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코 후지오
1. 개요
후지코 후지오는 만화가 콤비의 필명으로, 후지모토 히로시와 아비코 모토오 두 사람을 지칭한다. 1950년대 초부터 1988년까지 공동 작업을 하였으며, 이후 후지모토는 후지코 F. 후지오, 아비코는 후지코 후지오 Ⓐ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도라에몽》, 《오바케의 Q 타로》, 《닌자 핫토리군》 등 다양한 작품을 공동 또는 개별적으로 창작했으며, 여러 만화상과 훈장을 받았다. 콤비 해체 이후에도 두 사람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각자의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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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후지모토 히로시 (藤本 弘) 아비코 모토오 (安孫子 素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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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후지모토: 다카오카시, 도야마현, 일본 제국 아비코: 히미시, 도야마현, 일본 |
| 필명 | 후지코 후지오 (일반, 1953–1988) 후지코 F. 후지오 (후지모토, 1989–) 후지코 후지오 A (아비코, 1988–) |
| 사망일 | 후지모토: 신주쿠구, 도쿄도, 일본 아비코: 가와사키시, 가나가와현, 일본 |
| 직업 | 만화가 |
| 활동 기간 | 1951–1987 (하나의 이름으로 활동) –1996 (F, A 각각 활동) –2022 (A만 활동) |
| 대표 작품 | 오바케의 Q 타로 닌자 핫토리군 괴물군 파만 도라에몽 키테레츠 대백과 |
| 수상 내역 | 쇼가쿠칸 만화상 (1963년 2작품, 1982년 도라에몽)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F의 도라에몽)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특별상 (A의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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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 후지코 후지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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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가명 -
클램프
클램프는 1980년대 결성된 일본 여성 만화가 그룹으로, 다양한 장르와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클램프 유니버스'를 구축하며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
집단 가명 -
도쿄 로즈
도쿄 로즈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라디오 도쿄의 영어 선전 방송 "제로 아워"의 여성 아나운서들을 미군 병사들이 부르던 명칭으로, 사기 저하를 목적으로 했으나 실제 효과는 미미했으며 대중문화 소재로 활용되었고, 아이바 토구리 다키노가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
도야마현 출신 -
후지코 후지오 A
후지코 후지오 A는 1934년생 일본 만화가 안손자 스오의 필명으로, 후지모토 히로시와 '후지코 후지오'로 공동 활동 후 독립하여 『오바케의 Q타로』, 『닌자 핫토리군』, 『괴물군』 등 아동 만화와 『웃음 판매원』 같은 성인 만화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2022년 88세로 사망한 후에도 그의 작품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제작되어 독특한 작풍과 블랙 유머로 인정받고 있다. -
도야마현 출신 -
쇼리키 마쓰타로
쇼리키 마쓰타로는 일본의 언론 재벌이자 정치가로서 요미우리 신문을 인수하고 니혼TV를 설립했으며, 일본 프로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SF 만화가 -
우라사와 나오키
우라사와 나오키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일본의 만화가로, `몬스터`, `20세기 소년`, `플루토` 등 걸작들을 통해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섬세한 인물 묘사, 영화적인 연출, 다방면의 예술 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SF 만화가 -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창립 멤버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래소년 코난》 연출 데뷔 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걸작들을 통해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이 되었으며, 환경 보호, 평화주의 등의 주제를 담은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2. 프로필
후지코 후지오는 일본의 만화가 듀오이다. 후지모토 히로시(후지코 F. 후지오)와 아비코 모토오(후지코 후지오 Ⓐ)는 모두 도야마현 출신으로, 각각 1933년 12월 1일과 1934년 3월 10일에 태어났다. 아비코가 후지모토의 초등학교로 전학 오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시절 데즈카 오사무의 신 보물섬에 큰 영향을 받은 두 사람은 함께 텐큐마를 만들며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일본우편을 통해 공동 저축 계좌를 개설하고, 모든 수입과 경비를 똑같이 나누는 등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1951년 천사의 타마짱으로 데뷔한 후, 두 사람은 데즈카 오사무를 직접 만나 격려를 받기도 했다. 초기에는 '데즈카 후지오', '아시즈카 후지오' 등의 필명을 사용하다가 1953년부터 '후지코 후지오'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54년 도쿄로 이주한 두 사람은 토키와소 아파트에 거주하며, 테라다 히로오 등과 함께 '신 만화당'을 결성하여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1963년에는 스튜디오 제로를 설립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참여했다.
1987년 창작적인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은 오랜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후지모토는 후지코 F. 후지오로, 아비코는 후지코 후지오 Ⓐ로 활동했다.
2.1. 후지모토 히로시 (후지코 F. 후지오)
藤子・F・不二雄일본어(본명 藤本 弘일본어), 1933년 12월 1일 ~ 1996년 9월 23일, O형). 도야마현 다카오카시 출생. 콤비 해체 이후 약 1년 정도는 藤子不二雄Ⓕ일본어로 표기했다. 후지코 F. 후지오 프로(통칭 후지코프로) 소속. 자화상은 베레모에 장신, 파이프를 물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공식 표기는 藤子・F・不二雄일본어이다.
* 1933년 12월 1일 ~ 1996년 9월 23일(향년 62세), O형
* 도야마현 다카오카시 출신
* 자화상 특징: 베레모, 파이프, 장신.
* 1989년 이후 필명: 후지코 F. 후지오
* 1988년 3월 ~ 1989년 1월 (약 1년간): "藤子不二雄Ⓕ" (藤子不二雄Ⓕ일본어)
* 만화 제작 회사: 후지코 스튜디오 → 후지코 프로 → 후지코・F・후지오 프로(통칭 후지코 프로)
2.2. 아비코 모토오 (후지코 후지오 Ⓐ)
1934년 3월 10일 - 2022년 4월 6일 (향년 88세), A형. 도야마현 히미시 출신. 본명은 아비코 모토오().
1953년 7월부터 1988년 1월경까지 후지코 후지오라는 필명으로 후지모토 히로시(후지코 F. 후지오)와 공동 작업을 했다. 1988년부터 사용한 필명은 아비코이다. 공식 표기는 藤子 不二雄Ⓐ일본어이다.
자화상의 특징은 안경이다. 만화 제작 회사는 후지코 스튜디오이다.
3. 필명
두 사람은 데뷔 이후 하나의 필명으로 공동 작업을 하고, 개별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1988년 이후로는 각자 다른 필명으로 발표했다.
1953년 7월부터 1988년 1월경까지 모든 작품(공동작업, 1인 작품)은 "후지코 후지오(Fujiko Fujio)"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다.
1989년부터 후지모토는 후지코・F・후지오(藤子・F・不二雄일본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1988년부터 아비코는 후지코 후지오 Ⓐ(藤子不二雄Ⓐ일본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후지코 A. 후지오"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 표기이며, 오해 또는 오타이다.
4. 경력
1944년 도야마현 다카오카시에서 후지모토 히로시와 아비코 모토오는 처음 만났다. 두 소년은 만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금세 친구가 되었다. 1946년 데즈카 오사무의 『마아짱의 일기장』과 1947년 『신보물섬』을 접한 후, 열렬한 데즈카 오사무 팬이 되어 만화가를 꿈꾸게 되었다. 이들은 잡지와 신문에 꾸준히 작품을 투고했고, 곧 "혼자보다 둘이서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협업을 시작했다. 1951년에는 과거 데즈카 오사무가 연재했던 신문에 『천사의 타마짱』을 투고하여 고등학교 3학년 때 프로 만화가로 데뷔했다.
1952년 고등학교 졸업 후, 두 사람은 데즈카 오사무를 처음 만났다. 데즈카의 방대한 폐기 원고(700페이지)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비코는 신문사에 취직했지만, 후지모토는 만화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은 『서부의 어딘가에서』로 잡지 데뷔를 하고, 1953년 1월에는 첫 잡지 연재 『4만년 표류』를 시작했지만 6회 만에 중단되었다. 같은 해 7월, 첫 단행본 『유토피아 최후의 세계대전』을 출간했는데, 이는 훗날 일본에서 가장 희귀하고 가치 있는 만화 단행본 중 하나가 되었다.
1954년 후지모토의 제안으로 도쿄로 이주하여, 모리시타에 있는 아비코의 친척집에서 함께 살다가 데즈카 오사무가 살았던 토키와소 아파트로 이사했다. 테라다 히로오 등과 신만화당을 결성하여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1955년 마감일을 놓쳐 출판사의 신뢰를 잃기도 했다. 1959년 가와사키시로 이사했고, 1961년에는 히가시이키타로 이사했다. 1960년대에는 '후지코 스튜디오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62년 후지모토는 결혼했다.
1963년, 스튜디오 제로를 결성하고, 1964년 오바케의 Q 타로를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파만, 꾸러기 닌자 토리, 몬스터왕자 몽짱, 21에몬, 우메보시 덴카 등 여러 인기작을 발표했다.
1970년대에 도라에몽이 탄생하여 큰 인기를 얻었고, TV 아사히에서 방영되면서 더욱 인기가 높아졌다.
1986년, 후지모토 히로시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1987년, 건강 문제와 창작 방향의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은 콤비를 해체하고 각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후지모토는 후지코 F. 후지오로, 아비코는 후지코 후지오 A로 활동을 이어갔다.
콤비 해체 후에도 두 사람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영화 시사회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남을 가졌다. 1996년 후지모토 히로시가 사망한 후, 아비코 모토오는 2022년 사망할 때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4.1. 다카오카 시대 (1944년 ~ 1954년)
1944년 9월, 아비코 모토오가 후지모토 히로시가 다니는 다카오카시립 죠즈가 국민학교(현 다카오카시립 데이즈카 초등학교)로 전학 와 같은 반이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비코가 쉬는 시간에 노트에 만화를 그리는 것을 본 후지모토가 말을 걸면서 둘은 급격히 친해졌고, 항상 함께 어울려 놀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만화를 그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져 다른 동급생들에게는 이 사실을 숨겼다.
중학교 2학년 때, 데즈카 오사무의 신 보물섬을 접하고 큰 충격과 영향을 받은 두 사람은 만화가를 꿈꾸게 되었다. (이때의 충격은 훗날 저서 망가미치에서도 상세히 다루어진다.) 당시 손재주가 좋았던 후지모토는 반사환등기를 직접 제작했고, 이를 이용해 "천공광"이라는 만화를 함께 그렸는데, 이것이 그들의 첫 합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그림 연극과 비슷한 형태로 동네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고 한다. 또한 같은 시기에 만화, 소설, 광고 등을 모두 손으로 직접 만든 잡지 패러디 "작은 태양"을 제작하기도 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두 사람은 만화소년을 비롯한 여러 잡지에 작품을 투고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각자 따로 투고했지만, 입선 횟수는 후지모토가 더 많았고, 아비코는 굴욕감과 질투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합작을 시작하면서 후지모토가 재능을 발휘해도 아비코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완전히 합작 형태로 전환했고, 일본우편 저금 계좌를 만들어 원고료를 함께 관리했다. 돈 관리는 후지모토가 담당했으며, 이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후지코 후지오라는 공동 명의로 작품을 발표했지만, 원고료는 각자 나누는 방식을 콤비 해체 시까지 유지했다.
두 사람은 데즈카 오사무를 존경하여 그에게 편지를 보냈고, "확실한 그림체에서 미래가 기대된다"는 친필 답장을 받았다. 이는 두 사람이 만화가의 꿈을 키우는 데 큰 격려가 되었다. 당시 두 사람은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체를 모방하는 데 열중했고, 만화 내용 역시 데즈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51년, 마이니치 초등학생 신문에 편지와 4컷 만화를 보냈다. 편지에는 "우리는 도야마의 고등학생입니다. 데즈카 오사무 선생님의 열렬한 팬으로, 마아짱의 일기 때부터 애독자입니다. 지금 오사무 선생님의 연재 만화가 없으니, 대신 저희 만화를 연재해 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 달 후, "천사의 타마짱"이 신문에 게재되면서 사실상 데뷔를 하게 되었다. (단, 망가미치에 실린 천사의 타마짱은 원본이 아닌 아비코가 리메이크한 것이다.) 이 일로 두 사람이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선생님과 다른 동급생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같은 해,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할 예정이었지만, 만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봄방학을 이용해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에 있는 데즈카 오사무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그린 만화 (벤허)를 데즈카에게 보여주었다. 데즈카는 "응, 잘 그리네."라며 칭찬했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실력에 큰 충격을 받고 "엄청난 아이들이 나타났다..."라며 놀라워했다. 이때 두 사람이 보여준 만화를 데즈카는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 아비코는 훗날 라디오 방송에서 데즈카와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 대단한 기운에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또한 두 사람은 당시 좋아했던 데즈카의 다가올 세상의 원고를 보여달라고 부탁했고, 13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에 감격했다. 하지만 그 원고는 두 사람이 알고 있던 내용이 아니었고, 데즈카는 "아, 그건 몰수된 원고야."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데즈카 선생님은 700페이지나 되는 만화를 몰수당하면서도 그리시는구나!"라며 놀랐다고 한다.
4.2. 도쿄 진출과 도키와 장 시대 (1954년 ~ 1961년)
1954년 후지모토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전문 만화가가 되기 위해 도쿄로 이사했다. 아비코는 도야마 신문에 안정적인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다. 처음에는 도쿄도모리시타에 있는 아비코의 친척집 2층 다다미방 두 칸에서 살았다. 이후 데즈카 오사무가 이사하면서 비워둔 토키와소 아파트 방을 제공받아 이사했다.
테라다 히로오 등 당시의 다른 만화가들과 함께 신만화당이라는 공동 작업 그룹을 결성했다. 이들은 월 6편까지 연재 작품을 발표하는 등 매우 생산적인 시기를 보냈다. 아비코는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을 돕기도 했는데, 정글 대제의 마지막 페이지에 눈보라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1955년 설날에 도야마로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모든 연재 작품의 마감일을 놓치는 바람에 출판사의 신뢰를 잃었고, 이는 1년 동안 타격이 되었다. 도키와소 시대에 아키하바라에서 텔레비전을 구입하고 8mm 카메라로 독립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59년에는 토키와소를 떠나 가나가와현가와사키시로 이사했다. 1961년 10월, 토키와소를 나와 가와사키시 히가시이키타로 이사했다.
1960년대에는 공동 만화 제작 회사인 '후지코 스튜디오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62년 할로윈에 후지모토는 28세의 나이로 결혼했다.
4.3. 스튜디오 제로 설립과 오바Q 붐 (1961년 ~ 1970년대)
1963년, 스즈키 신이치, 이시노모리 쇼타로, 쓰노다 지로와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스튜디오 제로'를 결성했다.
1964년에는 후지코 후지오 두 명과 스튜디오 제로 잡지부가 함께 그린 오바케의 Q 타로가 주간 소년 선데이 1964년 6호(1964년 1월 22일 발매, 지면 발행일은 2월 2일)부터 연재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이전까지는 진지한 작품이 많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개그 만화의 후지코 후지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주간 소년 킹에 '후타군'을, 주간 소년 매거진에 '유군'(이쪽도 후지코 후지오와 스튜디오 제로 명의)을 연재하여, 후지코 후지오로서 주간지 3곳에 동시에 연재를 진행했다.
이후 파만(후지모토), 꾸러기 닌자 토리(아비코), 몬스터왕자 몽짱(아비코), 21에몬(후지모토), 우메보시 덴카(후지모토) 등 현재까지도 잘 알려진 만화들이 연이어 발표되었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1964년에는 "주간 만화 잡지 3誌 동시 연재"를 달성했다. 『오바케Q』가 애니메이션화되어 크게 히트하면서 오바케Q 붐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알려진 만화가가 되었다.
『닌자 햇토리군』(아비코), 『괴물군』(아비코), 『파만』(이 시기는 후지모토가 주로 참여한 합작), 『21에몬』(후지모토) 등의 대표작들이 잇따라 발표되었고, 그 대부분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나 텔레비전 드라마가 되었다.
1962년에 후지모토, 1966년에 아비코가 결혼했다.
4.4. 도라에몽의 탄생과 후지코 후지오 붐 (1970년대 ~ 1987년)
ドラえもん일본어은 1969년에 만들어졌으며, 1974년경부터 일본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1977년에는 후지코 후지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コロコロコミック일본어 (코로코로 코믹)이 창간되었다. 1979년 テレビ朝日일본어 (TV 아사히)에서 ドラえもん일본어 (도라에몽)이 방영되면서 인기가 급증했다. 1980년에는 영화화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영화 시리즈가 되었다.
ドラえもん일본어의 인기에 힘입어 1980년부터 1987년까지 怪物くん일본어 (괴물군), 忍者ハットリくん일본어 (닌자 핫토리군), パーマン일본어 (파만), オバケのQ太郎일본어 (오바케의 Q타로), プロゴルファー猿일본어 (프로골퍼 사루), エスパー魔美일본어 (에스퍼 마미), ウルトラB일본어 (울트라 B)가 잇따라 TV 애니메이션 및 영화화되어 여러 매체를 석권했다.
1984년에는 신작 만화가 매주 연재되는 만화 전집 藤子不二雄ランド일본어 (후지코 후지오 랜드)가 창간되어, 후지코 후지오는 자신만의 주간 연재 매체를 가진 만화가가 되었다. 1985년에는 이러한 후지코 후지오 애니메이션을 여러 편 묶어 방송하는 프로그램 코너 藤子不二雄ワイド일본어 (후지코 후지오 와이드)가 정규 편성될 정도였다. 이러한 1980년대의 인기 과열은 '후지코 후지오 붐'이라고 불린다.
1987년, 창작적인 차이를 이유로, 후지모토 히로시와 아비코 모토오는 오랜 파트너십을 끝내고 개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비코에 따르면, 파트너십 해산의 원인은 1986년 후지모토가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 후지모토와 아비코 모두 상대방이 죽기 전에 저작권과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4.5. 투병과 콤비 해체 (1986년 ~ 1988년)
1986년, 후지모토 히로시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지모토와 아비코 모토오 모두 질병의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했다) 아비코에 따르면, 의사에게 재검사를 받으라는 말을 들은 후지모토는 “전혀 자각 증상이 없는데”라며 불만스러워했다고 한다. 후지모토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9월에 직장에 복귀했다. 같은 해, 아비코의 아내 와요 씨가 우뇌내 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로 이송되었고, 좌측 반신 마비와 실어증으로 10개월간 입원했다. 많은 연재를 맡으면서 아내 간호까지 해야 하는 아비코를 걱정한 후지모토는 “괜찮아? 좀 쉬어. 일은 내가 대신 할 테니까”라고 말했고, 아비코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후 후지모토에게 위암이 발견되어, 아비코는 아내를 병문안하면서 엄청난 양의 일을 처리하며 후지모토를 대신하는 날들을 보내게 된다.
1987년 3월, 후지모토는 다시 건강을 잃었다. 매년 반년간 단기 연재가 관례였던 만화 『도라에몽 장편 시리즈』가 이 해에는 휴재되었고, 『도라에몽 노비타의 평행 서유기』는 원작 만화 없이 1988년 3월에 영화로 공개되었다. 그해 여름, 후지모토는 아내에게 "아비코 씨와 헤어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후지모토는 이전부터 빌리고 있던 맨션의 한 방에서 일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밤, 후지모토는 아비코의 자택을 갑자기 방문하여 독립 의사를 전했다. 아비코는 "생각해보면, 상경할 때도 후지모토 씨가 권유해 주었고, 어떻게 될까 걱정했지만, 나중에 '그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생각했고, 독립할 때도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1987년 12월 23일, 후지코 후지오는 출판 관계자에게 독립 "인사말"을 발송하여 콤비 해체를 발표했다. 인사말에서 그들은 "이쯤에서 두 사람이 함께 걷던 끈을 풀고 각자의 발로 걸어보면 어떨까 이야기했습니다. 새로운 전개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고"라고 밝혔다. 후지모토는 자신이 입퇴원을 반복한 것을 두고 "두 사람이 함께 묶여 있던 쪽 발이 약간 따끔거렸습니다. 끈을 풀어보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썼고, 아비코는 "지금까지처럼 두 사람의 페이스를 맞추는 것은 무리인 나이가 되었습니다. 만화뿐 아니라 저도 글도 쓰고 싶지만, 후지코 후지오라는 이름으로는 제멋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썼다. 또한, 각자가 단독으로 그린 작품 목록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1988년 1월 25일, 「두 사람의 후지코 후지오를 격려하는 모임」이 전일본공수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필명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아비코는 「후지코 스튜디오」를 물려받았고, 후지모토는 새롭게 「후지코 프로」를 설립하고 근처 건물로 이전했다.
독립의 가장 큰 원인은 후지모토의 건강 상태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4.6. 콤비 해체 이후 (1988년 ~ 2022년)
1987년, 창작상의 차이를 이유로 후지모토 히로시와 아비코 모토오는 오랜 파트너십을 끝내고 각자의 프로젝트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후 아비코는 후지코 후지오 A라는 필명으로 후지코 스튜디오 주식회사에서, 후지모토는 후지코 F. 후지오라는 필명으로 후지코 F. 후지오 프로 주식회사에서 활동했다.
아비코에 따르면, 파트너십 해산의 원인은 1986년 후지모토가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 후지모토와 아비코 모두 상대방이 죽기 전에 저작권과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후지모토는 1996년 9월 23일 신주쿠의 한 병원에서 간부전으로 사망했다. 2006년 2월 19일 TV 아사히에서 후지코 F. 후지오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고, 2011년 9월 3일에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후지코 F. 후지오 박물관이 개관하여 후지오의 작업실을 재현하고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아비코는 2022년 4월 6일 가와사키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콤비 해체 이후에도 후지모토는 해외여행 기념품을 아비코에게 선물하고, 아비코는 자택 응접실에 그것들을 장식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영화 감상이 공통 취미였기 때문에, 영화 시사회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났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공동 작업 형태였기 때문에, 수입은 모두 같은 계좌에 저축되었고, 필요한 금액은 두 사람이 똑같이 인출했다. 1966년 후지코 스튜디오 설립 이후에도 원고료 등의 수입은 모두 회사에 납입되었고, 후지모토와 아비코에게는 각각 동일한 액수의 급여가 지급되었다. 1980년대 고액납세자 공시제도를 보면 두 사람이 거의 동일한 금액을 납세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88년 독립 전에 후지모토와 아비코, 또는 친족 간에 금전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관계자의 증언은 확인되지 않았다. 후지모토의 부인은 저서에서 중병을 앓았던 후지모토가 퇴원 후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독립의 한 원인임을 시사했다.
1988년부터 1996년 9월까지 약 9년 동안 두 사람은 각자의 활동을 펼쳤다. 영화에서의 공동 출연 등, 콤비 시절과 변함없는 관계도 계속되었다.
* 만화
| 작가 | 작품 |
|---|---|
| 후지모토 (후지코 F. 후지오) | |
| 아비코 (후지코 후지오 A) |
* 애니메이션
1988년 이후부터 1996년 사이에 방영이 시작된 주요 후지코 애니메이션은 다음과 같다. 1989년에 애니메이션화된 웃는 세일즈맨이 크게 히트하면서 아비코의 새로운 대표작으로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 작가 | 방송사 | 작품 |
|---|---|---|
| 후지모토 작품 | TV 아사히 | 친푸이, 21에몬 |
| 후지TV(후지테레비) | 키테레츠 대백과 | |
| NHK | 포코냥! | |
| 일본 TV | T・P 본 | |
| 아비코 작품 | TBS | 웃는 세일즈맨, 방랑소년, 몽마자 |
| TV 아사히 | 신 프로골퍼 사루, 빌리 개, 빌리 개 뭐든지 상회 | |
| NHK | 파라솔 헨베에 |
* 실사 영화
아비코는 1990년 공개된 영화 소년 시대를 프로듀스하여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후지모토는 자신의 만화 영화화 작품 미래의 추억 Last Christmas가 1992년에 공개되었다. 후지모토와 아비코도 도키와장 시대의 친구들과 함께 카메오 출연했다.
* 사망 3주 전, 아비코와 후지모토의 마지막 대화: 전화 통화에서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기 때문에, 아비코가 "최근 컨디션은 어떠세요?"라고 묻자, 후지모토는 "요즘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1996년 9월 23일 오전 2시 10분, 후지모토 히로시 사망. 독립 후 9년 가까이 지난 후였다.
* 1998년 藤子不二雄Ⓐ의 용심봉 출간: 콤비 시절을 포함하면, 후지코 후지오의 UTOPIA 最後の世界大戦 이후 두 번째로 새로 그린 단행본이다. 참고로 藤子・F・不二雄도 1994년에 낙고담을 새로 그릴 예정이었지만 건강 악화로 인해 실현되지 않았다.
* 2002년 藤子不二雄Ⓐ랜드(후지코 후지오Ⓐ 랜드) 간행 (전 149권): 藤子不二雄ランド(후지코 후지오 랜드) 전 301권 중 아비코 작품(독립 후 권리적으로 후지코 Ⓐ 작품이 된 것. 후지모토가 그림으로 참여한 와카토노와 키에루 쾌속차를 포함)만을 전집으로 간행했다.
* 2004년 실사 영화 닌자 핫토리군 공개: 주연은 SMAP의 카토리 싱고. 같은 해 애니메이션 닌자 핫토리군이 인도에서 방송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 2009년 후지코·F·후지오 전집(쇼가쿠칸) 간행: 오바케의 Q타로 등, 후지모토와 아비코의 합작품 일부는 후지코 후지오 랜드가 절판된 후, 20년 가까이 구입할 수 없었지만, F 전집 간행으로 오바케의 Q타로를 비롯한 합작품이 많이 복간되었다. 친타라 신짱, 센베에 등의 합작 미수록 이야기도 많이 수록되었다.
* 2010년 藤子不二雄Ⓐ 디지털 셀렉션 발간: F 전집과 함께 두 사람의 작품 대부분을 체계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은 미수록 작품이 100권 분량 이상 존재한다. 같은 해 둘이서 소년 만화만 그려왔다가 복간되었다.
* 2011년 UTOPIA 마지막 세계 대전 복간: 반세기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설의 단행본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간되었다.
* 2012년 애니메이션 NINJA 핫토리군 리턴즈 제작 시작: 일본과 인도의 공동 제작으로, 2023년 현재도 YouTube와 TV 방송에서 신작이 공개되는 국제적인 인기 작품이다.
* 2014년 전자책으로 藤子不二雄Ⓐ 디지털 셀렉션 발간: 쇼가쿠칸 편집으로, 아비코 작품의 대부분을 체계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2015년 오바케의 Q타로 신장판 발간 (쇼가쿠칸 텐토무시 코믹스).
* 2022년 4월 6일, 아비코 모토오 사망: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자택에서였으며, 후지모토 사망으로부터 26년 후, 콤비 멤버 모두가 세상을 떠났다.
5. 작품 목록
후지코 후지오의 작품 목록은 크게 후지코 F. 후지오와 후지코 후지오 Ⓐ로 나뉘기 전의 공동 작품과 각자 개인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 제목 | 연도 | 비고 |
|---|---|---|
| 천사의 타마짱 | 1951–1952 | |
| 4만 년 표류 | 1953 | |
| UTOPIA 마지막 세계대전 | 1953 | |
| 바다의 왕자 | 1959–1965 | |
| 사라지는 경주용 자동차 | 1963 | |
| 오바케의 Q 타로 | 1964–1966 | |
| 와카토노 | 1964–1965 | |
| 명견 탄탄 | 1965–1968 | |
| 베레 모자 신짱 | 1965–1966 | |
| 지로키치 | 1965–1966 | |
| 장갑 테짱 | 1966 | |
| 파만 | 1966–1968 | 꾸러기 닌자 토리에서는 F의 작품인 파만이 출연 |
| 친타라 카미짱 | 1967 | |
| 신 오바케의 Q 타로 | 1971–1973, 1976 | |
| 센베에 | 1971–1972 |
각각 단독으로 집필한 작품에 대해서는 후지코 F. 후지오와 후지코 후지오 Ⓐ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또한, 아래 페이지에서 연재 목록과 단편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 후지코 후지오 연재 목록 - 연재, 별책, 단행본 신작.
* 후지코 후지오 단편 목록 - 단편, 코믹 만화, 일러스트 등.
5.1. 주요 합작
초기 작품으로
* 천사의 타마짱(1951~1952년)
* 있는 일본인 유학생의 로마 소식 (1954년)
* 바다의 왕자(1959~1961년)
* 별의 아이 건 (1961년)
* 명견 탄탄 (1965~1968년)
* 친타라 신짱 (1967~1968년)
* 센베에(1971~1972년)
등이 있다.
; UTOPIA 마지막 세계대전
: 1953년에 쓰루 서점에서 아시즈카 후지오 명의로 출판된 후지코 후지오의 첫 단행본이다.
; 바다의 왕자
: 1959년 ~ 1964년에 『주간 소년 선데이』등에 연재된 후지코 후지오 최초의 주간지 연재 만화이다.
; 오바케의 Q 타로
: 1964년 ~ 1966년, 1971년 ~ 1974년에 주간 소년 선데이 등에 연재되었다.
오바케인 Q타로가 오오하라네 집에 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생활 개그 만화이다. 1965년 ~ 1967년, 1971년 ~ 1972년, 1985년 ~ 1987년, 세 차례에 걸쳐 애니메이션화되었다.
1965년 ~ 1967년에 연재된 분량 중 일부는 후지모토 혼자서 그린 작품도 있다. 같은 기간 주간 소년 선데이 연재분은 이시노모리 쇼타로도 일부 작화에 참여했다. 1971년 ~ 1974년 연재분은 후지모토가 대부분을 다루고 아비코는 일부 작화 외에는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센베에
: 1971년 ~ 1972년에 주간 소년 선데이에 연재되었다.
미숙한 선인(仙人)인 센베에가 100년 후인 현대에 돌아와 동생의 증손자인 미네노네 집에 얹혀 살면서 소동을 일으키는 개그 만화이다. 스토리와 배경 작화는 후지모토가, 캐릭터 작화는 아비코가 담당했다.
5.2. 후지코 F. 후지오 (후지모토 히로시) 주요 작품
| 일본어 제목 | 한국어 제목 | 연도 |
|---|---|---|
| てぶくろてっちゃん일본어 | 장갑 테짱 | 1960년–1963년 |
| すすめロボケット일본어 | Go! Roboket | 1961년–1965년 |
| 21エモン일본어 | 21에몬 : 21세기 소년 | 1967년–1969년, 1981년 |
| ウメ星デンカ일본어 | 매실별 덴카 | 1968년–1970년 |
| モジャ公일본어 | 모자공 | 1969년–1970년 |
| ドラえもん일본어 | 도라에몽 | 1969년–1988년 |
| ポコニャン일본어 | 포코냥 | 1970년–1978년 |
| ドビンソン漂流記일본어 | 도빈슨 표류기 | 1971년–1972년 |
| ジャングル黒べえ일본어 | 정글 쿠로베 | 1973년 |
| パジャママン일본어 | 파자마맨 | 1973년–1974년 |
| モッコロくん일본어 | 목코로 군 | 1973년–1975년 |
| バケルくん일본어 | 바켈 군 | 1974년–1976년, 1984년 |
| キテレツ大百科일본어 | 키테레츠 | 1974년–1977년 |
| ぞうくんとりすちゃん일본어 | 조 군과 리스 짱 | 1974년–1975년 |
| みきおとミキオ일본어 | 미키오와 MIKIO | 1974년–1975년 |
| 4じげんぼうPポコ일본어 | 4차원 모자 P-포코 | 1975년–1976년 |
| Uボー일본어 | U-보우 | 1976년–1978년 |
| バウバウ大臣일본어 | 바우바우 대신 | 1976년 |
| きゃぷてんボン일본어 | 캡틴 본 | 1976년 |
| エスパー魔美일본어 | 마미 텔레파시 | 1976년–1983년 |
| 中年スーパーマン左江内氏일본어 | 중년 슈퍼맨 사에나이 씨 | 1977년–1978년 |
| T・Pぼん일본어 | 타임 패트롤 본 | 1978년–1985년 |
| ミラ・クル・1일본어 | 미라클-1 | 1979년 |
| パーマン일본어 | 퍼맨 (1983) | 1983년–1986년 |
| 宙ポコ일본어 | 츄-포코 | 1983년 |
| 宙犬トッピ일본어 | 토피 우주 강아지 | 1983년–1984년 |
| チンプイ일본어 | 침푸이 | 1985년–1988년 |
5.3. 후지코 후지오 Ⓐ (아비코 모토오) 주요 작품
| 일본어 제목 | 연도 |
|---|---|
| 내 이름은 X군 | 1957년–1958년, 1959년–1962년 |
| 은십자 | 1960년–1963년 |
| 은하선장 | 1961년–1962년 |
| 빅 1 | 1962년 |
| 시스콘 왕자 | 1963년–1964년 |
| 후타군 | 1964년–1967년 |
| 닌자 핫토리군 | 1964년–1968년, 1981년–1988년 |
| 쓰리 Z 맨 | 1964년–1965년 |
| 우리집 문어군 | 1965년–1967년 |
| 괴물군 | 1965년–1969년, 1972년, 1980년–1982년 |
| 가면 X군 | 1965년–1966년 |
| 만가니카 | 1967년–1971년 |
| 괴인 와카토노 | 1967년–1968년 |
| 검은 세일즈맨 (단편) | 1968년 |
| 비리켄 | 1969년 |
| 검은 세일즈맨 (연재) | 1969년–1971년 |
| 쿠로베 | 1969년–1970년 |
| 가면 타로 | 1969년–1970년 |
| 광인군 | 1969년–1970년 |
| 히틀러 삼촌 | 1969년, 1971년 |
| 무마코 | 1970년 |
| 극화 마오쩌둥 | 1970년–1971년 |
| 유령 변다이후 | 1971년–1972년 |
| 무명군 | 1971년–1976년 |
| 카파의 캡포 | 1972년–1974년 |
| 마타로가 온다!! | 1972년–1975년 |
| 添승씨 | 1972년–1974년 |
| 장난꾸러기 남자 | 1973년 |
| 도둑맞은 사랑 | 1973년 |
| 가츠아게마루 갈취 회사 | 1973년 |
| 사스라이군 | 1973년–1981년 |
| 프로 골퍼 원숭이 | 1974년–1980년, 1982년–1988년 |
| 사랑의 여행자 | 1974년 |
| 오야지 보타로 | 1975년–1976년 |
| 미스 드라큘라 | 1975년–1980년 |
| 나는 과장보좌관이다 | 1975년–1976년 |
| 블랙 회사 헨키로 | 1976년–1977년 |
| 만화의 길 | 1977년–1982년, 1986년–1988년 |
| 파만의 나날 | 1978년–1980년 |
| 소년시대 (어린 시절) | 1978년–1979년 |
| 후타군 NOW! | 1982년–1983년 |
| 파만의 지정석 | 1982년–1987년 |
| 꿈 터널 | 1983년–1984년 |
| 닌자 핫토리 + 파만 | 1983년–1985년 |
| 울트라 B | 1984년–1988년 |
| 후지코 후지오 Ⓐ |
|---|
6. 수상 경력
| 연도 | 상 이름 | 작품 | 비고 |
|---|---|---|---|
| 1963년 | 쇼가쿠칸 만화상 | 스스메 로보켓, 테부쿠로 텟짱 | |
| 1973년 | 일본만화가협회상 우수상 | 도라에몽 | |
| 1981년 | 가와사키시 문화상 | 후지코 후지오 | |
| 1982년 | 쇼가쿠칸 만화상 어린이 만화 부문 | 도라에몽 | |
| 1984년 | "영화의 날" 특별 공로 메달 | 후지코 후지오 | |
| 1984년 | ゴールデングロス賞일본어 | 영화 도라에몽 | |
|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6년, 1997년 그 외 다수 | ゴールデングロス賞일본어 | 영화 도라에몽 등 | 후지코 F. 후지오 |
| 1989년 | "영화의 날" 감사장 | 후지코 F. 후지오 | |
| 1994년 | 일본만화가협회상 문부과학대신상 | 도라에몽 | 후지코 F. 후지오 |
| 1995년 | 후지모토상 격려상 | 후지코 F. 후지오 (영화 도라에몽 시리즈 제작) | |
| 1996년 | "영화의 날" 특별 공로 메달 | 후지코 F. 후지오 | |
| 1997년 | 제1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대상 | 도라에몽 | 후지코 F. 후지오 |
| 1990년 | 후지모토상 특별상 | 후지코 후지오 A (영화 소년시대 제작) | |
| 1990년 | 야마지 후미코 문화재단 특별상 | 후지코 후지오 A (소년시대 제작) | |
| 2005년 | 일본만화가협회상 문부과학성 장관상 | 전 작품 | 후지코 후지오 A |
| 2008년 | 욱일장 | 후지코 후지오 A | |
| 2014년 |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특별상 | 만화의 길 및 사랑…알게 된 순간… | 후지코 후지오 A |
7. 미디어 출연
| 후지모토 히로시 | 안손시 스미오 |
|---|---|
| 후지코 F 후지오 | 후지코 후지오 |
|---|---|
후지코 후지오 본인의 미디어 출연은 다음과 같다.
; 텔레비전
* 《닌자 햇토리군+닌자괴수 지포》 - 제18화 「지포의 병은 특대입니다」
* 우메보시 덴카 (1969년 9월 2일) - 제23회 A파트 「곤스케와 나라코 대결의 권」에서 곤스케와 나라코가 싸우려는 장면에 후지모토와 아즈마가 얼굴 사진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등장. 목소리도 본인들이 연기했다.
* 켄짱 차코짱 (1980년 5월 1일, 11월 6일) - 제9화 「만화와 시대극」, 제36화 「시대극과 서부극」에서 본인 역으로 출연.
* 봄방학 만화축제 (1981년 3월 11일, 1984년 3월 14일) - 《수요스페셜》에서 방송.
* 빛나라! 올스타 봄 방송 대항 볼링 대회 (1982년 3월 24일) - 《수요스페셜》에서 방송.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팀이 출전함에 따라, 후지모토와 아즈마가 애니메이션 팀에 참가했다.
* 퀴즈 재미있는 세미나 (1983년 4월 17일) - '후지코 후지오 팀'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하여 답변자로 참여
* 도라에몽 유럽 철도의 여행 - 텔레비전 아사히, 1983년 10월 18일. 유럽 각지의 철도를 취재하는 후지코 후지오 두 사람이 실사에 합성된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노비타와 공연. 애니메이션 파트에서는 목소리 출연(서두에서 노비타의 전화를 받는 역할), 실사 파트에서는 본인들이 출연.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각국의 철도를 타고 여행했다. 텔레비전 아사히 개국 25주년 특별 프로그램.
8. 관련 인물
* 데즈카 오사무 : 후지모토 히로시와 아비코 모토오는 중학교 시절 데즈카 오사무와 그의 만화 신 보물섬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51년에는 다카라즈카에 있는 데즈카의 집을 방문하여 벤허(Ben Hur)라는 제목의 작품 일러스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 테라다 히로오 : 후지모토와 아비코는 토키와소 아파트에서 테라다 히로오를 포함한 여러 만화가들과 함께 新漫画党일본어이라는 공동 작업 그룹을 결성했다.
* 스즈키 신이치, 이시모리 쇼타로, 츠노다 지로, 아카츠카 후지오 : 1963년 후지모토와 아비코는 스즈키 신이치, 이시모리 쇼타로, 츠노다 지로와 함께 스튜디오 제로(Studio Zero)를 설립했고, 나중에 아카츠카 후지오가 합류했다.
* 간푸 켄타 : 후지코 원작 애니메이션 작품에 단골로 출연했다.
8.1.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와 그의 만화 시리즈 신 보물섬의 영향을 크게 받은 후지모토와 아비코는 함께 텐큐마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그들의 첫 번째 공동 작업이었다. 그들은 만화소년과 같은 정기 간행물에 작품을 투고하기 시작했고, 일본우편을 통해 공동 저축 계좌를 개설하여 둘 다 돈을 저축하고 미술 용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그들은 모든 수입과 경비를 똑같이 나누었는데, 이 관행은 파트너십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들은 천사의 타마짱(Tenshi no Tama-chan)으로 출판계에 데뷔했으며, 1951년 마이니치 소학생 신문에서 연재되었다. 같은 해에 그들은 다카라즈카에 있는 데즈카의 집을 방문하여 벤허(Ben Hur)라는 제목의 작품 일러스트를 보여주었다. 데즈카는 두 사람을 칭찬했고, 몇 년 후 그들이 만화계의 거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그들은 파트너십을 영구적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처음에는 존경의 의미로 데즈카 후지오(手塚藤雄)라는 이름을 채택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우상인 데즈카의 이름과 너무 가까워 보인다는 이유로 아시즈카 후지오(藤子不二雄)로 변경했다.
1952년 고등학교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기로 결정한 후지모토는 제과 회사에, 아비코는 도야마 신문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후지모토는 며칠 만에 그만두었다. 후지모토는 그 후 정기 간행물에 작품을 투고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고, 아비코는 주말에 그를 도왔다. 아시즈카 후지오로서의 첫 번째 연재는 몇 화 만에 종료되었지만, 그 후 묵시록적인 공상 과학 시리즈 UTOPIA—最後の世界大戦일본어로 성공을 거두었다.
1954년 후지모토의 제안으로 전문 만화가가 되기 위해 도쿄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는데, 아비코는 도야마 신문사에 안정적인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들은 토키와소 아파트 단지로 이사했고, 테라다 히로오 등 여러 만화가들과 함께 新漫画党일본어라는 공동 작업 그룹을 결성했다. 1959년에는 토키와소를 떠나 가와사키로 이사했다. 1960년대에 후지모토와 아비코는 공동 만화 제작 회사인 후지코 스튜디오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후지모토는 1962년 할로윈에 28세의 나이로 결혼했다.
1963년 후지모토와 아비코는 스즈키 신이치, 이시모리 쇼타로, 츠노다 지로 등과 함께 스튜디오 제로(Studio Zero)를 설립했다. 나중에 아카츠카 후지오가 합류했고, 전성기에는 약 80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스튜디오는 여러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했고, 철완 아톰의 한 에피소드에서 무시 프로덕션을 대신하기도 했다. 아비코는 1966년 32세의 나이로 결혼했다.
1968년 아비코는 검은 세일즈맨(Kuroi Salesman)과 같은 작품을 통해 성인 대상 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성인과 소년 만화 모두에 집중했는데, 그의 스타일은 블랙 코미디로 가득 차 있었다. 1970년대에 후지모토는 성인과 어린이 만화 모두에 집중했다. 그의 스타일은 경이로움으로 유명했다.
도라에몽은 1969년에 만들어졌다. 1974년경부터 일본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코로코로 코믹은 1977년 후지코 후지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첫 번째 호를 발행했다. 1979년 TV 아사히에서 도라에몽이 방영되면서 인기가 급증하여 1980년대 내내 후지모토와 아비코의 12편에 달하는 공동 및 개인 작품이 출판 및 방영되었다.
1987년, 창작적인 차이를 이유로 후지모토와 아비코는 오랜 파트너십을 끝내고 개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비코는 필명 후지코 후지오 A를, 후지모토는 필명 후지코 F. 후지오를 사용했다. 파트너십 해산의 원인은 1986년 후지모토가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 후지모토와 아비코 모두 상대방이 죽기 전에 저작권과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8.2. 어시스턴트
* 다나카 미치아키
* 에비하라 다케시
* 가타쿠라 요우지
* 다카야 겐지 (치프 어시스턴트)
* 무기와라 신타로 (1993년부터 치프 어시스턴트)
* 아베 준지
* 요시다 다다시
* 다케무라 요시히코
* 시노다 히데오
* 미타니 유키히로
* 무라타 히로시
* 하츄 루이
시노다 히데오는 데즈카 오사무의 전 어시스턴트였다. 직원은 아니었지만 책상이 마련되었고, 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 『도라Q 파이어맨』 (후지모토가 코마와리(コマ割り)까지 담당하고, 시노다가 작화를 담당한 합작)
* 『베라보』 (후지모토가 메인 작가로 서브 캐릭터 작화를 시노다가 담당한 합작 연재)
* 『보쿠 ㄴ치노 타코쿤』 (안손시와의 합작 연재)
* 『괴물군』 제1화의 많은 작화 협력
* 『黒イせぇるすまん』 (후의 『웃는 세일즈맨』의 최초 단편)의 작화 협력
나가타 타케마루는 타가와 미즈아메에게 사사했다. 후지코의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서 1967년 12월~1973년 2월까지 수석 어시스턴트를 역임하며, 『도라에몽』등의 작화(인물의 신체 펜선 등)에 참여했다.
9. 기타
다음은 서로 다른 작품들의 공통점과 유사점이다. 콤비 시절에는 단독 작품이라도 아이디어나 동일한 소재를 공유하여 각자 자유롭게 사용했기 때문에, 단독 작품 속에도 파트너의 영향 아래 그려진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코이케 씨(小池さん): 협업 작품인 『오바케의 Q타로』를 비롯한 많은 후지코 작품에 출연했다. 아비코 모토오(아손코) 작품인 『코이케 씨의 기묘한 생활』과 후지코 작품인 『쾌걸 코이케 씨』 등 주연 작품도 여러 편 있다. 창작자는 아비코 모토오이다.
* 카미나리 씨(神成さん): 협업 작품인 『오바케의 Q타로』와 후지코 후지오의 작품인 『도라에몽』 두 작품에 출연했다.
* 곤스케(ゴンスケ): 후지코 후지오의 작품인 『21에몬』과 『우메보시 덴카』에 출연한 후, 아비코 모토오의 작품인 『곤스케』에서 주연을 맡았다. 창작자는 후지모토 히로시이다.
2023년 현재 구하기 어려운 작품 또는 단행본으로 발매되지 않은 작품은 다음과 같다.
* 구하기 어려운 작품
* 『닌자 핫토리군+퍼맨』
* 단행본 미수록 회가 있는 작품
* 『오야지 보타로』
* 『첨승상』
* 『오레 계장 보좌』
그 외 다수.
9.1. Mo 마크
후지코 후지오의 사인이나 작품 마지막 칸 등에 적혀 있는 경우가 있는 "Mo"와 비슷한 마크는 알파벳이 아니라 "후지산"과 "호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후지(富士) + 호(湖)" → "후지코(藤子)"를 의미한다. 독립 후, 후지모토는 "M"의 왼쪽 아래에 "o"를 그리기 시작했다. 독립 후, 아비코는 Mo 마크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주로 Ⓐ를 마크로 사용하게 되었다). 아비코는 2005년에 "이는 옛날 콤비인 '후지코 후지오'의 마크이기 때문에, 제 것만은 아니다"라고 코멘트했다.
9.2. 콜라보레이션
* 마스크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마스크로 소년이 파워업한다)
: 안소지 작 『내 이름은 X군』의 설정을 후지모토 메인 작 『파워맨』에서 활용.
* 이불 두들기기 게임 (막대기 모양으로 말은 이불로 서로 두들겨 패는 게임)
: 공동 작품 『유령 Q타로』, 안소지 작 『아저씨 보타로』, 후지모토 작 『도라에몽』, 안소지 작 『울트라 B』 등 많은 작품에서 대결이 펼쳐졌다. 후지모토는 "옛날에 안소지와 함께 해서 재밌었다"라고 회상하며, 딸과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아저씨 보타로』에서는 대유행을 했다. 『유령 Q타로』에서는 "이불 게임", 『도라에몽』에서는 "매트 펜싱"이라는 명칭.
* 공룡에 관한 무리한 약속 (못 하면 벌칙 게임)
: 안소지 작 『괴물군』 "정말 공룡은 있는 걸까?" (1967)에서 키자오와 히로시의 대화를, 후지모토 작 『도라에몽』 "노비타의 공룡" (1975)에서 스네오와 노비타가 재연.
* 악덕 부동산업자
: 후지모토와 안소지는 1961년 가와사키시에 토지를 구입하여 이웃집에 단독주택을 신축했다. 그 경험 덕분에 이후 작품에 마이홈 구입을 테마로 한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한다. 일부 아이디어는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작품명 | 작가 | 발표 연도 및 권수 |
|---|---|---|
| 『와카토노』 (엄격한 마이홈) | 안소지 메인 공동 작품 | 1965년 24호 (디지털 셀렉션 3권) |
| 『유령 Q타로』 (100평 1만 엔) | 공동 작품 | 1966년 19호 (전집 4권) |
| 『닌자 핫토리군』 (주택난에는 닌자도 쩔쩔매는 편) | 안소지 단독 작품 | 1967년 2월호 |
* 『닌자 핫토리군+파만』
: 아손자 작품인 『닌자 핫토리군』과 후지모토가 주로 작화를 담당한 『파워맨』이 협업한 작품이다. 만화 작품은 아손자의 단독 집필 작품이다.
9.3. 연구 서적
* 하마다 유스케, 『후지코 F. 후지오론』
* 요네자와 요시히로, 『후지코 후지오론 - F와 A의 방정식』
* 후지코 후지오(A) 감수, 완전 보존판 「만가도 대해부」, 사에이쇼보(산에이 묵) (2017년 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