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준 (1954년)
1. 개요
태풍 준 (1954년)은 1954년 9월에 발생하여 일본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이다. 9월 4일 미 해군 기상 센터와 일본 기상청에 의해 처음 감시되었으며, 일본 규슈에 상륙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한국에는 직접 상륙하지 않았지만, 동해안 지역과 울릉도를 중심으로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하여 피해를 입혔다. 울릉도에서는 관측 사상 최고 풍속인 45.0m/s가 기록되었고, 강릉에는 477.5mm의 강수량이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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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태풍 준 (Typhoon June) |
|---|---|
| 활동 기간 | 1954년 9월 4일 ~ 1954년 9월 16일 |
| 소멸일 | 1954년 9월 16일 |
| 최저 기압 (JMA) | 910 |
|---|---|
| 최대 풍속 (JTWC) | 130 노트 () |
| 최저 기압 | 910 mbar () |
| 연도 | 1954 |
|---|---|
| 사망자 | 107명 (보고) |
| 실종자 | 39 |
| 피해액 | >300,000,000 (태풍 태풍 로나와 공유) |
| 영향 지역 | 일본 • 한반도 • 프리모르스키 지방 |
| 태풍 시즌 | 1954년 태평양 태풍 시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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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9월 -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제1차 대만 해협 위기는 1954년부터 1955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륙 통일을 목표로 금문도와 마쭈 열도에 포격을 가하면서 중화민국과 충돌한 군사적, 정치적 긴장 상황으로, 미국의 개입과 중국의 협상으로 이어졌으며 양안 관계와 중국의 핵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 -
1954년 일본 -
제5차 요시다 내각
제5차 요시다 내각은 1953년 5월 21일부터 1954년 12월 10일까지 569일 동안 재직했으며, 바카야로 발언, 내각 불신임안 제출, 중의원 해산 등의 사건을 겪고,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외국 방문 중 반 요시다파의 결집으로 내각총사퇴에 이르렀다. -
1954년 일본 -
제1차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
하토야마 이치로를 내각총리대신으로 하여 민주당을 중심으로 구성된 제1차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은 1954년 12월 10일부터 1955년 3월 19일까지 100일간 존속한 일본 내각이다. -
1954년 대한민국 -
사사오입 개헌
사사오입 개헌은 1954년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사사오입의 억지 논리를 적용하여 정족수를 조작, 헌법 정신을 위배하고 이승만 독재 정권 연장의 오점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
1954년 대한민국 -
제주 4·3 사건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봉기 사태와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 및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남로당 무장봉기와 미군정 및 이승만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으며, 현재 진상 규명 노력과 국가의 공식 사과가 이루어졌으나 폭동과 항쟁이라는 시각이 대립하며 논쟁이 진행 중이다.
2. 발생 과정 (기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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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9월 4일 06:00 UTC, 미 해군 기상 센터(현 JTWC)와 일본 기상청(JMA)은 괌 북동쪽 해상에서 처음으로 태풍 쥰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당시 태풍의 풍속은 50 노트(시속 93km)였고, 중심 기압은 1004 mbar였다. 처음에는 북서쪽으로 이동하다가 다음 날인 9월 5일 같은 시각에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6시간 후, 미 해군 기상 센터는 이 태풍을 제1등급 태풍으로 격상시켰다. 태풍은 남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계속 세력을 키웠다. 9월 5일 18:00 UTC부터 9월 6일 06:00 UTC까지 태풍 쥰의 중심 기압은 996 mbar에서 970 mbar까지 급격히 낮아졌다. 6시간 후 제2등급 태풍으로 발달했으며, 9월 7일까지 이 등급을 유지하다가 제4등급 태풍으로 급격히 발달했다. 그러나 9월 7일 낮 동안 세력이 다소 약해져 9월 8일까지 제3등급 태풍으로 약화되었다. 미 해군 기상 센터의 분석과 달리, 일본 기상청은 이 시점에 태풍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판단하여 중심 기압 910 mbar를 보고했다. 태풍은 필리핀 마닐라 북동쪽 해상을 지나면서 다시 급격히 발달하기 전까지 계속 약화되었다. 다음 날, 태풍은 제4등급 태풍으로 다시 발달했지만, 일본 기상청은 중심 기압 925 mbar로 약화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9월 9일 06:00 UTC, 태풍 쥰은 북서쪽에서 북북서쪽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다시 세력이 약화되었다.
9월 10일, 정찰기가 태풍 쥰을 조사한 결과, 그 크기가 같은 해 발생했던 태풍 그레이스와 거의 비슷하며 반경이 약 482.80km 이상인 매우 큰 태풍임을 확인했다. 미 해군 기상 센터의 기상 전문가는 이러한 급격한 세력 강화가 예상 밖이었다고 언급했다. 9월 10일 12:00 UTC부터 태풍 쥰은 제1등급 태풍으로 더욱 약화되었고, 다음 날인 9월 11일 18:00 UTC까지 이 상태를 유지했다. 이후 태풍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9월 12일에 제4등급 태풍으로 다시 발달했다. 여전히 북서쪽으로 이동하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일본 본토를 향했다. 이날 태풍의 크기는 직경 약 965.60km로 더욱 커졌으며, 일본의 기상학자들은 이 태풍을 치명적인 피해를 남겼던 1934년 무로토 태풍에 비견했다. 태풍 쥰은 야쿠시마 섬 서쪽을 지나 9월 13일 밤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 상륙했다. 다음 날인 9월 14일, 동해를 통과했으며, 미 해군 기상 센터에 따르면 열대 폭풍으로 약화된 후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다음 날 12:00 UTC에 현재의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에 상륙했다. 9월 15일, 미 해군 기상 센터는 태풍 쥰이 내륙 깊숙이 이동하면서 온대 저기압으로 변질되었다고 보고하고 이날 12:00 UTC에 감시를 중단했다. 그러나 일본 기상청은 다음 날인 9월 16일 같은 시각까지 태풍의 잔해를 계속 추적했다.
3. 주요 관측값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는 태풍 준의 영향으로 다음과 같은 주요 관측값이 기록되었다.
3.1. 최저해면기압
| 지역 | 최저해면기압 (hPa) |
|---|---|
| 울릉도 | 970.1 |
| 울산 | 974.6 |
| 포항 | 975.5 |
3.3. 일최다강수량
| 지역 | 일최다강수량 |
|---|---|
| 강릉 | 287.1mm |
| 포항 | 80mm |
| 부산 | 75.5mm |
3.4. 총 강수량 (9월 13~14일)
| 지역 | 총 강수량 |
|---|---|
| 강릉 | 477.5mm |
| 부산 | 96.5mm |
| 포항 | 90.6mm |
4. 영향
이 태풍은 일본 규슈에 상륙하여 일본에 큰 피해를 입혔다. 태풍은 한반도에 직접 상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해안 지역과 울릉도를 중심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태풍의 중심권에 근접했던 울릉도에서는 45라는 기록적인 최대풍속이 관측되었다. 또한 많은 비를 동반하여 9월 13일부터 14일까지 이틀간 강릉에서 관측된 강수량은 총 477.5mm에 달했다.
4.1. 일본
9월 10일부터 오키나와 섬에, 9월 11일부터 규슈에 태풍 준에 대한 폭풍 경보가 발령되었다. 미국군과 자위대는 다가오는 태풍에 대비하여 군사 시설을 정비하고 장비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당시 진행 중이던 국공 내전으로 인한 공격 위협 속에서도 대비가 이루어졌다. 극동 군대의 공군 기지 역시 경계 태세에 들어갔으며, 일본 적십자사와 다른 군인들도 태풍 경고를 받았다. 작고 손상되기 쉬운 시설물에는 보강 조치가 이루어졌고, 식수, 식량, 의료 지원 등 기본적인 필요 사항도 점검되었다. 미국 기상학자들은 도쿄-요코하마 지역은 태풍의 가장 큰 피해를 면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일본 기상청은 한반도 남부 지역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았다. 도쿄 전역의 구조대원들은 시속 50mph에 달하는 풍속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에 대비했다. 호후와 주고쿠 만의 작은 섬인 에타지마에서는 350명이 대피했으며, 규슈와 시코쿠 전역에서도 수천 명이 즉시 대피했다. 고쿠라의 캠프 보후에서는 장교의 명령에 따라 49명의 어린이와 여성이 대피했다. 미야자키, 미야코노조, 노베오카 등지에서는 12만 명 이상이 안전하게 대피했다.
태풍 준은 1934년 무로토 태풍 이후 일본을 강타한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평가받았다. 유나이티드 프레스(UP)는 준으로 인해 발생한 약 3.05m 높이의 거친 파도가 규슈 일부 지역의 방파제를 무너뜨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 기상학자들은 태풍이 아직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며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는 준의 외곽 영향권에서 시속 60mph의 강풍 피해를 입었다. 일본 경찰청은 초기 보고에서 규슈와 시코쿠에서 사망자 1명, 실종자 1명, 부상자 3명이 발생했으며, 2,781채의 가옥이 침수되고 85채가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고 발표했다. 다음 날, 사망자는 22명, 실종자는 19명으로 늘어났다. 피해가 심한 마을과 지역에서는 구조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태풍으로 인한 폭우는 일본 남부 군사 기지에서 진행 중이던 공무원 파업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태풍이 내륙으로 이동하며 약화되면서 일본 서부 지역은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하지만 많은 고속도로, 다리, 통신선이 손상되었다. 미국과 일본의 군사 기지에는 큰 피해가 보고되지 않았다. 일본 북부 지역에서는 선박 운항이 중단되었다. 9월 15일, 공식 사망자는 47명으로 증가했으며, 마이니치 신문의 비공식 집계로는 92명에 달했다. 이 중 35명은 구마강 범람으로 인해 규슈 미나마타에서 발생한 사망자였다. 일본 건설성은 태풍으로 인한 정부 시설 및 장비 피해액을 4 (1954년 기준)으로 잠정 추산했다. 태풍 준의 잔해는 시베리아 일부 지역, 블라디보스토크 포함, 에도 영향을 미쳐 흐린 날씨와 약간의 비를 내리게 했다.
미야코노조에서는 679.6mm의 강수량이 기록되었고, 에히메현 우와지마에서는 316.7mm가 기록되었다. 최종적으로 태풍 준으로 인해 일본 전역에서 107명이 사망하고 37명이 실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39,855채의 가옥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181,380채가 침수되었다. 61722ha 이상의 농지가 유실되거나 침수되었으며, 688척의 선박이 피해를 입었다. 태풍 로나와 함께 태풍 준이 입힌 총 피해액은 300 이상으로 추산된다.
4.2. 한반도
태풍 준은 일본 규슈에 상륙한 후 한반도에는 직접 상륙하지 않았으나, 동해안 지역과 울릉도를 중심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태풍의 영향권에 들었던 울릉도에서는 1954년 9월 14일, 45의 최대풍속이 관측되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 기상 관측 사상 매우 강력한 기록 중 하나였다. 또한 많은 비를 동반하여 9월 13일부터 14일까지 강릉에서는 총 477.5mm에 달하는 강수량이 기록되었다.
| 순위 | 태풍 번호 | 태풍 이름 | 최대 풍속 | 관측 연월일 | 관측 장소 |
|---|---|---|---|---|---|
| 1위 | 0314 | 매미 | 51.1 m/s | 2003/9/12 | 고산 |
| 2위 | 1618 | 차바 | 49.0 m/s | 2016/10/5 | 고산 |
| 3위 | 0012 | 프라피룬 | 47.4 m/s | 2000/8/31 | 흑산도 |
| 4위 | 2009 | 마이삭 | 45.0 m/s | 2020/9/3 | 고산 |
| 4위 | 5412 | 쥰 | 45.0 m/s | 1954/9/14 | 울릉도 |
| 6위 | 0215 | 루사 | 43.7 m/s | 2002/8/31 | 고산 |
| 7위 | 0711 | 나리 | 43.0 m/s | 2007/9/16 | 고산 |
| 8위 | 1904년 태풍 | - | 42.4 m/s | 1904/8/18 | 목포 |
| 9위 | 1905년 태풍 | - | 42.3 m/s | 1905/9/2 | 목포 |
| 10위 | 1913 | 링링 | 42.2 m/s | 2019/9/7 | 흑산도 |
태풍으로 인한 폭우는 한반도 곳곳에 피해를 입혔다. 9월 14일 정오 무렵 평택에서는 염속천이 범람하여 인근 대한민국 및 미국 공군 기지 병력이 고지대로 대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지역의 도로와 다리도 침수되었다. 서울에서는 9월 15일 오전, 한강 수위가 약 5.18m 이상으로 상승하자 군인과 민간인에게 경고가 발령되었다. 또한, 비무장 지대 남쪽의 일부 동부 지역에서는 미국 제8군 기술자 보고에 따르면 약 90.17cm에 달하는 강우량이 기록되기도 했다. 9월 16일에는 도로 유실로 고립된 한반도 내 캠프 타로 리프의 군인들에게 항공기를 통해 식량이 보급되었다. 그 외 울산과 포항에서도 각각 25.5m/s의 최대풍속이 기록되었다.
5. 대한민국 내 태풍 관련 기록
태풍 쥰은 한반도에 직접 상륙하지는 않았지만, 동해안 지역과 울릉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태풍의 중심권에 가까웠던 울릉도에서는 최대풍속 45.0m/s가 관측되어, 마이삭과 함께 역대 공동 4위 기록을 세웠다.
| 순위 | 태풍 번호 | 태풍 이름 | 최대 풍속 | 관측 연월일 | 관측 장소 |
|---|---|---|---|---|---|
| 1위 | 0314 | 매미 | 51.1 m/s | 2003/9/12 | 고산 |
| 2위 | 1618 | 차바 | 49.0 m/s | 2016/10/5 | 고산 |
| 3위 | 0012 | 프라피룬 | 47.4 m/s | 2000/8/31 | 흑산도 |
| 4위 | 2009 | 마이삭 | 45.0 m/s | 2020/9/3 | 고산 |
| 4위 | 5412 | 쥰 | 45.0 m/s | 1954/9/14 | 울릉도 |
| 6위 | 0215 | 루사 | 43.7 m/s | 2002/8/31 | 고산 |
| 7위 | 0711 | 나리 | 43.0 m/s | 2007/9/16 | 고산 |
| 8위 | 1904년 태풍 | - | 42.4 m/s | 1904/8/18 | 목포 |
| 9위 | 1905년 태풍 | - | 42.3 m/s | 1905/9/2 | 목포 |
| 10위 | 1913 | 링링 | 42.2 m/s | 2019/9/7 | 흑산도 |
또한 태풍 쥰은 많은 비를 동반하여, 9월 13일부터 14일까지 이틀간 강릉에서는 총 477.5mm의 강수량이 기록되었다. 그 외 울산과 포항에서도 각각 25.5m/s의 최대풍속이 관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