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 노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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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시 노부오는 아베 신타로와 아베 요코의 셋째 아들로, 외가인 기시 가문에 입양되었다. 게이오기주쿠 대학교를 졸업하고 스미토모 상사에서 근무하다 2002년 퇴사 후 정계에 입문하여, 2004년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중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외무 부대신, 방위대신을 역임했다. 그는 일본회의 등 우익 단체에 연관되어 있으며, 헌법 개정, 집단 자위권 행사 등을 지지한다. 통일교와의 관계 및 세습 정치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22년 아베 신조 피살 사건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장남 기시 노부치요에게 지역구를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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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노부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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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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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이름 | 아베 노부오 |
출생일 | 1959년 4월 1일 |
출생지 | 도쿄도, 일본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
학력 | 게이오기주쿠 대학 (경제학 학사) |
배우자 | 기시 지카코 |
자녀 | 기시 노부치요 (장남) |
친척 | 아베 히로노부 (형) 아베 신조 (형) 아베 간 (조부) 기시 노부스케 (조부) 사토 에이사쿠 (대숙부) |
부모 | 아베 신타로 (친부) 기시 요코 (친모) (양부) |
경력 | |
전직 | 스미토모 상사 종업원 |
공직 경력 | |
방위대신 | 스가 요시히데 내각 제1차 기시다 내각 제2차 기시다 내각 |
임기 시작 | 2020년 9월 16일 |
임기 종료 | 2022년 8월 10일 |
후임 | 하마다 야스카즈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중요정책 및 핵군축·불확산 문제 담당) |
내각 |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 내각 |
임기 시작 | 2022년 8월 10일 |
임기 종료 | 2023년 2월 3일 |
의회 경력 | |
중의원 | 야마구치 2구 |
당선 횟수 | 4회 |
임기 시작 | 2012년 12월 19일 |
임기 종료 | 2023년 2월 7일 |
후임 | 기시 노부치요 |
참의원 | 야마구치 |
임기 시작 | 2004년 7월 26일 |
임기 종료 | 2012년 11월 30일 |
전임 | 마쓰오카 마스오 |
후임 | 에지마 기요시 |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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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기시 노부오 / 공식 웹사이트 (2023년 4월 22일 아카이브) |
2. 생애
기시 노부오는 아베 신타로와 아베 요코(기시는 성)의 셋째 아들로 도쿄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직후, 자녀가 없었던 외삼촌 기시 노부카즈에게 입양되었다.[1] 대학교 입학 전까지 그는 자신의 친부모와 아베 히로노부, 아베 신조 형제 관계를 알지 못했다.
기시는 기시 노부스케 전 내각총리대신과 함께 도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2] 1981년 게이오기주쿠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스미토모 상사에 입사하여 2002년까지 미국, 베트남, 호주 등에서 근무했다.
2. 1. 출생과 성장
1959년 4월 1일, 일본 도쿄도에서 아베 신타로와 요코 부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친형은 히로노부와 신조이다. 출생 직후 외가인 기시 가(岸家|기시 가일본어)에 양자로 입적되었는데,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장남 노부카즈에게 자녀가 없었고, 소아마비를 앓아 정치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기시 노부오는 대학교 입학 전까지 친부모와 형제 관계를 알지 못했다.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호적 등본을 떼었을 때 '양자'라는 글자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한 달 동안 혼란스러웠다고 회고했다.[1]
쇼토 유치원, 게이오기주쿠 유치사(초등학교), 게이오기주쿠 보통부(중학교),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를 거쳐 게이오기주쿠 대학 경제학부에 진학했다.[25] 1981년 대학 졸업 후 스미토모 상사에 입사하여 2002년까지 근무했다.[25] 이 기간 동안 미국, 베트남, 호주 등에서 근무하며 식량 조달 업무를 담당했다.[26]
2. 2. 정치 입문
2002년 스미토모 상사를 퇴사하고 정계 입문을 준비했다. 2004년 7월 제20회 참의원 선거에 야마구치현 선거구에서 자민당 공천으로 출마, 당선되어 참의원 의원이 되었다.[2] 이후 후쿠다 야스오 내각과 아소 다로 내각에서 방위대신 정무관을 역임했다.[4] 2010년 7월 제22회 참의원 선거에서 재선되었다.2011년 4월 14일, 동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추경 예산안 논의 중, 정부가 피해 복구 지원 예산 확보를 위해 정부개발원조(ODA) 예산 삭감을 결정하자 이에 반대하는 초당파 연합에 참여했다.[28][29]
2. 3. 중의원 의원 시절
2012년 참의원 의원직을 사퇴하고 제46회 총선거에 야마구치현 제2구에서 중의원 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당의 히라오카 히데오를 꺾고 당선되었다.[2],[30],[31] 2013년 외무 부대신으로 취임했다.[5] 2014년 제47회 총선거에서 재선되었다.2016년 중의원 외무위원장이 되었다.[32] 같은 해 외무 부대신에 다시 취임했다.[33] 2017년 제48회 총선거에서 3선되었다.
2018년 중의원 안전보장위원장이 되었다.[34] 2019년 중의원 의원운영위원회 수석이사에 취임했다.
2020년 스가 내각에서 방위대신에 취임했다.[7] 2021년 제49회 총선거에서 4선되었다.
2. 4. 아베 신조 피살 사건 이후
2022년 7월 8일, 친형 아베 신조가 나라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시내 거주 남성에게 뒤에서 자가제 총으로 사살되었다(아베 신조 피살 사건).[36]같은 해 8월 10일, 내각총리대신 보좌관(국가 안전 보장에 관한 중요 정책 및 핵 군축·불확산 문제 담당)에 취임했다.
같은 해 12월 11일, 이와쿠니시에서 열린 후원회 모임에서 "이쯤에서 (장남) 노부치요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발언하며, 건강 악화를 이유로 차기 중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고 정계 은퇴를 할 의향을 밝혔다. 장남 기시 노부치요도 모임에 동석하여 "지역을 위해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하며, 입후보 의지를 보였다.[42][43] 그러나 SNS에서는 "선거구는 당신의 영지가 아니다", "왜 당연하게 세습인가" 등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35]
2023년 2월 2일, 아베 파벌 모임에서 의원직 사직을 공식 표명하고,[49] 다음 날인 3일 중의원 의장 공저에 의원 사직원을 제출했다.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직도 같은 날 사직했다.[50][51][52] 2월 7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의원 사직이 허가되었다.[53]
3. 정책 및 주장
기시 노부오는 형인 아베 신조와 마찬가지로 역사 수정주의 로비 단체인 일본회의와 연관되어 있으며,[18] 국회 내 우익 단체인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창생 '일본'의 회원이다.[18]
2012년 마이니치 신문이 국회의원들에게 제출한 설문조사에서 기시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19]
질문 | 답변 |
---|---|
일본국 헌법 개정 | 찬성 |
제9조 개정을 통한 집단 자위권 행사 | 찬성 |
국회 개혁(양원제 대신 단원제) | 반대 |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 | 찬성 |
2030년대까지 원자력 발전 0 목표 | 반대 |
주 오키나와 미국 해병대 후텐마 비행장 이전 | 찬성 |
정부의 센카쿠 열도 매입에 대한 평가 | 반대 |
중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 | 찬성 |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참여 | 반대 |
향후 핵무장한 일본에 대해 고려 | 찬성 (2020년 방위상 임명 후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힘)[2] |
결혼 후에도 여성이 황실 지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황실 개혁 | 반대 |
2014년 3월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에서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지 않으며, 아베 내각이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평화를 추구해 온 일본의 기록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20]
3. 1. 헌법
기시 노부오는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입장이다.[19] 2021년 조사에서 헌법 개정에 "찬성"이라고 답변했다.[56]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2021년 조사에서 "찬성"이라고 밝혔다.[60] 또한, 헌법을 개정하여 긴급 사태 조항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서도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의 설문 조사에서 "찬성"이라고 답변했다.[57]
3. 2. 외교 및 안보
기시는 2019년에 일본이 북한에 대한 방어 조치로 공격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옹호하며, 일본은 방어를 미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3] 그러나 2021년 설문 조사에서는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적기지 공격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하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56]북한에 대한 정책에서도, 대화보다 압력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2021년 설문 조사에서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했다.[56]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2021년 같은 조사에서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했다.[56]
3. 3. 젠더
기시 노부오는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 도입에 대해 2010년 설문 조사에서는 "반대"라고 답변했고[58], 같은 해 반대 청원을 제출했다.[59] 그러나 2021년 아사히 신문사의 설문 조사에서는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변하여 유보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56]동성 결혼을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에 대해서는 2021년 아사히 신문사의 설문 조사에서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변하여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56]
"LGBT 등 성 소수자를 둘러싼 이해 증진 법안을 조기에 성립시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2021년 아사히 신문사의 설문 조사에서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변했다.[56]
여성 의원 할당제 도입에 대해서는 2021년 NHK의 설문 조사에서 답변하지 않았다.[60]
3. 4. 기타
- 2021년 NHK 앙케이트에서 원자력 발전 의존도 문제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다.[60]
- 2021년 NHK 앙케이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으로 소비세율을 일시적으로 인하하는 것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다.[60]
- 모리토모 학원에 대한 국유지 매각을 둘러싼 공문서 위조 문제와 관련, 2021년 5월 6일 국가는 "아카기 파일"의 존재를 처음 인정했다.[61] 그러나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재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밝혔고,[62]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총재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도 재조사 실시를 부정했다.[63] 같은 해 마이니치 신문사의 앙케이트에서 국가의 대응에 대해 "더 이상 조사나 설명은 필요 없다"고 답변했다.[57]
- 2012년 앙케이트에서 여성 궁가 창설에 대해 "반대"라고 답변했다.[64]
4. 논란 및 비판
기시 노부오는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는 일본회의 회원이며, 아베 신조와 같이 역사 수정주의를 지지한다.[18]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등 국회 내 우익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다.[18] 2021년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는데, 이는 2016년 이후 현직 방위대신으로서는 처음이었다.[11] 한국 외교부는 그의 방문을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11]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 관련 단체 행사에 참석하여 축전을 보냈고, 선거 과정에서 통일교 측의 지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86][87][13][14][15] 2022년 7월 26일 기자 회견에서 "교류도 있고, 선거 때도 도움을 받고 있다"라며 통일교와의 관계를 인정했고,[86][87] 8월 2일에는 "제대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91]
기시는 건강상의 이유로 중의원에서 사임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자신의 지역구를 장남에게 물려주려는 시도로 인해 세습 정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17]
4. 1. 역사 수정주의
기시 노부오는 일본회의 회원으로, 아베 신조와 마찬가지로 공공연한 역사 수정주의를 지지한다.[18] 그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등 국회 내 우익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다.[18]2021년에는 논란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는데, 이는 2016년 이후 현직 방위대신으로서는 처음이었다.[11] 한국 외교부는 그의 방문을 "개탄스럽다"고 표현하며 비판했다.[11]
4. 2. 통일교와의 관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 관련 단체 행사에 참석하여 축전을 보냈으며, 선거 과정에서 통일교 측의 지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86][87][13][14][15]- 2006년 5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관련 단체인 천주평화연합(UPF)이 주최한 "조국향토환원 일본대회"에 축전을 보냈다.[66][67]
- 2013년 6월 30일, 아베 신조 총리는 도쿠노 히데하루 일본 통일교 회장 등 통일교 고위 관계자들과 면담했고, 이 자리에 기시 노부오도 동석했다.[73][74][75]
- 2022년 7월 26일 기자 회견에서 "교류도 있고, 선거 때도 도움을 받고 있다"라며 통일교와의 관계를 인정했다.[86][87]
- 2022년 8월 2일 기자 회견에서 통일교와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91]
4. 3. 세습 정치
기시는 건강상의 이유로 중의원에서 사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으며, 2023년 4월 23일 보궐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었다.[17] 이러한 기시의 움직임은 자신의 지역구를 장남에게 물려주려는 시도로, 세습 정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5.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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