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크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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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크 크룬은 은퇴한 미국의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와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다. 1991년 뉴욕 메츠에 지명된 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신시내티 레즈, 콜로라도 로키스를 거쳐 2004년 일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 입단했다. 200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센트럴 리그 세이브 1위를 차지했으며, 2011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고 은퇴했다. 일본 프로 야구에서는 최고 구속 162km/h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로 활약했으며, 2008년 최다 세이브 투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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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크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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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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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구원 투수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출생일 | 1973년 4월 2일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브롱크스 |
선수 경력 (MLB) | |
데뷔 리그 | MLB |
데뷔 날짜 | 1995년 7월 7일 |
데뷔 팀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최종 리그 | MLB |
최종 날짜 | 2004년 6월 29일 |
최종 팀 | 콜로라도 로키스 |
팀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5년, 1997년–1998년) 신시내티 레즈 (1998년) 콜로라도 로키스 (2004년) |
통산 성적 | 승패: 0승 2패 평균 자책점: 7.76 탈삼진: 23 |
선수 경력 (NPB) | |
데뷔 리그 | NPB |
데뷔 날짜 | 2005년 4월 2일 |
데뷔 팀 |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
최종 리그 | NPB |
최종 날짜 | 2010년 10월 8일 |
최종 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팀 |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005년–200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년–2010년) |
통산 성적 | 승패: 14승 18패 평균 자책점: 2.68 탈삼진: 417 세이브: 177 |
수상 | |
수상 내역 | 일본 시리즈 우승 (2009년) |
기타 정보 | |
고등학교 | 섀도우 마운틴 고등학교 |
드래프트 | 1991년 드래프트 2라운드 |
2. 선수 경력
2. 1. 메이저 리그 시대
1991년 그는 뉴욕 메츠에 의해 전체 72순위로 지명되었다. 메츠는 1993년 그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했는데, 이는 이전에 프랭크 세미나라를 데려오기 위한 트레이드에서 추후 지명 선수에 해당했다.[1] 1995년 7월 7일, 크룬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 1998년 4월, 파드리스는 버디 카일을 받고 크룬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했다.[2]크룬은 팔꿈치 수술 후 은퇴했고 2001년과 2002년에는 어떤 수준의 야구도 하지 않았다. 은퇴 후 마이크 부처 코치의 매형이 공원에서 투구 레슨을 하는 그를 보고 2003년 애너하임 에인절스 조직에 합류했다.[3] 1991년 드래프트 2라운드 72순위로 뉴욕 메츠에 입단했다.[9] 강속구 투수로 알려졌으며, 프로 5년 차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2A 멤피스 소속 당시 최고 구속 101mph(약 163km/h)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종종 160km/h를 기록했지만, 제구력이 좋지 않았고,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메이저 리그에서 부름을 받지 못하고 일본에서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2004년 11월 26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입단이 발표되었다.
2. 1. 1. 마이너 리그 시절
1991년 그는 뉴욕 메츠에 의해 전체 72순위로 지명되었다. 메츠는 1993년 그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했는데, 이는 이전에 프랭크 세미나라를 데려오기 위한 트레이드에서 추후 지명 선수에 해당했다.[1]2. 1. 2.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5, 1997–1998)
1995년 7월 7일, 크룬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2. 1. 3. 신시내티 레즈 (1998)
1998년 4월, 파드리스는 버디 카일을 받고 크룬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했다.[2]크룬은 팔꿈치 수술 후 은퇴했고 2001년과 2002년에는 어떤 수준의 야구도 하지 않았다. 은퇴 후 마이크 부처 코치의 매형이 공원에서 투구 레슨을 하는 그를 보고 2003년 애너하임 에인절스 조직에 합류했다.[3]
2. 1. 4. 콜로라도 로키스 (2004)
요약이 비어있고, 원본 소스 또한 비어있기 때문에 주어진 정보를 기반으로 내용을 생성할 수 없습니다.2. 2. 일본 프로 야구 시대
2005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입단했다. 2007년 시즌 후 크룬과 베이스타스는 새로운 계약 조건에 합의하지 못했고, 결국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크룬은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했는데, 여기에는 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주전 선수였던 세스 그레이싱어와 알렉스 라미레스와 같은 두 명의 비 일본인 자유 계약 선수가 포함되었다.[10][11]2008년, 크룬은 41세이브로 센트럴 리그 세이브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4] 그는 또한 자신의 최고 기록인 시속 162km를 갱신했다.
2. 2. 1.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005–2007)
크룬은 2005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입단했다. 2007년 시즌 후 크룬과 베이스타스는 새로운 계약 조건에 합의하지 못했고, 결국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크룬은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했는데, 여기에는 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주전 선수였던 세스 그레이싱어와 알렉스 라미레스와 같은 두 명의 비 일본인 자유 계약 선수가 포함되었다.[10][11]2005년에는 우시지마 가즈히코의 지도 아래 투구 폼을 개조했다. 무게 중심을 축발에 남겨두고 던지도록 한 것으로, 이 개조를 통해 오랜 숙제였던 제구력이 개선되었다. 처음에는 셋업으로 기용되었지만, 사사키 가즈히로가 이탈한 것을 계기로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되었다. 이 해의 등장 테마곡으로는 사적으로 면식이 있던 대디 양키의 레게톤 음악인 "Gasolina"를 사용했다(선곡은 스타디움 DJ인 구리하라 하루히사 ).[10]
처음으로 9회에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했을 때에는 사사키의 등판을 기대하고 있던 팬들은 조용해졌지만, 사사키는 언론 앞에서 "크룬을 응원해 주세요"라고 배려했고, 크룬에게도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 날부터 수호신으로 마운드에 오르는 크룬에게는 환호가 쏟아졌고, 후에 "그것(사사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라고 회상했다.[10]
이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에 온 처음에는 사사키에게 많은 보살핌을 받았으며, 자신이 마이너 리그에 소속되어 있었을 때 메이저에서 활약했던 사사키를 존경하여 "사사키상"이라고 존칭으로 불렀으며 "나는 사사키상이 돌아올 때까지 스토퍼를 열심히 할 뿐이야!"가 입버릇이었다고 한다. 일본 야구계를 떠난 후에도, 일본에서의 6년간 가장 영향을 받은 인물로 우시지마와 사사키의 이름을 꼽았으며, 그들 덕분에 활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11] 사사키는 클로저를 맡고 있었지만, 차츰 구원에 실패하는 기회가 많아져, 2005년 8월에 고향인 센다이에서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했는데, 그 때 눈물을 흘리며 마운드를 내려가는 사사키에게 가장 먼저 달려갔다.[10]
2006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정착했다. 그러나 9월 7일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시모노세키 구장)에서 왼쪽 둔부를 부상, 12일에 등록 말소되었다. 등록 말소는 일본에 온 지 2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부상 후 9월 20일의 지바 롯데 마린스전(이스턴 리그)에서 등판, 기시모토 히데키→크룬→마쓰이에 다쿠히로→오카모토 나오야의 릴레이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참고로, 크룬이 쇼난 시렉스에서 등판한 것은 이 1경기뿐이다.[10]
2007년에는 팀의 회복세에 힘입어 개막부터 호조를 유지했다. 내전근 통증이나 고관절 통증 등을 안고 시즌 후반에는 체력이 떨어졌지만, 3승 1패 31세이브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해의 팀은 크룬이 등판한 경기는 39승 3패 1무로 좋은 성적을 거두어 "크룬이 던지면 팀이 이긴다"는 징크스가 생겼다. 시즌 최종 등판이 된 10월 8일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3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161km/h를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주었고, 경기 후의 히어로 인터뷰에서도 "내년에도 베이스타스의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하고 싶다"며 눈물로 말했다.[10]
그러나, 계약 협상에서 "2009년까지 은퇴"라고 선언하고, 요코하마의 얼굴·클로저로서 연봉 4억 엔·2년 계약 등을 요구했다. 이에 구단이 맞서 크룬의 부상(유리 연골)을 스포츠 닛폰지에 유출하여 낮은 연봉을 요구하는 등 갈등이 심화되어, 요코하마 퇴단이 결정적이 되었다. 11월 30일자로 자유 계약이 공시되자, 12월 4일에는 홈페이지에 도쿄 돔 사진이 게재되었고, 이 시점에서 요코하마 퇴단·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이 결정되었다.[10]
12월 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했음을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1년이며 구단 측이 2년간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을 갖는다. 계약금은 5000만 엔이며 연봉은 3억 엔(금액은 모두 추정). 등번호는 요코하마 시절과 같은 '''42'''가 되었다.[10]
2. 2. 2.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2010)
2008년, 크룬은 41세이브로 센트럴 리그 세이브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4] 2008년에는 선발로 복귀하는 우에하라 고지를 대신하여 마무리 투수를 맡았다. 4월 3일 주니치 드래건스전(도쿄 돔)에서 이적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4월 27일 한신 타이거스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9회말 1점 리드를 지키기 위해 등판했으나 만루에서 아라이 타카히로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이 때 볼넷 판정을 놓고 도모요세 마사토에게 폭언을 해 '''경기 종료 후 퇴장 처분'''을 받았다. 9월 13일 야쿠르트전에서는 구단 신기록인 33세이브를 올렸다. 우승이 결정된 10월 10일 야쿠르트전에서는 9회말 2아웃에서 등판하여 아오키 노리치카를 2구 만에 2루 땅볼로 처리하며 우승 결정전을 마무리했다. 이 시즌에는 41세이브를 올리며, 일본 진출 4시즌 만에 첫 최다 세이브 투수 타이틀을 획득, 이적 첫 해에 우승에 기여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최다 세이브 투수가 배출된 것은 1993년의 이시게 히로시 이후 15년 만이었다.2009년에는 부상으로 고생하며 여러 차례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지만, 46경기 등판하여 1승 3패 27세이브, 평균자책점 1.26으로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피홈런은 1개, 자책점은 7점으로 억제했다. 9월 1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등판 전에 유니폼을 잊어버려 고다 이사오 (1군 투수 코치)의 등번호 72번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12].[9월 23일]] 주니치전에서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으며, 본인은 2년 연속 우승 투수가 되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도 수호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7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0년에는 여름에 부상으로 이탈한 데다, 피홈런이 5개, 자책점이 24점으로 모두 전년보다 크게 증가하는 등 부진한 경기가 늘었다. 7월 18일 요코하마전에서는 3타석 연속 볼넷 후 브렛 하퍼에게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등, 자신의 난조로 인해 승리를 놓치는 경기가 눈에 띄게 늘었다. 또한 8월 18일에는 나고야 돔에서의 경기 전 훈련 중에 "침을 뱉었다"며 팬에게 격분하는 트러블이 있었다[13] . 9월에 들어서면서 세이브가 걸린 최종회에서 난조를 보이면 중간 강판당하고, 야마구치 데쓰야나 고치 다이스케 등의 셋업 투수가 마무리 투수를 맡는 경기도 많아졌다. 시즌 최종전인 10월 8일 야쿠르트전에서는 이기면 2위, 지면 3위가 되는 상황에서 4-3으로 앞선 9회초에 등판했으나, 2아웃에서 하타케야마 가즈히로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했고, 10회초에는 실책과 볼넷으로 2명의 주자를 출루시키고 강판되었다. 이후 등판한 다카기 야스나리가 가와모토 료헤이에게 결승 3점 홈런을 허용하며 패배, 시즌 3위로 마감했다[14] . 최종적으로는 25세이브를 올렸지만, 평균자책점은 4점대로 크게 악화되어 시즌을 마쳤다. 거듭된 구원 실패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팀은 스트레이트 2연승으로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지만, 마무리는 야마구치 데쓰야에게 넘겨주었다. 또한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1차전과 4차전에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 두 경기 모두 무실점이었지만, 동 스테이지 유일의 승리 경기에서 세이브가 걸린 상황이었던 3차전에는 등판하지 않았다. 결국 이 해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타선은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투수진이 부진하여 선발 투수에서는 13승을 거두었지만 후반에 부진했던 히가시노 슌, 마찬가지로 후반 부진으로 일시적으로 중간 계투로 강등된 우치우미 테츠야, 전년도 15승의 디키 곤잘레스는 5승에 그쳤으며, 선발 투수진의 붕괴와 크룬 본인의 거듭된 구원 실패로 승리 경기를 놓치는 등, 리그 4연패에 실패하는 동시에 일본 시리즈 진출에도 실패했다. 쇠퇴하는 모습이 보인 데다가, 시즌 막바지에 "자신이 등판할 때는 2~3점 차가 나는 상황이 좋다"고 발언한 것을 보도진으로부터 전해 들은 와타나베 쓰네오 주필이 "자신이 나왔을 때는 어떤 상황이든 역할을 하는 것이 마무리 투수 아닌가. 그런데 타자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고, 안정감도 없는 상황에서 막아내면 폼(후술)을 잡고 자신의 공로라고 한다. 얼마나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크룬은 이제 필요 없다"고 격노하여 비판한 일도 있어,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다음 시즌 이후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통보했다. 12월 2일에 퇴단이 발표되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는 2003년 이후 마무리 투수를 고정하지 못해 우승하지 못하고 고전하기도 했지만, 2008년 입단 후 2009년과 2010년에는 부상 이탈과 부진이 있었지만 3년 연속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마무리 투수를 고정할 수 있었다. 크룬 가입 후 2008년과 2009년에도 팀은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또한, 2009년에는 일본 시리즈 우승도 달성했다. 마무리 투수를 고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릴리프진도 안정되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해인 2010년에는 평균자책점 4점대로 부진했지만, 25세이브를 올리는 등 나름대로 마무리 투수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 해가 일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2. 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1)
크룬은 2011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을 포함한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다.[5] 스프링 트레이닝 종료 후 트리플 A 프레즈노 그리즐리스로 재배정되었다.[6]크룬은 쇼타임 텔레비전 제작 프로그램인 ''더 프랜차이즈''에 출연했다.[7]
1월 24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 선수로 참가했지만, 이 해에는 메이저 리그에 승격하지 못하고 산하 AAA급 프레즈노에서 활동하며 49경기 등판, 2승 5패 20세이브, 평균자책점 5.11, WHIP 1.64를 기록했다. 오프 시즌에 FA가 되었다.
2. 4. 은퇴
크룬은 2011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San Francisco Giants)와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을 포함한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다.[5] 스프링 트레이닝 종료 후 트리플 A 프레즈노 그리즐리스(Fresno Grizzlies)로 재배정되었다.[6] 쇼타임 텔레비전 제작 프로그램인 ''더 프랜차이즈''에 출연했다.[7]2012년 3월 8일, 크룬은 은퇴했다.[8] 2012년 2월 19일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15] 2017년 6월에는 약 7년 만에 방일하여 DeNA의 토크 이벤트에 출연했고, 잡지 인터뷰에 따르면, 일을 하지 않고 유유자적한 세컨드 라이프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3. 투구 스타일
쓰리쿼터에서 (당시)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인 최고 속도 162km/h를 자랑하는 스트레이트와 최고 속도 151km/h로 떨어지는 포크볼(스플리트), 컷 패스트볼을 무기로 삼았다.[16] 김태균은 인상 깊은 투수로 크룬의 이름을 거론하며 "속구를 노리고 2구 연속 헛스윙을 한 것은 크루운 뿐"이라고 발언했다. 제구가 불안정한 투수였고, 낙차가 큰 포크볼을 결정구로 삼았기 때문에, 볼넷이나 폭투, 원바운드도 많았다.[18] 게다가 위기 상황이 되면 흥분하여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도 많아, 해설자들로부터는 종종 "안정감이 없다", "차분하게 지켜볼 수 없다"는 평을 받았다. 일부 스포츠 신문에서는 "크루운 극장"이라고 평하기도 했다.[19] 후루타 아츠야는 "올스타전에서 밖에 받아본 적 없지만"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슈트하는 더러운 회전의 스트레이트", "미트의 중심을 벗어나서 받기 싫었다"고 회상했다. 마지막 아웃을 잡고 경기에 승리한 순간,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4. 경기 중 퍼포먼스
5. 사생활
크룬은 편식이 심하며,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좋아한다.[22] 삿포로 돔으로 원정을 갔을 때 맥도날드가 없다는 이유로 격노하기도 했다.[22] 식사는 스테이크, 스파게티, 피자를 번갈아 가며 먹는다고 하며, 일본 음식은 거의 먹지 못하지만 규동만은 예외라고 한다.[22] 요코하마 스타디움 관계자 식당에는 "크룬 미트 소스"라는 전용 메뉴가 있었고, 요미우리 이적 후에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 올 때마다 먹으러 왔다고 한다. 칸나이역 주변에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신조 쓰요시가 착용했던 옷깃 달린 언더셔츠의 소유자이며, 희귀한 야구 용품을 모으는 것이 취미이다. 오른쪽 어깨에는 "信(믿을 신)"이라는 한자 타투가 새겨져 있다. 머라이어 캐리의 팬이며, 드레드 헤어를 좋아한다. 자신의 글러브가 다른 사람에게 만져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야키니쿠를 먹으러 갔을 때는, 통역이 "(크룬) 전용 불판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야키니쿠의 달인이었으며, 자신의 방식대로 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 맷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의 내야수이다. 일본에서의 애칭은 "'''타카유키'''"[20]이며, 우치카와 세이이치와 무라타 슈이치가 지은 것이다.[20] 등번호 '''42'''번은 4월 2일생이고, 재키 로빈슨의 번호이기에 마음에 들어 한다고 밝혔다.
팬 서비스에 열심이며, 경기 전 팬들의 사인 요청에 흔쾌히 응한다. 소년 시절 뉴욕 양키스 선수에게 사인을 거절당한 경험 때문에 프로 야구 선수가 되면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줘야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자로 "狂雲(광운)"이라고 쓰는 사인도 있다. 일본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며, 아이카와 료지와는 아이카와가 영어로 말하면 크룬이 일본어로 대답하는 독특한 의사소통을 했다.[21] 다초 클럽・우에지마 류헤이의 유행어인 "쿠루린파"라는 개그를 하기도 했다. 사적으로도 일본인 선수들과 친분이 많다고 한다.
6. 수상 및 타이틀 경력
마크 크룬은 2008년에 최다 세이브 투수상을 1회 수상하였다. 2007년 6월에는 JA전농 Go・Go상(구원상)을 수상하였다. 2005년 제1전에서는 올스타 게임 우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구마노하야타마 대사에 의한 제1회 "하야타마상"을 수상하였다.
7. 주요 기록
- 첫 등판: 2005년 4월 2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2차전 (나고야 돔), 8회말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1실점
- 첫 탈삼진: 상동, 8회말에 알렉스 오초아로부터 헛스윙 삼진
- 첫 홀드: 2005년 4월 6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 (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초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
- 첫 승리: 2005년 4월 19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3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10회말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
- 첫 세이브: 2005년 5월 3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4차전 (도쿄 돔), 9회말 2아웃에 5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1/3이닝 무실점
- 100세이브: 2008년 5월 26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차전 (도쿄 돔), 8회초 2아웃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1과 1/3이닝 무실점 ※역대 18번째
- 12개 전 구단으로부터 세이브: 2008년 4월 9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차전 (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말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역대 2번째 (최초 달성자는 에나츠 유타카)
- 150세이브: 2009년 9월 19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1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9회말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1이닝 무실점 ※역대 8번째 (250경기 달성은 역대 최속)
2005년 4월 2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대 주니치 드래곤즈 2차전에 8회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첫 등판을 기록했고, 같은 경기 8회말에 알렉스 오초아로부터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며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2005년 4월 6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에서는 9회초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으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 2005년 4월 19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3차전에서는 10회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첫 세이브는 2005년 5월 3일 도쿄 돔에서 열린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4차전에서 9회말 2아웃에 5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달성했다.
2008년 5월 26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차전(도쿄 돔)에서 8회초 2아웃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과 1/3이닝 무실점으로 역대 18번째 100세이브를 달성했다. 2008년 4월 9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9회말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에나츠 유타카에 이어 역대 2번째로 12개 전 구단으로부터 세이브를 기록했다. 2009년 9월 19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9회말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역대 8번째이자 250경기 만에 최단 기간 150세이브를 달성했다.
올스타전에는 4회(2005년 - 2008년) 출장했다. 2005년 2차전, 2006년 1차전, 2006년 2차전에서 3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당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우시지마 가즈히코 감독과 올스타전 기록 동률을 이루었다.
7. 1. 속구 관련 기록
2005년 5월 11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풀캐스트 스타디움 미야기)에서 타카스 요스케를 상대로 1구에 최고 속도와 같은 158 km/h, 2구에 최고 속도 159 km/h를 기록했다. 2005년 7월 19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한신 고시엔 구장) 12회말 1사 상황에서 아카호시 노리히로에게 6구째에 161 km/h를 기록했다. 아카호시는 경기 후 "다음(에 온 150킬로)의 직구가 체인지업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리타니 타카시의 초구에 160 km/h를 기록했다.2005년 8월 3일 한신 타이거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9회 2사 상황에 등판하여 가네모토 도모노리에게 160 km/h를 2회 연속 기록했다. 2005년 8월 1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도쿄 돔)에서 호리타 이치로에게 3구째 162 km/h를 기록했으나, 타구 속도 오표시로 기록 갱신은 인정되지 않았다. 경기 후 크룬은 "(162 km/h는) 그렇게 느린가"라고 말했다.
2006년 7월 21일 올스타 제1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사토자키 토모야를 상대로 올스타 사상 최고 속도인 159 km/h를 기록했지만 안타를 허용했다. 2006년 7월 23일 올스타 제2전(선 마린 스타디움 미야자키)에서는 카와사키 무네노리에게 3구째 160 km/h를 기록하여 올스타 기록을 갱신했다.(결과는 사구) 같은 경기에서 나카지마 히로유키에게도 3구째 160 km/h를 기록하고 헛스윙 삼진으로 막았다.
2008년 4월 8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우치카와 세이이치에게 5구째 160 km/h를 기록하고 3자 범퇴로 막았다. 2008년 4월 1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도쿄 돔)에서 카와바타 신고에게 도쿄 돔 최초로 160 km/h를 기록했다. 2008년 6월 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후쿠오카 Yahoo!JAPAN 돔)에서 마츠다 노부히로에게 당시 일본 프로 야구 최고 속도인 162 km/h를 기록했다. 2008년 8월 1일 올스타 제2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히다카 고우에게 161 km/h를 기록하여 올스타 최고 기록을 경신했지만, 홈런을 허용하여 피홈런 최고 구속 투수가 되었다.
7. 2. NPB 첫 기록
- 첫 등판: 2005년 4월 2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2차전 (나고야 돔), 8회말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1실점
- 첫 탈삼진: 상동, 8회말에 알렉스 오초아로부터 헛스윙 삼진
- 첫 홀드: 2005년 4월 6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 (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초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
- 첫 승리: 2005년 4월 19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3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10회말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
- 첫 세이브: 2005년 5월 3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4차전 (도쿄 돔), 9회말 2아웃에 5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1/3이닝 무실점
- 100세이브: 2008년 5월 26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차전 (도쿄 돔), 8회초 2아웃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1과 1/3이닝 무실점 ※역대 18번째
- 12개 전 구단으로부터 세이브: 2008년 4월 9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차전 (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말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역대 2번째 (최초 달성자는 에나츠 유타카)
- 150세이브: 2009년 9월 19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1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9회말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1이닝 무실점 ※역대 8번째 (250경기 달성은 역대 최속)
7. 3. NPB 기타 기록
2005년 4월 2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대 주니치 드래곤즈 2차전에 8회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첫 등판을 기록했고, 같은 경기 8회말에 알렉스 오초아로부터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며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2005년 4월 6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에서는 9회초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으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 2005년 4월 19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3차전에서는 10회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첫 세이브는 2005년 5월 3일 도쿄 돔에서 열린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4차전에서 9회말 2아웃에 5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달성했다.2008년 5월 26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차전(도쿄 돔)에서 8회초 2아웃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과 1/3이닝 무실점으로 역대 18번째 100세이브를 달성했다. 2008년 4월 9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9회말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에나츠 유타카에 이어 역대 2번째로 12개 전 구단으로부터 세이브를 기록했다. 2009년 9월 19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9회말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역대 8번째이자 250경기 만에 최단 기간 150세이브를 달성했다.
올스타전에는 4회(2005년 - 2008년) 출장했다. 2005년 2차전, 2006년 1차전, 2006년 2차전에서 3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당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우시지마 가즈히코 감독과 올스타전 기록 동률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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