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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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어령은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소설가, 수필가, 언론인, 교육자,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1934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단국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부터 언론 활동을 시작하여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배재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을 맡았다. 1990년 문화부 장관을 지냈으며, 2022년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주요 저서로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 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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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이어령은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고등학교 교사, 단국대학교 전임강사를 거쳐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에서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및 석좌교수,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한류문화산업대학원 석학교수를 역임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을 맡아 '벽을 넘어서'라는 표어와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 등 인상적인 연출을 했다.[20] 노태우 정부에서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2009년 경기디지로그창조학교 명예교장을 맡았다.
2022년 2월 26일, 암 투병 끝에 서울 자택에서 별세했다.[21]
2. 1. 유년 시절 및 학창 시절
李御榮|이어령중국어은 1934년 1월 15일[3][4](1933년 12월 29일이라는 자료도 있음)[1]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났다.[3] 부여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 학사, 1959년 석사 학위를 한국어 문학으로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서 강의했다.[5]2. 2. 교육자 및 언론인 활동
이어령은 이화여자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서 교수로 강의했으며, 문학사상 편집장을 역임했다.[5] 조선일보 등에서 논설위원을 지냈고,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및 기호학연구소장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학술원 명예석좌교수와 중앙일보 상임고문을 역임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는 국제교류기금 초청으로 도쿄대학교 비교문학비교문화연구실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다.2. 3. 문단 활동 및 주요 작품
이어령은 1956년 한국일보에 문학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주목받았다.[22] 〈우상의 파괴〉에서 그는 김동리를 '미몽(迷夢)의 우상'이라 하고, '모더니즘'의 기수를 자처하고 있는 조향을 '사기사의 우상', 이무영을 '우매(愚昧)의 우상', 최일수를 '영아(嬰兒)의 우상'이라고 깎아내렸다. 또한 황순원, 조연현,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23] 그는 우리 문학의 불모지적 상황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데올로기와 독재 체제의 금제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작품의 실존성'을 문제로 김동리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조연현과는 '전통논쟁'도 펼쳤다. 특히 1959년 3월 한 신문을 통해 전개된 소설가 김동리와 비평가 이어령 사이의 시비는 대한민국 문단사에서 은유와 비문에 관한 '험악한' 논쟁으로 기록된다.이어령은 한국 비평계에서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1955년에 발표한 첫 비평문 "이상론"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1956년에 한국일보에 실린 "우상의 파괴"는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쟁 경험이 문학적 상상력마저 황폐화시킨 것처럼 보이던 시기에, 이어령은 상당한 수사적 세련됨과 활기를 띤 글을 통해 한국 문학의 확장과 풍요를 주장했다.[7]
'''주요 작품집'''
- ''저항의 문학'' (1959)
- ''전후 문학의 새물결''
- ''통금 시대의 문학''
'''소설'''
- ''장군의 수염''
- ''암살자''
- ''전쟁 데카메론''
- ''환각의 다리''
'''수필'''
-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1963)
- ''신 한국인'' (1986)
- ''축소 지향 일본인'' (2008)
- ''디지로그'' (2006)
- ''지성의 오솔길'' (2004)
- ''지성에서 영성으로'' (2017)
2. 4. 88 서울 올림픽과 문화 행정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등의 문화 기획을 주도했고,[1]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정부에서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1]2. 5. 국제 교류 및 해외 활동
1981년부터 1982년까지 국제교류기금 초청으로 도쿄대학 비교문학비교문화연구실 객원연구원을 지냈다.[1]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등 문화기획을 주도했다.[1]1982년 일본어로 쓰여 출판된 「'축소' 지향의 일본인」(학생사)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1] 이 책에서 그는 기존 일본 비교문화론이 일본과 서양의 비교에만 머물렀다는 점을 비판하고, 토이 겐로(土居健郎)의 甘え|아마에일본어 개념에 대해 일본 고유의 것이라고 하지만, 단지 서양에는 없는 것일 뿐 한국에도 이에 상응하는 말이 있다고 비판했다.[1]
1992년 일본문화디자인대상, 1996년 국제교류기금상을 수상했다.[1] 2008년에는 「개구리는 왜 옛 못에 뛰어들었는가」(학생사, 1993년)로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국제하이쿠상 스웨덴상을 수상했다.[1]
2. 6. 별세
이어령한국어은 2022년 2월 26일 88세[6](만 89세)의 나이로 암 투병 끝에 서울 자택에서 별세했다.[6]3. 학력
4. 경력
5. 주요 작품
'''주요 작품집'''
- 《저항의 문학》 (1959)
- 《전후 문학의 새물결》
- 《통금 시대의 문학》
'''소설'''
- 《장군의 수염》
- 《암살자》
- 《전쟁 데카메론》
- 《환각의 다리》
'''수필'''
-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1963):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국 문화의 본질에 대해 탐구했다.
- 《신한국인》 (1986)
- 《축소 지향의 일본인》 (2008): 일본 문화에 대한 통찰을 제시했다.
- 《디지로그》 (2006):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 개념을 제시하고, 한국 사회가 디지털 문화를 통해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성의 오솔길》 (2004)
- 《지성에서 영성으로》 (2017)
'''일본어 출판 서적'''
「縮み」志向の日本人일본어을 비롯한 이어령의 저서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현재까지도 번역 출판되고 있다. 특히 2005년 4월 출간된 〈장켐 문명론〉일본어(신조사)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일본어 이후 문명 융합에 대한 통찰력을 담아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의 미래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26]
- 『한의 문화론 한국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일본어 배강환 역 (학생사, 1978년) - 후에 『한국인의 마음』일본어으로 개제
- 『“축소” 지향의 일본인』일본어 (학생사, 1982년) - 후에 고단샤문고, 고단샤학술문고(고단샤)
- 『하이쿠로 일본을 읽다 왜 “고요한 못의 개구리”인가 - 일본인의 미의식·행동양식을 탐구하다』일본어 (PHP연구소, 1983년)
- 『보자기 문화의 포스트모던 일본·한국 문화재에서 미래를 읽다』일본어 (중앙공론사, 1989년) - 후에 『“보자기”로 읽는 일한 문화』일본어로 개제(학생사)
- 『개구리는 왜 고요한 못에 뛰어들었는가 “하이쿠”와 일본인의 발상』일본어 (학생사, 1993년)
- 『가위바위보 문명론』일본어 (신초사·신초신서, 2005년)
- 『디지로그: 사이버 공간과 영혼의 융합』일본어 미야모토 나오히로 역 (산마크출판, 2007년 5월)
- 『한국적 사고』일본어 하시카와 코이치 역 (스카이출판, 2010년 11월)
- 『무신론자의 기도 시집』일본어 권택명, 사가와 아키 역 (하나신사, 2012년 12월)
5. 1. 평론
1956년 한국일보에 문학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22] 〈우상의 파괴〉에서 그는 김동리를 '미몽(迷夢)의 우상'이라고 하고 '모더니즘'의 기수를 자처하고 있는 조향을 '사기사의 우상', 이무영을 '우매(愚昧)의 우상', 최일수를 '영아(嬰兒)의 우상'이라고 깎아내렸을 뿐만 아니라 황순원, 조연현,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23] 그는 우리 문학의 불모지적 상황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데올로기와 독재 체제의 금제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작품의 실존성'을 문제로 김동리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조연현과 '전통논쟁'도 펼쳤다. 특히 1959년 3월 한 신문을 통해 전개된 소설가 김동리와 비평가 이어령 사이의 시비는 대한민국 문단사에서 은유와 비문(非文)에 관한 '험악한' 논쟁으로 기록된다.이어령은 한국 비평계에서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55년에 발표한 첫 비평문 "이상론"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1956년에 한국일보에 실린 다음 글 "우상의 파괴"는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쟁 경험이 문학적 상상력마저 황폐화시킨 것처럼 보이던 시기에, 이어령은 상당한 수사적 세련됨과 활기를 띤 글로 한국 문학의 확장과 풍요를 주장했다.[7]
5. 2. 평론집
이어령은 1955년 첫 비평문 〈이상론〉으로 등단했고,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7] 〈우상의 파괴〉에서 그는 김동리를 '미몽(迷夢)의 우상', 조향을 '사기사의 우상', 이무영을 '우매(愚昧)의 우상', 최일수를 '영아(嬰兒)의 우상'이라고 깎아내렸다. 또한 황순원, 조연현,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하게 비판했다.[23] 그는 우리 문학의 불모지적 상황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데올로기와 독재 체제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작품의 실존성' 문제로 김동리와 논쟁을 벌였고, 조연현과는 '전통논쟁'을 펼쳤다. 특히 1959년 3월 한 신문을 통해 전개된 김동리와 이어령 사이의 시비는 대한민국 문단사에서 은유와 비문(非文)에 관한 '험악한' 논쟁으로 기록된다.- 《저항의 문학》
- 《전후문학의 새물결》
- 《한국작가전기연구》
5. 3. 소설
- 장군의 수염
- 암살자
- 전쟁 데카메론
- 환각의 다리
5. 4. 소설집
- 《환각의 다리》
- 《둥지 속의 날개》
- 《무익조》
- 《장군의 수염》
5. 5. 수필
- 《흙속에 저 바람속에》(1963년): 한국인이란 누구인가, 한국 문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국인의 체험의 원형은 무엇인가를 묻고 답했다.
- 《신한국인》(1986년)
- 《축소지향의 일본인》(2008년): 이웃 일본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였다.
- 《디지로그》(2006년):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를 만들었다. 디지털 문화를 창출함으로써 한국 사회가 세계 사회의 새로운 리더가 되자고 주장했다.
- 《지성의 오솔길》(2004년)
- 《지성에서 영성으로》(2017년)
5. 6. 일본어 출판 서적
「縮み」志向の日本人일본어을 비롯해 이어령의 책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고, 지금까지도 번역 출판되고 있다. 특히 2005년 4월 출간된 〈장켐 문명론〉일본어(신조사)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일본어 이후 문명 융합에 대한 해박한 경륜을 담아 한 중 일 삼국의 미래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받았다.[26]1982년 일본어로 쓰여 출판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일본어(학생사)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본어 출판 서적'''
- 『한의 문화론 한국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일본어 배강환 역 (학생사, 1978년) - 후에 『한국인의 마음』일본어으로 개제
- 『“축소” 지향의 일본인』일본어 (학생사, 1982년) - 후에 고단샤문고, 고단샤학술문고(고단샤)
- 『하이쿠로 일본을 읽다 왜 “고요한 못의 개구리”인가 - 일본인의 미의식·행동양식을 탐구하다』일본어 (PHP연구소, 1983년)
- 『보자기 문화의 포스트모던 일본·한국 문화재에서 미래를 읽다』일본어 (중앙공론사, 1989년) - 후에 『“보자기”로 읽는 일한 문화』일본어로 개제(학생사)
- 『개구리는 왜 고요한 못에 뛰어들었는가 “하이쿠”와 일본인의 발상』일본어 (학생사, 1993년)
- 『가위바위보 문명론』일본어 (신초사·신초신서, 2005년)
- 『디지로그: 사이버 공간과 영혼의 융합』일본어 미야모토 나오히로 역 (산마크출판, 2007년 5월)
- 『한국적 사고』일본어 하시카와 코이치 역 (스카이출판, 2010년 11월)
- 『무신론자의 기도 시집』일본어 권택명, 사가와 아키 역 (하나신사, 2012년 12월)
6. 평가
이어령은 한국 비평계에서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1955년 "이상론"을 발표하여 이름을 알렸고,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실어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쟁으로 문학적 상상력마저 황폐화된 듯 보이던 시기에, 그는 수사적 세련됨과 활기를 띤 글로 한국 문학의 확장과 풍요를 주장했다.[7]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이 뛰어나, 서재에는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7대의 컴퓨터가 있으며 에버노트를 통해 자료를 정리한다.[28] 김정운과의 대화에서 에버노트에 저장된 노트 수가 18,000개라고 밝혔다.[29]
6. 1. 비판
이어령은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오천년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창조적 인물로 칭송받고 있지만,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27]7. 가족
8. 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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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の碩学」李御寧初代文化部長官が死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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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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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성' 지다…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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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파괴, 그리고 이상의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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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연합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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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보는 한국인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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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6) 인문주의, 인간과 삶에 대한 질문 : 이어령과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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