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태
1. 개요
서종태는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경신환국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검열, 대사간,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여러 차례 환국과 복직을 반복하며 1719년에 사망했다. 김창집, 이이명 등과 친분이 있었으며, 그의 가족 관계는 고조부 서성, 증조부 서경주, 조부 서정리, 부 서문상, 모 이명한의 딸, 부인 이훤의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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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서종태 |
|---|---|
| 원어명 | 徐宗泰 |
| 직책 | 조선의 영의정 |
| 자 | 노망(魯望) |
| 호 | 만정(晩靜)·서곡(瑞谷)·송애(松厓) |
| 시호 | 문효(文孝) |
| 국적 | 조선 |
| 성별 | 남성 |
| 출생일 | 1652년 |
| 사망일 | 1719년 |
| 본관 | 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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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년 사망 -
파루크시야르
파루크시야르는 1713년부터 1719년까지 무굴 제국의 황제였으며, 사이이드 형제의 지원으로 황제가 되었으나, 그의 통치 기간은 반란과 내부 갈등, 그리고 제국 쇠퇴를 가속화시킨 정책 결정으로 특징지어진다. -
1719년 사망 -
조지프 애디슨
조지프 애디슨은 18세기 영국의 수필가, 극작가, 정치가로서, 《태틀러》와 《스펙테이터》를 창간하여 영국 수필 문학의 황금기를 열었으며, 《카토》 등의 희곡을 발표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
1652년 출생 -
윌리엄 3세
윌리엄 3세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왕이었으며, 명예 혁명을 통해 왕위에 올라 프랑스의 팽창을 막고 잉글랜드 의회 권한을 강화했으며, 대동맹 전쟁을 이끌고 잉글랜드 은행 설립을 지원하다 낙마 사고로 사망했다. -
1652년 출생 -
카미유 도스튄 드 탈라르 공작
카미유 도스튄 드 탈라르 공작은 프랑스의 귀족, 외교관, 군인으로, 군 복무와 잉글랜드 대사 역임 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포로로 잡혔다가 귀국하여 공작으로 승작되고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숙종 때 경신환국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기사환국으로 잠시 벼슬에서 물러났으나, 갑술환국으로 복귀하여 영의정까지 역임했다.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민진후, 민진원, 홍치중, 이유, 이여 등과 친분을 유지했다.
관직 생활 동안, 홍문관 정자, 수찬, 헌납, 교리, 이조좌랑, 지평, 부교리, 부응교, 집의, 사간, 응교, 승지, 사간원대사간, 이조참의,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 예조참판, 판결사, 공조참판,지관사, 홍문관대제학, 호조참판, 좌참찬, 예조판서, 의정부우참찬, 예문관제학, 호조판서, 공조판서, 의정부좌참찬,홍문관제학, 사헌부대사헌, 한성부판윤, 동지사, 형조판서, 이조판서, 지돈녕부사, 우참찬, 우의정, 좌의정, 판부사, 판중추부사, 영의정, 영사, 행판중추부사, 도제조 등을 역임했다.
2.1. 출생과 가계
서종태의 고조부는 서성(徐渻), 증조부는 서경주(徐景주)이다. 할아버지는 서정리(徐貞履), 아버지는 서문상(徐文尙)이다. 어머니는 이명한의 딸이며, 부인은 이훤의 딸이다. 슬하에 장남 서명륜과 차남 서명균을 두었다.
2.2. 경신환국과 등용 (1680년)
숙종 때 경신환국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홍문관 정자, 홍문관 저작, 홍문관 박사 등 옥당을 지내고, 수찬, 헌납, 교리, 이조좌랑, 지평, 부교리, 부응교, 집의, 사간, 응교 등 대간과 옥당, 청요직을 거쳐 승지와 대사간을 지냈다.
2.3. 관직 생활과 기사환국 (1689년)
숙종 때 경신환국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홍문관 정자, 홍문관 저작, 홍문관 박사 등 옥당을 지내고, 수찬, 헌납, 교리, 이조좌랑, 지평, 부교리, 부응교, 집의, 사간, 응교 등 대간과 옥당, 청요직을 거쳐 승지와 사간원대사간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기사환국으로 벼슬에서 퇴출되었다.
2.4. 갑술환국과 복귀 (1694년)
기사환국으로 벼슬에서 퇴출되었지만, 갑술환국 이후 사간원대사간으로 복직했다. 이후 이조참의,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다시 승지와 이조참의, 대사성을 했다. 사헌부대사헌, 부제학, 이조참판, 예조참판, 판결사를 거쳐 다시 사헌부대사헌, 홍문관부제학, 이조참판, 성균관대사성, 공조참판, 예조참판을 역임하고 지관사에 올랐다.
2.5. 숙종 후반기 관직 활동 (1694년 ~ 1719년)
갑술환국 이후 사간원대사간으로 복직하여, 이조참의,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을 거쳤다. 다시 승지와 이조참의, 대사성을 역임하고, 대사헌, 부제학, 이조참판, 예조참판, 판결사를 거쳐 사헌부대사헌, 홍문관부제학, 이조참판, 성균관대사성, 공조참판, 예조참판을 역임했다. 지관사를 거쳐 사헌부대사헌, 홍문관대제학, 호조참판, 좌참찬, 대제학, 예조판서, 홍문관대제학, 의정부우참찬, 예문관제학, 호조판서, 공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좌참찬을 역임했다.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사헌부대사헌, 한성부판윤, 홍문관제학, 공조판서, 동지사,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공조판서, 홍문관제학, 형조판서, 이조판서, 지사를 역임했다. 공조판서, 지돈녕부사, 우참찬, 한성부판윤, 우의정, 좌의정, 판부사, 판중추부사, 좌의정, 영의정, 영사, 행판중추부사, 영의정, 좌의정, 판부사, 판중추부사, 영의정, 도제조, 판중추부사, 행판중추부사를 거쳐 1719년에 별세하였다. 그는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민진후, 민진원, 홍치중, 이유, 이여 등과 친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
| 고조부 | 서성 |
| 증조부 | 서경주 |
| 조부 | 서정리 |
| 부친 | 서문상 |
| 모친 | 이명한의 딸 |
| 부인 | 이훤의 딸 |
| 장남 | 서명륜 |
| 차남 | 서명균 |
4. 역임 관직
숙종 때 경신환국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홍문관 정자, 홍문관 저작, 홍문관 박사, 수찬, 헌납, 교리, 이조좌랑, 지평, 부교리, 부응교, 집의, 사간, 응교,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대사헌, 이조참판, 예조참판, 판결사, 공조참판, 지관사, 홍문관대제학, 호조참판, 좌참찬, 예조판서, 의정부우참찬, 예문관제학, 호조판서, 공조판서, 의정부좌참찬, 홍문관제학, 한성부판윤, 동지사, 형조판서, 이조판서, 홍문관제학, 지사, 지돈녕부사, 우참찬, 우의정, 좌의정, 판부사, 판중추부사, 영의정, 영사, 행판중추부사, 도제조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기사환국으로 벼슬에서 퇴출되었다가 갑술환국 이후 복직하였다.
4.1. 문과 급제 이후
경신환국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홍문관 정자, 홍문관 저작, 홍문관 박사 등 옥당을 지냈다. 수찬, 헌납, 교리, 이조좌랑, 지평, 부교리, 부응교, 집의, 사간, 응교 등 대간과 옥당, 청요직을 거쳐 승지와 대사간을 역임했지만, 기사환국으로 벼슬에서 퇴출되었다. 갑술환국 이후 대사간으로 복직해, 이조참의, 성균관대사성, 대사간, 홍문관부제학을 거쳤다. 다시 승지와 이조참의, 대사성을 하고 대사헌, 부제학, 이조참판, 예조참판, 판결사를 거쳤다. 다시 대사헌과 홍문관부제학, 이조참판과 성균관대사성, 공조참판, 이조참판, 예조참판,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지관사를 하였다. 대사헌과 홍문관대제학, 호조참판을 거쳐 이후 좌참찬, 대제학, 예조판서를 거쳤다. 다시 홍문관대제학, 의정부우참찬, 예문관제학, 호조판서, 공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좌참찬을 거쳤다.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에 이어 대사헌과 한성부판윤, 홍문관제학, 공조판서, 동지사, 형조판서 등을 하였다. 다시 한성부판윤과 이조판서를 거쳐 공조판서, 홍문관제학을 겸하고, 공조판서, 형조판서, 이조판서, 지사를 하다가 공조판서, 지돈녕부사, 우참찬, 한성부판윤을 거쳤다. 이후 우의정이 되고 이후 좌의정을 하다 판부사가 되었는데 계속하여 우의정과 판중추부사를 다시 하고, 좌의정을 다시 하게 된다. 이후 판부사로 전직하며, 판중추부사로 있다가 다시 좌의정이 되고 이후 영의정이 되었다가 다시 좌의정으로 전직하였다. 그랬다가 이후 영의정으로 다시 임명되고, 잠깐 영사로 물러났다가 다시 영의정이 된다. 이후 행판중추부사로 물러났다가 이후 다시 영의정이 된다. 이후 다시 좌의정으로 전직되었다. 이후 판부사로 물러나, 판중추부사로 있다가, 다시 영의정이 되고, 도제조를 겸했다. 이후 판중추부사로 물러나고, 행판중추부사로 있다가 1719년에 별세한다. 그는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민진후, 민진원, 홍치중, 이유, 이여 등과 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