르트와 교제를 시작했으나, 2021년 2월, 렌하르트가 보아텡의 차량을 파손하고 음주 운전 혐의로 기소된 후 공개적인 다툼 끝에 결별했다. 보아텡은 렌하르트가 자신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결별 발표 일주일 후인 2월 10일, 렌하르트는 베를린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수사관들은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카타르에서 FC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2020 FIFA 클럽 월드컵에 참가 중이던 보아텡은 개인적인 사유로 대회에서 하차하여 귀국했다.
이후 보아텡은 레베카 실베라와 약혼했다.
2024년 3월,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보아텡의 어머니가 2021년 3월 보아텡과 셰린 센러 사이의 양육권 소송에서 사용된 이메일을 입수하여 보도했다. 이메일에는 독일어로 "수년 동안 제 아들은 여성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해 왔고, 이제 카시아 렌하르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보도했다. 《슈피겔》은 또한 렌하르트의 아이폰 내용을 토대로, 렌하르트가 2019년 옥토버페스트에서 보아텡에게 폭행당해 왼쪽 엄지손가락을 거의 부러뜨리고 팔에 혈종이 생겼다고 주장했으며, 2021년 1월 또 다른 사건에서는 보아텡이 자신의 귀를 찢고 무릎을 다치게 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보아텡은 이러한 혐의를 부인했다.
보아텡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