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전
1. 개요
정약전은 1758년(영조 34년)에 태어나 1816년(순조 16년)에 사망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이다. 그는 천주교를 수용하고, 신유박해로 유배되어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정조 때 증광별시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으나,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유배 생활을 했다. 유배지에서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흑산도 연안의 어류를 연구하여 《자산어보》를 저술했으며, 소나무 정책을 비판하는 《송전사의》와 표류기인 《표해시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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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정약전 (丁若銓) |
|---|---|
| 출생일 | 1758년 4월 8일 |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
| 사망일 | 1816년 6월 30일 |
| 사망지 | 조선 전라도 신안 우이도 |
| 국적 | 조선 |
| 본관 | 나주 |
| 직업 | 문관, 실학자, 생물학자 |
| 종교 | 유교 → 천주교 |
| 배우자 | 풍산 김씨 |
| 자녀 | 정학초(丁學樵) |
| 부모 | 정재원(丁載遠)(부) |
| 모 | 윤소온(尹小溫)(모) |
| 가족 | 정약현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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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
김정호
김정호는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로,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여러 지도와 지리지를 제작하여 조선 시대 지리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소행성 95016 김정호가 명명되었다. -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
허준
허준은 조선 중기의 의관으로, 서자 출신으로 추정되지만 뛰어난 의술로 선조의 주치의를 역임하고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동아시아 의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사후 정1품 보국숭록대부에 추증되었다. -
조선의 로마 가톨릭교도 -
권일신
권일신은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이자 전교자로,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은 후 형 권철신과 함께 충청도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 기여했으며, 가성직 제도 문제점을 인지 후 평신도로 돌아가 중국에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다 신해박해 때 배교 후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
조선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 테레사
김 테레사는 순교자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아 헌신적인 삶을 살며 신앙의 모범을 보이다가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후 1840년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성녀이다. -
정약용 -
자산어보 (영화)
《자산어보》는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이 창대의 도움을 받아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18세기 조선의 사회상과 정치적 격변기를 묘사하며 흥행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정약용 -
목민심서
《목민심서》는 정약용이 지방관의 덕목과 정책을 제시하기 위해 저술한 책으로, 청렴과 애민 정신을 강조하며 12강 72조로 구성되어 지방관의 자세, 행정 실무, 빈민 구제 정책 등을 담고 있다.
2. 생애
정약전은 1776년 아버지 정재원이 호조좌랑에 오르면서 서울로 이주했다. 성호 이익의 학문을 계승한 권철신 문하에서 수학하며, 이윤하, 이승훈, 김원성 등과 교류했고, 이들을 통해 서양의 학문과 사상을 접했다. 1779년 스승 권철신이 여주 주어사(走魚寺)에서 연 강학회에서 이벽 등과 함께 천주교 교리를 토론하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1784년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온 이승훈의 주도로 김범우의 집에 세운 조선 최초의 천주교회에서 동생 약종과 약용, 이벽 등과 함께 주일 미사와 강론 등 천주교 종교 활동을 했고, 가성직제도 하에서 사제직까지 수행하면서 초기 천주교 전파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 동생들은 세례를 받았지만, 정약전은 베이징에 가서 받을 생각으로 받지 않았다. 이 활동은 1785년 4월, 형조(刑曹)에 적발되었지만, 김범우 이외의 교인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을사추조적발사건)
1783년(정조 7년) 사마시(소과)에 합격했고, 1790년(정조 14년) 증광별시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1798년(정조 22년) 정조의 명으로 경기도 출신 인물들을 평한 《영남인물고》 편찬에 참여했다.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전라도 신지도로 유배되었고, 황사영의 백서 사건으로 흑산도로 옮겨졌다. 유배 생활을 하며 섬 아이들을 가르쳤고, 《자산어보》, 《송전사의》, 《표해시부》 등을 저술하였다.
2.1. 출생과 가계
丁若銓중국어은 1758년(영조 34년) 양력 3월 1일, 경기도 광주부 마재(또는 마현(馬峴), 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丁載遠)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정재원의 두 번째 부인인 윤소온(尹小溫)으로, 해남 윤씨 가문이며 고산 윤선도의 5대손이다. 외조부는 윤덕렬이고 외증조부는 윤두서이다. 어머니가 아들 셋을 얻는 꿈을 꾸고 낳았기 때문에 아명(兒名)을 삼웅(三雄)이라 하였다. 정약현은 이복형, 정약종과 정약용은 동복동생이다.
2.2. 초기 활동
1758년 (영조 34년) 양력 3월 1일, 경기도 광주부 마재(또는 마현(馬峴), 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丁載遠)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정재원의 두 번째 부인인 윤소온(尹小溫)으로 해남 윤씨 가문에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의 5대손이다. 외조부는 윤덕렬이고 외증조부는 윤두서이다. 어머니가 아들 셋을 얻는 꿈을 꾸고 낳았기 때문에 아명(兒名)을 삼웅(三雄)이라 하였다. 정약현은 이복형, 정약종과 정약용은 동복동생이다.
1776년 (영조 52년) 아버지 정재원이 호조좌랑에 오르면서 서울로 왔다. 성호 이익의 학문을 계승한 권철신 문하에서 수학하며, 이윤하, 이승훈, 김원성 등과 교유했고, 이들을 통해 서양의 학문과 사상을 접했다.
1779년 (정조 3년) 스승 권철신이 여주 주어사(走魚寺)에서 연 강학회에서 이벽 등과 함께 천주교 교리를 토론하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1783년 (정조 7년) 사마시(소과)에 합격했다.
1784년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온 이승훈의 주도로 김범우의 집에 세운 조선 최초의 천주교회에서 동생 약종과 약용, 이벽 등과 함께 주일 미사와 강론 등 천주교 종교 활동을 했고, 가성직제도 하에서 사제직까지 수행하면서 초기 천주교 전파의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 동생들은 세례를 받았지만, 정약전은 베이징에 가서 받을 생각으로 받지 않았다. 이 활동은 1785년 4월, 형조(刑曹)에 적발되었지만, 김범우 이외의 교인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을사추조적발사건)
1790년 (정조 14년) 증광별시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부정자(副正字)와 병조좌랑(정6품)을 지냈다. 1798년 (정조 22년), 정조의 명으로 경기도 출신 인물들을 평한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편찬에 참여했다.
2.3. 관직 생활
1783년(정조 7년) 사마시(소과)에 합격했다. 1790년(정조 14년) 증광별시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부정자와 병조좌랑(정6품)을 지냈다. 1798년(정조 22년) 정조의 명으로 경기도 출신 인물들을 평한 《영남인물고》 편찬에 참여했다.
2.4. 유배 생활과 저술 활동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전라도 신지도로 유배되었다가, 조카사위 황사영의 백서 사건으로 흑산도로 옮겨졌다. 유배 생활을 하며 서당을 지어 섬 아이들을 가르쳤고, 흑산도 연해에 서식하는 어류를 직접 관찰하고 연구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서 《자산어보》, 조선 조정의 소나무 정책을 비판한 《송전사의》, 흑산도 홍어 상인 문순득의 표류기인 《표해시부》 등을 남겼다.
1817년(순조 16년), 유배 16년 만에 내흑산 우이도(牛耳島)에서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5. 사망
정약전은 1817년(순조 16년), 유배 생활을 한 지 16년 만에 내흑산 우이도에서 6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
| 조부 | 정지해(丁志諧) |
| 조모 | 풍산 홍씨 홍길보(洪吉輔)의 딸 |
| 아버지 | 정재원(丁載遠) |
| 전모 | 의령 남씨 남하덕(南夏德)의 딸 |
| 이복형 | 정약현(丁若鉉) |
| 생모 | 해남 윤씨 윤덕렬(尹德烈)의 딸 윤소온(尹小溫) |
| 본인 | 정약전 |
| 아내 | 풍산(豊山) 김씨(金氏), 김서구(金敍九)의 딸 |
| 장자 | 정학초(丁學樵, 1791년 3월 14일(음력 2월 10일) ~ 1807년 8월 22일(음력 7월 19일)), 자는 어옹(漁翁) |
| 차자 | 정학무(丁學武), 자는 경무(景武) |
| 손자 | 정대빈(丁大彬, 1836년~1859년), 자는 치문(致文) |
| 아들 | 정학승(丁學乘), 숙부 정약황의 양자가 됨 |
| 남동생 | 정약종(丁若鍾) |
| 남동생 | 정약용(丁若鏞) |
| 누이 | 나주(羅州) 정씨(丁氏), 이승훈(李承薰)에 출가 |
| 누이 | 나주(羅州) 정씨(丁氏), 채제공의 서자 채홍근(蔡弘謹)에 출가 |
| 누이 | 나주(羅州) 정씨(丁氏), 이중식(李重植)에 출가 |
| 서모 | 김씨(金氏) |
| 이복 동생 | 정약횡(丁若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