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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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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이에른급 전함은 1910년대 초 설계되어 제1차 세계 대전에 투입된 독일 제국의 전함이다. 38cm 주포를 탑재하여 영국 해군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에 필적하는 화력을 갖췄으며, 32,000톤의 배수량을 가졌다. 4척이 건조될 예정이었으나, 이 중 바이에른, 바덴, 작센, 뷔르템베르크 4척이 건조되었다. 유틀란트 해전에 참전하지 못했고, 알비온 작전 등 제한적인 작전에 투입되었다. 휴전 후 스카파 플로우에 억류되었으며, 바이에른은 자침, 바덴은 표적함으로 사용된 후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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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급 전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개요
SMS Bayern
SMS 바이에른
함급 정보
운용 국가독일 제국 해군
이전 함급쾨니히급 전함
이후 함급L 20e α급 전함 (계획)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실제)
건조 기간1913년–1917년
취역 기간1916년–1919년
계획 함선 수4척
완공 함선 수2척
취소 함선 수2척
해체 함선 수1척
특징
함종드레드노트급 전함
배수량정상: 28,530 톤 (영국 톤)
만재: 32,200 톤 (영국 톤)
길이전체 길이: 180 미터
수선 길이: 179.4 미터
30 미터
흘수9.39 미터
동력14 × 수관 보일러
35,000 마력
추진3 × 증기 터빈
3 × 스크루 프로펠러
속력21 노트
항속 거리12노트에서 5,000 해리
승무원1,187–1,271명
무장8 × 38 cm SK L/45 (4 × 2)
16 × 15 cm SK L/45 (16 × 1)
2 × 8.8 cm SK L/45 (2 × 1)
5 × 60 cm 어뢰 발사관 (수면 아래)
장갑벨트: 170–350 mm
사령탑: 400 mm
갑판: 60 mm–100 mm
포탑: 100 mm–350 mm
함선 목록

2. 설계

바이에른급 전함의 설계 작업은 1910년 초, 열강들의 해군력 증강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시작되었다. 특히 영국 해군과의 경쟁 속에서 독일 제국 해군은 차기 전함의 성능 향상에 집중했다. 설계 초기 단계부터 새로운 함선의 주포 구경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다른 해군 강국들이 30.5cm보다 큰 구경의 함포를 탑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독일 해군 역시 더 강력한 화력을 갖출 필요성을 느꼈다.

처음에는 32cm 함포가 제안되었으나, 1910년 5월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해군 대신은 예산 제약을 이유로 이를 보류했다. 그러나 이듬해 발생한 아가디르 위기는 독일 내에서 해군력 증강에 대한 여론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티르피츠는 이를 활용하여 제국 의회( Reichstagde )로부터 추가 예산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1911년 중반, 34cm 함포를 장착한 전함 건조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후 설계팀은 35cm, 38cm, 40cm 등 더 큰 구경의 함포 탑재 가능성을 검토했다. 3연장 포탑 채용도 고려되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사례에서 발견된 기술적 문제점들로 인해 기존의 2연장 포탑 방식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설계안의 비용과 성능을 비교 검토한 결과, 최종적으로 4기의 2연장 포탑에 8문의 38cm 함포를 탑재하는 설계안이 1911년 9월에 채택되었고, 이는 1912년 1월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이로써 독일 해군은 주포 구경 면에서 영국 해군과 동등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주포 외에도 설계 작업은 1912년까지 계속되어, 이전 함급인 쾨니히급에서 사용된 장갑 배치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초기 계획에는 8.8cm 대공포 8문이 포함되었으나 실제로는 탑재되지 않았다. 기관의 경우, 당초 디젤 엔진 탑재를 고려했으나 개발 지연 문제로 인해 전통적인 증기 터빈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다만, 안정적인 디젤 엔진이 개발되면 추후 건조될 함선에 적용할 계획을 세웠다.

함선 건조 자금은 1912년 통과된 제4차 해군법을 통해 확보되었다. 이 법안은 3척의 신형 드레드노트(바이에른급)와 2척의 경순양함 건조 자금, 그리고 해군 병력 15,000명 증원을 포함했다. 이에 따라 Bayernde과 Badende 건조가 우선 시작되었고, 이후 Sachsende과 Württembergde의 건조 예산이 확보되었다. 이 함선들은 노후화된 브란덴부르크급 및 카이저 프리드리히 3세급 전함들을 대체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바이에른급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설계 기준으로는 매우 안정적인 함선으로 평가받았다. 독일 제국 최후의 전함으로서 이후 비스마르크급 전함 설계의 기초가 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1차 세계대전형 설계였기에 2차 세계대전 환경에 완전히 부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독일 해군이 시계가 나쁜 북해에서의 근거리 전투를 상정하여 설계했기 때문에, 주포는 근거리 관통력은 우수했지만 장거리 포격전에서는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또한, 전시 독일중유 수급 문제로 인해 석탄과 중유를 함께 사용하는 혼소 보일러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함대 운용 속도에 제약을 가하는 요인이 되었다.

2. 1. 무장

바이에른급 전함의 설계 작업은 1910년 초부터 시작되었으며, 초기부터 무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다른 해군 강국들이 30.5cm보다 큰 구경의 함포를 탑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독일 제국 해군 역시 차기 전함에 더 강력한 주포를 장착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해군 무기 부서는 32cm 함포를 제안했으나, 1910년 5월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해군 대신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 아가디르 위기를 계기로 해군력 증강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자, 티르피츠는 이를 활용하여 제국 의회로부터 추가 예산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1911년 중반, 티르피츠는 34cm 함포를 탑재한 전함 건조를 위한 자금을 요청했다.

1911년 8월, 설계팀은 35cm, 38cm, 40cm 함포를 탑재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독일 해군은 영국이 40cm보다 큰 함포를 건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잘못 판단하여 40cm를 최대 구경으로 설정했다. 이후 회의에서는 5개의 포탑에 35cm 함포 10문을 장착하는 안과 4개의 포탑에 40cm 함포 8문을 장착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었다. 무기 부서는 명중률이 25% 더 높다는 이유로 35cm 함포 안을 지지했다. 티르피츠는 2연장 포탑과 3연장 포탑을 혼합하여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테게토프급 전함에 사용된 3연장 포탑을 검토한 결과, 중량 증가, 탄약 공급 및 발사 속도 저하, 포탑 손상 시 전투력 손실 등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어 채택하지 않았다.

설계 연구 결과, 35cm 함포 탑재안은 배수량 약 29000ton, 건조 비용 약 5,970만 마르크로 예상되었고, 40cm 함포 탑재안은 배수량 약 28250ton, 건조 비용 약 6,000만 마르크로 예상되었으나 두 안 모두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되었다. 이에 건설 부서는 8문의 38cm 함포를 탑재하고 배수량 28100ton, 건조 비용 5,750만 마르크로 낮춘 대안을 제시했다. 이 설계안은 1911년 9월 26일 차기 전함의 기본 설계로 채택되었고, 38cm 함포 채택은 1912년 1월 6일 공식적으로 결정되었다.

거대한 전함의 상부 뷰;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검은 연기가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다.
, 주포가 좌현으로 향해 있다


바이에른급 전함은 최종적으로 4기의 Drh LC/1913 연장 포탑에 총 8문의 38cm SK L/45 주포를 장착했다. 이 포탑은 포신을 -8도까지 내리고 16도까지 올릴 수 있었으며, 재장전을 위해서는 2.5도로 복귀해야 했다. 이후 Bayernde의 포탑은 최대 20도까지 올릴 수 있도록 개조되었으나, 내림각은 -5도로 줄어들었다. 초기 사거리는 20250m였지만, 개조 후에는 23200m까지 늘어났다. 각 포탑에는 스테레오식 측거의가 설치되었다. 주포 포탄은 총 720발, 포문당 90발을 탑재했다. 포탄은 구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750kg짜리였으며, 철갑탄 60발과 고폭탄 30발로 구성되었다. 20000m 거리에서 철갑탄은 최대 336mm 두께의 강철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발사 속도는 약 38초당 1발이었고, 포구 속도는 805m/s였다.

전후 영국 해군이 실시한 Badende의 시험에서, 주포는 발사 후 23초 만에 재장전 및 발사 준비가 완료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동시대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발사 간격인 36초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그러나 빠른 재장전 속도에도 불구하고, 독일 포의 방폭(防爆) 조치는 1917년 이후 영국 해군이 채택한 기준보다 상당히 미흡하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다만, 영국 해군이 사용한 실크 백 형태의 코르다이트 장약보다 섬광 폭발 위험이 훨씬 적은 황동제 약莢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했다. 한편, Sachsende과 Württembergde을 위해 제작되었던 주포들은 완성되지 못하고 제1차 세계 대전서부 전선에서 장거리 공성포나 점령지 해안의 해안포, 일부는 열차포로 전용되어 사용되었으며, '랑거 막스(Langer Max)'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바이에른급을 그린 일러스트


부포로는 상부 갑판 측면의 장갑화된 케이스메이트(casemate)에 16문의 15cm SK L/45 속사포를 장착했다. 이 부포는 주로 어뢰정과 같은 소형 함정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총 2,240발의 포탄을 탑재했다. 초기 사거리는 13500m였으나, 1915년 개량을 통해 16800m까지 연장되었다. 발사 속도는 분당 5~7발 수준이었다. 포탄 무게는 45.3kg이었고, 13.7kg의 RPC/12 추진 장약을 사용했으며 포구 속도는 835m/s였다. 포신 수명은 약 1,400발 발사 후 교체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대공 무장으로는 2쌍의 8.8cm SK L/45 대공포가 장착되었고, 총 800발의 탄약을 탑재했다. 이 포는 MPL C/13 마운트에 거치되어 -10도에서 70도까지의 부앙각을 가졌다. 9kg의 포탄을 사용했으며, 최대 앙각 70도에서 유효 사거리는 9150m였다.

당시의 다른 전함들과 마찬가지로, 바이에른급 역시 5문의 60cm 수중 어뢰 발사관을 장착했다. 1문은 함수에, 나머지 4문은 양 현측에 2문씩 설치되었다. 총 20발의 어뢰를 탑재했으며, 사용된 어뢰는 H8형으로 길이는 9m, 탄두 중량은 210kg의 헥사나이트였다. 어뢰는 35노트 속도로 설정 시 8000m, 28노트로 속도를 줄이면 15000m의 사거리를 가졌다. 그러나 1917년 Bayernde과 Badende이 기뢰에 피격되었을 때, 어뢰 발사관 부분이 구조적 취약점으로 작용한 것이 확인되어 이후 두 함선 모두 현측 어뢰 발사관은 제거되었다. 함재기는 탑재하지 않았다.

바이에른급의 주포는 경량 포탄을 많은 장약으로 발사하여 포구 속도를 높이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시계가 좋지 않은 북해에서의 근거리 전투를 상정한 독일 해군의 전술 사상에 따른 것으로, 5000m에서 8000m 정도의 근거리에서는 뛰어난 관통력을 보였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력이 감소하여 장거리 포격전에서는 동시대 영국이나 프랑스 전함에 비해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

2. 2. 방어

바이에른급 전함의 방호 체계


바이에른급 전함은 당시 독일 군함의 표준이었던 크루프 경화 강철 장갑으로 방호되었다. 방어 설계는 이전 함급처럼 함미부까지 현측 전체를 감싸는 전면 방어 방식을 채택했다.

함선의 핵심 구역인 중앙 시타델에는 탄약고와 기관실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 350mm 두께의 주 장갑대가 설치되었다. 이 장갑대는 중요도가 낮은 구역으로 갈수록 얇아져, 선수 방향으로는 200mm, 선미 방향으로는 170mm까지 감소했다. 수선 아래에도 200mm에서 170mm로 얇아지는 장갑판이 있었으나, 보호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선수와 선미의 가장 끝부분은 장갑이 없었다. 주 장갑대 안쪽으로는 선체 전체 길이에 걸쳐 50mm 두께의 어뢰 방벽이 설치되었고, 함내 수밀 구획 역시 50mm 두께의 장갑으로 함저부까지 보호되었다. 수선 상부의 중앙 현측부에는 180mm 장갑이 추가되었다.

주 장갑 갑판의 두께는 대부분 60mm였으나, 중요 구역 상부는 100mm로 강화되었다. 전방 함교는 측면 400mm, 지붕 170mm의 매우 두꺼운 장갑으로 보호되었고, 후방 함교는 측면 170mm, 지붕 80mm으로 상대적으로 얇았다. 주포탑은 측면 350mm, 지붕 200mm의 장갑을 갖추었으며, 포탑 하부의 노출된 바벳은 전면 350mm, 후면 250mm 두께였다. 15cm 부포가 설치된 포곽(케이스메이트)은 170mm 장갑으로 보호되었고, 포 자체에는 승무원 보호를 위한 80mm 두께의 포방패가 있었다.

함저부는 현측 벌지와 연결된 이중저 구조로 설계되어 당시 최고 수준의 수중 방어 능력을 제공했다.

자매함 작센(SMS Sachsen)은 계획된 디젤 엔진의 크기 때문에 장갑 배치가 일부 수정되었다. 디젤 엔진실 상부에 측면 200mm, 양 끝 140mm, 상단 80mm 두께의 장갑 구획(글레이시스)이 추가되었고, 선수부의 200mm 장갑대 앞부분에 30mm 두께 장갑판이 선수 끝까지 연장되었다.

'''바이에른급 전함 방어 제원 요약'''
부위장갑 두께 (mm)비고
주 장갑대 (현측 수선부)350mm중앙부 (시타델)
200mm선수 방향
170mm선미 방향
수선 하부 장갑판200mm ~ 170mm제한된 범위
중앙 현측 상부180mm
주 장갑 갑판60mm ~ 100mm중요 구역 100mm
전방 함교400mm측면
170mm지붕
후방 함교170mm측면
80mm지붕
주포탑350mm측면
200mm지붕
350mm / 250mm바벳 (전면/후면)
부포 (15cm)170mm포곽 (케이스메이트)
80mm포방패
어뢰 방벽50mm주 장갑대 후방
수밀 구획 장갑50mm함저부까지 수직 설치


2. 3. 기관

바이에른급 전함은 3축 파슨스 터빈 3기를 동력원으로 사용했다. 바이에른과 바덴은 9개의 보일러실에 총 14기의 슐츠-소니크로프트 보일러를 탑재했는데, 이 중 11기는 석탄 연소 방식이었고 3기는 중유 연소 방식이었다. 이 터빈들은 각각 직경 3.87m의 3날 프로펠러를 구동했다.

설계상 기관 출력은 35,000 마력(shp)이었고, 이를 통해 최고 속도 21노트를 낼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그러나 실제 시험 운항에서는 바이에른이 55,967 마력(shp), 바덴이 56,275 마력(shp)의 출력을 기록했으며, 최고 속도는 22노트에 달했다.

당시 독일은 양질의 중유를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석탄과 중유를 함께 사용하는 혼소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함대의 전반적인 운용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 연료 탑재량은 기본적으로 석탄 900ton과 중유 200ton였으나, 선체 내 추가 공간을 활용하여 최대 석탄 3400ton과 중유 620ton까지 적재할 수 있었다. 최대 연료 적재 시 12노트의 속도로 항해할 경우 항속거리는 5000nmi에 달했다. 속도가 증가하면 항속거리는 감소하여, 15노트에서는 4485nmi, 17노트에서는 3740nmi, 그리고 21.5노트에서는 2390nmi까지 항해 가능했다.

전력 공급을 위해 8개의 디젤 발전기가 탑재되었으며, 총 2,400 kW의 전력을 220 볼트로 공급했다.

후기 함선인 작센과 뷔르템베르크는 기관 성능을 더욱 향상시켜 더 빠른 속도를 내도록 계획되었다. 뷔르템베르크는 48,000 마력(shp)의 출력으로 설계 속도 22노트를 목표로 했다. 작센의 경우, 중앙 추진축에는 12,000 마력(bhp)의 MAN 디젤 엔진을, 양외측 축에는 증기 터빈을 장착하는 복합 추진 방식을 채택하여 총 54,000 마력(shp)으로 설계 속도 22.5노트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작센에 탑재될 디젤 엔진은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시까지 완성되지 못했고, 1919년에야 연합 해군 통제 위원회의 시험을 위해 준비되었다.

기관실은 두 개의 종격벽에 의해 좌현, 중앙, 우현의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또한 보일러실과 기계실 사이는 수밀 격벽으로 분리되어 침수 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이후 건조된 비스마르크급 전함에도 계승된 특징이다. 기관실 공간의 좌우 폭이 좁았기 때문에, 고압 터빈과 저압 터빈을 병렬이 아닌 전후로 배치한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2. 4. 기타 제원

바이에른de과 바덴de은 수선에서의 길이가 179.4m였으며, 전체 길이는 180m였다. 작센de과 뷔르템베르크de는 약간 더 길어 수선에서 181.8m, 전체 길이는 182.4m였다. 네 척 모두 폭은 30m이며, 흘수선은 9.3m에서 9.4m 사이였다. 바이에른de과 바덴de의 정상 배수량은 28530ton이었고, 만재 배수량은 최대 32200ton에 달했다. 뷔르템베르크de와 작센de은 약간 더 무거워 정상 배수량이 28,800t, 만재 배수량이 32,500t이었다.

엔진으로는 3축 파슨스 터빈 3기를 탑재했으며, 출력은 35,000 마력(shp) 정도였다. 최고 속도는 21노트였다.

선체는 가로 및 세로 강철 프레임 위에 외부 선체 판을 리벳으로 고정하여 제작되었다. 선체는 17개의 방수 구획으로 나뉘었으며, 선체 길이의 88%에 걸쳐 이중 저 구조를 가졌다. 바이에른de급은 안정적이고 기동성이 뛰어난 선박으로 평가받았다. 거친 바다에서는 속도가 약간 감소했으며, 방향타를 최대로 꺾었을 때는 속도가 최대 62%까지 줄어들고 선체가 7도까지 기울었다. 메타센터 높이는 2.53m로, 당시 영국 동급 전함보다 높아 북해와 같은 해역에서 안정적인 포격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승무원 수는 1,187명에서 1,271명 사이였다. 표준 편제는 장교 42명과 사병 1,129명이었으며, 함대 기함으로 사용될 때는 장교 14명과 사병 86명이 추가로 배치되었다. 또한 초계정 1척, 바지선 3척, 보트 2척, 요트 2척, 딩기 2척 등 여러 척의 소형 선박을 탑재했다.

스카파 플로우로 항해하는 의 삽화


3. 건조

1916년에 촬영된 선체만 완성된


전후 함부르크에 정박해 있는 미완성 전함 (오른쪽)와 마켄젠급 순양전함 , 1920년경


바이에른급 전함은 총 4척의 함선을 건조할 계획이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2척만 완공되었다.

완공된 함선은 다음과 같다.

  • '''바이에른'''(SMS Bayernde): 의 호왈츠베르케에서 건조번호 590번으로 건조되었다. 1913년 12월 22일 기공하여 1915년 2월 18일 진수되었고, 1916년 7월 15일 완공되었다.
  • '''바덴'''(SMS Badende): 단치히의 쉬하우 조선소에서 건조번호 913번으로 건조되었다. 1913년 12월 20일 기공하여 1915년 10월 30일 진수되었고, 1917년 3월 14일 함대에 배치되었다.


나머지 두 척은 완공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 '''작센'''(SMS Sachsende): 의 게르마니아베르프트 조선소에서 건조번호 210번으로 건조되었다. 1914년 4월 15일 기공하여 1916년 11월 21일 진수되었으나 완공되지 못했다. 당시 완공까지 9개월이 남은 상태였다. 1921년에 폐기되었다.
  • '''뷔르템베르크'''(SMS Württembergde): 함부르크의 AG 불칸 조선소에서 건조번호 19번으로 건조되었다. 1915년 1월 4일 기공하여 1917년 6월 20일 진수되었지만, 역시 완공되지 못하고 1921년 해체되었다. 취소 당시 완공까지 약 12개월이 남은 상태였다.

3. 1. 함선 목록


  • SMS 바이에른
  • SMS 바덴
  • SMS 작센
  • SMS 뷔르템베르크

4. 운용



바이에른급 전함은 원래 총 5척이 건조될 예정이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후반 독일 제국 해군의 상황 악화로 1916년과 1917년에 각각 취역한 바이에른과 바덴 2척만이 건조 완료되었다. 나머지 작센과 뷔르템베르크는 1913년에 기공되어 진수까지는 이루어졌으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완성되지 못하고 1920년대 초에 해체되었다.

바이에른급은 독일 제국 해군 최초로 배수량이 32000ton을 넘는 전함이었으며, 주포 역시 기존의 30.5cm(12인치)에서 38cm(15인치)로 대폭 강화되었다. 이는 당시 영국 해군의 최신 전함과 동등한 수준의 주포 구경이었다. 당초 3연장 포탑도 검토되었으나, 먼저 3연장 포탑을 도입한 오스트리아 해군 전함에서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자 안정적인 연장 포탑 4기(총 8문)를 채택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부포는 15cm 포 16문을 최상 갑판 아래 현측에 배치했다.

화력 면에서 바이에른급은 동시대 영국 해군의 15인치포 장착 전함이나 프랑스 해군의 34cm포 10문 장착 전함과 비슷한 수준의 포탄 투사 능력을 갖추었다. 독일 전함의 특징대로 비교적 가벼운 포탄을 빠른 속도로 발사하여 근거리 관통력이 우수했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력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시야가 좋지 않은 북해에서의 근접전을 주로 상정한 독일 제국 해군의 전략 때문이었다. 또한, 전쟁 중 양질의 중유 확보가 어려워 석탄을 주로 사용하는 혼소 보일러를 사용했기 때문에 함대 속력이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건조 시기가 늦어 실전 경험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1915년에 진수한 바이에른과 바덴은 유틀란트 해전에는 참전하지 못했다. 바이에른은 1917년 10월 알비온 작전 중 리가만에서 기뢰에 부딪혀 손상을 입고 킬로 회항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스카파 플로에 억류되었고, 1919년 6월 독일 함대 자침 시 바이에른은 침몰했다. 바덴은 침몰을 면했으나 이후 영국 해군의 표적함으로 사용되어 1921년 침몰했다.

바이에른급의 기본 설계, 특히 함내 구획 배치와 장갑 방어 방식 등은 20년 후 나치 독일비스마르크급 전함 설계에 영향을 주었다.

4. 1. 주요 작전

바이에른급 전함은 건조 시기상 실제 전투에 투입된 경험이 많지 않았다.

'''1916년 8월 19일 함대 출격'''

1916년 8월 18일에서 19일 사이, 프란츠 폰 히퍼 제독이 이끄는 제1 정찰 전대는 선더랜드 해안 도시를 포격하여 데이비드 비티 제독의 영국 순양전함 부대를 유인, 격멸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유틀란트 해전 이후 독일에는 전투 가능한 순양전함이 몰트케와 폰 데어 탄 뿐이었기에, 바이에른과 쾨니히급 전함 2척(마르크그라프, 그로세르 쿠르퓌르스트)이 이 작전에 추가로 배속되었다. 라인하르트 셰어 제독과 나머지 주력 함대 소속 전함 15척은 뒤따르며 엄호할 예정이었다. 영국군은 독일의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그랜드 함대를 출격시켰다. 8월 19일 14시 35분경, 셰어 제독은 그랜드 함대의 접근을 보고받았고, 유틀란트 해전 이후 불과 11주 만에 영국 함대 전체와 교전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함대를 독일 항구로 후퇴시켰다.

'''알비온 작전 (1917년 10월)'''

1917년 9월 초, 독일군이 리가 항구를 점령한 후, 독일 해군은 리가만을 장악하고 있던 러시아 해군 세력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해군 최고 사령부(Admiralstab|아드미랄슈타프deu)는 발트해의 외젤 섬, 특히 스보르베 반도의 러시아 포대를 점령하는 작전을 계획했다. 9월 18일, 외젤 섬과 문 섬 점령을 위한 육해군 합동 작전 명령이 내려졌다. 해군 주력 부대는 기함 몰트케와 공해 함대의 제3 전대로 구성되었다. 제3 전대 제5 사단에는 쾨니히급 전함 4척과 함께 바이에른이 포함되었고, 제6 사단은 카이저급 전함 5척으로 이루어졌다. 이 외에도 경순양함 9척, 어뢰정 3개 전대, 수십 척의 기뢰전 함선 등 총 300여 척의 함선과 100대 이상의 항공기, 6대의 체펠린 비행선이 동원되었다. 상륙 부대는 약 24,6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었다. 이에 맞서는 러시아군은 구식 전함 슬라바와 체사레비치, 장갑순양함 바얀, 아드미랄 마카로프, 디아나, 구축함 26척, 어뢰정 및 포함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외젤 섬 수비대는 약 14,000명이었다.

작전은 10월 12일에 시작되었다. 몰트케, 바이에른, 그리고 쾨니히급 전함들이 타가 만(Tagga Bay)의 러시아 해안 포대를 공격했고, 동시에 카이저급 전함들은 스보르베 반도의 포대와 교전했다. 작전 목표 중 하나는 문 섬과 다고 섬 사이의 해협을 확보하여 리가 만에 있는 러시아 함선의 유일한 탈출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로세르 쿠르퓌르스트와 바이에른은 포격 위치로 이동하던 중 기뢰에 접촉했다. 그로세르 쿠르퓌르스트의 피해는 경미하여 작전을 계속 수행했지만, 바이에른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임시 수리가 효과가 없어 바이에른은 수리를 위해 킬로 철수해야 했으며, 귀환하는 데 19일이 걸렸다.

'''1918년 4월 함대 출격'''

1917년 말, 독일 공해 함대는 영국과 노르웨이 사이 북해에서 활동하는 영국 호송 선단을 경함으로 공격하는 작전을 개시했다. 10월 17일, 독일 경순양함 브루머Brummerdeu와 브렘제Bremsedeu는 구축함 2척의 호위를 받는 12척의 선박으로 구성된 호송 선단을 가로막아 파괴했다. 단 3척의 수송선만이 탈출에 성공했다. 12월 12일, 독일 구축함 4척이 또 다른 5척의 선박과 호위 구축함 2척으로 구성된 호송 선단을 가로막아 전멸시켰다. 이는 그랜드 함대 사령관 데이비드 비티 제독이 북해의 호송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전함과 순양전함을 차출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셰어 제독에게 그가 기다려온 기회, 즉 영국 함대의 일부를 분리하여 격파할 기회를 제공하는 듯 보였다.

1918년 4월 23일 오전 5시, 바이에른과 바덴Badendeu을 포함한 모든 공해 함대는 호위가 삼엄한 호송 선단을 가로막을 의도로 항구를 떠났다. 영국군이 작전을 알지 못하도록 무선 통신을 최소한으로 유지했다. 4월 24일 오전 5시 10분, 순양전함 몰트케Moltkedeu는 심각한 기계적 문제를 겪어 빌헬름스하펜으로 예인해야 했다. 오후 2시 10분까지 호송 선단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셰어는 공해 함대를 독일 해역으로 되돌렸다. 사실 4월 24일에는 항해하는 호송 선단이 없었다. 독일 해군 정보부가 항해 날짜를 하루 잘못 계산했던 것이다.

4. 2. 스캐퍼플로 자침

잔잔한 물결 속에서 거대한 연회색 전함이 뒤로 기울어져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가 스카파 플로우에서 선수부터 침몰하는 모습


1918년 11월 독일과의 휴전 이후, 독일 대양함대의 대부분은 영국 해군 기지인 스캐퍼플로에 억류될 예정이었다. Bayern|바이에른de은 인도될 함선 목록에 포함되었으나, Baden|바덴de은 처음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영국은 완성된 것으로 여겼던 순양전함 SMS Mackensen|SMS 마켄젠de을 요구했으나, 연합국은 Mackensen|마켄젠de이 아직 건조 중임을 확인하고 Baden|바덴de으로 대체하도록 명령했다. 1918년 11월 21일, 억류될 함선들은 루드비히 폰 로이터 제독의 지휘 아래 독일을 떠나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다. 함대는 영국 경순양함 HMS Cardiff|HMS 카디프영어와 합류한 뒤, 약 370척의 영국, 미국, 프랑스 군함으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와 만나 스캐퍼플로로 향했다. Baden|바덴de은 1918년 12월 14일에 별도로 스카파 플로우에 도착했다.

함선들은 억류 기간 동안 포미가 제거되어 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함대는 베르사유 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억류 상태로 남아 있었다. 로이터 제독은 독일이 평화 조약에 서명해야 하는 마감일인 6월 21일에 영국이 독일 함선을 압수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를 막기 위해 그는 기회가 오면 즉시 함선들을 자침시키기로 결정했다. 1919년 6월 21일 아침, 영국 함대가 훈련을 위해 스카파 플로우를 떠나자, 로이터 제독은 11시 20분에 함대에 자침 명령을 전달했다. Bayern|바이에른de은 14시 30분에 침몰했으나, Baden|바덴de은 영국 경비병들에 의해 얕은 물에 좌초되어 침몰을 면했다. 이로써 Baden|바덴de은 자침되지 않은 유일한 독일 주력함이 되었다.

Baden|바덴de은 이후 다시 부양되어 영국 해군에 의해 철저히 조사된 후 사격 표적으로 사용되었고, 결국 1921년 8월 16일 포츠머스 남서쪽 해상에서 침몰했다. Bayern|바이에른de은 1934년 9월 1일에 인양되어 해체를 위해 로시스로 옮겨졌고, 이듬해 해체 작업이 완료되었다.

5. 영향



바이에른급 전함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설계된 함선 중에서는 매우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다. 또한 독일 제국 해군 최후의 전함이었기 때문에, 훗날 건조된 비스마르크급 전함 설계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바이에른급은 어디까지나 '''제1차 세계 대전형 설계'''에 기반한 전함이었다. 따라서 이 설계를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운용될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했다. 이러한 시대적 차이와 설계상의 계승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은 결과적으로 비스마르크급 전함이 여러 설계상 결함을 안고 건조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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