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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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화는 성행위를 묘사한 그림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춘화는 고려 후기에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에 서울을 중심으로 제작이 유행했으나, 유교적 가치관으로 인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묘사 수위가 높지 않았다. 19세기에는 익명의 예술가들이 김홍도나 신윤복의 작품을 사칭하여 제작하기도 했으며, 20세기에는 이중섭과 같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이후,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에 춘화가 크게 유행했으며, 일본의 춘화는 서양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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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 | |
---|---|
기본 정보 | |
유형 | 회화 |
하위 분류 | 풍속화, 기록화, 역사화, 도석인물화 |
시대 | 조선 |
재료 | 종이, 비단 |
설명 | |
정의 | 남녀 간의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그림 |
용도 | 성적 쾌락 성교육 벽사 |
특징 | 솔직하고 노골적인 성 묘사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표현 다양한 성행위 자세와 상황 묘사 남녀평등적인 시각 반영 |
표현 기법 | 섬세한 필선과 채색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생생하게 묘사 배경 묘사를 통해 분위기 조성 |
역사적 맥락 | 조선 시대 유교 사회의 엄격한 성 윤리 속에서 발달 성리학적 이념과 상반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 표출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벽사의 의미 부여 |
사회문화적 의미 | 성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반영 남녀 간의 사랑과 욕망에 대한 솔직한 표현 해학과 풍자를 통해 사회의 모순 비판 |
종류 | |
운우도 | 남녀의 성행위를 구름과 비에 빗대어 표현한 그림 |
춘화첩 | 여러 장의 춘화를 모아놓은 화첩 |
병풍 춘화 | 병풍에 그려진 춘화 |
자수 춘화 | 자수로 표현한 춘화 |
대표적인 춘화 | |
신윤복의 운우도첩 | 조선 후기 화가 신윤복이 그린 춘화첩 |
김홍도의 춘화도 |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가 그린 춘화 |
작자 미상의 춘화도 |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춘화 작품들 |
현대적 재해석 | |
현대 미술 | 춘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 |
영화 | 춘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
드라마 | 춘화를 소재로 한 드라마 |
소설 | 춘화를 소재로 한 소설 |
같이 보기 | |
관련 항목 | 에로티시즘 포르노그래피 성문화 한국 미술 풍속화 |
참고 자료 | |
참고 문헌 | "한국 춘화의 역사와 문화" (가제) - 김민지 저 "조선 시대 춘화 연구" (가제) - 박선영 저 |
관련 웹사이트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
2. 한국의 춘화
영조 때 박양한이 쓴 《매옹한록》(梅翁閑錄)에 따르면 춘화의 전통은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명나라와 청나라로부터 많은 소설들이 수입되면서 성적인 주제에 대한 관심이 증대됨에 따라 18세기 이후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조선에서 직접 제작한 춘화가 유행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슌가와 중국의 춘궁도에 비하면 조선의 강한 유교적 가치관 때문에 춘화는 그다지 주류가 되지 못했으며, 그 묘사 수위는 일본이나 중국의 작품들만큼 노골적이지 않았다.[5] 춘화는 20세기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1]
2. 1. 조선 시대의 춘화
한국에 처음으로 향락용 춘화가 전파된 것은 원나라와 교류가 있었던 고려 후기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청자나 거울 뒷면에 그려진 춘화가 전해지고 있다.[4] 17세기 이후 조선 후기에 청나라에서 보내온 사절단의 선물 목록에 춘의상과 같은 것이 섞여 있어 돌려보냈으며, 숙종 때에도 춘화를 그려넣은 도자기가 밀반입되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다. 18세기 이후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조선에서 직접 제작한 춘화가 유행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슌가와 중국의 춘궁도에 비하면 조선의 강한 유교적 가치관 때문에 춘화는 그다지 주류가 되지 못했으며, 그 묘사 수위는 일본이나 중국의 작품들만큼 노골적이지 않았다. 춘화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묘사한 한국의 전통적인 풍속화의 스타일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았다.[5] 19세기까지 크게 유행하였던 춘화는 점차 포르노그래피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면서 쇠락하였다.[6] 몇몇 춘화에서는 나이 든 기생이 어린 기생들에게 성교육을 시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7] 19세기에 유행하던 조선의 춘화는 대부분 익명의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졌으며, 김홍도나 신윤복의 작품을 사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대가들의 작품임을 내세워 가격을 높이거나 당시 유교 문화에서 금기시되던 적나라한 성묘사에 대한 장벽을 대가의 이름을 빌려 피해보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조선의 춘화는 성행위에 대한 묘사라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것이자, 낭만과 퇴폐 같은 당시의 사회의 일상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풍속화의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8]2. 2. 특징 및 의의
춘화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조선의 강한 유교적 가치관 때문에 주류가 되지는 못했으며, 묘사 수위도 노골적이지 않았다. 춘화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한국 전통 풍속화의 영향을 받았다.[5] 19세기까지 유행하던 춘화는 점차 포르노그래피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면서 쇠락하였다.[6]19세기 조선의 춘화는 대부분 익명의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졌으며, 김홍도나 신윤복의 작품을 사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대가들의 작품임을 내세워 가격을 높이거나, 당시 유교 문화에서 금기시되던 적나라한 성 묘사에 대한 장벽을 대가의 이름을 빌려 피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조선의 춘화는 성행위에 대한 묘사라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것이자, 낭만과 퇴폐 같은 당시 사회의 일상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풍속화의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8]
춘화는 20세기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 화가 이중섭과 같이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춘화를 그린 경우도 있다. 이중섭은 19세기 조선의 춘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9]
2. 3. 현대 미술에 끼친 영향
춘화는 20세기 한국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 이중섭과 같이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춘화를 그린 경우도 있다. 이중섭은 19세기 조선의 춘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9]2. 4. 대표적인 작품
한국 춘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김홍도의 《운우도첩》과 신윤복의 《건곤일회도첩》이 있다.[10] 하지만 이 춘화들 중 일부는 그림 값을 올리기 위해 유명 화가의 작품을 위조한 것으로 추정된다.[11] [3]
3. 중국의 춘화
중국에서는 명나라 이후 춘화가 크게 유행하였다. 종이뿐만 아니라 부채나 식기 등에도 그려 넣었으며 《금병매》와 같은 소설의 한 장면을 넣기도 하였다.[12]
4. 일본의 춘화
일본 에도 시대에는 우키요에라는 풍속화가 크게 유행하였으며 유곽이나 게이샤를 주제로 한 슌가가 많이 그려졌다. 18세기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신유한은 '금수와 같을 정도로 남녀간의 풍기가 문란하고, 사람마다 춘화를 몸에 지니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키요에는 풍경, 풍속, 인물 등 넓은 주제를 다루었으나 춘화 역시 중요한 주제였다.[13]
한편, 일본의 우키요에는 서양에 전파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인상파와 같은 화풍에 영향을 주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의 화가였던 에곤 실레와 같은 사람들은 우키요에 춘화를 광적으로 수집하기도 하였다.[14]
참조
[1]
웹사이트
춘화 (春畵)
https://encykorea.ak[...]
[2]
웹사이트
춘화, 외설과 예술 사이
https://m.khan.co.kr[...]
2015-11-18
[3]
웹사이트
[문화유산 돋보기 답사]조선시대 춘화
https://www.donga.co[...]
1998-03-11
[4]
서적
학습된 경험
디지털교보문고
[5]
웹인용
춘화 (春畵)
https://encykorea.ak[...]
[6]
서적
조선의 성풍속(여성과 성문화로 본 조선사회)
가람기획
[7]
서적
말하는 꽃, 기생
[8]
서적
보는 즐거움 아는 즐거움:문화재이야기
효형출판
[9]
서적
화가 이중섭
민음사
[10]
웹인용
춘화, 외설과 예술 사이
https://m.khan.co.kr[...]
2015-11-18
[11]
웹인용
[문화유산 돋보기 답사]조선시대 춘화
https://www.donga.co[...]
1998-03-11
[12]
서적
명나라시대 중국인의 일상
북폴리오
[13]
서적
게다도 짝이 있다(일본문화총서 1)
글로세움
[14]
서적
에곤 실레(시공아트 12)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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