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프레도 파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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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빌프레도 파레토는 1848년 파리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그는 토리노 공과대학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토목 기사로 일하다가 40대 중반에 경제학 연구를 시작했다. 파레토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며 경제학, 특히 후생 경제학 분야에 기여했으며, 파레토 효율성, 파레토 법칙 등의 개념을 제시했다. 또한 사회학 연구를 통해 엘리트 순환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인간의 행위를 논리적 행위와 비논리적 행위로 구분하여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그의 사상은 파시즘과 연관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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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프레도 파레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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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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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빌프레도 프리츠 파레토 |
출생일 | 1848년 7월 15일 |
출생지 | 프랑스 파리 |
사망일 | 1923년 8월 19일 |
사망지 | 스위스 셀리니 |
국적 | 이탈리아 |
학문 분야 | |
분야 | 미시경제학 사회경제학 |
소속 | |
소속 기관 | 로잔 대학교 |
학력 | |
모교 | 토리노 공과대학교 |
학파 및 영향 | |
학파 | 로잔 학파 이탈리아 엘리트주의 학파 |
영향을 준 학자 | 콩트 마키아벨리 스미스 흄 버크 메스트르 몰리나리 모스카 판탈레오니 소렐 스펜서 발라스 |
영향을 받은 학자 | 파슨스 안로소 Alain de Benoist |
주요 업적 | |
업적 | 엘리트 순환 오펠리미티 파레토 분석 파레토 차트 파레토 분포 파레토 효율성 파레토 지수 파레토 보간법 파레토 우선순위 지수 파레토 법칙 정신과 사회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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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빌프레도 파레토는 1848년 파리에서 망명 중이던 이탈리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주세페 마치니를 지지하는 자유주의 혁명가였고, 어머니는 프랑스 여성이었다.[11][7] 1858년 가족이 이탈리아로 돌아온 후, 파레토는 중산층 환경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토리노 폴리테크닉 대학교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토목기사로 일하며 경제학과 사회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7]
파레토는 자유주의를 지지하며 정부의 자유시장 개입을 비판했고,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11] 1889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파레토는 직장을 그만두고 러시아 여성과 결혼했으나, 1902년 아내가 젊은 하인과 도망갔다. 1923년 파레토는 프랑스 여성 장느 레지와 재혼했다.[11]
1893년, 파레토는 레옹 발라스의 뒤를 이어 로잔 대학교 정치경제학 교수가 되었고, 파레토 원리(80-20 법칙)를 발표하는 등 경제학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7] 20세기에 들어서는 경제학에서 사회학으로 관심을 옮겼으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파레토는 조르주 소렐의 초청을 받기도 했고, 베니토 무솔리니를 높이 평가하여 그의 사회학 이론이 파시스트 체제에 이용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40] 말년에는 병중에도 사회학 체계화를 위해 노력하다 1923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1]
2. 1. 초기 생애와 교육
빌프레도 파레토는 1848년 7월 15일 파리에서 제노바 출신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라파엘레 파레토는 이탈리아 토목기사이자 리구리아 출신의 후작이었는데, 주세페 마치니와 같은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처럼 이탈리아를 떠나 망명 생활을 했다.[11][7] 그의 어머니 마리 메테니에르는 프랑스 여성이었다. 파레토의 부모는 1848년 독일 국가 혁명에 열광하여 그에게 빌프리드 프리츠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나, 1858년 가족이 이탈리아로 돌아오면서 빌프레도 프레데리코로 개명했다.[8]어린 시절 파레토는 중산층 환경에서 성장하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페르디난도 피오 로셀리니가 수학 교수로 재직했던 ''Istituto Tecnico Leardi''에서 공부했다.[9] 1869년에는 토리노 폴리테크닉 대학교에서 "고체의 평형에 관한 기본 원리"라는 논문으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7] 이 논문은 훗날 그가 경제학과 사회학에서 평형 분석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파레토는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로마에서 발행된 잡지 ''La Ronda''에 기고가로 참여하기도 했다.[10]
파레토는 이탈리아 국영 철도 회사와 민간 기업에서 토목기사로 일하다가, 40대 중반에 경제학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자유주의를 지지하며 정부의 자유시장 개입을 비판했다. 1886년에는 피렌체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경영학 강사가 되었고, 정부 규제에 대한 불만으로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 1889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파레토는 직장을 그만두고 러시아 여성인 알레산드리나 바쿠니나와 결혼했다.[11]
파레토는 자유주의 혁명가 마치니가 이끄는 청년 이탈리아당의 혁명 운동에 참여하여 당국의 추적을 받았던 아버지 때문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토리노 공과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건축학을 전공하고 철도 회사 기술자로 취직했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정부를 비판하며 정치 활동을 했다. 이로 인해 사회적 지위가 위협받자 회사를 그만두고 스위스에서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순수 경제학의 대가 레옹 발라스를 만나 경제학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고, 1893년 발라스의 후임으로 로잔 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2. 2. 엔지니어에서 경제학자로
졸업 후 몇 년 동안 파레토는 토목기사로 일했는데, 처음에는 이탈리아 국영 철도 회사에서, 나중에는 민간 기업에서 일했다. 그는 산 조반니 발달노 제철소의 관리자였고, 나중에는 이탈리아 제철소의 총책임자가 되었다.[7]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경제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열렬한 자유주의 지지자로서 경력을 시작했으며, 정부의 자유시장 개입에 대한 공격으로 가장 열렬한 영국 자유주의자들을 괴롭혔다. 1886년 피렌체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경영학 강사가 되었다. 피렌체에서의 그의 체류는 정치 활동으로 특징지어졌는데, 그 대부분은 정부 규제 당국에 대한 그의 좌절감에서 비롯되었다. 1889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파레토는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어 직장을 그만두고 러시아 여성인 알레산드리나 바쿠니나와 결혼했다.[11]파레토는 토리노 공과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건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철도 회사에 기술자로 취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정부를 비판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로 인해 사회적 지위가 위협받게 되자 회사를 그만두고 스위스에서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소개로 순수 경제학의 대가 레옹 발라스를 알게 되었고, 발라스의 영향으로 경제학 연구에 몰두했다. 1893년 발라스의 후임으로 로잔 대학교 경제학 강좌 교수로 임명되어 일반균형 이론 (로잔 학파) 발전에 기여하고, 후생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2. 3. 만년과 사회학 연구
1893년 파레토는 스위스 로잔 대학교에서 레옹 발라스의 뒤를 이어 정치경제학 교수직을 맡아 생애의 남은 기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7] 1896년에서 1897년 사이에 그는 부의 분포를 설명하는 파레토 분포를 담은 교과서를 출판했는데, 그는 이것이 "어떤 시대, 어떤 나라의 어떤 인류 사회를 통틀어" 일정 불변의 법칙이라고 믿었다.[7] 1906년 그는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재산의 80%를 소유하고 있다는 유명한 관찰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나중에 조셉 M. 주란에 의해 파레토 원리(80-20 법칙)으로 일반화되었다. 파레토는 개별 사회주의자들과는 원만한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그들의 경제적 사상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는 나중에 그들의 동기에 의구심을 품고 사회주의 지도자들을 국가를 약탈하려는 "떼강도 귀족"으로 규탄했으며, 조반니 조리티 정부가 노동자 파업에 대해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 이탈리아 왕국에서 노동자들의 불안이 증가하면서 그는 반사회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진영으로 돌아섰다.[12] 그의 말년에 이탈리아 파시즘에 대한 그의 태도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13][14]파레토와 과학적 사회학과의 관계는 그가 정치경제학에서 출발하여 전체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체계이자 엄격한 논리적 실험 방법이 없는 실증주의를 비판하는 순간에 전형적인 방식으로 접목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특징과 기여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사회과학의 역사 속에서 파레토의 업적의 운명을 읽을 수 있다.[15] 파레토의 이야기는 또한 지식의 누적 모델에 대한 비판으로서 사회학을 특권화하는 과학 모델의 다학제적 연구의 일부이자 과학의 관계적 모델의 확립을 추구하는 학문의 일부이기도 하다.[16][17]
20세기에 이르러 파레토의 학문적 관심은 경제학에서 사회학으로 옮겨갔으며, 동시에 자유주의적·민주주의적인 사상·운동에 대한 비판을 강화해 나갔다. 이는 그의 정치 활동의 실패나 자유주의·민주주의에 대한 환멸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조르주 소렐에게 초청받은 적도 있다. 소렐의 신봉자였던 파레토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그의 사회학 이론은 파시스트 체제에 이용되는 반동 이론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필리포 투라티가 주재하는 잡지에 기고하는 등[40] 사회주의자와도 교류가 있었고, 무솔리니는 사회주의자 시절에 파레토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말년에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의 체계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했지만, 그 과정에서 1923년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3. 경제학적 업적
파레토는 자유무역을 옹호하여 이탈리아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그의 저술에는 경제학이 본질적으로 수학적이고 자연과학적이라는 레옹 발라스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27] 그는 경제학을 역학에 비유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했으며, 순수(및 응용) 경제학과 순수(및 응용) 역학을 명시적으로 연결하고[28] 두 과학을 관련짓는 대조표를 제시했다.[29][30][31] 파레토는 "로잔 학파"의 지도자였으며, 신고전파 혁명의 2세대를 대표한다. 그의 "기호와 제약"에 대한 접근 방식은 1930년대의 "파레토 부흥" 기간 동안 부활되었고, 그 이후로 이론 경제학에 영향을 미쳤다.[32] 그의 『정치경제학 교과서』(1906)에서는 "목표와 제약"이라는 개별 문제의 해결책 측면에서 평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소비자 이론과 생산자 이론에 에지워스 (1881)의 무차별곡선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그는 현재 "에지워스-보울리" 상자로 알려진 교환 상자를 처음으로 제시했다.[33] 파레토는 현대 미시경제학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요구하는 경제학과 공리주의 철학의 동맹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개념을 통해 사회 전체의 후생의 적정 배분과 효용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경제정책의 이론적 기초를 세우고, 후생경제학의 선구자적 존재가 되었다.
3. 1. 파레토 효율성
파레토는 레옹 발라스의 사상을 반영하여 경제학이 본질적으로 수학적이고 자연과학적이라고 생각했다.[27] 그는 경제학을 역학에 비유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했으며, 순수(및 응용) 경제학을 순수(및 응용) 역학과 명시적으로 연결시켰다.[28] 파레토는 "로잔 학파"의 지도자였으며, 신고전파 혁명의 2세대를 대표한다.[32]파레토는 최초로 기수적 효용을 없애고, 서수적 효용의 관점에서 경제적 평형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34] 즉, 사람이 이것이나 저것을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 필요가 없고, 단지 그가 이것의 X를 저것의 Y보다 선호한다는 것만 알면 된다는 것이다. 효용은 선호 순위였다. 파레토는 "선"을 측정할 수 없다고 말하며, 파레토 최적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했다. 이는 누군가를 더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다른 누구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없는 경우 시스템이 최대 경제적 만족을 누리고 있다는 개념이다. 파레토 최적성은 복지 경제학과 게임 이론에서 널리 사용된다. 표준 정리는 완전 경쟁 시장이 파레토 최적인 부의 분포를 만든다는 것이다.[35]
파레토는 왈라스의 일반균형이론을 발전시켜, 자원의 생산 및 소비에 있어 최적이고 극한의 상태를 개념적으로 제시한 “파레토 효율성(파레토 최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일정량의 자원을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경우에, 개인의 효용(만족도)이 다른 사람의 효용을 손상시키지 않고 극한까지 높아진 상태(더 이상 교섭의 여지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파레토 효율성”이란 자원의 효율적 이용 원리를 말할 수 있다.
3. 2. 파레토 법칙
1906년 파레토는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재산의 80%를 소유하고 있다는 유명한 관찰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나중에 조셉 M. 주란(Joseph M. Juran)에 의해 파레토 원리(Pareto principle), 즉 80-20 법칙(80–20 rule)으로 일반화되었다.[12] 파레토는 모든 국가와 시대에서 소득과 부의 분포가 매우 불균형적이며, 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관찰된 사회가 다음과 같은 규칙적인 로그 패턴을 따른다고 주장했다.[36]:
여기서 N은 x보다 높은 부를 가진 사람들의 수이고, A와 m은 상수이다. 수년에 걸쳐 파레토 법칙은 관찰된 데이터와 매우 근접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36]
파레토 차트는 특수한 유형의 히스토그램으로, 문제의 원인을 가장 심각한 것부터 가장 경미한 것까지 순서대로 보여주는 데 사용된다. 이는 파레토 원리 또는 80-20 법칙을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통계적 도구이다. 파레토 분포는 파레토 법칙의 수학적 실현으로 사용되는 확률 분포이다.[36]
파레토는 수리경제학의 실증적 방법(통계 분석)을 사용하여 경제사회에서의 부의 불균등 분포(소득 분포의 불균형)를 밝혔다. 이것은 파레토 법칙으로 불린다. 이 법칙은 상위 20%의 고소득자에게 사회 전체 부의 80%가 집중되고, 나머지 20%의 부가 하위 80%의 저소득자에게 배분된다는 것이다.
3. 3. 후생경제학
파레토 차트는 문제의 원인을 가장 심각한 것부터 가장 경미한 것까지 순서대로 보여주는 특수한 유형의 히스토그램이다. 이는 파레토 원리 또는 80-20 법칙을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통계적 도구이다. 파레토 분포는 파레토 법칙의 수학적 실현으로 사용되는 확률 분포이고, 오펠리미티는 순전히 경제적 만족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파레토 지수는 소득 분포의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표이다.[36] 파레토는 모든 국가와 시대에서 소득과 부의 분포가 매우 불균형적이며, 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파레토 효율성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구별력이 없지만, 칼도르-힉스 효율성으로도 알려진 잠재적 파레토 효율성의 개념은 더욱 구별력이 있으며 경제학에서 널리 사용된다. 『옥스퍼드 레퍼런스』에 따르면, 파레토 원리는 그 가정이 경험적으로 의문스럽고, 가치 판단을 포함할 수 있으며,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복지 경제학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원의 초기 분배에 대한 침묵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회학자들 또한 파레토 복지 경제학을 비판한다.[37]
파레토는 왈라스의 일반균형이론을 발전시켜, 자원의 생산 및 소비에 있어 최적이고 극한의 상태를 개념적으로 제시한 “파레토 효율성(파레토 최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일정량의 자원을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경우에, 개인의 효용(만족도)이 다른 사람의 효용을 손상시키지 않고 극한까지 높아진 상태(더 이상 교섭의 여지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파레토 효율성”이란 자원의 효율적 이용 원리를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수리경제학의 실증적 방법(통계 분석)을 사용하여 경제사회에서의 부의 불균등 분포(소득 분포의 불균형)를 밝혔다. 이것은 파레토 법칙으로 불린다. 이 법칙은 상위 20%의 고소득자에게 사회 전체 부의 80%가 집중되고, 나머지 20%의 부가 하위 80%의 저소득자에게 배분된다는 것이다.
파레토는 이러한 개념을 통해 사회 전체의 후생의 적정 배분과 효용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경제정책을 이론적으로 기초를 세우고, 후생경제학의 선구자적 존재가 되었다.
4. 사회학적 업적
파레토는 1893년 스위스 로잔 대학교에서 레옹 발라스의 뒤를 이어 정치경제학 교수직을 맡아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렀다.[7] 1906년에는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재산의 80%를 소유하고 있다는 유명한 관찰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훗날 조셉 M. 주란에 의해 파레토 원리(80-20 법칙)로 일반화되었다. 파레토는 사회주의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그들의 경제적 사상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주의 지도자들을 "떼강도 귀족"으로 규탄하고, 이탈리아 정부가 노동자 파업에 강경하게 대처하지 않는 것을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은 파레토를 반사회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입장으로 이끌었다.[12]
파레토는 정치경제학에서 출발하여 실증주의를 비판하며 사회학과의 관계를 맺었다. 그는 사회과학의 역사 속에서 파레토의 업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관심받고 있다고 보았다.[15] 또한, 파레토의 연구는 과학의 관계적 모델 확립을 추구하는 다학제적 연구의 일부였다.[16][17]
파레토는 말년에 『일반사회학 논고』(1916)를 위한 자료를 수집했으며, 그의 마지막 저서는 『일반사회학 개론』(1920)이다. 그는 초기의 종합사회학에는 없는 새로운 시각에 서서 독자적인 사회학 이론을 구축한 점에서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켐과 함께 중요한 사회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4. 1. 엘리트 순환 이론
파레토는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저서인 『일반사회학 논고』(1916)(『마음과 사회』, 1935년 출판)를 위해 자료를 수집하면서, 사회학에서 최초의 사회 순환 이론인 엘리트 순환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는 "역사는 귀족들의 무덤이다"라는 말로 유명하다.[18]파레토는 수리 경제 이론이 개인의 행동을 항상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학으로 눈을 돌렸다. 예측할 수 없거나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요인이 개입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회학은 많은 사회적 행동이 비논리적이며, 많은 개인적 행동이 비합리적인 행동에 허위의 논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특정한 "잔여(residues)"와 이러한 잔여에서 파생된 "유도(derivations)"에 의해 이끌린다고 가르쳤다. 이 중 더 중요한 것은 보수주의와 위험 감수와 관련이 있으며, 인류 역사는 지배 엘리트 내에서 이러한 감정의 번갈아 가는 우세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배 엘리트는 보수주의로 강하게 권력을 잡지만 점차 "여우" 혹은 투기꾼의 철학으로 변한다. 그 결과 재앙이 발생하고 보수주의로 회귀한다. "사자"의 사고방식이 이어진다. 파레토는 힘을 사용하면 이 순환이 깨질 수 있지만, 엘리트는 약해지고 인도주의적이 되어 폭력을 기피한다고 말한다.[19]
파레토의 사회학은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 C. 호만스(George C. Homans)와 로렌스 조셉 헨더슨(Lawrence Joseph Henderson) 등에 의해 미국에 소개되었고,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20] 미국의 역사가 버나드 드보토(Bernard DeVoto)는 1930년대에 파레토의 사상을 미국에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21]
파레토는 실증주의 방법론에 기반하여 사회 분석을 수행했다. 그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전체 사회의 체계 및 변화의 법칙을 규명하려고 했다.
특히, 경제학에서의 일반균형 개념을 사회학에 응용하여, 전체 사회는 성격이 다른 엘리트 집단이 번갈아 지배자로 교체되는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엘리트의 순환"이라는 개념을 제기했다. 파레토는 두 종류의 엘리트가 통치자·지배자로 계속 교체된다는 순환사관(역사는 비슷한 사건을 반복한다는 생각)에 기반하여, 사회진화론이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을 비판했다.
또한, 인간의 행위를 '''논리적 행위'''(합리적 행위)와 '''비논리적 행위'''(비합리적 행위)로 분류하고, 사회학의 주요 분석 대상은 비논리적 행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즉, 현실의 인간은 감정·욕구 등의 심리적 유인에 따라 행동하는 비논리적 경향이 강하며, 인간의 비논리성이 사회의 구조를 규정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행위론은 탈콧 파슨스의 사회체계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4. 2. 논리적 행위와 비논리적 행위
파레토는 수리 경제 이론이 개인의 행동을 항상 예측하지는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고자 사회학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예측할 수 없거나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요인이 개입한다고 믿었다. 파레토의 사회학은 많은 사회적 행동이 비논리적이며, 많은 개인적 행동이 비합리적인 행동에 허위의 논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특정한 "잔여(residues)"와 이러한 잔여에서 파생된 "유도(derivations)"에 의해 이끌린다고 가르쳤다.[19] "잔여"는 지속적이고 의심받지 않는 사회적 습관, 신념 및 가정인 비합리적인 것이고, "유도"는 그것에 대한 설명, 정당화 및 합리화이다.[21]파레토는 인간의 행위를 '''논리적 행위'''(합리적 행위)와 '''비논리적 행위'''(비합리적 행위)로 분류하고, 경제학에서의 분석 대상을 인간의 논리적 행위에 두었던 것에 반해, 사회학의 주요 분석 대상은 비논리적 행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즉, 현실의 인간은 감정·욕구 등의 심리적 유인에 따라 행동하는 비논리적 경향이 강하며, 더욱이 인간의 비논리성이 사회의 구조를 규정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행위론은 이후 미국의 사회학자 탈콧 파슨스의 사회체계이론에 영향을 주었다.[20]
4. 3. 파시즘과의 관계
레나토 치릴로는 파레토가 운동 초기부터 이를 지지했기 때문에 파레토가 파시즘의 선구자로 자주 여겨져 왔다고 적었다. 치릴로는 이 해석에 동의하지 않고, 파레토가 사적인 편지에서 파시즘을 비판했다고 주장했다.[22] 파레토는 민주주의가 환상이며 통치 계급이 항상 등장하여 자신을 부유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핵심 질문은 통치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통치했는가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국가의 극적인 축소를 요구했고, 베니토 무솔리니의 통치를 인식된 순수한 경제적 힘을 해방하기 위한 이러한 최소 국가로의 전환으로 환영했다.[23]젊은 시절 무솔리니는 1904년 로잔 대학교에서 파레토의 강의를 들었다. 무솔리니가 사회주의에서 엘리트주의의 한 형태로 이동한 것은 파레토의 사상 때문이라고 주장되어 왔다.[24] 전기 작가 프란츠 보르케나우는 무솔리니가 총리직 초기 파레토의 정책 사상을 따랐다고 주장했다.[25] 칼 포퍼는 파레토를 "전체주의 이론가"라고 불렀다.[26] 치릴로에 따르면, 포퍼의 출판된 저술에는 반파시즘 계에서 당시 일반적이었지만 의심스러운 판단을 반복하기 전에 파레토를 자세히 읽었다는 증거가 없다.[13]
5. 주요 저서
- Cours d'économie politique professé à l'université de Lausanne프랑스어 (로잔 대학교 강의 경제 정책), 1896–97. ([https://web.archive.org/web/20160407212541/http://www.institutcoppet.org/wp-content/uploads/2012/05/Cours-d%C3%A9conomie-politique-Tome-I-Vilfredo-Pareto.pdf 제1권], [https://web.archive.org/web/20180128205541/http://www.institutcoppet.org/wp-content/uploads/2012/05/Cours-d%C3%A9conomie-politique-Tome-II-Vilfredo-Pareto.pdf 제2권])
- Les systèmes socialistes프랑스어 (사회주의 체제), 1902. ([https://archive.org/details/LesSystmesSocialistesPareto/page/n5/mode/2up 제1권], [https://archive.org/details/dli.ernet.286973 제2권])
- Manuale di economia politica con una introduzione alla scienza socialeit (정치경제학 교재 사회과학 서론), 1906.
- Trattato di sociologia generaleit (일반 사회학 논고), G. Barbéra, 피렌체, 1916. ([https://archive.org/details/ParetoTrattatoDiSociologiaGeneraleVol1 제1권], [https://archive.org/details/ParetoTrattatoDiSociologiaGeneraleVol2/page/n1/mode/2up 제2권])
- Compendio di sociologia generaleit (''일반 사회학 논고''의 요약본), Barbèra, 피렌체, 1920.

- Bo Gabriel Montgomery와 함께. Considérations sur la politique financière d'aujourd'hui et spécialement sur la situation financière et économique de la Suisse프랑스어 (오늘날의 재정 정책, 특히 스위스의 재정 및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Attinger Frères, 1919.[38]
- Fatti e teorieit (사실과 이론), 1920. (이전에 출판된 기사 모음과 독창적인 에필로그)
- Trasformazione della democraziait (민주주의의 변혁), 1921. (이전에 출판된 기사 모음과 독창적인 부록)
- The Mind and Society영어 (''Trattato di sociologia generale'' 번역), 뉴욕, Harcourt, Brace and Company, 1935. ([https://archive.org/stream/mindsocietytratt01pare#page/n9/mode/2up Vol. I], [https://archive.org/details/TheMindAndSocietyVolIii Vol. II], [https://archive.org/details/in.ernet.dli.2015.166857 Vol. III], [https://archive.org/stream/mindsocietytratt04pare#page/n7/mode/2up Vol. IV])
- A Treatise on General Sociology영어 (일반 사회학 개론), 미네소타 대학교 출판부, 1980 (''마음과 사회'' 요약; ''Compendio di sociologia generale'' 번역).
- Sociological Writings영어 (사회학 저술), Praeger, 1966 (주요 저술 발췌 번역).
- Manual of Political Economy영어 (정치 경제학 개론), 오거스터스 M. 켈리, 1971 (''Manuale di economia politica con una introduzione alla scienza sociale''의 1927년 프랑스어판 번역).
- The Transformation of Democracy영어 (민주주의의 변혁), Transaction Books, 1984 (''Trasformazione della democrazia'' 번역).
- The Rise and Fall of the Elites: An Application of Theoretical Sociology영어 (엘리트의 부상과 몰락: 이론 사회학의 적용), Transaction Publishers, 1991 (''Un applicazione di teorie sociologiche'' 에세이 번역).
- Cours d'Economie Politique영어 (경제학 강의), Laussanne, 1896.
- Trattato di sociologia generale영어 (일반 사회학 개론), 1917-19.
- 빌프레도 파레토(기타가와 다카요시, 이타쿠라 다쓰후미, 히로타 아키라 역) 社会学概論일본어 (사회학 개론) (현대사회학체계·青木書店) ISBN 425087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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