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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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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둑돌은 바둑을 두는 데 사용되는 도구로, 흑색과 백색 두 가지 색상으로 구성된다. 바둑돌의 크기는 흑돌이 백돌보다 약간 크며, 두께는 6mm에서 14mm 정도이다. 흑돌은 나치흑석, 백돌은 조개 껍질을 가공하여 만드는 것이 최고급으로 여겨진다. 바둑돌통은 바둑돌을 보관하는 용기로, 다양한 나무 재질로 만들어지며, 뚜껑은 아게하마를 보관하는 데 사용된다. 최근에는 흑백 외에 녹색 계열의 그린 바둑돌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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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돌
기본 정보
바둑돌
바둑돌
종류바둑 용구
용도바둑 경기
재료
일반 재료유리
플라스틱
고급 재료
조개
나무
크기 및 형태
형태원반형
지름약 22mm
두께흑돌 (약 10mm), 백돌 (약 9mm)
색상
기본 색상흑색, 백색
기타 색상적색, 청색 (다양한 색상 존재)
개수
표준 개수흑돌 181개, 백돌 180개 (총 361개)
추가 정보바둑판 교점 수와 동일
기타 정보
보관 방법바둑통에 보관
관련 용어바둑판, 바둑통

2. 형태

바둑돌은 흑돌과 백돌의 크기가 약간 다르며, 두께는 호수로 표시된다. 두꺼울수록 고급으로 여겨지지만 잡기 어렵고 흔들리기 쉽다. 중국에서는 한쪽 면이 평평한 바둑돌을 사용하기도 한다. 바둑돌의 재료는 돌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다.[3]

2. 1. 크기와 재질

백돌은 지름 21.9mm(7푼 2리), 흑돌은 지름 22.2mm(7푼 3리)이다. 흑돌이 약간 더 큰 이유는 백색이 팽창색으로 약간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약간의 차이를 둠으로써 사람의 눈에는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이게 한다[3]。두께는 6mm - 14mm 정도이다. 두께는 호수로 표시되며, 25호가 약 7mm, 40호가 약 11mm이다. 일반적으로 두꺼운 것일수록 돌을 놓을 때의 소리가 울리고 고급품으로 여겨지지만, 잡기 어려워지고 판과의 접촉면이 좁아 흔들리거나 움직이기 쉬워진다. 60호에 가까운 것도 존재하지만, 34호 이상이면 충분히 고급이다. 9mm 전후(32 - 34호)의 것이 잡기 쉽고 가장 많이 사용된다.

중국에서는 한쪽 면이 평평한 바둑돌도 사용되며, 검토할 때 뒤집어서 원래 국면으로 되돌리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돌"이라고 불리지만 소재가 반드시 석재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후술 #바둑돌의 역사 참조). 흑돌은 나치흑이, 백돌은 바둑돌조개의 반 화석품이 최고급으로 여겨진다. 조개 백돌에는 "줄무늬"라는 성장선이 보이며, 가는 것일수록 내구성이 높다. 일본기원에서는 휴가산 백돌은 주로 색을 띄는 정도와 줄무늬를 기준으로 "설인(雪印)", "월인(月印)", "화인(花印)"의 3등급으로 품질을 나누고, 멕시코산은 법랑질 줄무늬가 나타나는 정도를 기준으로 "설인", "월인", "실용"의 3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연습용으로는 경질 유리제 등이 사용된다. 돌은 사용에 의해 파손되며, 작은 것을 호츠, 주변이 깨진 것을 카케라고 한다. 바둑통 안의 돌을 휘저어 소리를 내는 행위는 매너 위반으로 여겨진다.

3. 바둑돌의 역사

나라현 후지와라쿄에서 발굴된 7세기 말~8세기 초 바둑돌은 둥근 자연석으로, 흑색은 셰일, 백색은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자연석 바둑돌은 에도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혼인보 도사쿠가 어렸을 때 사용했던 바둑판과 자연석 바둑돌이 현존한다.[4]

3. 1. 고대 ~ 중세

고대 일본에서는 733년경에 성립된 『풍토기』에 바둑돌에 관한 기록이 나타난다. 『히타치 국 풍토기』에는 가시마대합 바둑돌이 명산품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즈모 국 풍토기』에는 시마네현의 "타마유이하마" 해안에서 바둑돌에 적합한 돌이 채취되었다고 한다. 나라현 후지와라쿄에서 발굴된 7세기 말~8세기 초의 바둑돌은 둥근 자연석으로, 흑색은 셰일, 백색은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자연석 바둑돌은 에도 시대까지 사용되었다.[4]

쇼소인에는 성무 천황이 애용하던, 상아를 염색하고 화조 문양을 조각한 '홍아발루기자(紅牙撥鏤碁子)'라는 바둑돌이 소장되어 있다. 이 바둑돌은 지름 1.6cm, 두께 0.8cm이며, 녹색과 홍색으로, 고닌 2년(811년) 문서에는 320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는 252개가 남아있다. 『겐지모노가타리 그림 두루마리』에는 흑백 바둑돌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흑색 바둑돌은 나치 구로이시(미에현 구마노시에서 생산되는 흑색 셰일 또는 점판암)를 명품으로 친다. 백색 바둑돌은 대합 조개 껍질을 형판으로 잘라내 연마하여 만든다. 과거에는 가시마 해안이나 시마의 도고시마, 아와지시마, 가마쿠라 해안, 미카와 등에서 대합이 많이 채취되었다. 가시마의 대합은 껍질이 얇아 메이지 시대 라쿠고 속기본에는 "센베이를 낳은 것처럼 뒤집힌 돌"이라고 묘사될 정도로 얇고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바둑돌이 만들어졌다. 분큐 연간(1861년~1864년)부터는 미야자키현 휴가시 부근 휴가나다 연안에서 채취되는 스와브테 대합[6]이 상급품으로 귀하게 여겨졌으며, 메이지 중기에는 다른 산지가 쇠퇴하면서 시장을 독점했다. 현재는 휴가시에서 생산되는 대합은 거의 고갈되었지만, 제조 기술은 계승되고 있다.

오늘날 휴가시산으로 유통되는 바둑돌은 대부분 멕시코산 대합을 휴가시에서 가공한 것이다. 대합으로 만든 백색 바둑돌은 매우 고가여서, 흑색 바둑돌은 백색 바둑돌의 덤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고급 백색 바둑돌은 조개 껍질의 층이 잘 보이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는다.

메이지 시대에는 도자기대나무로 만든 저렴한 바둑돌도 있었고, 다이쇼 시대에는 유리 바둑돌이 시도되었으나 초기에는 일반 유리로 만들어져 쉽게 깨졌다. 이후 플라스틱 및 경질 유리 제품이 보급되면서 바둑이 대중화되었다. 최근에는 휴대용 마그넷 바둑돌이나 마노로 만든 고급 바둑돌도 있다.

중국에서는 고대에 나무로 바둑돌을 만들었으며, 시대(222년~280년) 『박혁론』(위요)에는 "고기 삼백(고기三百)"이라는 기록이 있다. "고기"는 나무 바둑돌을 의미하며, 일본 간에이 연간(1624년~1644년) 『현현기경리언초』에는 "바둑돌은 원래 나무를 닮아 만들었으므로 고기라고 한다"라는 주석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급 바둑돌은 (ぎょく)이라 불리는 보석으로 만들어졌다.

당나라 시대 『두양잡편』에는 대중 연간(847년~860년) 일본 제일의 바둑 명수인 왕자가 당나라에 와서 중국 제일의 명수와 대결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7] 일본 왕자는 일본에 냉난옥(冷暖玉)이라는 보석 바둑돌이 있다고 소개하는데, "본국 동쪽 집진도(集珍島)에 응하대(凝霞臺)가 있고, 대 위에 수담지(受淡池)가 있는데, 그 안에서 흑백이 분명한 옥알이 난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가워 냉난옥이라 한다"고 설명하며, 이 돌을 당나라에 진상했다. 옥 바둑돌은 깨지기 쉬워 일본처럼 소리를 내며 판에 두는 일은 없었다. 옥 바둑돌 중에는 은화 두 냥에 해당하는 고가품도 있었으나, 문화 대혁명 시기에 많이 사라졌다.

3. 2. 근세 ~ 현대

733년경 성립된 『풍토기』에는 바둑돌에 관한 기술이 있으며, 『히타치 국 풍토기』에는 가시마대합 바둑돌이 명산으로 기술되어 있다. 또한 『이즈모 국 풍토기』에는 시마네현의 "타마유이하마"에 대한 기재가 있는데, 이 해안에서는 바둑돌에 적합한 돌이 채취되었다고 한다.[4]

쇼소인에 소장된 성무 천황이 애용한 바둑돌은 홍아 발루 기자(こうげばちるのきし)라고 명명되었으며, 지름 1.6cm, 두께 0.8cm로, 상아를 염색하여 화조 문양을 조각한 것이다. 색상은 녹색과 홍색이다.[5] 『겐지모노가타리 그림 두루마리』에서는 흑백의 바둑돌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흑색 바둑돌은 나치 구로이시(미에현구마노시에서 생산되는 흑색 셰일 또는 점판암)를 명품으로 꼽는다. 백색 바둑돌은 대합의 조개 껍질을 형판으로 잘라내어 연마한 것이다. 바둑돌 재료가 되는 대합의 대표적인 산지는 옛날에는 가시마 해안, 시마의 도고시마, 아와지시마, 가마쿠라 해안, 미카와 등이었다. 가시마의 대합은 껍질이 얇아, 메이지 시대 라쿠고의 속기본에 "센베이를 낳은 것처럼 뒤집힌 돌"이라고 묘사된 것처럼, 옛 바둑돌은 조개 껍질의 곡선대로 얇고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것이었다. 그 후, 분큐 연간에 미야자키현휴가시 부근 휴가나다 연안에서 조개가 채취되었고, 메이지 중기에는 다른 산지의 쇠퇴와 함께 휴가시 오쿠라가하마에서 채취되는 스와브테 대합[6]이 시장을 독점하여 상급품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현재는 다 채취되어 거의 고갈되었지만, 제조 기술은 계승되고 있다.

현재 일반적으로 휴가시산으로 유통되는 것은 멕시코산 대합을 휴가시에서 가공·제조한 것이다. 백석과 흑석은 가격이 다른데, 대합으로 만든 백석이 매우 고가이며, 업자에 따라서는 흑석을 "나치 구로이시 포함"이라 하여 백석의 덤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고급품은 조개 껍질의 층(줄무늬처럼 보인다)이 눈에 띄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층이 벗겨지거나 변색되지 않는다.

대합 바둑돌은 서민이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메이지 시대에는 도자기대나무로 만든 싸구려 바둑돌이 존재했다. 다이쇼 시대에 유리 바둑돌이 시도되었지만, 처음에는 경화 유리가 아닌 보통 유리였기 때문에 부서지기 쉬웠다. 그 후 플라스틱과 경질 유리로 만든 제품이 유통되면서, 저렴한 용구의 대량 생산이 바둑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최근에는 휴대용 마그넷 제품도 있으며, 마노로 만든 고급품도 있다.

중국에서는 고대에 나무로 바둑돌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 시대(222년 - 280년)에 쓰여진 『박혁론』(위요)에 "고기 삼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기"는 나무로 만든 바둑돌을 가리키며, 일본 간에이 연간(1624년 - 1644년)의 『현현기경리언초』라는 해설본에는 "바둑돌은 원래 나무를 닮아 만들었으므로 고기라고 한다"라고 주석하고 있다. 또한 바둑돌은 300개가 정수였다는 것도 기록되어 있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고급 바둑돌은 "(ぎょく)"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보석으로 만들어졌다.

중국 대의 『두양잡편』에는 선종제 연호 대중 연간(847년 - 860년)에 일본 제일의 바둑 명수인 일본 왕자가 내조하여, 중국 제일의 명수와 대전하는 일화[7]가 기록되어 있다. 일본 왕자는 일본에는 냉난옥이라는 보석 바둑돌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본국의 동쪽에 집진도가 있는데 섬 위에 응하대라는 대가 있고, 대 위에는 수담지가 있는데 지중에는 옥알을 낸다. 제도는 따르지 않지만 자연적으로 흑백이 분명하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갑다. 그러므로 냉난옥이라고 한다. 일본의 왕자가 입당하여 이 돌을 냉난옥으로 당조에 진상했다"라고 하였다. 옥 바둑돌은 깨지기 쉬워, 일본처럼 소리를 내며 판에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그 중에는 돌 하나가 은화 두 냥에 상당할 정도로 고가인 것도 있었지만, 한때의 명품 중 많은 것이, 바둑은 퇴폐적이라고 공격받은 문화 대혁명 시대에 수집가로부터 빼앗기는 등 흩어져 버렸다.

4. 바둑돌의 소재



바둑돌의 소재는 역사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고대에는 자연석이나 조개 껍질, 나무 등을 사용했지만, 현대에는 플라스틱, 유리, 마노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다.

겐지모노가타리 그림 두루마리에서는 흑과 백, 두 가지 색상의 바둑돌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플라스틱과 경질 유리로 만든 제품이 유통되면서, 저렴한 용구의 대량 생산이 바둑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최근에는 휴대용 마그넷 제품도 있으며, 마노로 만든 고급품도 있다.

중국 대의 『두양잡편』에는 대중 연간(847년~860년)에 일본 제일의 바둑 명수인 일본 왕자가 당나라에 와서 중국 제일의 명수와 대전하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7] 일본 왕자는 일본에 냉난옥이라는 보석 바둑돌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본국 동쪽에 집진도가 있는데, 섬 위에 응하대가 있고, 그 위에 수담지가 있는데, 물속에서 옥알이 난다. 제도는 일정하지 않지만 자연적으로 흑백이 분명하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갑다. 그러므로 냉난옥이라고 한다. 일본 왕자가 입당하여 이 돌을 냉난옥으로 당나라에 진상했다"라고 하였다. 옥 바둑돌은 깨지기 쉬워, 일본처럼 소리를 내며 판에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돌 하나가 은화 두 냥에 상당할 정도로 고가인 것도 있었지만, 한때 명품 중 많은 것이 문화 대혁명 시대에 수집가로부터 빼앗기는 등 흩어져 버렸다.

4. 1. 전통적 소재

733년경 성립된 풍토기에는 바둑돌에 관한 기술이 보이며, 히타치 국 풍토기에는 가시마대합 바둑돌이 명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즈모 국 풍토기에는 시마네현의 "타마유이하마"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 해안에서는 바둑돌에 적합한 돌이 채취되었다고 한다. 나라현 후지와라쿄에서 발굴된 바둑돌은 둥근 자연석으로, 재질은 흑석이 흑색 셰일, 백석이 사암이다. 7세기 말~8세기 초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4] 자연석 바둑돌은 에도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쇼소인에 소장된 성무 천황이 애용한 바둑돌은 홍아 발루 기자(こうげばちるのきし)라고 명명되었으며, 상아를 염색하여 화조 문양을 조각한 것으로, 색상은 녹색과 홍색이다.[5]

현재 흑색 바둑돌은 나치 구로이시(미에현 구마노시에서 생산되는 흑색 셰일 또는 점판암)가 명품으로 꼽히며, 백색 바둑돌은 대합의 조개 껍질을 형판으로 잘라내어 연마한 것이다. 바둑돌 재료가 되는 대합의 대표적인 산지는 옛날에는 가시마 해안이나 시마의 도고시마, 아와지시마, 가마쿠라 해안, 미카와 등이었다. 분큐 연간에 미야자키현 휴가시 부근의 휴가나다 연안에서 조개가 채취되었고, 메이지 중기에는 다른 산지의 쇠퇴와 함께 휴가시의 오쿠라가하마에서 채취되는 스와브테 대합[6]이 시장을 독점하여 상급품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현재는 다 채취되어 거의 고갈되었지만, 제조 기술은 계승되고 있다.

현재 일반적으로 휴가시산으로 유통되는 것은 멕시코산 대합을 휴가시에서 가공·제조한 것이다. 백석과 흑석은 가격이 달라서, 대합으로 만든 백석이 매우 고가이며, 업자에 따라서는 흑석은 "나치 구로이시 포함"으로, 백석의 덤 취급을 하기도 한다. 고급품은 조개 껍질의 층(줄무늬처럼 보인다)이 눈에 띄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층이 벗겨지거나 변색되지 않는다.

대합 바둑돌은 서민이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메이지 시대에는 도자기대나무로 만든 싸구려 바둑돌이 존재했다. 다이쇼 시대에 유리 바둑돌이 시도되었지만, 처음에는 경화 유리가 아닌 보통 유리였기 때문에 부서지기 쉬웠다.

중국에서는 고대에 나무로 바둑돌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 시대(222년~280년)에 쓰여진 『박혁론』(위요)에 "고기 삼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기"는 나무로 만든 바둑돌을 가리키며, 바둑돌 300개가 정수였다는 것도 기록되어 있다.[7] 시대가 내려오면서, 고급 바둑돌은 "(ぎょく)"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보석으로 만들어졌다.

4. 2. 현대적 소재

현재는 흑색 돌로 나치 구로이시(미에현구마노시에서 생산되는 흑색 셰일 또는 점판암)가 명품으로 꼽힌다. 백색 돌은 대합의 조개 껍질을 형판으로 잘라내어 연마한 것이다. 바둑돌의 재료가 되는 대합의 대표적인 산지는 휴가나다 연안 (미야자키현휴가시) 이였으나 현재는 고갈되었다.[6] 현재 일반적으로 휴가시산으로 유통되는 것은 멕시코산 대합을 휴가시에서 가공·제조한 것이다. 백석과 흑석은 가격이 달라서, 대합으로 만든 백석이 매우 고가이며, 업자에 따라서는 흑석은 "나치 구로이시 포함"으로, 백석의 덤 취급을 하고 있다. 고급품은 조개 껍질의 층(줄무늬처럼 보인다)이 눈에 띄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층이 벗겨지거나 변색되지 않는다.

대합 바둑돌은 서민이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메이지 시대에는 도자기대나무로 만든 싸구려 바둑돌이 존재했다. 다이쇼 시대유리 바둑돌이 시도되었지만, 처음에는 경화 유리가 아닌 보통 유리였기 때문에 부서지기 쉬웠다. 그 후 플라스틱과 경질 유리로 만든 제품이 유통되면서, 저렴한 용구의 대량 생산이 바둑의 보급에 기여한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휴대용 마그넷 제품도 있다. 마노로 만든 고급품도 있다.

현재 다음과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바둑돌이 존재한다.

종류설명
대합 (미야자키현 휴가시산)/나치흑석 (미에현 구마노시산)
마노 바둑돌 (중국산)
운자 바둑돌 (중국 바둑돌)중국산, 유리제, 흑돌은 빛을 투과시키면 녹색으로 보이는 특징이 있다.
경질 유리 바둑돌일본산/한국산
유리아 수지 바둑돌
플라스틱 바둑돌
플라스틱 중량석일반 플라스틱보다 무거우며, 바둑을 두는 감촉이 비교적 좋다고 여겨진다.
자석 바둑돌


5. 바둑돌통

바둑돌통(ごけ)은 바둑돌을 넣는 용기로, 바둑그릇(碁器)이라고도 한다. 흰 돌용과 검은 돌용 2개로 한 벌을 이룬다. 바둑돌통에는 뚜껑이 있으며, 대국 중에 아게하마를 넣어두는 데 사용된다.

5. 1. 재질과 형태

바둑돌은 바둑돌통에 넣어 보관한다. 바둑돌통은 흰 돌용과 검은 돌용 두 개가 한 벌을 이룬다. 재질은 뽕나무(특히 미쿠라 섬산 '시마구와(島桑)')가 최고급품으로 여겨지며, 그 다음으로 감나무, 자단, 흑단 등이 사용된다. 일반적으로는 느티나무, 모과, 벚나무, 녹나무, 부빙가, 밤나무, 대추나무, 합성수지 등이 사용된다. 표면은 나무결을 살리는 경우가 많지만, 정교한 것은 나전칠기나 가마쿠라 조각을 한 것도 있다.

옛날에는 바둑돌통을 합자(ごうす)라고 불렀으며, 쇼소인에는 발루기자와 세트로 들어온 정교한 미술품인 "은평탈합자(銀平脱合子)"가 소장되어 있다. 에도 시대에는 통형에 가까운 혼인보형과 둥근 야스이형이 있었다. 현대에 사용되는 것은 야스이형에 가까운 것이 많다. 계점 바둑 규칙에서는 내부가 벌집 모양으로 돌 180개를 확인하기 쉬운 독특한 바둑돌통을 사용한다.

바둑돌통에는 뚜껑이 있으며, 대국 중에 아게하마를 넣어두는 데 사용된다.

5. 2. 바둑돌통의 명칭 문제

바둑돌통은 바둑돌을 넣는 용기로, '바둑그릇'이라고도 한다. 흰 돌용과 검은 돌용 두 개가 한 벌을 이룬다. 재질은 최고급품으로는 뽕나무(특히 미쿠라 섬산 "시마구와(島桑)"가 귀하게 여겨진다)가 있고, 그 다음으로는 감나무, 자단, 흑단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느티나무, 모과, 벚나무, 녹나무, 부빙가, 밤나무, 대추나무, 합성수지 등을 사용한다. 표면은 나무결을 살리는 경우가 많지만, 정교한 것은 나전칠기나 가마쿠라 조각을 한 것도 있다. 옛날에는 합자(ごうす)라고 불렸으며, 정창원에는 발루기자와 세트로 들어온 정교한 미술품인 "은평탈합자(銀平脱合子)"가 소장되어 있다. 에도 시대에는 통형에 가까운 혼인보형과 둥근 야스이형이 있었는데, 현대에는 야스이형에 가까운 것이 많다. 계점 바둑 규칙에서는 내부가 벌집 모양으로 되어 있어 돌 180개를 확인하기 쉬운 독특한 바둑돌통을 사용한다.

바둑돌통에는 뚜껑이 있으며, 대국 중에 아게하마를 넣어두는 데 사용한다.

바둑돌통 소재와 관련하여, 여러 종류의 나무가 사용되지만, 외국에서 수입한 목재를 나무결이나 질감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신○○"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아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입 목재인 마호가니는 "신 벚나무", 대추나무는 "신 느티나무", 켐파스를 "신 모과나무" 등으로 표기하여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무결이나 질감이 비슷하다고 해서 원래의 이름을 무시하고 벚나무나 느티나무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이 최근 인터넷상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둑판의 경우 "신 가야"는 스프루스재, "신 계"는 아가티스재라는 수입재라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바둑돌통은 바둑판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아 소재가 수입재라는 것을 모르고 구매하는 초심자도 많다. 이 문제에 대해 양심적인 상점에서는 신 벚나무 등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마호가니제, 대추나무제 등 원래 명칭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6. 색

과거에는 녹색이나 빨간색 등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바둑돌도 존재했지만, 현대에는 선(先)이 흑, 후(後)가 백으로 통일되어 있다.

6. 1. 그린 바둑돌

일반적인 바둑돌은 흰색과 검은색 두 가지 색상을 사용하지만, 눈에 편안하다고 여겨지는 녹색 계열의 색상을 사용한 '''그린 바둑돌'''도 소수이지만 사용되고 있다. 안구건조증으로 고통받던 일본작가 나츠키 시즈코가 발안하여 널리 퍼뜨린 것으로[8], 검은색 대신 짙은 녹색을, 흰색 대신 옅은 녹색을 사용하고 있다. 소재는 경질 유리이며, 두께는 사용하기 편하도록 9mm로 만들어져 있다. 일반적인 흑백 바둑돌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일본기원의 일반 대국실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다.

참조

[1] 문서 囲碁の盤は19路で19×19=361個の石が置ける。黒181個、白180個で盤を埋め尽くすことになる。
[2] 문서 連珠の盤は15路で15×15=225個の石が置ける。黒113個、白112個で盤を埋め尽くすことになる。
[3] 웹사이트 囲碁の日本棋院 https://www.nihonkii[...] 2020-03-18
[4] 웹사이트 本因坊戦:23日から第2局 6冠・文裕先勝に本木が黒番 https://mainichi.jp/[...] 2020-03-18
[5] 웹사이트 正倉院 - 正倉院 https://shosoin.kuna[...] 2020-03-18
[6] 웹사이트 雅趣・伝統の美 http://www.pref.miya[...] 2011-07-25
[7] 문서 この逸話の概要は以下のようなものである。「遣唐使として皇帝と会見した日本の王子が、日本一の碁の名手を名乗り『国の名誉を賭け、唐の名手と対戦したい』と碁の勝負を申し入れた。そこで皇帝は碁の国手といわれた大臣の顧師言を呼び出し、日本の王子と対局させた。双方の実力は互角で序盤から互いに譲らぬ激闘となったが、御前試合で君命を辱めることを恐れた顧師言が汗を振り絞った思考の末、三十二手目に死に物狂いの名手を放ち、それを見た日本の王子は驚嘆し、遂に兜を脱いだ。対局の後で王子は外使の接受担当の鴻臚卿に『顧先生は貴国で何番目の名人なのか』と質問し、鴻臚卿は『三番目であります』と返答した。実際は顧師言は国一番の名手だったのだが、日本の名人と対等勝負だったので、唐の体面を考慮して嘘をついたのだった。日本の王子は不服顔で『唐で一番の名手と対局したい』と言った。鴻臚卿は動ぜず『第三を破って第二と対局し、第二を破って第一と対局できるのです。なぜにいきなり第一と対局できましょう』と答えた。日本の王子は碁盤に蓋をして『小国の第一は、ついに大国の第三に及ばぬのか』と嘆息した」 この対局の棋譜は[[玄玄碁経]]に記録され、現代に伝わっている。
[8] 웹사이트 グリーン碁石と夏樹静子さん – 全日本囲碁協会 https://zengokyo.jp/[...] 2020-03-18
[9] 웹사이트 日本囲碁連盟 {{!}} 囲碁用語「一色碁(いっしょくご)」 https://www.ntkr.co.[...] 20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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