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동 (서울)
1. 개요
이화동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법정동으로, 이화장(梨花莊)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동숭동, 연건동과 함께 이화동의 법정동을 이루며, 조선시대에는 빼어난 경관으로 도성 안 5대 명소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주요 유적으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거주했던 이화장, 구 서울대학교 본관, 이화 벽화마을 등이 있으며, 서울대학교병원,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등 교육 및 의료 시설이 위치해 있다.
| 이름 | 이화동 |
|---|---|
| 한글 표기 | 이화동 |
| 한자 표기 | 梨花洞 |
| 로마자 표기 | Ihwa-dong |
| 매큔-라이샤워 표기 | Ihwa tong |
| 면적 | 0.78 km² |
| 국가 | 대한민국 |
|---|---|
| 특별/광역시 | 서울특별시 |
| 자치구 | 종로구 |
| 하위 법정동 | 이화동, 연건동, 동숭동 |
| 인구 (2001년) | 11,722명 |
|---|---|
| 인구 (2012년 8월 1일) | 9,637명 |
| 인구 (2022년 8월) | 7,161명 |
| 세대수 (2012년 8월 1일) | 4,562세대 |
| 세대수 (2022년 1월 31일) | 4,311세대 |
| 주민센터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장길 33 |
|---|---|
| 홈페이지 | 종로구 이화동 주민센터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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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행정동 -
삼청동
삼청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법정동이자 행정동으로, 이름의 유래는 삼청전 또는 산, 물, 사람의 맑음에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시대 진장방 지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는 주요 기관과 유적이 위치하고 안국역이 인근에 있다. -
서울 종로구의 행정동 -
평창동
평창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쪽에 위치한 동으로, 조선시대 평창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고급 주택가와 문화 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다양한 문화재와 촬영지가 있는 곳이다. -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 -
중구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중구는 부산의 중심지로, 과거 왜관이 위치했으며 부산부청과 부산시청이 있었고 현재는 교통의 요지이자 다양한 관광 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 -
한남동
한남동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하며 성동구, 이태원동, 보광동과 접하고 한강과 마주하며, 한남대로를 통해 강남과 연결되고 능터골 전설이 전해지며, 한남역, 한강진역과 한남대교, 한남대로, 소월로 등의 교통 요충지이며, 서울한남초등학교, 리움미술관, 백범김구기념관 등 교육 및 문화 시설이 위치한 지역이다. -
대한민국의 동 -
남영동
남영동은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하며, 과거 군영에서 유래되었으며, 현재는 주한미8군 용산기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KTX, 경부선, 경의선 등이 지나는 서울역과 지하철 1호선 남영역, 4호선 숙대입구역 등의 주요 교통시설이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다. -
대한민국의 동 -
행정동
행정동은 법정동을 기준으로 설치되며, 행정력 효율성을 위해 법정동을 통합하거나 분할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형태로 발전했다.
2. 지명 유래
이화동의 동명은 지금 이화동 2번지에 있던 ‘이화장’에서 유래되었다. 이화동의 옛 마을로는 동숭동과 이화동에 걸쳐있던 쌍계동이 있다. 기묘한 암석 울창한 수림에 두 줄기의 맑은 시냇물까지 있으므로 조선시대에는 삼청(三淸)·인왕(仁王)·쌍계(雙鷄)·백운(白雲)·청학(淸鶴)이라 하여 도성안의 5대 명소 가운데 세 번째로 꼽혔다.
2.1. 동숭동
이화장에서 이화동의 동명이 유래되었다. 이화동과 동숭동에 걸쳐 있던 쌍계동은 기묘한 암석과 울창한 수림, 두 줄기의 맑은 시냇물 덕분에 조선시대 도성 안 5대 명소 중 하나로 꼽혔다.
동숭동은 1914년 4월 1일 경성부의 동명 제정 때 숭교방 동쪽에 있는 동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낙산 기슭에 위치한 동숭동은 경치가 아름답고, 성균관, 창경궁, 배오개시장과 가까워 마을 형성 여건이 좋았다.
연건동은 연화방과 건덕방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연건동에는 과실나무가 많아 '과동', '과목동'이라 불린 곳(22통 일대)과 남이 탑이 있어 '남미탑동', '남이탑골'이라 불린 곳(126번지 일대) 등 자연부락이 여럿 남아있다. 조선 세조 때 명장 남이 장군의 집터는 유자광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은 남이 장군의 원한 때문에 폐가가 되었다가, 1818년 (조선 순조 18년) 남이 장군이 복권된 후 사당이 지어지고 탑이 세워졌다.
2.2. 연건동
이화동의 동명은 지금 이화동 2번지에 있던 ‘이화장’에서 유래되었다. 이화동의 옛 마을로는 동숭동과 이화동에 걸쳐있던 쌍계동이 있다. 기묘한 암석 울창한 수림에 두 줄기의 맑은 시냇물까지 있으므로 조선시대에는 삼청(三淸)·인왕(仁王)·쌍계(雙鷄)·백운(白雲)·청학(淸鶴)이라 하여 도성안의 5대 명소 가운데 세 번째로 꼽혔다.
동숭동은 1914년 4월 1일 경성부의 동명제정 때 숭교방 동쪽에 있는 동이라 하여 동숭동이 동명이 유래되었다. 낙산 정상 부분부터 기슭 전체를 차지하는 동숭동은 일찍부터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았고, 성문 가까이 있는 도성 안 마을인데다가, 성균관과 창경궁·배오개시장이 머지않은 곳에 있어 마을의 형성 여건이 좋았다. 따라서 현재까지 여러 개의 자연부락 이름이 남아 전한다.
연건동의 동명은 연화방과 건덕방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이래 오랫동안 주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는 연건동에는 자연부락명이 여럿 남아 있다. 조선 세조 때의 명장이며 태종의 외손자인 남이 장군의 집터인데 장군이 유자광의 모함을 입어 억울하게 죽은 후 원한 때문에 터가 세다 하여 이곳에 아무도 살지 않게 되자 폐가가 되어 쑥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3. 역사
(내용 없음)
5. 유적
이화장(梨花莊)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거주하던 곳으로, 사적 제497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실업가 김종익(金鍾翊, 1886~1937)이 1934년경 짓고 1955년까지 신익희의 사저로 쓰이던 낙산장(駱山莊) 터는 1981년 헐려 연립주택이 들어섰으며, 위치는 동숭동 129번지이다. 인조의 아들 인평대군의 집터인 석양루 (夕陽樓) 터는 종로구 새마을회관 입구 왼편 화단에 안내판이 있다.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관을 제작 및 수리하던 장생전 (長生殿) 터, 조선 초의 문신 김린(金麟)의 집터인 쌍계재 (雙溪齋) 터, 조선 전기의 무신 남이의 집터(연건동 126번지), 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 1415~1477)의 집터(연건동 275번지), 신숙주의 손자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집터(동숭동), 조선 중기의 문신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집터(연건동), 소설가 김훈이 유년 시절 거주하던 집터, 내간정 (來澗亭) 터(동숭동) 등이 있다.
창경궁의 후원인 함춘원, 장조의 사당 경모궁이 위치하던 서울 경모궁지는 연건동 28-2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37호로 지정되었다. 경성제국대학의 본관 건물로 1931년 10월 준공된 구 서울대학교 본관은 동숭동 1-130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78호로 지정되었다. 1912년경 조선총독부의 중앙시험소 건물로 준공되어 현재 한국방송통신대 별관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은 동숭동 199-1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79호로 지정되었다. 1907년에 광제원 등을 통합하여 설립한 대한의원의 본관 건물로 1908년 11월 준공된 대한의원 본관은 연건동 28-2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48호로 지정되었다.
이화 벽화마을은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달동네로, 적산 가옥과 1960~70년대의 주택이 있으며, 서울특별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광복 이후 이승만 정부 때 1층에 온돌을 놓고 2층에 다다미를 놓아 지은 국민주택이 낙산성곽서1길 일대에 남아 있다.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효종)이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머무를 때 나인 홍덕이 김치를 담가 효종에게 드렸는데, 즉위 이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낙산 중턱의 채소 밭을 주었다 하여 붙은 이름인 홍덕이밭 (弘德-) 터는 낙산공원에 복원되었다. 정조 때의 화가 강세황이 이화장 뒤편 개울가 바위에 ‘紅泉翠壁(홍천취벽)’이라고 각자를 새겼으나, 4·19혁명 이후 계곡을 메우고 집이 들어서면서 땅에 묻혔다고 하는 홍천취벽 각자도 이 지역에 있었다.
5.1. 주요 유적
이화장(梨花莊)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거주하던 곳으로, 사적 제497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실업가 김종익(金鍾翊, 1886~1937)이 1934년경 낙산장(駱山莊) 터를 세우고, 1955년까지 신익희의 사저로 쓰이다. 1981년 헐려 연립주택이 들어섰으며, 위치는 동숭동 129번지이다. 인조의 아들 인평대군의 집터인 석양루 (夕陽樓) 터는 종로구 새마을회관 입구 왼편 화단에 안내판이 있다.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관을 제작 및 수리하던 장생전 (長生殿) 터, 조선 초의 문신 김린(金麟)의 집터인 쌍계재 (雙溪齋) 터, 조선 전기의 무신 남이의 집터, 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 1415~1477)의 집터, 신숙주의 손자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집터, 조선 중기의 문신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집터, 소설가 김훈이 유년 시절 거주하던 집터, 내간정 (來澗亭) 터도 이화동에 위치하였다.
창경궁의 후원인 함춘원, 장조의 사당 서울 경모궁지는 연건동 28-2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37호로 지정되었다. 경성제국대학의 본관 건물로 1931년 10월 준공된 구 서울대학교 본관은 동숭동 1-130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78호로 지정되었다. 1912년경 조선총독부의 중앙시험소 건물로 준공되었으며, 현재 한국방송통신대 별관으로 쓰이고 있는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는 동숭동 199-1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79호로 지정되었다. 1907년에 광제원 등을 통합하여 설립한 대한의원의 본관 건물인 대한의원 본관은 1908년 11월 준공되었고, 연건동 28-2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48호로 지정되었다.
이화 벽화마을은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달동네로, 적산 가옥과 1960~70년대의 주택이 있으며, 서울특별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광복 이후 이승만 정부 때 1층에 온돌을 놓고 2층에 다다미를 놓아 지은 국민주택이 낙산성곽서1길 일대에 남아 있다.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효종)이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머무를 때 나인 홍덕이 김치를 담가 효종에게 드렸는데, 즉위 이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낙산 중턱의 채소 밭을 주었다 하여 붙은 이름인 홍덕이밭 (弘德-) 터는 낙산공원에 복원되었다. 정조 때의 화가 강세황이 이화장 뒤편 개울가 바위에 ‘紅泉翠壁(홍천취벽)’이라고 각자를 새겼으나, 4·19혁명 이후 계곡을 메우고 집이 들어서면서 땅에 묻혔다고 한다.
5.2. 기타 유적
이화장(梨花莊)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거주하던 곳으로, 사적 제497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실업가 김종익(金鍾翊, 1886~1937)이 1934년경 짓고 1955년까지 신익희의 사저로 쓰이던 낙산장(駱山莊) 터는 1981년 헐려 연립주택이 들어섰으며, 위치는 동숭동 129번지이다. 인조의 아들 인평대군의 집터인 석양루 (夕陽樓) 터는 종로구 새마을회관 입구 왼편 화단에 안내판이 있다.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관을 제작 및 수리하던 장생전 (長生殿) 터, 조선 초의 문신 김린(金麟)의 집터인 쌍계재 (雙溪齋) 터, 조선 전기의 무신 남이의 집터(연건동 126번지), 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 1415~1477)의 집터(연건동 275번지), 신숙주의 손자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집터(동숭동), 조선 중기의 문신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집터(연건동), 소설가 김훈이 유년 시절 거주하던 집터, 내간정 (來澗亭) 터(동숭동) 등이 있다.
창경궁의 후원인 함춘원, 장조의 사당 경모궁이 위치하던 서울 경모궁지는 연건동 28-2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37호로 지정되었다. 경성제국대학의 본관 건물로 1931년 10월 준공된 구 서울대학교 본관은 동숭동 1-130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78호로 지정되었다. 1912년경 조선총독부의 중앙시험소 건물로 준공되어 현재 한국방송통신대 별관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은 동숭동 199-1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79호로 지정되었다. 1907년에 광제원 등을 통합하여 설립한 대한의원의 본관 건물로 1908년 11월 준공된 대한의원 본관은 연건동 28-2번지에 위치하며, 사적 제248호로 지정되었다.
이화 벽화마을은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달동네로, 적산 가옥과 1960~70년대의 주택이 있으며, 서울특별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광복 이후 이승만 정부 때 1층에 온돌을 놓고 2층에 다다미를 놓아 지은 국민주택이 낙산성곽서1길 일대에 남아 있다.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효종)이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머무를 때 나인 홍덕이 김치를 담가 효종에게 드렸는데, 즉위 이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낙산 중턱의 채소 밭을 주었다 하여 붙은 이름인 홍덕이밭 (弘德-) 터는 낙산공원에 복원되었다. 정조 때의 화가 강세황이 이화장 뒤편 개울가 바위에 ‘紅泉翠壁(홍천취벽)’이라고 각자를 새겼으나, 4·19혁명 이후 계곡을 메우고 집이 들어서면서 땅에 묻혔다고 하는 홍천취벽 각자도 이 지역에 있었다.
6. 교통
혜화역에서 서울 지하철 4호선을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