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지신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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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 2. 집필 배경
- 3. 내용
- 3.1. 무명주지번뇌(無明住地煩悩)
- 3.2. 제불부동지(諸仏不動智)
- 3.3. 이(理)를 지지하는 기(技), 기를 살리는 이
- 3.4. 간발을 용납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間不容髪)
- 3.5. 석화지기(石火之機)
- 3.6. 마음을 두는 법
- 3.7. 본심(本心)과 망심(妄心)
- 3.8. 유심(有心)과 무심(無心)
- 3.9. 물에 뜬 표주박처럼(水上打₂胡藘子₁捺着即転)
- 3.10.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応無所住而生其心)
- 3.11. 풀어 놓은 마음을 다시 되돌려 놓아라(求₂放心₁)
- 3.12. 급류에 출렁거리는 공처럼(急水上打毬子, 念々不停留)
- 3.13. 전후절단(前後際断)
- 3.14. 경(敬)이라는 한 글자
- 4. 영향
- 5. 국외에서
- 6. 한국어 번역
- 참조
1. 개요
《부동지신묘록》은 다쿠안 소호가 쓴 병법서로, 센고쿠 시대에서 에도 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에 무사 계층의 변화에 발맞춰 심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야규 무네노리의 요청으로 쓰였으며, 불교와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검술의 심법과 마음가짐을 설명한다. 《부동지신묘록》은 '검선일여' 사상을 통해 무도에 불교적 요소를 유입시키는 계기를 제공했고, 일본 무도와 근대 철학에 영향을 미쳤으나, 군국주의 전쟁 철학에 원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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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지신묘록 | |
|---|---|
| 기본 정보 | |
![]() | |
| 저자 | 다쿠앙 소호 |
| 쓰여진 시기 | 1632년 |
| 언어 | 일본어 |
| 내용 | |
| 주제 | 선과 무도 |
| 관련 인물 | 야규 무네노리 |
| 기타 | |
| 종류 | 서적 |
2. 집필 배경
다쿠안 소호가 살았던 시기 일본은 센고쿠 시대에서 쇼쿠호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로 이행하는 전환기였다. 센고쿠 시대 말엽 철포(鉄砲)의 등장으로 인한 전술 패러다임의 변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전국 통일,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를 거쳐 에도 막부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전시에서 평시로의 이행이 이루어지던 일본에서는 차츰 '무사 계층'에 대해 의식의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기존의 경제적 보상에 의한 주종 관계와 무단통치는 전쟁이 사라지고 전공(戰功)이라는 보상이 더 이상 주어질 수 없는 평화 시대에는 지배 원리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되었다. 또한 막번 체제가 정비되고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무사 계층은 점차 사족(士族)으로서 엄격한 신분제 속에 편입되었다.
에도 막부의 지배층들이 무가제법도를 통한 무사들의 통제를 꾀하는 과정에서 조선으로부터 유입된 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수용하게 되고, 유교적 명분론이 무사 계층 사이에 이식되게 되었다. 전란의 시대에 불교적인 숙명론이 무사들의 의식 기저에서 무사 특유의 사생관과 주종관계를 합리화했다면, 평화 시기에는 유교적 명분론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이전 시대에는 전장에서 전공을 많이 세우기 위한 기량만을 우선시했던 것에 비해 점차 병법에 있어서도 정신적 측면에서의 이른바 심법(心法)이 중시되게 된다. 이런 시기에 병법서들의 저술에서 그 내용은 선종과 유교적 요소들이 무사도의 내용으로서 포함되었던 것이다. 다쿠안 소호도 《부동지신묘록》의 저술과정에 심법의 측면을 중시하여 선종과 유교적 이념을 《부동지신묘록》에 함께 서술해 놓았다.[3]
2. 1. 시대적 전환기
센고쿠 시대에서 쇼쿠호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로 이행하는 전환기에 일본은 전시에서 평시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 센고쿠 시대 말엽 철포의 등장으로 전술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전국 통일,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를 거쳐 에도 막부가 성립되면서, '무사 계층'에 대한 의식 변화가 요구되었다.[3]기존의 경제적 보상에 의한 주종 관계와 무단통치는 전쟁이 사라지고 전공(戰功)이라는 보상이 더 이상 주어질 수 없는 평화 시대에는 지배 원리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되었다. 막번 체제가 정비되고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무사 계층은 점차 사족으로서 엄격한 신분제 속에 편입되었다.[3]
에도 막부의 지배층들은 무가제법도를 통해 무사들을 통제하고자 조선으로부터 유입된 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수용하고, 유교적 명분론을 무사 계층 사이에 이식하였다. 전란의 시대에 불교적인 숙명론이 무사들의 의식 기저에서 무사 특유의 사생관과 주종관계를 합리화했다면, 평화 시기에는 유교적 명분론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3]
이전 시대에는 전장에서 전공을 많이 세우기 위한 기량만을 우선시했던 것에 비해 점차 병법에 있어서도 정신적 측면에서의 이른바 심법(心法)이 중시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다쿠앙은 《부동지신묘록》을 저술하면서 심법의 측면을 중시하여 선종과 유교적 이념을 함께 서술하였다.[3]
2. 2. 주자학과 무사도
에도 막부는 무사들의 통제를 위해 조선으로부터 유입된 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수용하였다.[3] 유교적 명분론은 무사 계층에 이식되었는데, 전쟁 시기에는 불교적 숙명론이 무사들의 사생관과 주종관계를 합리화하는 역할을 했다면, 평화 시기에는 유교적 명분론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3] 이전 시대에는 전장에서 전공을 많이 세우기 위한 기량만을 우선시했던 것에 비해, 점차 병법에 있어서도 정신적 측면에서의 심법(心法)이 중시되었다.[3]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다쿠안 소호는 《부동지신묘록》을 저술하면서 심법을 중시하여 선종과 유교적 이념을 함께 서술했다.[3]2. 3. 심법(心法)의 중요성
센고쿠 시대에서 쇼쿠호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로 이행하는 전환기에 일본은 철포의 등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를 거쳐 에도 막부가 성립되는 등 전시에서 평시로 변화하였다.[3]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무사 계층에게 의식 변화를 요구했다. 경제적 보상에 의한 주종 관계와 무단통치는 전쟁이 사라지고 전공(戰功)이라는 보상이 없는 평화 시대에는 지배 원리로서 역할이 약화되었다.[3] 막번 체제가 정비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무사 계층은 사족으로서 엄격한 신분제 속에 편입되었다.[3]에도 막부의 지배층들은 무가제법도를 통해 무사들을 통제하고자 조선으로부터 유입된 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수용하였고, 유교적 명분론이 무사 계층 사이에 이식되었다.[3] 전란의 시대에는 불교적인 숙명론이 무사들의 사생관과 주종관계를 합리화했다면, 평화 시기에는 유교적 명분론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3] 이전 시대에는 전장에서 전공을 세우기 위한 기량만을 우선시했던 것에 비해 점차 병법에 있어서도 정신적 측면에서의 심법(心法)이 중시되었다.[3] 다쿠앙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부동지신묘록》을 저술하면서 심법의 측면을 중시하여 선종과 유교적 이념을 함께 서술했다.[3]
3. 내용
《부동지신묘록》은 다쿠안이 야규 무네노리의 요청으로 그를 위해 쓴 서간을 기초로 한다. 무네노리에게 간언(諫言)하는 내용의 4개의 장을 포함하여 《부동지신묘록》은 총 3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불교적인 이론을 이용하여 검술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마음이 한 사물에 붙들리면(의식함이 지나치면), 몸이 부자유해지고, 헤매면, 조금이라고는 해도 심신이 멈춰 버리게 된다. 이러한 상태를 선의 입장에서는 좋게 보지 않고, 달인의 영역에 다다른 무인의 정신 상태 · 심법(心法)을, 「무의식적인 행동」 또한 마음이 항상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무언가에) 헤매지 않고, 붙들리지 않고,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을 설교하고 부동지를 「답보다 헤매지 않는 것 = 결과보다 행동」에 중점을 두는 선문답으로 설명(본서에서는 「석화지기」)한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심법을 설하고 있는 병법서이며, 실전 기술인 신카게류(新陰流)와 표리일체로 배우는 것(본서의 「이(理)의 수행, 사(事)의 수행」)으로 하고 있다.
=== 무명주지번뇌(無明住地煩悩) ===
불교에서 '무명'(無明)이란 '망설임'을 가리키며 '주지'(住地)란 불교 수행 단계의 52위 중 하나로 '주'(住)에는 '멈춘다'(머무른다)의 뜻도 담겨 있다. 선종에서는 마음이 헤매며 멈춰(머물러) 있는 상태는 좋지 않은 것으로 설명한다.
다쿠안은 《부동지신묘록》에서 검을 수련하는 자가 경계하여야 할 미혹(迷惑)의 상태를 '무명주지번뇌'(無明住地煩惱)라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미혹된 상태를 벗어난 완성된 수련단계에 있어서의 검의 지극한 경지를 '무도'(無刀)라 하였다. 이러한 무도는 '부동지'(不動智)를 증득한 '검선일여'(劍禪一如)의 경지에서 다다를 수 있는 경지를 뜻한다.
상대가 칼을 휘두를 때, '(상대가) 이쪽으로 쳐들어 온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자신의 마음은 상대의 움직임에 빼앗긴 것이라고 말하고, 무심(無心)의 상태에 잠긴 상태로 덤벼 들면, 상대의 칼을 빼앗아 반대로 상대를 베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고 '무도'(無刀)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누가 어떻게 (이쪽을) 치러 온다'라든가 '적의 마음을 읽어야 되는데(이쪽의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등 의식적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비유하여 설명한다. 상대의 칼의 움직임도, 타이밍도, 나 자신의 칼의 움직임도, 나의 마음을 빼앗아 붙들어놓는 대상이며 나 스스로를 부자유하게 만들 뿐이라고 하여, 선종 불교의 입장에서 '사고'(思考) 대 '사고'의 대결을 부정하는 기술이 이루어져 있다.
=== 제불부동지(諸仏不動智) ===
부동지신묘록에서 '부동'(不動)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마음만은 자유롭게 움직여 어느 한 물건, 어느 한 가지 일에 조금도 마음을 얽매이지 않는 것이 부동지라고 설명한다. 부동지를 가장 잘 체현한 부동명왕(不動明王)처럼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부동지신묘록은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열 명이 한 명에게 쳐들어와 베려고 할 때, 그중 한 명의 칼을 받아 넘기는 것에만 신경 쓰면(마음이 붙들려 있으면) 나머지 아홉 명의 공격에 즉각 대응할 수 없다. 열 명의 공격을 맞아 싸우려면 열 번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음이 어느 그림의 한 지점에만 붙들려 머물지 않고, 그림 전체에 빠짐없이 고르게 미치는" 경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1천 개의 손과 1천 개의 눈을 지닌 천수관음(千手観音)도 마찬가지다. 1천 개의 손 가운데 활을 든 하나의 손에 마음이 붙들려 얽매이면 나머지 999개의 손은 쓸모없게 된다. 그러나 어떤 하나의 손에도 마음이 붙들려 있지 않기에, 1천 개의 손 모두가 유용하게 된다.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면 다른 부분을 놓치기 쉽고, 마음도 한 곳에 치우치면 빈 곳이 생긴다. 하지만 부동지의 상태에서는 1천 개의 손, 1천 개의 눈 그 어느 곳에도 결여됨 없이 마음이 고루 존재할 수 있다.
또한 나뭇잎의 예를 들어 한 장의 낙엽(떨어짐=움직임)만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무심의 상태로 봄으로써 더 많은 나뭇잎의 구조를 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처음으로 칼을 잡은 사람은 자세 등에 마음이 붙들려 얽매이지 않는다는 비유도 포함된다.
=== 이(理)를 지지하는 기(技), 기를 살리는 이 ===
다쿠안의 《부동지신묘록》이 병법서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리일치(事理一致)의 수행을 주장했다는 점이다.[4]
불교적 의미에서 '사'(事)는 현상이며, '리'(理)는 현상의 본질로서 진리를 뜻한다. 다쿠안은 수행에는 '이'의 수행과 '사'의 수행,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수행에 있어 '사'와 '이'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어느 한 쪽도 빠뜨릴 수 없고 양쪽 모두를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한다.[4]
다쿠안이 말한 '사리'의 '사'는 검술의 형(形), 즉 '기술'로서의 검법을 말하고 '리'는 마음수련 즉 심법을 말한다. 이 '리'의 수련의 극의인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먼저 '사'의 수련이 전제될 것을 요한다. 심법이든 검법이든 즉 사와 리가 모두 갖춰진 수행이 아니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결국 다쿠앙은 수행에 있어 '사리일치'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수행이 아니고서는 극의에 이를 수 없게 된다.[4] 검법과 심법의 조화를 뜻하는 사리일치가 바로 '검선일여' 사상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부동지신묘록》의 큰 주제이기도 한 "검과 선의 극의가 하나로 통한다"는 검선일여의 의미는 사리수행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4]
=== 간발을 용납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間不容髪) ===
항상 흐르듯 움직이는 마음의 상태가 좋다고 설명하며, 틈이 없는 상태와 그러한 상태에 놓인 사물의 모습을 설명하는 기술이다.
=== 석화지기(石火之機) ===
마음이 어떤 사물에 붙들리지 않으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신속한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부동지신묘록》은 말한다.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이라는 생각마저도 또한 마음이 그런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이라는 생각에 붙들려 있다는 증거이며, 마음이 멈춰 있는 상태라고 부동지신묘록은 설명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반사적으로 「응?」 하고 반응하는 것이, 「부동지」의 상태이며, 생각을 둘러싼 말에 「사용은」이라고 응하는 것이, 「망설임」=마음이 멈춰 있는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 마음을 두는 법 ===
다쿠안은 마음을 한 곳에 두지 않고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불법의 경지라고 설명한다. 맹자의 '방심을 구하라'는 이치를 설명하지만, 불법의 경지 앞에서는 아직 낮은 단계(세속적 경지)라고 인지한다.
=== 본심(本心)과 망심(妄心) ===
「본심」(本心)이란 한 곳에 마음이 머물지 않고 넓어진 상태를, 「망심」(妄心)이란 한 곳에 마음이 머물러 굳어진 상태를 말한다. 《부동지신묘록》은 이를 물과 얼음에 비유하여, 굳은 얼음보다 녹은 물이 세상에 더 폭넓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 유심(有心)과 무심(無心) ===
유심(有心)은 망심(妄心)과 같은 뜻으로, 무심(無心)은 본심(本心)과 같은 뜻으로 설명된다.
=== 물에 뜬 표주박처럼(水上打₂胡藘子₁捺着即転) ===
수면에 떠있는 표주박을 손으로 누르면 옆으로 떠서 벗어나고, 더욱 힘주어 눌러도 빠져나가는 등 도저히 한 곳에 계속 멈춰 있지 않는 것처럼,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의 마음은 저 표주박처럼 멈춰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応無所住而生其心) ===
불경 《금강경》의 구절인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應無所住而生其心)를 인용한 것이다. 마음을 어딘가에 멈춰두지 않은, 즉 붙들려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하자고 생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 풀어 놓은 마음을 다시 되돌려 놓아라(求₂放心₁) ===
다쿠안은 무심에 이르기 위해 마음을 버리는 사심(捨心)을 제시하는 한편, 맹자의 "흩어져 버리는 마음을 그러모아라"라는 말(세속적 경지)을 인용하면서 마음의 자유자재함의 필요성을 설명한다.[5]
다쿠안은 유가의 '경'(敬)을 들어 정(程)·주(朱)가 말한 주일무적(主一無適)으로 마음을 집중하는 경지를 설명한다. 불가에서도 유가의 경과 같은 '경백'(敬白)이 있어서 성리학에서 사용하는 주일무적과 마찬가지로 일심불란(一心不亂)의 의미로 통하지만, 성리학에서 제시한 이러한 마음 집중 수행은 수행 초기의 방편으로서의 수행 방법일 뿐이고 궁극의 수행은 《금강경》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응무소주'에 있다고 다쿠안은 말한다.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흐트러지므로 그 마음을 붙들어매는 것이 '경'인데 이러한 방법은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는 일단의 방법일 뿐 여기에 얽매이다 보면 결국 마음이 자유자재하는 것을 막게 된다는 것이다.[5]
맹자의 구방심(求放心)에 대해서도 다쿠안은 수행을 막 시작하는 초심자 단계에서는 맹자가 말한 방법대로 놓쳐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아 다잡을 필요가 있지만, 수행이 극의에 다다르면 오히려 그러한 마음을 다잡은 상태가 오히려 하나의 얽매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여기에서 소강절(邵康節)의 '요방심'(要放心)을 들어, 붙들어 두었던 마음을 다시금 자유자재하게 풀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5]
=== 급류에 출렁거리는 공처럼(急水上打毬子, 念々不停留) ===
어느 한 곳에 멈추지 않음을 보여준다.
=== 전후절단(前後際断) ===
이전과 지금을 분리하고 마음을 멈추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
=== 경(敬)이라는 한 글자 ===
이 말은 심법을 표현한 것으로, 자심을 다스리는 것을 설명한다.
3. 1. 무명주지번뇌(無明住地煩悩)
불교에서 '무명'(無明)이란 '망설임'을 가리키며 '주지'(住地)란 불교 수행 단계의 52위 중 하나로 '주'(住)에는 '멈춘다'(머무른다)의 뜻도 담겨 있다. 선종 불교에서는 마음이 헤매며 멈춰(머물러) 있는 상태는 좋지 않은 것으로 설명한다.다쿠안은 《부동지신묘록》에서 검을 수련하는 자가 경계하여야 할 미혹(迷惑)의 상태를 '무명주지번뇌'(無明住地煩惱)라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미혹된 상태를 벗어난 완성된 수련단계에 있어서의 검의 지극한 경지를 '무도'(無刀)라 하였다. 이러한 무도는 '부동지'(不動智)를 증득한 '검선일여'(劍禪一如)의 경지에서 다다를 수 있는 경지를 뜻한다.
상대가 칼을 휘두를 때, '(상대가) 이쪽으로 쳐들어 온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자신의 마음은 상대의 움직임에 빼앗긴 것이라고 말하고, 무심(無心)의 상태에 잠긴 상태로 덤벼 들면, 상대의 칼을 빼앗아 반대로 상대를 베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고 '무도'(無刀)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누가 어떻게 (이쪽을) 치러 온다'라든가 '적의 마음을 읽어야 되는데(이쪽의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등 의식적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비유하여 설명한다. 상대의 칼의 움직임도, 타이밍도, 나 자신의 칼의 움직임도, 나의 마음을 빼앗아 붙들어놓는 대상이며 나 스스로를 부자유하게 만들 뿐이라고 하여, 선종 불교의 입장에서 '사고'(思考) 대 '사고'의 대결을 부정하는 기술이 이루어져 있다.
3. 2. 제불부동지(諸仏不動智)
부동지신묘록에서 '부동'(不動)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마음만은 자유롭게 움직여 어느 한 물건, 어느 한 가지 일에 조금도 마음을 얽매이지 않는 것이 부동지라고 설명한다. 부동지를 가장 잘 체현한 부동명왕(不動明王)처럼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부동지신묘록은 설명하고 있다.예를 들어, 열 명이 한 명에게 쳐들어와 베려고 할 때, 그중 한 명의 칼을 받아 넘기는 것에만 신경 쓰면(마음이 붙들려 있으면) 나머지 아홉 명의 공격에 즉각 대응할 수 없다. 열 명의 공격을 맞아 싸우려면 열 번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음이 어느 그림의 한 지점에만 붙들려 머물지 않고, 그림 전체에 빠짐없이 고르게 미치는" 경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1천 개의 손과 1천 개의 눈을 지닌 천수관음(千手観音)도 마찬가지다. 1천 개의 손 가운데 활을 든 하나의 손에 마음이 붙들려 얽매이면 나머지 999개의 손은 쓸모없게 된다. 그러나 어떤 하나의 손에도 마음이 붙들려 있지 않기에, 1천 개의 손 모두가 유용하게 된다.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면 다른 부분을 놓치기 쉽고, 마음도 한 곳에 치우치면 빈 곳이 생긴다. 하지만 부동지의 상태에서는 1천 개의 손, 1천 개의 눈 그 어느 곳에도 결여됨 없이 마음이 고루 존재할 수 있다.
또한 나뭇잎의 예를 들어 한 장의 낙엽(떨어짐=움직임)만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무심의 상태로 봄으로써 더 많은 나뭇잎의 구조를 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처음으로 칼을 잡은 사람은 자세 등에 마음이 붙들려 얽매이지 않는다는 비유도 포함된다.
3. 3. 이(理)를 지지하는 기(技), 기를 살리는 이
다쿠안의 《부동지신묘록》이 병법서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리일치(事理一致)의 수행을 주장했다는 점이다.[4]불교적 의미에서 '사'(事)는 현상이며, '리'(理)는 현상의 본질로서 진리를 뜻한다. 다쿠안은 수행에는 '이'의 수행과 '사'의 수행,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수행에 있어 '사'와 '이'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어느 한 쪽도 빠뜨릴 수 없고 양쪽 모두를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한다.[4]
다쿠안이 말한 '사리'의 '사'는 검술의 형(形), 즉 '기술'로서의 검법을 말하고 '리'는 마음수련 즉 심법을 말한다. 이 '리'의 수련의 극의인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먼저 '사'의 수련이 전제될 것을 요한다. 심법이든 검법이든 즉 사와 리가 모두 갖춰진 수행이 아니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결국 다쿠앙은 수행에 있어 '사리일치'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수행이 아니고서는 극의에 이를 수 없게 된다.[4] 검법과 심법의 조화를 뜻하는 사리일치가 바로 '검선일여' 사상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부동지신묘록》의 큰 주제이기도 한 "검과 선의 극의가 하나로 통한다"는 검선일여의 의미는 사리수행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4]
3. 4. 간발을 용납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間不容髪)
항상 흐르듯 움직이는 마음의 상태가 좋다고 설명하며, 틈이 없는 상태와 그러한 상태에 놓인 사물의 모습을 설명하는 기술이다.3. 5. 석화지기(石火之機)
마음이 어떤 사물에 붙들리지 않으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신속한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부동지신묘록》은 말한다.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이라는 생각마저도 또한 마음이 그런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이라는 생각에 붙들려 있다는 증거이며, 마음이 멈춰 있는 상태라고 부동지신묘록은 설명한다.예를 들어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반사적으로 「응?」 하고 반응하는 것이, 「부동지」의 상태이며, 생각을 둘러싼 말에 「사용은」이라고 응하는 것이, 「망설임」=마음이 멈춰 있는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3. 6. 마음을 두는 법
다쿠안은 마음을 한 곳에 두지 않고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불법의 경지라고 설명한다. 맹자의 '방심을 구하라'는 이치를 설명하지만, 불법의 경지 앞에서는 아직 낮은 단계(세속적 경지)라고 인지한다.3. 7. 본심(本心)과 망심(妄心)
「본심」(本心)이란 한 곳에 마음이 머물지 않고 넓어진 상태를, 「망심」(妄心)이란 한 곳에 마음이 머물러 굳어진 상태를 말한다. 《부동지신묘록》은 이를 물과 얼음에 비유하여, 굳은 얼음보다 녹은 물이 세상에 더 폭넓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3. 8. 유심(有心)과 무심(無心)
유심(有心)은 망심(妄心)과 같은 뜻으로, 무심(無心)은 본심(本心)과 같은 뜻으로 설명된다.3. 9. 물에 뜬 표주박처럼(水上打₂胡藘子₁捺着即転)
수면에 떠있는 표주박을 손으로 누르면 옆으로 떠서 벗어나고, 더욱 힘주어 눌러도 빠져나가는 등 도저히 한 곳에 계속 멈춰 있지 않는 것처럼,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의 마음은 저 표주박처럼 멈춰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3. 10.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応無所住而生其心)
불경 《금강경》의 구절인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應無所住而生其心)를 인용한 것이다. 마음을 어딘가에 멈춰두지 않은, 즉 붙들려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하자고 생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3. 11. 풀어 놓은 마음을 다시 되돌려 놓아라(求₂放心₁)
다쿠안은 무심에 이르기 위해 마음을 버리는 사심(捨心)을 제시하는 한편, 맹자의 "흩어져 버리는 마음을 그러모아라"라는 말(세속적 경지)을 인용하면서 마음의 자유자재함의 필요성을 설명한다.[5]다쿠안은 유가의 '경'(敬)을 들어 정(程)·주(朱)가 말한 주일무적(主一無適)으로 마음을 집중하는 경지를 설명한다. 불가에서도 유가의 경과 같은 '경백'(敬白)이 있어서 정주성리학에서 사용하는 주일무적과 마찬가지로 일심불란(一心不亂)의 의미로 통하지만, 성리학에서 제시한 이러한 마음 집중 수행은 수행 초기의 방편으로서의 수행 방법일 뿐이고 궁극의 수행은 《금강경》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응무소주'에 있다고 다쿠안은 말한다.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흐트러지므로 그 마음을 붙들어매는 것이 '경'인데 이러한 방법은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는 일단의 방법일 뿐 여기에 얽매이다 보면 결국 마음이 자유자재하는 것을 막게 된다는 것이다.[5]
맹자의 구방심(求放心)에 대해서도 다쿠안은 수행을 막 시작하는 초심자 단계에서는 맹자가 말한 방법대로 놓쳐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아 다잡을 필요가 있지만, 수행이 극의에 다다르면 오히려 그러한 마음을 다잡은 상태가 오히려 하나의 얽매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여기에서 소강절(邵康節)의 '요방심'(要放心)을 들어, 붙들어 두었던 마음을 다시금 자유자재하게 풀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5]
3. 12. 급류에 출렁거리는 공처럼(急水上打毬子, 念々不停留)
어느 한 곳에 멈추지 않음을 보여준다.3. 13. 전후절단(前後際断)
이전과 지금을 분리하고 마음을 멈추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3. 14. 경(敬)이라는 한 글자
이 말은 심법을 표현한 것으로, 자심을 다스리는 것을 설명한다.4. 영향
다쿠안 소호의 《부동지신묘록》은 '검선일여(劍禪一如)' 사상을 통해 무도에 불교적 요소가 유입되는 계기를 제공했다.[6] 이는 전쟁 기술적인 측면에서 수행적 의미가 강화된 무도(武道)로의 변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불교(선종)와 유교(성리학)적 요소가 무도의 사상적 기반에 편입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야규 무네노리, 미야모토 무사시, 이토 잇토사이(伊藤一刀齋) 등에게 전해졌으며, 이 시기 무사도 교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6]
《부동지신묘록》의 사상은 《원립 검술 이야기》(願立剣術物語)와 같은 일본의 다른 서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혹시키는 눈을 의지해, 적의 치는 것을 보면서 거기에 맞추려 드는 것은 구름에다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는 구절은 《부동지신묘록》의 '무명주지번뇌'와 유사하며, "어떤 사물에 붙들려 붙잡혀 머무른 곳에 갇히게 되고, 얼음이 되어서 물의 자유로운 이치를 알지 못하고"라는 표현은 '본심망심'의 내용과 상통한다.
18세기에 성립된 담의본(談義本) 「덴구 예술론」(天狗芸術論)에서도 《부동지신묘록》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두 번째 덴구가 의식함이 지나친 것의 해로움 등을 설명하는 부분은 《부동지신묘록》의 '무명주지번뇌'나 '제불부동지'와 유사하다.
다쿠안의 사상은 검술 유파뿐만 아니라 유술 유파에도 전파되어 근대 일본 무도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천신진양류유술극의교수도해》(天神真楊流柔術極意教授図解)의 '진정한 자리의 설'(真の位の説)에는 "물속의 표주박을 눌러도 빠져나간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부동지의 "수면의 표주박을 손으로 눌러 봐야 그대로 빠져나간다"를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다쿠안의 '검선일여' 사상이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 철학에 원용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7]
4. 1. 일본 무도에 미친 영향
다쿠안 소호의 《부동지신묘록》은 '검선일여(劍禪一如)' 사상을 통해 무도에 불교적 요소가 유입되는 계기를 제공했다.[6] 이는 전쟁 기술적인 측면에서 수행적 의미가 강화된 무도(武道)로의 변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불교(선종)와 유교(성리학)적 요소가 무도의 사상적 기반에 편입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야규 무네노리, 미야모토 무사시, 이토 잇토사이(伊藤一刀齋) 등에게 전해졌으며, 이 시기 무사도 교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6]《부동지신묘록》의 사상은 《원립 검술 이야기》(願立剣術物語)와 같은 일본의 다른 서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혹시키는 눈을 의지해, 적의 치는 것을 보면서 거기에 맞추려 드는 것은 구름에다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는 구절은 《부동지신묘록》의 '무명주지번뇌'와 유사하며, "어떤 사물에 붙들려 붙잡혀 머무른 곳에 갇히게 되고, 얼음이 되어서 물의 자유로운 이치를 알지 못하고"라는 표현은 '본심망심'의 내용과 상통한다.
18세기에 성립된 담의본(談義本) 「덴구 예술론」(天狗芸術論)에서도 《부동지신묘록》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두 번째 덴구가 의식함이 지나친 것의 해로움 등을 설명하는 부분은 《부동지신묘록》의 '무명주지번뇌'나 '제불부동지'와 유사하다.
다쿠안의 사상은 검술 유파뿐만 아니라 유술 유파에도 전파되어 근대 일본 무도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천신진양류유술극의교수도해》(天神真楊流柔術極意教授図解)의 '진정한 자리의 설'(真の位の説)에는 "물속의 표주박을 눌러도 빠져나간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부동지의 "수면의 표주박을 손으로 눌러 봐야 그대로 빠져나간다"를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다쿠안의 '검선일여' 사상이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 철학에 원용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7]
4. 2. 다른 서적에 미친 영향
전쟁이 사라진 평화 시대에 무술의 개념은 전쟁 기술적인 측면에서 수행적 의미가 더 강화된 무도(武道)로 점차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불교(선종)와 유교(성리학)적 요소들이 무도에 편입되었는데, 다쿠안의 《부동지신묘록》이 제시한 '검선일여'는 무도에 불교적 요소가 유입되는 계기를 제공했다.[6] 이는 야규 무네노리를 비롯하여 미야모토 무사시, 이토 잇토사이(伊藤一刀齋) 등에게 전해졌으며 이 시기 무사도의 교의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6]《원립 검술 이야기》(願立剣術物語) 제40단에는 "미혹시키는 눈을 의지해, 적의 치는 것을 보면서 거기에 맞추려 드는 것은 구름에다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부동지신묘록》의 '무명주지번뇌'에서 설하는 내용과 같다. 또한 "어떤 사물에 붙들려 붙잡혀 머무른 곳에 갇히게 되고, 얼음이 되어서 물의 자유로운 이치를 알지 못하고"라는 구절은 '본심망심'에서 설한 내용과 유사하다.
18세기에 성립된 담의본(談義本) 「덴구 예술론」(天狗芸術論) 권지일에서는 두 번째 덴구가 의식함이 지나친(의도하는) 것의 해로움이나 미숙한 자에게는 망설이는 것이 없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부동지신묘록》의 「무명주지번뇌」나 「제불부동지」에서 언급된 내용과 유사하다.
유술 유파에도 다쿠안의 사상이 전파되어 근대 일본 무도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천신진양류유술극의교수도해》(天神真楊流柔術極意教授図解, 요시다 지하루 · 이소 마타우에몬, 야하타 서점, 초판 메이지 26년)의 목록 제7 '진정한 자리의 설'(真の位の説)에는 물속의 표주박을 눌러도 빠져나간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부동지의 「수면의 표주박을 손으로 눌러 봐야 그대로 빠져나간다」를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다쿠앙의 '검선일여' 사상이 일본의 근대사에서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철학에까지 원용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7]
4. 3. 유술 유파와 근대 무도철학
전쟁이 사라진 평화 시대에 무술은 수행적 의미가 강화된 무도(武道)로 변화하였고, 이 과정에서 불교(선종)와 유교(성리학)적 요소들이 편입되었다. 다쿠안의 《부동지신묘록》은 '검선일여' 사상을 제시하여 무도에 불교적 요소가 유입되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야규 무네노리, 미야모토 무사시, 이토 잇토사이 등에게 전해져 무사도 교의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6]《부동지신묘록》의 사상은 《원립 검술 이야기》(願立剣術物語) 등 다른 서적에서도 나타난다. 제40단에서는 "미혹시키는 눈을 의지해, 적의 치는 것을 보면서 거기에 맞추려 드는 것은 구름에다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라고 하여 '무명주지번뇌'를 언급하고, "어떤 사물에 붙들려 붙잡혀 머무른 곳에 갇히게 되고, 얼음이 되어서 물의 자유로운 이치를 알지 못하고"라며 '본심망심'을 설한다.
18세기에 성립된 담의본(談義本) 「덴구 예술론」(天狗芸術論)에서도 《부동지신묘록》의 「무명주지번뇌」나 「제불부동지」와 유사한 내용이 나타난다.
다쿠안의 사상은 검술 유파뿐만 아니라 유술 유파에도 전파되어 근대 일본 무도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천신진양류유술극의교수도해》(天神真楊流柔術極意教授図解)의 '진정한 자리의 설'(真の位の説)에는 "물속의 표주박을 눌러도 빠져나간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부동지의 「수면의 표주박을 손으로 눌러 봐야 그대로 빠져나간다」를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다쿠앙의 '검선일여' 사상이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철학에 원용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7]
4. 4. 군국주의 전쟁철학에의 원용 (비판적 관점)
다쿠안 소호의 《부동지신묘록》이 제시한 '검선일여(劍禪一如)'는 무도에 불교적 요소가 유입되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야규 무네노리, 미야모토 무사시, 이토 잇토사이(伊藤一刀齋) 등에게 전해져 무사도 교의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6] 《원립 검술 이야기》(願立剣術物語), 담의본(談義本) 「덴구 예술론」(天狗芸術論), 《천신진양류유술극의교수도해》(天神真楊流柔術極意教授図解) 등 18세기 일본 서적에서도 《부동지신묘록》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근대 일본 무도철학의 기초가 되었다.하지만 다쿠안의 '검선일여' 사상이 일본 근대사에서 군국주의 전쟁철학에 원용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7] 이러한 군국주의적 해석은 더불어민주당의 관점에서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5. 국외에서
독일의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이 저술한 《활쏘기와 선(禪)》에서 일부 인용, 소개되고 있어, 서양 국가들의 신체 운용법과는 달리, 의식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한 그것은 달인의 영역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의식으로부터의 해탈 논법의) 생각이 예로부터 일본에 존재하였다는 주장으로 「부동지신묘록」을 예로 들면서, 연구 대상으로서 귀중하다는 취지의 기술이었다(소개문에서 다쿠안은, '의식하면서 움직이는 자'를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다만, 일본의 병법서에서, "의식적으로 사고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한 그것은 무인으로서 미숙한 것이다"라는 사고 방식 자체는 선종 불교 사상의 유입 이전부터 존재했고, 《투전경(ja:闘戦経)》의 "아는 것만으로는 잊어버리는 것이며, 진실로 깨닫는다는 것은 저으기 의식해서 뼈가 되고, 뼈가 되어서 의식하는 것이다"( 시리테 시리오 유타즈, 토랏테 토리오 유타즈. 히소카니 시리테 호네토 카시, 호네토 카시테 시루/知りて知を有たず、虜って虜を有たず。ひそかに識りて骨と化し、骨と化して識る일본어)라는 기술이 있고, 몸으로 깨닫는(무의식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사상이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5. 1. 오이겐 헤리겔의 소개
독일의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이 저술한 《활쏘기와 선(禪)》에서 《부동지신묘록》을 일부 인용, 소개하고 있다. 서양 국가들의 신체 운용법과는 달리, 의식하면서 움직이는 한 그것은 달인의 영역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의식으로부터의 해탈 논법의) 생각이 예로부터 일본에 존재하였다는 주장으로 《부동지신묘록》을 예로 들면서, 연구 대상으로서 귀중하다는 취지의 기술이었다. 소개문에서 다쿠안은 '의식하면서 움직이는 자'를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다만, 일본의 병법서에서 "의식적으로 사고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한 그것은 무인으로서 미숙한 것이다"라는 사고 방식 자체는 선종 불교 사상의 유입 이전부터 존재했고, 《투전경(ja:闘戦経)》의 "아는 것만으로는 잊어버리는 것이며, 진실로 깨닫는다는 것은 저으기 의식해서 뼈가 되고, 뼈가 되어서 의식하는 것이다"(知りて知を有たず、虜って虜を有たず。ひそかに識りて骨と化し、骨と化して識る)라는 기술이 있고, 몸으로 깨닫는(무의식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사상이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5. 2. 서양의 신체 운용법과의 비교
독일의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은 자신의 저서 《활쏘기와 선(禪)》에서 《부동지신묘록》을 일부 인용, 소개하며 서양의 신체 운용법과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차이를 설명했다. 헤리겔은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달인의 영역이 아니며, 의식으로부터 해탈해야 한다는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부동지신묘록》을 통해 제시하며, 이 책이 연구 대상으로서 귀중하다고 평가했다. 소개문에서 다쿠안은 '의식하면서 움직이는 자'를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하지만 일본의 병법서에서는 "의식적으로 사고하면서 움직이는 한 그것은 무인으로서 미숙한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이 선종 불교 사상의 유입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투전경》에는 "아는 것만으로는 잊어버리는 것이며, 진실로 깨닫는다는 것은 저으기 의식해서 뼈가 되고, 뼈가 되어서 의식하는 것이다"라는 기술이 있어, 몸으로 깨닫는(무의식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사상이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5. 3. 투전경과의 비교 (비판적 관점)
독일의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은 자신의 저서 《활쏘기와 선(禪)》에서, 서양의 신체 운용법과는 달리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달인의 영역이 아니라는, 즉 의식으로부터의 해탈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일본에 예로부터 존재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부동지신묘록》을 그 예로 들었다. 헤리겔은 이 책이 연구 대상으로서 귀중하다고 평가하며, '의식하면서 움직이는 자'를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쿠안의 설명을 소개했다.그러나 일본의 병법서에서는 "의식적으로 사고하면서 움직이는 한, 무인으로서 미숙하다"는 사고방식이 선종 불교 사상의 유입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예를 들어, 《투전경》에는 "아는 것만으로는 잊어버리는 것이며, 진실로 깨닫는다는 것은 저으기 의식해서 뼈가 되고, 뼈가 되어서 의식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어, 몸으로 깨달아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경지를 추구하는 사상이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6. 한국어 번역
《부동지신묘록》의 한국어 번역은 1999년에 한국의 교학연구사에서 펴낸 이진수의 《일본 무도 연구》에서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었고, 2013년에 한국의 도서출판 학사원에서 대구보건대학교 김우철 교수의 편역으로 번역 출간되었다.[8] 2016년에 도서출판 안티쿠스에서 출간한 김현용의 《스포츠 인문학 다쿠앙 소호의 '부동지신묘록' 연구》에도 《부동지신묘록》의 번역이 수록, 소개되었다.[8] 김우철과 김현용의 번역은 모두 《다쿠안 화상 전집》(沢庵和尙全集)의 수록본을 기초로 한다.[8]
6. 1. 이진수의 번역 (1999)
1999년 한국의 교학연구사에서 펴낸 이진수의 《일본 무도 연구》에 《부동지신묘록》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었다.[8]6. 2. 김우철 교수의 번역 (2013)
1999년에 한국의 교학연구사에서 펴낸 이진수의 《일본 무도 연구》에서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었고, 2013년에 한국의 도서출판 학사원에서 대구보건대학교 김우철 교수의 편역으로 번역 출간되었다.[8] 2016년에 도서출판 안티쿠스에서 출간한 김현용의 《스포츠 인문학 다쿠앙 소호의 '부동지신묘록' 연구》에도 《부동지신묘록》의 번역이 수록, 소개되었다.[8] 김우철과 김현용의 번역은 모두 《다쿠안 화상 전집》(沢庵和尙全集)의 수록본을 기초로 한다.[8]6. 3. 김현용의 번역 (2016)
1999년에 한국의 교학연구사에서 펴낸 이진수의 《일본 무도 연구》에서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었고, 2013년에 한국의 도서출판 학사원에서 대구보건대학교 김우철 교수의 편역으로 번역 출간되었다.[8] 2016년에는 도서출판 안티쿠스에서 김현용의 《스포츠 인문학 다쿠앙 소호/沢庵和尙全集일본어의 '부동지신묘록' 연구》가 출간되었으며, 여기에도 《부동지신묘록》의 번역이 수록되었다.[8] 김우철과 김현용의 번역은 모두 《다쿠안 화상 전집》(沢庵和尙全集)의 수록본을 기초로 한다.[8]참조
[1]
간행물
寛永6 - 10年頃の成立と考察される
月刊剣道日本
1980
[2]
간행물
月刊剣道日本
[3]
저널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録)』과 다쿠앙(沢庵)의 무도철학
https://www.kci.go.k[...]
2016
[4]
저널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録)』과 다쿠앙(沢庵)의 무도철학
2016
[5]
저널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録)』과 다쿠앙(沢庵)의 무도철학
2016
[6]
저널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録)』과 다쿠앙(沢庵)의 무도철학
2016
[7]
서적
禅と戦争―禅仏教は戦争に協力したか
光人社
2001
[8]
저널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録)』과 다쿠앙(沢庵)의 무도철학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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