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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주의 변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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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제주의 변증학은 20세기 네덜란드 신학자 코르넬리우스 반 틸에 의해 시작된 기독교 변증학의 한 종류이다. 이 변증학은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며,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전제한다. 반 틸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비기독교인은 중립적인 입장을 가질 수 없다고 보았으며, 초월적 논증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전제주의 변증학은 고든 클라크와 같은 후계자들을 통해 발전했으며, 다른 변증학 학파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 특징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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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주의 변증학
개요
유형기독교 변증학 학교
뿌리성경의 무오성 교리
기독교 신학
주요 지지자코르넬리우스 반틸
고든 클락
존 프레임
그레그 바흐센
R. C. 스프롤
피터 존스
스티븐 올린스키
핵심 개념
궁극적 전제다른 모든 믿음에 우선하며, 다른 믿음의 기준이 되는 믿음
기독교인의 경우 성경의 내용이 궁극적 전제가 되어야 함
신의 주권인간 사고 영역에서의 '기독교 신의 주권'을 강조
성경의 무오류성성경의 무오류성을 지식 영역에 적용
비판
문제점순환 논증의 가능성
비기독교 세계관과의 소통 어려움
지적 오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

2. 역사

전제주의 변증학의 기원은 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 로마서 1:18-22, 시편 18:2, 그리고 개신교 외경 지혜서 13:5 등이 그 예이다.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변증론에서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공통 기반이 신의 존재라고 보았으며, 아우구스티누스고백록에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당신이 나를 밝혀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여 전제주의의 힌트를 제시했다. 코르넬리우스 반 틸은 "인간의 마음"이 선천적으로 계시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근대 전제주의 변증학은 네덜란드 정통 장로교회 신학자 코르넬리우스 반 틸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반 틸은 192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신앙을 변증하기 위해 전제주의적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13] 그는 "전제주의"라는 용어를 싫어했지만, 중립적 토대를 부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데 유용하다고 여겨 받아들였다.

반 틸의 제자 그레그 바흐센은 전제주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바흐센 신학대학교는 여전히 전제주의 변증학을 가르치고 있다. 존 프레임 역시 전제주의적 접근 방식을 옹호한다.

1952년, 장로교 신학자 고든 클라크가 전제주의 변증학의 새로운 옹호자가 되었다. 그는 인식론의 우선 순위와 계시의 공리를 강조하며 반 틸보다 가정의 논리적 순서에 더 밀접하게 관련된 자신의 접근 방식을 "전제주의"라고 칭했다. 두 견해의 차이는 둘 사이에 상당한 갈등을 야기했다.[3][4][5]

2. 1. 전제주의 변증학의 기원

반틸의 변증학 체계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데 중점을 둔다. 기독교인은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를 믿는 반면, 비기독교인은 성경의 진리, 즉 하나님의 존재와 삼위일체 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논증이 가능하다. 즉, 비기독교인들은 본질적으로 중립적인 견해를 가질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존 프레임은 반틸의 변증학이 다른 변증학 방법들이 하나님의 불이해성, 인간의 전적인 타락, 자연 계시의 명확성, 하나님의 세상을 다스림 등의 교리를 약화시켰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는 신학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반틸의 변증학은 토머스 아퀴나스와 실증적 변증학의 논증 개념을 사용하지만, 그 방법이 중립적인 근거로 정당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틸학파는 이러한 믿음이 성경적 기초에만 정당하며, 초월적 논법 즉, 기초적 원칙에 대한 메타논증을 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반틸학파들은 또한 죄의 지적인(noetic) 효과(죄가 지성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사람의 부패가 하나님과 세계, 그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영역에서 진리를 알 수 없으며, 다른 형태의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C. S. 루이스가 말했듯이 사람은 벤치에 있고, 하나님은 부두에 있다는 것과 같다.

근대적 기원은 네덜란드 출신의 신학자이자 정통 장로교회의 교역자인 코르넬리우스 반 틸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반 틸은 192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신앙의 진실성을 옹호하기 위해 전제주의적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13] 그는 "전제주의"라는 용어를 개인적으로 싫어했는데, 이는 그가 생각하기에 그의 변증학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잘못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증거를 부인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진리에 대한 궁극적인 기준으로 성경의 우월성을 주로 강조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 용어가 변증학에 대한 중립적인 토대를 부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유용한 방법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의 제자인 그레그 바흐센은 반 틸의 전제주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바흐센 신학대학교는 여전히 커리큘럼에서 전제주의 변증학을 장려하고 있다. 또 다른 반 틸의 제자인 존 프레임 역시 전제주의적 접근 방식을 옹호하고 있는데, 그는 일반적으로 바흐센보다 반 틸의 사상에 더 비판적이다.

1952년, 전제주의 변증학은 장로교 신학자 고든 클라크라는 새로운 옹호자를 얻었다. 그는 변증학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이 인식론의 우선 순위와 계시의 공리를 강조하면서 반 틸보다 가정의 논리적 순서에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제주의"라는 용어를 받아들였다. 전제주의에 대한 두 견해의 차이점은, 그 수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 상당한 갈등을 야기했으며, 심지어 클라크와 반 틸이 모두 사망한 후에도, 존 로빈스(신학자이자 클라크의 전 제자)와 바흐센은 종종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다.[3][4][5]

일반적으로 반 틸의 접근 방식은 클라크의 접근 방식보다 훨씬 더 널리 알려져 있고 널리 퍼져 있다. 전제주의의 오래된 기원은 성서 자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로마서 1:18-22, 시편 18:2,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외경의 지혜서 13:5이다. 다마스쿠스의 요한의 변증론의 본질도 전제주의이며,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공통 기반은 신의 존재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도 힌트가 제시되었다고 한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당신이 나를 밝혀주셨기 때문입니다."(고백록 제1권, 1장) 이 설에 따라 반 틸은 "인간의 마음"은 선천적으로 계시에서 온다고 주장한다.(The Defense of the Faith, Ch. 5)

2. 2. 근대 전제주의 변증학의 발전

코르넬리우스 반 틸은 네덜란드 출신의 신학자이자 정통 장로교 교역자로, 1920년대에 믿음의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전제주의적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13] 반틸의 변증학 체계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구분을 정확히 하는 데 중점을 둔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를 믿는 반면, 비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진리, 즉 하나님의 존재와 삼위일체 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논증이 가능하며, 본질상 중립적 견해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제이다.

존 프레임은 반틸의 변증학이 다른 변증학 방법이 하나님의 불이해성, 인간의 전적인 타락, 자연 계시의 명확성, 하나님의 세상을 다스림 등의 교리를 약화시켰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신학적인 안목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틸의 변증학은 토머스 아퀴나스와 실증적 변증학의 논증 개념을 사용하지만, 그 방법이 중립적인 근거로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반틸학파는 이러한 믿음이 성경적 기초에만 정당하며, 초월적 논법 즉, 기초적 원칙에 대한 메타논증을 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반틸학파들은 또한 죄의 지적인(noetic) 효과(죄가 지성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사람의 부패가 하나님과 세계, 그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신의 영역에서 진리를 알 수 없으며, 다른 형태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반 틸은 "전제주의"라는 용어를 개인적으로 싫어했는데, 이는 그가 생각하기에 그의 변증학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잘못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증거를 부인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진리에 대한 궁극적인 기준으로 성경의 우월성을 주로 강조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는 이 용어가 변증학에 대한 중립적인 토대를 부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유용한 방법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마지못해 이 용어를 받아들였다.

그의 제자인 그레그 바흐센은 반 틸의 전제주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바흐센 신학대학교는 여전히 커리큘럼에서 전제주의 변증학을 장려하고 있다. 존 프레임 역시 전제주의적 접근 방식을 옹호하고 있다. 바흐센의 제자인 마이클 R. 버틀러는 신의 존재에 대한 초월적 논증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3][4][5]

3. 다른 변증학 학파와의 비교

코넬리우스 반 틸의 전제주의 변증학은 다른 변증학 학파들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구분: 반틸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았다. 기독교인은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를 믿는 반면, 비기독교인은 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은 전제주의 변증학의 핵심 전제 중 하나이다.

  • 중립성의 불가능성: 반틸은 비기독교인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고, 죄로 인해 타락했기 때문이다.

  • 죄의 지적인(noetic) 효과: 반틸은 죄가 인간의 지성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 세계, 그리고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 세계관의 중요성: 전제주의는 모든 사실이 특정 세계관 안에서 해석된다고 본다. 특히 기독교 세계관만이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틀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전제주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고전적 변증학, 증거주의 변증학과 다음과 같은 차이를 보인다.

  • 고전적 변증학과의 비교: 전제주의자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고전적 변증학이 비기독교인과의 공통 기반을 가정하고, 조각별 방법을 사용하여 신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에 비판적이다. 이들은 고전적 논증이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거나 불충분하며, 중립성 가정 자체가 비기독교적이라고 본다.[1]

  • 증거주의 변증학과의 비교: 증거주의 변증학은 성경의 역사적 기록 등을 근거로 기독교 신앙을 변호한다. 전제주의는 이러한 접근 방식이 세상이 신의 존재와 별개로 이해 가능하다는 가정을 전제한다고 비판한다. 대신 전제주의는 모든 사실을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귀류법을 통해 비기독교적 전제의 모순을 드러내려 한다.

  • 합리적 전제주의: 전제주의의 한 갈래인 합리적 전제주의는 이성을 모든 사상가에게 공통적인 사고의 법칙으로 전제한다. 그 후 의미에 대한 믿음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일관된 세계관을 구성한다. 철학자 수렌드라 간가딘은 "몇 가지는 분명하다. 기본적인 것들이 분명하다. 신과 인간, 선과 악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은 이성에 분명하다."[2]라고 주장하며, 지식에서 시작하여 신의 존재를 단계별로 논증한다.

3. 1. 고전적 변증학과의 비교

반틸의 변증학 체계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데 중점을 둔다. 기독교인은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를 믿지만, 비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존재와 삼위일체 등 성경의 진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에 이러한 논증이 가능하며, 이들은 본질적으로 중립적인 견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전제이다.

존 프레임은 반틸의 변증학이 다른 변증학 방법들이 하나님의 불이해성, 인간의 전적인 타락, 자연 계시의 명확성, 하나님의 세상을 다스림 등의 교리를 약화시켰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반틸은 토마스 아퀴나스실증적 변증학의 논증 개념을 사용하지만, 그 방법이 중립적인 근거로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반틸학파는 이러한 믿음이 성경적 기초에만 정당하며, 기초적 원칙에 대한 메타논증인 초월적 논법에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반틸학파는 죄가 지성에 미치는 영향(noetic effect), 즉 인간의 부패가 하나님과 세계,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자신의 영역에서 진리를 알 수 없으며, 다른 형태의 해석이 필요하다. 이는 C. S. 루이스의 비유처럼, 사람은 벤치에 있고 하나님은 부두에 있는 것과 같다.

전제주의자들은 다른 기독교 변증학 학파들이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별개로 세상이 이해 가능하다는 가정 하에, 중립적인 근거에서 기독교 성경과 신의 존재를 논증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고전적 변증학)가 비기독교인과의 공통 기반을 가정하고, 조각별 방법을 사용하여 신의 존재에 대한 논리적 증명을 통해 변증학의 첫 번째 측면에 집중한다고 묘사한다. 이들은 중립적인 사실의 공통 기반이 일반적인 신의 개념으로 이어지고,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 신의 특성 등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즉, 기독교 신학은 중립적인 공통 기반 위에 조각별로 구축된다.

전제주의자들은 고전적 논증의 많은 부분이 신의 존재나 성격을 증명하는 데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거나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1] 이들은 중립성 가정과 "블록 하우스" 또는 "조각별" 방법이 세계관의 통제적인 믿음 수준에서 시작하지 않고 비기독교적 가정을 암묵적으로 허용하여, 기독교적 "집"을 비기독교적 "기초" 위에 짓는다고 비판한다. 증거주의자들은 전제주의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공통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참조점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신념주의에 해당한다고 반박한다.

증거 변증학은 성경의 역사적 기록과 다른 진실 주장이 거짓보다 진실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성경 계시 전체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절대적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면 가장 진실할 가능성이 높은 설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반면 전제적 변증학은 비기독교인들의 가정과 행동이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신, 인간, 세상에 대한 믿음을 요구한다는 것을 논증한다. 이는 귀류법의 일종으로, 반대 세력을 자기 모순적인 입장에 놓이게 한다. 즉, 기독교 계시의 사실(실제)을 믿으면서 동시에 부인하는(말) 모순을 드러낸다. 증거 변증학은 자명하거나 세계관 중립적인 사실에 대한 공유된 수용을 바탕으로 구축하려 하지만, 전제적 변증학은 모든 사실을 이해 가능한 유일한 틀로서 기독교 세계관에 주장한다.

전제주의는 사고의 법칙(모든 사상가에게 공통적인)으로서의 이성을 전제하고, 의미에 대한 믿음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일관된 세계관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논증 방식은 합리적 전제주의라고 불린다. 이들은 사고(추론)가 전제적이라고 가정하며, 인간의 본성과 같은 덜 기본적인 것들을 신의 존재 또는 비존재와 같은 더 기본적인 것들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인류의 목적과 운명에 대한 관점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가정에 달려있다. 철학자 수렌드라 간가딘(1943–2022)은 저서 ''철학적 기초: 기본 믿음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서 "몇 가지는 분명하다. 기본적인 것들이 분명하다. 신과 인간, 선과 악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은 이성에 분명하다."[2]라고 말하며,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에서 신의 존재, 인간에게 선이 영원한 창조주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을 단계별로 논증한다.

3. 2. 증거주의 변증학과의 비교

존 프레임은 반틸의 변증학이 다른 변증학 방법이 하나님의 불이해성, 인간의 전적인 타락, 자연 계시의 명확성, 하나님의 세상을 다스림 등의 교리를 약화시켰다는 불만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며, 이것은 신학적인 안목에서부터 왔다고 주장한다.

반틸의 변증학은 토마스 아퀴나스실증적 변증학의 논증 개념을 사용하지만, 그 방법이 중립적인 근거로 정당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반틸학파는 이런 믿음이 성경적 기초에만 정당하며, 초월적 논법 즉, 기초적 원칙에 대한 메타논증을 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반틸학파들은 또한 죄의 지적인(noetic) 효과(죄가 지성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부패가 하나님과 세계, 그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신의 영역에서 진리를 알 수 없으며, 다른 형태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전제주의자들은 기독교 변증학의 다른 학파들이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세상이 이해 가능하다는 것을 가정하고, 기독교 성경과 신의 존재를 지지하기 위해 중립적인 근거에서 논쟁을 벌인다고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접근 방식을 대조한다. 구체적으로, 전제주의자들은 토마스 아퀴나스 (또는 "전통적" 또는 "고전적") 변증학이 비기독교인과의 공통 기반을 단순히 가정하고 조각별 방법을 사용하여 신의 존재에 대한 논리적 증명을 통해 변증학의 첫 번째 측면에 집중한다고 묘사한다.

전제주의자들은 고전적 논증의 많은 부분이 신의 존재나 성격을 증명하는 논증으로 사용될 때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거나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1] 그들은 중립성 가정과 "블록 하우스" 또는 "조각별" 방법이 세계관의 통제적인 믿음 수준에서 시작하지 않고 처음부터 비기독교적 가정을 암묵적으로 허용함으로써 기독교적 "집"을 비기독교적 "기초" 위에 지으려고 시도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증거주의자들은 전제주의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공통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참조점이 없다는 생각을 거부하기 때문에 신념주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평가에 반대한다.

증거 변증학의 결론은 성경의 역사적 기록과 다른 진실 주장이 거짓보다 진실일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성경적 계시의 전체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절대적인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는 경우 가장 진실할 가능성이 높은 설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전제적 변증학의 목표는 비기독교인들의 가정과 행동이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신, 인간, 세상에 대한 특정 사항을 믿도록 요구한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논증은 기술적으로 ''귀류법''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반대 세력을 터무니없는, 즉 자기 모순적인 입장에 놓이게 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기독교 계시의 사실(실제)을 믿고 그것을 부인하는(말) 것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증거 변증학은 자명하거나 세계관 중립적인 사실에 대한 공유된 수용을 바탕으로 구축하려는 시도를 하는 반면, 전제적 변증학은 모든 사실을 그것이 이해 가능한 유일한 틀로서 기독교 세계관에 주장하려는 시도를 한다.

3. 3. 합리적 전제주의

반틸의 변증학은 토머스 아퀴나스와 실증적 변증학의 논증 개념을 사용하지만, 그 방법이 중립적인 근거로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반틸학파는 이런 믿음이 성경적 기초에만 정당하며, 초월적 논법 즉, 기초적 원칙에 대한 메타논증을 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반틸학파들은 또한 죄가 지성에 미치는 영향(noetic effect)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사람의 부패가 하나님과 세계, 그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신의 영역에서 진리를 알 수 없으며, 다른 형태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전제주의자들은 기독교 변증학의 다른 학파들이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세상이 이해 가능하다는 것을 가정하고, 기독교 성경과 신의 존재를 지지하기 위해 중립적인 근거에서 논쟁을 벌인다고 묘사한다. 구체적으로, 전제주의자들은 토마스 아퀴나스(또는 "전통적" 또는 "고전적") 변증학이 비기독교인과의 공통 기반을 단순히 가정하고 조각별 방법을 사용하여 신의 존재에 대한 논리적 증명을 통해 변증학의 첫 번째 측면에 집중한다고 묘사한다.

전제주의자들은 고전적 논증의 많은 부분이 신의 존재나 성격을 증명하는 논증으로 사용될 때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거나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1]

증거주의자들은 전제주의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공통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참조점이 없다는 생각을 거부하기 때문에 신념주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평가에 반대한다.

증거 변증학의 결론은 성경의 역사적 기록과 다른 진실 주장이 거짓보다 진실일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성경적 계시의 전체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절대적인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는 경우 가장 진실할 가능성이 높은 설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전제적 변증학의 목표는 비기독교인들의 가정과 행동이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신, 인간, 세상에 대한 특정 사항을 믿도록 요구한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논증은 기술적으로 ''귀류법''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반대 세력을 터무니없는, 즉 자기 모순적인 입장에 놓이게 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전제주의가 발전한 또 다른 방식은 먼저 사고의 법칙(모든 사상가에게 공통적인)으로서의 이성을 전제한 다음, 의미에 대한 믿음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일관된 세계관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증 방식은 합리적 전제주의라고 불려왔다. 그들은 사고(또는 추론)가 전제적이라고 가정하는데, 인간의 본성과 같은 덜 기본적인 것들을 신의 존재 또는 비존재와 같은 더 기본적인 것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수렌드라 간가딘(1943–2022)은 그의 저서 ''철학적 기초: 기본 믿음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서 "몇 가지는 분명하다. 기본적인 것들이 분명하다. 신과 인간, 선과 악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은 이성에 분명하다."라고 하였다.[2] 그는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에서 신의 존재, 인간에게 선이 영원한 창조주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을 단계별로 논증한다.

4. 전제주의 변증학의 종류

전제주의 변증학은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다양한 접근 방식을 포괄한다. 이들은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로 삼는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구체적인 방법론과 강조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반 틸 학파코르넬리우스 반 틸은 1920년대에 전제주의적 접근 방식을 발전시켰다.[13] 반 틸의 변증학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명확히 구분하는 데 중점을 둔다. 기독교인은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를 믿는 반면, 비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존재와 삼위일체 등 성경의 진리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중립적인 견해를 가질 수 없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존 프레임은 반 틸의 변증학이 다른 변증학 방법들이 하나님의 불가해성, 인간의 전적인 타락, 자연 계시의 명확성, 하나님의 세상을 다스림 등의 교리를 약화시켰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반 틸 학파는 토머스 아퀴나스와 실증적 변증학의 논증 개념을 사용하지만, 그 방법이 중립적인 근거로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대신, 이러한 믿음이 성경적 기초에만 정당하며, 초월적 논법 즉, 기초적 원칙에 대한 메타논증을 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반 틸 학파는 죄가 인간의 지성에 미치는 영향(죄의 지적인(noetic) 효과)을 강조한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세계,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다른 형태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클라크 학파고든 클라크와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그들 체계의 공리로 삼는다. 모든 공리와 마찬가지로 이 공리는 자명한 진리로 간주되며 증명될 필요는 없지만 증명에 사용된다. 클라크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신학자 및 철학자로는 프랜시스 쉐퍼, 칼 F. H. 헨리, 로널드 내시, 에드워드 J. 카넬과 트리니티 재단의 존 로빈스가 있다.

클라크는 논리의 법칙에 엄격하게 의존했는데, 그는 요한복음의 첫 구절을 "태초에 논리가 있었고, 논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논리는 하나님이었다."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따라서 비기독교적 세계관을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전제가 필연적인 논리적 모순을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며, 동시에 성경을 전제하는 것이 논리적 모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하지만 클라크는 공리(또는 "제1원리")를 전제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철학 체계를 포함하여 철학 체계를 진실로 만들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기독교 외에 그가 검토한 모든 세계관에 내적 모순이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를 진실로 매우 더 그럴듯하게 만들었을 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4. 1. 반 틸 학파

코르넬리우스 반 틸은 1920년대에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전제주의적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13] 반 틸의 변증학 체계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명확히 구분하는 데 중점을 둔다. 기독교인은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를 믿는 반면, 비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존재와 삼위일체 등 성경의 진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논증이 가능하다. 즉, 비기독교인들은 본질적으로 중립적 견해를 가질 수 없다는 전제이다.

존 프레임은 반 틸의 변증학이 다른 변증학 방법들이 하나님의 불가해성, 인간의 전적인 타락, 자연 계시의 명확성, 하나님의 세상을 다스림 등의 교리를 약화시켰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반 틸의 변증학은 토머스 아퀴나스와 실증적 변증학의 논증 개념을 사용하지만, 그 방법이 중립적인 근거로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반 틸 학파는 이러한 믿음이 성경적 기초에만 정당하며, 초월적 논법 즉, 기초적 원칙에 대한 메타논증을 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반 틸 학파는 죄가 인간의 지성에 미치는 영향(죄의 지적인(noetic) 효과)을 강조한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세계,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다른 형태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C. S. 루이스의 비유처럼, 사람은 벤치에 있고 하나님은 부두에 있는 것과 같다.

코르넬리우스 반 틸


반 틸을 따르는 변증론자들은 기독교인이 진리와 오류에 대한 궁극적인 중재자로서 성경의 초자연적인 계시를 항상 전제해야 한다는 핵심적인 신조 때문에 "전제주의자"라는 꼬리표를 얻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의 사고가 성경의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그보다 적게는 어떤 것도 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비기독교인들의 가정을 받아들임으로써 논리를 구성할 수조차 없다고 주장한다. 반 틸주의자들은 "논쟁을 위해" 상대방의 입장에 "자신을 놓아보"고 그 입장이 어디로 이어질지 보여주지만, 그것이 실제로 하나님의 세상이고, 인간은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삶이나 생각에서) 결코 하나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전제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상대방은 중립적이기보다는 분명히 편향된 기반이지만, 대화를 위한 공통 기반이 항상 존재한다.

프레임에 따르면, 반 틸이 경쟁 변증론적 방법에 대해 제기한 주요 불만은 신학적 불만, 즉 하나님의 이해 불가능성, 전적 타락, 자연 계시의 명확성, 창조 신화에 대한 하나님의 포괄적인 통제 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전제주의적 틀 내에서, 반 틸주의자들은 종종 토마스주의와 증거주의적 논증(예를 들어 자연적 원인의 균일성에 대한 믿음)의 기초적인 개념을 사용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자연적"(중립적)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 틸주의자들은 성경적 근거로 정당화되는 이러한 믿음을, 비기독교인의 세계관이 그 자체로 모순되고 기독교 세계관에서 자본을 빌려올 때만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초 원칙, 즉 필요한 전제 조건에 대한 일종의 메타 논증인 ''초월적 논증''에 활용한다. 예를 들어, 증거주의자들이 닫힌 체계에서 자연적 원인의 균일성을 중립적인 공통 출발점으로 삼아 부동의 원동자에 대한 우주론적 논증을 구성하는 반면, 반 틸주의 전제주의자들은 상대방의 세계관을 고려하여 닫힌 체계에서 자연적 원인의 균일성에 대한 믿음에 대한 정당성을 요구하고, 그러한 믿음이 기독교 세계관을 전제하고 궁극적으로 반대되는 세계관과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고 시도할 것이다. 반 틸은 자신의 변증론의 주요 동기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유일한 증거는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반 틸주의자들은 또한 "죄의 지적 영향"(즉, 마음에 미치는 죄의 영향)을 고려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는 인간이 하나님, 세상, 그리고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을 타락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타락한 피조물로서 인간은 이러한 각 영역에서 진리를 알고 있지만, C.S. 루이스가 말했듯이 자신이 "재판관석"에 있고 하나님이 "피고석"에 있는 해석을 찾으려고 한다. 따라서 변증론자의 주요 임무는 불신자에게 그가 언어적으로 진리를 부인하는 동안에도 실제로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하는 것이다. 반 틸은 이러한 불일치를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아버지의 뺨을 때리려는 어린아이에 비유했고, 바헨센은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공기를 내쉬는 남자에 비유를 사용했다.

반 틸주의 변증 프로그램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증명''과 ''설득''의 구별이다. 로마서 1장에 따르면, 인간은 모든 창조물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억누르기로 선택한다. 반 틸은 마찬가지로 성경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효한 논거가 있지만, 불신자는 진리를 억누르기 때문에 반드시 설득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변증론자는 실제로 누군가가 설득되든 그렇지 않든 진리를 제시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프레임은 여기서 변증론자가 편집증 환자의 망상에 대한 진실을 제시하는 정신과 의사와 유사하며, 환자가 어떤 수준에서 진실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신뢰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프레임은 칼뱅주의자이므로 불신자가 궁극적인 진리를 받아들이려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도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 입장의 함의는 모든 논증이 "개인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한 비기독교인은 특정 논증에 설득될 수 있고, 다른 비기독교인은 배경과 경험에 따라 설득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논증이 논리적으로 유효한 증거를 구성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4. 2. 클라크 학파

고든 클라크와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그들 체계의 공리로 삼는다. 모든 공리와 마찬가지로 이 공리는 자명한 진리로 간주되며 증명될 필요는 없지만 증명에 사용된다. 클라크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신학자 및 철학자로는 프랜시스 쉐퍼, 칼 F. H. 헨리, 로널드 내시, 풀러 신학교 총장 에드워드 J. 카넬과 트리니티 재단의 존 로빈스가 있다. 게리 크램튼은 클라크의 체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구약과 신약의 66권은 자증적이며 자인증적이다. 성경은 모든 책과 사상에 대해 판단하며,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의해 판단되지 않는다.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이 오직 성경의 개신교 원리이다."[6] 그러나, 그 공리에서 파생되는 세계관은 일관성과 포괄성에 대해 시험될 수 있다.[7]

클라크는 논리의 법칙에 엄격하게 의존했는데, 그는 요한복음의 첫 구절을 "태초에 논리가 있었고, 논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논리는 하나님이었다."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따라서 비기독교적 세계관을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전제가 필연적인 논리적 모순을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며, 동시에 성경을 전제하는 것이 논리적 모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하지만 클라크는 공리(또는 "제1원리")를 전제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철학 체계를 포함하여 철학 체계를 진실로 만들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기독교 외에 그가 검토한 모든 세계관에 내적 모순이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를 진실로 매우 더 그럴듯하게 만들었을 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방법이 많은 실제 사례(예를 들어, 세속 인본주의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반대할 때 효과적이며, 결국 우리 각자는 삶의 질문에 가장 적절하게 답하고 가장 내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관된 세계관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클라크는 그의 시대에 유행하던 많은 세계관의 모순을 드러내고, 기독교 세계관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맞서 그 일관성을 증명함으로써 기독교 세계관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악의 문제와 같은 주제에 대한 대부분의 개혁 신학자들이 인간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역설이나 겉보기의 모순으로 취급하는 다소 정통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로 이끌리기도 했다. 그러나 클라크는 성경이 역설을 가르친다는 생각과 "겉보기 모순"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며 "누구에게 겉보기냐?"라고 질문했다. 그는 성경적 역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이성적 마사지로 제거할 수 있는 머리 사이의 찰리 호스(charley-horse)"에 불과하다고 묘사했다.

다른 변증학 학파와 관련하여 클라크는 우주론적 증명이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무효라고 제안했으며, 다른 토마스주의 논증도 마찬가지로 일축했다. 그는 모든 종류의 경험주의에 대한 확고한 비평가였으므로 논리적 확실성이 아닌 개연성과 확률을 산출하는 증거적 논증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참조

[1] 간행물 The Dawkins Delusion?
[2] 서적 Philosophical Foundation: A Critical Analysis of Basic Beliefs Public Philosophy Press
[3] 간행물 Response to Robbins http://www.cmfnow.co[...] CMF now
[4] 간행물 Response to Bahnsen http://www.cmfnow.co[...] CMF now
[5] 간행물 Response to Flood http://www.cmfnow.co[...] CMF now
[6] 웹사이트 The Trinity Foundation - Scripturalism: A Christian Worldview http://www.trinityfo[...]
[7] 간행물 The Trinity foundation http://www.trinityfo[...]
[8] 간행물 The Trinity foundation http://www.trinityfo[...]
[9] 서적 Classical Apologetics Zondervan
[10] 서적 ヴァン・ティルの「十戒」 いのちのことば社
[11] 논문 Presuppositional Apologetics
[12] 서적 近代主義とキリスト教
[13] 문서
[14] 웹사이트 Presuppositional Apologetics http://www.frame-poy[...] 2007-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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