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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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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작센주는 독일 동부에 위치한 주로, 1423년 베틴 가의 봉토가 된 이후 작센 왕국을 거쳐 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종교 개혁의 발상지이자 문화적 전통을 지닌 곳으로,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켐니츠 등 주요 도시가 있다. 2018년 기준 높은 1인당 GDP를 기록하며, 자동차, 기계 생산, 서비스업 등이 경제를 이끌고 있다. 작센은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했으며, 우수한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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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주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작센 자유주 깃발
깃발
작센 자유주 문장
문장
공식 명칭작센 자유주
독일어 명칭Freistaat Sachsen
상소르브어 명칭Swobodny stat Sakska
저지 작센어 명칭Freischdaad Saggsn
위치독일
주도드레스덴
최대 도시라이프치히
면적18,415.66 km²
인구 (2018년 12월 31일)4,077,937명
인구 밀도자동 계산
인구 통계작센인
시간대중앙유럽 표준시(CET)
서머타임중앙유럽 서머타임(CEST)
ISO 코드DE-SN
NUTS 지역DED
웹사이트작센 자유주 공식 웹사이트
정치
정치 체제독일의 주
주 의회작센 주의회
주 총리미하엘 크레치머
집권 정당독일 기독교민주연합 / 독일 사회민주당
연방참의원 표4표 (총 69표 중)
연방하원 의석38석 (총 736석 중)
경제
GDP (2022년)1465억 1100만 유로
1인당 GDP (2022년)35,909 유로
기타
인간 개발 지수 (2021년)0.933 (매우 높음)
인간 개발 지수 순위독일 16개 주 중 8위

2. 역사

작센은 공국, 신성 로마 제국선제후령(작센 선제후령), 왕국(작센 왕국)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423년 베틴 가문의 봉토가 된 작센은 1485년 라이프치히 조약으로 분할되었고, 베틴 가문의 방계 왕자들은 투링겐 지역을 받아 여러 작은 국가들을 건설했다(''에르네스틴 공국'' 참조).

1697년부터 1763년까지 작센은 폴란드와 동군연합을 이루었다. 이 시기 츠빙거, 드레스덴 대성당, 모리츠부르크 성 등 많은 랜드마크가 건설되었으며, 이들 건축물에서 폴란드-작센 관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13]

1806년 작센 왕국이 되었으나, 나폴레옹을 지원했기 때문에 1815년 프로이센에 영토의 58%를 할양해야 했다. 이 지역은 프로이센의 작센 주(작센-안할트의 전신)가 되었고, 하부 루사티아 등 일부는 브란덴부르크 주, 상부 루사티아 북동부는 실레지아 주에 편입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베틴 왕조가 끝나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작센 자유주가 되었으나, 나치 독일 시대에는 가우 작센이 되어 자치권과 민주주의를 상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존넨슈타인 안락사 센터에서 약 15,000명이 학살당했다.[20][21][22]

동독 치하에서 1952년 주가 폐지되고 라이프치히주, 드레스덴주, 카를-마르크스-슈타트주로 분할되었다가, 1990년 독일의 재통일과 함께 작센 주가 부활하였다.

2. 1. 선사 시대

오늘날 작센의 영토는 기원전 5세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중앙 유럽에서 가장 큰 고대 기념비적 사원 중 일부가 있던 곳이었다.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 근처의 아이트라와 츠벤카우 마을에서 주목할 만한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되었다. 오늘날 작센 영토에 게르만족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세기로 여겨진다.

작센의 일부 지역은 로마 시대 게르만족 왕 마로보두스의 지배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로마 후기에는 작센족으로 알려진 여러 부족이 등장했고, 이후의 국가(들)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다.[1]

2. 2. 중세

하인리히 사자 (그의 아내 작센 공작 부인 마틸다와 함께) 작센 공작으로 즉위하다


최초의 중세 '''작센 공국'''은 8세기 초경에 등장한 후기 초기 중세 "카롤링거 종주 공국"으로, 북부 독일의 대부분, 즉 현재 독일의 브레멘, 함부르크,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작센안할트 주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 동안 작센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했고, 샤를마뉴는 이교도 관습을 금지했다.[11] 이 지역은 현재의 작센과는 관련이 없지만, 특정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그 명칭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자유주 작센의 영토는 10세기에 작센 공작들이 동시에 신성 로마 제국의 왕(혹은 황제)이었던 시대에 신성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이는 오토 왕조, 즉 작센 왕조를 포함한다. 985년에 마이센 변경백국이 국경 변경 지역으로 설립되었고, 곧 동쪽으로는 크비사(Queis) 강까지, 북쪽으로는 오레 산맥까지 확장되었다. 동방 식민(Ostsiedlung) 과정에서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 독일 농민들의 정착이 장려되었다. 이 무렵 작센 귀족 가문인 빌룽가 가문은 작센에서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황제는 결국 그들에게 작센 공작의 칭호를 수여했다. 1106년 작센 공작 마그누스(Magnus)가 사망하여 빌룽가 가문의 남자 계열이 단절되자, 공국의 감독권은 잠시 황제가 되기도 했던 슈플린부르크의 로타르(Lothar of Supplinburg)에게 주어졌다.

1137년 작센의 통제권은 마지막 빌룽가 공작의 장녀 울프힐트 빌룽(Wulfhild Billung)의 후손이자 슈플린부르크의 로타르의 딸인 벨프(Guelph) 가문에게 넘어갔다. 1180년 베저 강 서쪽의 광대한 지역은 쾰른 대주교에게 할양되었고, 베저 강과 엘베 강 사이의 일부 중앙 지역은 벨프 가문이 소유한 채 남아있다가 후에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이 되었다. 나머지 동쪽 지역은 작센 공작의 칭호와 함께 아스카니아(Ascania) 가문(빌룽가의 막내딸인 작센의 아이리카(Eilika Billung)의 후손)에게 넘어갔고, 1260년 작센-라우엔부르크와 작센-비텐베르크라는 두 개의 작은 국가로 분할되었다. 전자는 하작센(Lower Saxony), 후자는 상작센(Upper Saxony)이라고도 불렸으며, 그 후 두 제국 관구인 작센-라우엔부르크와 작센-비텐베르크의 이름이 되었다. 두 국가 모두 작센 선제후의 특권을 주장했지만, 1356년 금칙서는 비텐베르크의 주장만 받아들였고, 라우엔부르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체 주장을 유지했다. 1422년 아스카니아 가문의 작센 선제후 계열이 멸망하자, 아스카니아 가문의 에릭 5세(Eric V of Saxe-Lauenburg)는 작센 공국을 재통합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로마 왕 지기스문트(Sigismund)는 이미 마이센 변경백국의 전투적인 프리드리히 4세(Frederick IV the Warlike)(베틴가)에게 군사적 지원에 대한 보상으로 작센 선제후직을 약속했다. 1425년 8월 1일 지기스문트는 에릭 5세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베틴가 출신 프리드리히를 작센 선제후로 임명했다. 따라서 작센 영토는 영구적으로 분리된 채로 남았다.

그 후 작센 선제후국은 훨씬 더 큰 베틴가의 마이센 변경백국과 합병되었지만, 더 높은 지위의 작센 선제후국이라는 칭호와 심지어 전체 군주국에 아스카니아 문장을 사용했다.[12] 따라서 작센은 드레스덴마이센을 포함하게 되었다. 현대 자유주 작센의 영토는 중요한 민족적, 언어적, 문화적 연관성보다는 역사적 및 왕조적 이유로 오래된 작센 본래 공국과 같은 이름을 공유한다. 18세기와 19세기에 작센-라우엔부르크는 구어체로 라우엔부르크 공국이라고 불렸는데, 18세기부터 나폴레옹 전쟁까지 하노버 선제후국과 인적 동군 연합을 이루었고, 19세기 대부분은 덴마크와 인적 동군 연합(홀슈타인슐레스비히와 함께)을 이루었다. 1876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라우엔부르크 공국 지구(Herzogtum Lauenburg)로 프로이센에 편입되었다.

2. 3. 근세

1423년 작센은 베틴 가의 봉토가 되었다. 1485년 라이프치히 조약으로 작센은 분할되었고, 베틴가의 방계 왕자들이 투링겐 지역을 받아 여러 작은 국가들을 건설했다(''에르네스틴 공국'' 참조). 이 왕자들은 작센 문장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투링겐의 많은 도시의 역사적 건물에서 여전히 문장을 찾아볼 수 있다.

신성 로마 제국 내 작센 선제후령(1618)


남은 작센 국가는 더욱 강력해져서 프라하 조약 (1635)에서 상 루사티아 및 하 루사티아를 받았다. 18세기에는 문화적 업적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쪽과 남쪽에서 작센을 압박한 프로이센오스트리아보다 정치적으로 약했다.

1697년부터 1763년까지 두 명의 연이은 작센 선제후는 인적 동군 연합으로 폴란드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작센의 많은 랜드마크는 이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츠빙거, 드레스덴 대성당, 모리츠부르크 성과 같이 궁전, 교회, 건물 등의 정면과 내부에 있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문장에서 이전 폴란드-작센 관계의 잔재를 확인할 수 있다.[13] 수많은 이정표에도 이러한 관계가 나타나 있으며, 밀접한 정치적 및 문화적 관계는 19세기까지도 지속되었다. 작센은 분할 세력에 맞선 폴란드의 코시추슈코 봉기를 준비한 곳이었고,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 전쟁 영웅 요제프 벰 및 작가 아담 미츠키에비치와 같은 예술 및 정치 엘리트를 포함한 분할된 폴란드에서 온 폴란드 난민들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였다.[14]

1756년, 작센은 프로이센에 대항하여 오스트리아, 프랑스러시아의 연합에 가입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선제적으로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1756년 8월 작센을 침공하여 제3차 실레시아 전쟁 (7년 전쟁의 일부)을 촉발했다. 프로이센군은 작센을 신속하게 격파하고 작센 군대를 프로이센 군대에 편입시켰다. 7년 전쟁이 끝난 후, 작센은 1763년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에서 독립을 회복했다.

2. 4. 19세기

1485년, 작센은 라이프치히 조약에 의해 분할되었다. 베틴가 방계 왕자들은 나중에 투링겐이 된 지역을 받아 여러 작은 국가들을 건설했다(''에르네스틴 공국'' 참조). 이 왕자들은 작센 문장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투링겐의 많은 도시에서 여전히 역사적 건물에서 문장을 찾아볼 수 있다.

남은 작센 국가는 더욱 강력해져서 프라하 조약 (1635)에서 상 및 하 루사티아를 받았다. 또한 18세기에는 문화적 업적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쪽과 남쪽에서 작센을 압박한 프로이센오스트리아보다 정치적으로 약했다.

1697년부터 1763년까지 두 명의 연이은 작센 선제후는 인적 동군 연합으로 폴란드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작센의 많은 랜드마크는 이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궁전, 교회, 건물 등의 정면과 내부에 있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문장과 같이 이전 폴란드-작센 관계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다(예: 츠빙거, 드레스덴 대성당, 모리츠부르크 성). 그리고 수많은 이정표에 있으며, 밀접한 정치적 및 문화적 관계는 19세기까지도 지속되어 작센은 분할 세력에 맞선 폴란드의 코시추슈코 봉기를 준비한 곳이었고,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 전쟁 영웅 요제프 벰 및 작가 아담 미츠키에비치와 같은 예술 및 정치 엘리트를 포함한 분할된 폴란드에서 온 폴란드 난민들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였다.[13][14]

1756년, 작센은 프로이센에 대항하여 오스트리아, 프랑스러시아의 연합에 가입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선제적으로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1756년 8월 작센을 침공하여 제3차 실레시아 전쟁 (7년 전쟁의 일부)을 촉발했다. 프로이센군은 작센을 신속하게 격파하고 작센 군대를 프로이센 군대에 편입시켰다. 7년 전쟁이 끝난 후, 작센은 1763년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에서 독립을 회복했다.

비엔나 의회 이후 작센 왕국


비엔나 의회 이전 작센과 현재 작센 비교


1806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신성 로마 제국을 폐지하고 군사적 지원과 맞바꾸어 작센 선제후국을 왕국으로 승격시켰다. 따라서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는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되었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는 이후 몇 년 동안 유럽을 휩쓴 전쟁에서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지켰다. 그는 나폴레옹의 패배 후인 1813년에 포로로 잡혔고 그의 영토는 연합군에 의해 몰수되었다. 프로이센은 작센을 합병하려 했지만 오스트리아,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반대에 부딪혀 비엔나 의회에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는 왕위에 복귀하게 되었으나, 왕국의 북부 지역을 프로이센에 할양해야 했고, 이로 인해 작센 영토의 약 60%, 인구의 40%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 지역 대부분은 마그데부르크 공국, 알트마르크 및 기타 소규모 영토와 합쳐져 프로이센의 작센 주가 되었는데, 이는 현대 작센-안할트의 전신이다. 하부 루사티아와 전 작센-비텐베르크 영토의 일부는 브란덴부르크 주의 일부가 되었고, 상부 루사티아의 북동부는 실레지아 주의 일부가 되었다. 잔존 국가인 작센 왕국의 영토는 현재 작센 주와 거의 같은 규모였지만 약간 작았다.

1815년, 작센 왕국은 독일 연방에 가입했다.[16] 연방의 정치에서 작센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 압도당했다. 작센의 안톤이 1827년 작센 왕위에 올랐다. 그 직후, 작센에서 자유주의적 압력이 고조되어 1830년 혁명으로 이어졌다.(유럽의 1830년 혁명).[16] 작센 혁명은 1918년까지 작센 왕국의 정부 기반이 된 헌법을 만들어냈다.[16]

1848~49년 독일 헌법주의 혁명 동안, 작센은 혁명가들의 온상이 되었으며, 미하일 바쿠닌과 같은 무정부주의자와 리하르트 바그너, 고트프리트 젬퍼를 포함한 민주주의자들이 1849년 드레스덴 5월 봉기에 참여했다. (1849년 5월 드레스덴 봉기에 리하르트 바그너가 참여한 장면은 리하르트 바그너 역을 리처드 버튼이 맡은 1983년 영화 ''바그너''에 묘사되어 있다.) 드레스덴 5월 봉기는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왕으로 하여금 작센 정부에 대한 추가 개혁을 인정하도록 강요했다.[16]

1854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동생인 작센의 요한 왕이 왕위를 계승했다. 학자인 요한 왕은 단테 알리기에리를 번역했다.[16] 요한 왕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1860년대 초반까지 연방주의적이고 친오스트리아 정책을 추구했다. 그 전쟁 중에 프로이센 군대는 저항 없이 작센을 점령한 후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왕국을 침공했다.[17] 전쟁 후 작센은 배상금을 지불하고 1867년 북독일 연방에 가입해야 했다.[18] 북독일 연방의 조건에 따라 프로이센은 작센의 우편 시스템, 철도, 군사 및 외교 문제를 장악했다.[18]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작센 군대는 프로이센과 다른 독일 군대와 함께 프랑스에 맞서 싸웠다.[18] 1871년 작센은 새로이 형성된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18]

2. 5. 20세기 이후

1945~1952년 자유주 작센


1918년 독일 제국제1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11월 13일 국왕이 퇴위하여 베틴 가의 왕조가 끝나고, 작센은 독일의 구성국(바이마르 공화국)으로 남았으며, 1920년 11월 1일에 제정된 새로운 헌법에 따라 작센 자유주가 되었다. 1923년 10월, 독일 공산당이 드레스덴에서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정부에 참여하자,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총리가 이끄는 라이히 정부는 ''라이히스엑제쿠티온''을 이용하여 작센에 군대를 파병하여 정부에서 공산당원들을 제거했다.[19] 작센은 나치 시대에도 그 이름과 경계를 유지하며 가우 작센이 되었지만, 준자치 지위와 의회 민주주의는 상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나치의 비밀 프로그램인 ''액션 T4''에 따라, 정신 및 신체 장애를 가진 약 15,000명의 사람들과 다수의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이 피르나 근처 존넨슈타인 안락사 센터에서 살해당했다.[20][21][22] 부헨발트, 플로센뷔르크, 그로스로젠 강제 수용소의 여러 부수적인 수용소들이 작센에서 운영되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조지 패튼 장군 지휘하의 미국군1945년 4월 작센 서부를 점령했고, 소련군은 동부를 점령했다. 그해 여름, 1944년 런던 의정서에 따라 작센 전체가 소련군에 넘겨졌다. 포츠담 회담에서 포츠담 협정에 따라,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의 모든 독일 영토는 폴란드소련에 병합되었고,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영토에서 독일어권 사람들을 추방했고, 이들 중 일부는 작센으로 왔다. 나이세 강 동쪽에 위치하고 보가티냐 마을을 중심으로 한 작센의 작은 지역만 폴란드에 병합되었다. 작센과 인접한 독일어권 에거란트와의 전통적인 밀접한 관계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오레 산맥을 따라 작센의 국경은 언어적 경계가 되었다.

구 프로이센의 하부 실레시아 주의 일부는 오데르-나이세 선 서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이전 주의 대부분과 분리되었고; 독일의 소련 군사 행정부는 이 지역을 작센에 병합했다.[23] 이전 실레시아 지역은 1815년 프로이센에 병합된 상 루사티아 지역과 대략 일치했다.

1946년 소련 점령 지역 주 선거에서 많은 사람들이 임의로 후보 자격과 투표권에서 제외되었고, 소련은 공개적으로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을 지지했다.

(동독)은 작센을 포함하여 1949년 소련 점령 지역인 점령된 독일에서 설립되어 헌법적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코메콘과 바르샤바 조약의 일원이 되었으며,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의 지도 아래 있었다. 1952년 정부는 작센 자유주를 폐지하고 그 영토를 베치르크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카를-마르크스-슈타트(이전 및 현재 켐니츠))로 나누었다. 호이어스베르다 주변 지역은 코트부스 베치르크의 일부이기도 했다.

작센 자유주는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약간 변경된 경계로 재건되었다. 이전 실레시아 지역의 작센 대부분이 새로운 작센의 영토에 포함된 것 외에도, 자유주는 1952년까지 작센-안할트에 속했던 라이프치히 북쪽의 추가 지역을 얻었다.

동독 시대에는 중앙집권화 정책이 채택되었기 때문에 1952년에 주가 폐지되어 라이프치히주·드레스덴주·카를-마르크스-슈타트주로 3분할되었다. 1990년에 구 동독에서 1952년 이전의 주를 부활시켜, 그 주가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에 가입하는(신연방주) 형태로 동서독이 통합되었지만, 1990년에 부활한 주는 1952년에 폐지된 주와 일부 지역이 달랐다. 예를 들어 구 라이프치히주 일부는 작센-안할트에 편입되었다.

3. 지리

작센 주의 지리


작센 지형도


작센에서 가장 높은 산은 서부 에르츠게비르게(Western Ore Mountains)에 있는 피히텔베르크(1,215m)이다.

작센에는 많은 강이 있다. 가장 중요한 강은 엘베 강이다. 네이세 강은 작센과 폴란드의 국경을 이룬다. 다른 강으로는 뮬데 강과 바이세 엘스터 강이 있다.

2022년 7월 31일 기준 작센 주의 가장 큰 도시와 마을은 아래와 같다.[24] 라이프치히는 할레와 함께 'Ballungsraum Leipzig/Halle'로 알려진 도시권을 형성한다.[25] 할레는 작센안할트주의 국경 바로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라이프치히는 'S-Bahn Mitteldeutschland'로 알려진 S반 시스템[26]과 공항[27]을 할레와 공유한다.

순위도시인구
1라이프치히612,441
2드레스덴560,648
3켐니츠246,537
4츠비카우87,027
5플라우엔64,419
6괴를리츠56,443
7프라이베르크40,271
8프라이탈39,576
9피르나38,771
10바우첸38,331



프라이베르크


작센 주는 독일 동쪽 끝에 위치하며, 남쪽은 체코, 동쪽은 폴란드와 접하고 있다. 또한 북쪽은 브란덴부르크주, 작센안할트주, 북서쪽에서 서쪽으로는 튀링겐주, 서쪽은 바이에른주와 접한다. 주도는 드레스덴이며, 그 외 라이프치히, 켐니츠, 츠비카우 등이 주요 도시이다. 1989년 동독의 사회주의 통일당(SED) 정권 붕괴 이후, 주의 인구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주로 구 서독 지역으로의 유출이 심하다.

주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는 엘베 강이 흐르고 있으며, 이 주변이 주의 중심부를 이룬다. 그 외 엘베 강 서쪽을 흐르는 뮬데 강과 폴란드 국경을 이루는 네이세 강이 주요 하천이다.

작센 주의 남서부는 역사적으로 라우지츠 또는 오버라우지츠라고 불리며, 소수 민족인 소르브인의 거주 지역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전체가 농촌 지역이며, 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 체코와의 경계 부근은 산악 지대이다. 또한 바이에른주에서 엘베 강 부근까지는 에르츠산지이다. 엘베 강이 산을 깎아 만든 협곡은 장엄한 경치를 이루며, 엘베 강 사암지역으로 유명하다. 주의 동쪽으로 갈수록 산은 낮아지며, 이들은 라우지츠 산지라고 불린다.



작센 주 정부는 2008년 7월까지 주 내를 3개의 행정구역(Regierungsbezirk, “현”으로도 번역됨)으로 나누어 그 지역에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활동을 감독했다.

  • 켐니츠 행정구역(남서부)
  • 드레스덴 행정구역(동부)
  • 라이프치히 행정구역(북서부)

4. 행정 구역

작센주는 10개의 군(Landkreis)과 3개의 독립시(Kreisfreie Stadt)로 구성되어 있다.

작센주의 행정 구역


작센주의 행정 구역 (2012년 이후)
종류명칭약칭소재지
바우첸BZ바우첸
에르츠게비르크스군ERZ안나베르크부흐홀츠
괴를리츠GR괴를리츠
라이프치히L보르나
마이센MEI마이센
미텔작센FG프라이베르크
노르트작센TDO토르가우
작센슈바이츠오스트에르츠게비르게PIR피르나
포크틀란트V플라우엔
츠비카우Z츠비카우
독립시켐니츠C켐니츠
드레스덴DD드레스덴
라이프치히L라이프치히



1990년부터 2008년까지 작센주는 켐니츠, 드레스덴, 라이프치히의 3개 현(Regierungsbezirke)으로 나뉘어 있었다. 2008년 2008년 작센주 행정구역 개편 이후, 이 현들은 각 현의 영역을 일부 변경하여 ''Direktionsbezirke''라고 불렸다. 2012년에는 이 현들의 당국이 하나의 중앙 당국인 Landesdirektion Sachsen|란데스디렉치온 작센de으로 통합되었다.[1]

2008년 행정 구역 개편 이전에는 22개의 군과 7개의 독립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작센주의 행정 구역 (2008년 개편 이전)
신설 군·독립시폐지 군·독립시군청 소재지
켐니츠켐니츠켐니츠독립시
에르츠게비르크스크라이스슈톨베르크 군슈톨베르크
안나베르크 군안나베르크부흐홀츠
아우에슈바르첸베르크 군아우에
미틀러러 에르츠게비르크스 군마리엔베르크
미텔작센프라이베르크 군프라이베르크
미트바이다 군미트바이다
되벨른 군되벨른
포크틀란트크라이스포크트란트 군포크트란트
플라우엔독립시
츠비카우켐니처 란트 군글라우하우
츠비카우어 란트 군베르다우
츠비카우독립시
드레스덴드레스덴드레스덴독립시
바우첸바우첸 군바우첸
카멘츠 군카멘츠
호이어스베르다독립시
괴를리츠니더슐레지셔 오버라우지츠 군니스키
뢰바우치타우 군치타우
괴를리츠독립시
마이센리자그로센하인 군그로센하인
마이센 군마이센
작센슈바이츠오스트에르츠게비르게바이세리츠 군디폴디스발데
작센슈바이츠 군피르나
라이프치히라이프치히라이프치히독립시
라이프치히라이프치거 란트 군보르나
뮬덴탈 군그리마
노르트작센델리치 군델리치
토르가우오샤츠 군토르가우


5. 정치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고 작센 선제후국은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는 나폴레옹에게 충성했지만, 1813년 포로로 잡혔고 영토는 몰수되었다. 비엔나 의회에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는 왕위에 복귀했으나, 영토의 약 60%를 프로이센에 할양해야 했다. 이 지역은 프로이센의 작센 주가 되어 현대 작센-안할트의 전신이 되었다.

1815년 작센 왕국은 독일 연방에 가입했으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 압도당했다. 1830년 혁명으로 1918년까지 작센 왕국의 정부 기반이 된 헌법이 만들어졌다. 1848~49년 독일 헌법주의 혁명 동안 작센은 혁명가들의 온상이 되었고, 드레스덴 5월 봉기가 일어났다. 작센의 요한 왕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을 들었으나, 전쟁 후 작센은 북독일 연방에 가입해야 했다. 1871년 작센은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

1918년 프레드릭 아우구스트 3세가 퇴위한 후 작센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작센 자유주가 되었다. 1923년 라이히스엑제쿠티온으로 작센에 군대가 파병되어 정부에서 공산당원들이 제거되었다. 나치 시대에 작센은 준자치 지위와 의회 민주주의를 상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존넨슈타인 살해 센터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고, 여러 강제 수용소가 작센에서 운영되었다.

전쟁 후 작센은 소련군에 넘겨졌고, 포츠담 협정에 따라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 영토는 폴란드와 소련에 병합되었다.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어권 사람들을 추방했고, 이들 중 일부는 작센으로 왔다. 1946년 선거에서 소련은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을 지지했다.

동독은 1949년 점령된 독일에서 설립되어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1952년 작센 자유주는 폐지되고 세 개의 베치르크(Bezirk)로 나뉘었다.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작센 자유주는 재건되었다.

작센주는 의원내각제이며, 주총리가 정부를 이끈다. 2017년부터 미하엘 크레치머가 주총리를 역임하고 있다.

202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AfD는 작센주에서 31.8%의 득표율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28][29] CDU/CSU는 21.8%로 2위를 차지했고, BSW는 12.6%로 3위를 차지했다.[30]

작센주는 독일 연방의회(Bundestag)를 위한 16개의 선거구를 가지고 있다.

5. 1. 주의회

2024년 작센주 선거 결과 작센 주의회(Landtag)의 의원 수는 119명이다. 2019년 9월 1일에 실시된 주 의회 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58]

정당득표율의석 수 (증감)의석 점유율
기독교민주연합(CDU)32.1%45석 (▼14)37.8%
독일을 위한 대안(AfD)27.5%38석 (▲24)31.9%
좌파당(Linke)10.4%14석 (▼13)11.8%
녹색당(Grüne)8.6%12석 (▲4)10.1%
사회민주당(SPD)7.7%10석 (▼8)8.4%
자유민주당(FDP)4.5%0석 (±0)0%



반유로를 내세운 우파 신당인 AfD는 27.5%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같은 날 선거가 있었던 브란덴부르크주와 함께 주 의회에서 제2당으로 약진했다. CDU는 제1당을 유지했지만, 성장세가 부진했고, 자유민주당과 극우 정당인 NPD는 이번에도 의석을 획득하지 못했다.[58]

5. 2. 역대 주총리

SED1945년 7월 4일1947년 6월 13일13막스 자이데비츠SED1947년 7월 31일1952년 7월 23일(주 폐지 기간)14쿠르트 비덴코프CDU1990년 11월 8일2002년 4월 18일15게오르크 밀브라트CDU2002년 4월 18일2008년 5월 28일16스타니슬라프 틸리히CDU2008년 5월 28일2017년 12월 12일17미하엘 크레치머CDU2017년 12월 13일(현직)


6. 경제

작센 주는 구 동독 지역 중 인구 밀도가 가장 높고 산업화된 지역 중 하나이다. 교육 수준이 높고 우수 전문 인력과 학자들이 많다. 또한, 미술, 도자기, 귀금속 공예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문화적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39] 1989년 10월 동독 시민 혁명의 발상지인 라이프치히, 문화 중심지인 드레스덴과 공업 중심지인 켐니츠 등이 작센 주에 위치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작센 주의 국내총생산(GDP)은 1246억유로로 독일 전체 경제 생산량의 3.7%를 차지했다. 구매력을 고려한 1인당 GDP는 28100EUR로, 같은 해 EU27 평균의 93% 수준이었다. 종업원 1인당 GDP는 EU 평균의 85%였다. 1인당 GDP는 전 동독 지역 주들 중 가장 높았다.[39] 작센 주는 2018년에 0.930의 "매우 높음" 인간개발지수를 기록했으며, 이는 덴마크와 같은 수준이다.[2] 독일 내에서는 9위를 차지하고 있다.

작센 주는 작센-안할트 주 다음으로 전 동독(GDR) 지역 주들 중 가장 활기찬 경제를 가지고 있다.[40] 2010년에는 경제가 1.9% 성장했다.[41]

'''실업률'''[44]
연도%
199917.2
200017.0
200117.5
200217.8
200317.9
200417.8
200518.3
200617.0
200714.7
200812.8
200912.9
201011.8
201110.6
20129.8
20139.8
20148.8
20158.2
20167.5
20176.7
20186.0
20195.5



드레스덴 근처의 마이크로칩 제조업체들 덕분에 이 지역은 "실리콘 작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출판 및 도자기 산업도 잘 알려져 있으나,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는 크지 않다. 오늘날에는 자동차 산업, 기계 생산, 서비스업이 주로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라이프치히 지역은 포르쉐BMW의 투자로 큰 혜택을 보고 있다. 드레스덴의 폭스바겐 파에톤 공장과 많은 부품 공급업체들 덕분에 자동차 산업은 20세기 초와 마찬가지로 다시 작센 산업의 중추가 되었다. 츠비카우는 또 다른 주요 폭스바겐 생산지이다. 옛 광산 도시였던 프라이베르크는 태양광 기술의 주요 지역으로 부상했다. 드레스덴과 작센 주의 일부 다른 지역은 전자 생물 공학과 같은 국제 생명공학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첨단 기술 부문은 아직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지만, 두뇌 유출을 멈추거나 역전시켰다.[45] 글라슈테는 독일 시계 제조업의 발상지이며 A. 랑게 운트 제네와 글라슈테 오리지날과 같은 명성 높은 시계 제조업체들의 본거지이다.

작센은 수출 지향적인 경제를 가지고 있다. 2018년 수출액은 404.8억유로였고 수입액은 244.1억유로였다. 작센의 최대 수출 파트너는 67.2억유로 규모의 중국이며,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은 35.9억유로 규모의 미국이다.[46] 최대 수출 부문은 자동차 산업과 기계 공학이다.

2022년 4월, 작센은 수입 원유 및 가스의 약 84%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했는데, 이는 독일 전체 수입량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와 대조적이다.[47] 이는 주로 동독 시대부터 소련과 긴밀하게 연결된 파이프라인 네트워크 때문이며, 이는 동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유사하다.[48]

7. 인구

작센 주는 바이에른주니더작센주와 같은 독일의 농촌 지역 주들과 비교했을 때 인구 밀도가 높은 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구는 감소해왔다. 작센 주의 인구 감소는 1950년대 이민으로 시작되었으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2013년 최저점을 찍은 후 이민 증가와 출산율 증가로 인구가 안정되었다.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케미니츠 도시와 그 주변의 라데보일, 마르클레베르크 마을은 2000년 이후 인구가 증가했다.

작센 주 인구 변화[31]
연도인구
18161,200,000
18371,652,114
18491,894,431
18582,122,148
18712,556,244
18802,972,805
18853,182,003
18903,502,684
18953,787,688
19004,202,216
19054,508,601
19104,806,661
19144,986,000
19194,670,311
19254,996,138
19395,158,329
19465,558,566
19505,682,802
19645,463,571
19705,419,187
19815,152,857
19904,775,873
20004,384,192
20114,056,799
20224,038,131



12월 31일 기준 주요 외국인 주민 수[31]
국적인구 (2022)인구 (2023)
Україна|우크라이나uk61,79565,750
ܐܬܪܐ ܕܣܘܪܝܐ|시리아syc31,31037,985
Polska|폴란드pl23,73025,170
România|루마니아ro15,72516,200
افغانستان|아프가니스탄ps9,27014,605
Россия|러시아ru11,62013,985
Việt Nam|베트남vi9,73510,020
Türkiye|튀르키예tr7,1309,790
Česká republika|체코cs8,8409,745
भारत गणराज्य|인도hi7,6758,670



2018년 작센 주의 여성 1명당 평균 출산율은 1.60명으로, 독일 주들 중 네 번째로 높았다.[32] 작센 주 내에서는 바우첸 지역이 1.77명으로 가장 높았고, 라이프치히가 1.49명으로 가장 낮았다. 드레스덴의 출산율은 1.58명으로, 5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독일 도시들 중 가장 높았다.

작센 주에는 소르브인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작센 주(상루사티아 지역)에는 4만 5천 명에서 6만 명 사이의 소르브인이 거주하고 있다.[33][34] 오늘날의 소르브인 소수 민족은 중세 초기에 작센 전역에 정착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일어 사용 사회에 서서히 동화된 슬라브 인구의 잔여 집단이다. 작센 주의 많은 지명은 소르브어 기원이며 (세 개의 가장 큰 도시인 케미니츠(Chemnitz), 드레스덴(Dresden), 라이프치히(Leipzig) 포함) 소르브어와 문화는 특별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며, 상당수의 소르브인이 거주하는 작센 주 동부의 도시와 마을에는 이중 언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행정 기관은 독일어와 소르브어 모두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르브인들은 도모비나(Domowina)를 통해 행사되는 문화적 자치를 누리고 있다. 전직 주총리인 스타니슬라프 틸리히는 소르브인 혈통이며, 소수 민족 출신으로 독일 주 최초의 지도자가 되었다.

2011년 기준으로 작센 주 인구의 72.6%는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았다. 독일복음교회는 주 내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파로 인구의 21.4%가 신자였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는 3.8%의 소수였다. 약 0.9%의 작센 주민은 독일복음교회(EKD) 외부의 여러 개신교인인 복음주의 자유교회(''Evangelische Freikirche'')에 속했고, 0.3%는 정교회, 1%는 기타 종교 공동체에 속했다.[35] 모라비안 교회는 여전히 헤른후트에 종교 중심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전 세계 많은 교회에서 사용되는 '매일의 묵상어구'(Losungen)가 이곳에서 선정된다. 특히 대도시에는 수많은 소규모 종교 공동체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1985년 서독보다 먼저 개관한 독일 최초의 성전인 프라이베르크 독일 성전을 통해 작센 주에 진출해 있다. 현재 이 성전은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의 교회 회원들을 위한 종교 중심지 역할도 한다.[36] 라이프치히에는 주로 베트남계 인구를 위한 상당한 규모의 불교 공동체가 있으며, 2008년에 건립된 불교 사찰 한 곳과 현재 건설 중인 또 다른 사찰이 있다.[37] 시크교 또한 작센 주의 세 개의 가장 큰 도시에 세 곳의 (규모는 작지만) 구르드와라를 통해 진출해 있다.[38]

2011년 작센 주 종교 현황[59]
종교비율
독일복음교회21.4%
로마 가톨릭교회3.8%
복음주의 자유교회0.9%
정교회0.3%
기타 종교1.0%
무종교72.6%


8. 문화

작센 주는 구 동독 지역 중 인구 밀도가 가장 높고 산업화된 지역이다. 교육 수준이 높고 우수 전문 인력과 학자들이 많다. 미술, 도자기, 귀금속 공예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문화적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33][34] 1989년 10월 동독 시민 혁명의 발상지인 라이프치히, 문화 중심지인 드레스덴과 공업 중심지인 켐니츠 등이 있다.

작센 주에는 소르브인이 거주한다. 현재 작센 주(상루사티아 지역)에는 4만 5천 명에서 6만 명 사이의 소르브인이 거주한다. 오늘날의 소르브인 소수 민족은 중세 초기에 작센 전역에 정착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일어 사용 사회에 서서히 동화된 슬라브 인구의 잔여 집단이다. 작센 주의 많은 지명은 소르브어 기원이며 (케미니츠(Chemnitz), 드레스덴(Dresden), 라이프치히(Leipzig) 포함) 소르브어와 문화는 특별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소르브인이 많이 거주하는 작센 주 동부의 도시와 마을에는 이중 언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행정 기관은 독일어와 소르브어 모두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르브인들은 도모비나(Domowina)를 통해 문화적 자치를 누리고 있다. 전직 주총리인 스타니슬라프 틸리히(Stanislaw Tillich)는 소르브인 혈통이며, 소수 민족 출신으로 독일 주 최초의 지도자가 되었다.

바우첸(Bautzen)의 경계 표지판(독일어와 상소르브어). 작센 동부의 많은 지명은 소르브어에서 유래되었다.


2011년 기준으로 작센 주 인구의 72.6%는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았다. 독일복음교회는 주 내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파로 인구의 21.4%가 신자였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는 3.8%였다. 약 0.9%의 작센 주민은 독일복음교회(EKD) 외부의 여러 개신교인인 복음주의 자유교회(''Evangelische Freikirche'')에 속했고, 0.3%는 정교회, 1%는 기타 종교 공동체에 속했다.[35] 모라비아 교회는 여전히 헤르른후트에 종교 중심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전 세계 많은 교회에서 사용되는 '매일의 묵상어구'(Losungen)가 이곳에서 선정된다. 특히 대도시에는 수많은 소규모 종교 공동체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1985년 서독보다 먼저 개관한 독일 최초의 성전인 프라이베르크 독일 성전을 통해 작센 주에 진출해 있다. 현재 이 성전은 폴란드, 체코 공화국, 슬로바키아, 헝가리의 교회 회원들을 위한 종교 중심지 역할도 한다.[36] 라이프치히에는 주로 베트남계 인구를 위한 상당한 규모의 불교 공동체가 있으며, 2008년에 건립된 불교 사찰 한 곳과 현재 건설 중인 또 다른 사찰이 있다.[37] 시크교 또한 작센 주의 세 개의 가장 큰 도시에 세 곳의 (규모는 작지만) 구르드와라를 통해 진출해 있다.[38]

작센주는 독일의 유명한 관광지이다.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는 독일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도시 중 두 곳이다.[49] 체코와의 국경 지역, 예를 들어 루사티아 산맥, 에르츠게비르게, 작센 스위스, 그리고 포크트란트는 많은 수의 관광객을 유치한다. 게다가 작센주에는 괴를리츠, 바우첸, 프라이베르크, 피르나, 마이센 그리고 슈톨펜과 같은 잘 보존된 역사적인 도시들과 수많은 성과 궁전들이 있다. 특히 루사티아 호수 지대에서 새로운 관광지가 개발되고 있다.[50]

드레스덴은 독일과 유럽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도시 중 하나이다.


역사적인 도시 괴를리츠(Görlitz)


엘베 강(Elbe) 계곡과 배경에 있는 마이센(Meissen)


작센은 문화 지역으로서 중부 독일에 속한다. 따라서 독일 역사 전반에 걸쳐 독일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작센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방언들은 "튀링겐 방언과 상작센 방언"으로 묶여 있다. 구어체에서 "작센 방언"이라는 용어가 부정확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고대 작센어저지 독일어와 구별하기 위해 상작센이라는 속성이 추가되었다. 작센에서 사용되는 다른 독일어 방언으로는 상작센 방언의 영향을 받은 에르츠게비르게(Ore Mountains) 방언과 동프랑켄어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포크트란트(Vogtland) 방언이 있다.

상소르브어(서슬라브어군에 속하는 언어)는 소르브어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상루사티아 지역에서 사용된다. 상루사티아의 독일인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언(루사티아 방언)을 사용한다.

작센은 종종 종교 개혁의 "모국"으로 여겨진다.[53] 20세기 후반까지 주로 루터교 프로테스탄트였던 곳이다.

오늘날의 작센의 전신인 작센 선제후령은 종교 개혁의 발상지였다. 선제후는 1525년부터 루터교도였다. 루터교회는 1510년대 후반과 1520년대 초에 조직되었고, 1527년 굳건한 요한에 의해 공식적으로 수립되었다. 마르틴 루터와 관련된 장소 중 일부는 현재 작센-안할트 주(비텐베르크, 아이슬레벤, 만스펠트 포함)에 위치하지만, 오늘날의 작센은 일반적으로 16세기 루터의 고향(즉, 작센 선제후령)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여겨진다.

마르틴 루터는 작센의 루터교회를 직접 감독하고 자신의 견해와 사상에 따라 일관되게 형성했다. 16세기, 17세기, 18세기는 루터교 정통주의가 크게 지배했다. 또한, 소위 암흑 칼뱅주의자들과 함께 개혁파 신앙이 확산되었지만, 압도적으로 루터교인 국가에서 강력하게 박해받았다. 17세기에는 경건주의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8세기에는 진첸도르프 백작의 헤른후트 재산에 모라비아 교회가 설립되었다. 1525년부터 통치자들은 전통적으로 루터교도였으며 널리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수호자로 인정받았지만, 폴란드 국왕이 되기 위해 1697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했던 강력한 아우구스투스 2세를 시작으로 군주들은 독점적으로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 즉, 로마 가톨릭 신자인 아우구스투스와 그 후의 작센 선제후들은 거의 전적으로 프로테스탄트인 주민들을 통치했다.

1925년 작센 인구의 90.3%는 프로테스탄트였고, 3.6%는 로마 가톨릭, 0.4%는 유대교, 5.7%는 기타 종교 분류에 속했다.[5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작센은 국가 무신론 정책을 추진한 동독에 편입되었다. 45년간의 공산주의 통치 후, 대다수의 인구는 무종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에도 작센은 중요한 종교 대화의 장소로 남아 있었고, 1988년 독일 복음교회와 잉글랜드 교회 간의 상호 인정에 관한 합의가 마이센에서 체결되었다.[55]

레드 불 아레나 (Red Bull Arena) 라이프치히


2020년 기준, 작센주에는 다양한 종목의 등록된 스포츠 클럽이 4,447개가 넘었고, 회원 수는 60만 명이 넘었다.[56] 작센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RB 라이프치히는 작센주를 대표하는 팀으로 분데스리가와 유럽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라이프치히는 오랜 축구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로, 라이프치히의 팀은 독일 역사상 최초의 전국 축구 챔피언이었다. 또 다른 인기 스포츠는 핸드볼이며, SC DHfK 라이프치히는 분데스리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탁구, 사이클링, 등산배구와 같은 스포츠가 인기 있다.

작센 주는 현대 레크리에이션 등반이 세계 최초로 발전한 곳 중 하나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바트 잔다우 지역의 팔켄슈타인 암벽은 1864년 독일 암벽 등반 전통이 시작된 곳으로 여겨진다.

작센 남부의 에르츠게비르게(Ore Mountains)는 전통적으로 동계 스포츠 지역이다. 오버비젠탈(Oberwiesenthal) 스키 리조트는 해발 900m에 위치한 독일에서 가장 높은 도시이지만, 주변 산들은 남부 독일(Southern Germany)의 알프스 지역만큼 높지는 않다. 따라서 기후 변화는 동계 스포츠 사업 발전에 특정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독일 동계 올림픽 팀을 위한 여러 훈련 시설이 있다.

작센의 두 주요 문화 중심지는 드레스덴라이프치히이다. 두 도시는 각각 작센과 독일 역사 전반에 걸쳐 수행한 역할을 반영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드레스덴은 정치 중심지였던 반면 라이프치히는 주요 무역 도시였다. 따라서 드레스덴은 전 작센 국왕들의 미술품 컬렉션(드레스덴 주립 미술품 컬렉션)으로 유명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은 그린 볼트와 츠빙거이다.

반면 라이프치히는 왕실이 없었기 때문에 그 문화는 주로 시민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 도시는 고전 음악과 요한 세바스찬 바흐, 멘델스존 또는 바그너와 같은 이름과의 관계로 유명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도시는 현대 미술계, 특히 네오 라이프치히 학파와 같은 네오 라우흐와 같은 예술가들로 유명해졌다.

작센(Saxony)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백색 도자기를 개발 및 생산한 곳으로, 그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사치품이었다. 마이센 도자기 제조소는 1710년부터 도자기를 생산해 왔다. 이곳은 세계적인 도자기 제조업체 중 하나이자 가장 오래되고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고급 브랜드 중 하나이다.[57]

작센 요리는 작센 지방의 지역 요리 전통을 포괄한다. 일반적으로 작센 요리는 매우 풍성하며, 중부 독일의 여러 특징, 즉 다양한 소스주요리와 함께 제공되고 감자 경단(클뢰세/크뇌들)이 감자, 파스타 또는 대신 곁들임 요리로 제공되는 방식을 특징으로 합니다. 또한 작센 요리에는 많은 민물고기가 사용됩니다. 드레스덴 주변 지역은 독일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와인 산지이다 (작센 (와인 산지) 참조).

작센은 19세기 군주제 시대부터 자체 국가를 가지고 있다. 'Gott segne Sachsenland'(하느님이 작센 땅을 축복하소서)는 God save the King의 선율을 기반으로 한다.

주 문장


주기


주정부기


작센주 주민의 약 75%가 무교이거나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믿는다. 약 21%의 주민이 독일 복음주의 교회(Deutsche Evangelische Kirche) 신자이며, 그 대부분은 작센 복음 루터 교회(Sächsische Evangelisch-Lutherische Landeskirche)에 속해 있다. 다만, 니더슐레지엔 오버라우지츠 군(Niederschlesisch-Oberlausitzkreis)과 괴를리츠(Görlitz) 주민은 베를린-브란덴부르크-슐레지엔 오버라우지츠 복음주의 교회(Evangelische Kirche Berlin-Brandenburg-schlesische Oberlausitz, EKBO)에 속해 있다. 중부 독일 복음주의 교회(Evangelische Kirche in Mitteldeutschland)에 속한 주민도 소수 있다. 3.7%의 주민은 로마 가톨릭 교회(römisch-katholische Kirche)에 속해 있다. 이슬람교, 유대교 등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가진 주민들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교회 회원 수 (2011년 5월 9일)[59]주민 비율
로마 가톨릭 교회(römisch-katholische Kirche)149,5703.7 %
독일 복음주의 교회(Deutsche Evangelische Kirche)846,49020.9 %
기타 종교, 무교3,060,74075.4 %

9. 교육

작센의 교육 시스템은 독일에서 가장 우수한 시스템 중 하나로 꼽힌다. 독일 학교 평가([https://www.insm-bildungsmonitor.de Bildungsmonitor])에서 수년 동안 1위를 차지했다.[51]

작센에는 4개의 대규모 종합대학교, 6개의 Fachhochschulen(응용과학대학교) 및 6개의 예술학교가 있다.

드레스덴 공과대학교(TU Dresden)는 작센에서 가장 큰 대학교이다.


1828년에 설립된 드레스덴 공과대학교(TU Dresden)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이다. 2010년 기준으로 36,066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작센에서 가장 큰 대학교이자 독일에서 가장 큰 10개 대학교 중 하나이다. TU9 (9개의 주요 독일 공과대학 컨소시엄)의 회원이다.

라이프치히 대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이며, 연속적인 존속 기간을 기준으로 독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교(1409년 설립)이다. 저명한 동문으로는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란케(Leopold von Ranke), 니체(Friedrich Nietzsche), 바그너(Richard Wagner), 채원페이(Cai Yuanpei),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라이라 오딩가(Raila Odinga), 티코 브라헤(Tycho Brahe) 등이 있으며, 노벨상 수상자 9명이 이 대학교와 관련되어 있다.

11,000명이 넘는 학생이 재학 중인 켐니츠 공과대학교는 작센에서 세 번째로 큰 대학교이다.

1765년에 설립된 프라이베르크 공과대학교는 옛 광산 마을인 프라이베르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광산 및 야금 대학교이다.[52]

작센에는 여러 막스 플랑크 연구소와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연구 기관이 있다.

독일 국립도서관의 두 주요 캠퍼스 중 하나가 라이프치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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