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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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는 1957년에 개봉한 영화로,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을 다룬다. 린드버그가 뉴욕에서 파리까지의 비행을 준비하며 겪는 일들을 플래시백 기법을 통해 보여준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린드버그 역을 맡았으며, 영화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특수 효과와 스튜어트의 연기는 칭찬을 받았다. 195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 후보에 올랐으며, 한국에서는 여러 차례 제목이 변경되어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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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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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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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The Spirit of St. Louis |
감독 | 빌리 와일더 |
제작자 | 리랜드 헤이워드 |
원작 | 찰스 린드버그,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1953년 책) |
각본 | 찰스 레더러, 웬델 메이스, 빌리 와일더 |
주연 | 제임스 스튜어트 |
음악 | 프란츠 왁스만 |
촬영 | 로버트 버크스, J. 페버렐 말리 |
편집 | 아서 P. 슈미트 |
제작사 | 워너 브라더스 |
배급사 | 워너 브라더스 |
개봉일 | 1957년 2월 21일 (미국) |
상영 시간 | 135분 |
제작 국가 | 미국 |
언어 | 영어 |
제작비 | 700만 달러 |
흥행 수입 | 260만 달러 |
일본 개봉일 | 1957년 8월 15일 |
일본 배급 수입 | 1억 1917만 엔 |
스태프 | |
로버트 버크스 | 로버트 버크스 Jr. |
2. 줄거리
영화는 찰스 린드버그의 역사적인 뉴욕-파리 간 대서양 횡단 비행 전야인 1927년 5월 19일 밤, 롱아일랜드의 호텔에서 시작한다. 잠 못 이루는 린드버그는 플래시백을 통해 그의 비행 경력을 회상한다. 영화는 이러한 플래시백을 통해 1923년의 첫 단독 비행부터 곡예 비행단 시절, 육군 비행 훈련, 우편 항공 조종사 경험, 오르테이그 상 도전을 위한 자금 확보와 ''세인트루이스의 정신''호의 설계 및 제작 과정을 보여준다.
마침내 날씨가 개어 루즈벨트 필드에서 어려운 이륙에 성공한 린드버그는 40시간에 걸친 단독 비행에 나선다. 그는 수면 부족과 기체 착빙, 추측 항법의 어려움 등 여러 난관과 싸워나간다.
기나긴 비행 끝에 마침내 아일랜드 해안을 발견하고 영국 해협을 건너, 영웅의 도착을 기다리는 인파로 가득한 파리의 르 부르제 공항에 성공적으로 착륙한다. 착륙과 동시에 그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국제적인 영웅으로 떠오르고, 뉴욕으로 귀환하여 수백만 명이 환호하는 대규모 테이프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된다.
2. 1. 플래시백
영화는 찰스 린드버그가 역사적인 비행을 하루 앞둔 1927년 5월 19일 밤, 뉴욕 롱아일랜드의 루즈벨트 필드 근처 호텔에서 시작한다. 일주일간 계속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잠을 청하려 하지만, 잠 못 이루는 린드버그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의 친구 프랭크 마호니는 기자들로부터 그의 방문을 지키고 있다.플래시백을 통해 린드버그의 비행 경력이 상세히 그려진다. 1923년의 첫 단독 비행을 시작으로, 곡예 비행단에서의 활동, 미 육군에서의 비행 훈련, 비행 교관 및 우편 항공 조종사 시절의 경험 등이 포함된다. 특히 우편 항공 조종사 시절, 낡은 드 하빌랜드 복엽기를 몰고 시카고로 향하던 중 악천후를 만나 연료 부족으로 비상 탈출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는 추락한 비행기에서 우편물을 회수한 뒤 기차로 시카고로 이동해야 했다. 이때 한 정장 판매원으로부터 뉴욕-파리 무착륙 비행 성공자에게 주어지는 오르테이그 상과, 이 상에 도전하다 목숨을 잃은 비행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파리 호텔 운영자 레이먼드 오르테이그가 제정한 이 상은 어느 방향으로든 비행을 완수한 사람에게 수여될 예정이었다.[5]
오르테이그 상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린드버그는 램버트-세인트루이스 비행장의 작은 식당에서 뉴욕의 컬럼비아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벨랑카 고익 단엽기 구매를 문의한다. 항공기 가격으로 15000USD를 제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컬럼비아 측이 조종사를 직접 선택하겠다고 고집하면서 계약은 무산된다. 이에 린드버그는 세인트루이스의 재정가들에게 자신의 대서양 횡단 계획을 설명하며 후원을 요청한다. 그의 비전에 공감한 후원자들은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이 역사적인 도전에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후 린드버그는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작은 항공기 제조업체인 라이언 항공사를 찾아간다. 라이언 항공사의 소유주이자 사장인 프랭크 마호니는 90일 안에 비행 가능한 단엽기를 제작하겠다고 약속한다. 수석 엔지니어 도널드 홀과 함께 설계 작업이 진행되었고,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라디오나 낙하산 같은 무거운 장비는 탑재하지 않기로 한다. 항법 역시 추측 항법에 의존할 계획이었으며, 자동 조종 장치 없이 40시간 동안 깨어 있어야 하는 극한의 도전이었다. 라이언 항공사의 직원들은 밤낮없이 작업에 매달려 62일 만에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호를 완성한다. 하지만 이 무렵 프랑스의 뇌제세르와 콜리가 먼저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한다.
완성된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호를 몰고 뉴욕으로 향하는 길에 린드버그는 램버트 필드에 들러 투자자들에게 비행기를 선보인다. 루즈벨트 필드에서 최종 비행 준비를 하며 450갤런의 연료 탑재를 확인한다. 비좁고 전방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조종석 때문에 자기 나침반은 머리 위에 설치해야 했는데,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의 컴팩트 거울을 껌으로 붙여주어 나침반을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마호니는 몰래 성 크리스토퍼 메달을 샌드위치 가방에 넣어둔다.
날씨가 개이자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호는 진흙탕 활주로를 힘겹게 달려 전선과 나무 꼭대기를 아슬아슬하게 넘으며 이륙에 성공한다. 신문 헤드라인은 "린디 출발!"이라고 알린다. 비행 중 린드버그는 시간마다 연료 탱크를 전환하며 기체 균형을 맞춘다. 케이프 코드 상공을 지날 무렵, 그는 이미 28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졸음이 밀려올 때마다 조종석으로 날아든 파리 한 마리가 잠을 깨우기도 하고, 과거 철로나 짧은 침대, 풍차 아래에서 쪽잠을 자던 기억, 첫 비행기였던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커티스 제니를 사기 위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팔았던 기억(노바스코샤 상공), 플라잉 서커스 단원으로 미드웨스트 전역에서 곡예 비행을 하던 시절(대서양 상공) 등을 떠올린다.
비행 18시간이 지났을 때 날개와 엔진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며 비행기가 고도를 잃기 시작하자, 린드버그는 잠시 항로를 변경하여 따뜻한 공기층으로 이동해 얼음을 녹인다. 잠시 멈췄던 엔진도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침반이 고장 나 별을 보며 항로를 찾아야 했다. 새벽녘에는 극심한 피로로 잠이 들었고, 비행기는 서서히 바다를 향해 넓은 나선형으로 하강하기 시작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컴팩트 거울에 반사된 아침 햇살이 그의 눈을 비추면서 잠에서 깨어나 간신히 조종간을 바로잡는다.
마침내 갈매기를 발견하고 육지가 가까워졌음을 직감한 린드버그는 아일랜드의 딩글 만 상공에 도착했음을 확인한다. 샌드위치를 꺼내다 마호니가 몰래 넣어둔 성 크리스토퍼 메달을 발견하고 계기판에 건다. 영국 해협과 프랑스 해안을 건너 어둠이 내릴 무렵 센 강을 따라 파리로 향한다. 마침내 파리의 불빛을 발견하고 르 부르제 공항에 접근하지만, 환영 인파가 쏘아 올린 조명과 아래쪽의 수많은 군중 및 차량 불빛 때문에 방향 감각을 잃는다. 그는 "오, 신이시여, 도와주세요!"라고 속삭이며 착륙을 시도하고, 마침내 안전하게 땅에 내린다.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전에 수많은 인파에 휩싸인 린드버그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 격납고로 향하며, 20만 명에 달하는 군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국가적 영웅이 되어 400만 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한 테이프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된다.
2. 2. 대서양 횡단 비행
날씨가 맑아지자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은 진흙 투성이 활주로를 따라 굴러가며 전선과 나무 꼭대기를 간신히 넘어 이륙에 성공한다. 신문 헤드라인은 "린디 출발!"이라고 소식을 전했다. 비행 중 찰스 린드버그는 매 시간마다 항공기의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연료 탱크를 전환해야 했다.케이프 코드 상공을 지날 무렵, 그는 이미 28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졸음이 몰려올 때 조종석 안으로 들어온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잠시 정신을 차리기도 한다. 노바스코샤 상공에서는 아래를 지나가는 오토바이 운전자를 보고, 과거 자신의 첫 비행기였던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군용 커티스 제니를 사기 위해 일부를 교환했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떠올린다.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 위에서는 플라잉 서커스 단원으로 미국 중서부 전역에서 곡예 비행을 했던 시절을 회상한다.
이륙 18시간 후, 날개와 엔진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서 비행기는 고도를 잃기 시작한다. 린드버그는 즉시 항로를 변경하여 더 따뜻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고, 다행히 얼음이 녹아 떨어져 나갔다. 잠시 멈췄던 엔진도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항로를 잡으려 할 때 자기 나침반이 고장 나기 시작하여 별을 보고 방향을 잡아야만 했다. 새벽녘에는 결국 잠에 빠져들었고, 비행기는 통제력을 잃고 바다를 향해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젊은 여성이 껌으로 붙여주었던 컴팩트 거울에 반사된 햇빛이 그의 눈을 비추었고, 그는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비행기의 제어력을 되찾았다.
갈매기를 발견한 린드버그는 육지가 가까워졌음을 직감한다. 아래 보이는 어부에게 신호를 보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마침내 육지를 발견했을 때 그곳이 아일랜드의 딩글 만임을 확인한다. 종이 봉투에서 샌드위치를 꺼내던 중, 친구 프랭크 마호니가 몰래 넣어둔 성 크리스토퍼 메달을 발견하고 계기판에 건다.
영국 해협과 프랑스 해안을 건너, 어둠이 내리자 센 강을 따라 파리로 향한다. 마침내 눈앞에 파리의 불빛이 나타나고, 그는 어둠 속에서 르 부르제 공항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공항에서 하늘로 쏘아 올리는 탐조등 불빛 때문에 방향 감각을 잃고, 아래쪽의 이상한 움직임과 불빛들을 목격한다. 이는 사실 그의 도착을 기다리는 수많은 군중과 차량 행렬이었으나, 혼란 속에서 그는 착륙을 시도하며 "오, 신이시여, 도와주세요!"라고 속삭인다.
무사히 착륙하여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을 멈추자마자, 수많은 인파가 비행기로 몰려든다. 섬광이 터지고 사진이 찍히는 가운데, 린드버그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올려져 승리감 속에 격납고로 옮겨진다. 지친 그는 마침내 약 20만 명에 달하는 군중이 자신과 그의 위업을 환호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온 린드버그는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고, 400만 명의 인파가 늘어선 성대한 테이프 퍼레이드로 환영받는다.
3. 등장인물
(내용 없음)
3. 1. 주연
- 제임스 스튜어트 - 찰스 린드버그 역
- 머레이 해밀턴 - 할란 A. "버드" 거니 역
- 패트리샤 스미스 - 미러 걸 역
- 바틀렛 로빈슨 - 벤자민 프랭크 마호니 역
- 아서 스페이스 - 도널드 A. 홀 역
- 마크 코넬리 - 허스먼 신부 역
- 찰스 와츠 - O.W. 슐츠 역
- 애런 스펠링 - 미스터 피어리스 역 (출연료 미기재)
- 리처드 디컨 - 찰스 A. 레빈 역 (출연료 미기재)
배역 이름 | 배우 | 일본어 더빙 | ||
---|---|---|---|---|
TV판 1 | TV판 2 | TV판 3 | ||
찰스 린드버그 | 제임스 스튜어트 | 스이무라 고로 | 시바 토시오 | 타카오카 켄지 |
벤자민 프랭크 마호니 (라이언사 사장) | 바틀렛 로빈슨 | 타카시로 준이치 | 토미타 코세이 | 이케다 마사루 |
도널드 A. 홀 (라이언사 주임 기술자) | 아서 스페이스 | 츠카다 마사아키 | 아리모토 킨류 | |
거울 소녀 | 패트리샤 스미스 | 야마자키 사도코 | ||
할란 A. "버드" 거니 | 머레이 해밀턴 | 등장 장면 컷 | 오츠카 호추 | |
하스먼 신부 | 마크 코넬리 | 마스오카 히로시 | 후지모토 조 | |
O・W・슐츠 (멜빵 판매원) | 찰스 와츠 | 등장 장면 컷 | 나카요스케 | |
내레이터 | 조 타츠야 |
1955년 8월 제작 시작 당시, 잭 워너는 린드버그 역으로 존 카를 고려했으나 카는 이를 거절했다.[27] 이와 관련하여 제임스 딘에 대한 도시전설이 있다. 1955년 중반 영화 '자이언트' 촬영 후, 제임스 딘이 찰스 린드버그 역을 제안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촬영 시작 전인 1955년 9월 30일 딘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딘의 나이는 25세로, 대서양 횡단 비행 당시의 린드버그와 같은 나이였다.[28]
제임스 스튜어트는 1954년부터 이미 린드버그 역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워너 브라더스 경영진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였지만, 열정적인 다이어트와 절제를 통해 1927년 당시 25세였던 린드버그의 외모에 가까워지려 노력했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를 통해 알려져 있다. 스튜어트는 평생에 걸쳐 린드버그와 비행에 대한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젊은 시절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에 크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정은 그가 비행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스튜어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실제로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하여 대령까지 진급했으며, 최종 계급은 예비역 공군 준장이었다. 결국 스튜어트는 린드버그 역을 맡게 되었지만, 촬영 후 그의 나이는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3. 2. 조연
- 패트리샤 스미스 - 미러 걸 역
- 바틀렛 로빈슨 - 벤자민 프랭크 마호니 역
- 마크 코넬리 - 허스먼 신부 역
- 아서 스페이스 - 도널드 A. 홀 역
- 찰스 와츠 - O.W. 슐츠 역
- 머레이 해밀턴 - 할란 A. "버드" 거니 역
- 리처드 디컨 - 찰스 A. 레빈 역 (출연료 미기재)
- 애런 스펠링 - 미스터 피어리스 역 (출연료 미기재)
- 얼빌 앨더슨
- 그리프 바넷
- 폴 버치
- 유진 보든
- 폴 브리니가
- 로버트 버튼
- 존 칼라일
- 버지니아 크리스틴
- 로버트 콘스웨이트
- 잭 댈리
- 로이 고든
- 데브 그리어
- 올린 하랜드
- 자니 리
- 넬슨 리
- 허버트 라이턴
- 모리스 맨슨
- 데이빗 오릭 맥디어먼
- 데이빗 맥마혼
- 고든 미첼
- 앤 모리슨
- 제임스 오레어
- 리 로버츠
- 시드 세일러
- 조지 셀크
- 맥스 와그너
- 레이 월커
- 할런 워드
- 로버트 윌리엄스
- 카리턴 영
- 치프 요러치
4. 제작
- 각색: 찰스 레더럴
- 원작자: 찰스 A. 린드버그
- 세트: 윌리엄 L. 쿠엘
4. 1. 기획 및 캐스팅

1955년 8월 제작이 시작될 당시,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의 대표 잭 워너는 찰스 린드버그 역할로 배우 존 커를 고려했으나, 커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7][27] 이 배역과 관련하여 제임스 딘에 대한 도시전설도 존재한다. 1955년 중반 영화 ''자이언트'' 촬영을 마친 딘에게 린드버그 역할이 제안되었지만, 영화 촬영 시작 전인 1955년 9월 30일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딘의 나이는 25세로, 1927년 린드버그가 역사적인 비행을 했을 때와 같은 나이였다.[7][8][28]
결국 린드버그 역할은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돌아갔다. 스튜어트는 이미 1954년 초부터 워너 브라더스 경영진에게 해당 역할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로비를 벌였다고 알려져 있다.[7] 그는 이 역할을 위해 출연료를 받지 않는 대신, 영화 총수익의 일부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다.[3] 영화 촬영 당시 스튜어트의 나이는 47세였는데, 1927년 당시 25세였던 린드버그의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 혹독한 식이 요법과 신체 단련을 감행했으며, 머리카락을 금발로 염색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영화에 대한 후반 검토 과정에서는 스튜어트의 나이가 역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9]
스튜어트는 평생 동안 항공 분야와 린드버그의 이야기에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린드버그의 단독 대서양 횡단 비행을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 중 하나로 꼽았으며,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비행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회고했다.[10] 실제로 스튜어트는 린드버그처럼 미국 공군 조종사로 복무했으며, 두 사람 모두 최종적으로 미국 공군 예비군에서 준장 계급으로 퇴역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11]
이 외에도 머레이 해밀턴 등이 출연했으며, 애런 스펠링은 초기 경력 시절 미스터 피어리스라는 단역으로 출연료 없이 등장하기도 했다.
4. 2. 촬영
1955년 8월 제작이 시작되었을 때, 잭 워너는 린드버그 역으로 존 커에게 제안했지만 거절했다.[7][8] 많은 자료에 따르면 스튜어트는 1954년 초부터 워너 브라더스 임원들에게 이 배역을 얻기 위해 로비를 했다고 한다.[7] 스튜어트는 총 수익의 일부를 받는 조건으로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3] 영화 촬영 당시 47세였던 스튜어트는 1927년 당시 25세였던 린드버그와 비슷해 보이기 위해 혹독한 식이 요법과 훈련을 받았고, 머리카락도 금발로 염색했다. 스튜어트가 결국 린드버그 역으로 캐스팅되었지만, 그의 나이는 후반 작업 검토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9]
스튜어트는 평생 항공과 린드버그의 이야기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린드버그의 유명한 비행을 자신의 청소년기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기억하며, 이 사건이 그가 비행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했다.[10] 린드버그처럼 스튜어트 역시 미국 공군 조종사였으며, 두 사람 모두 미국 공군 예비군에서 준장 계급으로 퇴역했다.[11]
대서양 횡단 비행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 다양한 장소와 스튜디오 촬영에 사용할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복제품 3대가 총 130만달러의 비용으로 제작되었다.[12] 스튜어트는 린드버그의 감독하에 개조된 유사 기종인 라이언 브로엄 항공기를 개인적으로 구입하기도 했다. 1959년, 스튜어트는 이 항공기를 미시간 주 디어본에 있는 헨리 포드 박물관에 기증했다.[13] 제작된 복제품 중 하나는 샌디에이고 항공우주 박물관에 기증되었으나, 1978년 박물관이 위치했던 발보아 공원의 전기 건물 화재로 소실되었다.[14] 다른 복제품은 세인트루이스의 미주리 역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15] 지상 촬영용으로 제작된 비행 불가능한 복제품도 있으며, 이는 현재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국제공항에 전시되어 있다.[16]
주요 촬영은 캘리포니아 주 산타마리아에 위치했던 산타마리아 공항(현재 앨런 핸콕 칼리지 부지)에서 진행되었다. 항공 장면 촬영은 유명 스턴트 조종사 폴 만츠가 감독했으며, 촬영용 카메라 플랫폼으로 개조된 B-25 폭격기를 이용해 촬영했다.[17]
1955년 8월 사전 제작 단계에서 소규모 촬영팀이 뉴욕으로 파견되어 롱아일랜드의 루즈벨트 필드 장면을 촬영했다. 이후 대서양 횡단 비행의 초기 단계를 재현하기 위해 노바스코샤의 애팔래치아 산맥과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스에서 항공 장면을 촬영했다. 본 촬영은 1955년 9월 2일에 시작되었으며, 프랑스 베르사유 근처의 기앙쿠르 비행장(L'aérodrome de Guyancourtfra)에서 르 부르제 공항 장면을 촬영했다. 스튜어트의 다른 영화 촬영 일정 문제로 인해, 그가 직접 복제품을 조종하여 유럽 상공을 비행하는 장면 촬영은 포기해야 했고, 대신 사운드 스테이지에서 모형을 이용한 촬영으로 대체되었다. 영화 제작 일정은 가을 내내 중단되었다가 스튜어트가 다른 두 편의 영화를 마친 11월에 재개되었다. 당초 64일로 계획되었던 촬영 기간은 날씨 문제와 스튜어트의 부재로 인해 115일로 늘어났으며, 최종 촬영은 1956년 3월에 마무리되었다.[19] 영화 제작에는 총 700만달러의 비용이 소요되었다.[3]
애런 스펠링이 '미스터 피어리스'라는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크레딧에는 오르지 못했다.
5. 평가 및 영향
영화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는 개봉 당시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의 보슬리 크라우더는 흥미로운 전개에도 불구하고 주연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찰스 린드버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드러내지 못했다고 비판했지만,[20] 영화의 특수 효과와 스튜어트의 연기 자체에 대한 칭찬도 있었다. 1957년 타임지는 스튜어트가 린드버그 비행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당시의 감동을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옮겼다고 호평했다.[21]
영화는 1957년 2월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개봉하여 초기에는 워싱턴 생일 주간 흥행 기록을 세우는 등[1][2]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으나, 1957년 4월 정식 개봉 이후에는 당초 예산을 크게 초과한 제작비 등의 문제로 전반적인 흥행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는 재평가받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현대의 평가는 린드버그라는 인물의 묘사와 역사적인 비행 준비 과정을 체계적으로 그려낸 점에 주목한다. 스미소니언 협회는 이 영화를 "클래식" 시리즈의 일환으로 주기적으로 상영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디지털 기술로 복원된 DVD가 재출시되어 "매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작품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22]
5. 1. 비평
영화는 개봉 당시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의 보슬리 크라우더는 영화의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는 에피소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주연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찰스 린드버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그의 기본적인 본성, 가정생활, 또는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을 거의 볼 수 없다. 스튜어트가 평소처럼 소극적인 태도로 연기하는 그는 주로 전형적인 인물일 뿐이다. 기다림의 세월이 흐른 뒤, 그가 역사적인 역할을 하도록 특별히 운명 지어진 이유를 볼 수 있었다면 흥미로웠을 것이다.[20]
하지만 영화의 특수 효과와 스튜어트의 연기 자체는 칭찬받았다.
1957년 《타임》지는 스튜어트가 30년 전 린드버그의 업적에 대한 당시 대중의 인식을 스크린에서 성공적으로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스튜어트는 48세의 프로다운 소년 같은 면모를 보이며, 린드버그의 비행이 무모한 젊은 '비행 광'의 단순한 육체적 모험이 아니라 모든 진보의 패턴처럼 한 용감한 남자가 모든 인류를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파라클레토스임을 증명하는 정신의 여정이었다는 것을 당시 전 세계가 느꼈던 바를 거의 지속적으로 암시하는 데 성공했다.[21]
영화는 1957년 4월 20일 일반 개봉되었으나,[1] 당초 예산을 크게 초과한 제작비 등의 이유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영화는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현대의 평가는 린드버그의 인물 묘사와 역사적인 비행 준비 과정을 체계적으로 묘사한 점에 주목한다. 스미소니언 협회는 이 영화를 "클래식" 시리즈의 일부로 주기적으로 상영하고 있으며, 2006년 디지털화된 DVD 재출시 당시에는 "매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22]
5. 2. 흥행
영화는 개봉 당시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의 보슬리 크라우더는 영화 속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주연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린드버그의 인간적인 면모나 내면의 동기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20] 반면, 영화의 특수 효과와 제임스 스튜어트의 연기 자체에 대해서는 칭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1957년 타임지는 스튜어트가 30년 전 린드버그의 역사적인 비행이 단순한 모험이 아닌 인류의 진보를 위한 여정이었음을 당시 세계가 느꼈던 감동 그대로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전달했다고 호평했다.[21]영화는 1957년 2월 21일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처음 개봉했으며[1], 개봉 첫 주 워싱턴 생일 주간에는 당시로서는 최고 기록인 16만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리는 등[2] 초기 반응은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그러나 1957년 4월 20일 정식으로 일반 개봉했을 때[1],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는 전반적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이는 20개월에 걸친 제작 기간 동안 당초 예산의 두 배를 훌쩍 넘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점도 흥행 부진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영화는 재조명받으며 그 가치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 현대의 재평가는 린드버그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와 그의 역사적인 비행 준비 과정을 체계적으로 그려낸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미소니언 협회는 이 영화를 "클래식" 시리즈의 일환으로 주기적으로 상영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디지털 기술로 복원되고 소수의 특별 영상이 추가된 DVD가 재출시되어 "매혹적이다", "긴장감이 넘친다"는 등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22]
5. 3. 수상
1958년 아카데미상에서 Louis Lichtenfield|루이스 리히텐필드영어는 최우수 특수 효과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이 영화는 미국 영화 협회가 선정한 미국 영화 100선 목록에서 69위에 올랐다.6. 한국어 제목
1957년 일본에서 처음 공개되었을 때의 제목은 '파리'를 한자로 표기한 翼よ!あれが巴里の灯だ일본어였다.[29] 1966년 재상영 시에는 '파리' 부분을 가타카나로 바꾼 翼よ!あれがパリの灯だ일본어로 제목이 변경되었다.[30] 이 때문에 1966년 재상영 당시의 포스터와 팜플렛에는 '파리'가 가타카나로 표기되어 있다. 이후 1980년대에 일본 헤럴드 배급으로 다시 상영되었을 때는 원제인 翼よ!あれが巴里の灯だ일본어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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