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케인
1. 개요
팀 케인은 미국의 정치인으로, 2013년부터 버지니아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1958년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나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리치먼드 시의원과 시장, 버지니아 부지사, 주지사를 역임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을 지냈으며, 2016년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는 낙태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여성의 생식 결정에 대한 정부 개입을 반대하며, 기후 변화 대응과 금융 규제를 지지하는 등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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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이름 | 티머시 마이클 케인 |
|---|---|
| 출생일 | 1958년 2월 26일 |
| 출생지 |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
| 배우자 | 앤 홀턴(1984년 11월 24일 결혼) |
| 자녀 | 3명 |
| 학력 | 미주리 대학교(BA) 하버드 대학교(J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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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원 웹사이트 | 상원 웹사이트 |
|---|
| 정당 | 민주당 |
|---|---|
| 미국 상원 의원 | 버지니아주 |
| 함께 | 마크 워너 |
| 임기 시작 | 2013년 1월 3일 |
| 이전 | 짐 웹 |
|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 | 민주당 전국위원회 |
| 임기 시작 | 2009년 1월 21일 |
| 임기 종료 | 2011년 4월 5일 |
| 이전 | 하워드 딘 |
| 다음 | 데비 와서먼 슐츠 |
| 버지니아 주지사 | 제70대 |
| 부지사 | 빌 볼링 |
| 임기 시작 | 2006년 1월 14일 |
| 임기 종료 | 2010년 1월 16일 |
| 이전 | 마크 워너 |
| 다음 | 밥 맥도넬 |
| 버지니아 부지사 | 제38대 |
| 주지사 | 마크 워너 |
| 임기 시작 | 2002년 1월 12일 |
| 임기 종료 | 2006년 1월 14일 |
| 이전 | 존 H. 헤이거 |
| 다음 | 빌 볼링 |
| 리치먼드 시장 | 제76대 |
| 임기 시작 | 1998년 7월 1일 |
| 임기 종료 | 2001년 9월 10일 |
| 이전 | 래리 차비스 |
| 다음 | 루디 맥컬럼 |
| 리치먼드 시의회 의원 | 제2구역 |
| 임기 시작 | 1994년 7월 1일 |
| 임기 종료 | 2001년 9월 10일 |
| 이전 | 벤자민 P.A. 워튼 |
| 다음 | 윌리엄 J. 판텔레 |
-
버지니아주의 가톨릭교도 -
테리 매콜리프
테리 매콜리프는 미국의 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 버지니아 주지사와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클린턴 부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경제 개발과 투표권 확대에 힘썼으나 논란과 FBI 조사, 주지사 재선 실패를 겪었다. -
미네소타주의 가톨릭교도 -
데니스 맥도너
데니스 맥도너는 미국의 정치인으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보훈부 장관이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 비서실장과 백악관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외교 정책 보좌관, 마클 재단 활동가, 그리고 노트르담 대학교와 카네기 국제평화 기금에서 연구 활동을 수행했다. -
버지니아부지사 -
척 롭
척 롭은 버지니아 주지사와 상원 의원을 지낸 미국의 정치인이자 변호사로,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딸과 결혼하여 주목받았으며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이기도 하다.
2. 생애
케인은 아내 가족의 영향과 리치먼드 시의회 회의 참석을 통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94년, 리치먼드 시의회 2지구 의원으로 선출되어 현직 시의원인 벤자민 P.A. 와튼을 97표 차이로 꺾었다. 1994년 7월 1일부터 2001년 9월 10일 사임할 때까지 시의원으로 재직했으며, 윌리엄 J. 판텔레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케인은 시의회에서 4번의 임기를 보냈으며, 마지막 두 번은 리치먼드 시장을 역임했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케인은 미네소타주세인트폴의 성 요셉 병원에서 가정 경제학 교사인 어머니 메리 캐슬린과 용접공이자 작은 철공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앨버트 알렉산더 케인 주니어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 자랐으며, 증조부모 중 한 명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이었고 나머지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이었다. 케인이 두 살 때 가족은 캔자스주 오버랜드 파크로 이사했고, 캔자스시티 지역에서 성장했다. 1976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예수회 남자 고등학교인 록허스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록허스트 고등학교에서 케인은 토론팀에 합류했고 학생회장에 선출되었다.
1979년 미주리 대학교에서 경제학 문학사 학위를 3년 만에 취득했으며, 오미크론 델타 카파와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1978년 캔자스시티에서 코로 재단 펠로우였다. 1979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여 1학년을 마친 후 온두라스에서 일하기 위해 법학 공부를 중단했다.
2.2. 법조 경력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졸업 후, 케인은 미국 제11 순회 항소 법원의 R. 레이니어 앤더슨 3세 판사(조지아주 메이컨)의 법률 서기로 일했다. 그 후 리치먼드 로펌인 Little, Parsley & Cluverius, P.C.에 합류했다. 1987년, 케인은 Mezzullo & McCandlish, P.C. 로펌의 이사가 되었다. 그는 17년 동안 리치먼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공정 주거 법을 전문으로 했고, 인종 차별 또는 장애인 차별을 이유로 차별받는 의뢰인을 대변했다. 그는 Housing Opportunities Made Equal의 버지니아 지부 이사였으며, 리치먼드에서의 회사의 관행에서 비롯된 레드라이닝 차별 소송에서 Nationwide Mutual Insurance C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대표했다. 케인은 이 소송에서 100의 평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혔고, 케인과 동료들은 17.5의 화해에 합의했다.
케인은 정기적으로 프로 보노(무료 변론) 활동을 했다. 1988년, 그는 리치먼드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법률 윤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케인은 6년 동안 리치먼드 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그의 제자 중에는 미래의 버지니아 법무장관인 마크 헤링도 있었다. 그는 버지니아 노숙자 문제 해결 연합의 창립 멤버였다.
3. 정치 경력
팀 케인은 1994년 리치먼드 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리치먼드 시장, 버지니아 부지사,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는 남부 주지사 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2006년 1월 31일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006년 연두교서에 대한 민주당의 응답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2012년에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2018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낙선했다.
3.1. 리치먼드 시의원 및 시장 (1994-2001)
1994년, 팀 케인은 리치먼드 시의회 제2지구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의원 벤자민 P. A. 와튼을 97표 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1994년 7월 1일부터 2001년 9월 10일까지 시의원으로 재직했으며, 윌리엄 J. 판텔레가 그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케인은 시의회에서 4번의 임기를 보냈고, 그중 마지막 두 번은 리치먼드 시장을 역임했다. 1998년에는 래리 E. 차비스의 후임으로 리치먼드 시장에 선출되었는데, 흑인 유권자가 다수인 리치먼드에서 백인 시장이 선출된 것은 10년 이상 만의 일이었다.
시장 재임 기간 동안 케인은 세제 개혁 등에 힘썼으며, 리치먼드 시는 포브스로부터 "비즈니스에 적합한 미국의 도시 1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3.2. 버지니아 부지사 (2002-2006)
팀 케인(Tim Kaine영어)은 2001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50.35%의 득표율로 버지니아 부지사에 당선되었다. 당시 민주당 예비 선거에서 39.7%의 득표율로 본선에 진출했으며, 공화당의 제이 K. 카첸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득표율 | 득표수 (선거인단) | 결과 | 당락 |
|---|---|---|---|---|---|---|---|
| 2001년 선거 | 버지니아 부지사 | 38대 | 민주당 | 50.35% | 925,974표 | 1위 |
3.3. 버지니아 주지사 (2006-2010)
2005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팀 케인은 공화당 후보이자 전 버지니아 법무장관인 제리 W. 킬고어를 상대로 승리했다. 케인은 1,025,942표(51.7%)를 얻어 킬고어의 912,327표(46.0%)를 제쳤다. 무소속 후보인 H. 러셀 포츠 주니어는 43,953표(2.2%)를 얻었다.
케인은 재정적 책임과 중도적인 입장을 강조했으며, 교외 팽창 억제와 교통 문제 해결을 지지하여 버지니아 북부 교외 지역에서 공감을 얻었다. 그는 인기 있는 마크 워너 민주당 현 주지사와의 연관성을 통해 이익을 얻었다.
선거 유세는 막판에 부정적으로 변질되었는데, 킬고어는 케인이 히틀러의 사형을 반대한다고 거짓 주장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케인은 이에 대해 사형에 반대하지만 선서를 하고 사형을 집행할 것이라고 밝히는 광고로 대응했다.
케인은 리치먼드와 북부 버지니아의 내륙 교외,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큰 표차로 승리했다. 또한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와 라우든 카운티 등 외곽 교외 지역과 버지니아 비치, 체서피크 등 공화당 주요 지역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케인은 2006년 1월 14일 윌리엄스버그의 식민지 수도에서 주지사 취임 선서를 했다.
케인은 주지사로서 교통, 에너지, 환경 문제에 힘썼으며, 버지니아 주 관리 시설에서의 금연을 명령하는 주지사령을 발했다. 2009년에는 남부 주에서 처음으로 레스토랑이나 바에서의 금연을 명령하는 법률에 서명했다.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발생 당시 일본 방문 중이었던 케인은 비상 사태 선언을 발령하고 급히 귀국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남부 주지사 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6년 1월 31일, 케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006년 연두교서에 대한 민주당의 응답을 발표했다. 이 연설에서 케인은 부시 행정부의 낙오 아동 방지법과 이라크 전쟁 수행 방식을 비판했다.
3.4.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 (2009-2011)
팀 케인은 2005년에 버지니아 주의 400000acre의 토지를 개발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했다. 그의 보존 노력은 보전권 (토지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영구적으로 개발로부터 보호하는 자발적 권리)에 집중되었으며, 상당한 버지니아 토지 보존 세금 공제가 이러한 권리를 장려했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버지니아 야외 재단 (1966년에 주의 개방된 토지를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준정부 기관)은 이전 40년 동안 보호했던 것보다 더 많은 토지를 보호했으며, 케인은 임기가 끝나갈 무렵 이 사실을 자랑했다.
케인 주지사는 주지사로서 기후 변화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초당적 패널인 기후 변화 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패널은 케인의 공화당 후임자인 로버트 F. 맥도넬 주지사 하에서 폐쇄되었지만, 맥도넬의 후임자인 민주당의 테리 매컬리프 주지사 하에서 (주지사의 기후 변화 및 복원력 업데이트 위원회로) 부활했다.
2008년, 케인은 화력 발전소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여 이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환경 운동가들과 충돌했다.
2009년, 케인은 오바마 행정부가 부과한 산지 제거 탄광 채굴에 대한 더 엄격한 제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3.5. 미국 상원의원 (2013-현재)
2011년 4월, 은퇴하는 민주당 짐 웹의 후임으로 2012년 미국 상원의원 선거에 버지니아주에서 출마할 것을 표명했다. 뛰어난 스페인어 실력을 바탕으로, 출마 표명 영상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로 모두 연설했다. 민주당 예비 선거에서 무투표로 당선되었고, 본 선거에서는 공화당 조지 앨런을 득표율 52.9%로 꺾고 당선되었다.
미국 연방 상원에서는 예산 위원회, 군사 위원회, 외교 위원회에 소속되었으며, 2013년에는 상원 외교 위원회 근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및 대테러리즘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상원 의원직 외에, 2013년에는 리치몬드 대학교에서 비상근 강사로 연간 16000USD를 받았다.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득표율 | 득표수 (선거인단) | 결과 | 당락 |
|---|---|---|---|---|---|---|---|
| 2012년 선거 | 상원의원 (버지니아 제1부) | 113대 | 민주당 | 52.87% | 2,010,067표 | 1위 | |
| 2018년 선거 | 상원의원 (버지니아 제1부) | 116대 | 민주당 | 57.00% | 1,910,370표 | 1위 |
3.6. 2016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
2016년 미국 대통령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고, 2016년 7월 22일에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팀 케인 씨를 부통령 후보로 발표하게 되어 흥분된다. 타인을 위해 싸우는 데 인생을 바쳐온 남성이다"라고 트위터를 통해 언급했으며, 케인도 "힐러리 씨로부터 방금 전화가 왔다. 부통령 후보가 되어 영광이다. 내일의 마이애미 유세가 기다려진다"라고 트윗했다.
7월 27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개최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다. 케인은 지명 수락 연설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나를 믿어달라고 말할 뿐인 남자다"라고 비판하고, 클린턴을 "일을 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함께라면 강해질 수 있다'는 방법을 알고 있다.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칭찬하며, 스페인어를 구사하며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11월 9일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트럼프와 펜스가 승리했지만, 케인의 지역구이며 경합주 중 하나인 버지니아주에서는 클린턴과 케인이 승리했다.
4. 정치적 입장
2006년 1월 31일, 케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006년 연두교서에 대한 민주당의 응답을 발표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부시 행정부의 낙오 아동 방지법이 "지역 학교 구역에 큰 혼란을 야기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학생 대출 프로그램을 삭감한 공화당 의원들을 비판했고, 부시의 지출 증가와 부시 감세를 "무모하다"고 비난했다. 케인은 "교육에 대한 기록적인 투자를 하고" 참전 용사들의 참전 용사 혜택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버지니아주의 초당적 이니셔티브를 칭찬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 수행 방식과 미군에 대한 처우를 비판하며 "미국 국민들은 이라크 침공 이유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받았다",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는 최상의 방탄복이나 최고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행정부는 군인 및 참전 용사 혜택을 더욱 줄이려 한다"고 말했다.
2006년 10월, 케인은 2007년 1월 1일부터 모든 정부 건물과 주 소유 차량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2009년 3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식당과 술집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여 버지니아주를 최초의 남부 주가 되게 했다.
2007년, 공화당이 장악한 버지니아주 의회는 고등학교 입학 전 소녀들이 인유두종 바이러스(자궁경부암 유발)에 대한 HPV 백신을 접종받도록 하는 법안을 "압도적인 초당적 지지"를 받아 통과시켰다. 케인은 이 법안에 대해 "몇 가지 우려"를 표명하며 강력한 거부 조항을 요구했고, 결국 부모가 이유를 밝히지 않고도 이 요구 사항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된 법안에 서명했다.
2007년, 케인은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간호 분야에 대한 주 자금 지원을 늘렸고, 주 공무원의 일반적인 임금 인상률보다 10% 높은 간호 교수 임금 인상과 간호학 석사 프로그램 장학금 지원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간호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케인 주지사에게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2008-09년 경제 위기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아마 그의 가장 큰 성공은 [위기]에도 주를 유지한 것이었다"고 썼다. 대침체 속에서 버지니아주의 실업률은 전국 평균보다 낮게 유지되었다. 케인 주지사 재임 기간 동안 버지니아주의 실업률은 3.2%에서 7.4%로 상승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동안 4.7%에서 9.9%로 상승한 전국 실업률보다 작은 증가폭이었다.
케인 주지사는 약 3310의 일반 기금 지출 삭감을 승인했으며, 그의 임기가 끝난 후 버지니아주 의회는 케인이 권고한 약 1330의 추가 예산 삭감을 채택하여 총 4640의 삭감을 단행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세금을 인상할 수 없고 법적으로 예산 균형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그는 고속도로 휴게소 폐쇄, 공립 대학 등록금 인상 등과 같은 불인기 있는 삭감을 해야 했다"고 썼다. 버지니아주는 초당파 퓨 센터(Pew Center)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관리 부문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3개 주 중 하나였다. 버지니아주는 《포브스》 잡지가 발표한 "사업하기 좋은 주" 순위에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1위를 차지했다.
5. 개인사
케인은 세인트폴의 성 요셉 병원에서 가정 경제학 교사인 어머니 메리 캐슬린(결혼 전 성씨: 번스)과 용접공이자 작은 철공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앨버트 알렉산더 케인 주니어 사이에서 세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톨릭 신자로 자랐으며, 증조부모 중 한 명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이었고 나머지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이었다. 케인이 두 살 때 가족은 캔자스주 오버랜드 파크로 이사했고, 그는 캔자스시티 지역에서 자랐다. 1976년 예수회 남자 고등학교인 록허스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록허스트에서 케인은 토론팀에 합류했고 학생회장에 선출되었다.
1979년 미주리 대학교에서 경제학 문학사 학위를 3년 만에 마치고 오미크론 델타 카파와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1978년 캔자스시티에서 코로 재단 펠로우였다. 1979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여 1학년을 마친 후 온두라스에서 일하기 위해 법학 공부를 중단했다. 1980년, 로스쿨 1학년을 마친 후 어떤 조직의 지원도 없이 그는 그 선교지에 연락하여 직업 훈련 학교에서 자원 봉사 교사로 일했다. 1983년 법학박사(J.D.)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제11 순회 항소 법원의 R. 레이니어 앤더슨 3세 판사(조지아주 메이컨)의 법률 서기로 일했다. 그 후 리치먼드 로펌인 Little, Parsley & Cluverius, P.C.에 합류했다. 1987년에는 Mezzullo & McCandlish, P.C. 로펌의 이사가 되었다. 17년 동안 리치먼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공정 주거 법을 전문으로 했고, 인종 차별 또는 장애인 차별을 이유로 차별받는 의뢰인을 대변했다. Housing Opportunities Made Equal의 버지니아 지부 이사였으며, 리치먼드에서의 회사의 관행에서 비롯된 레드라이닝 차별 소송에서 Nationwide Mutual Insurance C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대표했다. 이 소송에서 1억 500만 달러의 평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혔고, 케인과 동료들은 1,750만 달러의 화해에 합의했다.
프로 보노''(무료 변론) 활동을 했다. 1988년 리치먼드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법률 윤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6년 동안 리치먼드 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그의 제자 중에는 미래의 버지니아 법무장관인 마크 헤링도 있었다. 버지니아 노숙자 문제 해결 연합의 창립 멤버였다.
6. 수상 경력
버지니아 주는 2007년 교육 주간지(Education Week)와 퓨 리서치 센터(Pew Center on the States)의 보고서에서 아이를 키우기 가장 좋은 주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