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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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칼 폴라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나 헝가리에서 성장한 사회학자이자 경제인류학자로, 시장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에 뿌리박힌 경제'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부다페스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망명 생활을 거쳐 영국, 미국에서 활동하며, 1944년 저서 『거대한 전환』을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폴라니는 상호성, 재분배, 교환을 사회 통합의 패턴으로 제시하고, 교역, 화폐, 시장의 분리를 강조했으며, '이중 운동' 개념을 통해 시장 자유주의의 확장과 사회적 저항의 역학을 설명했다. 그의 사상은 경제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경제 민주주의, 지역 화폐 운동 등 사회 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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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폴라니 - 거대한 변환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19세기 시장경제의 형성과 사회적 변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자기조정 시장의 유토피아적 성격과 그에 대한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인 이중 운동을 강조하는 저서이다. - 칼 폴라니 - 마이클 폴라니
마이클 폴라니는 헝가리 출신의 과학자이자 철학자로, 화학 연구를 수행하고 나치스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여 과학철학, 사회철학, 인식론 분야에서 암묵지, 층의 이론 등을 제시하며 개인적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헝가리의 기독교인 - 지타 세레니
오스트리아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지타 세레니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난민 지원 활동을 시작, 홀로코스트 관련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며 나치 전범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의 잔혹함과 책임, 과거사 청산의 중요성을 탐구한 인물이다.
칼 폴라니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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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폴라니 커로이 |
원어 이름 | Polányi Károly (헝가리어) Pollacsek Károly (헝가리어) Karl Polanyi (영어) |
로마자 표기 | Polányi Károly |
출생일 | 1886년 10월 25일 |
출생지 | 오스트리아-헝가리 빈 |
사망일 | 1964년 4월 23일 |
사망지 | 캐나다 온타리오 주 피커링 |
국적 | 헝가리 |
배우자 | 일로나 두친스카 (1923년 결혼) |
자녀 | 카리 폴라니 레비트 |
친척 | 미하이 폴라니 (형제) 존 폴라니 (조카) 에바 자이젤 (조카) |
학문적 배경 | |
학파 | 역사학파 |
연구 분야 | 경제사회학 경제사 경제인류학 철학 |
영향을 준 인물 | 로버트 오언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G. D. H. 콜 리처드 토니 리처드 툰발트 카를 마르크스 아리스토텔레스 카를 뷔허 페르디난트 퇴니에스 애덤 스미스 앨프리드 래드클리프브라운 베르너 좀바르트 막스 베버 죄르지 루카치 카를 멩거 피클러 줄러 사보 에르빈 야시 오스카르 |
주요 기여 | 임베디드니스 이중 운동 허구적 상품 경제주의적 오류 형식주의-실질주의 논쟁 (실질주의) |
주요 개념 | |
주요 개념 | 시장 사회 사회 통합 패턴 무역, 화폐, 시장의 경제사적 정의 |
영향을 받은 인물 | 피터 드러커 마셜 살린스 폴 보해넌 조지 돌턴 이매뉴얼 월러스틴 다마노이 요시로 구리모토 신이치로 노구치 다케히코 |
참고 | |
참고 자료 | 칼 폴라니 - 브리태니커 칼 폴라니 - 옥스퍼드 레퍼런스 |
2. 생애
칼 폴라니는 188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비엔나에서 유대인 가정의 일원으로 태어났다.[4] 그의 아버지는 철도 사업가 미하이 폴라체크(Mihály Pollacsek)였고, 어머니는 세실리아 볼(Cecília Wohl)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변동에도 불구하고 폴라니는 좋은 교육을 받으며 부다페스트의 지적,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남동생은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이다. 폴라니는 부다페스트에서 교육받으며 갈릴레이 서클과 같은 급진적 지식인 모임을 주도했고,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의 기병 장교로 복무한 후, 헝가리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카로이 미하이의 공화 정부와 사회민주주의 정권을 지지했으나, 쿤 벨라의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 이후 비엔나로 망명했다.[7][4] 비엔나에서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을 비판하고 페이비언주의와 기독교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이 시기 공산주의 혁명가 일로나 두친스카와 결혼했다.
1933년 나치즘의 부상과 오스트리아 내 파시즘의 영향으로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여 노동자 교육을 담당하며 훗날 그의 대표작이 될 『대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의 기초를 다졌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인 1940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버몬트주의 베닝턴 대학교에서 활동하며 『대전환』을 완성하여 1944년 출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활동했으나, 아내 일로나가 과거 공산주의 활동 이력으로 미국 비자를 받지 못하자 캐나다 온타리오주 피커링에 거주하며 강의를 위해 뉴욕까지 통근해야 했다. 말년에는 포드 재단의 지원을 받아 고대 제국의 경제 시스템 연구에 몰두했으며, 인간의 자유와 사회에 대한 저술을 구상하다 1964년 캐나다 피커링에서 사망했다. 그의 미발표 원고를 포함한 자료들은 캐나다 콩코디아 대학교의 칼 폴라니 정치경제 연구소(Karl Polanyi Institute of Political Economy)에 보존되어 있다.
2. 1. 초기 생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비엔나에서 유대인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4] 그의 아버지는 철도 사업으로 부를 쌓은 부르주아지 미하이 폴라체크(Mihály Pollacsek)였고, 어머니는 세실리아 볼(Cecília Wohl)이었다. 카를과 그의 형제자매들은 나중에 성을 폴라니(Polányi)로 바꾸었다. 그의 남동생은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였고, 조카는 도예가 에바 자이젤이었다. 아버지는 1905년 사망했으며, 이후 사업이 기울기도 했지만 폴라니는 좋은 교육을 받으며 부다페스트에서 성장했다. 그는 부다페스트의 민타 김나지움(Minta Gymnasium)에서 공부했다.[5]부다페스트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진보적인 법학자 피클러 율라(Pikler Gyula) 교수를 보수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려다 퇴학당했다. 이 과정에서 폴라니는 1908년, 급진적이고 영향력 있는 지식인 모임인 갈릴레이 서클을 공동 창립하고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이 서클은 헝가리 지성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폴라니는 이 시기에 죄르지 루카치, 오스카르 야시, 카를 만하임 등 당대의 저명한 사상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퇴학 후에는 당시 헝가리 영토였던 클루지나포카의 프란츠 요제프 대학교(Franz Joseph University)로 옮겨 1912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4년, 폴라니는 헝가리 급진당 창당을 돕고 당 서기로 활동했다. 같은 해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의 기병 장교로 참전하여 동부 전선에서 복무했다. 그러나 복무 중 부상을 입어 군 복무에서 면제되었다.[7]
전쟁 후 부다페스트로 돌아와 다시 정치 활동에 참여하여 미하이 카로이가 이끄는 공화 정부와 헝가리 사회민주당 정권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 공화 정부는 오래가지 못했고, 1919년 벨러 쿤이 이끄는 공산주의자들이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을 수립하자 폴라니는 이를 피해 비엔나로 망명했다.[4][7] 이후 헝가리에는 미클로시 호르티의 우익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폴라니는 다시는 헝가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2. 2. 빈 시기 (1919-1933)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부다페스트로 돌아온 폴라니는 카로이 미하이의 공화당 정부와 사회민주당 체제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 공화 정부는 오래가지 못했고, 쿤 벨라가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하자 폴라니는 비엔나로 이주했다. 이후 호르티 미클로슈의 우익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폴라니는 헝가리로 돌아가지 않고 비엔나에 머물게 되었다.[7][4]1924년부터 1933년까지 그는 비엔나에서 권위 있는 경제/정치 주간지인 Der Österreichische Volkswirt|오스트리아 국민 경제de의 기자이자 수석 편집자로 활동했다. 이 시기 폴라니는 경제 현상의 구체적인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모델을 만든다고 보며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을 처음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대신 그는 페이비언주의와 G. D. H. 콜의 저술에 관심을 보였으며, 기독교 사회주의에도 흥미를 느꼈다.
빈 체류 시기, 폴라니는 폴란드-헝가리계 공산주의 혁명가인 일로나 두친스카와 결혼했다.
2. 3. 영국 시기 (1933-1940)
1933년 1월 히틀러의 집권과 오스트리아 의회의 기능 정지, 그리고 오스트리아 내에서 성장하던 성직자 파시즘의 영향으로 인해, 폴라니는 당시 몸담고 있던 자유주의 성향의 출판사 「데어 외스터라이히셰 폴크스비르트」(Der Oesterreichische Volkswirt)로부터 사임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출판사 측에서 저명한 사회주의자인 폴라니를 계속 고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1933년 런던으로 이주하여 언론인과 가정교사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936년에는 노동자교육협회(Workers' Educational Association)에서 강사직을 얻었다. 이때 작성한 강의 노트에는 훗날 그의 대표작이 되는 『대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의 기초가 되는 연구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의 본격적인 집필은 1940년 미국 버몬트주의 베닝턴대학교(Bennington College)에 자리를 잡은 후에야 시작되었다. 폴라니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여러 대학에 취업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4]2. 4. 미국과 캐나다 시기 (1940-1964)
1940년, 폴라니는 미국 버몬트에 있는 베닝턴 대학교의 초빙 교수직을 수락하며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했다.[8][9] 그는 그곳에서 "변혁의 현재 시대"라는 주제 아래 "19세기의 종말",[10] "통합 사회로의 경향",[11] "국제 시스템의 붕괴",[12] "미국은 예외인가?",[13]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 혁명의 내적 역사"[14] 등 총 5회에 걸쳐 시대 상황을 반영한 강연을 진행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단계에 이루어진 강연들이었다. 또한 베닝턴의 인문학 강연 시리즈(1941)[15]와 베닝턴 대학교 강연 시리즈(1943)에도 참여했으며, 1943년 강연 주제는 "장 자크 루소: 아니면 자유 사회가 가능한가?"였다.[16]이 시기 동안 그는 영국에서부터 구상해 온 연구를 정리하여 1944년 대표작인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을 뉴욕에서 출간했다. 이 책은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부터 시작하여 19세기 시장경제 시스템의 형성과 그 사회적 결과들을 분석하며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폴라니는 제도주의 경제학자 모리스 클라크(Maurice Clark)의 지원을 받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1947년부터 1953년까지 객원 교수로 재직하며 일반 경제사를 가르쳤다. 그러나 그의 아내 일로나 두친스카(Ilona Duczyńska, 1897~1978)가 과거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미국 입국 비자를 받지 못했다. 이로 인해 폴라니 가족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피커링(Pickering)에 거주하게 되었고, 폴라니는 강의를 위해 뉴욕까지 12시간이 걸리는 길을 통근해야 했다.
1950년대 초, 폴라니는 포드 재단으로부터 상당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고대 제국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거대한 전환》에서 근대 시장경제의 출현 과정을 분석한 데 이어, 인류 역사 초기에 '경제'라는 영역이 어떻게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탐구하고자 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진행된 그의 세미나는 여러 저명한 학자들을 끌어들였고, 이는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연구 성과는 1957년 『초기 제국의 무역과 시장(''Trade and Market in the Early Empires'')』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말년에도 폴라니는 왕성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공존(''Coexistence'')〉이라는 새로운 학술지를 창간했으며, 산업 사회에서의 인간의 자유 문제를 다루는 『인간의 경제(''The Human Economy'')』와 『자유와 기술(''Freedom and Technology'')』과 같은 후속 저작들을 구상했다. 하지만 이 저술들은 완성되지 못했고, 『인간의 경제』는 사후 해리 피어슨(Harry Pearson)에 의해 편집되어 유고로 출판되었으며, 『자유와 기술』은 구상 단계의 기록만 남아있다. 폴라니는 196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피커링에서 세상을 떠났다.
3. 사상
폴라니는 경제가 사회와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관점, 즉 실질주의를 주장하며 경제학에 대한 문화적 접근을 시도한 사상가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주류 경제학의 입장과는 대립했지만, 인류학과 정치학 분야에서는 중요한 논의를 촉발했다. 그의 분석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같은 과거 사회 연구에도 적용되었다.[20]
그의 대표 저서인 《거대한 변환》은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내재적 불안정성을 파헤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폴라니는 노동, 토지(자연), 화폐와 같이 본질적으로 상품이 될 수 없거나 상품화되어서는 안 되는 요소들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간의 노동 능력, 공동의 자산인 자연, 사회적 신뢰의 상징인 화폐를 상품화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안과 위기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분석은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대안 경제 이론으로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으며, 역사사회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연구 모델을 제시했다.
폴라니는 경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 및 그 제도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실질적 의미'와 희소성 및 효용 극대화에 기반한 합리적 선택을 강조하는 '형식적 의미'를 구분했다. 또한 사회를 통합하는 기본 패턴으로 상호부조, 재분배, 교환을 제시하고, 시장경제에서 통합된 것으로 보이는 교역, 화폐, 시장이 실제로는 각각 다른 기원과 발전 과정을 거쳤다고 분석했다.
그의 사상은 경제 민주주의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운동과 대안 경제 논의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3. 1. '사회에 뿌리박은 경제' ('Embedded Economy')
폴라니는 경제가 사회와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개념, 즉 사회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음(Embeddedness|임베디드니스eng)을 강조하며, 경제학에 대한 문화적 접근법인 실질주의를 주장했다.[20] 이는 주류 경제학과는 다른 관점이지만 인류학과 정치학 등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는 인간이 자신과 자연 사이의 제도화된 상호작용을 통해 생활하며, 자연환경과 동료들에게 의존하는 과정을 경제라고 보았다. 또한 경제는 사회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경제적 기능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폴라니는 “경제적”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두 가지 의미를 제시하며, 기존 경제학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1. 실질적 의미: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물질적 수단 제공과 관련된 의미이다. 이는 인간과 그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 과정의 제도화라는 두 가지 수준으로 구성된다. 폴라니는 자신의 연구 태도를 이 실재적(substantive) 의미에 기반한다고 정의하며, 인간이 자연 및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교환(interchange) 과정을 가리킨다.
2. 형식적 의미: 희소성 또는 효용 극대화 원칙에 따른 합리적 선택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이는 주류 경제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관점이다.
폴라니는 형식적 의미만으로는 경제 현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으며, 이는 경제의 좁은 정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 제도와 행위 속에서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하는 실질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반드시 합리적인 행위만이 경제적인 것은 아니며, 기능과 형식을 중시하는 분석을 비판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폴라니 학파 경제인류학의 특징인 실질주의로 이어진다.
그의 대표작 《거대한 변환》에서 폴라니는 시장경제가 인류 역사상 보편적인 형태가 아니며, 인간의 경제 원리 중 일부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특수한 형태라고 분석했다. 그는 19세기에 세계적으로 확산된 시장사회가 시장 가격 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통제되지 않는 경제를 지향했지만, 바로 그 자기조정 메커니즘 때문에 20세기에 붕괴를 맞이했다고 보았다. 파시즘, 사회주의, 뉴딜 등은 이러한 시장경제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려는 방어적 활동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폴라니는 시장경제가 노동, 토지(자연), 화폐처럼 본질적으로 상품이 될 수 없거나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까지 상품으로 취급함으로써 사회를 파괴하는 내재적 불안정성을 지닌다고 비판했다. 인간의 노동력, 만인이 공유해야 할 자연, 그리고 사회적 신뢰의 상징인 화폐를 상품화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안과 파국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표현을 빌려 이러한 시장경제화를 '악마의 맷돌'에 비유했으며, 사회를 파괴하는 암과 같다고도 표현했다.
폴라니는 이러한 시장경제의 파괴적 영향이 영국의 토지 둘러싸기 운동이나 스피넘랜드 제도 같은 역사적 사례뿐만 아니라, 인도의 식민지화 과정에서의 빈곤 심화나 미국 원주민의 인디언 보호구역 강제 이주와 같은 비서구 사회의 문화적 파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하며, 시장경제의 파괴성을 지적했다.
그의 이러한 분석과 문제의식은 세계 금융 위기의 반복과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대안 경제 이론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경제 민주주의 운동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기도 했다.
3. 2. 사회 통합의 패턴: 상호성, 재분배, 교환
경제 과정에 질서를 부여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기본 패턴으로 상호부조, 재분배, 교환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상호부조 (Reciprocity): 의무로서의 증여 관계나 서로 돕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는 대칭적인 두 지점 사이에서 재화나 서비스가 오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 재분배 (Redistribution): 사회 구성원들이 권력의 중심(예: 국가, 추장)에 대해 의무적으로 생산물 등을 지불하고, 중심은 이를 다시 구성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이다. 재화나 소유권이 먼저 중심으로 이동한 후, 다시 중심에서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인다.
- 교환 (Exchange): 시장을 통해 재화가 이동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내에 분산되어 있는 임의의 두 지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운동으로 이해된다.
폴라니는 그의 주요 저서인 ''대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eng)을 집필할 당시에는 비시장 사회를 통합하는 패턴으로 상호부조, 재분배, 그리고 가사노동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후 저서인 ''인간의 경제''(The Economy as Instituted Processeng)에서는 가사노동을 재분배의 범주에 포함시켜 설명했다.
폴라니는 이러한 사회 통합 패턴을 분석하기 위해 고대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이집트, 다호메이 왕국과 같은 고대 및 비시장 사회뿐만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의 영국, 그리고 19세기부터 20세기 초의 국제 경제 등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3. 3. 교역, 화폐, 시장의 분리
폴라니는 시장경제에서 불가분의 것으로 여겨지는 교역, 화폐, 시장 세 가지 요소가 실제로는 각각 별개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거쳤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세 가지는 공동체의 내부와 외부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그는 침묵 교역이나 무역항과 같은 사례 분석을 통해 공동체 간의 소통 방식을 탐구했다.폴라니에 따르면, 교역은 주로 공동체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했으며, 이에 종사하는 사람도 외부 세계와 교류하는 대외 교역자(때로는 낯선 이방인을 포함)와 공동체 내부에서 활동하는 대내 교역자로 구분되었다. 마찬가지로 화폐 역시 공동체 내부에서 통용되는 대내 화폐와 외부 교역에 사용되는 대외 화폐가 구분되었고, 시장 또한 대내 시장과 대외 시장으로 나뉘어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폴라니는 가격을 스스로 형성하고 조절하는 자기조절적 시장은 비시장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하는 최초의 국제 시장은 알렉산드로스 3세(대왕)의 부하였던 나우크라티스의 클레오메네스가 운영한 곡물 시장이었다.
비시장경제에서는 상품의 가치(등가)가 시장 메커니즘이 아닌 사회적 관습이나 법에 의해 결정되었다. 다양한 재화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등가 비율에 따라 교환되었다. 오늘날 이윤, 임금, 지대 등으로 불리는 소득 요소들도 비시장경제에서는 이러한 등가 개념 안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것이 공정가격 제도의 기초가 되었다고 폴라니는 설명했다. 이러한 전통적 등가 개념은 현대 자본주의의 등가 개념과 달리 개인의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교환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차이가 있다.
화폐는 언어, 문자, 도량형처럼 하나의 의미 체계라고 폴라니는 보았다. 화폐는 지불, 가치 척도, 계산, 부의 축적, 교환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이 기능들은 각각 다른 기원과 목적을 가지며 어느 하나가 화폐의 본질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목적론적 오류라고 비판했다. 모든 기능을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완전한 목적의 화폐는 문자를 사용하는 사회가 등장한 이후에야 나타났다고 그는 주장했다.
3. 4. 허구적 상품 (Fictitious Commodities)
칼 폴라니는 그의 저서 《거대한 변환》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이유를 분석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상품화할 수 없거나 상품화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상품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불안정성을 내포한다고 주장했다.폴라니는 특히 노동, 토지(자연), 화폐를 '허구적 상품'(Fictitious Commodities)이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본래 판매를 위해 생산된 것이 아니지만, 시장경제 시스템 안에서는 마치 상품처럼 거래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 능력, 사회적 신뢰와 제도의 상징인 화폐, 그리고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할 자연(토지)을 상품화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안과 파괴를 가져온다고 보았다.[20]
폴라니는 이러한 허구적 상품화가 사회와 자연을 파괴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적 사례로 영국의 토지 둘러싸기 운동과 스피넘랜드 제도를 제시했다. 더 나아가, 시장경제화로 인한 파괴는 서구뿐만 아니라, 영국 식민 지배 하의 인도나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과 같이 서구 외 지역에서도 문화 접촉 과정에서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폴라니는 시장경제의 무분별한 확대를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빌려 "악마의 맷돌"에 비유했으며, 사회를 파괴하는 "암"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세계금융위기가 반복되고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폴라니의 이러한 문제의식과 대안 경제 이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3. 5. 이중 운동 (Double Movement)
칼 폴라니는 그의 대표 저서 《거대한 변환》에서 자본주의 역사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이중 운동'(Double Movement)을 제시했다. 그는 19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시장경제가 확대되면서 이전 인류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사회'가 탄생했다고 보았다.[20] 이 시장사회는 오직 시장 가격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경제를 지향했지만, 폴라니는 이러한 체제가 스스로의 작동 원리 때문에 불안정하며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폴라니에 따르면,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상품이 될 수 없거나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 즉 인간의 노동, 자연(토지), 그리고 사회적 신뢰의 상징인 화폐까지 상품으로 취급함으로써 사회를 파괴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빌려 "악마의 맷돌" 또는 "암"과 같은 파괴적인 힘에 비유하며,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반을 흔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영국의 토지 둘러싸기 운동이나 스피넘랜드 제도의 폐지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 그리고 서구 외 지역에서 문화 접촉을 통해 발생한 파국들(인도의 빈곤화,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 등)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시장경제의 파괴적인 움직임에 맞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반작용을 일으킨다. 폴라니는 시장의 확대 움직임과 이에 대한 사회의 자기 방어 움직임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을 '이중 운동'이라고 명명했다. 20세기에 나타난 파시즘, 사회주의, 미국의 뉴딜 등은 모두 이러한 사회 보호 운동의 다양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즉, 시장 자유주의가 사회를 해체하려 할 때, 사회 구성원들은 이를 막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대응을 모색하게 되며, 이 과정 자체가 자본주의 역사를 추동하는 핵심 동력이라는 것이다. 폴라니의 이러한 분석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한계와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경제 민주주의 논의 등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3. 6. 자유론
폴라니는 개인이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사회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책임을 짊어짐을 통한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한 사회생활의 투명성을 높여 타인과 자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예측 가능성 문제"를 강조했다. 그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사회 관계나 제도가 실제로는 의도된 행위의 비의도적인 결과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베헤모스(비히모스)"나 "복잡한 사회에서의 자유" 같은 초고와 미완성으로 끝난 저작 『자유와 기술』 등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졌다.폴라니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사회의 존속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딜레마,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문화 개념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루소의 역설이라고 부르며, 이 두 가치를 함께 실현할 수 있는 자유의 제도화 방안을 모색했다.
4. 주요 저서
- '''《거대한 전환 (''The Great Transformation'')》''' (1944): 1933년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상황 악화로 런던으로 이주한 후, 노동자교육협회(Workers' Educational Association) 강사 시절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1940년 미국 버몬트주의 베닝턴대학교(Bennington College)에서 집필을 시작하여 1944년에 출판된 대표작이다.[4] 이 책에서 폴라니는 19세기 초 잉글랜드의 인클로저 운동 과정과 현대 시장 경제 시스템의 형성 과정을 분석하며,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개념이 사회를 파괴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사회에 뿌리내린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 한국어 번역: 박현수 옮김(민음사, 1997), 홍기빈 옮김(길, 2009)
- '''《초기 제국의 교역과 시장 (''Trade and Markets in the Early Empires'')》''' (1957): 콘라드 아렌스버그, 해리 피어슨 등과 공동 편집한 책으로, 고대 제국의 경제 체제를 분석하며 교역, 화폐, 시장이 반드시 통합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님을 인류학적,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폴라니는 이 책에 「제도화된 과정으로서의 경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경제의 발견」 등의 중요 논문을 수록했다.
- * 한국어 번역: 이종옥 옮김(민음사, 1994)
-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 무역 (''Dahomey and the Slave Trade: An Analysis of an Archaic Economy'')》''' (1966): 서아프리카의 다호메이 왕국 경제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국가 통제 하의 무역과 시장 없는 경제 운영 방식을 탐구하고, 노예 무역이 이 지역 경제와 사회 구조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 '''《사람의 살림살이 (''The Livelihood of Man'')》''' (1977): 폴라니 사후에 해리 피어슨이 유고를 편집하여 출판한 책이다. 경제 인류학적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의 경제 체제를 분석하고, '형식적 경제'와 '실질적 경제' 개념을 통해 인간의 생계 활동(살림살이)이 사회적 관계 속에 어떻게 통합되어 있는지를 탐구한다.
- * 한국어 번역: 박현수 옮김(풀빛, 1998)
-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2002): 폴라니가 쓴 여러 논문을 홍기빈이 번역하여 엮은 책으로, "보편적 자본주의 또는 지역 계획?" (1945) 등 시장 경제의 문제점과 그 대안으로서 지역적 계획 경제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고민을 담은 글들을 모았다.
- '''기타 주요 논문 및 저작'''
- * "사회주의 회계" (1922)
- * "파시즘의 본질" (1933–1934)[17]
- * ''Primitive, Archaic, and Modern Economics: Essays of Karl Polanyi'' (1968): 조지 달튼이 편집한 유고 논문집.
- * ''For a New West: Essays, 1919–1958'' (2014)
- * ''Karl Polanyi: The Hungarian Writings'' (2016): 가레스 데일이 편집한 헝가리어 저작 모음.
5. 영향과 유산
칼 폴라니는 경제가 사회와 문화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실질주의적 경제 접근법의 주요 주창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관점은 주류 경제학과는 대립했지만, 인류학과 정치학 분야에서는 큰 호응을 얻었다. 폴라니의 고대 경제에 대한 분석은, 비록 일부 학자들이 고대 사회에서 현대적 의미의 경제 개념 적용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 사회나 고대 메소포타미아 등 다양한 사례 연구에 적용되었다.[20]
그의 대표 저서인 《거대한 변환》은 역사사회학 분야에서 중요한 모델로 평가받으며, 경제 민주주의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폴라니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요인을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상품화될 수 없거나 상품화되어서는 안 되는 요소들, 즉 인간의 노동력, 자연(토지), 그리고 화폐(제도와 신뢰의 상징)를 상품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허구적 상품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안정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최근 지속되는 세계 금융 위기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폴라니의 문제의식은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체제를 넘어설 대안적 경제 이론으로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폴라니의 연구는 여러 영역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분 | 주요 내용 |
---|---|
연구 영역 | (1) 원시 사회나 고대 사회의 비시장 경제 분석 (2) 중상주의 시대가 19세기 시장 사회에 미친 영향 분석 (3) 영국 산업혁명이 전통 사회에 미친 영향 분석 (4) 19세기 자기조정 시장 확대가 야기한 문제점과 그에 대한 사회적 보호 운동 분석 (5) 시장 사회 붕괴 요인 분석 (이 분야에서 폴라니를 평가한 인물로는 에릭 홉스봄, 로버트 하일브로너 등이 있다.) |
정책/이론적 기여 | (1) 자기조정 시장 경제 정책이 국민 경제, 사회적 약자, 개발도상국에 미치는 위협과 위험을 지적하고 규제 및 통제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 제시 (2) 독일 나치 전체주의 등장 원인 규명 (3) 국가 또는 정부의 개입이 국제 경제와 국제 금융에 미치는 문제점 연구 (이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이론이나 규제학파의 로베르 보와이에 등의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
경제사/인류학적 기여 | (1) 교역, 화폐, 시장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연구 (2) 교역항(port of trade) 연구 (3) 상호부조와 재분배 개념 정립 (이 분야에서 폴라니의 영향을 받은 연구자로는 조지 돌턴, 마셜 살린스, 폴 보하난, 타마노이 요시로, 쿠리모토 신이치로 등이 있다.) |
찰스 킨들버거는 『대전환』을 20세기 고전으로 추천했으며, 2001년 신판 서문을 쓴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폴라니 시대와 현재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강조했다. 더글러스 노스는 상호부조와 재분배 같은 비시장 경제 시스템 개념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신고전파 경제학에 기반한 역사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대전환』의 역사 인식과 허구적 상품론을 중시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경제』에서 제시된 "경제적인 것"의 개념이나 화폐론 등을 중시할 것인지에 대해 평가가 나뉜다. 폴라니의 시장 사회론은 시장 원리주의나 세계화된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종종 인용되며, 그의 비시장 경제론은 에드워드 P. 톰슨 등이 제시한 도덕 경제 개념과 관련하여 논의된다. 사회 속에 '묻어 들어가 있는(embedded)' 경제라는 개념은 실물 경제에 기반한 금융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이슬람 금융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다.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는 오픈소스나 프리웨어와 같은 협력적 모델과의 관련성이 지적되기도 한다.[19]
폴라니의 딸인 칼 폴라니-레빗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맥길 대학교의 명예교수로서 아버지의 학문적 유산을 이어받아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6. 한국 사회에 대한 시사점
칼 폴라니의 사상은 현대 대한민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폴라니는 그의 대표 저서 《거대한 변환》에서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상품화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 되는 요소들, 즉 인간의 노동 능력, 자연(토지), 그리고 화폐마저 상품으로 취급하면서 사회 시스템 자체에 불안정성을 내포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허구적 상품화'가 사회적 연대를 파괴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보았다.[20]
대한민국 사회는 압축적인 경제 성장 과정에서 시장의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경제 성장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양극화 심화, 고용불안, 공동체 해체와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폴라니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노동, 환경, 심지어 사회적 관계마저 시장 논리에 종속시키려 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폴라니가 경고했듯이, 자기조정 시장에 대한 맹신은 결국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 즉 시장의 폐해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려는 다양한 형태의 저항과 규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기본소득, 사회적 경제 활성화, 지역화폐 도입 등은 시장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경제 활동을 다시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가치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는 폴라니가 강조한 '사회에 뿌리내린 경제'(실질주의)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 즉, 경제는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 문화, 정치 제도 속에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폴라니의 이론은 경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회 운동에도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폴라니의 사상은 한국의 정치 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은 폴라니의 통찰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적 정책 모델, 예를 들어 사회적 연대 강화, 복지국가 확장,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환경 규제 등을 모색하는 데 이론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반면, 시장 자유와 규제 완화를 강조하는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폴라니의 관점을 통해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과 불안정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폴라니의 사상은 경제 성장과 사회 통합이 균형을 이루는, 보다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사회 시스템 구축을 위한 중요한 지적 자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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