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남키르기스스탄 민족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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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 남키르기스스탄 민족분쟁은 2010년 6월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 키르기스족과 우즈베크족 간에 발생한 유혈 충돌이다. 1990년 오시 폭력 사태, 소련 시대의 민족 정책, 바키예프 정권 붕괴 이후의 혼란 등이 분쟁의 배경이 되었다. 분쟁은 오쉬 시의 우즈베크족 거주 지역 봉쇄, 카지노 화재, 키르기스인들의 공격으로 시작되었으며, 정부군의 개입과 인권 침해, 수많은 난민 발생 등 심각한 피해를 야기했다. 국제 사회는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민족 간의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었고, 사법 처리 과정의 문제점, 우즈베크어 탄압 등 여러 여파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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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남키르기스스탄 민족분쟁 - [전쟁]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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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분쟁 이름 | 2010년 남키르기스스탄 우즈베크인 학살 |
분쟁의 일부 | 2010년 키르기스스탄 혁명 |
장소 | 키르기스스탄: 오시, 잘랄아바트 우즈베키스탄: 소흐, 소그멘트 (키르기스스탄 내 우즈베키스탄 월경지) 및 키르기스스탄과 접경 지역 |
결과 | 비슈케크 정부, 남부 지방에 대한 부분적인 통제 회복 우즈베크 소수 민족의 제한적인 탈출 공공 생활에서 우즈베크어 억압 |
교전 세력 1 | |
교전 대상 |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인 갱단 |
지원 세력 | 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키르기스인 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세력 타지크인 계약자 타지키스탄 타지크인 러시아 타지크인 기타 용병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인 소흐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인 소그멘트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인 [[파일:Flag of Jihad.svg|20px]]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 (추정) |
교전 세력 2 | |
교전 대상 |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크인 |
지원 세력 | 친 임시 정부 민간인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인 민간인 소흐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인 소그멘트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크인 우즈베키스탄 (제한적 개입) |
교전 세력 3 | |
교전 대상 | 키르기스스탄 임시 정부 |
지원 세력 |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카자흐스탄 중국 러시아 터키 미국 |
지휘관 | |
지휘관 1 | 알 수 없음 |
지휘관 2 | 알 수 없음 |
전력 | |
전력 1 | 알 수 없음 |
전력 2 | 알 수 없음 |
피해 규모 | |
사망자 1 | 공식: 393–893명 사망 |
부상자 | 1,900명 부상 |
난민 | 100,000 – 250,000명의 난민 (우즈베키스탄으로) (UN 및 ICG에 따르면 400,000명 이재민, 111,000명 우즈베키스탄 난민) |
사망자 2 | 비공식: 2,000명 이상 사망 |
추가 정보 | |
추가 정보 1 | 우즈베키스탄 월경지인 소흐 내 키르기스-우즈베크 충돌 및 접경 지역의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인 간의 소규모 교전에 연루됨. |
추가 정보 2 | 키르기스스탄 내 우즈베키스탄 월경지인 소흐에서 우즈베크인 보호에 잠시 관여함. |
날짜 | |
시기 | 2010년 5월–6월 |
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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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2010년 남키르기스스탄 민족분쟁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소련 붕괴 이후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는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간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1990년 6월, 오시에서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간의 토지 분쟁으로 인해 대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키르기스인 단체가 우즈베크인 거주 지역의 집단 농장 부지를 요구하면서 충돌이 시작되었고,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88][89][90]
키르기스인들은 우즈베크인들이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우즈베크어의 공식 지위를 요구하는 등 과격한 민족주의를 내세운다고 여겼다.[91][30] 또한, 이웃 나라인 우즈베키스탄이 자국의 주권을 위협한다고 느꼈으며,[94][30] 양국 간의 국경 분쟁과 우즈베키스탄 국가안보국의 활동에 대한 우려도 이러한 인식을 강화했다.[94][30]
2010년 키르기스스탄 봉기는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정권의 붕괴를 가져왔다. 많은 우즈베크인들은 바키예프 대통령이 키르기스인들을 편애했다고 주장한 반면, 남부 키르기스인들은 바키예프를 강력하게 지지했다.[93][33] 봉기 이후 임시 정부가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권력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93][33]
한편, 키르기스스탄 도시들은 농촌 지역 젊은이들의 유입으로 인해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지만,[92][32] 민족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해결 노력은 부족했고, 대부분의 행정 직위를 키르기스인이 차지하고 있어[92],[32] 우즈베크인들의 불만을 더욱 키웠다.
2. 1. 소비에트 시대
소련 내 민족 구분(1917년~1930년대 중반) 이후 중앙아시아 민족들은 종교나 지역 대신 스스로를 "키르기스" 또는 "투르크멘"으로 규정하는 민족 형성 과정을 겪기 시작했다. 소련의 민족학자들은 키르기스족으로 정의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유목민이었고, 우즈베크인으로 정의된 사람들은 정착민이었다고 정의하였다.[28][29]소련 붕괴 이후, 키르기스 대통령 아스카르 아카예프는 키르기스 민족주의를 억압하고 범이슬람주의와 범투르크주의 통일을 지지하다가 2005년 튤립 혁명으로 축출되었다.[30]
2. 2. 1990년 폭력
1990년 6월, 오시 시에서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간의 격렬한 토지 분쟁이 발생했다. 키르기스인 단체가 주 우즈베크인이 거주하는 집단 농장 부지를 주택 건설을 위해 자신들에게 할당할 것을 요구했다. 우즈베크 활동가들이 이에 반대하며 두 민족 간의 폭력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키르기스인들이 주변 마을에서 도착하기 전까지 우즈베크인들이 우세를 보였다.[88][89][90] 비상사태와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우즈베크 공화국과 키르기스 공화국 간의 국경이 폐쇄되었다. 소련군이 폭력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질서는 8월이 되어서야 회복되었다.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300명 이상[65][80]에서 600명 이상[31]으로 추정된다. 비공식적인 추산으로는 1,000명 이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88][89][90]2. 3. 반우즈벡 정서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 우즈베크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우선, 우즈베크인들이 지역 경제, 특히 무역과 서비스업, 그리고 농업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경제적 영향력이 커진 것에 대한 키르기스인들의 경계심이 작용했다.[91][30] 키르기스인들은 카디르존 보티로프와 같은 부유한 우즈베크 지도자들이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 권력까지 확대하려 한다고 의심했다.[30] 또한, 우즈베크인들이 키르기스스탄 내에서 우즈베크어의 공식 지위를 요구하고, 의회에서 우즈베크인만을 위한 의석을 요구하는 등 과격한 민족주의를 내세운다고 여겼다.[91][30]키르기스인들은 우즈베크인들이 가난한 키르기스인들을 희생시켜 부를 축적하고, 언어적, 정치적 자치를 요구하며 키르기스스탄의 단결을 저해하려 한다는 인식을[91]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2010년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정권이 붕괴된 후 더욱 심화되었다.[93][33] 많은 우즈베크인들은 바키예프 대통령이 키르기스인들을 편애했다[29]고 주장하는 반면, 남부 키르기스인들은 바키예프를 강력하게 지지했다.[93][33] 2010년 키르기스스탄 봉기 이후 임시 정부가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었다.[93][33]
키르기스인들은 이웃 나라인 우즈베키스탄이 자국의 주권을 위협한다고 느끼고 있으며,[94][30] 우즈베키스탄이 해외에 거주하는 우즈베크인들을 보호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강화되었다.[30] 양국 간에는 오랫동안 국경 분쟁이 이어져 왔으며, 우즈베키스탄이 일방적으로 장벽을 건설하면서 갈등이 고조되었다.[94][30] 우즈베키스탄 국가안보국이 키르기스스탄에서 정보 작전을 수행하고,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과 같은 과격 단체의 침투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키르기스인들의 반우즈벡 정서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94][30]
한편, 키르기스스탄 도시들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농촌 지역 젊은이들의 유입으로 인해 범죄 조직 연루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92][32] 그러나 민족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해결 노력은 부족했고, 대부분의 행정 직위를 키르기스인이 차지하고 있어[92],[32] 우즈베크인들의 불만을 더욱 키웠다.
3. 발생
2010년 5월 말, 키르기스스탄 소흐의 우즈베크 월경지 주민 수백 명이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주요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차량 몇 대가 파손된 후 보안 강화를 요구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이 지역에 제한된 군대와 경찰을 배치했지만 6월 3일에 철수했다.[42]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 축출에 따른 정치적 혼란 속에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6월 10일 저녁, 오시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기록에 따르면 젊은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간의 카지노 분쟁이 폭력 사태의 발단이었다. 두 그룹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밤새도록 충돌이 이어졌다. 시골에서 온 키르기스인들은 오시, 잘랄아바트 등지로 몰려와 현지 키르기스인 및 우즈베크인과 합세하여 서로의 지역을 공격했다. 6월 11일부터 6월 14일까지 살인, 고문, 약탈, 주택 및 사업체 방화가 발생했다.[104]
3. 1. 가능한 선동자
일부 소식통은 폭동이 외부 세력에 의해 조직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웃 타지키스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스키 마스크를 쓴 조직적인 총잡이 집단이 폭동을 촉발하기 위해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모두에게 총을 쏘았다는 여러 보고가 있었다.[95] 그러나 키르기스스탄 보안군 수장은 이러한 언론의 주장을 부인했다.[96]
로자 오툰바예바가 이끄는 키르기스스탄 임시 정부는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대통령과 그의 인맥이 폭동의 배후에 있다고 주장했다.[97]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개입을 촉구하기도 했지만 크렘린궁은 임시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군대 개입을 거부했다.[98]
2010년 5월 14일 언론 매체는 공산당 지도자 이스하크 마살리에프와 다른 정치인들 간의 도청 전화 대화를 방송했다. 그들은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키르기스스탄의 강력한 정치인이었던 바키예프의 고문 우센 시디코프도 포함되었다. 키르기스스탄 보안군은 두 사람을 체포했다. 마살리에프는 모스크바에서 막 도착한 참이었다. 이 체포는 크렘린이 불안정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99]
5월에 러시아와 그 동맹국인 카자흐스탄이 키르기스스탄의 이미지를 떨어뜨리기 위해 일관된 대중 매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한 매체는 언급했다.[100] 2010년 6월 14일 유라시아 전문가 Giorgi Kvelashvili는 모스크바의 행동이 더 큰 계산된 계획의 일부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101]
국제기구는 6월 행사가 외부에서 조직되었다는 견해를 지지하지 않았다. 휴먼 라이츠 워치에 따르면 "남부 키르기스스탄의 폭력 사태는 6월 10일 오슈 중심부에 있는 카지노에서 우즈벡인과 키르기스인 간의 사소한 싸움에 대응하여 많은 우즈벡인들이 모였을 때 시작되었다. 6월 10일 밤에 키르기즈인에 대한 몇 차례의 폭력적인 공격과 여러 건물에 불이 붙자 오쉬와 외부 마을에서 온 키르기즈인이 격분했고 수천 명이 도시로 몰려들었다."[102]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가 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에 대한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 행사를 이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103] 스트랫포어는 6월 13일에 "위기가 키르기스스탄 내부 비상사태에서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간의 대결로 옮겨갔다. 러시아는 지난 해에 중앙아시아 통합의 길에 있음을 입증했다. 이 중 우즈베키스탄은 통제하기 가장 힘든 고리가 될 수 있다."[103]
3. 2. 발발 과정
2010년 5월 말, 키르기스스탄 월경지의 우즈베키스탄 거주민 수백 명이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하는 주요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차량 몇 대가 파손된 것으로 알려진 후 보안 강화를 요구했다. 그 후 우즈베키스탄은 제한된 군대와 경찰력을 영토에 배치했지만 6월 3일 철수했다.[104]쿠르만베크 바키예프가 축출된 후 이어진 정치적 혼란 동안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6월 10일 저녁 오시에서 폭력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설명에 따르면 젊은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사이의 카지노에서의 분쟁이 폭력 사태의 분수령이 되었다. 양측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밤새 충돌이 계속되었다.
시골에서 온 키르기스인들은 오시, 잘랄아바드 및 기타 마을로 몰려와 현지 키르기스인 및 우즈베크인들과 합세하여 서로의 지역을 공격했다. 6월 11일부터 6월 14일까지 살인과 고문, 약탈, 주택 및 사업체 방화가 발생했다.
4. 전개 과정
2010년 6월 9일에서 10일 사이 오쉬 시에서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키스탄 소수민족 간의 폭동으로 최소 46명이 사망하고 637명이 부상을 입었다. 남부 도시에서는 하루 종일 총성이 보고되었고,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군대가 배치되었다.[105][106]
6월 12일, 키르기스스탄 임시 정부는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러시아는 키르기스스탄 내부 문제라며 개입을 거부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키르기스스탄 임시정부의 질서 회복을 지지했다.[105][106]
6월 13일,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예비군 부분 동원을 선언하고, 보안군에게 살상 무력 사용을 승인했다.[107]
6월 12일과 13일,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인도주의적 상황 악화에 우려를 표명하며 당국에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108][109]
6월 15일, 알리크 오로조프 국가안보이사회 의장은 남부 지방의 상황을 "통제 불능의 혼돈"이라고 묘사했다.[110]
6월 16일, ''워싱턴 포스트''는 잘랄아바드에서 폭력 사태가 가라앉기 시작했지만,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간의 분노는 여전하다고 보도했다.[111] 키르기스 군인과 경찰은 폭력 사태가 진정된 후 장애물을 설치하고 순찰을 시작했다.
4. 1. 초기 대응
2010년 6월 9일에서 10일 사이, 오쉬 시에서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간의 폭동으로 최소 46명이 사망하고 63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들 중 다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남부 도시에서는 하루 종일 총성이 보고되었고,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군대가 배치되었다.[43]6월 12일, 키르기스스탄 임시 정부는 군대와 경찰이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하면서 러시아에 민족 분쟁을 진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모스크바는 위기가 키르기스스탄의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그 단계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키르기스스탄 임시정부의 질서 회복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44][45]
키르기스스탄 임시 정부는 민간 예비군의 부분 동원을 선언하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6월 13일, 키르기스 모집 사무소는 예비군 등록을 시작했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또한 보안군이 살상력을 사용하고 사살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46]
6월 12일과 13일, 국제 적십자 위원회는 악화되는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키르기스스탄 당국이 자국민을 보호하고 질서를 회복하며 법치 존중을 보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47][48]
6월 15일 아침, 알리크 오로조프 국가안보이사회 의장은 남부지방의 상황을 "사람들이 미쳐서 서로 대치하고 있다. 통제불능이 된 상황, 그야말로 혼돈"이라고 말했다.[49]
6월 16일, ''워싱턴 포스트''는 잘랄아바드에서 폭력 사태가 가라앉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즉 이웃들이 왜 그렇게 갑작스럽고 잔인하게 서로에게 등을 돌렸는지에 대해 질문했을 때 키르기스인과 소수 민족인 우즈베크인 사이의 끓어오르는 분노가 빠르게 표면화되었고, 그 상황"이라고 ''워싱턴 포스트''는 보도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주민들이 폭력에 대해 서로를 비난한다고 보도했다.[50] 키르기스 군인과 경찰은 최악의 폭력 사태가 끝난 후 장애물을 설치하고 순찰을 시작했다.
4. 2. 정부의 대응
2010년 6월 12일, 키르기스스탄 임시 정부는 군대와 경찰이 통제력을 상실했다며 러시아에 민족 분쟁 진압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위기가 키르기스스탄의 내부 문제이므로 개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105]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키르기스스탄 임시정부의 질서 회복을 지지한다고 밝혔다.[105][106]키르기스스탄 임시 정부는 예비군 부분 동원을 선언하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2010년 6월 13일, 키르기스스탄 징병 사무소는 예비군 등록을 시작했다. 또한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치안 부대가 살상력을 사용하고 사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107]
4. 3. 국제 사회의 우려
국제 적십자 위원회는 2010년 6월 12일과 13일에 악화되는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키르기스스탄 당국에 시민을 보호하고, 질서를 회복하며, 법치를 보장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47][48]2010년 6월 15일 아침, 국가 안보 위원회 의장 알리크 오로조프는 남부 지역의 상황을 "사람들이 미쳐서 서로 대립하고 있다. 상황이 통제 불능이 되었고, 진정한 혼돈이다"라고 묘사했다.[49]
2010년 6월 16일, ''워싱턴 포스트''는 잘랄아바드에서 폭력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이웃들이 갑자기, 그리고 그렇게 잔혹하게 서로에게 등을 돌렸는지 질문했을 때, 키르기스족과 소수 우즈베크족 사이의 끓어오르던 분노가 빠르게 표면화되었고, 상황의 지속적인 불안정성을 암시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또한 우즈베크족과 키르기스족 주민들이 서로에게 폭력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50]
5. 피해 상황
2010년 남키르기스스탄 민족분쟁으로 인한 피해는 막심했다. 인명 피해와 더불어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재산 피해도 컸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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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피해 | 2011년 1월, 지역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 위원회는 426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지만, 비공식 소식통은 "수천 명"이 사망했다고 전한다.[112][113] 살인은 매우 잔인하게 이루어졌으며, 많은 희생자들이 강간을 당하고 산 채로 불에 탔다.[119][120] |
난민 발생 | 유엔과 기타 국제 기구에 따르면, 40만 명의 난민이 집을 잃었고, 11만 1천 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우즈베키스탄으로 피신했다.[124] |
5. 1. 인명 피해
2010년 남키르기스스탄 민족분쟁으로 인한 정확한 사망자 수는 불확실하다. 2011년 1월, 지역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 위원회는 426명이 사망했으며, 그중 우즈베크인이 276명, 키르기스인이 105명이라고 보고했다.[112][113] 그러나 비공식 소식통은 "수천 명"이 사망했다고 전하며, 이는 당국이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과 공식적으로 매장된 사람만 집계했기 때문에 공식 데이터보다 높은 수치이다.우즈베크 민족 공동체 소식통에 따르면, 충돌이 덜했던 잘랄아바드에서 최소 700명의 우즈베크인이 살해되었다.[114]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오쉬에서는 1,526명[115]에서 2,000명 이상[116]이 사망했다. 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의 우즈베크 판은 2010년 6월 16일에 충돌이 시작된 이래로 2,608명의 우즈베크인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117] 오쉬 시 주민들은 1,170명의 우즈베크인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했다고 보고했다.[118]
살인은 매우 잔인하게 이루어졌으며, 많은 희생자들이 강간을 당하고 산 채로 불에 탔다.[119][120] 무장한 갱단은 부상자들이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고, 잘랄아바드에서는 군중이 부상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을 공격하기도 했다.[121] 이러한 폭력은 지역 경찰과 군대의 방치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으며, 많은 소식통과 국제기구는 현지 군대가 민족 충돌과 약탈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했다.[122] 충돌 과정에서 최소 5명의 경찰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123]
폭력으로 인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집을 떠났으며, 유엔과 기타 국제기구에 따르면 400,000명의 난민이 집을 잃었고, 111,000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우즈베키스탄으로 피신했다.[124]
현지 당국은 폭력에 대한 사진 및 비디오 증거를 수집하려던 다수의 우즈베키스탄 활동가들을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125]
5. 2. 난민 발생
폭력 사태로 인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집을 떠나야 했다. 유엔과 기타 국제 기구에 따르면, 40만 명의 난민이 이번 폭력 사태로 인해 집을 잃었고, 11만 1천 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우즈베키스탄으로 피신했다.[124]현지 당국은 폭력 사태에 대한 사진 및 비디오 증거를 수집하려던 다수의 우즈베키스탄 활동가들을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125]
6. 키르기스스탄 보안군의 폭력 진압 개입
많은 목격자와 국제기구는 키르기스스탄 당국이 포그롬(인종 학살)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126] 휴먼 라이츠 워치는 보고서를 통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장갑차에서 내려 우즈베크인을 비방하며 자동 무기를 발사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인용하며, 공격이 자발적이었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키르기스스탄 임시 정부는 보안군에 총살 권한을 부여했고, 이는 인권 단체들의 비난을 받았다. AP 통신은 2011년 5월 3일 "키르기스스탄 군대가 인종 유혈 사태에 연루됨"이라는 기사에서 국제 조사 결과 키르기스 보안군이 폭도들에게 무기를 나눠준 것은 폭력에 대한 군대의 공모를 나타낸다고 보도했다.
경찰과 지방 당국은 로자 오툰바예바가 이끄는 임시 정부의 완전한 무능의 증거로 간주되는 포그롬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폭력 사태 동안 법과 질서를 확립하지 못한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유혈 충돌에 대해 외부 세력을 비난했지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6. 1. 휴먼 라이츠 워치의 보고서
휴먼 라이츠 워치는 2010년 남키르기스스탄 민족분쟁을 조사하고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126] 이 보고서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장갑차에서 뛰어내려 반우즈벡 비방을 외치며 자동 무기를 발사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목격자들의 증언을 인용하여, 공격이 자발적이었다는 주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수십 명의 증인이 휴먼 라이츠 워치에 독립적으로 기술한 체레무쉬키, 샤이트-테페, 샤르크 등 오시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에 대한 공격은 일관된 패턴을 보였다. 많은 증언에 따르면, 군용 장갑차를 타고 위장복을 입은 사람들이 먼저 동네에 들어와 우즈베키스탄 주민들이 세운 임시 바리케이드를 제거했다. 그 뒤를 이어 남은 주민들을 총으로 쏴 쫓아내고 약탈자들의 길을 열어준 무장한 남자들이 뒤따랐다.
당국은 키르기즈 폭도들이 공격에 사용된 군복, 무기, 차량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관찰자들은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우즈벡 민족과 그들의 재산을 공격하는 폭도들의 손에 들어간 무기와 장비에 대한 군의 통제력 상실에 대한 별도의 질문을 제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시 정부는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보안군에 총살 권한을 부여했고, 이는 인권 단체들의 비난을 받았다. 임시 정부의 총살 명령은 많은 우즈베키스탄 민족을 무차별 살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른 소식통은 폭력에 키르기즈 보안군의 개입을 의심했다. 2011년 5월 3일, AP 통신은 "키르기스스탄 군대가 인종 유혈 사태에 연루됨"이라는 기사에서 민족 분쟁의 원인에 대한 국제 조사 결과 키르기스 보안군이 폭도들에게 무기를 나눠준 것은 폭력에 대한 군대의 공모를 나타낸다고 보도했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또한 일부 정부군이 우즈베키스탄 지역에 대한 공격에 개입했다고 보고했다.[126]
6. 2. 정부군의 개입 의혹
많은 목격자와 국제기구는 키르기스스탄 당국이 포그롬(인종 학살)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126] 휴먼 라이츠 워치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장갑차에서 내려 우즈베크인을 비방하며 자동 무기를 발사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인용하며, 공격이 자발적이었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126]AP 통신의 2011년 5월 3일 보도에 따르면, 국제 조사 결과 키르기스 보안군이 폭도들에게 무기를 나눠준 것은 군의 공모를 나타낸다.[66] 휴먼 라이츠 워치 또한 일부 정부군이 우즈베키스탄 지역 공격에 개입했다고 보고했다.[126] 휴먼 라이츠 워치는 보안군이 가해자의 인종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여 우즈베키스탄인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126] 경찰과 지방 당국은 포그롬 확산을 막지 못했고, 이는 로자 오툰바예바 임시 정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간주된다.
폭력 사태 이후에도 키르기스스탄 법 집행관들은 자의적 체포, 구금자 학대, 주민 폭행 및 살해 등 인권 침해를 자행했다. 휴먼 라이츠 워치와 Amnesty International은 법 집행 기관이 주로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자의적인 급습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경찰이 구금자 석방을 위해 최대 10000USD의 뇌물을 요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보안 요원들은 구금자 가족에게 돈을 요구했고, 많은 구금자가 학대와 위협을 당했으며, 잔혹하게 구타당했다. 인권 단체들은 보안군이 증거를 조작하고, 소총으로 사람들을 구타하고, 문서를 파괴하고, 소지품을 훔쳤다고 보고했다.[67]
당국은 주로 우즈베키스탄인을 변호하는 변호사를 괴롭히고 공격했다. 변호사들은 당국이 고객을 만나는 것을 막았고, 심지어 돕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65]
대규모 폭력이 약해진 후에도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는 민족적 동기에 따른 공격이 계속되었다. 당국은 이러한 공격을 막는 데 무능하거나 막을 의지가 없었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오시 시 경찰서 앞에서 12명이 공격을 받고 구타당했으며, 무장 경찰관들이 이를 막기 위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6. 3. 폭력 사태 이후의 인권 침해
6월 사건뿐만 아니라 그 여파로 보안군에 의한 인권침해가 자행되었다. 폭력이 중단된 후 키르기스스탄 법 집행관은 자의적 체포, 구금자 학대, 주민 폭행 및 모욕, 어떤 경우에는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126] 키르기즈 보안군은 불법 무기를 압수하기 위해 소탕 작전을 수행했는데, 휴먼 라이츠 워치 및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국제 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법 집행 기관은 주로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자의적인 급습을 실시했다.휴먼 라이츠 워치는 수감자들의 석방을 위해 최대 10000USD에 이르는 터무니없는 뇌물을 요구하는 경찰 관리들의 보고를 수십 건 받았다. 보안요원들은 수감자들의 가족을 풀어주거나 다른 사람들이 체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돈을 요구했다. 억류자의 압도적 다수는 우즈벡인이었다. 많은 수감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협박을 당했으며 잔인하게 구타당했다. 인권 단체들은 또한 보안군이 증거를 조작하고, 소총으로 사람들을 구타하고, 문서를 파괴하고, 소지품을 훔치고, 억류자들을 학대했다고 보고했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이나 국가 안보 구금 상태에서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구타당하거나 범죄를 자백하도록 강요하거나 친척, 이웃, 고용주 또는 친구를 비난하기 위해 부당한 대우와 고문을 당했다고 보고했다.[126] 키르기스스탄 보안군은 나리만 마을에서 39명을 다치게 했고, 이 중 2명은 병원에서 사망했다.
당국은 인종적 폭력과 관련하여 주로 우즈베키스탄인 고객을 대변하는 변호사를 괴롭히고 공격했다. 변호사들은 현지 당국이 고객을 돕는 것은 고사하고 고객을 만나는 것조차 막았다고 보고했다.[127] 관리들은 반복적으로 우즈벡 민족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을 모욕하고 위협했다.
대규모 폭력의 강도가 약해진 후에도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는 민족적 동기를 가진 공격이 계속되었다. 당국은 공격을 막을 수 없거나 막을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공격을 거의 중단하지 않았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대부분 여성인 12명이 오시시 경찰서 앞에서 공격을 받고 잔인하게 구타당했으며, 다수의 무장 경찰이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지방 당국은 구금 중 학대를 조사하지 않았다. 최고 군 검사는 나리만에서의 소탕 작전은 총격과 2명의 사망을 초래한 잔인한 구타를 포함한 법 집행 기관의 행동이 "합법적이고 적절"하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조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128]
7. 여파
2010년 남키르기스스탄 민족분쟁 이후, 키르기스스탄 사회는 여러 변화와 문제점을 겪었다.
사법 처리 과정의 문제점 및 우즈베크인 탄압
폭력 사태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피고인 대다수는 우즈베크인이었으며, 2012년 초 기준으로 폭력 관련 범죄로 구금 및 기소된 사람들의 77%가 우즈베크족이었다.[129][130][124] 이는 우즈베크족이 폭력을 시작했다는 키르기스스탄 정치권의 주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124]
언론인이자 인권 운동가인 아짐잔 아스카로프를 포함한 수십 명의 우즈베크 종교 및 지역 사회 지도자들이 체포되었고, 아스카로프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131][132] 국제앰네스티는 아스카로프를 양심수로 지정하는 등, 국제 인권 단체들은 이들에 대한 혐의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했다.[133][134]
민족 갈등 심화 및 사회적 인식 문제국제위기감시기구(ICG)는 2012년 보고서에서 남부 키르기스스탄의 민족적 긴장이 국가의 태만과 남부 지도자들의 반우즈베키스탄 정책으로 인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135] 교육받은 중산층 키르기스인들조차 우즈베크인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136] 우즈베크인을 위험한 외부인으로 여기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었다.[124]
멜리스 미르자크마토프와 민족주의 정당의 부상오쉬 시장 멜리스 미르자크마토프는 민족주의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남부의 주요 정치인으로 부상했다.[139] 그와 다른 남부 민족주의자들은 아타-주르트 당을 결성하여 2010년 키르기스스탄 총선에서 28석을 차지했다. 미르자크마토프는 급진적인 민족주의 정책을 지지했으며,[140] 2013년 오쉬 시장직에서 해임될 때까지 반우즈베크적 접근 방식을 취했다.[143]
우즈베크어 탄압키르기스스탄 당국은 공공 생활에서 우즈베크어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146][147] 우즈베크 학교들은 키르기스어로 전환하라는 압력을 받았고,[148] 공공장소에서 우즈베크어 표지판이 제거되었으며, 우즈베크 TV 및 라디오 채널은 폐쇄되었다. 오쉬에 세워진 희생자 추모 종에는 우즈베크어가 포함되지 않았다.[149][150]
국제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파장독립 국제 조사 위원회(KIC)는 2011년 보고서에서 심각한 국제법 위반 사례를 발견했으며, 일부는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151] KIC는 로자 오툰바예바 과도정부의 대응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하고,[151] 키르기스 군중에게 무기가 배포된 점을 지적했다.[124]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KIC의 조사 결과에 반발하며, 위원장 키모 킬주넨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선언했다.[152]
7. 1. 사법 처리 과정의 문제점
남부 키르기스스탄 폭력 사태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피고인의 대다수는 우즈베크족이었다.[129][130] 2012년 초, 2010년 6월 폭력 사태와 관련된 범죄로 구금 및 기소된 사람들의 77%가 우즈베크족이었다.[124] 이는 우즈베크족이 폭력을 시작했다는 키르기스스탄 정치권의 주장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124]
언론인이자 인권 운동가인 아짐잔 아스카로프를 포함하여 수십 명의 저명한 우즈베크 종교 및 지역 사회 지도자들이 폭동 이후 보안군에 의해 체포되었다.[131] 여러 국제 인권 단체의 비판을 받은 재판에 이어, 아스카로프는 대규모 소요, 민족적 증오 선동,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132] 다양한 인권 단체들은 그와 그의 공동 피고인에 대한 혐의가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보았고,[133] 국제앰네스티는 아스카로프를 양심수로 지정했다.[134]
6월 사건 이후 우즈베크족은 자의적 구금, 강탈, 고문을 당했다.[137] 유엔 고문 특별보고관 후안 E. 멘데스는 2011년 12월에 보고서를 발표했다.[138]
7. 2. 민족 갈등 심화
2012년 3월 29일, 국제위기그룹(ICG)은 2010년 6월 이후 남부 키르기스스탄에서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사이의 민족적 긴장이 국가의 태만과 남부 지도자들의 반우즈베키스탄 정책으로 인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135] 이 보고서는 남부의 피상적인 침묵이 성공의 신호가 아니며, 체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Melis Myrzakmatov와 같은 강경 민족주의자도 우즈베크 소수 민족을 영원히 침묵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위기그룹은 남부 키르기스스탄의 폭력이 무자비하고 교육받지 못한 실직 청년과 부패한 정치인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비주류 현상이 아니라고 보고했다. 실제로는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중산층 키르기스인조차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136]
7. 3. 사회적 인식의 문제점
남부 키르기스스탄에서는 2010년 6월 폭력 사태 이후 우즈베크인을 위험한 외부인으로 여기는 견해가 널리 퍼져있다.[124] 교육받은 활동가와 전문가들조차 우즈베크인들이 스스로 파멸을 자초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124] 이러한 인식은 우즈베크인에 대한 차별과 굴욕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2010년 폭력 사태와 관련된 범죄로 구금 및 기소된 사람들의 77%가 우즈베크인이었다는 사실은[124], 우즈베크인들이 폭력을 시작했다는 키르기스스탄 정치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124]
국제위기그룹(ICG)은 2012년 3월 2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0년 6월 이후 남부 키르기스스탄에서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사이의 민족적 긴장이 국가의 태만과 남부 지도자들의 반(反)우즈베키스탄 정책으로 인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135] 이 보고서는 남부의 피상적인 침묵이 성공의 신호가 아니며, 체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더 많은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기 그룹은 남부 키르기스스탄의 폭력이 교육을 받지 못한 실직 청년과 부패한 정치인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현상이 아니라고 보고했다. 실제로는 교육받은 중산층 키르기스인들조차 우즈베크인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136]
독립 국제 조사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무기가 키르기스 군중에게 배포되고 장갑차가 저항 없이 항복한 후 우즈베키스탄 공동체 공격에 사용되었다고 밝혔지만,[124] 남부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이 보고서를 대체로 인정하지 않는다.[124]
7. 4. 우즈베크인에 대한 탄압
남부 키르기스스탄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피고인 대다수는 우즈베크인이었다.[129][130] 2012년 초, 2010년 6월 폭력과 관련된 범죄로 구금 및 기소된 사람들의 77%가 우즈베크인이었다.[124] 이는 우즈베크인들이 폭력을 시작했다는 키르기스스탄 정치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되었다.[124]언론인이자 인권 운동가인 아짐잔 아스카로프를 포함하여 수십 명의 저명한 우즈베크 종교 및 지역 사회 지도자들이 폭동 이후 보안군에 의해 체포되었다.[131] 여러 국제 인권 단체의 비판을 받은 재판에 이어 아스카로프는 대규모 소요, 민족적 증오 선동,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132] 다양한 인권 단체들은 그와 그의 공동 피고인에 대한 혐의가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보았으며, 국제앰네스티는 아스카로프를 양심수로 지정했다.[134]
국제위기그룹(ICG)은 2012년 3월 29일 보고서를 통해,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사이의 민족적 긴장이 2010년 6월 이후 남부 키르기스스탄에서 국가의 태만과 남부 지도자들의 반우즈베키스탄 정책으로 인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135]
위기 그룹은 남부 키르기스스탄의 폭력이 교육을 받지 못한 실직 청년과 부패한 정치인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했다. 실제로는 교육을 받은 중산층 키르기스인조차 우즈베크인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136]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을 위험한 외부인으로 비난하는 견해에 도전하는 분석을 접하기 어려웠다.[124] 남부 키르기스스탄의 교육받은 활동가와 전문가들은 우즈베크인들이 파멸을 자초했다고 믿고 있으며, 우즈베크인에 대한 차별과 굴욕이 오랫동안 참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키르기스인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자동 소총이 키르기스 군중에게 배포되었고 장갑차가 저항 없이 항복한 후 우즈베키스탄 공동체에 대한 공격에 사용되었는지를 문서화한 독립 국제 조사 위원회의 보고서를 기각했다.[124]
6월 사건 이후 우즈베크인들은 자의적 구금, 강탈, 고문을 당했다.[137] 유엔 고문 특별보고관 후안 멘데즈는 2011년 12월에 이와 관련한 보고서를 발표했다.[138]
7. 5. 멜리스 미르자크마토프의 부상
2010년 남키르기스스탄 민족분쟁 이후, 키르기스스탄 남부에는 새로운 지도부가 등장했다. 공개적으로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낸 오쉬 시장 멜리스 미르자크마토프는 바키예프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남부의 주요 정치인으로 부상했다.[139] 미르자크마토프와 다른 남부 민족주의자들은 아타-주르트 당을 결성했고, 이 당은 2010년 키르기스스탄 총선에서 120석 중 28석을 차지했다. 아타-주르트 당은 초기에는 새 헌법을 철회하고 바키예프를 벨라루스 망명에서 복귀시키려는 운동을 펼쳤다.미르자크마토프는 급진적인 민족주의 지도자로, 공공연하게 키르기스 민족 우선주의 정책을 지지했다.[140] 그는 수도인 비슈케크를 대체로 무시하는 행동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은 2011년 12월, 중립적인 북부 출신으로 여겨지는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141] 아탐바예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은 남부의 긴장에 대해 실망감을 표명했지만, 그곳 상황에 영향을 줄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124]
2011년 말, 미르자크마토프는 ''진실을 찾아서. 오쉬 비극: 문서, 사실, 호소, 선언''(러시아어: ''В поисках истины. Ошская трагедия: документы, факты, интервью, обращения и заявления'')이라는 책을 키르기스어와 러시아어로 출판하여[142] 6월 사건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제시했다. 이 책에서 그는 급진적인 반우즈베크적 접근 방식을 취하며, 우즈베크인들을 분리주의 집단으로 묘사하고, 비키르기스 민족은 그들의 미래 역할이 종속적인 위치에 있을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43] 그는 이 책에서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144]
2013년 12월 5일, 키르기스스탄 총리 잔토로 사티발디예프는 미르자크마토프를 오쉬 시장직에서 해임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해임에도 불구하고, 미르자크마토프는 2014년 1월 15일에 열린 새로운 시장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친대통령 후보인 아이트마마트 카디르바예프에게 패배했다. 미르자크마토프의 해임과 선거 패배는 그의 지지자들의 대규모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7. 6. 민족주의 정당 아타-주르트의 부상
미국, 우즈베키스탄, 러시아가 폭동의 우즈베크 측을 지원한 것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음모론을 부추겼다. 키르기스 민족주의 정당인 아타-주르트(Ata-Zhurt)는 민족 분쟁을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우즈베크인과 같은 소수 민족 사이에서 키르기스어와 문화를 존중하도록 장려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했다.[145]7. 7. 우즈베크어 탄압
민족 충돌 이후, 키르기스스탄 당국은 공공 생활에서 우즈베크어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146][147] 키르기스스탄 전역의 우즈베크 학교들은 키르기스어로 전환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148] 공공장소에서 우즈베크어로 된 모든 표지판은 제거되었고, 우즈베크 TV 및 라디오 채널은 폐쇄되었다.2010년 6월 폭력 사태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오쉬에 종이 세워졌다. 이 종에는 키르기스어, 러시아어, 영어로 평화를 촉구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지만, 키르기스족과 우즈벡족 사이에 폭력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크어는 포함되지 않았다.[149][150]
7. 8. 국제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파장
2010년 6월 남부 키르기스스탄 사건 진상 조사를 위해 키르기스스탄 정부 요청으로 독립 국제 조사 위원회(KIC)가 구성되었다. KIC는 북유럽 국가 주도로 결성되었으며, 로자 오툰바예바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승인을 받았다. 2011년 5월 초, KIC는 러시아어와 영어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약 750명 증인 인터뷰, 700개 문서, 약 5,000장 사진, 1,000개 비디오 추출물 등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위원회는 핀란드, 호주, 에스토니아, 프랑스, 러시아, 터키, 영국 출신 7명 저명한 인사들로 구성되었다.KIC는 심각한 국제법 위반 사례를 발견했으며, 일부는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6월 폭력 사태 전체가 전쟁 범죄나 대량학살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KIC 보고서는 오툰바예바 과도정부가 폭력 사태를 예방하고 중단시키는 데 "부적절하고 결단력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키르기스 군중에게 자동 소총 등 무기가 배포되었고, 장갑차가 저항 없이 항복하여 우즈베크인 공동체 공격에 사용되었다고 지적했다.[151][124]
KIC 조사 결과는 키르기스스탄 정부와 의회를 격분시켰다. 키르기스스탄 의회는 KIC 위원장인 키모 킬주넨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중앙아시아 특별대표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했다.[152]
7. 8. 1. 주요 내용
독립 국제 조사 위원회(KIC)는 2011년 5월 초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심각한 국제법 위반 사항을 발견했으며, 그 중 일부는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151] 보고서는 로자 오툰바예바가 이끄는 과도정부가 폭력을 예방하고 중지하는 데 있어 "부적절하고 결단력이 없다"고 비판했다.[151] KIC는 주로 자동 소총인 무기가 키르기스 군중에게 배포되었고 장갑차가 저항 없이 항복했으며 나중에 우즈베키스탄 공동체에 대한 공격에 사용되었다고 언급했다.[124]KIC는 6월 폭력이 전쟁범죄나 대량학살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오슈의 '마할라'에 대한 특정 공격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범죄에는 살인, 강간, 기타 형태의 성폭력, 신체적 폭력 및 특정 민족 집단에 대한 박해가 포함된다.[153]
KIC는 보안군이 적절하게 지시되고 배치되었다면 폭력이 예방되거나 중지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부 군대 구성원이 마할라에 대한 공격에 연루되었다고 지적하며, 키르기스스탄이 민족주의와 민족적 배타성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취할 것을 권고했다. 더불어 진실화해위원회의 설립과 국제적인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
7. 8. 2.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반발

독립 국제 조사 위원회(KIC)의 조사 결과는 키르기스스탄 정부와 의회를 격분시켰다. 키르기스스탄 의회 의원들은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위원회 위원장이자 중앙아시아 특별대표인 키모 킬주넨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선언했다.[152]
KIC는 2011년 5월 초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0년 6월 남부 키르기스스탄에서 발생한 민족 분쟁이 전쟁 범죄나 집단 학살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일부 행위는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153] 특히, 오슈에서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우즈베크인 거주 지역인 '마할라'에 대한 공격에서 발생한 살인, 강간, 성폭력, 신체적 폭력, 민족적 근거에 의한 박해 등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KIC는 보안군이 적절하게 지시받고 배치되었다면 폭력을 예방하거나 중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보안군 일부가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한, KIC는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민족주의와 민족적 배타주의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취할 것을 권고하고,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하여 보고서의 권고 사항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7. 8. 3. 보고서의 결론
KIC는 6월 폭력이 전쟁 범죄나 집단 학살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반인도적 범죄에는 해당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KIC는 보고서를 통해, 2010년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오슈의 '마할라'(마할라|우즈베크인 거주 지역uz)에 대한 특정 공격에서 발생한 살인, 강간, 기타 성폭력, 신체적 폭력, 그리고 특정 민족 집단에 대한 박해 행위가 법정에서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될 경우, 이는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80]KIC는 보안군이 적절히 지시받고 배치되었다면 폭력을 예방하거나 중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보안군 구성원들이 장비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점은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일부 군인들이 마할라 공격에 연루되었다고 밝혔다. KIC는 키르기스스탄이 민족주의와 민족적 배타주의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취할 것을 권고했다. 더불어,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하고 보고서의 권고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국제적인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80]
KIC의 조사 결과는 키르기스스탄 정부를 격분시켰고, 키르기스스탄 의회 의원들은 위원장인 키모 킬주넨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의회 의회의 중앙아시아 특별 대표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선언했다.[81][82]
8. 화해 노력
민족 분쟁 이후,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국제 연합(UN), 미국 국제 개발처(USAID)와 같은 여러 국제 기구와 비정부 기구(NGO)들이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피해 지역에서 화해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 OSCE는 커뮤니티 안보 구상(CSI) 프로젝트를 통해 키르기스스탄 경찰의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8. 1. 커뮤니티 보안 이니셔티브
2010년 11월,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는 커뮤니티 안보 구상(CSI) 프로젝트를 통해 키르기스스탄 경찰의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154][155] CSI의 주요 목표는 "경찰의 인권 존중 및 보호를 증진하고, 다민족 치안 유지를 포함하여 법 집행 기관과 지역 사회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었다.[154]CSI는 OSCE의 경찰 개혁 프로그램 및 국민 소수 민족 고등 판무관(HCNM)과 협력하여 활동했다. 이 프로젝트는 또한 옴부즈맨, 검찰총장, 국립 교도소 서비스, 내무부, 법무부, 보건부를 포함한 키르기스스탄의 다수의 국가 기관과 협력했다.[156] 이 프로젝트는 2015년 12월 11일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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