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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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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레이션은 1938년 미 육군에서 개발되어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등에서 사용된 전투 식량이다. 초기에는 고기 통조림(M-유닛)과 크래커, 음료 혼합물(B-유닛)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이후 다양한 메뉴와 부속품이 추가되었다. C-레이션은 무게, 맛, 영양 불균형 등의 문제로 비판을 받았지만, 현대 전투 식량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을 통해 유출된 C-레이션은 한국 사회에 인스턴트 커피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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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레이션

2. 역사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은 후방에서 조리된 따뜻한 식량을 전선으로 운반하여 배급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예비 식량이라는 전투 식량도 채택했다. 이후 육군 군의 총감 윌리엄 C. 고가스 소장은 식량 관계 조사 및 개선을 위해 식량 영양부를 신설했다.[28] 미국의 참전 기간이 짧아 식량 영양부 활동은 제한적이었지만, 이후에도 개선 시도는 계속되었다. 1920년대에도 여전히 식량 조리 및 배급은 보급과가 담당했다. 예비 식량은 양 부족이 지적되어 몇 차례 내용량 조정이 이루어졌지만, 사용 빈도가 낮다는 이유로 대체 식량 개발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28]

1930년대 중반, 미군은 새로운 전투 식량 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새롭게 발견되었고, 육군에서도 비타민 섭취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처음 고안된 새로운 식량은 D-레이션으로, 영양을 강화한 초콜릿 바였다. D-레이션은 "1인이 1일 생존하기 위한 식량"으로, 전투 식량이라기보다는 식사를 할 수 없는 경우의 대용식으로 사용되었다. 매우 고칼로리여서 과식하면 메스꺼움을 유발할 수 있었으며, 칼로리 흡수를 돕기 위해 비타민 B1이 첨가되었다.[28]

1938년, 미 육군 병참부의 생계 연구 개발 연구소(SRDL)는 D-레이션 비상 식량을 보충하고 예비 식량을 대체하기 위해 더 맛있고 영양 균형이 좋으며 보존성이 뛰어난 새로운 전투 식량 개발에 착수했다.[6][7]

초기 C-레이션은 '고기' 유닛(M-유닛)과 '빵' 유닛(B-유닛)으로 구성된 통조림 6개로 구성된 일일 식량이었다. M-유닛은 고기와 콩, 고기와 감자 해시, 고기와 야채 스튜의 세 가지 메뉴로 시작했다.[29] 각 식사는 M-유닛 1개와 B-유닛 1개로 구성되었다. 1940년 루이지애나 기동 훈련을 거쳐 C-레이션의 채택이 결정되었고,[29] 1941년 8월부터 대규모 조달이 시작되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예비 식량을 단계적으로 갱신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C-레이션은 지속적인 개선을 거쳤다. 군인들은 캔이 무겁고 번거로우며 메뉴가 단조롭다고 불평했고,[10][11] 1943년, 식량 위원회는 C-레이션을 장기간 사용한 후 군인의 신체 검사를 검토한 결과, 다른 식량으로 보충하지 않는 경우 최대 5일 연속으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14] 초기 사양은 1945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모든 C형 식량 생산은 1958년에 종료되었지만, 기존 비축분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도 계속 지급되었다.[15]

한국전쟁 당시, 스미스 부대는 C-레이션 이틀분을 지급받았다.[33] C-레이션은 암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에는 , 과자, 땅콩, 베이컨 등의 식품과 비누, 수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34] C-레이션에 포함된 인스턴트 커피는 대한민국에서 커피가 일반화되는 계기가 되었다.[35][36]

원래 C-레이션은 3일을 초과하지 않는 단기간 사용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8] 그러나 전후 C-레이션의 단조로움에 대한 현장 평가 보고서가 나오자, 육군 병참감부(QMC) 식량 서비스 부서는 이 제한 사항을 전쟁 중 C-레이션에 대한 부정적 반응에 대한 변명으로 활용했다.[23] 이들은 새로운 경량 개별 식량 개발 대신 C-레이션을 유일한 개별 포장 식량으로 표준화하고, K-레이션 등 다른 대안들을 제거했다.[24]

베트남 전쟁 중에는 미군 병사들이 부피와 소음을 줄이기 위해 양말에 여러 개의 레이션 캔을 넣어 다녔다는 점은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25]

1958년부터 C-레이션은 전투용 개별 식량(MCI)으로 천천히 대체되었다.

2. 1. 개발 배경 (1907-1937)

1907년, 미군은 최초의 개별 포장 식량인 "아이언 레이션"(Iron Ration)을 도입했다. 아이언 레이션은 85g(3온스) 짜리 케이크 3개 (부용 분말과 볶은 밀로 만든 혼합물), 28g(1온스) 짜리 설탕을 넣은 초콜릿 바 3개, 소금과 후추 봉지로 구성되었다. 무게는 454g(1파운드)의 밀봉된 틴 패킷에 담겨 보병 상의 주머니에 넣어 휴대하도록 설계되었으며, 병사들이 식량을 보급받을 수 없을 때 비상용으로 사용하도록 고안되었다. 이후 "예비 식량"의 채택으로 중단되었지만, 아이언 레이션 개발 및 사용에서 얻은 결과는 비상 D-레이션 개발에 기여했다.[28]

제1차 세계 대전 후반, 미군은 주둔지나 야전 부엌에서 멀리 떨어진 병사들에게 예비 식량을 지급했다. 원래 예비 식량은 340g(12온스)의 베이컨 또는 397g(14온스)의 고기(일반적으로 통조림 콘드 비프), 227g(8온스)짜리 딱딱한 빵이나 하드택 비스킷 2개, 33g(1.16온스)의 미리 갈아 놓은 커피 1봉지, 68g(2.4온스)의 설탕 1봉지, 4.5g(0.16온스)의 소금 1봉지로 구성되었다. 또한 11g(0.4온스)의 담배와 10장의 담배 종이로 구성된 별도의 "담배 배급량"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브랜드 기성 담배로 대체되었다.[28]

전쟁 후,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배급량 개선 시도가 있었다. 1922년에는 454g(16온스)의 고기(일반적으로 쇠고기 육포), 85g(3온스)의 통조림 콘드 비프 또는 초콜릿, 397g(14온스)의 딱딱한 빵 또는 하드택 비스킷, 커피, 설탕으로 구성되도록 개편되었다. 1925년에는 고기 배급량이 통조림 돼지고기 콩으로 대체되었다. 1936년에는 콘드 비프가 있는 "A" 메뉴와 돼지고기 콩이 있는 "B" 메뉴를 갖추어 다양성을 시도했다. 이 메뉴는 1938년에 새로운 C-레이션이 도입되면서 취소되었다.[28]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은 후방에서 조리된 따뜻한 식량을 전선으로 운반하여 배급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예비 식량이라는 전투 식량도 채택했다. 이후 육군 군의 총감 윌리엄 C. 고가스 소장은 식량 관계 조사 및 개선을 위해 식량 영양부를 신설했다. 미국의 참전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식량 영양부 활동은 제한적이었지만, 이후에도 개선 시도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도 여전히 식량 조리 및 배급은 보급과가 담당했다. 예비 식량은 양 부족이 지적되어 몇 차례 내용량 조정이 이루어졌지만, 사용 빈도가 낮다는 이유로 대체 식량 개발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28]

1930년대 중반, 미군은 새로운 전투 식량 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새롭게 발견되었고, 육군에서도 비타민 섭취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처음 고안된 새로운 식량은 D-레이션으로, 영양을 강화한 초콜릿 바였다. D-레이션은 "1인이 1일 생존하기 위한 식량"으로, 전투 식량이라기보다는 식사를 할 수 없는 경우의 대용식으로 사용되었다. 매우 고칼로리여서 과식하면 메스꺼움을 유발할 수 있었으며, 칼로리 흡수를 돕기 위해 비타민 B1이 첨가되었다.[28]

2. 2. C-레이션의 탄생 (1938-1945)

1938년, 미 육군 병참부의 생계 연구 개발 연구소(SRDL)는 D-레이션 비상 식량을 보충하고 예비 식량을 대체하기 위해 더 맛있고 영양 균형이 좋으며 보존성이 뛰어난 새로운 전투 식량 개발에 착수했다.[6][7]

초기 C-레이션은 '고기' 유닛(M-유닛)과 '빵' 유닛(B-유닛)으로 구성된 통조림 6개로 구성된 일일 식량이었다. M-유닛은 고기와 콩, 고기와 감자 해시, 고기와 야채 스튜의 세 가지 메뉴로 시작했다.[29] 각 식사는 M-유닛 1개와 B-유닛 1개로 구성되었다. 1939년 6월, 초기 직사각형 캔은 대량 생산 문제로 인해 원통형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29] 1940년 말에는 부식 저항성을 개선하기 위해 알루미늄 마감에서 금색 래커 마감으로 변경되었고, 전쟁 말기에는 칙칙한 녹색 페인트로 변경되어 표준으로 유지되었다.[7]

C-레이션 캔은 높이 약 11.18cm, 지름 약 7.62cm의 비골강 양철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여는 스트립과 B 유닛 캔 바닥에 납땜된 키가 있었다. 캔에는 종이 라벨이 붙어 있었으나, 곧 떨어져 나가 메뉴를 추측하는 게임이 되었다.[9]

1940년 루이지애나 기동 훈련을 거쳐 C-레이션의 채택이 결정되었고,[29] 1941년 8월부터 대규모 조달이 시작되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예비 식량을 단계적으로 갱신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C-레이션은 지속적인 개선을 거쳤다. 군인들은 캔이 무겁고 번거로우며 메뉴가 단조롭다고 불평했고,[10][11] 1943년, 식량 위원회는 C-레이션을 장기간 사용한 후 군인의 신체 검사를 검토한 결과, 다른 식량으로 보충하지 않는 경우 최대 5일 연속으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14]

초기 사양은 1945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모든 C형 식량 생산은 1958년에 종료되었지만, 기존 비축분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도 계속 지급되었다.[15]

2. 3. 한국 전쟁과 그 이후 (1945-1958)

한국전쟁 당시, 스미스 부대는 M1 카빈 실탄 120발과 함께 C-레이션 이틀분을 지급받았다.[33]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한 미군 부대에서 불법적으로 유출된 C-레이션은 암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에는 , 과자, 땅콩, 베이컨 등의 식품과 비누, 수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34]

C-레이션에 포함된 인스턴트 커피는 '설탕 탄 비싼 물'로 불리며 대한민국 대중에게 퍼져나갔다.[35] 한국전쟁 발발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1회용 인스턴트 커피가 유출되었고, 이는 커피가 대한민국에서 일반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군으로부터 유출된 인스턴트 커피는 카페인 함량이 높아 과음하면 불면증을 유발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36] 한편, C-레이션은 회충약으로 오인되기도 하고, 전쟁 중에는 각성제로도 인기를 얻었다.[35]

원래 C-레이션은 3일을 초과하지 않는 단기간 사용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8] 그러나 전후 C-레이션의 단조로움에 대한 현장 평가 보고서가 나오자, 육군 병참감부(QMC) 식량 서비스 부서는 이 제한 사항을 전쟁 중 C-레이션에 대한 부정적 반응에 대한 변명으로 활용했다.[23] 이들은 새로운 경량 개별 식량 개발 대신 C-레이션을 유일한 개별 포장 식량으로 표준화하고, K-레이션, 산악 식량, 정글 식량 등 다른 대안들을 제거했다.[24]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병사들은 다양한 환경이나 장기간 사용에 적합하지 않은 단일 종류의 포장 식량에 제한되었다. 병사들은 맛없는 메뉴와 단조로움에 대해 계속 불만을 제기했다.[9] 특히 무거운 통조림 습식 식량은 도보로 이동하는 병사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10] 베트남 전쟁 중에는 미군 병사들이 부피와 소음을 줄이기 위해 양말에 여러 개의 레이션 캔을 넣어 다니는 반면, 적군은 마른 쌀로 된 경량 식량을 휴대하여 기동성을 높였다는 점은 이러한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25]

1958년부터 C-레이션은 전투용 개별 식량(MCI)으로 천천히 대체되었다. 이 식량은 1980년대 중반 즉석식품(MRE)으로 대체될 때까지 20년 이상 사용되었다.

3. 구성

C-레이션은 크게 M-유닛, B-유닛, 그리고 부속품 팩으로 구성되었다.

M-유닛은 주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고기 요리를 담은 통조림이었다. 초기에는 고기와 콩, 고기와 감자 해시, 고기와 야채 스튜 세 가지 메뉴였으나,[17] 제2차 세계 대전 중 메뉴가 다양화되었다.[17]

B-유닛은 빵과 디저트류로, 여러 개의 크래커, 설탕, 덱스트로스 에너지 정제와 음료 혼합물 등으로 구성되었다.[29] 음료 혼합물로는 인스턴트 커피, 합성 레몬 음료 분말, 부용 수프 분말 등이 있었다.[29]

부속품 팩은 설탕, 할라존 정수 정제(1945년 잠시 동안), 나무 숟가락, , 담배, 성냥, P-38 병따개, 화장지 등으로 구성되었다.[19][20] 1945년에는 소금 정제가 추가되고, 담배와 나머지 부속품이 분리된 팩으로 제공되었다.

3. 1. M-유닛 (고기)

M-유닛은 C-레이션의 주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고기 요리를 담은 통조림이었다. 초기 메뉴는 고기와 콩, 고기와 감자 해시, 고기와 야채 스튜 세 가지였다.[17] 제2차 세계 대전 중 메뉴가 다양화되어, 토마토 소스 고기와 스파게티, 햄, 계란, 감자, 고기와 국수, 돼지고기와 쌀, 프랑크푸르터와 콩, 돼지고기와 콩, 햄과 리마콩, 닭고기와 야채 등이 추가되었다.[17] 가장 인기가 없었던 메뉴는 고기 해시와 양고기 스튜였으며,[17] 햄과 리마콩도 인기가 낮았다.[17]

원래 M-유닛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소금, 각종 향신료, 다진 양념으로 맛을 낸 메인 요리를 담고 있었다.[17] 초기 메뉴는 군인들이 군대 식당에서 A- 또는 B-레이션으로 제공받는 메뉴(해시, 스튜 등)와 유사하게 설계되었다.[17]

1944년 말에는 C-레이션을 장기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하여 여러 메뉴가 추가되거나 삭제되었다. 인기가 없었던 "양고기 스튜와 야채"는 삭제되었고, 최종 개정판에서는 "야채를 곁들인 소고기 스튜"가 추가되었다.[17]
M-유닛 메뉴 변천사

시기메뉴
초기고기와 콩, 고기와 감자 해시, 고기와 야채 스튜
1943년토마토 소스 고기와 스파게티 추가
1944년 말잘게 썬 햄, 계란, 감자, 고기와 국수, 돼지고기와 쌀, 프랑크푸르터와 콩, 돼지고기와 콩, 햄과 리마콩, 닭고기와 야채 추가, 고기 해시와 양고기 스튜 삭제
1945년야채를 곁들인 소고기 스튜 추가


3. 2. B-유닛 (빵과 디저트)

B-유닛은 여러 개의 크래커, 설탕 정제 3개, 덱스트로스 에너지 정제 3개와 음료 혼합물 봉지 또는 작은 캔으로 구성되었다.[29] 음료 혼합물은 인스턴트 커피, 분말 합성 레몬 음료(비타민 C의 주요 공급원), 부용 수프 분말 등이었다.[29] 1944년에는 오렌지 음료 분말(비타민 C 강화)과 가당 코코아 분말이, 1945년에는 포도 음료 분말이 추가되었다.[29]

1941년, 에너지 정제는 땅콩이나 건포도로 코팅된 사탕, 참 하드 캔디, 브락 초콜릿, 바닐라 캐러멜과 같은 낱개 사탕으로 대체되었다.[29] 그러나 부패 문제로 1944년에는 낱개 사탕이 초콜릿 디스크(브락 퍼지 디스크 등)나 쿠키 샌드위치(짐 댄디 등)로 대체되었고, 비스킷 수는 4개로 줄었다.[29]

1944년, 아침 식사용으로 미리 혼합된 귀리 시리얼로 구성된 B-유닛이 도입되어 "햄, 계란, 감자" 식사와 함께 제공되었다.[29] 루이지애나 훈련에서는 B-유닛의 비스킷이 줄고, 대신 초콜릿과 인스턴트 커피가 추가되었다. 1941년 말에는 개별 포장된 사탕, 초콜릿 캐러멜도 추가되었다.[29]

병사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B-유닛 품목은 여러 번 갱신되었다. 분말 코코아, 분말 레몬 주스(1945년 폐지)가 추가되었고,[28] 크래커, 잼, 사탕도 별도로 추가되었다.[29] 1943년 3월부터는 일부 B-유닛에 담배가 부속되었다.[29]

1944년 6월, B-유닛과 부속품은 식량 일식으로 통일되었다. B-유닛에는 비스킷, 압축/혼합 시리얼, 사탕으로 덮인 땅콩 또는 건포도, 인스턴트 커피, 설탕, 레몬 또는 오렌지 인스턴트 주스, 사탕, 잼, 분말 코코아, 캐러멜 등이 메뉴에 맞춰 조합되었다.[29]

1945년 4월 사양에서는 보존성이 낮은 사탕, 사탕으로 덮인 땅콩/건포도가 폐지되고 퍼지 디스크와 쿠키 샌드위치가 채택되었다. 과립 설탕은 정제형으로 변경되었고, 분말 주스 종류가 늘었으며, 압축 코코아 디스크가 추가되었다.[29]

3. 3. 부속품 팩

부속품 팩은 추가적인 부속품과 조미료를 포함하기 위해 개발되었다.[18]

갈색 도살자 종이로 만들어진 부속품 팩에는 다음 물품들이 들어 있었다.[19]

  • 설탕 정제
  • 할라존 정수 정제 (1945년 잠시 동안)
  • 평평한 나무 숟가락
  • 한 조각의 사탕 코팅
  • 3개의 "짧은" 샘플 3팩 또는 상업용 담배 9팩 1개
  • 방습성 성냥 20개가 들어 있는 책자
  • 사용법이 인쇄된 종이 포장 P-38 병따개 (보통 군인의 군번줄 체인에 걸어 다음 식사의 캔을 열 때 사용했다.[20])
  • 일반적으로 22.5장의 화장지 (영국군의 경우 3장[19])


1945년에 부속품 팩은 수정되었다. 외과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할라존 정제는 제거되고 소금 정제가 추가되었다. 또한,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여 일부 군인들이 담배만 얻기 위해 부속품 팩을 열고 나머지 품목은 버리는 낭비를 줄이기 위해, 부속품 팩은 담배와 성냥이 들어 있는 짧은 팩과 나머지 부속품이 들어 있는 긴 팩으로 나뉘었다.

제공된 담배 브랜드로는 카멜, 첼시, 체스터필드, 크레이븐 A, 럭키 스트라이크, 올드 골드, 필립 모리스, 플레이어스, 랠리, 윙스가 있었다.

4. 대한민국에서의 C-레이션

1960년대의 C-레이션. 공식 명칭은 MCI로 바뀌었지만, 이전과 거의 비슷해서, 미군들은 계속 C-레이션으로 불렀다.


해방 이후 C-레이션은 상자당 쌀 1되 값에 시장에서 팔렸다.[32]

4. 1. 한국전쟁과 C-레이션

한국전쟁 당시 스미스 부대는 1950년 6월 30일 오후 3시 부산 수영비행장으로 공수되었다. 2개 중대 406명 장병은 1인당 M1 카빈 실탄 120발과 C-레이션 이틀분을 소지했다.[33]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한 미군의 C-레이션이 미군 부대에서 불법적으로 유출되어 암시장에서 인기리에 거래되었다. C-레이션에는 , 과자, 땅콩, 베이컨, 비누, 수건 등이 들어 있었다.[34] C-레이션 상자는 쌀 1되 값에 팔리기도 했다.[32]

커피는 해방 후 미군의 C-레이션을 통해 "설탕 탄 비싼 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회충약으로 오인되기도 했고, 전쟁 중에는 각성제로도 인기를 얻었다.[35] 한국전쟁 발발 후 미군이 진주하면서 1회용 인스턴트 커피가 유출되어 커피가 대한민국에서 일반화되었다. 미군 전투식량(MRE)에는 인스턴트 커피가 들어 있었는데, 당시 유출된 인스턴트 커피는 카페인 함량이 높아 과음하면 불면증을 유발한다는 말이 있었다.[36]

4. 2. 인스턴트 커피의 대중화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한 미군의 C-레이션을 통해 "설탕 탄 비싼 물"이 일반 대중에게 퍼져나갔으며, 회충약으로 오인되기도 하고 배곯는 전쟁 중에는 각성제로도 인기였다.[35]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미군이 진주하면서 1회용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했고, 이것이 유출되면서 커피가 대한민국에서 일반화되었다. 당시 미군으로부터 유출된 인스턴트 커피는 카페인이 너무 많이 들어있어, 과음하면 불면증에 걸린다는 말이 있었다.[36]

5. 비판과 한계

C-레이션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에게 지급된 전투 식량이었지만, 여러 문제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C-레이션은 캔 형태로 제작되어 무겁고 부피가 커서 병사들이 휴대하기에 불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10]

메뉴 구성의 단조로움과 맛에 대한 불만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초기 C-레이션은 '고기와 콩', '고기와 감자 해시', '고기와 야채 스튜'의 세 가지 메뉴로만 구성되어 있어, 장기간 섭취하는 병사들은 쉽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11] 영국군이나 호주군 등 다른 연방군에게 지급되었을 때도 비슷한 불만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호주군은 통조림 음식 특유의 밍밍함과 부드러운 질감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13]

C-레이션을 장기간 섭취할 경우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1943년, C-레이션을 장기간 섭취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신체 검사 결과, 식량 위원회는 다른 식량으로 보충하지 않을 경우 C-레이션의 섭취 기간을 최대 5일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14] 초기 사양에서는 C-레이션이 단기간(3일 초과 금지) 사용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지만[8], 실제 전투 상황에서는 보급 문제로 인해 C-레이션을 몇 주 동안 계속해서 섭취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C-레이션은 1958년까지 생산되었으며,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도 일부 사용되었다.[15]

6. 영향 및 유산

C-레이션은 현대 전투 식량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MCI, MRE 등 후속 전투 식량은 C-레이션의 개선된 형태로 볼 수 있다. C-레이션은 미군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전투 식량 개발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입 당시 육군 병참감부(QMC)는 C-레이션이 3일을 초과하지 않는 단기 사용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8] 그러나 전쟁 후, QMC 식량 서비스 부서는 C-레이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에 대한 변호로 이러한 제한 사항을 사용했다.[23] 동시에 C-레이션을 미군 병사들을 위한 유일한 개별 포장 식량으로 표준화하는 것을 옹호하며 K-레이션, 산악 식량, 정글 식량 등 대안을 제거하고 C-레이션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투 식량 개발을 진행했다.[24]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야전의 병사들은 식단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야전 환경이나 장기간 사용에 적합하지 않은 단일 종류의 포장 식량에 제한되었다. 병사들은 맛없는 메뉴 품목이 있는 단일 종류의 야전 식량의 단조로움에 대해 계속 불만을 제기했다.[9] 특히, 통조림 습식 식량의 과도한 사용은 베트남 전쟁 중에 극에 달했는데, 미군 병사들은 순찰 시 부피를 줄이고 소음을 줄이기 위해 양말에 여러 개의 레이션 캔을 쌓아두는 반면, 적군은 마른 쌀로 된 경량 식량을 휴대하여 이동성을 높였다.[25] 이는 1966년 LRP 레이션 개발을 이끌었다.[25]

1958년부터 C-레이션은 거의 동일한 통조림 전투용 개별 식량으로 천천히 대체되었다. 이 레이션은 1980년대 중반 MRE로 대체될 때까지 20년 이상 동안 대부분 보급되었다.

C-레이션은 한국전쟁을 통해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친 뒤 주한 미군의 C-레이션이 미군 부대에서 불법적으로 흘러나와 암시장에서 인기리에 팔렸다.[34] 특히, C-레이션에 포함된 인스턴트 커피커피대한민국에서 일반화되는 계기가 되었다.[26][36] 당시 미군으로부터 유출된 인스턴트 커피는 카페인이 너무 많이 들어있어, 과음하면 불면증에 걸린다는 말이 있었다.[36]

참조

[1] 웹사이트 The Alphabet Soup of Army Rations https://blog.fold3.c[...]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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