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김씨
1. 개요
평양 김씨는 고려 우왕 때 성균관 강독관을 지낸 김여하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김여하는 조선 태종 때 서천군 군수를 역임했으며, 그의 후손들은 조선 시대에 걸쳐 다양한 관직을 지냈다. 평양 김씨는 김대진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기여하여 평양군에 봉해지는 등 역사적 활동을 펼쳤으며, 김환은 강원도 평강에 정착하여 여러 파로 분파되었다. 주요 인물로는 소설가 김내성, 철학자 김형석 등이 있으며, 조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기도 했다. 2015년에는 784명이 평양 김씨 성을 사용했다.
2. 역사
평양 김씨의 시조 김여하(金慮遐)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고려와 조선 두 왕조에 걸쳐 관직을 역임했다. 그의 가문은 고려 말 평양으로 낙향하였고, 조선 건국 이후에도 후손들이 관직에 진출하며 가문을 이어갔다.
김여하의 가계는 다음과 같다.
김여하의 증손이자 2세 중시조인 평양군 김대진(平壤君 金大振)의 후손들은 다음과 같다.
3세 중시조 김윤보(金尹寶)는 조선 성종 때 진사를 지냈으며, 홍천현감을 지낸 김횡(金橫)의 차남이다.
4세 중시조 김환(金環)은 조선 선조 때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여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이후 강원도 평강에 정착하여 후손들이 유정파(楡井派)·문봉파(文峰派)·종광파(宗廣派)·광동파(廣洞派) 등의 4개 파를 형성하였다.
2.1. 시조 및 초기 역사
고려 우왕 때 성균관 강독관 등을 거쳐, 조선 태종 때 양광도 서천군 군수를 지낸 김여하(金慮遐)가 평양 김씨의 시조이다. 김여하는 1372년(고려 공민왕 21)에 18세로 국자감(國子監)의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고, 1376년(고려 우왕 2)에 22세로 황해도 해주 향교(海州 鄕校)의 향공 진사시(鄕貢 進士試)에 합격하였다. 1377년(우왕 9)부터 1387년(우왕 13)까지 개성 성균관(成均館)의 강독관(講讀官)을 지냈다. 1387년(우왕 13) 평안도 평양으로 낙향하여 24년 동안 유자(儒者) 겸 농부(農父)로 지내다가, 1392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후 19년이 지난 1411년(조선 태종 11)에 57세로 식년 문과(式年 文科)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1416년(태종 16)까지 양광도 서천군수(舒川郡守)를 역임했다.
김여하의 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여하의 장남 김호문(金浩文)은 1382년(고려 우왕 8) 13세로 명경과 초시에 합격하였고, 1388년(우왕 14)부터 1390년(공양왕 1)까지 양광도 광주 향교 교수, 1390년(공양왕 1)부터 1391년(공양왕 2)까지 경상도 경주 향교 교수를 지냈다. 1392년 고려 멸망 후 조선 황해도 해주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김여하의 증손이자 김호문의 손자인 김대진(金大振)은 1444년(조선 세종 26) 음서(문음)로 성균관 집의(集議)를 지내다가, 1451년(조선 문종 1) 사퇴하였다.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낸 조석문의 가신으로 이시애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으로 평양군(平壤君)에 봉해졌다. 1468년(조선 세조 13) 평안도 평양으로 낙향하였다.
3. 본관
평양은 평안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단군의 고조선, 기자의 후조선, 위만조선 시대의 수도였다. 이후 427년(장수왕 15)부터 240년간 고구려의 도읍지였다. 919년(태조 1)에는 평양성을 축조하고 대도호부로 정하였으며, 926년(태조 8)에 서경이라고 불렀다. 1269년(원종 10)에 서경에 동녕부를 두고 파령(자비령)으로 경계를 삼았다가 1290년(충렬왕 16)에 다시 서경유수를 두었다. 1369년(공민왕 18)에 만호부를 두었다가 평양부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안도 평양부로 개편하여 관찰사가 부윤을 겸임하였다. 1896년 전국을 13도로 분할함에 따라 평안남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부제가 실시되었고 대동군이 평양부에서 독립되었다.
4. 주요 인물
* 김여하: 평양 김씨의 시조. 고려 우왕 때 성균관 강독관 등을 지냈고, 조선 태종 때 양광도 서천군 군수를 지냈다.
* 김호문: 김여하의 장남. 고려 우왕 때 명경과 초시에 합격했고, 양광도 광주와 경상도 경주에서 향교 교수를 역임했다.
* 평양군 김대진: 김여하의 증손. 조선 세종 때 성균관 집의를 지냈고, 이시애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평양군에 봉해졌다.
* 김윤보: 김대진의 친손자. 조선 성종 때 진사를 지냈다.
* 김환: 김윤보의 증손자. 조선 선조 때 음서로 가각고 녹사, 함경도 북청진관,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 김내성: 일제 강점기의 추리 소설가.
* 김관철: 대한민국의 유도인 출신 정치 깡패.
* 김형석: 대한민국의 철학자 겸 작가, 대학교수.
* 김성진: 대한민국의 철학자 겸 대학교수.
* 김은숙: 대한민국의 농구 코치, 전 농구 선수.
4.1. 고려-조선 시대
《증보문헌비고》 및 《조선씨족통보》 등에 따르면, 평양 김씨의 시조 김여하(金慮遐)는 고려 우왕 때 성균관 강독관 등을 거쳤으며, 조선 태종 때 양광도 서천군 군수를 지냈다. 김여하는 1372년(고려 공민왕 21) 18세로 국자감 생원시에 합격했고, 1376년(고려 우왕 2) 22세로 황해도 해주 향교의 향공 진사시에 합격했다. 1377년(우왕 9)부터 1387년(우왕 13)까지 개경 성균관 강독관을 지냈으며, 1387년(우왕 13) 평안도 평양으로 낙향하여 24년간 유학자이자 농부로 지냈다. 이후 1411년(태종 11) 57세로 식년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여, 1416년(태종 16)까지 양광도 서천군수를 역임했다.
평양 김씨의 선계는 상고할 수 없지만, 1세 중시조 김호문(金浩文)은 시조 김여하의 장남이며, 2세 중시조 평양군 김대진(平壤君 金大振)은 시조 김여하의 증손이자 1세 중시조 김호문의 친손자이다.
1세 중시조 김호문(1370년생~1421년졸)은 1382년(고려 우왕 8) 13세로 명경과 초시에 합격했고, 1388년(우왕 14)부터 1390년(고려 공양왕 1)까지 양광도 광주 향교 교수, 1390년(공양왕 1)부터 1391년(공양왕 2)까지 경상도 경주 향교 교수를 역임했다. 이후 평안도 평양으로 낙향했으며, 1392년(공양왕 3) 고려 멸망 후에는 조선 황해도 해주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김대진(1414년생~1485년졸)은 1세 중시조 김호문의 친손자이자 김여하의 증손으로, 1444년(조선 세종 26) 음서(문음)로 성균관 집의를 지내다가 1451년(조선 문종 1) 사퇴했다.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낸 적개공신 1등 창녕군 조석문(1413년생~1477년졸)의 가내 집사로 17년간 있었으며, 1467년(조선 세조 12)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적개공신 1등 조석문과 함께 공을 세워 평양군(平壤君)에 봉해졌다. 1468년(세조 13) 평안도 평양으로 낙향했다.
2세 중시조 평양군 김대진의 친손자인 3세 중시조 언실 김윤보(彦實 金尹寶, 1456년생~1524년졸)는 1480년(조선 성종 11) 진사를 지냈다. 자(字)는 언실이며, 1470년(성종 1)부터 1472년(성종 3)까지 강원도 홍천현감을 지낸 음서 출신 관료 김횡(金橫, 1433년생~1498년졸)의 3남 2녀 중 차남이다.
3세 중시조 김윤보의 증손자인 4세 중시조 김환(金環, 1538년생~1611년졸)은 1574년(조선 선조 7) 음서로 가각고 녹사를 지냈고, 1581년(선조 14) 함경도 북청진관, 1583년(선조 16)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1588년(선조 21) 함경도 병마절도사 직에서 물러나 강원도 평강으로 낙향하여, 후손들이 유정파(楡井派)·문봉파(文峰派)·종광파(宗廣派)·광동파(廣洞派) 등의 4개 파로 나뉘었다.
4.2. 근현대 인물
* 김내성 - 대한민국의 추리 소설가.
* 김관철 - 대한민국의 유도인 출신 정치 깡패.
* 김형석 - 대한민국의 대학교수이자 철학자 겸 작가.
* 김성진 - 대한민국의 철학자 겸 대학교수.
* 김은숙 - 대한민국 농구 코치, 전 농구 선수.
4.3.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선조의 서자 정원군의 측실 평양 김씨 첩이 있었다.
5. 인구
| 연도 | 인구 |
|---|---|
| 1985년 | 991명 |
| 2000년 | 875명 |
| 2015년 | 784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