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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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J. 홀튼은 미국의 야구 선수로, 투수로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과 일본 프로 야구(NPB), 한국 프로 야구(KBO)에서 활동했다. 그는 MLB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으로 2시즌 동안 뛰었으며, NPB에서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6시즌 동안 활약했다. 특히 2011년에는 19승을 기록하며 NPB 다승왕을 차지했다. 2014년에는 KIA 타이거즈에서 1시즌을 소화했다. 은퇴 후에는 오릭스 버펄로스의 주미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다.

D.J. 홀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D.J. 홀튼
원어 이름Dennis Houlton (데니스 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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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時代 (거인 시절)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출생지미국 캘리포니아주 플러턴
생년월일1979년 8월 12일 ()
프로 입단2001년
드래프트 순위2001년 MLB 드래프트 11라운드 (전체 326위), 휴스턴 애스트로스 지명
선수 경력
소속 팀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5년, 2007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8년 ~ 201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2년 ~ 2013년)
KIA 타이거즈 (2014년)
첫 출장 (MLB)2005년 4월 9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최종 출장 (MLB)2007년 9월 30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첫 출장 (NPB)2008년 4월 1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최종 출장 (NPB)2013년 10월 3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첫 출장 (KBO)2014년 3월 29일, KIA 타이거즈, 대구삼성
최종 출장 (KBO)2014년 7월 23일, KIA 타이거즈, 광주LG
수상 경력
수상 내역일본 시리즈 우승 2회 (2011년, 2012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최다승 19승 (2011년)
MLB 성적
승패6승 11패
평균자책점4.99
탈삼진111
NPB 성적
승패63승 39패
평균자책점3.20
탈삼진613
KBO 성적
승패5승 8패
평균자책점4.80
탈삼진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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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D.J. 홀튼은 세르비테 고등학교와 퍼시픽 대학교를 졸업했다. 2001년 5월 11일, 퍼시픽 대학교 재학 중 UC 리버사이드와의 경기에서 8-0으로 완봉승을 거두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1997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55라운드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되었으나 계약하지 않고 퍼시픽 대학교에 진학했다.

2.2. MLB 경력

2001년 MLB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11라운드에서 홀튼을 지명했고, 그는 2001년 6월 9일에 계약을 체결했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애스트로스의 싱글 A팀인 미시간 배틀 캣츠에서 투구하며 35경기(16선발)에서 14승 5패, 평균자책점 3.15를 기록했다. 2003년과 2004년에는 당시 더블 A팀이었던 라운드 록 익스프레스에서 주로 투구하며 텍사스 리그에서 28번의 선발 등판으로 12승 5패, 평균자책점 2.94, 완투 3회를 기록했다.

2004년 12월 13일, 룰 5 드래프트를 통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했다. 2005년에는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에 승격하여 35경기(19선발)에서 6승 9패, 방어율 5.16의 성적을 남겼다. 2006년에는 메이저 리그에 승격하지 못하고, AAA팀인 라스베이거스 51s에서 9승 11패, 평균자책점 5.60으로 부진했다. 2007년에는 7월에 메이저 리그에 승격하여 18경기에 구원 등판, 0승 2패, 평균자책점 4.18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긴급 보강 명단의 최우선 후보로 올려, 다저스로부터 소프트뱅크로 계약이 양도되었다.

2.3. NPB 경력

2008년 1월 31일, 소프트뱅크와 계약에 합의했다. 등번호는 00번, 등록명은 "D.J. 홀튼"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늦어졌지만,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첫 등판, 오구라 신스케, 쿠메 유키와 함께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점차 실점이 늘어나 2군으로 강등되었다. 후반기부터 선발로 보직이 변경되어, 베이징 올림픽으로 팀을 이탈한 와다 쓰요시, 스기우치 도시야의 공백을 메우는 활약을 했다. 하지만 상대팀에게 분석당하고, 타선의 지원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2008 시즌 최종 성적은 28경기(선발 11경기)에 출전하여 4승 7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4.27을 기록했다.

에는 등번호를 54번으로 변경하고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어, 스기우치와 함께 좌우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특히 리그 우승팀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상대로 6경기 등판하여 4승을 올리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 9월 5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10승을 달성했다. 2009년 시즌 최종 성적은 25경기에 출장 25경기 선발 11승 8패 방어율 2.89를 기록했다.

에는 5월 19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 (후쿠오카 Yahoo! JAPAN 돔)에서 오른쪽 다리 부상을 당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7월 19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지만, 9월 1일에 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10월 16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3차전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호투하며 승리에 기여했다. 시즌 후 구단으로부터 대폭 삭감된 연봉을 제시받았으나, 협상 끝에 홀튼이 연봉 삭감을 받아들여 잔류했다. 2010년 시즌 최종 성적은 16경기에 출장 16경기 선발 8승 6패 방어율 5.70를 기록했다.

에는 개막부터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4월 20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 (기타큐슈 시민 구장)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두었고, 4월 27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는 본인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7월 12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2년 만에 10승을 달성했고, 9월 13일 세이부와의 경기 (야후 돔)에서 15승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19승을 거두어 다나카 마사히로와 함께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 4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을 던져 승리 투수가 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다. (2010년에 이어) 잔류 협상이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잔류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
2011년 12월 1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2년 총액 500만 달러의 계약에 합의했다. 등번호는 소프트뱅크 시절과 같은 54, 등록명은 "데니스 홀튼"이었다.

2012년 시즌 초반에는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적 후 첫 승리는 4번째 선발 등판이었던 4월 27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이었다. 교류전을 기점으로 컨디션을 회복하여, 7월 8일 한신 타이거스전(도쿄 돔)부터 9월 8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진구)까지 6연승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12승 8패,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 팀의 센트럴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특히, 교류전 우승 결정전이 된 6월 16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K스타 미야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야간 경기에서는 6승 7패, 평균자책점 3.54로 다소 부진했지만, 주간 경기에서는 6승 1패, 평균자책점 0.84로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다. 8월 11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는 2011년 6월 15일 오릭스 버팔로스의 알프레도 피가로 이후, 본인 처음이자 이 해 12개 구단 최초의 투수로 솔로 홈런을 쳤다.

2013년에도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4월 5일 주니치 드래건스전(도쿄 돔)에서 이적 후 첫 완투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년과 마찬가지로 초반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승패를 반복하는 등판이 이어졌다. 그 때문에 중반에 한 번 2군으로 강등되어, 2군에서 조정하는 기간을 가졌다. 1군 복귀 후에는 8월 하순부터 10월 초순에 걸쳐 5연승을 거두어, 최종적으로 9승 4패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는 놓쳤지만,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1월 30일 홀튼의 퇴단을 발표했다.

2.3.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08년 1월 31일, 소프트뱅크와 계약에 합의했다. 등번호는 00번, 등록명은 "D.J. 홀튼"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늦어졌지만,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첫 등판, 오구라 신스케, 쿠메 유키와 함께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점차 실점이 늘어나 2군으로 강등되었다. 후반기부터 선발로 보직이 변경되어, 베이징 올림픽으로 팀을 이탈한 와다 쓰요시, 스기우치 도시야의 공백을 메우는 활약을 했다. 하지만 상대팀에게 분석당하고, 타선의 지원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2008 시즌 최종 성적은 28경기(선발 11경기)에 출전하여 4승 7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4.27을 기록했다.

에는 등번호를 54번으로 변경하고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어, 스기우치와 함께 좌우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특히 리그 우승팀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상대로 6경기 등판하여 4승을 올리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 9월 5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10승을 달성했다. 2009년 시즌 최종 성적은 25경기에 출장 25경기 선발 11승 8패 방어율 2.89를 기록했다.

에는 5월 19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 (후쿠오카 Yahoo! JAPAN 돔)에서 오른쪽 다리 부상을 당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7월 19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지만, 9월 1일에 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10월 16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3차전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호투하며 승리에 기여했다. 시즌 후 구단으로부터 대폭 삭감된 연봉을 제시받았으나, 협상 끝에 홀튼이 연봉 삭감을 받아들여 잔류했다. 2010년 시즌 최종 성적은 16경기에 출장 16경기 선발 8승 6패 방어율 5.70를 기록했다.

에는 개막부터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4월 20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 (기타큐슈 시민 구장)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두었고, 4월 27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는 본인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7월 12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2년 만에 10승을 달성했고, 9월 13일 세이부와의 경기 (야후 돔)에서 15승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19승을 거두어 다나카 마사히로와 함께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 4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을 던져 승리 투수가 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다. (2010년에 이어) 잔류 협상이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잔류했다.

2.3.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11년 12월 1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2년 총액 500만 달러의 계약에 합의했다. 등번호는 소프트뱅크 시절과 같은 54, 등록명은 "데니스 홀튼"이었다.

2012년 시즌 초반에는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적 후 첫 승리는 4번째 선발 등판이었던 4월 27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이었다. 교류전을 기점으로 컨디션을 회복하여, 7월 8일 한신 타이거스전(도쿄 돔)부터 9월 8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진구)까지 6연승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12승 8패,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 팀의 센트럴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특히, 교류전 우승 결정전이 된 6월 16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K스타 미야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야간 경기에서는 6승 7패, 평균자책점 3.54로 다소 부진했지만, 주간 경기에서는 6승 1패, 평균자책점 0.84로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다. 8월 11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는 2011년 6월 15일 오릭스 버팔로스의 알프레도 피가로 이후, 본인 처음이자 이 해 12개 구단 최초의 투수로 솔로 홈런을 쳤다.

2013년에도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4월 5일 주니치 드래건스전(도쿄 돔)에서 이적 후 첫 완투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년과 마찬가지로 초반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승패를 반복하는 등판이 이어졌다. 그 때문에 중반에 한 번 2군으로 강등되어, 2군에서 조정하는 기간을 가졌다. 1군 복귀 후에는 8월 하순부터 10월 초순에 걸쳐 5연승을 거두어, 최종적으로 9승 4패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는 놓쳤지만,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1월 30일 홀튼의 퇴단을 발표했다.

2.4. KBO 리그 경력

2014년 일본 프로야구 다승왕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부각되며 KIA 타이거즈의 외국인 투수로 영입되었다. 그는 4월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날이 갈수록 두산 베어스를 제외한 모든 팀에게 부진이 계속되었다. 17경기에서 5승 8패, 평균자책점 4.80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었다. 설상가상으로 연골 부상이 발견되면서 결국 7월 24일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었다. KIA 타이거즈는 홀튼을 대신하여 저스틴 토마스를 영입했다.

2.4.1. KIA 타이거즈 시절

2014년 일본 프로야구 다승왕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부각되며 KIA 타이거즈의 외국인 투수로 영입되었다. 그는 4월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날이 갈수록 두산 베어스를 제외한 모든 팀에게 부진이 계속되었다. 17경기에서 5승 8패, 평균자책점 4.80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었다. 설상가상으로 연골 부상이 발견되면서 결국 7월 24일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었다. KIA 타이거즈는 홀튼을 대신하여 저스틴 토마스를 영입했다.

3. 은퇴 이후

2015년 12월 28일, 일본 프로 야구(NPB)의 오릭스 버펄로스가 홀튼을 주미 스카우트로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1월 1일자로 취임하여, 미국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담당하고 있다.

4. 인물

D.J. 홀튼은 손이 매우 크며, 30cm가 넘는다. 일본 생활 초기에 젓가락 사용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도쿄 스포츠 기고문에서 "후쿠오카와 호크스를 정말 좋아한다"고 밝혔다. 어릴 적부터 디즈니의 열렬한 팬이며, 학생 시절에는 디즈니랜드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5. 통산 기록

D.J. 홀튼의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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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구단등판선발완투완봉무사사구승리패전세이브홀드승률타자투구이닝피안타피홈런사사구고의사구탈삼진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균자책점WHIP
2005로스앤젤레스 다저스(LAD)35190006900.400578129.0145215238902079745.161.53
20071800000202.00011328.0285700210014134.181.25
2008소프트뱅크28110004760.36436684.182103123860044404.271.34
2009252530111800.579680171.01372243061382058552.891.05
201016160008600.57134979.097112501691052505.701.54
2011262632219600.760680172.1132836071212043422.190.97
2012요미우리252500012800.600630158.01161144181320046432.451.01
201318181019400.692426103.285143205675045433.731.13
2014KIA17170005800.38541793.296104803584054504.801.54
MLB:2년531900061102.353691157.01732659381112093874.991.48
NPB:6년138121724633960.6183131768.1649762113306131002882733.111.12
KBO:1년17170005800.38541793.296104803584054504.801.54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5.1. MLB

D.J. 홀튼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2년간 활동했다. 2005년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으로 35경기에 등판하여 19번 선발로 나와 6승 9패, 평균자책점 5.16을 기록했다. 2007년에는 18경기에 나와 28이닝을 던지며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4.18을 기록했다. 메이저 리그 통산 53경기에 등판하여 19번 선발로 나와 6승 11패, 평균자책점 4.99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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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구단등판선발완투완봉무사사구승리패전세이브홀드승률타자투구이닝피안타피홈런사사구고의사구탈삼진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균자책점WHIP
2005로스앤젤레스 다저스(LAD)35190006900.400578129.0145215238902079745.161.53
20071800000202.00011328.0285700210014134.181.25
MLB:2년531900061102.353691157.01732659381112093874.991.48

5.2. NPB

D.J. 홀튼은 2008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입단하여 일본 프로 야구(NPB)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28경기에 출장하여 4승 7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4.27을 기록했다. 2009년에는 25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1승 8패,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하며 팀의 주축 투수로 자리잡았다.

2010년에는 16경기에 출장하여 8승 6패, 평균자책점 5.70으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1년에는 26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9승 6패, 평균자책점 2.19를 기록하며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2012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25경기에서 12승 8패,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18경기에 출장하여 9승 4패, 평균자책점 3.73을 기록했다.

D.J. 홀튼은 NPB에서 6시즌 동안 통산 138경기에 출장(121경기 선발)하여 63승 3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3.11을 기록했다.

5.3. KBO

D.J. 홀튼은 2014년 KIA에서 활동했다. 17경기에 등판하여 5승 8패, 평균자책점 4.80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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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W
H
I
P
KIA17170005800.38541793.296104803584054504.801.54

6. 수상 내역

; NPB
2011년에 다승왕을 1회 차지하였다.

6.1. NPB

2011년에 다승왕을 1회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