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만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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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를 만하임은 189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한 사회학자이다. 그는 지식사회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지식의 사회적 상대성을 강조하는 '관계주의'를 주창했다. 주요 저서로는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가 있으며,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개념을 통해 사회 변동을 설명했다. 만하임은 자유방임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계획된 민주주의'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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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만하임 | |
---|---|
기본 정보 | |
이름 | 카를 만하임 |
출생 이름 | 카로이 만하임 |
출생일 | 1893년 3월 27일 |
출생지 |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헝가리 |
사망일 | 1947년 1월 9일 |
사망지 | 런던, 잉글랜드 |
국적 | 헝가리 |
로마자 표기 | Karl Mannheim |
헝가리어 표기 | Manheim Káro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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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
모교 | 부다페스트 대학교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
박사 과정 학생 | 프란츠 노이만 |
연구 분야 | |
주요 분야 | 문화 사회학 지식 사회학 이데올로기 이론 관계주의 (만하임) |
경력 | |
직장 |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
수상 | |
기타 | |
배우자 | 율리스카 랑 만하임 (결혼 전 성: 카로이너) |
2. 생애
1893년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 대학교,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게오르크 지멜 지도), 파리,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하여 1918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9년 독일로 이주하여 1922년부터 1925년까지 알프레트 베버 밑에서 일한 후, 192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사강사가 되었고, 1929년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대학교 사회학과 정교수가 되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 집권 후 영국으로 망명하여 런던 대학교 강사를 거쳐, 1946년 런던 대학교 교육학과 주임 교수가 되었다. 1947년 런던에서 사망했다.
2. 1. 유년 시절과 교육
1893년 3월 27일 부다페스트에서 유대계 헝가리인 직물 상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2] 부다페스트 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베를린 대학교와 파리 대학교에서도 유학하며 학문의 폭을 넓혔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헝가리로 돌아와 부다페스트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3]전쟁 중 만하임은 칼 폴라니가 설립한 갈릴레오 서클(마이클 폴라니도 참여), 오스카르 야시가 조직한 사회과학협회, 죄르지 루카치가 이끈 손탁크라이스(일요일 모임) 등 여러 영향력 있는 지식인 모임에 참여했다.[3] 1919년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시절에는 친구이자 멘토인 루카치의 후원으로 부다페스트 대학교 교육학 연구소에서 강의했다.[4] 그러나 루카치의 공산주의 전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5]
2. 2. 헝가리 시기 (1919년까지)
1893년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 대학교와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14년 베를린 대학교에서 게오르크 지멜의 지도를 받았다. 그 후 파리와 하이델베르크에서도 수학하여 1918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5]전쟁 중 만하임은 여러 지식인 모임에 참여했다. 칼 폴라니와 마이클 폴라니 형제가 설립한 갈릴레오 서클, 오스카르 야시가 조직한 사회과학협회, 죄르지 루카치가 이끈 일요 서클 등이 그것이다.[3] 특히 일요 서클에서는 벨라 발라즈, 라요시 퓔레프 등과 함께 문학과 철학을 논하며 독일 문화 비평,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소설, 쇠렌 키르케고르 저술, 독일 신비주의 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지적 기반을 다졌다.[13][14]
1919년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시절에는 루카치의 후원으로 부다페스트 대학교 교육학 연구소에서 강의했으나,[4] 루카치의 공산주의 전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5] 호르티 정권 수립 후 루카치와 함께 망명을 강요받았다.[6]
2. 3. 독일 시기 (1919년 ~ 1933년)
1919년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이 붕괴된 후, 만하임은 독일로 망명하여 1920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에 머물렀다.[6] 1921년에는 심리학자 줄리아 랑(Juliska Károlyné Lang)과 결혼했다.[5] 랑은 만하임의 많은 저술에 공동으로 참여했으며, 사후 저작 편집에도 기여했다.[6]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칠 후원자를 찾지 못하고, 1924년 알프레트 베버와 에밀 레데러 밑에서 연구를 시작했다.[7] 1926년 하빌리타치온을 인정받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사회학 강의를 시작했다.[7] 이 과정에서 발터 벤야민을 제치고 교수직을 얻었다.[7] 1929년부터 1933년까지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 사회학과 및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했다.[6][8]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한스 게르트, 그레타 쿠크호프 등이 그의 조교로 함께 일했다.[9]
이 시기 만하임은 철학에서 사회학으로 관심을 전환하여 문화의 근원을 탐구하고, 인식론 연구를 통해 해석학적 문제로의 전환을 보여주었다.[5] 《지식의 구조적 인식론》, 《지식사회학 에세이》,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등 주요 저서를 출간하며 지식사회학의 이론적 토대를 확립했다. 특히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는 지식의 사회적, 역사적 상대성을 강조하며 '관계주의'를 주창하고,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개념을 통해 사회 변동을 설명했다.
2. 4. 영국 시기 (1933년 ~ 1947년)
1933년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집권하자 영국(Vereinigtes Königreich)으로 망명하여 런던 대학교(University of London) 강사를 거쳐, 1946년 런던 대학교 교육학과 주임 교수가 되었다.[6] 이 시기 만하임은 민주적 사회 기획과 교육을 통해 현대 사회 구조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1935년 출간된 그의 첫 번째 주요 저서 『전환기의 인간과 사회』(''Man and Society in an Age of Reconstruction'')에서 그는 자유방임 자본주의에서 계획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주장했다.[5]1943년 출간된 『우리 시대의 진단』(''Diagnosis of Our Time'')에서 만하임은 이러한 주장을 더욱 확장하고, 계획된 민주 사회가 민주적 또는 독재적 경로를 따라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5] 그의 저서는 영국 사회학자들보다는 교육자, 사회복지사 및 종교 사상가들에게 더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의 계획에 관한 책들은 미국과 여러 유럽 국가에서 전후 정치적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5]
2. 5. 사망
1947년 1월 9일, 런던에서 선천성 심장 질환으로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8] 사망 직전 유네스코 국장직을 제안받았으나 수락하지 못했다. 골더스 그린 화장장에서 화장되어 유골은 납골당에 안치되었다.3. 주요 사상
만하임은 철학에서 사회학으로 전환하여 문화의 근원을 탐구했다. 그의 초기 저작인 "지식의 구조적 인식론"에서는 인식론(인식론)의 구조, 즉 "아는 자, 알려진 것, 알려져야 할 것 사이의 관계"를 논의했다.[5] 그는 진리 주장과 관련하여 예술, 자연 과학, 철학의 차이점을 탐구하면서, 역사적 과정이 문화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상대주의의 위험"을 제기했다.[5]
만하임의 지식 구조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특히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의 의심을 받았다.[16] 그는 레오폴트 폰 비제(Leopold von Wiese), 한스 프라이어(Hans Freyer) 등과 학문적 경쟁을 벌였다.[17]
만하임은 마르크스와 달리, 모든 사상이 특정 입장과 시간에 구속된다는 사상의 존재론적 구속성을 주장하며 지식 사회학을 제시했다. 그는 진리에 가까워지기 위해 자유롭게 유동하는 지식인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변혁기의 인간과 사회』에서 대중 사회의 위험성을 논하며, 후대 에리히 프롬 등의 대중 사회론에 영향을 주었다.
3. 1. 지식사회학
Wissenssoziologie|지식사회학de은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에 기반하여, 지식이 사회적,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만하임은 칸트의 인식론적 발견을 바탕으로 지식사회학을 발전시켰다. 지식사회학은 문화사회학의 한 부분으로, 사회적 조건이 지식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온건 분파(막스 셸러)와 사회가 문화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는 급진 분파로 나뉜다. 만하임은 급진 분파에 속하며, 지식사회학을 통해 사회적 현실에 대한 지식의 의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는 지식사회학을 내재적 해석(지식의 이론적 내용)과 외재적 해석(현상 이해 능력)으로 구분하고, 사회적 현실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경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 개념을 지배 계급의 허위 의식이라고 규정한 것과는 달리, 만하임은 어떤 사상도 그 입장과 시간에 구속되어 있다는 사상의 존재론적 구속성을 지적하고, 지식 사회학을 구상했다. 사상의 존재론적 구속성을 극복하고 진리에 가까워지려면, 전체적인 시야에서 상관관계와 역사를 보려고 입장을 자유롭게 유동하는 지식인(Freischwebende Intelligenz|자유롭게 유동하는 인텔리겐차de)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6][17]
3. 2. 관계주의
만하임은 모든 지식이 특정 시대와 사회적 위치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존재론적 구속성'을 지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식 사회학을 구상했다. 그는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 개념을 지배 계급의 허위 의식이라고 규정한 것과는 달리, 어떤 사상도 그 입장과 시간에 구속되어 있다고 보았다.[12] 이를 극복하고 진리에 가까워지려면, 전체적인 시야에서 상관관계와 역사를 보려고 입장을 자유롭게 유동하는 '자유롭게 부동하는 지식인(自由に浮動するインテリゲンチャ)'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3. 3.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 개념을 지배 계급의 허위 의식이라고 규정했지만, 만하임은 어떤 사상도 그 입장과 시간에 구속되어 있다는 사상의 존재론적 구속성을 지적하고 지식 사회학을 구상했다.[5] 그는 사상의 존재론적 구속성을 극복하고 진리에 가까워지려면, 전체적인 시야에서 상관관계와 역사를 보려고 입장을 자유롭게 유동하는 지식인(自由に浮動するインテリゲンチャ)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3. 4. 민주적 계획
만하임은 자유방임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 '계획된 민주주의'를 제안했다.[6] 그는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6] 교육, 사회 복지, 문화 정책 등을 통해 민주주의 가치를 확산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계획'을 추구했다.[6]4. 한국 사회에 대한 시사점
만하임의 사상은 한국 사회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 이념 갈등과 사회 변동: 만하임은 이데올로기를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사상 체계로 보았다. 그는 사상의 존재론적 구속성을 지적하며, 특정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전체적인 시야에서 사회를 바라볼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은 해방 이후 좌우 이념 대립, 산업화 시기 성장과 분배 갈등, 민주화 과정의 보수와 진보 대립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념 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등은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담은 유토피아적 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지식인의 역할: 만하임은 사회 전체를 조망하고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자유롭게 부동하는 지식인이 다양한 이념 간의 소통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 민주적 계획의 필요성: 만하임은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계획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5] 그는 민주적 사회 기획과 교육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나치 독일과 소련의 전체주의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5]
4. 1. 이념 갈등과 사회 변동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 개념을 지배 계급의 허위 의식이라고 규정했지만, 만하임은 어떤 사상도 그 입장과 시간에 구속되어 있다는 사상의 존재론적 구속성을 지적하고 지식 사회학을 구상했다. 그는 사상의 존재론적 구속성을 극복하고 진리에 가까워지려면, 전체적인 시야에서 상관관계와 역사를 보려고 입장을 자유롭게 유동하는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만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개념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념 갈등과 사회 변동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해방 이후 좌우 이념 대립, 산업화 시기 성장과 분배 갈등,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보수와 진보의 대립 등은 각기 다른 사회 집단의 이익과 가치를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적 충돌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등은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담은 유토피아적 운동으로 볼 수 있다.
4. 2. 지식인의 역할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 개념을 지배 계급의 허위 의식이라고 규정한 것과는 달리, 카를 만하임은 어떤 사상도 그 입장과 시간에 구속되어 있다는 사상의 존재론적 구속성을 지적하고, 지식 사회학을 구상했다. 사상의 존재론적 구속성을 극복하고 진리에 가까워지려면, 전체적인 시야에서 상관관계와 역사를 보려고 입장을 자유롭게 유동하는 지식인(자유롭게 부동하는 인텔리겐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 사회의 위험성에 대해 논한 『변혁기의 인간과 사회』는 후대 에리히 프롬 등의 대중 사회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4. 3. 민주적 계획의 필요성
만하임은 영국 시기에 민주적 사회 기획과 교육을 통해 현대 사회 구조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이 시기에 출판된 그의 첫 번째 주요 저서인 『전환기의 인간과 사회』(1935)에서 그는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자유주의 질서, 즉 "규제되지 않은 무역 순환, 제한되지 않은 민주주의, 자유 경쟁 및 경쟁적 개인주의의 사상에 기초한" 질서에서 계획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주장했다.[5]『우리 시대의 진단』에서 만하임은 이러한 주장을 더욱 확장하고 자유주의 질서에서 계획된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태동기의 계획된 민주 사회는 나치 독일과 소련의 전체주의 사회에서 표현된 것처럼 민주적 또는 독재적 경로를 따라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5] 그의 저서는 영국 사회학자들의 소규모 공동체보다는 교육자, 사회복지사 및 종교 사상가들에게 더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계획에 관한 책들은 미국과 여러 유럽 국가 모두에서 전후 직후의 정치적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5. 주요 저서
- ''Ideologie und Utopie''. Bonn, 1929
- * 鈴木二郎|스즈키 지로일본어 역,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미라이샤), 1968년, 신판 2007년
- * 高橋徹|다카하시 도루일본어・徳永恂|도쿠나가 준일본어 역,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츄코 클래식스), (개정신판), 2006년
- ''Mensch und Gesellschaft im Zeitalter des Umbaus''. Leiden, 1935
- * 福武直|후쿠타케 나오시일본어 역, 『변혁기의 인간과 사회』 (미스즈 쇼보), 1962년
- ''Diagnosis of our Time''. London, 1943
- * 青井和夫|아오이 가즈오일본어 역, 『현대의 진단』 (미스즈 쇼보), 1954년
- ''Freedom, Power and Democratic Planning''. London, 1951
- * 이케다 히데오 역, 『자유・권력・민주적 계획』 (미라이샤), 1971년, 신판 2000년
- 『역사주의·보수주의』(모리 히로시 역), 항성사후생각, 1969년
- * 『보수주의적 사고』(모리 히로시 역), 치쿠마 학예문고, 1997년
- 『문화사회학 초고 사고의 구조』(사와이 아츠시 역), 가쿠문샤, 1995년. (유고집)
- 『청년기 만하임과 그 작품』(아키모토 릿스로 감역), 아즈 출판사, 1995년
- 加藤敏夫|가토 도시일본어 감역, 『만하임 전집』 (전 6권, 시오 출판사)
- * 제1권 『초기 논문집』[20]
- ** 加藤敏夫|가토 도시일본어 역, 「혼과 문화 ― 페렌츠 라이트너 추도를 위해」
- ** 小川内良善|오가와치 료요시일본어 역, 「루카치 『소설의 이론』 비평」
- ** 森好文|모리 요시후미일본어 역, 「세계관 해석의 이론에의 기여」
- ** 小川内良善|오가와치 료요시일본어 역, 「과학 분류의 문제」
- ** 朝倉慶俊|아사쿠라 게이슈니일본어 역, 「인식론의 구조 분석」
- ** 稲上毅|이나가미 다케시일본어 역, 「역사주의」
- * 제2권 『지식사회학』[21]
- ** 加藤敏夫|가토 도시일본어 역, 「지식의 사회학의 문제」
- ** 陸井四郎|리쿠이 시로일본어 역, 「정신적 이미지의 이데올로기적 해석과 사회학적 해석」
- ** 田野崎昭夫|다노자키 아키오일본어 역, 「정신적 영역에서의 경쟁의 의의」
- ** 陸井四郎|리쿠이 시로일본어 역, 「경제적 성공 지향의 본질과 의의 ― 경제사회학에의 기여」
- ** 加藤敏夫|가토 도시일본어 역, 「지식사회학」
- * 제3권 『사회학의 과제』[22]
- ** 石川康子|이시카와 야스코일본어 역, 「보수적 사고」
- ** 스즈키 히로시 역, 「세대의 문제」
- ** 川崎良基|가와사키 요시모토일본어 역, 「독일에서의 사회학의 문제론」
- ** 朝倉慶俊|아사쿠라 게이슈니일본어 역, 「사회학의 현대적 과제」
- * 제4권 加藤敏夫|가토 도시일본어 역,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23]
- * 제5권 『변혁기에서의 인간과 사회』[24]
- ** 杉之原寿一|스기노하라 주이치일본어 역, 「변혁기에서의 인간과 사회」
- ** 長谷川善敬|하세가와 젠케이일본어 역, 「현대의 진단 ― 한 사회학자의 전시 평론」
- * 제6권 田野崎昭夫|다노자키 아키오일본어 역, 『자유·권력·민주적 계획』[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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