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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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쓰비시 T-2는 일본 항공자위대에서 운용된 초음속 제트 훈련기로, 1960년대 후반 개발이 시작되어 1970년대부터 실전 배치되었다. F-104와 같은 고성능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위해 개발되었으며, 훈련 외에도 지원 전투기 역할도 수행했다. T-2는 미쓰비시가 주도하여 설계되었으며, 롤스로이스 튜보메카 아두어 터보팬 엔진을 장착했다. 훈련 및 전술 훈련을 위한 다양한 파생형이 존재하며, 특히 '블루 임펄스' 곡예비행팀에서 사용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운용되다가 F-2B의 도입으로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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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T-2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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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훈련기 |
제작 국가 | 일본 |
제작사 | 미쓰비시 중공업 |
최초 비행 | 1971년 7월 20일 |
도입 | 1975년 |
퇴역 | 2006년 3월 |
주요 운용국 | 일본 항공자위대 |
생산 대수 | 96대 |
생산 기간 | 1971년–1988년 |
발전형 | 미쓰비시 F-1 |
상세 정보 | |
용도 | 고등 훈련기 |
운용자 | (항공자위대) |
운용 시작일 | 1974년 8월 |
퇴역일 | 2006년 3월 2일 |
운용 상황 | 퇴역 |
대당 가격 | 약 19억 엔 (평균) |
파생형 |
2. 개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적인 제트 전투기가 부족했던 일본은 전후 20년이 지나면서 항공자위대(JASDF)를 중심으로 "T-X"라는 가칭 아래 초음속 제트 훈련기 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아음속 후지 T-1 훈련기로는 록히드 F-104 스타파이터나 맥도넬 더글러스 F-4 팬텀 II와 같은 고성능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한 이 새로운 훈련기는 향후 개발될 단좌 공격기 '''SF-X'''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1]
초기에는 미국의 노스롭 T-38 탈론이나 영국/프랑스 합작의 SEPECAT 재규어 등 외국 기종 도입도 고려되었다. 특히 재규어는 훈련과 공격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어 면허 생산까지 협상하려 했으나,[2] 당시 일본 내 민족주의적 분위기[3]와 SEPECAT 측이 요구한 높은 로열티[2] 등의 문제로 무산되었다. 결국 일본은 재규어와 유사한 형태의 기체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1967년, 후지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미쓰비시가 각각 설계안을 제출했고, 같은 해 9월 미쓰비시의 설계안이 최종 선정되었다. '''XT-2''' 시제기 개발 계약은 1968년 3월 30일 미쓰비시를 주 계약자로, 후지를 주요 하청업체로 하여 체결되었으며, 다른 여러 항공 관련 기업들도 참여했다.[4]
XT-2의 설계는 1969년 3월까지 완료되었고,[4] 첫 프로토타입은 1971년 4월 28일 공개 후 같은 해 7월 20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총 4대의 시제기가 제작되었으며, XT-2는 일본이 독자 설계한 항공기로는 최초로 수평 비행 중 음속 장벽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시제기 4대 중 2대는 무장형, 나머지 2대는 비무장형으로 제작되어 시험되었다.[5][6]
총 90대의 T-2가 생산되었는데, 이 중 28대는 무장을 탑재하지 않은 초기형("T-2(Z)" 또는 前期型|젠키가타일본어), 62대는 무장을 탑재한 후기형("T-2(K)" 또는 後期型|코키가타일본어)이었다. 일부 자료에서는 이들을 각각 "T-2A"와 "T-2B"로 표기하기도 한다. 또한 S-FX/F-1 공격기 개발을 위해 T-2(Z) 2대가 추가로 개조되었다. 마지막 T-2는 1988년에 생산 라인에서 출고되었다.[7]
2. 1. 초음속 고등 훈련기의 필요성 대두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자체적인 현대식 제트 전투기 개발 능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였다. 전후 20년이 지난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항공자위대(JASDF)는 전력 현대화를 추진하여 1차 F-X 사업을 통해 F-104J를 1962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했고, 이후 2차 F-X 사업으로 F-4EJ 도입도 결정되었다(1969년).[1]그러나 당시 운용 중이던 아음속 후지 T-1 훈련기[1]나 T-33A 연습기만으로는 마하 2급의 고성능을 가진 F-104나 F-4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들 신형 전투기는 기존에 사용하던 F-86F나 F-86D와 비교해 성능 차이가 매우 컸고, 조종이 복잡하고 까다로웠기 때문이다.[1] F-104의 경우, 조종사 전환 훈련을 위해 복좌형인 F-104DJ를 도입했지만, T-33A 과정을 막 마친 신참 조종사에게는 F-104DJ 역시 너무 어려운 기체였다. 숙련된 조종사라면 F-104DJ 훈련만으로 충분했지만, 신참 조종사에게 이미 노후화된 F-86F 과정을 추가로 거치게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T-33A와 같은 기본 훈련기와 F-104, F-4 같은 주력 전투기 사이의 간극을 메울 새로운 초음속 고등 훈련기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항공자위대는 1964년에서 1965년 사이에 "T-X"라는 가칭으로 새로운 훈련기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 T-X는 장차 개발될 단좌 공격기인 '''SF-X'''의 기반이 될 것으로도 기대되었다.[1]
처음에는 새로운 항공기를 개발하는 대신 기존의 외국 항공기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었다. 미국은 T-38A/B 탈론을 제안했고,[2] TF-104도 후보로 고려되었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SEPECAT 재규어도 훈련기 겸 공격기로 제안되었다.[2] 1965년 9월에는 미국 공군의 교육 체계를 조사한 결과, T-38B를 제3차 방위력 정비 계획부터 도입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기도 했다. 일본은 재규어의 면허 생산까지 협상하려 했으나,[2] 당시 일본 내 민족주의적 분위기[3]와 SEPECAT 측이 요구한 높은 로열티[2] 때문에 결국 무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연구본부의 모리야 토미지로 본부장이 "이번 기회에 초음속기를 개발하지 않으면 일본은 영원히 개발할 수 없게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당시 마츠노 방위청 장관 역시 장비의 국산화를 지향하고 있었기에, 1965년 말에는 국산 초음속 훈련기 개발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항공자위대는 개발에 시간이 걸릴 것을 우려하여 3차 방위력 정비 계획에서는 해외 기체를 "임시 T-X"로 도입하고, 4차 방위력 정비 계획부터 국산 T-X를 도입하는 절충안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9년 F-4EJ 도입이 최종 결정되면서 복좌형인 F-4EJ가 기종 전환 훈련 역할을 일부 담당할 수 있게 되자, "임시 T-X" 도입 예산은 F-4EJ 구매 비용으로 전용되었고, 최종적으로 T-X는 국산으로 개발하는 방향으로 확정되었다.
2. 2. T-X 계획과 국제 협력 모색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적인 제트 전투기가 없었던 일본은 종전 20년이 지난 후 항공자위대 (JASDF)를 중심으로 "T-X"라는 가칭의 초음속 제트기 개발을 고려하기 시작했다.기존에 운용하던 아음속 후지 T-1 제트 훈련기로는 록히드 F-104 스타파이터나 맥도넬 더글러스 F-4 팬텀 II와 같이 더 복잡하고 고성능인 마하 2급 주력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1964년부터 1965년 사이, 새로운 훈련기인 T-X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T-X는 단순히 훈련 임무뿐만 아니라, 장차 개발될 단좌 공격기 '''SF-X'''의 기반이 될 기체로도 기대되었다.[1]
초기에는 새로운 항공기를 자체 개발하는 대신 기존의 외국 기체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었다. 미국은 노스롭 T-38 탈론을 제안했고, 영국과 프랑스의 합작 기업인 SEPECAT는 훈련과 공격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SEPECAT 재규어를 제안했다. 일본은 두 기종을 신중히 검토했으며, 특히 재규어의 면허 생산을 추진하려 했으나,[2] 당시 일본 내의 민족주의적 분위기[3]와 SEPECAT 측이 요구한 높은 로열티[2] 문제로 인해 협상은 결렬되었다. 결국 일본은 재규어와 상당히 유사한 형태의 기체를 자체적으로 설계 및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1967년 예산에는 국산 T-X 개발의 첫 단계인 기본 설계를 위한 위탁 설계비가 반영되었고, 같은 해 7월에는 항공막료장이 방위청 장관에게 T-X의 요구 성능을 제출했다. 1968년 2월에는 방위청 기술연구본부장에게 기본 설계 명령이 내려졌으며, 개발될 기체는 "초음속 고등 훈련기"로 명명되고 '''XT-2'''라는 식별 부호가 부여되었다.
1967년, 일본의 주요 항공 회사인 미쓰비시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후지 중공업이 각각 T-X 개발 계획안을 제출했으며, 같은 해 9월 5일 평가를 거쳐 미쓰비시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국가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경쟁했던 다른 회사들 및 신메이와 공업도 협력사로 지정되었다.
XT-2 개발을 위한 공식 계약은 1968년 3월 30일에 미쓰비시를 주 계약자로, 후지를 주요 하청업체로 하여 체결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 항공우주 관련 기업 및 소규모 제조업체들과 하청 계약이 이루어졌다.[4]
2. 3. 미쓰비시의 주도와 XT-2 개발
1967년, 후지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미쓰비시는 항공자위대의 차기 초음속 훈련기 사업(T-X)에 각자의 설계안을 제출했다. 같은 해 9월, 항공자위대는 수석 설계자인 이케다 겐지 박사가 이끄는 미쓰비시의 제안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4] 이는 당초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SEPECAT 재규어의 면허 생산을 고려했으나, 높은 로열티 요구와[2] 당시 일본 내 민족주의적 분위기[3]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자체 개발로 선회한 결정이었다.미쓰비시를 주 계약자로, 후지 중공업을 주요 하청업체로 하는 '''XT-2''' 시제기 개발 계약은 1968년 3월 30일에 공식 체결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 항공우주 관련 기업 및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하청 계약을 통해 개발에 참여했다.[4]
XT-2의 설계는 1969년 3월에 완료되었으며,[4] 첫 번째 시제기는 1971년 4월 28일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역사적인 첫 비행은 같은 해 7월 20일에 이루어졌다. 이후 3대의 시제기가 추가로 제작되어 총 4대의 XT-2가 각종 시험 비행 및 평가에 투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XT-2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설계한 항공기로는 최초로 수평 비행 상태에서 음속 장벽을 돌파하는 중요한 성과를 달성했다. 제작된 시제기 4대 중 2대는 무장을 장착한 상태였고, 나머지 2대는 비무장 상태로 시험되었다.[5][6]
3. 설계
T-2의 설계는 2인승 재규어 공격기와 전체적인 구성 및 세부 사항에서 유사점을 보인다. 특히, 재규어와 동일한 롤스로이스 튜보메카 아두어 터보팬 엔진 2기를 이시카와지마-하리마 중공업에서 "TF40-IHI-801A"라는 명칭으로 면허 생산하여 장착했다.
하지만 T-2는 재규어의 복제품은 아니며, 더 날렵하고 긴 동체와 짧은 날개폭 등 외형적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항공자위대의 운용 요구 사항에 맞춰 재규어의 특징적인 고강도 착륙 장치 대신 일반적인 단일 바퀴 랜딩 기어를 채택하는 등 독자적인 설계를 반영했다.[8] 기체는 주로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되었고 티타늄도 일부 사용되었다.[9] 엔진 흡입구는 고정식이며, 활주로 어레스팅 후크가 장착되었다.[11]
3. 1. 기체 구조

T-2는 "F-86 세이버의 후계기로서, 전술 훈련이 가능하며, 지원 전투의 잠재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초음속 비행 능력을 가진 연습기"로서 개발되었다. 설계에는 F-104 스타파이터의 영향이 컸으며, '양력보다 잉여 추력을 이용하여 초음속에서의 고G 선회를 추구한다'는 F-104의 기본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F-104의 단점인 'T자 꼬리날개 문제'와 '직선익으로 인한 천음속 영역에서의 잉여 추력 부족' 등의 결함을 개선하여 마하 1.6까지의 천음속 및 초음속 영역에서 효과적으로 기동할 수 있도록 목표했다.
T-2의 전체적인 구성은 2인승 재규어 공격기와 유사하며, 세부 사항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었다. 특히 롤스로이스 튜보메카 아두어 터보팬 엔진 2기를 장착했는데, 이는 재규어와 동일한 형식의 엔진으로 IHI에서 "TF40-IHI-801A"라는 명칭으로 면허 생산되었다. 그러나 T-2는 재규어의 복제품이 아니며, 더 날렵하고 길쭉한 동체와 짧은 날개폭을 가져 한눈에 구별할 수 있는 독자적인 설계였다. 또한 항공자위대는 거친 활주로에서의 운용 요구 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재규어의 특징적인 고강도 착륙 장치 대신 일반적인 단일 바퀴 랜딩 기어를 장착하는 등 세부적인 차이점도 많았다.[8]
주익은 높은 위치(고익)에 장착되었으며, 날개 면적은 21.17m2로 작은 편이다. 익면 하중은 450 kgf/m2로, 재규어(400 kgf/m2)보다 크고 F-104(520 kgf/m2)에 가까운 값이다. 익형은 선단 연장(LERX)과 도그 투스를 가진 클립트 델타익 형태로, 앞전 후퇴각은 42.29도(자료에 따라 42.5도[9])이며, 상반각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9도의 하반각이 적용되었다. 날개 구조는 두꺼운 판재 테이퍼 외판의 다보 구조로 되어 있다. 날개 앞쪽 가장자리에는 전폭 앞전 슬랫이 있고, 뒤쪽 가장자리에는 ¾ 폭의 단일 플랩이 있다.[9] 횡조종(롤 제어)에는 MU-2 이래 미쓰비시 항공기에서 사용된 스포일러 방식이 채택되었다. 보조익(에일러론) 대신 플랩 바로 앞 각 날개에 쌍으로 설치된 스포일러를 사용하여 저속에서 고속, 높은 받음각 상태까지 양호한 조종성을 확보했다. 날개 윗면 안쪽에는 작은 펜스가 장착되었으며, 날개 내부에는 연료 탱크가 없다.[9]
동체는 강력한 론저론(Longeron)과 원형 골조로 구성된 일반적인 모노코크 구조이다. 단면은 대략 직사각형이며, 마하 1.4에서 전체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도록 초음속 에어리얼 룰이 적용되었다. 주익을 얇게 설계하면서 연료 탱크를 동체 내부에 배치하게 되어, 동체 두께를 억제하여 저항을 줄이는 것이 설계의 중요한 과제였다.
꼬리 부분은 일반적인 형태로, 하방으로 15도의 각도가 있는 일체형 가동 수평 미익을 특징으로 한다. 이 각도는 엔진 배기가스로부터 수평 미익을 보호하는 동시에 날개에서 발생하는 와류 속에서도 조종 효력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9] 수평 미익의 앞쪽 가장자리는 엔진 배기의 열에 견딜 수 있도록 티타늄 합금이 사용되었다. 최종 설계 단계에서 저속 및 높은 받음각 상태에서의 방향 안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동체 후부 아래쪽에 한 쌍의 벤트럴 핀이 추가되었다. 각 벤트럴 핀 앞에는 유압식 에어 브레이크 2개가 장착되어 있다.[9]
엔진은 롤스로이스 튜보메카 아두어 Mk.801 (TF40-IHI-801A) 2기를 탑재했다. 이 엔진은 영국의 롤스로이스와 프랑스의 튜보메카가 재규어를 위해 공동 개발한 2축식 애프터버너 장착 저바이패스비 터보팬 엔진이다. 각 엔진은 최대 22.75 kN의 건조 추력과 32.49 kN의 애프터버닝 추력을 제공한다.[9] 다만, 이 엔진은 재규어에 탑재된 아두어 Mk.102를 기반으로 했지만, 엔진 고장 시 안전 기능인 "부분 스로틀 재열" 기능은 갖추지 않았다. 또한 이후 영국 재규어에 장착된 아두어 104와 같은 더 강력한 엔진으로 개량되지 않아, T-2는 다소 출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엔진 공기 흡입구는 고정된 사각형 모양이며 동체와의 사이에 분리판이 있다. 지상 운행 시 공기 흐름을 증가시키기 위해 흡입구 립 뒤에 스프링 장착식 보조 흡입구가 설치되었다. 동체 아래에는 정비를 위해 엔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큰 서비스 도어가 있다.[9]
착륙 장치는 삼륜식이며 모든 바퀴는 단일 구조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 바퀴는 F-104J/DJ와 동일한 것을 사용했다. 앞쪽의 노즈 기어는 뒤로 접히고, 주익 아래의 메인 기어는 앞으로 접혀 동체 안으로 들어가면서 90도 회전하여 평평하게 수납된다.[8] 노즈 기어는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착륙 장치를 내릴 때 발생하는 요잉(yaw) 현상을 보상하기 위해 작은 고정식 수직 에어포일이 앞에 부착되어 있다.[10] 착륙 장치에는 안티스키드 제어 시스템이 통합되어 있다.[8] 활주로에서 사용하는 어레스팅 후크는 엔진 배기구 뒤쪽 꼬리 부분 아래에 장착되어 있다.[11]
조종석은 탠덤 배치(앞뒤로 나란히 앉는 방식)의 복좌형으로, 훈련생이 앞 좌석, 교관이 뒷 좌석에 탑승한다. 앞 좌석과 뒷 좌석 사이에는 280mm의 높이 차이가 있다. 사출 좌석은 제로 고도-제로 속도(지상 정지 상태)에서도 탈출이 가능한 웨버(Weber)사의 ES-7J 모델을 다이셀에서 면허 생산하여 장착했다.
기체 구조에는 주로 항공기용 알루미늄 합금이 사용되었지만, 내열성이 요구되는 수평 꼬리날개 등 일부에는 티타늄이 선택적으로 사용되었다.[9]
3. 2. 엔진
T-2 개발 초기에는 J85-GE-15, GE1/J1A1, 바이퍼 21R, M45BS, J85/J1A, 그리고 아두어 등 여러 엔진이 후보로 검토되었다. 특히 아두어와 GE1/J1A1에 대한 상세한 검토가 이루어졌다.[8] 당시 일본 방위청이 발행한 제안 요구서에는 아두어 엔진 2기를 탑재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었으나, 개발 과정에서 다시 엔진 기종 선정이 논의되며 GE1/J1A1 외에 J79를 지지하는 의견도 있었다.[8]엔진 선정에는 T-2의 기본 운용 패턴인 대공 전투 훈련(Hi-Hi-Hi 프로파일)과 대지 공격 훈련(Hi-Lo-Hi 프로파일)이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J79 엔진은 고고도, 고속 비행(Hi-Hi-Hi)에서는 추력이 뛰어나지만, 저고도 비행이 포함되는 대지 공격 훈련(Hi-Lo-Hi)에서는 연비가 나빠 항속 거리에 불리했다. GE1 엔진 역시 Hi-Lo-Hi 프로파일에 적합하지 않았고, 당시 개발이 완료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컸다. 반면, 아두어 엔진은 고등 훈련기와 지상 공격기의 요구 사항에 맞춰 개발되었기 때문에 Hi-Lo-Hi 프로파일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 이러한 검토 끝에 1968년 2월, 아두어 엔진을 쌍발로 탑재하는 안이 최종 채택되었다.[8]
선정된 롤스로이스 튜르보메카 아두어 (RB.172/T.260) 엔진은 영국의 롤스로이스와 프랑스의 튜르보메카가 재규어 공격기를 위해 공동 개발한 2축식 애프터버너 장착 저바이패스 터보팬 엔진이다. T-2는 재규어에 이어 아두어 엔진을 탑재한 두 번째 기종이 되었다. T-2에는 재규어의 아두어 Mk.102를 기반으로 이시카와지마 하리마 중공업(IHI)에서 면허 생산한 TF40-IHI-801 (IHI 내부 명칭: 아두어 Mk.801)이 탑재되었다. 초기에는 선행 생산형인 TF40-IHI-801X가 사용되었고, 1974년부터 양산형인 TF40-IHI-801A가 납품되기 시작했다.[8] 각 엔진은 최대 22.75 kN (5,115 lbf)의 건조 추력과 32.49 kN (7,305 lbf)의 애프터버닝 추력을 제공했다.[9]
하지만 TF40-IHI-801A는 아두어 Mk.102에 추가되었던 엔진 고장 대비 기능인 "부분 스로틀 재열" 기능이 빠져 있었다. 또한, 이후 영국 재규어에 장착된 아두어 Mk.104와 같은 더 강력한 개량형 엔진으로 교체되지 않아, T-2는 다소 출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8] 엔진 흡입구는 고정된 사각형 형태이며, 지상 운용 시 공기 흐름을 늘리기 위해 흡입구 립 뒤에 스프링 방식의 보조 흡입구가 설치되었다.[9]
아두어 엔진은 개발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잦은 개량과 설계 변경이 있었고, 이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재규어와는 운용 방식이 달라 일본 환경에서 특유의 결함이 나타나기도 했다. IHI는 롤스로이스와 협력하면서 독자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또한 생산 과정에서도 IHI의 방식을 적용하여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 이러한 아두어 엔진의 면허 생산 경험은 이후 F-15J의 프랫 & 휘트니 F100 엔진과 F-2의 제너럴 일렉트릭 F110 엔진 면허 생산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8]
3. 3. 조종석 및 장비
조종석은 훈련생과 교관이 앞뒤로 나란히 앉는 탠덤 방식으로 배치되었다. 비행 교관은 학생 뒤의 높은 좌석에 앉아 전방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두 조종석 사이에는 바람막이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조종사는 각자 개별적인 클램셸 형태의 캐노피 아래에 앉으며, 좌석은 다이제루에서 제작한 웨버 ES-7J 제로-제로(고도 0, 속도 0) 사출 좌석을 사용했다.[12] 이 사출 좌석은 캐노피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캐노피를 관통하는 특수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사출 시에는 레이더 반사 물질인 "채프" 구름을 뿌려 지상 관제사가 사출 위치를 쉽게 파악하고 구조팀을 유도할 수 있도록 했다.무장을 탑재하는 후기형 T-2(K) 모델에는 기수 부분에 미쓰비시 전기의 J/AWG-11 탐색 및 거리 측정 레이더가 장착되었다. 이 레이더는 기본적으로 미국 F-4 팬텀 전투기에 사용된 계열의 레이더이며, 영국 해군 팬텀 FG.1에 장착된 AN/AWG-11과 매우 유사했다. 또한 미쓰비시 전기가 프랑스 Thomson-CSF사의 기술을 면허 생산한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Lear-Siegler사의 501OBL 자동 방위각 및 기준 시스템(AHRS), 일본에서 제작된 UHF 무전기, 피아 식별 장치(IFF), TACAN 무선 비콘 항법 수신기 시스템 등이 표준 장비로 포함되었다.[12] 반면, 비무장형인 전기형 T-2(Z) 모델에는 레이더가 탑재되지 않았다.[13] 레이더를 제외한 다른 항공 전자 장비는 T-2(K)와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4. 운용
미쓰비시 T-2는 시제기인 XT-2가 1973년 8월 29일 T-2로 재지정된 후[5], 1975년부터 항공자위대에 실전 배치되었다. 주로 제21 비행대대와 제22 비행대대에서 운용되었으며, 기존의 노스아메리칸 F-86 세이버를 대체하여 고등 훈련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항공자위대의 곡예비행 팀인 "블루 임펄스(Blue Impulse)"가 1981년부터 1995년까지 운용했으며, 가상 적기 역할을 수행하는 전용 애그레서 비행대대에서도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T-2를 기반으로 개발된 미쓰비시 F-1 지원전투기를 운용하는 비행대대에서 전환 훈련기로 활용되기도 했다.[14]
T-2는 2006년까지 운용된 후 퇴역했으며, 고급 훈련 임무는 가와사키 T-4가, 전환 훈련 임무는 미쓰비시 F-2의 복좌형(F-2B)이 계승했다.[3]
4. 1. 항공자위대에서의 운용
XT-2 시제 1호기가 1971년 첫 비행에 성공한 후, 1972년도 예산으로 T-2 양산기 20기가 계획되었다. 당시 달러 쇼크로 인한 경제 불황으로 예산 결정이 지연되어 실제 발주는 1973년 3월 31일에 이루어졌다. XT-2는 1973년 8월 29일 T-2로 재지정되었고[5], 양산 초호기는 1975년 2월 12일 첫 비행 후 3월 26일에 방위청에 납입되어 1975년부터 실전 배치가 시작되었다.1974년 8월, 항공자위대 제4항공단(마츠시마 기지) 내에 T-2 기획실이 설치되어 교관 조종사 양성이 시작되었고, 1975년 3월에는 임시 T-2 훈련대가 발족했다. 양산기 배치가 진행됨에 따라 1976년 3월 25일 임시 제21비행대가 되었고, 같은 해 10월 1일에는 25기의 정수가 충족되어 정식으로 제21비행대가 창설되었다. 이후 1978년 4월 5일에는 제22비행대도 신편되어, 이로써 T-2는 고급 훈련 임무에서 노스아메리칸 F-86 세이버를 대체하게 되었다.
마츠시마 기지에서의 T-2를 이용한 교육은 1976년 4월부터 시작되었다. 항공자위대의 조종사 양성 과정은 왕복 엔진의 T-34를 통한 제1초급 조종 과정, 제트 엔진의 T-1A/B를 통한 제2초급 조종 과정, T-33A를 통한 기본 조종 과정을 거친 후, T-2를 이용한 전투 조종 기초 과정 및 전투 조종 과정을 이수하고 F-104나 F-4EJ와 같은 전투기의 기종 전환 조종 과정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T-2는 훈련 비행대 외에도 미쓰비시 F-1 전투기를 운용하는 각 비행대에도 2기씩 배치되어, 요원 숙달 훈련, 훈련 지원, 연락 임무 등에 사용되었다[14].
항공자위대의 곡예비행 팀인 "블루 임펄스(Blue Impulse)"는 1981년에서 1982년 겨울 사이에 T-2로 기종을 전환하여 운용했다. T-2는 또한 전용 애그레서 비행대대에서도 사용되었으나, 이후 맥도넬 더글러스 F-15 이글로 대체되었다.
T-2의 생산은 계속되어 1988년 3월 7일에 최종호기(#196)가 납입되면서 총 96기의 생산이 종료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체의 노후화에 따라 퇴역이 시작되었다. 제22비행대는 2001년 3월 16일 특별 도장 기체인 160호기로 마지막 비행을 실시하고, 같은 달 27일에 해단식을 가졌다. 2002년 4월 1일부터는 마츠시마 기지에 F-2B가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제21비행대는 T-2와 F-2B를 함께 운용하며 훈련을 진행했다. F-2B의 배치가 확대됨에 따라 2004년 3월 29일, 제21비행대는 F-2B로 완전히 기종을 전환하였고, T-2를 이용한 교육 과정은 종료되었다. 제21비행대와 제22비행대를 통해 총 30만 7천 시간의 비행 동안 1,450명의 전투기 조종사가 양성되었다. 이후 조종사 교육 과정은 T-7 초급 조종 과정, T-4 기본 조종 과정을 거쳐 바로 F-15DJ나 F-2B와 같은 전투기 복좌형으로 훈련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2004년도 말 시점에서 T-2는 제8항공단과 비행 개발 실험단에 총 7기만이 남아있었다. 점차 운용 기체가 줄어들다가 2006년 3월 2일, 비행 개발 실험단에 배치되어 있던 T-2 특별 사양기 107호기가 기후 기지에서 마지막 비행을 마치면서 T-2의 운용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T-2는 2006년까지 모두 퇴역했으며, 고급 훈련기로는 가와사키 T-4가, 전환 훈련기로는 미쓰비시 F-2의 2인승 버전인 F-2B가 그 임무를 이어받았다[3].
4. 2. 블루 임펄스와 어그레서 부대
항공자위대의 곡예비행 팀인 "블루 임펄스(Blue Impulse)"는 1981년~1982년 겨울에 미쓰비시 T-2로 기종을 교체했다. 1981년에는 일반 공모를 통해 T-2 블루 임펄스의 디자인이 결정되었는데, 도립 고등학교 여고생 4인조의 안이 채택되었다. 기체 배색은 이 안을 바탕으로 수정하여 청색 바탕에 흰색과 하늘색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것으로 정해졌다. 1982년 마쓰시마 기지의 제21비행대 내에 '''전기 연구반'''이 편성되어 T-2를 사용한 2대째 블루 임펄스의 운용이 시작되었고, 같은 해 7월 25일 마쓰시마 기지 항공제에서 처음으로 공개 비행을 선보였다.
한편, T-2는 가상 적기 역할을 수행하는 전용 어그레서 부대에서도 운용되었다. 1981년 12월 17일 쓰키지 기지에 항공총대 산하 '''비행교도대'''가 창설되면서 T-2 6기와 T-33A 2기가 배치되어 어그레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비행교도대의 T-2는 1982년 "전기 경기 대회"에 가상 적기(페이커)로 처음 참가했다.
그러나 T-2 운용 중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1982년 11월 14일 하마마쓰 기지 항공제에서 전시 비행 중이던 블루 임펄스 4번기(#174)가 추락하여 조종사 1명이 순직하고 지상의 주민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T-2의 비행 훈련이 일시 중단되었고, 블루 임펄스의 전시 비행 재개에는 1년이 걸렸다. 비행교도대에서도 1986년 두 차례의 추락 사고로 조종사 3명이 순직했고, 1989년 3월 22일에는 T-2끼리의 공중전 훈련 중 접촉 사고로 추락하여 승무원 2명이 사망했다. 이러한 잦은 사고로 인해 비행교도대는 당초 예정보다 빠른 1990년 4월 12일에 F-15DJ로 기종을 변경했다. 블루 임펄스에서도 1991년 7월 4일 훈련 비행 중이던 T-2 2대(#112, #172)가 미야기현 긴카산 해역에서 추락하여 조종사 2명이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이후 블루 임펄스는 1994년 활동을 재개하여, 방일한 미국 공군 썬더버드 시범 비행단(F-16C)과의 합동 공연에서 T-2로 당시 규정 내 최선의 비행을 선보였다. T-2 블루 임펄스의 마지막 전시 비행은 1995년 12월 3일 하마마쓰 기지 항공제가 되었다. 같은 해 12월 22일 전기 연구반은 해산되었고, 블루 임펄스는 1996년부터 T-4 중등 연습기로 기종을 변경했다.[14]
5. 파생형
- '''XT-2''' : T-2의 시제기.
- '''T-2(Z)''' : T-2 전기형(前期型|젠키가타일본어), T-2A라고도 불리는 2인승 고급 제트 훈련기. 상세 내용은 해당 섹션 참조.
- '''T-2(K)''' : T-2 후기형(後期型|코우키가타일본어), T-2B라고도 불리는 2인승 무장 훈련기. 상세 내용은 해당 섹션 참조.
- '''T-2 특별 사양''' : F-1 지원 전투기 개발을 위한 모델. 상세 내용은 해당 섹션 참조.
- '''F-1 지원 전투기''' : T-2를 기반으로 개발된 지원 전투기. 상세 내용은 해당 섹션 참조.
- '''T-2 CCV 연구기''' : CCV(제어 구성 차량, Control Configuration Vehicle|컨트롤 컨피규어드 비히클영어) 기술 연구를 위한 실험기. 상세 내용은 해당 섹션 참조.
5. 1. T-2 전기형 (T-2(Z))
T-2(Z)는 T-2의 전기형(前期型, 前期型|젠키가타일본어) 모델을 가리키며, 흔히 T-2A라고도 불린다. 이 기체는 훈련 과정 전반에 사용되는 2인승 고급 제트 훈련기로, 무장과 화기 관제 레이더 장치를 탑재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생산된 기체 번호는 #105부터 #124, 그리고 #147부터 #156까지이다.5. 2. T-2 후기형 (T-2(K))
T-2 후기형은 T-2(K) 또는 T-2B라고도 불리며, 일본어로는 後期型|코우키-가타일본어라고 칭한다. 이 형식은 2인승 무장 훈련기로 개발되었으며, 특히 기관포와 화기 관제 레이더 장치를 탑재하여 전술 훈련에 특화되었다. 주로 고급 비행 훈련 과정 후반부에 사용되었다.양산된 T-2 후기형 기체는 총 62기로, 기체 번호는 #125부터 #146까지, 그리고 #157부터 #196까지이다. 또한, 시제기인 XT-2 4기 중 2기(#102, #104)가 후기형 사양으로 제작되었다.
5. 3. T-2 특별 사양
지원 전투기 개발을 위한 모델 기체이다. XT-2 시제기 중 2기(#106, #107)를 개조하여 제작되었다. 이는 이후 양산형 지원 전투기인 F-1 개발의 기반이 되었다.5. 4. F-1 지원 전투기
T-2 개발 초기 단계부터 지원 전투기 (전투 폭격기)로 개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XT-2 시제기 개발이 일단락되자, T-2를 기반으로 지원 전투기 시제기를 만드는 설계 작업이 시작되었다.이 지원 전투기 모델은 '''FS-T2 개'''라고 불렸다. 1973년(쇼와 48년) 제4차 방위력 정비 계획에 따라 시제기 2대 제작이 승인되었고, 이에 따라 생산 라인에 있던 T-2 6호기(59-5106)와 7호기(5107)가 FS-T2 개 시제기(T-2 특별 사양기)로 개발되었다. 시제기 #107은 1975년(쇼와 50년) 6월 3일에, #106은 6월 7일에 첫 비행을 했다. 이후 두 시제기는 비행 실험단과 방위청 기술 연구 본부에서 1975년 7월부터 다음 해인 1976년 3월까지 시험 연구를 거쳤다. 1976년 11월 12일, 부대 사용 승인을 받으며 '''F-1 지원 전투기'''라는 정식 명칭이 부여되었다.
5. 5. T-2 CCV 연구기
T-2 CCV는 T-2를 기반으로 개발된 실험용 "제어 구성 차량(Control Configuration Vehicle)" 시험기로, 세 번째로 생산된 T-2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3개의 카나드를 포함한다.일본 방위청 기술연구본부(기본)는 1970년대부터 서구의 기술 동향에 발맞춰 CCV(Control Configured Vehicle, 제어 설정 항공기)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1977년부터는 P-2를 기반으로 한 가변 특성 연구기(VSA)의 비행 시험이 시작되었고, 1978년부터는 미쓰비시 중공업을 주 계약자로 하여 T-2를 기반으로 한 CCV 연구기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실험기는 T-2 #103호기를 기반으로 3중 디지털식 플라이 바이 와이어(FBW) 시스템을 갖추었다. 또한 기수 부분에 수직 카나드 1개와 수평 카나드 2개를 장착했는데, 이 카나드는 CFRP(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설계를 통해 DLC(직접 양력 제어) 및 DSC(직접 횡력 제어) 모드를 구현하고자 했다. 1983년 8월 9일 첫 비행을 실시했지만, 초기에는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카나드 날개를 제거하고 T-2와 동일한 형태로 비행 시험을 진행했다.
이후 10월 14일, 처음으로 카나드 날개를 장착하고 시험 비행을 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착륙 장치를 올린 직후 기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롤 진동이 점차 심해져, 결국 좌우로 거의 90도까지 기울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조종사는 즉시 착륙 장치를 내리고 조종 시스템을 FBW에서 비상용 수동 제어(MBU)로 전환하여 기체를 안정시켰다. 사고 원인은 FBW 시스템에서 착륙 장치 상승 후의 롤 조작 효과(roll command gradient, RCG) 설정값이 너무 높았던 점과, 플래퍼론(flaperon)에 공급되는 유압이 부족하여 조종면의 반응이 지연된 점 등으로 밝혀졌다. 이 사고 장면은 당시 다른 취재를 위해 공항에 와 있던 NHK의 텔레비전 카메라에 우연히 촬영되어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기체는 1984년 3월 26일 방위청에 납품되었고, 1985년 3월 20일까지 기술연구본부와 항공 실험단에 의해 총 138회의 비행 시험이 이루어졌다. T-2 CCV 연구를 통해 얻어진 기술과 경험은 이후 미국과 공동으로 개발한 차기 지원 전투기 FS-X(F-2)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F-2는 기체 설계 면에서는 F-16을 기반으로 했지만, 핵심 기술인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는 미국 측에서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T-2 CCV 개발에 참여했던 기술자들이 F-2 설계팀에 합류하여 T-2 CCV의 성과를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6. 제원 (T-2(K))
''정보 출처: 제인스 올 더 월드 항공기 1976–77'' [15]
일반 제원 | |
---|---|
항목 | 내용 |
승무원 | 2명 |
길이 | 17.85m |
날개폭 | 7.88m |
높이 | 4.39m |
날개 면적 | 21.8m2 |
가로세로비 | 3 |
익형 | NACA 65 시리즈 (개량형) |
자체 중량 | 6197kg |
최대 이륙 중량 (순수) | 9675kg |
최대 이륙 중량 | 12800kg [16] |
연료 용량 | 내부 3823L, 외부 연료 탱크 3개 장착 시 최대 833L x 3 추가 가능 |
동력 계통 | |
항목 | 내용 |
엔진 | IHI TF40-801A 애프터버너 터보팬 엔진 2기 |
추력 (엔진 당) | 20.95 kN (애프터버너 미사용 시) 31.76 kN (애프터버너 사용 시) |
성능 | |
항목 | 내용 |
최대 속도 | 마하 1.6 (1700kmh) (고도 10975m 에서)[16] |
연락 작전 반경 | 2870km (외부 연료 탱크 3개 장착 시) |
상승 한계 | 15240m |
상승률 | 177.833m/s (약 10670m/분) |
필요 활주로 길이 | 1525m |
무장 | |
항목 | 내용 |
기관포 | 1 × 20 mm JM61A1 기관포 |
미사일 | 날개 끝 파일론에 AIM-9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2기 장착 가능 |
하드포인트 | 동체 중앙 파일론 1개, 주익 하부 파일론 2개 |
참조
[1]
서적
Lake 1994
[2]
서적
Lake 1994
[3]
웹사이트
The Mitsubishi T-2 / F-1 & Kawasaki T-4.
http://www.vectorsit[...]
2009-07-01
[4]
서적
Lake 1994
[5]
서적
Lake 1994
[6]
서적
Taylor 1976
[7]
서적
Lake 1994
[8]
서적
Lake 1994
[9]
서적
Lake 1994
[10]
서적
Lake 1994
[11]
서적
Lake 1994
[12]
서적
Michell 1994
[13]
서적
Lake 1994
[14]
서적
Lake 1994
[15]
서적
Taylor 1976
[16]
서적
Lake 1994
[17]
웹사이트
参考資料ー自衛隊の現状と課題ー
https://www.kantei.g[...]
内閣官房
200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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