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기는 고대부터 사용된 공성 무기로, 돌이나 기타 물체를 멀리 던져 성벽이나 요새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다. 기원전 5세기 고대 중국에서 망고넬의 일종이 사용되었으며, 이후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다양한 형태의 투석기가 개발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발리스타, 스프링갈드, 망고넬, 오나거, 트레뷰셋 등이 널리 사용되었으며, 성을 함락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근대에 들어 화약 무기의 발달로 군사적 사용은 줄었지만, 클레이 사격, 항공기 사출기, 호박 멀리 던지기 대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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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석기 - 트레뷰셋 트레뷰셋은 지레 원리를 이용해 발사체를 던지는 중세 공성 무기로, 빔 한쪽 끝의 슬링에 발사체를 넣고 반대쪽에 추나 인력을 가해 발사하며, 견인식과 평형추식으로 나뉘어 성벽 파괴 등에 사용되었고 현대에는 오락, 교육용으로도 활용된다.
투석기 - 오나거 오나거는 야생 당나귀를 뜻하며,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사용된 공성 무기로, 돌을 던지는 기계의 발길질 동작에서 유래되었고, 수평 틀에 수직 틀을 고정하여 밧줄이나 스프링의 장력으로 투사체를 발사하는 방식이다.
The art of the catapult: build Greek ballista, Roman onagers, English trebuchets, and more ancient artillery (윌리엄 거스텔 저)
2. 역사
고대 중국에서는 늦어도 기원전 5세기 초부터 투석기가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유럽에서는 기원전 4세기 초 시칠리아에서 발리스타와 유사한 형태가 개발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역시 동방 원정에서 투석기를 활용하였고, 구약 성서에도 투석기로 보이는 무기에 대한 언급이 있다.
중세 시대에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중심으로 투석기가 개량되어 오나거나 트레뷰셋 등으로 발전했으며, 주요 공성 무기로 활약했다. 대형 화포가 등장한 이후에도 초기에는 안전성과 위력 문제로 투석기가 병용되기도 했다.
시대가 흐르고 화포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투석기는 점차 주력 병기의 자리에서 밀려났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전에서는 수류탄 투척용으로 잠시 사용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일본에서는 대전차 공격을 목적으로 폭약을 투사하는 카타펄트를 제작하기도 했으나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2. 1. 고대
최초의 투석기는 고대 문명에서 공성 무기로 등장했으며, 그 기원은 적어도 기원전 19세기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누비아 지역의 부헨 요새 유적에서는 공성 무기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플랫폼이 발견되었다.[30] 이후 기원전 750년경에는 유다 왕국의 웃시야 왕이 예루살렘 성벽에 "큰 돌을 쏘는" 기계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구약 성서에 남아 있다.[31]인도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 마가다의 아자타샤트루 왕이 리차비족과의 전쟁에서 투석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자이나교 경전에 전해진다.[4]
고대 중국에서는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사이에 망고넬(견인식 투석기)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기원전 4세기묵가 학파가 이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묵자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묵경''에는 망고넬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자세한 내용은 #고대 중국 참조)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4세기 초에 기계식 화살 발사 투석기(카타펠테스)가 발명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에 의해 확인된다. 그리스의 투석기 기술은 이후 비틀림 스프링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 이르러 공성전뿐만 아니라 야전에서도 활용되었다. 고대 로마 역시 그리스의 기술을 받아들여 발리스타와 같은 투석기를 개발하고 전쟁에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참조)
시라쿠사, 마케도니아, 스파르타, 아이톨리아 등과의 전쟁에서 투석기 사용 시작. 아르쿠발리스타, 발리스타 등 개발 및 활용.[27][28][29]
2. 1. 1. 고대 중국
고대 중국에서는 늦어도 기원전 5세기 초부터 투석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500년에서 300년 사이에 만궁(牽引式投石機)의 사용이 기록되어 있으며,[32][4][33] 특히 기원전 4세기 초 묵가 학파가 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묵자가 쓴 것으로 알려진 ''묵경''(기원전 4세기 편찬)에는 만궁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4][4] ''묵경'' 제14장에는 만궁이 불타는 숯을 채운 속이 빈 통나무를 적에게 던지는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만궁은 이후 판노니아 아바르족을 통해 서쪽으로 전파되었고, 서기 6세기 말 동부 지중해 지역에 처음 등장하여, 더 단순한 설계와 빠른 발사 속도로 인해 발리스타나 오나거와 같은 비틀림 방식의 공성 무기를 대체했다.[4] 비잔틴 제국은 아마도 587년경에, 페르시아는 7세기 초에, 아랍은 7세기 후반에 만궁을 채택했으며, 프랑크족과 색슨족은 8세기에 이 무기를 채택했다.[4]
고대 중국에서는 투석기를 가리켜 '포(礮)'라는 한자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화약을 이용해 발사하는 무기가 등장하면서 이를 '화포(火砲)' 또는 '대포(大砲)'라고 불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들이 줄어들어 '포(砲)' 한 글자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고대 중국 문헌에서 '포(礮/砲)'라는 글자가 나올 경우, 이것이 투석기를 의미하는지 화약을 사용하는 포를 의미하는지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2. 1. 2.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대 기계식 대포: 투석기(서 있는 모습), 폴리볼로스의 체인 드라이브(아래 중앙), 가스트라페테스(벽에 걸린 모습)
로마의 투석기 설계를 보여주는 판화, 1581년
트라야누스 다키아 전쟁에서 로마의 "투석기 둥지"
고대 그리스의 투석기와 쇠뇌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초기 투석기는 본질적으로 "미사일의 사거리와 관통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하는 활을 강화하려는 비교적 간단한 시도의 산물"이었다.[4]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기원전 1세기 활동)는 기계식 화살 발사 투석기(καταπέλτης|카타펠테스grc, ''카타펠티콘'')가 기원전 399년 그리스 공병대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기록하였다.[4][4] 이 무기는 곧 시칠리아에 있는 카르타고의 주요 거점인 모티아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다(기원전 397년).[13][14] 디오도로스는 당시 사건의 동시대인이었던 필리스토스의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내용을 서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쇠뇌의 등장은 이보다 더 이를 수 있다. 발명가 알렉산드리아의 헤론(기원후 1세기 활동)은 기원전 3세기 기술자 크테시비오스의 (현재는 소실된) 저작을 인용하며, 투석기가 가스트라페테스(gastraphetes, '배 활')라는 발로 지탱하고 쏘는 초기 형태의 쇠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했다.[15] 이 가스트라페테스는 일반적인 그리스 활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었다. 가스트라페테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그림은 헤론의 기술 논문인 ''벨로포에이카''(Belopoeica)에서 찾아볼 수 있다.[16][17]
기원전 2세기경 활동한 그리스 작가 비톤은 두 종류의 발전된 가스트라페테스를 설명했는데, 이는 남부 이탈리아 출신의 기술자 타렌토의 조피로스의 공으로 여겼다.[4] 조피로스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인물 조피로스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18] 그는 기원전 421년에서 401년 사이 쿠마이와 밀레토스 포위 공격 즈음에 이 활 기계를 설계한 것으로 추정된다.[20][21] 이 기계의 활은 이미 윈치를 이용해 시위를 당기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며, 한 번에 두 발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4]
비잔티움의 필로는 기원전 200년경 벨로포이에틱스(Belopoietica, ''belos''="발사체", ''poietike''="만드는 기술") 이론의 정립에 대해 가장 자세한 설명을 남겼다. 이 이론의 핵심 원리는 "발사체의 무게나 길이를 포함하여 투석기의 모든 부분이 비틀림 스프링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의 발전은 당시 기하학과 물리학이 군사 기술 개발에 점점 더 빠르게 적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4]
기원전 4세기 중반부터 그리스에서 화살 발사 기계(katapaltai)의 사용 증거는 더욱 풍부해진다. 아이네아스 타크티쿠스는 기원전 350년경 저술한 공성술 논문에서 이 기계를 간략히 언급했다.[4] 기원전 338년에서 326년 사이에 작성된 아테네 무기고의 현존하는 비문에는 다양한 크기의 발사 볼트와 힘줄 스프링을 갖춘 여러 투석기가 목록으로 기록되어 있다.[22] 특히 힘줄 스프링 기록은 중요한데, 이는 기존의 유연한 쇠뇌보다 더 강력한 힘을 내는 비틀림 투석기(torsion catapult)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최초의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후 비틀림 방식은 그리스와 로마 포병 설계의 표준이 되었다.[23] 이러한 비틀림 스프링으로의 전환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 휘하 기술자들에 의해 촉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4] 기원전 330년에서 329년 사이의 또 다른 아테네 재고 목록에는 머리와 날개가 달린 투석기용 볼트가 포함되어 있다.[1]
투석기의 사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운용 훈련의 중요성도 커졌다. 많은 그리스 어린이들이 투석기 사용법을 배웠는데, 키클라데스 제도의 케오스 섬에서 발견된 기원전 3세기 비문에는 젊은이들을 위한 투석기 사격 대회를 규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4] 필리포스 2세는 기원전 340년 트라키아의 페린토스를 포위 공격할 때 화살 발사기를 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24] 같은 시기, 그리스의 요새에는 아이고스테나의 사례처럼 대인용 화살 사수를 배치하기 위한 높은 탑과 셔터 달린 창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25] 발사체로는 화살뿐 아니라 (나중에는) 돌도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불을 붙여 발사하기도 했다. 포키스의 오노마르쿠스는 필리포스 2세를 상대로 처음 전장에서 투석기를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필리포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역사상 처음으로 포위 공격뿐만 아니라 야전에서도 투석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지휘관이었다.[26]
로마인들은 시라쿠사, 마케도니아, 스파르타, 아이톨리아 등과의 전쟁(기원전 3~2세기)에서 투석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다. 아르쿠발리스타(arcuballista)로 알려진 로마의 기계는 대형 쇠뇌와 유사한 형태였다.[27][28][29] 이후 로마인들은 발리스타(ballista) 투석기를 개발하여 군함에도 탑재하였다.
'캐터펄트(catapult)'라는 단어는 라틴어 'catapulta'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다시 그리스어 καταπέλτης|카타펠테스grc[8]에서 유래했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아래로'라는 뜻의 κατά(''kata'')[9]와 '던지다, 내던지다'라는 뜻의 πάλλω(''pallō'')[10][11]가 결합된 단어이다. 투석기는 고대 그리스인에 의해 발명되었다.[12]
2. 2. 중세
중세 시대에도 투석기는 대포가 등장하기 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공성 무기로 사용되며 발전했다. 이 시기에는 성이나 성벽 도시가 많았기 때문에, 투석기는 주로 이러한 견고한 방어 시설을 공격하는 데 활용되었다.[35] 투석기는 성벽을 직접 파괴하는 것 외에도, 소이탄이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오염된 물질(질병에 걸린 사체, 쓰레기 등)을 성 안으로 던져 넣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방어 기술 역시 발전하면서 투석기의 효과가 항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885년에서 886년 사이 벌어진 파리 바이킹 공방전에서는 양측 모두 다양한 종류의 투석기를 포함한 여러 공성 기술을 동원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로 끝난 사례도 있다.[34]
중세 시대 동안 투석기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개량되고 발전했다. 그러나 이후 화포 기술이 발전하면서 투석기는 점차 주력 무기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2. 2. 1. 중세 유럽
Petraria Arcatinus의 복제품
이탈리아 메르카토 산 세베리노의 Petraria Arcatinus 투석기
투석기 1 메르카토 산 세베리노
중세 유럽에서는 대포가 널리 사용되기 전까지 투석기가 전장에서 중요한 무기로 활용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성과 요새화된 성벽 도시가 많았기 때문에, 투석기는 이러한 방어 시설을 공격하는 주요 공성 무기로 발전했다. 투석기는 단순히 성벽을 무너뜨리는 용도 외에도, 소이탄이나 질병에 걸린 동물의 사체, 또는 각종 오물을 성벽 너머로 던져 넣어 방어군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기를 꺾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성을 방어하는 기술도 함께 발전했고, 이에 따라 투석기의 효율성은 점차 떨어졌다. 예를 들어 885년에서 886년 사이에 벌어진 파리 바이킹 공방전에서는 양측 모두 다양한 종류의 투석기를 포함하여 당시 알려진 거의 모든 공성 기술을 동원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공방전이 실패로 끝난 사례가 있다.[34]
중세 시대에 가장 널리 사용된 투석기는 다음과 같다.[35]
발리스타: 거대한 석궁과 유사한 형태로, 줄의 비틀림 힘을 이용하여 작동했다. 나무로 만들고 끝에 쇠를 덧댄 큰 화살이나 창(다트)을 투사체로 사용했으며, 비교적 평탄한 궤도로 발사되었다. 발리스타는 정확도가 높았지만, 망고넬이나 트레뷰셋에 비해 파괴력은 부족했다. 크기가 크고 이동이 어려워 주로 공성전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제작되었다.[4]
스프링갈드: 발리스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비틀림 대신 장력을 이용하여 작동하는 석궁 형태의 투석기다. 발리스타보다 크기가 작아 성이나 탑 내부와 같은 좁은 공간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으나, 그만큼 위력은 약했다.[4]
망고넬: 긴 팔 끝에 달린 바구니나 그릇 모양의 통에 무거운 투사체를 담아 던지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주로 요새, 성, 도시 등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최대 사거리는 약 약 396.24m에 달했다. 돌뿐만 아니라 배설물, 썩어가는 시체 등 다양한 것을 투사체로 활용했다. 비교적 제작이 쉬웠고, 나중에는 바퀴를 달아 이동성을 높이기도 했다.[4]
오나거: 망고넬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초기 오나거는 가죽 끈으로 투사체를 던졌으나, 이후 망고넬처럼 그릇 모양의 통을 사용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오나거'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오나그로스'(onagros), 즉 '야생 당나귀'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투석기가 발사될 때 마치 당나귀가 뒷발질하는 듯한 격렬한 움직임과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4] 오나거에 대한 역사 기록은 많지 않으며, 4세기 로마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Ammianus Marcellinus)가 남긴 기록이 비교적 상세한 편이다.[36]
트레뷰셋: 13세기 중동 도시를 포위하는 몽골군 중세 시대에 사용된 투석기 중 가장 강력한 무기로 평가받는다. 주로 큰 돌을 투사체로 사용했지만, 필요에 따라 날카로운 나무 기둥이나 다트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불을 붙인 투사체나 치명적인 그리스 화염을 발사할 때 매우 효과적이었다. 트레뷰셋은 사람이 줄을 당겨 발사하는 인력식(견인식)과, 팔의 짧은 쪽에 무거운 평형추를 달아 그 무게로 발사하는 평형추식(카운터포이즈식)의 두 가지 주요 형태가 있었다.[4] 트레뷰셋이 사용된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1304년 스털링 성 공방전이다. 당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워울프(Warwolf)'라는 거대한 트레뷰셋을 제작하여 성벽 일부를 무너뜨리고 공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4]
쿠야르: 트레뷰셋을 간소화한 형태로, 하나의 큰 평형추 대신 여러 개의 작은 추를 중앙 지지대 양쪽에 매달아 사용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투석기: 르네상스 시대의 발명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기존 투석기의 효율성과 사거리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디자인을 고안했다. 그의 설계는 커다란 나무 판 스프링을 일종의 축전기처럼 활용하여 동력을 얻는 방식이었다. 활과 화살처럼 판 스프링 양 끝을 밧줄로 연결하고, 이 밧줄을 드럼에 감아 투석기 팔을 뒤로 당겼다. 충분한 에너지가 저장되면 드럼을 풀어 팔이 빠르게 튕겨나가도록 설계했다. 레오나르도가 생전에 이 투석기를 실제로 제작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현대에 와서 그의 설계를 바탕으로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 2. 2. 중세 아시아
중세 시대에도 투석기는 대포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주요 무기로 널리 사용되며 발전했다. 특히 성과 요새화된 도시가 많았던 이 시기에는 성벽을 파괴하기 위한 공성무기로 주로 사용되었다.
인도에서는 기원전 484년에서 기원전 468년 사이, 아자타샤트루 왕이 자이나교 경전에 따르면 리차비족과의 전쟁에서 투석기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4]
고대 중국에서는 늦어도 기원전 5세기 초부터 투석기의 일종인 만궁이 사용된 기록이 있다.[32][4][33]기원전 4세기 초 묵가 학파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관련 설명은 묵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4] ''묵경'' 제14장에는 만궁이 불타는 숯으로 채워진 속이 빈 통나무를 적에게 던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만궁은 판노니아 아바르족에 의해 서쪽으로 전파되어, 서기 6세기 말 동부 지중해 지역에 처음 등장했다. 만궁은 기존의 발리스타나 오나거 같은 비틀림 방식 투석기보다 설계가 간단하고 발사 속도가 빨라 점차 이를 대체하게 되었다.[4] 비잔틴 제국은 587년경, 페르시아는 7세기 초, 아랍은 7세기 후반에 만궁을 도입했으며, 프랑크족과 색슨족도 8세기에 이 무기를 채택했다.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에서는 중세 시대에 투석기에 대한 개량이 이루어져 오나거나 트레뷰셋과 같은 형태로 발전했다. 이후 대형 화포가 등장했지만, 초기 화포의 안전성과 위력 문제로 인해 투석기도 한동안 함께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율령 시대에 투석기를 "포석(抛石, ほうせき)"이라 부르며 운용 및 훈련을 했다. 주로 적의 방패나 시설물의 벽, 지붕을 파괴하거나 배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다. 응인의 난(1467년~1477년) 당시에는 "발석목(発石木)" 또는 "비포(飛砲)"라 불리는 투석기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운천태극의 『벽산일록』에 남아 있다.
고대 중국 문헌에서는 투석기를 나타내는 글자로 '포(礮)' 또는 '포(砲)'를 사용했는데, 이후 화약을 이용해 발사하는 무기를 화포(火砲) 또는 대포(大砲) 등으로 부르다가 점차 '포(砲)' 한 글자로 줄여 쓰게 되었다. 따라서 고대 중국 문헌을 해석할 때는 '포'가 투석기를 의미하는지 화포를 의미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3. 근대 이후
화포가 발달하면서 투석기는 점차 주력 무기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나 특정 상황에서는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1840년대 가황 처리된 천연 고무가 발명되면서, Y자형 막대를 이용한 작은 휴대용 투석기, 즉 새총이 만들어져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군사적으로 투석기가 마지막으로 대규모로 사용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전에서였다. 전쟁 초기에는 무인지대를 넘어 적의 참호에 수류탄을 던지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소형 박격포로 대체되었다. 한편, 소련에서는 스프링을 이용해 수류탄을 최대 100m까지 발사하는 대전차 무기 SPBG(병 및 수류탄의 무음 발사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일본에서는 오야마시이가 대전차전을 위해 폭약을 투사하는 카타펄트를 제작하기도 했으나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투석기가 마지막으로 대규모 군사 작전에 사용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전에서였다. 전쟁 초기, 투석기는 수류탄이나 폭발물을 무인지대 너머 적의 참호로 던지는 데 활용되었으나, 점차 소형 박격포로 대체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일본에서는 오야마시이가 대전차전을 위해 폭약을 투사하는 카타펄트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한편 소련에서는 스프링 장치를 이용해 수류탄을 최대 100m까지 발사하는 대전차 무기 SPBG(병 및 수류탄의 무음 발사기)를 제안하기도 했다.[37] 선박에서도 어뢰를 발사하거나 잠수함에 대한 폭탄을 투하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는 항공모함과 같이 활주로가 짧거나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항공기를 이륙시키는 항공기 사출기로 특수하게 변형되어 사용된다.[38] 또한, 2024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에는 IDF 예비군 부대원이 개인이 제작한 트레뷰셋을 이용하여 레바논 국경 너머의 헤즈볼라 전투원 은신처로 추정되는 수풀에 불쏘시개를 던져 불을 지르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39]
민간 영역에서도 투석기는 다양한 형태로 응용되고 있다. 1840년대 가황 처리된 천연 고무의 발명 이후, Y자형 막대를 이용한 작은 휴대용 투석기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미국에서 새총으로 알려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클레이 사격 스포츠에서는 "트랩"이라고 불리는 소형 투석기가 클레이 과녁을 공중으로 쏘아 올리는 데 널리 사용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이 강력한 투석기(트레뷰셋)를 이용해 공중으로 날아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개인 사유지나 영국 서머셋의 미들무어 워터파크(2001-2002년) 등에서 약 약 30.48m 거리를 공중으로 날아가는 놀이 기구로 사용되었으나, 워터파크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중단되었다. 개인 사유지에서도 안전망 착지 실패로 인한 부상 및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40] 관련 운영자들은 재판에서 과실치사 혐의는 벗었지만, 배심원단은 더 엄격한 안전 조치가 있었다면 사망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41][42] 인간 대포 서커스 공연 역시 화약 대신 투석기의 발사 원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공연자에게 매우 위험한 도전이다.[43]
초기의 발사형 롤러코스터(예: 1977-1978년 설치된 셔틀 루프) 중 일부는 디젤 엔진이나 낙하추를 이용한 투석기 시스템으로 추진력을 얻었다.[44] 이러한 방식은 이후 플라이휠이나 리니어 모터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호박 멀리 던지기''(Pumpkin Chunking)는 기계 장치를 이용해 호박을 가장 멀리 던지는 것을 겨루는 대회로, 투석기가 사용되는 또 다른 대중적인 예시이다(세계 기록은 공압식 에어 캐논이 보유).
드물게는 범죄에 악용되기도 하는데, 2011년 1월 멕시코에서는 국경 울타리 너머 미국으로 대마초를 밀수하기 위해 제작된 수제 투석기가 발견되었다. 이 투석기는 국경 울타리에서 약 약 6.10m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약 약 2.00kg 무게의 대마초 묶음을 발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45]
인력식 투석기: 사람의 힘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고대 중국의 포나 소형 트레뷰셋이 이에 해당하며 가장 초기의 투석기 형태이다.
탄성식 투석기: 동물의 힘줄 등에서 발생하는 탄성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오나거와 망고넬이 대표적이다. 이동이 가능하여 공성전에 사용되었다.
추식 투석기: 추(무게추)의 위치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트레뷰셋이 대표적인 예이다. 강력한 파괴력과 긴 사거리를 가졌으나 크기가 매우 커 이동이 어려웠다.
노포/쇠뇌형 투석기: 대형 쇠뇌와 유사한 원리로 작동하며, 발리스타가 여기에 해당한다. 주로 화살이나 금속 탄환을 발사했지만, 돌을 발사하기도 하여 투석기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비교적 정확한 조준이 가능했다.
3. 1. 인력식 투석기
고대 중국의 포나 소형 트레뷰셋 등이 인력식 투석기의 예이다. 이는 기록상 등장하는 최초의 투석기 방식이다. 작동 원리는 지렛대의 한쪽 끝에 던질 돌을 놓고, 다른 쪽 끝에 연결된 여러 개의 밧줄을 사람들이 동시에 잡아당겨 그 힘으로 돌을 날려 보내는 방식이었다.
3. 2. 탄성식 투석기
동물의 힘줄 등에서 발생하는 탄성을 이용하여 돌을 던지는 방식의 투석기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오나거와 망고넬이 있다. 이 둘은 구조가 거의 같지만, 오나거는 고대 로마 시대의 무기이고 망고넬은 그 이후 중세 시대에 등장한 무기라는 시대적 차이가 있다. 탄성식 투석기는 이동이 가능하여 공성전 시 포위 공격에 주로 사용되었다. 발사된 돌은 곡사(포물선) 궤적을 그리는 것이 특징이며, 이러한 궤적 때문에 현대의 박격포와 유사한 계통으로 보기도 한다.
3. 3. 추식 투석기 (트레뷰셋)
트레뷰셋(Trebuchet)은 추(무게추)의 위치 에너지를 이용하여 돌과 같은 투사체를 멀리 던지는 공성 무기이다. 중세 시대에 사용된 투석기 중 가장 강력한 투석기로 여겨진다.[4]
트레뷰셋은 작동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여러 사람이 줄을 당겨 작동시키는 인력식(견인식) 트레뷰셋이고, 다른 하나는 팔의 짧은 쪽에 무거운 균형추(카운터포이즈, Counterpoise)를 달아 그 무게로 긴 팔을 휘두르는 무게추식 트레뷰셋이다.[4] 무게추식 트레뷰셋은 인력식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었다. 쿠야르(Couillard)는 트레뷰셋의 단일 추를 두 개로 나누어 중심 기둥 양쪽에 매단 형태의 간소화된 트레뷰셋이다.
트레뷰셋의 주요 탄약은 돌이었지만, 필요에 따라 다트나 끝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 기둥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4] 특히 불을 붙인 탄환이나 강력한 소이 무기였던 그리스 화염은 매우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었다.[4]
트레뷰셋은 매우 크고 무거워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고정식 무기였지만, 긴 사거리와 강력한 파괴력을 가졌다. 투사체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곡사 탄도의 특징을 보였다.
트레뷰셋 사용에 대한 가장 유명한 역사적 사례 중 하나는 1304년 스코틀랜드의 스털링 성 공성전이다. 당시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1세는 워울프(Warwolf)라는 이름의 거대한 트레뷰셋을 제작하여 성벽 일부를 무너뜨렸고, 이는 공성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4]
3. 4. 노포, 쇠뇌형 투석기 (발리스타)
그리스의 투석기와 쇠뇌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시적인 투석기는 본질적으로 "미사일의 사거리와 관통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하는 활을 강화하려는 비교적 간단한 시도의 산물"이었다.[4]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기원전 399년, 그리스 공병대가 기계식 화살 발사 투석기인 καταπελτικόν|카타펠티콘grc(''katapeltikon'')을 발명했다고 기록했다.[4][4] 이 무기는 기원전 397년 모티아 공략에 사용되었는데, 모티아는 시칠리아에 위치한 중요한 카르타고의 요새였다.[13][14] 디오도로스는 이 사건을 목격한 역사가 필리스토스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 내용을 서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쇠뇌의 등장은 이보다 더 이를 수 있다. 발명가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은 기원전 3세기 기술자 크테시비오스의 기록을 인용하며, 그리스 활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쇠뇌인 γαστραφέτης|가스트라페테스grc(''gastraphetes'', '배 활')에서 투석기가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15] γαστραφέτης|가스트라페테스grc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그림은 헤론의 기술 논문인 ''Βελοποιικά|벨로포이카grc''(''Belopoeica'')에서 찾아볼 수 있다.[16][17]
기원전 2세기경의 작가 비톤은 남부 이탈리아 출신 기술자 타렌토의 조피로스가 제작한 두 가지 진보된 형태의 γαστραφέτης|가스트라페테스grc를 묘사했다. 조피로스는 기원전 5세기 말에 활동했던 피타고라스 학파 인물로 추정되며,[18][19] 기원전 421년과 401년 사이 쿠마이와 밀레투스 포위 공격을 겪으며 이 기계를 설계했을 가능성이 있다.[20][21] 이 기계들은 이미 윈치로 활시위를 당기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한 번에 두 발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4]
비잔티움의 필로는 기원전 200년경 벨로포에틱스(''Belopoietica'', 발사체 제작 기술) 이론의 정립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이론의 핵심 원리는 "발사체의 무게나 길이 등 투석기의 모든 부분은 비틀림 스프링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혁신은 기하학과 물리학이 군사적 사업에 점점 더 빠르게 통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4]
기원전 4세기 중반부터 그리스가 화살 발사 기계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더욱 밀집되고 다양해진다. 화살 발사 기계(καταπάλται|카타팔타이grc, ''katapaltai'')는 약 기원전 350년에 쓰여진 공성술에 관한 아이네아스 타크티쿠스의 논문에서 간략하게 언급된다.[4] 기원전 338년에서 326년 사이에 제작된 아테네 무기고의 현존하는 비문에는 크기가 다양한 사격 볼트와 힘줄 스프링이 있는 여러 개의 투석기가 나열되어 있다.[22] 이 후의 기록은 특히 주목할 만한데, 이는 유연성이 더 뛰어난 쇠뇌보다 더 강력하고 그 이후 그리스 및 로마 포병 설계의 주류가 된 비틀림 투석기로의 전환에 대한 최초의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이다.[23] 이러한 비틀림 스프링으로의 전환은 아마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의 기술자들에 의해 촉진되었을 것이다.[4] 기원전 330년에서 329년까지의 또 다른 아테네 재고 목록에는 머리와 날개가 있는 투석기 볼트가 포함되어 있다.[1] 투석기의 사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투석기를 작동하는 데 필요한 훈련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그리스 어린이들이 투석기 사용법을 배웠는데, 이는 "키클라데스 제도에 있는 케오스 섬에서 기원전 3세기의 비문이 젊은이들을 위한 투석기 사격 대회를 규제"하는 것으로 입증된다.[4] 화살 발사 기계가 사용된 사례는 필리포스 2세가 기원전 340년에 트라케의 페린토스를 포위했을 때 보고되었다.[24] 동시에 그리스 요새는 상단에 셔터가 달린 높은 탑을 갖추기 시작했는데, 이는 아이고스테나와 같이 대인용 화살 사수들을 수용하는 데 사용되었을 수 있다.[25] 발사체에는 화살과 (나중에는) 돌이 포함되었으며, 때때로 불을 붙인 돌을 사용하기도 했다. 포키스의 오노마르쿠스는 처음으로 필리포스 2세를 상대로 전장에서 투석기를 사용했다. 필리포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록상 전장에서 투석기를 사용하고 포위 공격 중에 투석기를 사용한 다음 지휘관이었다.[26]
로마인들은 시라쿠사, 마케도니아, 스파르타, 아이톨리아 (기원전 3세기와 2세기)와의 전쟁을 위해 투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arcuballista|아르큐발리스타lat로 알려진 로마 기계는 대형 쇠뇌와 유사했다.[27][28][29] 나중에 로마인들은 발리스타 투석기를 군함에 사용했다.
노포, 즉 대형 쇠뇌(가로로 눕힌 활) 형태의 투석기로는 발리스타가 있다. 발리스타는 화살이나 금속 탄환을 발사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투석기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둥근 돌을 발사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투석기로 취급되기도 한다. 발리스타는 단거리 사격에 강점을 보였고, 조준하기 쉬워 성문이나 방어 병기의 파괴에 사용되었다. 직선 탄도가 특징이며, 군함에 탑재하는 등 후대의 역사에 등장하는 대포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4. 용도
투석기는 오래전부터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전쟁 시 적의 성이나 요새를 함락시키기 위한 공성무기로 활용되었는데, 무거운 돌을 날려 성벽 위쪽을 파괴하거나 돌이나 자갈을 채운 자루를 날려 성문을 공격했다. 단순히 물리적인 파괴뿐만 아니라, 폭발물이나 불붙인 짚, 화약 등을 성 안으로 투척하여 화재를 유발하기도 했다. 또한, 병든 시체나 오물, 쓰레기 등을 성벽 너머로 던져 넣어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역병을 퍼뜨리는 심리전 및 생화학전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투사되는 돌은 착탄 후에도 튕겨나가 더 넓은 범위에 피해를 줄 수 있도록 둥글게 가공되기도 했다.
방어 측의 공격으로부터 투석기를 보호하기 위해 장갑을 덧대거나, 공성탑 위에 설치하여 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공성전 외에도 야전에서 적의 밀집 대형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중세 이후 화기가 등장하면서 군사적 용도로는 점차 사라졌으나, 평시에는 투사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행사에서 꽃을 날리는 데 쓰이기도 했다. 현대에는 주로 과학 실험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5. 기타
투석기는 기계(탄성체, 지렛대, 원심력 등)의 힘을 이용하여 물체를 멀리 던지기 위한 도구이다. 무게추식 투석기와 인력식 투석기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오나거(Onager)나 균형추를 이용한 방식 등이 있다.
오래전부터 주로 군사용 공성무기로 사용되었으며, 공성전에서 적의 성벽이나 성문을 파괴하는 데 쓰였다. 투사체로는 돌덩이뿐만 아니라 폭발물, 병든 시체나 쓰레기 등을 성벽 너머로 날려 보내기도 했다. 이는 적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거나, 역병을 유발하고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중세 이후 화기가 발달하면서 점차 군사적 중요성을 잃고 사라지게 되었다.
엔터테인먼트 및 스포츠: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투석기를 레저 활동에 이용하기도 했다. 영국 서머셋의 한 워터파크에서는 30m 높이의 인간 투석기가 운영되었으나, 사망 사고 발생 후 중단되었다. 사유지에서 투석기를 사용하다 안전망 착지에 실패하여 사망하거나 부상하는 사고도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조작자들이 재판을 받았으나 과실치사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더 엄격한 안전 조치가 있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서커스의 인간 포탄 공연 중 일부는 화약 대신 투석기 원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호박 청킹(Pumpkin Chunking)'이라는 대회에서는 기계 장치를 이용해 호박을 가장 멀리 던지는 것을 겨룬다.
롤러코스터: 초기의 일부 롤러코스터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디젤 엔진이나 무게추 낙하 방식의 투석기 시스템을 사용했으나, 이후 플라이휠이나 선형 모터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범죄: 2011년 1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대마초를 밀반입하는 데 사용된 수제 투석기가 국경 근처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투석기에는 발사 준비가 된 2kg의 대마초 묶음이 놓여 있었다.
군사 및 기타: 항공모함 캐터펄트는 항공모함이나 지상 기지에서 항공기를 짧은 거리에서 이륙시키는 데 사용된다. 또한 투석기의 원리를 응용하여 어뢰를 발사하거나 잠수함 공격용 폭탄을 투하하는 경우도 있다. 클레이 사격 스포츠에서는 '트랩(trap)'이라 불리는 작은 투석기를 이용해 점토 표적을 공중으로 쏘아 올린다.
투석기의 기본적인 구조는 나무, 짐승의 털, 힘줄, 식물성 밧줄 등의 탄성과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다. 때로는 큰 활을 장착하거나 금속 스프링을 사용하여 위력을 높인 개량형도 있었다. 주로 공병이나 군속이 운용했으며, 전장으로 운반하기보다는 현지에서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제작이 용이하도록 비교적 간단한 구조가 선호되었고, 고대부터 근세까지 지중해 세계와 유라시아 대륙 등 넓은 지역에서 사용되었음에도 기본적인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넓은 의미에서는 돌을 투사할 수 있는 구조의 쇠뇌나 발리스타도 투석기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공성전에서는 무거운 돌을 성벽 상부에 명중시켜 가장자리부터 무너뜨리거나, 돌이나 자갈을 채운 자루를 날려 성문을 공격했다. 불붙은 짚이나 화약을 투척하여 성 안에 화재를 일으키기도 했다. 투사하는 돌은 착탄 후에도 튕겨나가 더 넓은 범위에 피해를 줄 수 있도록 구형으로 가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성 측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장갑을 덧대거나 공성탑 위에 설치하기도 했으며, 야전에서는 적의 밀집 대형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평시에는 투석기의 성능을 과시하기 위해 행사에서 꽃을 날리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5. 1. 명칭
'캐터펄트'라는 단어는 라틴어 'catapulta'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다시 그리스어 καταπέλτης|카타펠테스grc[8]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어는 κατά|카타grc("아래로")[9]와 πάλλω|팔로grc("던지다, 내던지다")[10][11]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캐터펄트는 고대 그리스인에 의해 발명되었으며[12]고대 인도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기원전 5세기 초에서 중반경 마가다 왕국의 아자타샤트루 왕이 사용한 기록이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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