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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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626년은 당나라에서 현무문의 변이 일어나 당 태종이 즉위하고,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에 전쟁이 시작된 해이다. 동로마 제국은 아바르족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았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 방어에 성공했다. 또한, 롬바르드 왕국의 아리오알드가 왕이 되었으며, 노섬브리아의 에드윈은 웨섹스의 왕 키네길스를 격파했다. 이 해에는 신라 문무왕, 일본 덴지 천황 등이 태어났고, 이건성, 이원길, 소가노 우마코 등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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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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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기년 | |
단기 | 2959년 |
황기 | 1286년 |
간지 | 병술년(丙戌年), 개띠 |
중국 | 무덕 (武德) 9년 |
일본 | 간토쿠 (寛徳) 3년 |
기타 | 히즈라 5년 |
2. 연호
3. 기년
4. 사건
- 현무문의 변이 일어났다.
- 당나라에서 이세민이 태종으로 즉위하여 정관의 치가 시작되었다.
- 사산 제국이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발칸반도의 아바르족과 연합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으나 실패하고 대군을 잃었다.[1]
-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 백제가 신라를 침공했다.
- 이 해에 늦은 장마로 큰 기근이 발생했다.
4. 1. 동아시아
- 현무문의 변이 일어났다.
- 당나라에서 이세민이 태종으로 즉위했다.
- 7월 2일 - 이세민은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동돌궐 원정을 떠나는 동생 이원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이세민은 암살 음모를 듣고 지지자들과 함께 황궁 북쪽 입구를 장악, 현무문의 변에서 이원길과 이건성을 제거했다.[1]
- 9월 4일 - 고조는 8년간의 통치 끝에 아들 이세민에게 양위했다. 이세민은 태종이 되었다.[1]
4. 2. 서아시아 및 동로마 제국
사산조 페르시아가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전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발칸반도의 아바르족과 연합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으나 실패하고 대군을 잃었다.[1]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약 8만 명으로 구성된 아바르족 무리(대규모 슬라브족, 불가르족, 기타 "야만족"으로 구성)가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공격했다. 소규모 페르시아 군대가 보스포루스 해협의 아시아 쪽에 도착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트랙션 투석기 형태의 최신 공성전 장비로 공격받았다. 아바르족은 또한 이동식 장갑 쉘터(중세 '소')와 공성탑을 가지고 있었으며, 후자는 화재 방지를 위해 가죽으로 덮여 있었다.[1] 수도(12,000명의 훈련된 비잔틴 군대) 방어는 총대주교 세르기우스 1세와 보너스 (''마기스터 밀리툼'')의 손에 달려 있었다.
7월 31일 – 샤흐르바라즈 휘하의 아바르족과 페르시아 동맹군은 테오도시우스 성벽 전체(5.7km)에 걸쳐 공격을 시작했고, 주요 공격은 중앙 구간, 특히 낮은 지대의 '메소테이치온'에 집중되었다. 성벽에서 격렬한 보병 전투 끝에 비잔틴 군대는 도시로의 수많은 공격을 막아냈다.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동생 테오도르 휘하의 새로운 군대가 서부 아나톨리아에서 페르시아를 상대로 작전을 펼치도록 준비하는 한편, 그는 폰토스에 있는 자신의 군대로 돌아갔다.
8월 7일 – 골든 혼 해역에서 페르시아 함대가 증원군을 수송하다가 파괴되었다. 끔찍한 손실을 입은 아바르족은 식량과 보급품이 부족해지자 공성 엔진을 불태웠다. 그들은 포위를 포기하고 발칸 반도로 후퇴했다. 비잔틴인은 블라케르네에서 성모 마리아 교회의 보호 아래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비잔틴-페르시아 전쟁에서 헤라클리우스는 원정으로 군대가 3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어 폰토스에서 방어전을 펼치고 있다. 그는 분명히 트라페준트에 강력한 비잔틴 수비대를 남겨두고, 흑해를 따라 북동쪽으로 콜키스로 물러났으며, 그곳에서 파시스 강을 따라 공격적인 방어-공격 작전을 펼쳐 페르시아를 저지했다. 그는 샤힌 바흐만자데간 휘하의 페르시아 군대를 아나톨리아로 유인하여 테오도르에게 그들을 격파할 기회를 제공했다. 여름 말 무렵 그는 칼케돈(현대 터키)에서 페르시아의 통신을 위협했다.
헤라클리우스는 갈리시아, 실레시아, 보헤미아에 살고 있는 슬라브 부족인 크로아티아인에게 일리리쿰에 정착하도록 초대했다. 그들은 아바르족을 몰아낸 대가로 드라바 강과 아드리아 해 사이의 땅을 받았다. 세르비아인은 카르파티아 산맥 북쪽의 고향에서 크로아티아 동쪽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헤라클리우스는 교황 호노리우스 1세에게 두 집단 모두에게 선교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겨울 – 헤라클리우스는 이듬해 봄 페르시아 제국을 공동 침공하기 위해 서투르크 카간국의 통치자(''카간'')인 통 야브구 카간과 동맹을 맺었다. 그는 15세의 딸 에우독시아 에피파니아를 통 야브구에게 약속하고 놀라운 선물을 가지고 호위를 받아 보냈다.
여름 – 호스로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상대로 전면전을 계획했다. 그는 각각 50,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군대를 이끌고 아나톨리아로 돌아왔다. 이 중 하나(아마도 호스로 2세가 직접 지휘)는 헤라클리우스를 폰토스에서 묶어두려 했고, 다른 하나는 샤힌 바흐만자데간이 지휘했는데 테오도르에게 패배했다.
4. 3. 유럽
- 사산조 페르시아가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전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발칸반도의 아바르족과 연합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으나 실패하고 대군을 잃었다.[1]
- 아리오알드가 매형인 아달로알드의 뒤를 이어 롬바르드 왕이 되었지만, 이후 정신 이상을 보였다.[1] 아리오알드는 자신의 아내를 수도원에 가두고, 아내와 프리울리의 공작 가르술프 2세 (이탈리아 북부)가 자신을 상대로 음모를 꾸몄다고 비난했다.[1]
- 노섬브리아의 왕 에드윈은 웨섹스의 왕 키네길스를 격파했다.[1] 키네길스는 에드윈을 암살하여 에드윈의 세력 확장을 막으려 했다.[1] 에드윈은 키네길스에게 노섬브리아의 지배권을 인정하도록 강요했다.[1]
- 4월 19일 - 에안플레드는 노섬브리아의 에드윈의 딸로, 데르웬트 강 근처 왕궁에서 태어났다.[1] 그녀는 요크 교구의 주교인 요크의 파울리누스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1]
- 노섬브리아의 에드윈은 맨 섬과 앵글시를 침략했다.[1] 왕 카드왈론 압 카드판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퍼핀 섬에 포위되었다.[1]
- 에든버러 (스코틀랜드)는 노섬브리아의 에드윈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1]
5. 탄생
6. 사망
참조
[1]
서적
The Walls of Constantinople AD 324–1453
2004
[2]
간행물
Anglo-Saxon Chronicle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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