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불
1. 개요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조각된 불상을 의미한다. 한국의 마애불은 백제 시대와 고려 시대에 걸쳐 제작되었으며, 백제 시대에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이 대표적이다. 고려 시대의 마애불은 추상적인 조형과 냉랭한 표정이 특징이며, 북한산 승가사 석가여래좌상과 광주 교리 약사곡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있다. 일본의 마애불은 나라 시대 또는 헤이안 시대 초기에 시작되어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전국적으로 제작되었으며, 특히 오이타현에 많은 수가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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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화 -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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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화 -
고려청자
고려청자는 10세기 초 중국의 청자 기술을 도입하여 시작되어 12세기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상감 기법의 발달과 몽골 침입으로 인한 쇠퇴기를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 -
삼국 시대의 문화 -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비는 414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고구려 역사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록하여 고구려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
삼국 시대의 문화 -
황조가
《황조가》는 고구려 유리왕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로, 꾀꼬리의 의지하는 모습과 대비되는 화자의 고독한 심정을 노래하며, 작자에 대한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고대 권력자의 고독과 고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마애불 -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굴불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사방불 형식 석조 조각상으로, 각 면에는 아미타불, 약사여래, 석가모니불, 미륵보살이 조각되어 있으며, 창건 설화와 함께 통일신라 시대 조각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
마애불 -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높이 13m의 화강암 마애불로서, 부드러운 신체 표현과 힘있는 얼굴 선이 특징이며, 과거 목조 건축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구멍이 있고, 덕주 공주 창건 설화가 전해지나 조성 시기와 차이가 있으며, 고려 초기 지방 호족 세력의 불교 번성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2. 한국의 마애불
한국에서는 여러 시대에 걸쳐 자연 암벽에 불상을 새긴 마애불이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백제의 마애불로는 충청남도 서산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태안의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고려 시대의 마애불은 일반적으로 추상화된 조형미와 다소 위압적인 인상을 주는 경향이 있으며, 북한산 승가사의 석가여래좌상이나 경기도 광주의 약사곡 마애약사여래좌상 등이 대표적인 예로 남아 있다.
2.1. 백제의 마애불
현존하는 백제의 마애불로는 1958년에 발견된 충청남도 서산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태안의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이 잘 알려져 있다. 이 두 마애불은 백제 후기 불교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받는다.
2.1.1.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1958년에 발견된 충청남도 서산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현존하는 백제의 대표적인 마애불 중 하나이다.
이 마애불은 계곡 근처 산등성이의 화강암 암벽에 새겨진 석가삼존상이다. 본존불과 좌협시 관음보살은 서 있는 모습(입상)이지만, 우협시 미륵보살은 의자에 앉아 한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모습(반가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본존불은 높이 2.8m이며, 눈을 크게 뜨고 쾌활하게 웃는 듯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이는 중국 남조 불상 양식의 영향을 보여주지만, 옷 주름 표현 등은 다소 형식화되고 경직된 면도 나타난다. 제작 연대는 백제 말기로 추정된다.
2.1.2.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은 바다에 면한 산 위의 큰 암벽에 새겨져 있다. 용현리의 마애석불보다 한층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당당한 체구를 하고 있다. 좌우에 두 여래입상을 두고 중앙에 보살입상을 배치한 특이한 삼존불 형태이다. 이는 수나라나 당나라 초기 불상 양식과 통하는 점이 있으며, 제작 연대는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2.2. 고려의 마애불
고려 시대의 마애석불은 일반적으로 추상화된 조형성을 보이며, 표정은 다소 냉랭하고 신체 일부를 기형적으로 크게 만들어 정신적인 위압감을 주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북한산 구기리 승가사의 석가여래좌상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의 안위를 기원하는 민중적 신앙심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경기도 광주군 교리의 약사곡 마애약사여래좌상은 1022년(고려 현종 13년)이라는 제작 연대가 명확히 남아 있으며, 풍만한 신라 양식을 계승한 모습을 보여준다.
2.2.1.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고려 시대 마애석불은 일반적으로 추상화된 조형성을 보이며, 표정은 다소 냉랭하고 신체 일부를 기형적으로 크게 만들어 정신적인 위압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북한산 구기리 승가사(僧迦寺)에 있는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은 이러한 고려 마애불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네모난 형태의 평평한 얼굴에 옆으로 길게 그어진 눈, 굳게 다문 입 등에서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는 높은 불교 정신에 기반한 예술적 성취라기보다는,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당시 민중의 소박한 신앙심이 집약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2.2.2. 광주 교리 약사곡 마애여래좌상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교리에 있는 약사곡 마애약사여래좌상(藥師谷磨崖藥師如來坐像)은 오른쪽에 "太平二年丁卯"(태평 2년 정묘: 1022년, 고려 현종(顯宗) 13년)라는 제작 연대가 새겨져 있는 드문 마애불이다. 전체적인 인상에서 풍만한 신라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연꽃잎을 위아래로 새긴 이색적인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불상이다.
3. 일본의 마애불
(내용 없음)
3.1. 주요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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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마애불 조영 시작 시기는 나라 시대 또는 헤이안 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고마자카 마애불은 초기 사례로 전해지지만 제작 연대는 불분명하다. 헤이안 시대 후기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활발하게 조영되었으며, 분포도 규슈 지방, 긴키 지방, 간토 지방, 호쿠리쿠 지방, 도호쿠 지방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오이타현에는 전국 마애불의 절반 가까이가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 마애불 | 위치 | 시대 | 비고 |
|---|---|---|---|
| 우스키 마애불 | 오이타현 우스키시 | 헤이안 시대~가마쿠라 시대 | 특별사적 |
| 오야마 마애불 | 도치기현 우츠노미야시 | 헤이안 시대~가마쿠라 시대 | 특별 사적 |
| 모토하코네 마애불 | 가나가와현 하코네마치 | 가마쿠라 시대 | 사적 |
| 닛세키지 마애불 | 토야마현 카미이치마치 | 헤이안 시대 | 사적 |
| 구마노 마애불 | 오이타현 분고타카다시 | 헤이안 시대~가마쿠라 시대 | 사적 |
| 스게오 마애불 | 오이타현 분고오노시 | 헤이안 시대 | 사적 |
| 닷곡굴 암면대불 | 이와테현 히라즈미정 | 헤이안 시대 | 북쪽 한계의 마애불 |
| 대비산의 석불 (관음당 석불, 약사당 석불 부 아미타당 석불) |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 | 헤이안 시대 | |
| 사누키 석불 | 도치기현 시오야군 시오야정 | 헤이안 시대 ~ 가마쿠라 시대 | |
| 코마사카 마애불 | 시가현 릿토시 | 헤이안 시대 | |
| 가사기산 허공장 마애불 | 교토부 가사기정 | 헤이안 시대 중기 | |
| 가스가야마 석굴불 | 나라현 나라시 | 헤이안 시대 | |
| 지옥곡 석굴불 | 나라현 나라시 | 헤이안 시대 | |
| 오노데라 석불 | 나라현 우다시 | 가마쿠라 시대 | |
| 오이타 모토마치 석불 | 오이타현 오이타시 | 헤이안 시대 | |
| 다카세 석불 | 오이타현 오이타시 | 헤이안 시대 | |
| 모토미야 마애불 | 오이타현 분고타카다시 | 무로마치 시대 | 구마노 마애불의 부속 |
| 나베야마 마애불 | 오이타현 분고타카다시 | 헤이안 시대 | 구마노 마애불의 부속 |
| 이누카이 석불 | 오이타현 분고오노시 | 헤이안 시대 ~ 가마쿠라 시대 | |
| 오가타 미야사코 히가시 석불 | 오이타현 분고오노시 | 헤이안 시대 말기 | |
| 오가타 미야사코 니시 석불 | 오이타현 분고오노시 | 헤이안 시대 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