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웨이 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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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게이트웨이 아치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높이 192m의 기념물로, 미국의 서부 개척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1930년대에 시작된 건설 계획은 자금 확보, 디자인 공모전, 철도 이설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1965년에 완공되었으며, 1968년 5월 25일에 헌정되었다. 아치는 독특한 트램 시스템을 갖춘 전망대, 방문객 센터 등을 갖추고 있으며, 미국의 서부 개척과 국가적 팽창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건설 과정에서 안전 문제, 인종 차별 논란, 법적 분쟁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했다. 현재는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이자, 세인트루이스와 미주리주의 상징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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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웨이 아치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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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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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게이트웨이 투 더 웨스트 세인트루이스 아치 |
위치 |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애비뉴 100, 63102 |
기공일 | 1963년 2월 12일 |
완공일 | 1965년 10월 28일 |
개장일 | 1967년 6월 10일 |
높이 | 192 미터 |
폭 | 192 미터 |
건축 비용 | 1,300만 미국 달러 (2024년 기준 1억 900만 달러) |
건축가 | 에로 사리넨 |
건축 회사 | 에로 사리넨 앤 어소시에이츠 |
구조 엔지니어 | 세베루드 어소시에이츠 |
주요 계약자 | 맥도날드 건설 회사 |
웹사이트 | 게이트웨이 아치 공식 웹사이트 |
국가 사적지 정보 | |
이름 | 게이트웨이 아치 |
유형 | 국가 역사 랜드마크 |
추가됨 | 1987년 5월 28일 |
지정 유형 | 1987년 5월 28일 |
참조 번호 | 87001423 |
건축 | |
건축 양식 | 구조적 표현주의 |
2. 역사적 배경
게이트웨이 아치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세인트루이스의 경제 활성화와 강변 지역 재개발을 위해 시민 지도자들이 추진한 기념물 건립 구상에서 시작되었다. 1933년 시민 지도자 루터 일리 스미스는 버나드 딕만 시장에게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딕만 시장과 시 지도자들은 이를 승인하여 비영리 단체인 제퍼슨 국립 확장 기념 협회(JNEMA)를 결성했다.[10][14][11]
JNEMA는 미국 서부 영토 확장에 기여한 인물들을 기리는 기념물을 건립하여 미국 발전의 역사를 알리고자 했다. 기념물 건립 예상 비용은 3000만달러였고, JNEMA는 연방 정부에 2250만달러 지원을 요청했다.[10][11]
이 프로젝트는 대공황 시기에 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어 많은 지지를 받았다.[10][12] 1935년 연방 정부와 시 정부는 각각 675만달러와 225만달러를 지원하여 부지 확보 및 건물 철거를 시작했다.[12] 1939년 10월 9일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으나,[19] 기념물 건립 반대자들은 공적 자금 낭비라고 비판하며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행정 명령 철회 및 미국 적십자사 기부를 요청하기도 했다.[11][19]
1949년 철도 선로 이전 문제 해결을 위해 리비-터널 계획이 채택되었고,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연방 자금 지원이 지연되기도 했다.[36] 1959년에는 아치 근처 건물 높이 제한 문제가 발생했지만, 시 정부와 건축가 에로 사리넨의 협력으로 해결되었다.[38]
2. 1. 기념물 건립 구상 및 초기 자금 확보 (1933-1935)
1933년 말, 시민 지도자 루터 일리 스미스는 인디애나주 빈센스의 조지 로저스 클라크 국립 역사 공원에서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오는 길에 세인트루이스 강변을 보고 기념물을 건설하여 강변을 활성화하고 경제를 부흥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10][14] 그는 이 아이디어를 버나드 딕만 시장에게 제안했고, 1933년 12월 15일 시장은 시 지도자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다. 지도자들은 이 제안을 승인했고, 비영리 단체인 제퍼슨 국립 확장 기념 협회(JNEMA, "제니 메이"로 발음)가 결성되었다.[11] 스미스는 회장, 딕만은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협회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10]
: 미국 서부 영토 확장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 특히 제퍼슨 대통령, 그의 보좌관 리빙스턴과 먼로, 위대한 탐험가 루이스와 클라크, 그리고 영토 확장과 미국 발전에 기여한 강인한 사냥꾼, 덫 사냥꾼, 개척자들에게 적합하고 영구적인 공공 기념물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이 시대와 미래 세대에게 미국 발전의 역사를 알리고, 이 위대한 국가 건설자들의 애국적인 업적에 대한 친숙함을 유도하고자 했다.
많은 지역 주민들은 공적 자금을 낭비하는 것에 반대했다. 스미스의 딸 세일리스는 사람들이 더 실용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스미스는 "정신적인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말했다.[11]
협회는 기념물 건립에 3000만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연방 정부에 비용의 3/4(2250만달러)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11]

강변 재개발 제안은 이전에도 시도되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제퍼슨 기념관 아이디어는 대공황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약속하며 등장했다.[10] 이 프로젝트는 3~4년 동안 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었다.[12] 위원회는 모금 행사를 조직하고 소책자를 만들어 홍보 활동을 펼쳤다. 예산 계획 및 법안 준비와 더불어, 기념물 부지(약 0.8km)의 소유권 조사도 의회에 제출했다. 1934년 1월, 베넷 챔프 클라크 상원의원과 존 코크란 하원의원은 기념관 건설을 위해 3000만달러를 요청하는 예산 법안을 제출했지만, 금액이 너무 커서 지지를 받지 못했다. 같은 해 3월, 기념관 개발을 위한 연방 위원회 설립을 제안하는 공동 결의안이 제출되었다. 이 제안은 승인만을 목표로 했지만, JNEMA의 추가 예산 요청을 우려한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3월 28일 상원 법안이 보고되었고, 4월 5일 하원 도서관 위원회로 넘겨져 긍정적인 보고를 받았다. 6월 8일, 상원과 하원 모두 법안을 통과시켰다. 6월 15일,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법안에 서명하여 미국 영토 확장 기념 위원회를 설립했다. 위원회는 루즈벨트, 하원, 상원, JNEMA가 선정한 15명으로 구성되었으며, 12월 19일 세인트루이스에서 첫 회의를 열어 프로젝트와 위치를 검토했다.[10]
한편, 12월에 JNEMA는 기념관 설계를 위한 건축 공모전 개최를 논의했고, 지역 건축가 루이스 라봄은 1935년 1월까지 공모전 지침을 작성했다.[10] 1935년 4월 13일, 위원회는 기념관 경계, 기념관의 "역사적 중요성", 공모전, 3000만달러 예산 등을 포함한 JNEMA의 프로젝트 제안을 승인했다.[10] 2월에서 4월 사이, 미주리 주 의회는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채권 발행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4월 15일 주지사 가이 브래스필드 파크가 법안에 서명했다. 딕만과 스미스는 뉴딜 정책 기관인 공공사업청(해롤드 L. 이케스 수장)과 사업진흥청(해리 홉킨스 수장)에 자금 지원을 신청했다. 8월 7일, 이케스와 홉킨스는 각각 1000만달러 지원을 약속하고, 국립공원관리청(NPS)이 기념관을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13] 기념관 개발을 위해 750만달러를 승인하는 지역 채권 발행 선거가 9월 10일에 열려 통과되었다.[10][12]
12월 21일, 루즈벨트 대통령은 행정 명령 7253에 서명하여 기념관을 승인하고,[14] 82에이커 부지를 최초의 국립 역사 유적지로 지정했다.[14][11][13] 이 명령은 또한 WPA를 통해 330만달러, PWA를 통해 345만달러를 할당했다(총 675만달러).[16][12]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서부 확장 기념과 일자리 창출이었다.[10] 일부 납세자들은 기념물 건설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며, 이를 "부조"라고 비판했다.[11]
2. 2. 초기 계획 (1936-1939)
1935년, 기념물 건립을 위해 연방 정부와 시 정부는 각각 675만 달러와 225만 달러를 지원하여[12] 국립공원관리청(NPS)이 역사적 부지 내 건물들을 수용 절차를 거쳐 획득하고 철거하도록 했다. 1938년 9월까지 수용 절차가 완료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많은 법적 분쟁이 발생했다. 결국 1939년 1월 27일, 미국 연방 항소 법원이 수용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분쟁이 마무리되었고, 총 620만 달러가 6월 14일에 토지 소유주에게 지급되었다.[14][17] 1939년 10월 9일, 딕만이 비어 있는 창고에서 벽돌 세 개를 꺼내는 것을 시작으로 철거가 시작되었다.[19]폴 피터스를 중심으로 한 기념관 건립 반대자들은 의회에 "공공의 필요인가, 아니면 단순한 돼지 뒷다리 살인가"라는 제목의 전단을 배포하며 반대 운동을 펼쳤다. JNEMA의 변호사 본 지슬린은 이 전단이 프로젝트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았지만, 의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존 코크란 하원의원이 의회에 추가 자금 승인을 요청하려 했지만, 지슬린은 협회가 "이번 국회 회기 동안 현재 입장을 유지하면서 낮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한 협회에 "세입자 소수의 그룹이 ... 제안된 개선에 반대하기 위해 기금을 모금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세인트루이스의 여론의 합의를 나타내지 않으며 ... 그러한 방해 행위를 비난해야 한다고 밝히는 내용의 좋은 사설을 신문에 게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19]
의회의 지출 삭감으로 인해 할당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NPS는 연방 정부가 지원을 줄이면 시 정부도 기여금을 줄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이 기금이 행정 명령으로 승인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존 네이글 감독관은 "하나의 행정 명령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명령이 무효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36년 3월, 코크란 하원의원은 하원 회의에서 "기념관 건설이나 자금 할당을 위한 어떤 조치에도 찬성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지슬린은 코크란의 발언이 폴 피터스의 반대보다 프로젝트에 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 의회가 코크란의 의견을 여론을 대표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19]
피터스와 다른 반대자들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행정 명령 7253을 철회하고 그 돈을 미국 적십자사에 기부할 것을 요청했다. 스미스는 그들의 동기를 비난하며 "도시를 위해 발전하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고 비판했다.[19] 1936년 2월, ''The Nation''에 폴 W. 워드가 쓴 사설에서 이 프로젝트를 비난하는 내용이 실렸다.[18] 스미스는 명망 있는 잡지의 공격에 분노하여 "망치와 쇠 지렛대로 강력하게 덤벼들고" 싶어 했지만, 유명 신문 편집인 윌리엄 앨런 화이트는 스미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19]
2. 3. 철도 합의 (1949-1958)
1949년 7월 7일, 조셉 다스트 시장은 시 관계자들과 리비-터널 계획을 선택하여 철도 선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이 계획은 세인트루이스 공공 서비스 위원회 회장 프랭크 J. 맥데빗이 제안한 것으로, 벽과 조경으로 가려진 터널을 통해 선로를 낮추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JNEMA 회원들이 휴가 중인 스미스 몰래 결정이 강행되었다고 주장하며 반발을 샀다.[36]다스트 시장은 줄리어스 크루그 내무부 장관에게 시의 결정을 알렸고, 크루그 장관은 스미스 및 JNEMA와의 만남을 계획했으나 취소되었다. 이후 크루그 장관은 11월 11일에 사임했고, 그의 후임자인 오스카 L. 채프먼은 12월 5일 워싱턴에서 시 정부, JNEMA, 철도 관계자, 연방 정부 대표단과 회의를 주선했다. 회의 다음 날, 이들은 리비-터널 계획에 대한 양해 각서를 체결했다.[36]
양해 각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방 위의 5개 선로는 3개 선로로 교체되며, 이 중 1개는 미주리 퍼시픽 철도(MPR) 소유이고 2개는 세인트루이스 터미널 철도 협회(TRRA) 소유이며 3,000피트 이하의 터널을 통과할 것이다. 터널은 현재의 고가 선로에서 약 50피트 서쪽에 위치할 것이다." 또한 터널은 약 5.49m의 머리 위 여유 공간을 갖게 되는데, 이는 일반적인 요구 사항인 약 6.71m보다 낮았다. 채프먼 장관은 1949년 12월 22일에 이 문서를 승인했으며, JNEMA는 1952년 8월 7일에 미주리 공공 서비스 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다.[36]
그러나 1950년 1월부터 의회 자금 할당 노력이 시작되었지만, 한국 전쟁으로 인해 연방 자금이 부족해져 프로젝트 추진은 1953년까지 지연되었다.[36]
2. 4. 최종 준비 (1959-1968)
1959년 4월, 부동산 개발업자 루이스 키친이 아치 맞은편에 40층 높이의 건물 두 채를 짓기로 결정하면서 아치 근처 건물의 지구 지정 문제가 발생했다. 이 계획은 아치를 가릴 수 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고, 이에 시 정부와 사리넨이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했다.[38] 터커 시장과 위르트 국장은 아치 맞은편 건물의 높이를 약 83.82m (약 27층)로 제한하기로 결정했고, 시는 아치 맞은편 건물의 계획은 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키친은 건물의 높이를 낮추었고, 사리넨은 아치의 높이를 높였다.[38]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로 철도 궤도 이전 작업이 시작되었다. 1959년 6월 23일, 세인트루이스의 맥도날드 건설사가 국립공원관리청(NPS)의 예상 비용보다 낮은 2426115USD의 입찰로 낙찰되어 기공식이 열렸다.[3] 1962년 6월 완공을 목표로, 1959년 11월 17일부터 기차가 새로운 궤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38]
1959년 5월, 상원 세출 소위원회는 세인트루이스의 요청 금액 2491100USD 중 133000USD만 승인했다. 위르트는 1960년 1월에 다시 자금을 요청할 것을 권고했다. 1959년 3월, 도시의 프로젝트 첫 보조금으로 888000USD를 받았다. 1961년 12월, 총 23003150USD가 승인되었고, 이 중 3345667USD는 아직 배정되지 않았다.[38]
3. 건설
1961년에 구조물의 기초가 놓였고,[9] 1963년 2월 12일, 남쪽 다리에 첫 번째 강철 삼각대를 설치하면서 아치 본체의 건설이 시작되었다.[11] 이 강철 삼각대는 크레인과 데릭 그룹에 의해 제자리에 들어 올려졌는데,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였다.[41] 아치는 조립식 스테인리스 스틸 섹션 142개[42]로 조립되었으며, 각 섹션은 이중벽으로 된 외피에 콘크리트를 채우고 252개의 철근 인장 바로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처리되었다.[43] 부분적으로 완성된 다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가위 모양의 트러스가 설치되었다가 데릭이 철거되면서 제거되었다.[82]
시공업체 MacDonald Construction Co.는 구경꾼들을 위해 타워를 설치하고,[47] 작업 과정을 녹음했다.[48] 1963년에는 백만 명의 사람들이 진행 상황을 지켜보았고, 1964년에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대형 강철 슬래브가 설치될 때 방송을 했다.[12]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St. Louis Post-Dispatch) 사진 작가 아트 위트만은 건설 과정을 기록했는데, 이는 그의 가장 길고 유명한 임무였다.[49]
MacDonald Construction Co.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Stan Wolf는 62층짜리 건물을 짓는 것보다 아치를 짓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건물에서는 모든 것이 위로 똑바로 뻗어 있고, 한 물건이 다른 물건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 아치에서는 모든 것이 곡선으로 되어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9]
아치 건설은 안전 점검, 자금 불확실성, 법적 분쟁으로 인해 자주 지연되었다.[52]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고)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알폰소 J. 세르반테스 시장은 상량식 날짜를 정했지만, 아치가 완공되지 않아 1965년 10월 28일로 정해졌다.[11] 762,000명의 서명이 담긴 시간 캡슐은 마지막 조각을 제자리에 놓기 전에 아치형 석재에 용접되었다.[59] 10월 28일, 당시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가 헬리콥터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아치가 상량되었다.[73] 무게의 삼각형 단면인 아치형 석재는 열팽창을 고려하여 소방 호스로 물을 뿌려 냉각시킨 후, 13분 만에 삽입되었다.[73]
게이트웨이 아치는 1968년 5월 25일 험프리에 의해 헌정되었다.[64] 그는 아치를 "어제의 풍요로운 유산과 내일의 더 풍요로운 미래를 연결하는 하늘의 솟아오르는 곡선"이라고 선언했다.[64]
3. 1. 지연 및 소송
게이트웨이 아치 건설은 여러 차례 지연과 법적 분쟁을 겪었다. 보험 계리사는 건설 중 13명의 노동자가 사망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51]1964년 7월 14일, 시민권 운동가 퍼시 그린과 리처드 데일리는 게이트웨이 아치 건설 현장에서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아치 북쪽 다리에 올라가 연방 기금이 흑인 계약업체와 노동자를 차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숙련된 일자리의 최소 10%를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할당할 것을 요구했다.[53][54]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법무부는 1966년 2월 4일, 1964년 민권법 제7편에 따라 AFL–CI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나중에 혐의를 철회했다.[55]
1964년, 피츠버그-데스 모인스 철강 회사는 세금 문제로 맥도널드에게 소송을 제기했다.[56] 1965년에는 국립공원관리청(NPS)이 피츠버그-데스 모인스 철강 회사에게 회사 약자인 "P-D-M"을 제거하도록 요청했는데, 이는 광고와 관련된 연방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사는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결국 NPS의 요구를 수용하고 소송은 취하되었다.[11]
1965년 10월 26일, 국제 철강 노동자 협회는 아치의 안전 문제를 제기하며 작업을 지연시켰다. NPS 국장 케네스 채프먼이 안전을 보장한 후, 10월 27일 건설이 재개되었다.[57] 1966년 1월 7일, AFL–CIO 회원들은 흑인 배관공으로 구성된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U)와의 협력을 거부하며 방문자 센터 작업을 중단했다. CIU는 전국 노동 관계 위원회(NLRB)에 금지 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은 AFL–CIO 노동자들이 이차 보이콧에 참여했다고 판결했다. 2월 11일, AFL–CIO는 아치 작업을 재개했고, 10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견습생으로 등록되었다.[54]
3. 2. 완공 및 헌정
계리사 회사는 아치 건설 중 13명의 노동자가 사망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기념비 건설 중 사망한 노동자는 없었다.[51] 그러나 아치 건설은 안전 점검, 자금 불확실성, 법적 분쟁으로 인해 자주 지연되었다.[52]1964년 7월 14일, 흑인 평등 의회 회원 퍼시 그린과 리처드 데일리는 125m 높이의 아치 북쪽 다리에 올라가 "연방 기금이 흑인 계약업체와 숙련된 흑인 노동자를 인종적으로 차별하는 국가 기념비를 짓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상의 시위자들은 숙련된 일자리의 최소 10%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4시간 후, 그린과 데일리는 "무단 침입, 평화 방해, 체포 저항" 혐의로 아치에서 내려왔다.[53][54]
이 사건은 미국 법무부가 1966년 2월 4일, 1964년 민권법 제7편에 따라 패턴 또는 관행 사건을 AFL–CIO에 제기하도록 촉구했지만, 법무부는 나중에 혐의를 철회했다.[55] 1966년 소송은 연방 계약 준수 사무소(OFCC)가 전국적으로 건설 노조를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1960년대 중반까지 많은 기술 건설 노조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대표가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 린든 존슨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연방 정부는 사회 모든 수준에서 더 많은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연방 자금 지원을 받는 직업 계약을 통해 평등한 고용 기회를 시행하기 시작했다.[55]
1964년, 펜실베이니아주 워렌의 피츠버그-데스 모인스 철강 회사는 세금 문제로 인해 맥도널드에게 665317USD의 소송을 제기했다. 1965년, 국립공원관리청(NPS)은 피츠버그-데스 모인스 철강 회사에게 건설에 사용된 크리퍼 데릭에서 "P-D-M"(회사 약자)이라는 눈에 띄는 글자를 제거하도록 요청했는데, 이는 국립 기념물에 대한 광고와 관련하여 연방 법을 위반하는 홍보 행위라고 주장했다. 피츠버그-데스 모인스 철강 회사는 처음에는 위험한 사업이라고 여겨 이를 따르기를 거부했지만, 약자를 남겨두는 데 225000USD, 이후 매달 42000USD가 소요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양보했으며,[56] NPS는 소송을 취하했다.[11]
1965년 10월 26일, 국제 철강 노동자 협회는 아치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작업을 지연시켰다. NPS 국장 케네스 채프먼은 조건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약속한 후, 10월 27일 건설이 재개되었다.[57] 16개의 결함이 발견된 후, 트램 운행도 지연되었다. 양 지역 개발청은 열차가 정체된 매일 2000USD의 손실을 입었다고 평가했다.[63]
1966년 1월 7일, AFL–CIO 회원들은 방문자 센터에서의 작업을 중단했으며,[63] 흑인 배관공을 대표하는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U)에 소속된 배관공과 함께 일하기를 거부했다. AFL–CIO의 한 대표는 "이 정책은 인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이 CIU 회원들은 과거에 표준 이하의 임금을 받고 일해 왔다"고 말했다.[58] CIU는 AFL–CIO 노동자가 작업으로 복귀하도록 요구하는 금지 명령을 위해 전국 노동 관계 위원회(NLRB)에 신청했다. 2월 7일, 존 키팅 리건 판사는 AFL–CIO 노동자들이 이차 보이콧에 참여했다고 판결했다. 2월 11일까지 AFL–CIO는 아치 작업을 재개했고, AFL–CIO 계약자는 10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치 작업 견습생으로 등록되었다고 선언했다. 작업 중단은 한 달 동안 지속되었다.[54]
프로젝트는 예상했던 5,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했고, 1964년 6월 기준으로 근로자 수는 100명 미만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1.5억달러에 달하는 다른 강변 복원 노력을 장려했다. 건설 프로젝트에는 50,000석 규모의 스포츠 경기장, 30층 호텔, 여러 사무실 건물, 주차장 4개, 아파트 단지가 포함되었다.[12] "합성 강변 보트 놀이기구"를 포함하는 디즈니랜드 놀이공원 아이디어가 고려되었지만, 나중에 포기되었다.[66][67] 개발자들은 아치를 상업적 촉매로 활용하여,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할 방문객을 유치하고자 했다.[12] 한 추정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아치는 약 5.03억달러 상당의 건설을 유도했다.[153]
1976년 6월, 기념관은 연방 할당을 통해 완성되었다. "토머스 제퍼슨 동상이 공개되었고, 서부 개척 박물관이 미리 공개되었으며, 아치 아래 극장은 레이먼드 터커 시장을 기리기 위해 헌정되었고, 아치에서 제방으로 이어지는 현수선 형태의 곡선 계단이 건설되었다."[11]
4. 특징
게이트웨이 아치는 높이와 너비가 모두 약 192.02m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기념물이며[5][73][68]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스테인리스 스틸 기념물이기도 하다.[69] 아치의 기하학적 형태는 가중된 현수선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는 일반적인 현수선보다 덜 뾰족하고 덜 가파르게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1998년 7월, 세인트루이스의 게이트웨이 재단은 아치 조명 시스템에 대한 자금 지원을 승인했으며, 2001년 11월부터 44개의 투광 조명 시스템을 통해 야간에 아치를 흰색 빛으로 밝히고 있다.[87]
4. 1. 물리적 특징
아치의 폭과 높이는 모두 약 192.02m이다.[5][73] 이 아치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기념물이자[68]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스테인리스 스틸 기념물이다.[69]아치 다리의 단면은 정삼각형이며, 밑면의 각 변은 약 16.46m이고 꼭대기의 각 변은 약 5.18m로 좁아진다.[70] 각 벽은 스테인리스강 외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면에서 약 91.44m까지는 중간에 철근 콘크리트가 있는 두 개의 탄소강 벽의 샌드위치 구조를 덮고 있고, 꼭대기까지는 탄소강으로 되어 있다.[46][71] 아치는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로 방문객을 데려가는 독특한 트램 시스템을 수용하기 위해 비어 있다.[44]

구조 하중은 응력 외피 설계로 지지된다.[72] 각 다리는 두께 약 13.41m, 깊이 약 18.29m인 약 23568666.30kg의 콘크리트에 묻혀 있다.[73][74] 기초의 약 6.10m는 기반암에 있다.[74] 아치는 지진에 강하며[75] 양쪽으로 최대 약 45.72cm까지 흔들리도록 설계되었고,[76] 최대 150mph의 풍속을 견딜 수 있다.[116] 이 구조물의 무게는 약 38898278.43kg이며, 이 중 콘크리트가 약 23568666.30kg, 구조 강철 내부가 약 1956798.04kg, 아치 외부에 덮인 두께 6.3mm의 304 등급 스테인리스강 패널이 약 803765.91kg이다.[64][77] 이 양의 스테인리스강은 역사상 한 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양이다.[69][116]
4. 2. 수학적 요소
이 구조물의 기하학적 형태는 독일계 미국인 엔지니어 한스칼 반델이 사리넨에게 제공한 수학 방정식으로 정해졌다. 브루스 뎃머스 및 다른 건축가들은 이 방정식으로 청사진에 기하학적 형태를 표현했다.[78]
:,
:상수는 다음과 같다.
:
:
:여기서 ''fc'' = 약 190.53m는 도심의 최대 높이, ''Qb'' = 약 117.31m2는 기저부의 아치 최대 단면적, ''Qt'' = 약 11.63m2는 상부의 아치 최소 단면적, ''L'' = 약 91.20m는 기저부 도심의 반 너비이다. 삼각형 단면적은 도심의 수직 높이에 따라 선형적으로 변한다.
이 쌍곡선 함수는 현수선의 모양을 묘사한다. 자체 무게만 지탱하는 체인은 현수선을 형성하며, 체인은 순수하게 인장 상태에 있다.[79][80] 마찬가지로, 자체 무게만 지탱하는 역 현수선 아치는 전단이 없이 순수하게 압축 상태에 있다. 현수선 아치는 모든 아치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데, 그 이유는 추력이 다리를 통과하여 기초에 흡수되기 때문에 다리를 벌어지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11] 게이트웨이 아치 자체는 일반적인 현수선이 아니라, ''y''=''A''cosh (''Bx'') 형태의 더 일반적인 곡선이다.[81] 이것은 그것을 ''가중된 역 현수선''으로 만든다.[82][83] 사리넨은 일반적인 현수선 곡선보다 가중된 현수선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덜 뾰족하고 덜 가파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1959년 그는 "이 아치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진정한 포물선이 아니다. 대신, 매달린 체인의 곡선인 현수선 곡선으로, 추력의 힘이 아치 다리의 중심 안에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곡선이다."라고 썼을 때 아치의 실제 모양에 대한 혼란을 야기했다. 세인트루이스 커뮤니티 칼리지의 수학 교수인 윌리엄 V. 테이어는 나중에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에 편지를 써서 이 구조가 가중된 현수선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84]
4. 3. 조명

아치를 야간에 조명하자는 최초의 제안은 1966년 5월 18일에 발표되었지만, 실행되지는 못했다.[8] 1998년 7월, 세인트루이스의 게이트웨이 재단은 아치 조명 시스템에 대한 자금 지원을 승인하고,[86] 장비 비용, 설치 및 유지 관리를 책임지기로 했다.[85] 1999년 1월, MSNBC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위해 기념물을 배경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아치에 임시 조명 시스템을 설치했다.[86] 2001년 11월부터 아치는 44개의 투광 조명 시스템을 통해 밤 10시부터 오전 1시까지 흰색 빛으로 빛나고 있다.[87] 이 시스템은 랜디 버켓이 설계했으며, 지면 바로 아래 4개의 구덩이에 44개의 조명 설비가 설치되어 있다.[86][85]
2004년 10월 5일, 미국 상원은 미주리주 상원 의원인 짐 탤런트와 키트 본드의 요청으로, 전국 유방암 인식의 달을 기념하여 아치를 분홍색으로 조명하는 법안을 승인했다.[88]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와 메이 백화점이 이 계획을 지지했다.[92] 한 직원은 아치가 "예방과 치료의 중요성을 알리는 등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89] 국립공원관리청은 아치의 미래 사용에 대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계획에 반대했지만, 의회와 "같은 팀"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명이 법적으로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허가했으며, 10월 25일에 이 계획이 실행되었다.[90] 이전에 아치가 홍보 목적으로 조명된 것은 1995년 9월 12일로,[91] 지역 회사인 플레쉬먼힐러드와 테크니컬 프로덕션의 관리하에 무지개 빛이 아치에 비춰져 링링 브라더스 앤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의 ''오즈의 마법사 온 아이스''가 스코트레이드 센터에서 시작하는 것을 홍보한 것이었다.[92][93]
5. 대중 개방
1965년 4월 완공 이후, 게이트웨이 아치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9] 첫해에만 619,763명의 관광객이 아치 꼭대기를 방문했으며, 1969년에는 100만 번째 방문객이, 1979년에는 1,000만 번째 방문객이 전망대에 올랐다.[8] 2010년에는 약 100만 명을 포함하여 4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아치를 찾았고,[94][118] 2022년에는 약 162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산된다.[95]
방문객들은 트램을 이용하여 아치 꼭대기에 올라가 전망대에서 미시시피강과 세인트루이스 시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트램 시스템과 전망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섹션과 해당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1. 방문객 센터


아치 아래에는 지하 방문객 센터가 있다. 이 센터는 국립공원관리청의 미션 66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설계되었다.[106] 면적은 약 6503.21m2이며, 아치 다리 아래,[107] 다리 사이에 위치해 있다. 방문객 센터로의 접근은 아치의 각 다리에 인접한 경사로를 통해 이루어진다.[108]
이 센터에는 사무실, 기계실, 아치 트램 대기 공간과 더불어 주요 시설인 서부 개척 박물관과 아치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는 두 개의 극장이 있다.[108] 구 극장은 1972년 5월에 문을 열었으며,[8] 오디세이 극장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극장은 1990년대에 건설되었고, 4층 높이의 스크린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에는 19세기 미국의 서부 개척에 관한 수백 개의 전시물이 있으며[70] 1977년 8월 10일에 개관했다.[8]
CityArchRiver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방문자 센터와 박물관은 1.76억달러 규모의 확장 및 개조 공사를 거쳤으며 2018년 7월에 완료되었다.[109] 이 개조 공사에는 인터랙티브 스토리 갤러리, 비디오 월, 분수 및 카페가 있는 약 4273.54m2 규모의 지하 추가 공간이 포함되어 있다.[109]
5. 2. 전망대

아치 꼭대기 근처에는 승객들이 트램에서 내려 약간 경사진 곳을 올라가면 전망 구역이 나온다. 약 19.81m가 넘는 길이와 약 2.13m 너비의 이 아치형 데크[110]는 약 160명(4개의 트램에 해당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71] 각 측면에는 16개씩, 총 32개의 창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각 창문의 크기는 7x이다.
이 창문을 통해 동쪽으로는 미시시피강과 남부 일리노이주를 가로질러 최대 약 48.28km까지, 카호키아 언덕에 있는 저명한 미시시피 문화 언덕을 포함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서쪽으로는 세인트루이스 시와 그 너머의 세인트루이스 군까지 조망할 수 있다.
5. 2. 1. 트램 시스템
아치 꼭대기로 올라가는 주요 수단은 각 다리에 설치된 트램이다. 각 트램은 5인승 원통형 객실 8개가 연결된 체인 형태이며,[113][114] 40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다. 트램은 두 대이므로 한 번에 80명의 승객을 수송할 수 있으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116] 객실은 레일 위에서 아치를 오르내릴 때 관람차처럼 회전하며,[74] 이러한 움직임 방식 때문에 "반은 관람차, 반은 엘리베이터"라는 아이디어가 생겨났다.[74] 꼭대기까지 가는 데는 4분,[40] 내려오는 데는 3분이 걸린다.[71]
1962년 5월, 바이-스테이트 개발청은 트램 건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수익 채권을 발행했고,[11][38] 트램 시스템 건설을 위해 197만 7,750달러를 모금했다.[38] 바이-스테이트는 꼭대기까지의 탑승 요금을 1달러로 정하여 채권을 상환했다.[11] 이후 330만 달러의 수익 채권을 투자하여 트램 시스템을 운영해 왔다.[115] 북쪽 다리의 트램은 1967년 6월에 운행을 시작했고,[72] 남쪽 트램은 1968년 3월에 완공되었다.[11] 2007년 기준으로 트램은 약 402335.00km를 운행하며 2,500만 명 이상의 승객을 수송했다.[116]
5. 2. 2. 사건 사고
1970년 7월 8일, 6세 소년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친구 두 명은 기념비가 폐쇄된 후 아치의 남쪽 다리 트램에 갇혔다. 일행은 오후 9시 30분경(CDT)에 아치에 올랐지만, 트램이 하차 구역에 도착했을 때 문이 열리지 않았다. 트램은 지상 약 15.24m 높이의 보관 구역까지 이동했고 전원이 꺼졌다. 한 사람이 트램 문을 열 수 있었고, 약 45분 동안 갇힌 후 경비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117][8]2007년 7월 21일에는 케이블 파손으로 남쪽 트램 운행이 중단되었다. 약 200명의 관광객이 절단된 케이블이 고압 레일에 접촉하여 퓨즈가 끊어지면서 약 3시간 동안 아치 안에 갇혔다. 북쪽 트램도 정전의 영향을 받았지만, 일부 승객은 비상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통해 탈출했다. 모든 트램 탑승객이 안전하게 내려오는 데 약 2시간이 걸렸고, 정전 당시 전망대에 있던 사람들은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아치 관계자는 방문객들이 침착함을 유지했으며 나중에 환불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두 사람이 치료를 받았다.[119][120] 2008년에 트램이 다시 운행을 시작했지만, 전기 스위치 고장으로 다시 폐쇄되었다. 3월 14일에 발생한 이 사건은 "나쁜 우연의 일치"로 묘사되었다.[121]
2011년 2월 9일, 국립공원관리청 직원이 남쪽 트램을 수리하던 중 부상을 입었다. 55세의 직원은 트램과 아치 벽 사이에 갇혔다가 다른 직원의 도움으로 구조되었다. 응급 요원들은 부상당한 직원을 아치 꼭대기에서 치료한 후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병원으로 이송했다.[122]
2011년 3월 24일, 남쪽 트램의 문이 닫히지 않아 약 100명의 방문객이 45분 동안 전망대에 갇혔다. 관광객들은 북쪽 트램을 타고 안전하게 내려왔다. 국립공원관리청은 이 고장을 컴퓨터 오류로 돌렸다. 이 사건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123][124]
2011년 6월 16일 오후 2시 15분경, 아치의 북쪽 트램이 정전으로 멈췄다. 트램은 전망대에서 약 약 60.96m 떨어진 곳에 멈췄고, 승객들은 계단을 올라 전망대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갇힌 40명의 승객은 남쪽 트램을 타고 내려왔다. 정전 당시 120명의 사람들이 전망대에 있었고, 남쪽 트램을 통해 탈출했다. 방문객들은 조명과 에어컨이 없는 트램에 갇혀 있었다. 이 사건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한 방문객이 공황 발작을 겪었고, 한 공원 관리자가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125][127][126]
5. 3. 스턴트 및 사고
아치는 다양한 스턴트 배우들의 표적이 되었으며, 이러한 행위는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몇몇 사람들은 아치에서 낙하하거나 뛰어내렸다. 1980년 6월, 국립공원관리청은 텔레비전 제작자가 아치에서 배우가 뛰어내리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1986년 2월에는 스턴트맨 댄 코코의 유사한 요청도 거절되었다.[8] 슈퍼맨의 스턴트 대역이었던 코코는 7월 4일 축제 기간에 이 도약을 수행하고 싶어했다.[131]'''1980년 사고'''
1980년 11월 22일 오전 8시 45분경(CST), 미주리주 오버랜드 출신의 33세 케네스 스와이어스는 아치 꼭대기에 낙하했다. 그의 계획은 메인 낙하산을 펼친 다음 보조 낙하산을 사용하여 아치에서 뛰어내리는 베이스 점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착륙 후 바람이 그를 옆으로 밀어냈고, 그는 북쪽 다리를 따라 미끄러져 사망했다.[132] 이 사고는 스와이어스의 아내를 포함한 여러 사람에게 목격되었는데, 그녀 역시 낙하산 강하였다. 그녀는 남편이 "과격하고 무모한 스카이다이버가 아니었다"고 말했고, 그가 점프를 2주 전에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 전에 1,600번 이상 점프했던 스와이어스는 한 목격자에 의해 아치 꼭대기에 "아주 잘 착륙했다"고 보고되었지만 "발판이 없었다"고 한다.[133] 스와이어스는 바람에 의해 아치 꼭대기로 날려갔고 보조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아 자신을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132] 연방 항공국은 해당 점프가 승인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사건과 관련된 조종사를 조사했다.[133]
1980년 12월 27일, 세인트루이스 텔레비전 방송국 KTVI는 또 다른 스턴트 착륙의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은퇴한 전문 스턴트맨이라고 주장하는 한 낙하산 강하는 오전 8시경(CST)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산타클로스 의상을 입고 아치에 낙하하여 기념비의 비콘을 잡고 같은 낙하산을 사용하여 무사히 활공했다고 한다. KTVI는 이 행위가 스와이어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며, "도전, 술, 헌사의 조합인 것으로 보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134] 그러나 다음 날, 당국은 해당 점프가 허위라고 선언했다. 세인트루이스 시 경찰국 대변인은 뉴스에서 방송되기 전까지 점프에 대한 전화를 받지 않았으며, 연방 항공국은 받은 두 통의 전화가 매우 유사했다고 말했다. 한 통화자는 사용 중지된 전화번호를 남겼고, 다른 통화자는 수사관에게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135] 아치 관계자는 그러한 점프를 목격하지 못했고, 해당 낙하산 강하자가 제공한 사진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134]
'''1992년 스턴트'''

1992년 9월 14일, 25세의 존 C. 빈센트는 흡착 컵을 사용하여 게이트웨이 아치 꼭대기까지 올라간 뒤 다시 땅으로 낙하했다. 그는 나중에 국립 기념물 등반 및 국립 공원 낙하산 착륙이라는 두 건의 경범죄로 기소되었다. 미국 검사 스티븐 히긴스는 이 행위를 "훌륭한 스턴트"라고 불렀지만 "공원 관리국이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136] 루이지애나주 하비 출신의 건설 노동자이자 다이버인 빈센트는,[137] "흥분, 스릴을 위해서" 그랬으며, 1991년 5월 세계 무역 센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치를 오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몇 달 동안 기념비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고려했다. 인터뷰에서 빈센트는 스턴트 한 달 전에 아치의 전망대를 방문하여 유지보수 해치를 사용하여 기념비 꼭대기에 접근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심한 경비 때문에 그는 대신 더 짧은 건물들을 오르기 위해 전에 사용했던 흡착 컵을 사용하여 아치의 외벽을 오르기로 결정했다. 검은 옷을 입은 빈센트는 9월 14일 오전 3시 30분경(CST) 아치를 기어 올라가서 오전 5시 45분경 탐지되지 않은 채 꼭대기에 도착했고, 75분을 더 쉬면서 사진을 찍은 후 마침내 뛰어내렸다. 이 시간 동안 그는 원 메트로폴리탄 스퀘어 고층 빌딩 내부의 두 명의 교통 리포터에게 목격되었다.[138]
빈센트는 또한 국립공원관리청의 수석 레인저인 데릴 스톤에게 공중에서 발견되었다. 스톤은 빈센트가 착륙 후 낙하산을 잡고 근처 차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했으며, 그 차는 곧바로 떠났다. 그러나 당국은 점프를 비디오로 촬영하고 있던 지상의 두 남자를 구금할 수 있었다.[139] 스톤은 세인트루이스 거주민인 37세의 로널드 캐롤과 27세의 로버트 와인제틀이 무선 통신 헤드셋과 비디오 카메라, 그리고 망원 렌즈가 달린 스틸 카메라와 함께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은 또한 국립 공원에서 소란 행위 및 상업 사진 촬영이라는 두 건의 경범죄로 기소되었다.[138] 빈센트는 나중에 자수하여 처음에는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137] 그러나 그는 결국 캐롤과 와인제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유죄 인정 거래를 받아들였고, 이 두 사람이 스턴트가 발생하기 전날 세 사람의 회의에서 점프를 녹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140] 미국 판사 데이비드 D. 노체는 1993년 1월 28일 캐롤이 음모에 연루되었으며 두 건의 경범죄 모두 유죄라고 판결했다. 노체는 결정에서 "우리나라에는 숙련된 사람들이 용감하고 대담한 행위를 수행하고, 꿈에 그리던 높이에 도달하고, 위험한 모험을 하는 데서 오는 짜릿함과 개인적인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말했지만, 다른 장소는 "단순한 관찰의 짜릿함과 타인의 상상력과 작품에 대한 감사를 위해" 설계되었다고 덧붙였다. 세인트루이스 아치와 제퍼슨 국립 확장 기념관 부지는 후자에 속한다."[141]
유죄 인정 후, 빈센트는 1,000달러의 벌금, 25시간의 사회 봉사, 1년의 보호 관찰을 선고받았다. 1992년 12월, 빈센트는 보호 관찰 위반으로 90일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142]
5. 4. 안전
1995년 오클라호마 시티 폭탄 테러 이후 2년 만에 100만 달러 이상이 대테러 프로그램 시행을 위해 지원되었다. 공원 관리들은 관광객의 활동을 감시하도록 훈련받았고, 눈에 띄지 않는 전자 감지 장치가 설치되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보안 노력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고, 보안 검문소가 방문객 센터 입구로 이동했다.[143] 검문소에서 방문객은 1997년부터 설치된 자력계와 X-선 장비를 통해 검사를 받는다.[144][145]아치는 2002년 7월 4일 기념 행사 기간 동안 제한 구역으로 지정된 여러 미국 기념물 중 하나가 되었다.[146][147] 2003년에는 길이 약 3.05m, 높이 약 81.28cm, 무게 약 1859.73kg의[148] 이동식 저지 방호벽이 설치되어 아치에 대한 테러 공격을 막았다.[149] 그해 말, 이 벽은 아치의 강철 색상과 더 조화롭게 하기 위해 금속으로 덮인 콘크리트 기둥으로 교체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150] 이동식 볼라드는 업그레이드된 공원 관제 센터에서 조작할 수 있다.[151]
2006년, 아치 관계자들은 법 집행관을 대체하여 "물리적 보안 전문가"를 고용했다. 이 전문가의 책임에는 위험 평가, 공원 보안 시스템 테스트, 다른 직원의 보안 인식 제고, 아치의 보안 절차 개선을 위한 다른 정부 기관과의 협력이 포함된다.[151]
6. 상징 및 문화
게이트웨이 아치는 미국의 서부 개척 정신과 국가적 팽창을 상징한다. 2003년 10월 4일자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의 로버트 W. 더피는 "게이트웨이 아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상징적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치는 시각적으로 감동을 주는 것 이상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형태와 기념비적인 크기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움직임을 암시하며, 우리 국가의 팽창에 대한 복잡하고 매혹적인 이야기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라고 평했다.[152]
이 아치는 미국의 서부 개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서부를 개척한 남녀들의 개척자 정신, 그리고 다른 개척지를 위해 노력하는 후세대의 정신"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61]
또한, 게이트웨이 아치는 미래 지향적인 스타일을 통해 자동차 시대와 주변의 자동차 중심 도시 및 주간 고속도로 인프라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새로운 접근 가능한 개척지의 기술적 미래를 약속한다.[162] 이러한 관점은 지속되었으며, 게이트웨이 아치의 상징적인 형태와 의미는 달과 화성으로 가는 관문으로서의 목적을 가진 미래의 루나 게이트웨이의 이름과 로고에 부여되었다.[164]
6. 1. 문화적 상징성
게이트웨이 아치는 세인트루이스의 상징적인 이미지로,[61] 도시 문화의 여러 부분에 등장한다. 기념비 개장 3년 후인 1968년, 세인트루이스 전화번호부에는 "게이트웨이"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65개의 기업과 "아치"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17개의 기업이 있었다. 아치는 주유소와 드라이브인 레스토랑 위에도 나타났다.[128] 1970년대에는 지역 스포츠 팀이 "파이팅 아치스"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세인트루이스 커뮤니티 칼리지는 나중에 (모든 운동 프로그램을 단일 배너로 통합하면서) 스포츠 팀 이름을 "아처스"로 명명했다. 국립공원관리청(NPS)의 수퍼바이저인 로버트 S. 챈들러는 "대부분의 [방문객]은 아치의 크기와 규모에 압도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단지 세인트루이스의 상징으로만 봅니다."라고 말했다.[153]
이 아치는 미주리주의 상징으로도 등장했다. 2002년 11월 22일, 미주리 주 의사당에서 당시 주지사 밥 홀든의 부인인 로리 하우저 홀든은 50개 주 기념 동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미주리 동전 디자인 공모전에서 우승한 디자인을 공개했다. 수채화가 폴 잭슨이 디자인한[156] 이 동전은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가는 미주리 강에서 배를 젓는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의 세 명의 구성원"을 아치를 배경으로 묘사했다.[154] 홀든은 이 아치가 "전체 주의 상징"이라며 "매년 4백만 명의 방문객이 아치를 봅니다. [동전]은 전 세계적으로 더욱 사랑받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155] 아놀드 월드와이드가 디자인한 특별한 번호판에는[158] 아치가 새겨져 있었으며,[159] 이 번호판 판매로 얻은 수익금은 아치의 박물관 및 기타 교육 구성 요소에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었다.[160]

건축 비평가 데이비드 딜런은 ''댈러스 모닝 뉴스''에서 아치는 기능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무한한 미국 낙관주의"의 상징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치의 여러 "분위기"를 "햇빛 속에서 반사적이고, 안개 속에서 부드럽고 잿빛이며, 한순간은 선으로 선명하고, 다음 순간은 기묘한 모습"으로 표현하며 아치가 "경이로움으로 여러 번 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62]
어떤 사람들은 세인트루이스가 실제로 사리넨이 말한 것처럼[23] "서부로 가는 관문"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캔자스시티 출신의 "마감 시인" 캘빈 트릴린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161]
> 저는 여러분이 T.S. 엘리엇과 저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압니다. 네, 그가 세인트루이스 출신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인트루이스는 에로 사리넨의 게이트웨이 아치가 세워진 후 스스로를 서부로 가는 관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저는 캔자스시티 출신인데, 캔자스시티 사람들은 세인트루이스를 서부로 가는 관문이 아니라 동부에서 나가는 출구로 생각합니다.
2010년대에 방문자 센터를 개조하면서 아치의 메시지는 역사적 관점에서 더욱 포괄적이 되었으며, 식민주의의 영향, 특히 미국의 명백한 운명이 제1아메리카인, 원주민 멕시코인의 환경, 토지 및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강조했다.[162][163] 또한 시민권 운동 시대에 해당 지역의 도시 역사와 그곳 사람들의 투쟁, 건설 노동자들의 더 많은 권리를 위한 투쟁을 보여준다.[162]
6. 2. 미주리주의 상징
게이트웨이 아치는 미주리주의 상징으로도 사용된다. 2002년 11월 22일, 미주리 주 의사당에서 당시 주지사 밥 홀든의 부인인 로리 하우저 홀든은 50개 주 기념 동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미주리 동전 디자인 공모전에서 우승한 디자인을 공개했다. 수채화가 폴 잭슨이 디자인한[156] 이 동전은 아치를 배경으로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가는 미주리 강에서 배를 젓는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의 세 명의 구성원"을 묘사했다.[154] 홀든은 이 아치가 "전체 주의 상징"이라며 "매년 4백만 명의 방문객이 아치를 봅니다. [동전]은 전 세계적으로 더욱 사랑받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155]미국 조폐국은 잭슨의 디자인을 수정하여 카누에 루이스와 클라크만 있는 대신 세 명이 있도록 하여 균형을 덜 잡았다. 조폐국 관계자는 세 번째 사람은 클라크의 노예인 요크라고 말했다.[156] 최종 동전은 2003년 8월 4일에 유통되었다.[157] 아놀드 월드와이드가 디자인한 특별 번호판에는[158] "서부로 가는 관문"이라는 문구가 적힌 아치가 새겨져 있었다.[159] 이 번호판 판매로 얻은 수익금은 아치의 박물관 및 기타 교육 구성 요소에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었다.[160]
6. 3. 비판적 시각
데이비드 딜런은 ''댈러스 모닝 뉴스''에서 게이트웨이 아치가 기능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무한한 미국 낙관주의"의 상징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62] 그는 아치의 여러 "분위기"를 "햇빛 속에서 반사적이고, 안개 속에서 부드럽고 잿빛이며, 한순간은 선으로 선명하고, 다음 순간은 기묘한 모습"으로 표현하며 아치가 "경이로움으로 여러 번 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62]일부 사람들은 세인트루이스가 실제로 "서부로 가는 관문"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23] 캔자스시티 출신의 "마감 시인" 캘빈 트릴린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161]
> 저는 여러분이 T.S. 엘리엇과 저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압니다. 네, 그가 세인트루이스 출신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인트루이스는 에로 사리넨의 게이트웨이 아치가 세워진 후 스스로를 서부로 가는 관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저는 캔자스시티 출신인데, 캔자스시티 사람들은 세인트루이스를 서부로 가는 관문이 아니라 동부에서 나가는 출구로 생각합니다.
7. 유지 보수
1968년 6월에 최초로 기물 파손 행위가 발생하여, 범인들이 아치의 여러 부분에 이름을 새겼다. 그 해에 기물 파손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10000USD가 지출되었다.[11] 1969년 3월 5일에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처음으로 아치를 표적으로 삼았다.[8]
2010년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 상부에서 부식 징후가 보고되었다. 북쪽 다리의 탄소강은 녹슬고 있는데, 이는 누수된 용접으로 인한 물 축적의 결과일 수 있으며, 비가 구조물의 외피로 들어오는 환경의 부작용이다. 유지 보수 작업자들은 물걸레[177]와 임시 물통을 사용하여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178] 국립공원관리청(NPS) 문서에 따르면 부식과 녹은 안전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177]
2006년부터 아치를 연구하는 건축 전문가들은 부식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연구를 제안했으며, 2010년 역사적 구조 보고서에서 이를 반복했다. 2010년 9월, NPS는 비스, 재니, 엘스너 어소시에이츠(Wiss, Janney, Elstner Associates, Inc.)와 "전문가가 적절한 장기 솔루션을 개발하고 구현할 수 있도록 아치의 상태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구조 연구 계약을 체결했다.[179]
2014년 10월 21일, 아치의 서쪽 면에서 얼룩 샘플을 채취하여 세척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결정했다. 세척 비용은 약 340000USD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180]
1984년 구조 기술자 티보르 세게지(Tibor Szegezdy)는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아치가 폭풍우에 무너질 때까지 "천 년보다 훨씬 덜"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181]
8. 브릭라인 그린웨이
브릭라인 그린웨이 프로젝트는 포레스트 파크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댄포스 캠퍼스를 게이트웨이 아치 부지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주요한 민관 협력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파트너로는 그레이트 리버스 그린웨이 구역, 아치 투 파크 협력단, 세인트루이스 시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가 있다.[182][183] 브릭라인 그린웨이는 2020년 3월 10일 이전에는 셔토 그린웨이로 알려져 있었다.[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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