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이스키아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스키아섬은 캄피 플레그레이 남서쪽에 위치한 이탈리아 나폴리 만의 섬으로, 복합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에 피테쿠사이(Pithekousai)라는 식민 도시를 건설했으며, 로마 시대에는 아에나리아로 불렸다. 현재의 이름은 812년에 처음 기록되었다. 이 섬은 지질학적으로 화산 활동의 영향을 받았으며, 몬테 에포메오 산이 최고봉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아라곤 성, 라 모르텔라 정원, 빌라 라 콜롬바이야 등이 있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이스키아는 또한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며, 2017년 지진과 2022년 산사태와 같은 자연재해를 겪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캄파니아주의 섬 - 프로치다
    프로치다는 이탈리아 나폴리 만의 플레그레아 제도에 속하는 화산섬으로, 굴곡진 해안선을 가지며 고대부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녀 여러 소설의 배경이 되었고 2022년 이탈리아 문화 수도로 선정되었다.
  • 캄파니아주의 섬 - 카프리섬
    카프리섬은 나폴리만에 위치한 캄파니아주 나폴리현의 섬으로, 지중해성 기후를 띠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역사적인 명소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 티레니아해의 섬 - 코르시카
    코르시카는 지중해에 위치한 프랑스령 섬으로,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카르타고, 로마, 피사, 제노바의 지배를 거쳐 프랑스에 정복되어 현재까지 프랑스 영토로 남아있고, 험준한 산악 지형과 아름다운 해안선,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보유하여 자치권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 티레니아해의 섬 - 시칠리아섬
  • 이탈리아의 성층 화산 - 베수비오산
    베수비오산은 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에 위치한 활화산으로, 79년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파괴한 분화로 유명하며, 현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베수비오 관측소에서 감시한다.
  • 이탈리아의 성층 화산 - 에트나산
    에트나산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위치한 활화산으로,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에 등장하며 잦은 화산 활동을 보이고,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스키아섬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지도
기본 정보
이름이스키아
로마자 표기Ischia
위치티레니아해
군도플레그레에 군도
면적47 km²
해안선 길이30 km
최대 길이10 km
최대 너비7 km
둘레34 km
최고봉에포메오 산
높이789 m
국가이탈리아
행정 구역캄파니아주, 나폴리현
최대 도시이스키아
최대 도시 인구18,253명
인구62,027명 (2009년 기준)
인구 밀도1,339.7 명/km²
지질
유형복합 화산
마지막 분화1302년 1월 ~ 3월

2. 지질 및 지리

대략 사다리꼴 모양의 이 섬은 캄피 플레그레이 지역 바로 남서쪽에 있는 나폴리 만 서쪽에 위치한 복합 화산에 의해 형성되었다. 약 56,000년 전에 트라키틱 그린 응회암 이그님브라이트가 분출된 후 섬 전체와 주변 해저의 일부를 포함하는 칼데라가 형성되었다.[4] 이 섬의 최고점인 몬테 에포메오(788m)는 분출 후 침강했다가 다시 구조 융기된 녹색 응회암으로 구성된 화산성 호르스트이다. 이 섬의 화산 활동은 일련의 호르스트와 그라벤을 형성한 지각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재융기 돔은 지난 33,000년 동안 최소 800m의 융기를 일으켰다.[5] 많은 작은 단성 화산들이 융기된 블록 주변에 형성되었다. 홀로세 동안의 화산 활동은 일련의 부석, 응회환, 용암 돔 및 용암류를 생성했다.[6] 1302년 이스키아의 마지막 분화로 스패터 콘과 북동쪽 해안에 도달한 아르소 용암류가 생성되었다.

가에타 만,[7][8] 나폴리 만 및 포추올리 만을 포함한 주변 해역은 풍부하고 건강하며, 거대한 긴수염고래와 향유고래를 포함하여 약 7종의 고래와 돌고래의 서식지를 제공한다. 이 생물 다양성을 모니터링하고 보호하기 위해 현지 고래류에 대한 특별 연구 프로그램이 수행되었다.[9][10]

대략 사다리꼴 모양을 가진 이 섬은 나폴리에서 약 18해리 떨어져 있으며, 동서로 10km, 남북으로 7km, 해안선은 43km, 면적은 약 46.3km2이다. 최고 고도는 섬 중앙에 위치한 788m의 몬테 에포메오이다. 이것은 마그마 압력으로 인해 주변 지각에 비해 융기된 지구 지각의 블록을 의미하는 구조 화산인 호르스트이다(호르스트는 "바위"를 의미하는 독일어 용어이다). 몬테 에포메오는 화산적 특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로 화산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섬의 화산 활동은 몬테 에포메오를 포함하여 호르스트의 경계를 이루는 단층을 따라 특히 만연해 있다.

스트라보는 그리스 역사가 티메오가 그의 시대 직전에 이스키아에서 발생한 쓰나미에 대해 말한 내용을 보고한다. 에포메오의 화산 활동 이후, "...바다가 세 단계를 물러났고, 그 후 (...) 다시 돌아와 그 간조가 섬을 침수시켰다 (...) 본토에 살던 사람들은 해안에서 캄파니아 내륙으로 도망갔다"(지리학 V, 4, 9). 그 해안에서 멀지 않은 쿠마에는 그리스어로 "파도"를 의미한다. 이스키아의 화산 활동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매우 긴 간격으로 발생한 분화로 특징지어졌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분화 후, 마지막 분화는 1302년에 섬의 동쪽 지역에서 발생하여 바다에 도달하는 짧은 용암류(아르소로 알려짐)를 발생시켰다.[11]

3. 명칭

그리스인들은 이 섬의 식민지를 피테쿠사이(Πιθηκοῦσσαι)라고 불렀으며, 여기에서 라틴어 이름 피테쿠사가 파생되었다. 이 이름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오비디우스(변신이야기 14.92)와 알렉산드리아의 역사가 세나고라에 따르면, 이 이름은 피테코스, 즉 원숭이에서 유래되었으며, 제우스가 플레그라에 섬의 거주민들을 원숭이로 변모시킨 케르코페스 신화와 관련이 있다. 대 플리니우스(박물지 111, 6.82)의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는데, 그는 대신 이름을 피토스, 즉 암포라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이는 섬과 나폴리 만에서 도기(특히 와인 암포라)의 그리스-이탈리아 생산을 증명하는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론이다.[12]

이 이름이 소나무 숲이 풍부한 섬의 특징을 설명한다는 주장도 있다. "피투에오이스"(소나무가 풍부함), "피투이스"(솔방울), "피사, 피타"(수지)는 피테쿠사이에서 파생될 수 있는 묘사적인 용어로 나타나며, "수지의 섬"을 의미한다. 이는 특히 와인 용기를 방수 처리하는 데 사용되는 중요한 물질이다. 라틴인들도 사용했던 아에나리아라는 이름은 성 아래 동쪽 해안에 위치한 금속 작업장(아에누스, 금속에서 유래)과 관련이 있다.

섬의 현재 지명에 대한 첫 번째 증거는 8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교황 레오 3세가 샤를마뉴에게 이 지역에서 발생한 파괴에 대해 알리는 서한에서 이 섬을 이슬라 마이오르라고 불렀다. "Ingressi sunt ipsi nefandissimi Mauri [...] in insulam, quae dicitur Iscla maiore, non longe a Neapolitana urbe." 일부 학자들은 이 용어를 페니키아어 단어와 연결하여 셈족의 i-schra, 즉 "검은 섬"으로 본다. 페니키아의 섬 존재는 매우 오래된 시대부터 고고학적으로 문서화되었으며, 모스카티(이탈리아 역사가)가 보고한 바와 같이, 기원전 8세기부터 캄파니아와 남부 에트루리아에 이집트 생산물 또는 영감에서 유래한 물건들이 퍼져나간 것은 "페니키아 상인들이 이스키아에 정착한 후 티레니아 해안을 자주 방문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기여했다.

반면에 현대의 "이스키아 섬"은 라틴어 "insula visca"에서 파생되었을 수 있다. 그리스어 명사 (ϝ)ἰξός, (w)ixós, (겨우살이) 및 형용사 (ϝ)ἰξώδης, (w)ixṓdēs, (점성, 끈적거림)을 비교해 보면, 평소처럼 초기 디감마가 손실되었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것은 같은 지역, 베수비오 산 기슭, 소나무로 덮인 곳에서 헤르쿨라네움의 대중적인 이름이 "Resìna"였고, 이는 이 제품의 고대 시장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칼라브리아의 "피조"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사실일 수 있다. 여기서 최고의 수지인 "페체 브레티아"가 인근 실라의 소나무에서 얻어졌다.

베르길리우스는 시적으로 이를 ''이나리메''라고 불렀고, 더 나아가 ''아리메''라고 불렀다.[13] 마르티아누스 카펠라는 이 암시적인 이름으로 베르길리우스를 따랐으며, 이는 일반적인 유통에 절대 사용되지 않았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를 ''아에나리아''라고 불렀고, 그리스인들은 Πιθηκο사이, 즉 ''피테코사이''라고 불렀다.[14]

''(In)arime''과 ''Pithekousai''는 모두 "원숭이"라는 단어(에트루리아어 ''아리모스'',[15] 고대 그리스어 πίθηκος, ''피테코스'', "원숭이")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플리니우스는 그리스 이름을 지역 점토 매장지에서 유래했으며, ''피테코스''에서 유래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는 라틴어 이름 ''Aenaria''를 아이네아스의 착륙과 연결하여 설명한다(''프린스턴 백과사전''). 만약 이 섬이 지브롤터처럼 실제로 원숭이 서식지였다면, 고대 시대에는 이미 멸종되었으며 고대 자료에 언급된 기록은 없다.

일본의 사토 하츠메의 "숲의 이스키아" (아오모리현)[40], 그 외에도 각지의 "바다의 이스키아", "녹색의 이스키아" 등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로서 이스키아 섬의 명칭을 차용하고 있다.

4. 역사

기원전 8세기 중반, 에우보이아섬(유비아섬)에서 온 그리스인들이 식민 도시 피테쿠사이를 건설했다. 이들은 그리스 본토나 이베리아 반도를 잇는 지중해 무역의 중계지 역할을 했으며, 인근 엘바섬의 철광석을 이용해 금속 가공을 하는 등 그리스 본토에서 부족한 금속 자원을 얻으려 했다.

2017년 8월 21일에는 지진이 발생했다.

2022년 11월 26일에는 산사태가 발생하여 최소 7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되었다.[39]

4. 1. 고대

몬테 비코(Monte Vico) 지역의 아크로폴리스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미케네와 철기 시대의 도기도 발견되었다. 기원전 8세기, 에우보이아 출신의 그리스인들이 에레트리아와 칼키스에서 건너와 본토의 에트루리아인들과 무역하기 위한 상업 중심지를 건설했다. 이 정착지에는 그리스인, 에트루리아인, 페니키아인 등 다양한 민족이 함께 거주했다. 피테쿠사이(Pithecusae) 정착지는 훌륭한 항구와 해상 공격으로부터의 안전성 덕분에 철과 이탈리아 본토와의 무역으로 번성했으며, 기원전 700년에는 인구가 5,000~10,000명에 달했다.[16]

1953년, 섬의 무덤에서 "네스토르의 잔"에 대한 언급이 새겨진 에우보이아 도기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컵에는 몇 줄의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기원전 73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은 라틴 문자가 에트루리아 문자를 거쳐 파생된 초기 그리스 문자의 중요한 증거 중 하나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 비문이 일리아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기원전 474년, 히에론 1세는 이스키아 맞은편 본토에 살던 쿠마인들을 에트루리아인들로부터 돕기 위해 와서 바다에서 그들을 물리쳤다. 그는 이스키아와 주변 파르테노페 섬들을 점령하고 이스키아 시에 요새를 건설하기 위해 주둔군을 남겨두었다. 이 요새는 중세 시대에도 존재했지만, 원래 주둔군은 기원전 470년의 화산 폭발 이전에 섬을 떠났고, 이후 섬은 나폴리인들에게 넘어갔다. 기원전 322년, 로마인들은 이스키아(및 나폴리)를 점령했다.

기원전 8세기 중반, 에우보이아섬(유비아섬)에서 온 그리스인들이 식민 도시 피테쿠사이를 건설했다. 이 도시는 그리스 본토나 이베리아 반도를 잇는 지중해 무역의 중계지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인근 엘바섬의 철광석을 사용하여 금속 가공을 했던 것처럼 그리스 본토에서는 부족한 금속 자원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 2. 중세 ~ 근세

서기 6년에 아우구스투스카프리와 교환하여 이 섬을 나폴리에 반환했다. 이스키아는 야만족의 침략으로 고통받았으며, 처음에는 헤룰리족에게 점령당했고, 다음에는 동고트족에게 점령당했으며, 궁극적으로는 동로마 제국에 흡수되었다. 비잔틴 제국은 588년에 나폴리에 섬을 넘겨주었고, 661년에는 나폴리 공작의 봉신인 백작이 통치하게 되었다. 813년과 847년에는 사라센족에 의해 이 지역이 황폐해졌고, 1004년에는 독일의 하인리히 2세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노르만 시칠리아의 로제르 2세가 1130년에 섬을 점령하여 노르만 알도인 데 칸디다에게 이 섬을 하사하여 이스키아 백작으로 만들었다. 이 섬은 1135년과 1137년에 피사인에 의해 습격당했으며, 그 후 호엔슈타우펜 왕조와 앙주의 지배를 받았다.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 이후, 이 섬은 아라곤의 페드로 3세를 인정하며 반란을 일으켰지만, 이듬해 앙주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다. 1284년에는 아라곤의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고, 앙주의 나폴리의 샤를 2세는 1299년까지 성공적으로 섬을 다시 점령할 수 없었다.[39]

1302년 섬의 마지막 화산 폭발로 주민들은 바이아로 도망갔고, 그곳에서 4년 동안 머물렀다. 1320년 앙주의 로베르와 그의 아내 산시아가 섬을 방문했고, 1306년 교황청에서 섬을 통치하기 위해 샤를 2세가 보낸 체사레 스테를리치에게 환대를 받았는데, 그는 당시 거의 100세였다.[39]

이스키아는 앙주 왕가와 드라초 왕조 사이의 투쟁에서 큰 고통을 겪었다. 1382년에는 카를로 드라초에게 점령되었고, 1385년에는 앙주의 루이 2세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으며, 1386년에는 나폴리의 라디슬라오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다. 1410년에는 대립 교황 요한 23세의 함대가 가스파레 코사의 지휘 아래 약탈을 당했으나 이듬해 라디슬라오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다. 1422년 나폴리의 조안나 2세는 섬을 그녀의 양자 아라곤의 알폰소 5세에게 주었지만, 그가 불명예를 당하자 1424년 제노바의 도움으로 섬을 되찾았다. 1438년 알폰소는 성을 재점령하여 모든 남자를 내쫓고 아라곤 왕관 식민지임을 선포했으며, 추방된 사람들의 아내와 딸을 그의 수비대에 결혼시켰다. 그는 성을 섬의 나머지 부분과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큰 갤러리를 조각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1442년, 그는 섬을 루크레티아 다라뇨에게 주었고, 그녀는 섬의 통치를 그녀의 매제인 조반니 토렐라에게 위임했다. 1458년 알폰소의 죽음으로 그들은 섬을 앙주 측에 반환했다.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1세는 알레산드로 스포르차에게 토렐라를 성에서 쫓아내라고 명령했고, 1462년 섬을 가르세랄도 레퀘센스에게 넘겨주었다. 1464년, 짧은 토렐라의 반란 이후, 마리노 카라치올로가 총독으로 임명되었다.[39]

1495년 2월, 프랑스의 샤를 8세가 도착하자,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2세는 섬에 상륙하여 성을 점령했고, 불충한 성주 지우스토 디 칸디다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후, 페스카라바스토의 후작 이치코 다발로스의 통제를 받도록 섬을 맡겼는데, 그는 프랑스 함대로부터 이 지역을 훌륭하게 방어했다. 그와 함께 그의 누이 콘스탄차도 왔고, 그들을 통해 그들은 18세기까지 섬에서 지속될 다발로스 왕조를 창건했다.[39]

16세기 내내, 이 섬은 북아프리카에서 온 해적과 바르바리 사략선의 침략을 받았다. 1543년과 1544년에 하이레딘 바르바롯사는 섬을 황폐화시키고 4,000명의 포로를 잡았다. 1548년과 1552년에는 그의 후계자인 드라구트 라이스가 이스키아를 공격했다. 16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해적의 공격이 줄어들고 방어 시설이 개선되면서 섬 주민들은 성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이때 이스키아 시의 역사적인 중심지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민들이 여전히 해적의 노예가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알려진 노예는 1796년에 잡혔다. 1647년 마사니엘로의 혁명 동안에는 봉건 영주에 대한 반란이 시도되었다.[39]

4. 3. 18세기 이후 ~ 현대

1729년 다발로스 가문이 단절되면서 이스키아섬은 국유 재산으로 귀속되었다. 1734년 3월 부르봉 왕가가 이 섬을 점령하여 성 내에 주둔한 왕실 총독이 통치했다. 1799년 3월 이 섬은 단명한 나폴리 공화국에 참여했지만, 4월 3일 호레이쇼 넬슨의 지휘를 받은 토머스 트루브리지 제독이 이스키아와 이웃 프로치다에서 반란을 진압했다. 총독의 칙령에 따라 많은 반란자들이 현재 순교자 광장이라고 불리는 프로치다의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이들 중에는 나폴리의 프랑스 샹피오네로부터 섬을 관리하도록 지시받은 프란체스코 부오노코레도 있었다.[17] 1806년 2월 13일, 이 섬은 프랑스군에 점령되었고 24일에는 영국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실패했다.

1809년 6월 21일과 22일, 이스키아와 프로치다 섬은 영국-부르봉 함대의 공격을 받았다. 프로치다는 6월 24일에 항복했고 이스키아도 곧 항복했다. 그러나 영국군은 곧 시칠리아와 몰타의 기지로 돌아갔다.[17] 19세기에는 이스키아가 유럽 귀족들의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1883년 7월 28일, 지진으로 카사미촐라 테르메와 라코 아메노 마을이 파괴되었다.

20세기 초 이스키아는 유명한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발전했다. 전 세계의 작가와 화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에두아르트 바르기어, 한스 푸르만, 아리고 비틀러가 섬에 거주했다. 루돌프 레비, 베르너 길리스, 막스 파이퍼 바텐풀은 쿠르트 크라머, 빈센트 베버와 함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섬 남쪽 끝에 있는 어촌 산탄젤로에 머물렀다. 1936년 이스키아의 인구는 30,418명이었다.[18]

1950년대 초 온천 관광이 다시 시작되었다. 당시 잉게보르크 바흐만을 비롯한 작가, 작곡가, 시각 예술가들의 놀라운 예술가 공동체가 포리오에 거주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루키노 비스콘티는 영화 촬영을 위해 이곳에 머물렀다.

2017년 8월 21일, 이스키아에서는 규모 4.2의 지진이 발생하여 2명이 사망하고 42명이 부상당했다.[19][20][21]

오늘날 이스키아는 인기 있는 관광지로, 매년 최대 600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며, 주로 이탈리아 본토와 독일, 영국과 같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 방문객이 오지만(약 5,000명의 독일인이 이 섬에 거주), 동유럽 사람들에게도 점점 더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2000년대 이후 러시아 관광객 수가 꾸준히 증가했지만,[22] 루블의 통화 가치 하락과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그 수가 거의 멈춰섰다.

이스키아에서는 나폴리, 베수비오 산, 아말피 해안, 카프리 섬, 헤르쿨라네움, 파에스툼, 그리고 이웃 섬 프로치다와 같은 다양한 목적지로의 여행을 예약할 수 있다. 이스키아는 나폴리에서 페리를 이용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섬에 있는 많은 온천은 "웰빙" 휴가를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 정기적인 방문객으로는 전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있었다.

2022년 11월 26일, 산사태가 발생하여 최소 7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되었다.[39]

5. 행정 구역

이스키아 섬은 6개의 코무네로 나뉜다.


  • 이스키아 (Ischia)
  • 카사미촐라 테르메 (Casamicciola Terme)
  • 라코 아메노 (Lacco Ameno)
  • 포리오 (Forio)
  • 세라라 폰타나 (Serrara Fontana)
  • 바라노 디스키아 (Barano d'Ischia)

6. 주요 관광지


  • 아라곤 성(''Castello Aragonese'', 이스키아 폰테)은 기원전 474년 시라쿠사의 히에론 1세에 의해 섬 근처의 암반 위에 건설되었다. 동시에 적 함대의 움직임을 통제하기 위해 두 개의 탑이 세워졌다. 1441년 아라곤의 알폰소 5세는 이전의 나무 다리 대신 돌 다리로 암반과 섬을 연결하고, 해적의 습격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벽을 강화했다. 1912년, 이 성은 개인 소유주에게 판매되었다. 오늘날 이 성은 섬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기념물이다.

아라곤 성

  • 라 모르텔라 정원은 포리오-산 프란체스코에 위치해 있으며, 원래 영국 작곡가 윌리엄 월턴의 소유였다.[1] 1946년 월턴이 이 섬에 도착했을 때, 그는 즉시 영국에서 러셀 페이지를 불러 정원을 설계하게 했다.[1] 훌륭한 열대 및 지중해 식물이 심어졌으며, 일부는 이제 놀라운 크기에 달했다.[1] 이 정원은 포리오의 도시와 항구의 멋진 전망을 포함한다.[1] 윌리엄 월턴의 삶과 작품을 기리는 박물관, 그리고 유명 음악가들이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연주실도 현재 정원 단지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1]

라 모르텔라에서 바라본 풍경


라 모르텔라의 고대 올리브 나무

  • ''빌라 라 콜롬바이야''는 라코 아메노와 포리오 지역에 위치해 있다. 공원으로 둘러싸인 이 빌라(일명 "비둘기집")는 유명한 지역 사회주의자이자 언론인인 루이지 파탈라노가 지었다. 현재는 루키노 비스콘티를 기념하는 문화 기관이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2]

라코 아메노

  • 산탄젤로 (산탄젤로, 세라라 폰타나 ''코무네''에 위치)[3]

산탄젤로 디스키아

  • 마론티 해변 (바라노 디스키아)[3]
  • 소코르소 교회 (포리오)[3]
  • 최고급 부티크가 있는 산 레스티투타 광장 (라코 아메노)[3]
  • 온천수가 솟아나는 소르게토 만 (판차)[3]
  • 포세이돈 정원 – 여러 온천 수영장이 있는 스파 (판차)[3]
  • 치타라 해변 (판차)[3]
  • 잉글리시 해변 (이스키아)[3]
  • 피테쿠사이 고고학 박물관[3]
  • 안젤로 리졸리 박물관[3]

7. 문화

이스키아섬은 다양한 예술 작품의 배경이 되거나 영감을 준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주세페 가리발디는 부상에서 회복하기 위해, 미하일 바쿠닌은 정치적 편지를 쓰기 위해 이 섬에 머물렀다. W. H. 오든은 "석회암 찬가"를 이곳에서 썼다.

윌리엄 월턴은 포리오에 라 모르텔라라는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1983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고, 한스 베르너 헨체도 이 섬에 살면서 ''Quattro Poemi'' (1955)를 작곡했다.

새뮤얼 A. 테일러의 ''Avanti!''(1968),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 중 ''땡땡과 알파 아트'', 파스칼 키냐르의 ''빌라 아말리아''(2006),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크림슨 파이어리트''(1952), ''태양은 가득히''(1959), ''아반티!''(1972), ''클레오파트라''(1963), ''리플리''(1999), ''앤드 와일 위 워 히어''(2012),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2019) 등 많은 영화가 이 섬에서 촬영되었다.[26][27][28][29]

매년 6월 또는 7월에는 이스키아 영화제가 열린다.[1]

7. 1. 문학 및 예술

언덕 정원에서 작은 마을을 지나 바다로 보이는 풍경
월튼 가의 집에서 보이는 풍경 – 라 모르텔라

  • 이탈리아 통일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이탈리아 정치인 주세페 가리발디는 심각한 부상에서 회복하고 카사미촐라 테르메(Manzi Hotel)의 평화로운 지역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 섬에 머물렀다.
  • 러시아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은 1866년 7월부터 1867년 6월까지 이스키아에 머물면서 알렉산드르 게르첸과 니콜라이 오가레프에게 정치적 편지를 썼다.
  • 1948년 5월 W. H. 오든은 이탈리아에서 쓴 첫 번째 시인 "석회암 찬가"를 이곳에서 썼다.
  • 1949년, 영국의 클래식 작곡가 윌리엄 월턴이 이스키아에 정착했다. 1956년, 그는 런던의 집을 팔고 이스키아에서 전업으로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포리오에 언덕 꼭대기 집을 지어 라 모르텔라라고 불렀고, 수사나 월턴은 그곳에 웅장한 정원을 만들었다. 월턴은 남은 생애 동안 이 섬에서 살았으며 1983년 그곳에서 사망했다.
  • 독일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는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이 섬에 살면서 그곳에서 ''Quattro Poemi'' (1955)를 썼다.
  • 새뮤얼 A. 테일러의 브로드웨이 연극 ''Avanti!'' (1968)는 이 섬에서 일어난다.
  • 에르제의 만화 시리즈 ''땡땡의 모험'' (1907–1983)은 이스키아에서 끝나며, 미완성된 24번째이자 마지막 책인 ''땡땡과 알파 아트''에서 엔다딘 아카스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는 자신의 소설 ''빌라 아말리아'' (2006)의 많은 부분을 이 섬에 설정했다.
  •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시리즈에서 이 섬은 주인공들의 여러 여름 휴가의 배경이 된다.


라 모르텔라 정원은 포리오-산 프란체스코에 위치해 있으며, 원래 영국 작곡가 윌리엄 월턴의 소유였다. 월턴은 정원 옆의 빌라에서 아르헨티나 출신 아내 수사나와 함께 살았다. 1946년 작곡가가 이 섬에 도착했을 때, 그는 즉시 영국에서 러셀 페이지를 불러 정원을 설계하게 했다. 훌륭한 열대 및 지중해 식물이 심어졌으며, 일부는 이제 놀라운 크기에 달했다. 이 정원은 포리오의 도시와 항구의 멋진 전망을 포함한다. 윌리엄 월턴의 삶과 작품을 기리는 박물관이 현재 정원 단지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또한 유명 음악가들이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연주실도 있다.

''빌라 라 콜롬바이야''는 라코 아메노와 포리오 지역에 위치해 있다. 공원으로 둘러싸인 이 빌라(일명 "비둘기집")는 유명한 지역 사회주의자이자 언론인인 루이지 파탈라노가 지었다. 현재는 루키노 비스콘티를 기념하는 문화 기관이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기관은 음악, 영화, 연극, 미술 전시회, 워크숍 및 영화 평론과 같은 문화 활동을 장려한다. 빌라와 공원은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7. 2. 영화

7. 3. 이스키아 영화제

매년 6월 또는 7월에 열리는 국제 영화 경쟁 행사인 이스키아 영화제가 열리며, 이 영화제는 지역의 가치를 드높인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1]

8. 와인

이스키아섬은 원산지 통제 명칭(DOC)의 고향으로, 적포도주와 백포도주를 모두 생산하지만, 백포도주가 섬 와인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 DOC 경계 내에 179ha 심어진 포도원은 높은 부석, 칼륨 함량을 가진 화산 토양에 위치하는 경향이 있다.[30]

섬의 백포도주는 주로 포라스테라(DOC 규정에 따라 최소 65%)와 비안코렐라(최대 20%)로 구성되며, 아릴라와 산 루나르도와 같은 기타 지역 포도 품종이 최대 15%까지 사용된다. 포도는 수확량이 최대 10톤/ha로 제한되며, 최소 알코올 도수는 11% 이상이어야 한다. '비안코 수페리오레'로 표시된 와인의 경우, 수확량은 최대 8톤/ha로 더 제한되며 최소 알코올 도수는 12%이다. 이스키아 DOC의 특정 하위 지역에서만 '비안코 수페리오레'를 생산할 수 있으며, 혼합은 포라스테라 50%, 비안코렐라 40%, 산 루나르도 10%를 포함해야 한다.[30]

이스키아 DOC 하에 생산되는 적포도주는 구아르나차 50%, 피에디로소(현지에서는 페르에 팔룸모라는 동의어로 알려짐) 40%, 바르베라 10%로 구성된다. 백포도주와 마찬가지로, DOC 생산용 적포도는 수확량이 최대 10톤/ha로 제한되지만, 최소 최종 알코올 도수는 11.5% ABV로 더 높다.[30]

9. 환경 문제

1950년부터 1980년 사이에 이스키아의 인구가 급증하고 관광객이 증가하면서(2010년에는 400만 명 이상이 섬을 방문) 섬에 대한 인위적인 압력이 커졌다.[35] 이전에 농업에 사용되던 상당한 면적의 토지가 주택 및 주거 시설 건설을 위해 개발되었는데, 이러한 개발의 대부분은 적절한 계획 및 건축 허가 없이 이루어졌다.[35] 2011년 말 기준으로, 이 섬에는 기본적인 하수 처리 시스템조차 갖춰져 있지 않아 하수가 바다로 직접 배출되고 있다. 2004년, 섬의 5개 자치구 중 하나가 하수 처리 시설 건설을 위한 토목 공사를 시작했지만, 이후 건설이 중단되었다.

2007년 6월 14일, 캄파니아 해안의 쿠마와 이스키아 섬의 라코 아메노 사이를 연결하는, 이탈리아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엔엘(Enel S.p.A.)이 관리하는 4개의 고압 해저 케이블 중 하나가 파손되었다.[36] 각 케이블 내부에는 고압 상태의 기름으로 채워진 직경 18mm의 채널이 있었다.[36] 엔엘 케이블 파손으로 기름이 바다로 유출되어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PAHs) 및 선형 알킬벤젠(방향족 탄화수소)에 의한 오염을 일으켰다. 이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생태계이자 서식지 지침(92/43/EEC)의 부록 I에 '우선 순위 서식지'로 지정된 '레뇨 디 네투노' 해양 보호 구역, 즉 포시도니아 해초 지대에서 발생했다.

자동차 오염을 줄이기 위해 이스키아는 2017년 엔엘과 알도 아르간지올리 등 녹색 이동성 전문가와 협력하여 "그린 아일랜드"라는 도시 중심부에 적용된 지속 가능한 이동성 프로젝트를 시행하였다.

10. 자매 도시

형태는 허용되지 않는 템플릿이므로 제거해야 합니다. 또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표 형태로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국가도시체결 년도
미국로스앤젤레스2006년[32]
미국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2006년[33][34]
러시아말로야로슬라베츠


참조

[1] 간행물 Ischia: Eruptive History
[2] 서적 How the world made the West: a 4.000-year history Bloomsbury Publishing 2024
[3] 뉴스 Mount Epomeo
[4] 학술지 Gravitational slope-deformation of a resurgent caldera: New insights from the mechanical behaviour of Mt. Nuovo tuffs (Ischia Island, Italy)
[5] 간행물 Ischia: General Information 2019-09-28
[6] 간행물 Ischia: Synonyms & Subfeatures
[7] 웹사이트 Orca avvistata (Orca sighted) http://www.caiccomed[...] www.caiccomed.com 2019-09-21
[8] 웹사이트 Laggiu soffia! Cronaca di una “caccia” al capodoglio nelle acque tra Ischia e Ventotene – Leviatani, nascosti e preziosi http://scienzalive.i[...] The Scienza Live 2017-03-29
[9] 웹사이트 Fin whale (Balaenoptera physalus) feeding ground in the coastal waters of Ischia (Archipelago Campano) http://www.oceanomar[...] The European Cetacean Society 2017-03-28
[10] 웹사이트 Delfini e capodogli tra Ischia e Procida http://napoli.repubb[...] 2017-03-29
[11] 웹사이트 Island of Ischia https://www.britanni[...] 2024-07-10
[12] 웹사이트 The Island of Pithecusae: Its History and Myths https://www.pithecus[...] 2024-07-12
[13] 문서 His poetical allusion was apparently to the mention in Iliad (ii.783) of Typhoeus being chained down ein Arimois
[14] 문서 The plural likely so as to include nearby Procida as well.
[15] 서적 Lost Languages: The Enigma of the World's Undeciphered Scripts Nevraumont Publishing
[16] 서적 A History of the Archaic Greek World, ca. 1200–479 BCE https://books.google[...] John Wiley & Sons
[17] 웹사이트 ISCHIA – A brief history of Ischia – Austrians and Bourbons – HOTEL ISCHIA – OFFERTE HOTEL ISCHIA http://www.ischiaonl[...] 2018-03-08
[18] 문서 Columbia-Lippincott Gazetteer
[19] 웹사이트 Terremoto di magnitudo Mw 3.9 del 21-08-2017 ore 20:57:51 (Italia) in zona: 1 km SW Casamicciola Terme (NA) http://cnt.rm.ingv.i[...] cnt.rm.ingv.it 2019-09-21
[20] 웹사이트 Terremoto a Ischia, due morti e 52 feriti. Salvati i fratelli rimasti sepolti Borrelli: ‘Case con materiali scadenti’ https://www.corriere[...] www.corriere.it 2019-09-21
[21] 웹사이트 Forte terremoto a Ischia, crolli a Casamicciola. Due morti e almeno 39 feriti. Salvi tutti e tre i fratelli rimasti imprigionati sotto le macerie http://www.lastampa.[...] www.lastampa.it 2019-09-21
[22] 웹사이트 Italy: Land of the rich Russian https://theworld.org[...]
[23] ODNB Auden, Wystan Hugh (1907–1973), poet and writer https://www.oxforddn[...] 2019-06-16
[24] 문서 Kennedy
[25] 문서 Kennedy
[26] 뉴스 Lancaster already in Italy https://archive.org/[...] Henry Publishing 2021-04-08
[27] 웹사이트 The Talented Mr Ripley (1999) film locations http://movie-locatio[...] Movie-Locations.com 2019-11-01
[28] 웹사이트 Fred Topel- Exclusive Interview: Kat Coiro on And While We Were Here http://www.mandatory[...] www.mandatory.com 2019-09-21
[29] 웹사이트 Men In Black International (2019) film locations http://movie-locatio[...] Movie-Locations.com 2019-11-01
[30] 서적 Wine Label Language Firefly Books
[31] 웹사이트 Museo Angelo Rizzoli – Museums – Ischia – Napoli http://www.incampani[...] InCampania 2013-03-26
[32] 웹사이트 Sister Cities of Los Angeles http://sistercities.[...] 2017-01-09
[33] 웹사이트 A Message from the Peace Commission: Information on Cambridge's Sister Cities http://www.cambridge[...] 2008-10-12
[34] 뉴스 Looking to strengthen family ties with 'sister cities' http://www.boston.co[...] Boston Globe 2008-10-12
[35] 웹사이트 ENERGY AUDIT ON ISCHIA https://europeansmal[...] 2015-10-22
[36] 웹사이트 Written question – Environmental catastrophe in Ischia – E-3253/2008 http://www.europarl.[...] 2018-03-08
[37] 서적 Vezzoli,1988
[38] 웹사이트 ヨーロッパ火山紀行 第2章 イタリア https://sakuya.vulca[...] 静岡大学 小山真人 2017
[39] 뉴스 土砂崩れで死者7人 不明5人、政府は非常事態宣言―伊南部 https://www.jiji.com[...] 2022-11-28
[40] 웹사이트 青森の「森のイスキア」 http://www.asahi.com[...]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