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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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난정은 조선 명종 시대의 인물로, 윤원형의 첩이자 정실 부인이었다. 그녀는 문정왕후의 측근으로 권력을 얻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윤원형의 재산 증식과 벼슬 상승에 기여했다. 김안로의 부인 독살 혐의를 받았으며, 문정왕후 사후 사림의 탄핵을 받아 몰락했다. 이후 윤원형과 함께 유배되어 자결했다. 조선 시대에는 악녀로 묘사되었으며, 여러 드라마에서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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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원형 - 윤원로
윤원로는 조선 중기 문정왕후의 친척이자 윤원형의 형으로, 급변하는 정치 상황 속에서 부침을 겪으며 윤임 등과의 갈등, 을사사화 연루, 동생 윤원형과의 정쟁 끝에 사사된 인물이다. - 윤원형 - 문정왕후 (조선)
문정왕후는 조선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로서, 정치적 숙청과 불교 중흥 정책을 펼치며 조선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인종의 죽음 관련 의혹이 있으며, 그녀의 능은 태릉이다. - 1565년 사망 - 문정왕후 (조선)
문정왕후는 조선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로서, 정치적 숙청과 불교 중흥 정책을 펼치며 조선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인종의 죽음 관련 의혹이 있으며, 그녀의 능은 태릉이다. - 1565년 사망 - 장 구종
장 구종은 16세기 프랑스 매너리즘 조각가로, 앙리 2세의 왕실 조각가로 임명되어 활동했으며, 퐁텐블로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종교 전쟁을 피해 이탈리아로 망명하여 사망했다. - 조선의 불교 신자 - 허균
허균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로서, 홍길동전, 교산시화, 도문대작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으나, 진보적인 사상과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 조선의 불교 신자 - 김옥균
김옥균은 1851년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나 갑신정변을 일으킨 조선의 개화 운동가이며, 일본 망명 후 상하이에서 암살당했고, 사후 복권되어 규장각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정난정 | |
---|---|
기본 정보 | |
본관 | 해주 정씨 |
출생 | 1506년 |
사망 | 1565년 |
배우자 | 윤원형 |
인물 정보 | |
직업 | 조선의 정치인 |
활동 시기 | 조선 명종 시대 |
가족 관계 | |
아버지 | 정윤겸(鄭允謙) |
어머니 | 노비 출신 |
남편 | 윤원형 |
기타 정보 | |
특징 | 뛰어난 정치적 수완과 권모술수에 능함 |
2. 생애
정난정은 한성부의 초계 정씨 가문에서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그의 소첩 남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노비가 된 후 정윤겸의 집에 배속되었다.
젊은 시절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첩이 되었으며, 곧 윤원형의 총애를 받았다. 윤원형은 명종의 외숙부이자 1563년부터 1565년까지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었다.
김안로의 문정왕후 폐위 음모가 발각된 후, 정난정은 김안로의 5촌 당숙뻘 되는 윤원형의 첫 번째 부인 김씨 부인에게 독약을 먹였다.[4] 명종 8년, 문정왕후는 정난정을 자신의 시누이로 삼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이후 정난정은 윤원형의 정실 부인이 되었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은 후 정난정과 윤원형은 모두 서울에서 유배되었고, 정치적 복귀를 할 수 없게 되자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다(정난정이 먼저,[1] 그리고 5일 후 남편이 뒤따랐다[2]).
2. 1. 출생과 가계
한성부 초계 정씨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그의 집에 분배된 노비 차실(次室) 남씨(南氏) 사이에서 태어난 2남 3녀 중 막내딸이었다.[5] 그녀의 모친은 역모에 연좌되어 노비가 되었다.[5]2. 2. 윤원형의 첩, 그리고 정실 부인이 되기까지
한성부에서 초계 정씨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그의 집에 분배된 노비 차실(次室) 남씨(南氏) 사이에서 태어난 2남 3녀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그녀의 모친이 노비가 된 건 역모에 연좌되었기 때문이다.[5]젊은 시절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의 눈에 들어 첩이 되었다. 훗날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폐위하려 한 음모가 발각되자 김안로가 사사되고, 김안로의 질녀였던 윤원형의 부인 김씨는 윤원형과 문정왕후의 묵인하에 쫓겨났다. 이후 정난정이 실질적인 안방 주인이 되었다.[4] 명종 8년, 문정왕후는 정난정을 적처로 올리라는 전교를 내려 정난정은 윤원형의 정실 부인이 되었다.
정난정은 윤원형과의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정난정이 정실부인이 됨에 따라 그 자녀들도 적자가 되었다. 양반가에서는 그녀의 권세에 힘입으려고 사돈을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2. 3. 정치 활동과 권력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였으며, 1553년(명종 8) 직첩을 받아 마침내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이 되었다.[7] 윤원형은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 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당시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으로, 신분제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하여 선종판사(禪宗判事)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선·교(禪敎) 양종이 부활되고 도첩제도(度牒制度)가 다시 실시되는 등 한때나마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였다.[7]정난정은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적극 추천하여 총애받게 하였으며, 봉은사의 승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병조판서직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불교가 융성하기도 했다.[7]
윤원형이 이조판서에 오를 때 정부인으로, 의정부 우의정과 영의정에 오를 때에는 정경부인으로 작호가 올랐다. 정경부인으로 오른 후 궐에 자주 들어 명종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문정왕후와 친밀한 관계였던 정난정은 남편 윤원형을 도왔다. 윤원형은 재산을 불려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출세하여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정난정 또한, 윤원형이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을 때 정부인(貞夫人)에 책봉되었고, 1553년(명종 8)에는 외명부 최고의 지위인 정일품 정경부인에 책봉되었다.[4]
3. 최후
성리학자인 사대부들은 정난정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여 그 후원자인 문정왕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승려 보우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 사망하고 정난정은 사림의 탄핵을 받아 본래 신분인 천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후에도 사림의 계속적인 탄핵으로 남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江陰)으로 유배되었다.[8]
문정왕후가 승하한 지 5개월 후인 1565년 9월 8일 윤원형의 본부인 연안 김씨의 계모 강씨는 정난정이 김씨를 독살했다며 의금부에 고발하였다.[4] 이 사건으로 점차 사대부의 공격이 심해지자 1565년 11월 13일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윤원형도 뒤를 이어 자결하였다.[1][2] 사후 사림파에 의해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어졌다. 조선의 사대부는 정난정을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힌 타락한 여성으로 묘사하였는데, 구전과 민담을 통해 작품과 희극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당하리 산 4-20번지(현 경기도 파주시 당하동 산4-20번지) 선산 근처에 안장되었다.[8] 윤원형과 본부인 연안 김씨가 매장된 묘소 뒤쪽에 매장되었으며 비석은 없이 전하다가 조선이 멸망한 뒤에 세워졌다.
4. 사후
성리학자 사대부들은 정난정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여 그 후원자인 문정왕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승려 보우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 사망하고 정난정은 사림의 탄핵을 받아 본래 신분인 천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후에도 사림의 계속적인 탄핵으로 남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江陰)으로 유배되었다.[8]
문정왕후가 승하한 지 5개월 후인 1565년 9월 8일 윤원형의 본부인 연안 김씨의 계모 강씨는 정난정이 김씨를 독살했다며 의금부에 고발하였다. 이 사건으로 점차 사대부의 공격이 심해지자 1565년 11월 13일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윤원형도 뒤를 이어 자결하였다. 사후 사림파에 의해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어졌다. 조선의 사대부는 정난정을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힌 타락한 여성으로 묘사하였는데, 구전과 민담을 통해 작품과 희극의 소재로 활용되었다.[8]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당하리 산 4-20번지(현 경기도 파주시 당하동 산4-20번지) 선산 근처에 안장되었다. 윤원형과 본부인 연안 김씨가 매장된 묘소 뒤쪽에 매장되었으며 비석은 없이 전하다가 조선이 멸망한 뒤에 세워졌다.[8]
5. 가계
정난정은 서울(한성)의 조계 정씨 가문에서 부정(副將) 정윤겸과 그의 소첩 남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난정의 어머니는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노비가 된 후 정윤겸의 집에 배속되었다.
6. 평가
정난정은 문정왕후의 측근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문정왕후에게 서얼 출신도 능력에 따라 인재로 등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남편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서 차별을 폐지하고 서얼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6] 이는 당시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다.[6]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난정을 문정왕후와 윤원형, 그리고 많은 남자들을 현혹하고, 정실부인을 독살하여 후처가 됨으로써 조선의 신분제도를 뒤엎으려 한 악녀이자 요부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장희빈·장녹수와 함께 '''조선 삼대 악녀'''로 꼽기도 한다.
조선신보에서 정난정에 관한 칼럼을 작성한 박순애는 윤원형이 인재 등용에 있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능력에 따라야 한다는 상소에 대해, 정난정의 존재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4]
7. 기타
뒤에 나타난 전설에는 그와 정난정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 정난정이 체포되어 노비가 된 뒤에 죽었다는 전설이 나타났다. 이는 사실은 아니나 정난정 및 윤원형에 대한 사림의 원한이 표출된 것으로 해석된다.[4]
선조조에 판중추부사/우찬성을 지낸 정종영은 정윤겸의 적장손이자 정난정과는 조카-서고모 관계였다. 윤원형이 상변(上變)하여 옥사를 일으킬 적에 논의에 참여하도록 넌지시 일깨워주었으나 정종영은 거짓 모르는 체하고 응하지 않았다. 정난정이 참람하게 정실(正室)이 되어 부인(夫人)에 봉해져서 외명부(外命婦)의 우두머리에 있게 되자 사람들이 감히 항변하지 못하였으나 정종영은 오히려 얼척(孼戚)으로 대우하였다. 이 때문에 윤원형이 크게 유감을 품어 매양 죄를 얽어 해치려 하였다. 정난정의 어머니가 정난정을 경계하기를 "너는 종손을 해치지 말라. 내가 맹세코 죽음으로써 당하겠다”하였으므로 화를 면하게 되고 예전처럼 현달(顯達)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4]
정난정의 동복 둘째 오빠는 정담(淡)이었다. 그는 언젠가는 정난정이 반드시 화근이 될것이라 예상하고, 일체 그녀와 왕래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찾아올까봐 집 입구의 담을 꼬불꼬불하게 쌓아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를 만들었다. 정난정은 늘 가마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가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때문에 정난정은 그의 집에 가볼 수가 없었고, 덕분에 윤원형과 정난정이 몰락한 뒤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4]
정난정의 4촌인 정준이 명종 7년 6월 18일 사헌부 집의에 임명되었다. 실록에 의하면 정준은 음험하고 경박한 성품으로 윤원형의 위엄을 빌어 대관이 되어 마음내키는 대로 인물들을 공격하였고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욕을 당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4]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난정을 문정왕후와 윤원형, 그리고 많은 남자들을 현혹하고, 마땅히 섬겨야 할 정실부인을 독살하여 후처로 들어가 조선의 신분제도를 뒤엎으려 한 악녀이자 요부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장희빈·장녹수와 함께 '''조선 삼대 악녀'''로 꼽히기도 한다.[4]
조선신보에서 정난정에 관한 칼럼을 작성한 박순애는 윤원형이 인재 등용에 있어 귀천을 묻지 않고 능력에 따라 해야 한다는 상소에 대해, 정난정의 존재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4]
8. 관련 작품
- 2001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강수연이 정난정 역을 맡았다.[9]
- 2016년 MBC 드라마 《옥중화》에서 박주미가 정난정 역을 맡았다.[3]
- 2019년 TV조선 드라마 《조선생존기》에서 윤지민이 정난정 역을 맡았다.
8. 1. 텔레비전 드라마
참조
[1]
조선왕조실록
윤원형의 첩 정난정이 자살하다
http://sillok.histor[...]
1565-11-13
[2]
조선왕조실록
윤원형의 졸기
http://sillok.histor[...]
1565-11-18
[3]
웹사이트
Joseon-era epic promises 'unexpected' adventures
http://english.yonha[...]
2016-07-21
[4]
웹사이트
〈続 朝鮮史を駆け抜けた女性たち⑭〉 奴婢から貴族夫人に-鄭蘭貞
http://www1.korea-np[...]
조선신보
2010-11-18
[5]
문서
정난정의 모친 성명 미상
[6]
웹사이트
정난정
http://100.naver.com[...]
[7]
서적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 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8]
웹사이트
http://media.daum.ne[...]
[9]
뉴스
인기 상승 <여인천하> 어디까지 사실인가?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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