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플레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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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언 플레밍은 190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작가로, 첩보원 제임스 본드(James Bond)를 창조하여 1964년 사망할 때까지 14편의 007 소설을 발표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해군 정보부에서 근무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53년 첫 제임스 본드 소설인 《카지노 로얄》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플레밍은 본드 소설 외에도 《다이아몬드 밀수꾼》, 《스릴 넘치는 도시들》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은 영화, TV 시리즈 등으로 제작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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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플레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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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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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언 플레밍 |
로마자 표기 | Ian Lancaster Fleming |
출생일 | 1908년 5월 28일 |
출생지 | 메이페어, 런던, 잉글랜드 |
사망일 | 1964년 8월 12일 |
사망지 | 캔터베리, 켄트, 잉글랜드 |
직업 | 작가, 각본가 |
가족 | |
어머니 | 에벌린 세인트 크루아 플레밍 |
아버지 | 발렌타인 플레밍 |
형제 | 피터 플레밍 (형) |
이복 자매 | 아마릴리스 플레밍 |
배우자 | 앤 차터리스 (1952년 3월 24일 결혼) |
자녀 | 1명 |
교육 | |
학교 | 이튼 칼리지 |
작품 활동 | |
장르 | 모험 소설, 스파이 소설 |
대표 작품 | 제임스 본드 시리즈 치티치티 뱅뱅 |
2. 생애
이언 플레밍은 1908년 5월 28일 런던 메이페어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57] 이튼 학교와 샌드허스트 왕립군사학교를 다녔지만 여자 문제로 중퇴했다.[58] 외무 고시에 낙방한 뒤 로이터 통신 기자로 일했으며, 주식 중개인으로도 활동했다.[58]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플레밍은 영국 해군 정보부에서 일하며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특공대를 관리했다. 이때 패트릭 댈즐 조브로부터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58][59] 종전 후 〈선데이 타임스〉 외신부장으로 일하며, 1년 중 두 달은 자메이카에서 보낼 수 있었다.[60] 1952년부터 첩보원 제임스 본드의 인물상을 만들고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57]
플레밍은 자메이카 별장 '골든아이'에서 1953년 카지노 로얄을 시작으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집필했다.[58] 카지노 로얄은 출간 한 달 만에 초판이 매진되는 성공을 거두었다.[60] 그는 본드처럼 술, 여자, 담배를 즐겼으며, 이 때문에 후손들은 그의 행동과 소설에 비판적이기도 하다.
플레밍은 1952년 앤 차터리스와 결혼하여 아들 캐스퍼를 낳았다. 그러나 결혼 생활 중에도 여러 불륜을 저질렀다. 그는 1964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교정 중 심장마비로 56세에 사망했다.
2. 1. 어린 시절과 교육
이언 랜캐스터 플레밍은 1908년 5월 28일 런던 메이페어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57] 아버지는 밸런타인 플레밍, 어머니는 이블린 "이브" 플레밍이었다.[2] 그는 스코틀랜드 금융가 로버트 플레밍의 손자였다.1914년, 플레밍은 도싯 주 퍼벡 섬에 있는 예비학교인 더른퍼드 스쿨에 다녔다.[8] 그는 더른퍼드에서의 생활을 즐기지 못했고, 불쾌한 음식, 육체적 고통, 그리고 괴롭힘을 당했다.[8]

1921년, 플레밍은 이튼 칼리지에 입학했다. 학업적으로는 뛰어나지 않았지만, 육상 경기에 뛰어났고 1925년부터 1927년까지 2년 동안 빅터 루도룸 칭호를 얻었다. 그는 또한 "더 와이번"이라는 학교 잡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이튼에서의 그의 생활 방식은 담임인 E. V. 슬레이터와 갈등을 빚었는데, 슬레이터는 플레밍의 태도, 헤어 오일 사용, 자동차 소유, 그리고 여성과의 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국 슬레이터는 플레밍의 어머니를 설득하여 그를 샌드허스트 왕립군사학교 입학을 위한 특별 강습 과정을 밟도록 이튼에서 일찍 퇴학시켰다.[2] 그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임관 없이 1927년에 퇴학했다.
1927년, 플레밍을 외무부에 진출시키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그를 오스트리아 키츠뷔엘에 있는 테너호프로 보냈는데, 이곳은 전직 영국 스파이였던 어넌 포브스 데니스와 그의 소설가 아내인 필리스 보텀이 운영하는 작은 사립학교였다. 그는 그곳에서 언어 능력을 향상시킨 후 뮌헨 대학교와 제네바 대학교에서 단기간 수학했다. 제네바에 있는 동안 플레밍은 모니크 팡쇼 드 보텐스와 약혼했고, 1931년 9월 외무부 시험을 치르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는 합격 기준을 달성했지만 일자리를 얻지는 못했다.
2. 2. 초기 경력: 기자와 주식 중개인
1908년 영국 런던 메이페어(Mayfair)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57] 영국의 명문 고등학교인 이튼 학교와 샌드허스트 왕립군사학교를 다녔지만 여자 문제로 모두 중퇴했다.[58] 외무 고시에 낙방한 뒤 모스크바 주재 로이터 통신 기자로 일했으며, 후에 주식 중개인으로도 활동하였다.[58]1927년 플레밍은 외무부에 진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키츠뷔엘에 있는 테너호프로 보내졌다. 그곳은 전직 영국 스파이였던 어넌 포브스 데니스와 그의 소설가 아내인 필리스 보텀이 운영하는 작은 사립학교였다.[2] 그는 그곳에서 언어 능력을 향상시킨 후 뮌헨 대학교와 제네바 대학교에서 단기간 수학했다. 제네바에 있는 동안 플레밍은 모니크 팡쇼 드 보텐스와 약혼했으나, 1931년 9월 외무부 시험을 치르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온 후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9][10][11] 그의 어머니는 로이터 통신의 수장인 로더릭 존스 경에게 로비를 벌였고, 1931년 10월 그는 그 회사의 부편집자이자 기자로 일자리를 얻었다. 1933년 4월 플레밍은 모스크바에서 영국 회사 메트로폴리탄-비커스의 6명의 엔지니어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쇼트라이얼을 취재했다.
1933년 10월 플레밍은 가족의 압력에 굴복하여 금융업체 컬 앤드 컴퍼니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1935년 그는 비숍스게이트에 있는 로우 앤드 피트먼으로 이직하여 주식 중개인이 되었다.[9][10][11]
2. 3. 제2차 세계 대전: 해군 정보부
1939년 5월, 플레밍은 영국 왕립 해군의 해군 정보국장인 존 고드프리에게 고용되어 그의 개인 비서가 되었다. 1939년 8월 정규직으로 조직에 합류했으며, 암호명 "17F"를 사용했고, 현재 립리 빌딩으로 알려진 해군성의 39호실에서 근무했다. 플레밍은 해군 정보부에 재직 당시, 해군이었던 패트릭 댈즐 조브로부터 제임스 본드 인물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58][59] 1939년 7월 영국 왕립 해군 자원병 예비역에 소위로 임관되었고, 소위로 시작하여, 몇 달 후 중위로 진급했다.플레밍은 고드프리의 개인 비서로서 행정 능력에서 뛰어났다. 고드프리는 거친 성격으로 알려져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종종 플레밍을 비밀 정보국(Secret Intelligence Service), 정치전쟁국(Political Warfare Executive), 특수 작전 행정부(Special Operations Executive, SOE), 합동 정보 위원회(Joint Intelligence Committee), 총리 직원들과의 연락 담당자로 사용했다.
1939년 9월 29일, 전쟁 시작 직후, 고드프리는 "중위 이안 플레밍의 모든 특징을 지닌" 각서를 배포했는데, 역사가 벤 매킨타이어(Ben Macintyre)에 따르면 그렇다고 한다. 송어 각서(Trout Memo)라고 불린 이 각서는 전시의 적을 속이는 것을 플라이 낚시에 비유했다. 각서에는 추축국에 대항하여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U 보트와 독일 수상함을 기뢰밭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목록의 28번째는 적에게 발견될 시체에 오해의 소지를 남기는 서류를 심는 아이디어였는데, 이는 1943년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 침공 계획을 은폐하기 위해 고안된 민스미트 작전(Operation Mincemeat)과 유사하며, 1942년 10월 찰스 콜먼돌리가 개발했다. 송어 각서의 권고 사항은 "제안(별로 좋지 않은 제안)"이라는 제목이었고, "다음 제안은 바질 톰슨(Basil Thomson)의 책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조종사로 분장한 시체에 서류를 넣고, 실패한 낙하산에서 떨어진 것처럼 해안에 투하할 수 있습니다. 해군 병원에서 시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물론 신선한 시체여야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1940년 플레밍과 고드프리는 군사 작전에 관련된 국가의 지리에 대한 보고서 준비와 관련하여 옥스퍼드 대학교 지리학 교수인 케네스 메이슨(Kenneth Mason)에게 연락했다. 이 보고서들은 1941년부터 1946년까지 제작된 해군 정보국 지리 교본 시리즈(Naval Intelligence Division Geographical Handbook Series)의 전신이었다.[14]
무자비 작전(Operation Ruthless)은 에니그마 암호를 획득하기 위한 계획으로, 1940년 9월 12일 플레밍이 고드프리에게 쓴 각서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아이디어는 나치 폭격기를 "획득"하여 독일어를 구사하는 승무원을 독일 공군(Luftwaffe) 제복을 입히고 영국 해협에 추락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승무원은 독일 구조대를 공격하고 그들의 보트와 에니그마 암호기를 영국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블레치리 파크의 앨런 튜링(Alan Turing)과 피터 트윈(Peter Twinn)을 매우 짜증나게 한 이 임무는 결코 수행되지 않았다. 플레밍의 조카딸인 루시 플레밍(Lucy Fleming)에 따르면, 영국 공군의 한 관계자는 추락한 하인켈 폭격기를 영국 해협에 투하하면 아마도 매우 빨리 가라앉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플레밍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특별 대표인 "와일드 빌" 도노반(Colonel William Joseph Donovan)과 협력하여 런던과 워싱턴 간의 정보 협력을 담당했다. 1941년 5월 플레밍은 고드프리와 함께 미국을 방문하여 정보 조정관실(Office of the Coordinator of Information), 즉 전략 서비스 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으로 변신하고 결국 중앙 정보국(CIA)이 된 부서를 위한 청사진을 작성하는 것을 지원했다.
고드프리 제독은 1941년부터 1942년까지 플레밍을 골든아이 작전(Operation Goldeneye)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골든아이 작전은 독일이 스페인을 점령할 경우 정보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플레밍의 계획에는 지브롤터와의 통신 유지와 나치에 대한 파괴 활동이 포함되었다. 1941년 그는 도노반과 연락을 취하여 독일이 해로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에 대한 미국의 참여를 논의했다.
1942년 플레밍은 특수 정보 부대원들로 구성된 코만도 부대인 30 돌격 부대(30AU)를 창설했다. 30AU의 임무는 전선 부근, 때로는 전선 앞에서 작전을 수행하며 미리 표적이 된 본부에서 적의 문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부대는 1941년 5월 크레타 전투에서 유사한 활동을 수행했던 오토 스코르체니가 이끄는 독일 부대를 모델로 했다. 플레밍은 독일 부대를 "독일 정보 활동에서 가장 뛰어난 혁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플레밍은 부대와 함께 현장에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후방에서 표적을 선정하고 작전을 지휘했다. 부대 창설 당시에는 30명이었지만, 5배로 규모가 커졌다. 이 부대는 다른 코만도 부대 출신의 병사들로 구성되었고, SOE 시설에서 무장 해제 전투, 금고털이 및 자물쇠 따기 훈련을 받았다. 1942년 후반 에드먼드 러시브룩 대위(후일 중장 )이 고드프리의 뒤를 이어 해군 정보부의 책임자가 되면서 플레밍의 조직 내 영향력은 감소했지만, 그는 30AU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했다. 플레밍은 부대원들에게 인기가 없었고, 그들을 "자기"의 "레드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전에 30AU의 대부분의 작전은 지중해에서 이루어졌지만, 디에프 습격에 에니그마 암호기와 관련 자료를 빼내려는 실패한 기습 작전에 비밀리에 참여했을 가능성도 있다. 플레밍은 HMS ''페르니''에서 700야드 해안에서 이 습격을 관찰했다.[15]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에서의 성공으로 30AU는 해군 정보부의 큰 신뢰를 얻었다.
1944년 3월 플레밍은 오버로드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왕립 해군 부대에 정보를 배포하는 것을 감독했다. 1944년 6월 6일에 30AU 책임자에서 해임되었지만, 어느 정도 관여를 유지했다. 그는 오버로드 작전 중과 이후, 특히 셔부르 공격 이후에 현장에 있는 30AU를 방문했는데, 이때 부대가 정보 수집 부대가 아닌 정규 코만도 부대로 잘못 사용된 것을 우려했다. 이것은 병사들의 전문 기술을 낭비하고, 그러한 숙련된 요원을 사용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없는 작전에서 그들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렸으며, 중요한 정보 수집을 위협했다. 그 후 이러한 부대의 관리가 개정되었다. 그는 또한 탐바흐 성에서 1870년 이후의 독일 해군 기록 보관소를 찾은 후 독일로 진입한 부대를 따라갔다.
1944년 12월 플레밍은 해군 정보국장을 대신하여 극동 지역에 정보 조사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의 상당 부분은 태평양에서 30AU를 위한 기회를 확인하는 데 사용되었다. 일본의 항복으로 인해 이 부대는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16]
30AU의 성공으로 1944년 8월 "목표 부대(Target Force)"를 설립하기로 결정되었고, 이는 T부대로 알려지게 되었다. 런던에 있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공식 각서에는 이 부대의 주요 역할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T부대 = 목표 부대(Target Force). 해방된 지역과 적 지역에서 대도시, 항구 등을 점령한 후 문서, 인물, 장비를 보호하고 확보하기 위해 전투 및 정보 인력으로 구성."
플레밍은 T부대의 목표를 선정하는 위원회에 참여하여 부대 장교들에게 배포된 "블랙 북(Black Books)"에 이를 기록했다. T부대의 보병 부대는 부분적으로 킹스 연대 제5대대로 구성되었으며, 영국 제2군을 지원했다. 이 부대는 영국 군의 관심 대상인 목표물을 확보할 책임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원자력 연구소, 가스 연구 센터 및 개별 로켓 과학자 등이 포함되었다. 이 부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은 독일 항구 도시 킬 진격 중에 이루어졌는데, V-2 로켓, 메서슈미트 Me 163 전투기 및 고속 잠수함에 사용되는 독일 엔진의 연구 센터에서 발견되었다. 플레밍은 나중에 자신의 글, 특히 1955년 본드 소설 ''문레이커''에서 T부대 활동의 요소들을 사용했다.
2. 4. 전후: 작가로서의 삶
전쟁이 끝난 후 플레밍은 〈선데이 타임스〉의 외신부장이 되었고, 1년 중 두 달을 자메이카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60] 자메이카에 있는 자신의 별장 '골든아이'에서 1953년 첫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카지노 로얄》을 시작으로 12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소설과 2편의 단편 모음집을 썼다.[58] 《카지노 로얄》은 한 달만에 초판이 매진되는 성공을 거두었다.[60]
플레밍은 자신의 작품 속 제임스 본드와 마찬가지로 술과 여자를 좋아했고 하루 80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였다.[58] 하지만, 여자, 술, 담배를 가까이한 행동 탓인지 이안 플레밍의 후손들은 자신의 조상의 행동과 소설에 비판적인 경향을 보인다.
플레밍은 1945년 5월 제대했지만 몇 년 동안 영국 왕립 해군 예비대(RNVR)에 남아 1947년 7월 26일 정식 중위(특수 부서)로 진급했다.[17] 1947년 10월 그는 덴마크 점령 중 덴마크 장교들이 덴마크에서 영국으로 탈출하는 것을 지원한 공로로 크리스티안 10세 자유 훈장을 받았다.[2][18] 그는 1952년 8월 16일 중위 계급으로 RNVR의 현역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복무를 마쳤다.[19] 이후 자메이카의 별장 “골든아이”에 거주했다. 1953년,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카지노 로얄』을 발표했다. 1964년, 유작(遺作)이 된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교정 중 심장마비로 사망(56세)했다.
2. 5. 결혼과 가족
1945년 5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해산된 후 이언 플레밍은 당시 ''선데이 타임스''를 소유하고 있던 켐즐리 신문 그룹의 해외 지사장이 되었다. 그의 계약은 매년 겨울 석 달간의 휴가를 허용했고, 그는 자메이카에서 휴가를 보냈다.앤 차터리스의 첫 남편이 전쟁 중 사망한 후, 그녀는 플레밍과 결혼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는 독신으로 남기로 결정했다. 1945년 6월 28일, 그녀는 로더미어 제2대 자작과 결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터리스는 플레밍과의 불륜을 계속했고, 그의 친구이자 이웃인 노엘 코워드를 방문한다는 구실로 그를 만나러 자메이카로 여행했다. 1948년 그녀는 플레밍의 딸 메리를 낳았지만, 아이는 사산되었다. 로더미어는 플레밍과의 관계 때문에 1951년 차터리스와 이혼했고, 두 사람은 1952년 3월 24일 자메이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의 아들 캐스퍼는 몇 달 후인 8월에 태어났다. 플레밍과 앤 모두 결혼 생활 중 불륜을 저질렀는데, 앤은 노동당 당수이자 야당 당수였던 휴 게이츠켈과 불륜을 저질렀다. 플레밍은 자메이카에서 이웃 중 한 명인 아일랜드 레코드의 크리스 블랙웰의 어머니인 블랑슈 블랙웰과 장기적인 불륜 관계를 맺었다.
플레밍은 영국 총리 앤서니 이든과 친구였으며, 1953년 11월 말 이든의 건강이 악화되자 골든아이에 머물도록 허락했다.[20]
그의 아내는 전 로자미아 남작 부인 앤(옛 성씨 차터리스, 1981년 사망, 플레밍과의 세 번째 결혼)이다. 아들은 카스퍼(1975년 사망)이다. 사촌으로는 영화 《흡혈귀 드라큘라》 등에 출연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있다(리는 영화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악당 스카라망가를 연기했다). 또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으로 알려진 영국의 작가 로알드 달과 친분이 있었으며, 달은 《007 두 번 산다》와 《칙키 칙키 뱅뱅》 영화판의 각본을 썼다.
2. 6. 죽음
이언 플레밍은 자신의 작품 속 제임스 본드처럼 술과 여자를 좋아했고, 하루에 담배 80개비를 피우는 애연가였다.[58] 여자, 술, 담배를 가까이한 행동 탓인지 이언 플레밍의 후손들은 그의 행동과 소설에 비판적인 경향을 보였다. 1964년, 유작이 된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교정 중 심장마비로 56세에 사망했다.3. 《제임스 본드》 시리즈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1952년 첫 작품이 나온 이후 1964년까지 총 14편의 소설이 출간되었으며, 24편의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원작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는 영화와는 달리 진지하고 무거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61]
플레밍은 《썬더볼》을 집필하면서 케빈 맥클로리, 잭 휘팅햄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했지만, 이후 저작권 문제로 법정 분쟁을 겪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007 러시아에서 온 편지''를 좋아하는 책으로 언급하면서 판매량이 크게 늘기도 했다.[22]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식사 장면이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는 미식가였던 플레밍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플레밍은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된 것은 두 번째 작품인 『007 러시아에서 사랑을 담아』까지밖에 보지 못했다.
3. 1. 창작 배경
1952년에 첩보원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후, 196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14권의 007 소설을 펴냈다. 이 소설들을 원작으로 지금까지 24편의 007영화가 제작되었다. 1964년에는 동화 《치티치티뱅뱅》을 발표하였으며, 이 작품 또한 영화와 뮤지컬로 제작되었다.[62]1960년 플레밍은 쿠웨이트석유회사로부터 쿠웨이트와 그 석유 산업에 관한 책을 집필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쿠웨이트 정부는 ''흥분의 상태: 쿠웨이트 인상기''라는 원고를 승인하지 않았고, 결국 출판되지 않았다. 플레밍에 따르면, "석유회사는 이 책을 승인했지만, 쿠웨이트 정부 관계자들에게 승인을 받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련 셰이크들은 특정한 온건한 논평과 비판, 그리고 특히 모든 면에서 '문명화'되기를 원하고 낭만적인 기원을 잊고자 하는 현재의 쿠웨이트의 모험적인 과거를 언급하는 구절들을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플레밍은 ''007 죽느냐 사느냐''의 실망감 이후, 영화 각본을 소설로 만든 썬더볼을 집필했다. 1958년 플레밍의 친구 이바르 브라이스가 젊은 아일랜드 작가이자 감독인 케빈 맥클로리를 소개했고, 플레밍과 브라이스의 친구 어니스트 쿠네오와 함께 세 사람이 함께 각본 작업을 했다. 10월에 맥클로리는 숙련된 각본가 잭 휘팅햄을 새로 결성된 팀에 소개했고, 1959년 12월까지 맥클로리와 휘팅햄은 플레밍에게 각본을 보냈다. 플레밍은 1960년 1월 MCA에 시나리오를 전달할 의도를 설명하면서, 맥클로리가 프로듀서로 활동하도록 그와 브라이스의 추천을 덧붙였다. 그는 또한 맥클로리에게 MCA가 맥클로리의 참여 때문에 영화를 거부한다면, 맥클로리는 자신을 팔거나, 거래에서 빠지거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1960년 1월부터 3월까지 골든아이에서 플레밍은 자신, 휘팅햄, 맥클로리가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소설 ''썬더볼''을 썼다. 1961년 3월 맥클로리는 미리 받은 사본을 읽고, 휘팅햄과 함께 런던의 고등법원에 출판 중지 가처분 신청을 즉시 제기했다. 두 차례의 법정 공방 후, 1961년 11월 두 번째 공방에서, 플레밍은 맥클로리에게 합의를 제안했다. 맥클로리는 시나리오의 문학 및 영화 권리를 획득했고, 플레밍은 "케빈 맥클로리, 잭 휘팅햄, 작가의 시나리오 각색을 바탕으로"라고 인정하는 조건으로 소설의 권리를 얻었다.
1961년 3월 17일, ''라이프''의 기사에서 ''007 러브 이즈 온리''가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가장 좋아하는 10권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22] 케네디와 플레밍은 이전에 워싱턴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이 찬사와 관련 홍보는 플레밍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범죄 소설 작가로 만들었다. 플레밍은 ''007 러브 이즈 온리''를 자신의 최고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1961년 4월, ''썬더볼''에 대한 두 번째 법정 공방 직전, 플레밍은 ''선데이 타임스''의 정기적인 주간 회의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요양하는 동안 그의 친구인 더프 던바는 그에게 비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이야기'' 사본을 주며 플레밍이 매일 저녁 아들 카스파에게 들려주던 잠자리 이야기를 써 보라고 제안했다. 플레밍은 이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조나단 케이프의 출판사 마이클 하워드에게 "무덤 가장자리에서조차 당신을 위해 일하지 않는 순간이 없습니다."라고 농담조로 편지를 썼다. 그 결과 플레밍의 유일한 아동 소설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그의 사망 두 달 후인 1964년 10월에 출판되었다.
1961년 6월 플레밍은 발표된 작품과 미래의 제임스 본드 소설 및 단편 소설의 영화 권리에 대한 6개월 옵션을 해리 살츠먼에게 팔았다. 살츠먼은 앨버트 R. "쿠비" 브로콜리와 함께 제작사 이온 프로덕션을 설립했고, 숀 코네리를 ''007 살인번호''(1962)로 시작하는 6편의 영화 계약을 맺었다. 코네리의 본드 묘사는 문학적 캐릭터에 영향을 미쳤다. ''007 두 번 산다''에서 플레밍은 이전 이야기에는 없었던 유머 감각을 본드에게 부여했다.
플레밍의 두 번째 논픽션 책인 ''흥미진진한 도시들''[23]은 1963년 11월에 출판되었는데, 플레밍의 세계 도시에 대한 인상을 바탕으로 한 ''선데이 타임스'' 기사 시리즈를 재인쇄한 것이다. 1959년과 1960년에 여행하면서 얻은 인상을 바탕으로 했다. 1964년 제작자 노먼 펠튼은 플레밍에게 텔레비전 스파이 시리즈를 집필해 달라고 요청했고, 플레밍은 ''첩보원 0011'' 시리즈를 위해 나폴레옹 솔로와 에이프릴 댄서 캐릭터의 이름을 포함한 여러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러나 플레밍은 이온 프로덕션의 요청에 따라 프로젝트에서 철회했다.
1964년 1월 플레밍은 그의 마지막 휴가가 될 골든아이로 갔고,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초고를 썼다.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했고 그의 소설의 편집자인 윌리엄 플로머에게 그것을 다시 써달라고 요청했다. 플레밍은 책에 대해 점점 불만을 품었고 다시 쓰는 것을 고려했지만, 출판 가능하다고 생각한 플로머에 의해 설득당했다.
3. 2. 작품 목록
이언 플레밍은 1952년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후, 196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14편의 007 소설을 펴냈다. 이 소설들을 원작으로 24편의 007 영화가 제작되었다. 원작에서의 제임스 본드는 영화 속 이미지와는 달리 무겁고 진지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61] 1964년에는 동화 《치티치티뱅뱅》을 발표했으며, 이 작품 또한 영화와 뮤지컬로 제작되었다.[62]플레밍은 쿠웨이트석유회사의 의뢰를 받아 쿠웨이트와 석유 산업에 관한 책을 집필했지만, 쿠웨이트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출판되지 않았다. 이후 영화 각본을 소설화한 썬더볼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케빈 맥클로리, 잭 휘팅햄과의 협업 및 법적 분쟁을 겪었다. 1961년 라이프 지의 기사에서 ''007 위기일발''이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22] 플레밍의 책 판매량이 급증했다.
1961년 플레밍은 심장마비를 겪었지만, 회복 기간 동안 아들을 위해 쓴 잠자리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동 소설 ''치티치티뱅뱅''을 집필했다. 같은 해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 소설 및 단편 소설의 영화 권리를 해리 살츠먼에게 팔았다. 살츠먼은 앨버트 R. 브로콜리와 함께 이온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숀 코네리를 주연으로 한 ''007 살인번호''(1962)를 시작으로 영화 시리즈를 제작했다.
1963년 플레밍은 ''선데이 타임스''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흥미진진한 도시들''을 출판했다.[23] 1964년에는 텔레비전 시리즈 ''첩보원 0011''를 위해 나폴레옹 솔로와 에이프릴 댄서 캐릭터의 이름을 포함한 여러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플레밍은 마지막 소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초고를 썼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편집자에게 재작성을 요청했다.
레이먼드 벤슨은 플레밍의 소설이 문체적으로 두 시기로 나뉜다고 언급했다. 제러미 블랙과 크리스토프 린드너는 악당을 기준으로 시리즈를 구분했다.
3. 2. 1. 장편 소설
wikitext날짜 | 제목 | 원어 제목 |
---|---|---|
1953년 | 카지노 로얄 | Casino Royale |
1954년 | 죽느냐 사느냐 | Live and Let Die |
1955년 | 문레이커 | Moonraker |
1956년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Diamonds Are Forever |
1957년 | 위기일발 | From Russia, with Love |
1958년 | 살인번호 | Dr. No |
1959년 | 골드핑거 | Goldfinger |
1960년 | 포 유어 아이즈 온리 | For Your Eyes Only |
1961년 | 썬더볼 | Thunderball |
1962년 | 나를 사랑한 스파이 | The Spy Who Loved Me |
1963년 | 여왕 폐하 대작전 | 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
1964년 | 두 번 산다 | You Only Live Twice |
1965년 |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 The Man with the Golden Gun |
1966년 | 옥토퍼시와 리빙 데이라이트 | Octopussy and The Living Daylights |
3. 2. 2. 단편 소설 모음집
- '''제임스 본드 단편 소설 모음집'''
- * '''너의 눈만을 위하여''' (1960)
- ** "죽이는 전망"
- ** "너의 눈만을 위하여"
- ** "리스코"
- ** "위안의 양자"
- ** "힐데브란드의 진귀한 물건"으로 구성됨.
- * '''옥토퍼시와 리빙 데이라잇츠''' (1966)
- ** 원래 "옥토퍼시"와 "리빙 데이라잇츠" 두 편으로 출판되었으며, 현대판에는 "숙녀의 소유"와 "뉴욕의 007"도 포함됨.[44]
- 『007의 모험』(For Your Eyes Only: Five Secret Occasions in the Life of James Bond) (1960) (東京創元社)
- : 신판 재간에서는 「장미와 권총」으로 개제. 개정판에서 「장미와 권총」으로 재개제(井上 一夫 역, 창원추리문고)
- * 「장미와 권총」From a View To A Kill
- * 「읽고 나서 소각하라」For Your Eyes Only
- * 「나소의 밤」Quantum of Solace
- * 「위험」Risico
- * 「희귀어 힐데브란트」The Hildebrand Rarity
- 『007/베를린 탈출』(Octopussy and the Living Daylights) (1966) (하야카와 서점)
- : 신판 재간에서는 「옥토퍼시」로 개제(井上 一夫 역, 하야카와 미스터리 문고)
- * 「007의 추적」Octopussy
- : 신판에서는 「옥토퍼시」로 개제
- * 「007의 책략」Property of A Lady
- : 신판에서는 「소유자는 어떤 여성」으로 개제
- * 「007/베를린 탈출」The Living Daylights
- : 신판에서는 「베를린 탈출」로 개제
3. 3. 주제와 특징
이언 플레밍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스릴러가 대문자 L을 붙인 문학은 아니더라도, '문학으로 읽도록 고안된 스릴러'라고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것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61] 그는 레이먼드 챈들러, 대쉴 해밋, 에릭 앰블러, 그레이엄 그린을 자신의 영향으로 꼽았다. 윌리엄 쿡은 ''뉴 스테이츠먼''에서 제임스 본드를 "영국 문학에서 중요하지만 많이 폄하된 전통의 정점"으로 여겼다. 어린 시절 플레밍은 H. C. 맥닐(일명 "새퍼")의 불독 드럼몬드 이야기와 존 버찬의 리처드 해니 이야기를 탐독했다. 그의 천재성은 이러한 구식 모험 이야기를 재포장하여 전후 영국의 유행에 맞추는 것이었다. 본드를 통해 그는 제트 시대의 불독 드럼몬드를 창조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미키 스필레인이 또 다른 주요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다.[62]1963년 5월 플레밍은 ''Books and Bookmen''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본드 책을 쓰는 자신의 접근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아침에 약 3시간 동안 글을 쓰고… 저녁 6시부터 7시 사이에 1시간 더 일한다. 나는 결코 수정하지 않고 내가 쓴 것을 다시 보지 않는다… 나의 공식을 따르면 하루에 2,000단어를 쓴다." 벤슨은 그가 "플레밍 스윕"이라고 부르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장의 끝에 "갈고리"를 사용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독자를 다음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갈고리는 앤서니 버제스가 "고양된 저널리즘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것과 결합하여 "독자를 조롱의 위험 지점을 지나치게 하는 서술 속도"를 만들어낸다.
움베르토 에코는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플레밍의 작품을 분석했고, 이야기의 구조와 서사를 제공하는 일련의 대립을 확인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립 |
---|
본드—M |
본드—악당 |
악당—여성 |
여성—본드 |
자유 세계—소련 |
영국—비앵글로색슨 국가 |
의무—희생 |
탐욕—이상 |
사랑—죽음 |
우연—계획 |
사치—불편 |
과잉—절제 |
퇴폐—순수 |
충성—불명예 |
에코는 또한 본드의 악당들은 중앙 유럽이나 슬라브 또는 지중해 국가 출신이며 혼혈이며 "복잡하고 불분명한 기원"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에코는 악당들이 일반적으로 무성애자이거나 동성애자이며, 창의적이고, 조직적으로 능숙하며, 부유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블랙은 같은 점을 관찰했다. "플레밍은 자신의 악당에게 계급적 적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신체적 왜곡이나 민족적 정체성에 의존했다… 게다가 영국에서는 외국 악당들이 외국인 하인과 직원을 사용했다… 이러한 인종차별은 버찬의 소설과 같은 전간기 모험 소설의 두드러진 주제뿐만 아니라 더 넓은 문학 문화를 반영했다." 작가 루이즈 웰시는 소설 ''살인면허''가 민권 운동이 편견과 불평등에 도전함에 따라 "백인 사회의 일부 부문이 느끼고 있던 편집증을 활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플레밍은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유명 브랜드 이름과 일상적인 세부 사항을 사용했다. 킹즐리 에이미스는 이것을 "플레밍 효과"라고 불렀는데, 이는 "상상력 있는 정보 사용으로, 본드 세계의 만연한 환상적인 본질이… 어떤 종류의 현실에 고정되거나, 적어도 균형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본드 시리즈는 전후 영국, 즉 여전히 제국주의 국가였던 시대에 쓰여졌다.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영국 제국은 쇠퇴했고, 언론인 윌리엄 쿡은 "본드는 영국의 과장되고 점점 불안해지는 자화상에 영합하여, 브리타니아가 여전히 자기 체급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환상으로 우리를 감쌌다"고 지적했다. 영국 권력의 쇠퇴는 여러 소설에서 언급되었는데, 『러시아에서 온 편지』에서는 본드가 다르코 케림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이빨을 드러내지 않아. 잇몸만 드러낼 뿐이지."라고 인정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이 주제는 시리즈 후반부인 1964년 소설 『두 번 산다』에서 본드와 일본 첩보 기관 수장 타나카 긴가 사이의 대화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플레밍은 특히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대치 기간 중 1950년대와 60년대 초 영국의 위신 추락을 절실히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는 타나카가 영국이 "두 손으로 제국을 버렸다"고 비난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블랙은 MI6 요원 4명의 소련 망명이 미국 정보기관에서 영국이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마지막 망명은 1963년 1월 김 필비의 망명이었고, 플레밍은 아직 『두 번 산다』의 초고를 쓰고 있었다. 본드와 M의 브리핑은 플레밍이 12권의 책에서 망명 사건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다. 블랙은 M과 본드의 대화를 통해 플레밍이 영국의 쇠퇴를 망명과 1963년 프로푸모 사건을 배경으로 논의할 수 있게 했다고 주장한다. 두 명의 망명은 플레밍이 『카지노 로열』을 쓰기 직전에 일어났고, 라이셋에 따르면 이 책은 작가가 "버지스와 맥린과 같은 반역자를 낳을 수 있는 전후 세계의 불안한 도덕적 모호성을 반영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1965년 소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블랙은 자메이카 사법부가 독립적인 조사를 실시한 반면, CIA와 MI6는 "자메이카 CID의 가장 긴밀한 연락과 지시 아래" 행동한 것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비식민지, 독립 자메이카의 새로운 세계였으며, 영국 제국의 쇠퇴를 더욱 강조한다. 이러한 쇠퇴는 여러 소설에서 본드가 미국 장비와 인력을 사용하는 것에서도 반영되었다. 불확실하고 변화하는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해 플레밍은 『썬더볼』에서 러시아 조직인 스메르시를 국제 테러 단체 스펙터로 대체하여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는 악"을 허용했다. 블랙은 스펙터가 시리즈의 나머지 이야기에 일관성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시리즈 전반에 걸쳐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이라는 주제가 나타난다. ''타임스''지의 기자 벤 매킨타이어는 본드가 석탄과 많은 식량이 여전히 배급되던 시기에 "전후 영국의 긴축, 배급제, 그리고 다가오는 패권 상실의 예감에 대한 이상적인 해독제"였다고 생각한다. 플레밍은 종종 전쟁을 이용하여 등장인물의 선악을 설정했다. 007 뷰 투 어 킬에서 악당인 해머스타인은 전 게슈타포 장교이며, 동정적인 캐나다 왕립 기마경찰 장교인 존스 대령은 몽고메리 휘하 제8군에서 복무했다. 마찬가지로 ''문레이커''에서 드랙스(그라프 후고 폰 데어 드라케)는 "영국 신사로 가장한 과대망상적인 독일 나치"이며, 그의 조수 크렙스는 히틀러의 마지막 참모총장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플레밍은 "1950년대 영국의 또 다른 문화적 반감을 이용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부정적인 언론 보도의 쉬운 표적이 되었다."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재등장하는 독일에 대한 위협은 냉전에 대한 우려로 대체되었고, 소설은 그에 따라 초점을 바꾸었다.
시리즈에서 주기적으로 동지애 또는 우정이라는 주제가 등장하는데, 본드의 임무를 함께 수행하는 남성 동료가 등장한다. 레이먼드 벤슨은 본드가 동료들과 맺는 관계가 "본드의 캐릭터와 궁극적으로 소설의 주제적 연속성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한다"고 믿는다. '''살다보면 죽는 날이 온다'''에서는, 특히 본드가 레이터를 향해 보이는 상어 공격에 대한 반응에서 볼 수 있듯이, 쿼렐과 레이터 요원이 남성 친구 및 동맹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벤슨은 "본드가 친구들에게 느끼는 충성심은 그의 직업에 대한 헌신만큼 강하다"고 말한다. '''닥터 노'''에서 쿼렐은 "없어서는 안 될 동맹"이다. 벤슨은 그들의 관계에서 차별의 증거를 찾지 못했으며 쿼렐의 죽음에 대한 본드의 진심 어린 후회와 슬픔을 언급한다.
영화에서는 알 수 없지만, 저작(007 시리즈) 내에서는 식사 장면이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플레밍 자신도 대단한 미식가였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인지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건강하지 않다는 설정이지만, 플레밍도 초기부터 심장혈관 질환을 앓으며 생활했고, 영화화된 자신의 작품은 영화 제2편인 『007 러시아에서 사랑을 담아』까지밖에 볼 수 없었다.
3. 4. 비판
이언 플레밍의 작품과 창작 방식은 여러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썬더볼'' 소송: 1961년, 플레밍은 영화 각본 작업에 함께 참여했던 케빈 맥클로리, 잭 휘팅햄과의 협업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 ''썬더볼''을 집필했다. 그러나 맥클로리와 휘팅햄은 플레밍이 자신들의 기여를 무시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두 차례의 법정 공방 끝에 플레밍은 맥클로리에게 합의를 제안했고, 맥클로리는 시나리오의 문학 및 영화 권리를, 플레밍은 소설의 권리를 얻었다. 소설에는 "케빈 맥클로리, 잭 휘팅햄, 작가의 시나리오 각색을 바탕으로"라는 문구가 명시되었다.
-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1964년 1월, 플레밍은 마지막 소설인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초고를 작성했지만,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편집자 윌리엄 플로머에게 재작성을 요청했지만, 플로머는 출판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플레밍을 설득했다.
- 쿠웨이트 정부의 검열: 1960년, 플레밍은 쿠웨이트석유회사의 의뢰로 쿠웨이트와 그 석유 산업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 그러나 쿠웨이트 정부는 원고의 일부 내용, 특히 쿠웨이트의 과거에 대한 언급을 문제 삼아 출판을 승인하지 않았다.
- ''첩보원 0011'': 1964년, 제작자 노먼 펠튼은 플레밍에게 텔레비전 스파이 시리즈 집필을 요청했고, 플레밍은 나폴레옹 솔로와 에이프릴 댄서 캐릭터의 이름을 포함한 여러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러나 플레밍은 이온 프로덕션의 요청에 따라 프로젝트에서 철회했는데, 이는 본드 영화와 겹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4. 기타 작품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부터 배신이라는 주제가 강하게 드러났다. 본드의 《카지노 로열》의 표적, 르 시프르는 프랑스 공산당 노동조합의 자금책이었고, 제5열의 암시는 공산주의의 노동조합 영향력이 언론과 의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특히 1951년 버지스와 매클린의 망명 이후 영국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1] "내부의 배신자"라는 주제는 《살고 죽고》와 《문레이커》에서도 계속되었다.[2]
5. 유산과 영향
레이먼드 벤슨은 이 시리즈의 가장 명확한 주제가 선과 악의 대결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골드핑거》에서 성 조지(Saint George) 모티프로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책에서 "본드는 지쳐 한숨을 쉬었다. 다시 한번 싸움터로, 친구여! 이번에는 정말 성 조지와 용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성 조지는 서둘러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라고 명시적으로 언급된다. 블랙은 성 조지의 이미지가 영국 전체가 아닌 영국의 인격화라고 지적한다.
본드 소설들은 또한 영미 관계 문제를 다루었는데, 이는 미국의 서방 방위에서의 중추적 역할을 반영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국을 유지하려는 영국 정부와 자본주의적 신세계 질서를 원하는 미국의 욕망 사이에 긴장이 표면화되었지만, 플레밍은 이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대신 "영국 제국 통치와 행동의 정상성에 대한 인상"을 만들었다. 작가이자 언론인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고전적인 본드 이야기의 중심적인 역설은 공산주의에 대한 영미 연합의 전쟁에 표면적으로 헌신하고 있지만,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경멸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플레밍은 두 국가 사이의 이러한 긴장을 알고 있었지만, 강하게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킹즐리 에이미스는 그의 본드 탐구서인 《제임스 본드 도서》에서 "라이터는 인물 설정으로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 그는 미국인으로서 영국인인 본드의 명령을 받고, 본드가 끊임없이 그보다 더 잘 해낸다"고 지적했다.
《골드핑거》, 《살고 죽게 놔둬》, 《닥터 노》 세 편의 소설에서 영국 요원인 본드는 미국 문제로 판명되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 블랙은 《닥터 노》에서 위협받고 있는 것이 미국의 자산이지만, 영국 요원과 영국 군함인 HMS ''나르빅''이 영국 군인들과 함께 소설 마지막에 섬으로 파견되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플레밍은 미국에 대해 점점 더 냉소적으로 되었고, 그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소설인 《너는 두 번만 산다》의 논평은 이를 반영한다. 본드의 다나카의 논평에 대한 반응은 초기 작품에서 본드와 라이터 사이의 따뜻하고 협력적인 관계와는 대조적으로 영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 악화를 반영한다.
1950년대 후반, 작가 제프리 젠킨스는 플레밍에게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배경으로 한 본드 소설을 쓸 것을 제안하고, 자신의 줄거리 개요를 보냈는데, 젠킨스에 따르면 플레밍은 그것이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플레밍 사후, 본드 출판사 글라이드로즈 프로덕션은 젠킨스에게 후속 본드 소설 《퍼 파인 아운스》 집필을 의뢰했지만, 출판되지는 않았다. 1968년 킹즐리 에이미스의 《대령 선》(가명 "로버트 마크햄"으로 발표)[30]를 시작으로 여러 작가들이 본드 소설 집필을 의뢰받았으며, 그중 세바스찬 폴크스는 2008년 플레밍의 100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아이언 플레밍 퍼블리케이션즈로부터 새로운 본드 소설 집필을 요청받았다.[31]
플레밍은 생전 3천만 권의 책을 판매했고, 사후 2년 동안 그 두 배의 책이 팔렸다. 2008년 《더 타임스》는 플레밍을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목록에서 14위로 선정했다.[32] 2002년 아이언 플레밍 퍼블리케이션즈는 영국에서 처음 출판된 최고의 스릴러, 모험 또는 스파이 소설에 수여되는 영국추리작가협회 아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 상을 발표했으며, 범죄 작가 협회가 시상한다.
1962년 《007 살인번호》로 시작된 이온 프로덕션의 본드 영화 시리즈는 플레밍 사후에도 계속되었다. 이온 프로덕션에서 제작하지 않은 두 편의 영화를 포함하여 이온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영화는 25편이며, 가장 최근 작품인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2021년 9월에 개봉되었다.[33] 이온 프로덕션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62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최고 수익을 올린 영화 시리즈 중 하나가 되었다.[34]
영화와 문학에서 본드의 영향은 《오스틴 파워》 시리즈,[35] 《캐리 온 스파이잉》[36] 및 제이슨 본 캐릭터 등의 영화와 책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2011년 플레밍은 국제 공항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최초의 영어권 작가가 되었다. 자메이카 오라카베사 근처의 아이언 플레밍 국제공항은 2011년 1월 12일 자메이카 총리 브루스 골딩과 플레밍의 조카 루시에 의해 공식적으로 개장되었다.[37] 인디애나 대학교의 릴리 도서관에는 플레밍의 원고와 초판본뿐만 아니라 그가 소장했던 희귀 서적들도 소장되어 있다.[38]
2023년, 아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여러 인종차별적 비하어와 언급을 삭제하여 재출판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각 책의 서두에는 "이 책은 현대 독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용어와 태도가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쓰여졌습니다. 이 판본에서는 원본 텍스트와 설정 시대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여러 가지 업데이트가 이루어졌습니다."라는 면책 조항이 추가되었다.[39][40] 원본 버전의 대부분은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캐나다에서 이용할 수 있다.
플레밍의 삶은 2024년 출판된 864페이지 분량의 전기 《아이언 플레밍: 완벽한 남자》의 주제이며, 플레밍의 유족의 도움을 받아 완성되었다.[41][42] 이 책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 니콜라스 셰익스피어가 저술했다.[43]
플레밍의 생애를 다룬 영상 작품은 다음과 같다:
- 《골드아이: 이언 플레밍의 비밀스러운 삶(Goldeneye: The Secret Life of Ian Fleming)》, 1989년. 찰스 댄스가 플레밍 역을 맡은 텔레비전 영화. 제2차 세계 대전 중 플레밍의 삶, 그의 연애 생활, 그리고 제임스 본드의 집필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다.[49]
- 《스파이메이커: 이언 플레밍의 비밀스러운 삶(Spymaker: The Secret Life of Ian Fleming)》, 1990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배경으로 한 본드 스타일의 모험에서 숀의 아들 제이슨 코너리가 플레밍 역을 맡은 텔레비전 영화이다.[50]
- 《이언 플레밍: 본드의 창조자(Ian Fleming: Bondmaker)》, 2005년. 2005년 8월 28일 BBC에서 처음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다큐멘터리. 벤 대니얼스가 플레밍을 연기했다.[51]
- 《이언 플레밍: 본드가 시작된 곳(Ian Fleming: Where Bond Began)》, 2008년. 2008년 10월 19일 BBC에서 방영된 이언 플레밍의 삶에 대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전직 본드걸 조안나 럼리(Joanna Lumley)가 진행했다.[52]
- 2011년 영화 《영웅의 시대(Age of Heroes)》는 제30 코만도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하며, 제임스 더시가 플레밍을 연기했다.[53]
- 《플레밍: 본드가 되고자 했던 남자(Fleming: The Man Who Would Be Bond)》, 2014년 1월과 2월에 BBC 아메리카에서 방영된 4부작 미니시리즈로, 도미닉 쿠퍼가 주연을 맡았다.[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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