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토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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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이토 고난은 1866년 일본에서 태어난 동양사학자로, '교토학파'를 형성하며 일본과 동아시아 역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국수주의적 성향을 보였고, 러일전쟁 개전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토제국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당송변혁론'을 제시하여 중국사 시대를 구분하는 독특한 시각을 보였으며, '야마타이국 기나이설'을 주장하며 학계 논쟁을 벌였다. 그의 저서 『지나론』과 『신지나론』은 전후 침략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2000년대 이후 재평가되고 있으며, 현재 그의 연구는 동아시아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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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토 고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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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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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나이토 도라지로 |
다른 이름 | 나이토 고난 |
출생 | 1866년 8월 27일 |
출생지 | 에도 막부 무쓰국 가즈노시 |
사망 | 1934년 6월 26일 |
사망지 | 일본 제국 교토부 가모정 |
국적 | 일본 제국 |
묘소 |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
학력 | |
출신 학교 | 아키타 사범학교 |
가족 | |
부모 | 나이토 조이치, 요우코 |
경력 | |
활동 기간 | 불명 |
연구 분야 | 동양사학 |
연구 기관 | 교토 제국대학 |
박사 과정 지도교수 | 카노 교키치 |
주요 지도 학생 | 칸다 키이치로 미야자키 이치사다 타무라 짓조 |
학위 | 문학 박사 (교토 제국대학) |
영향 | 교토 학파 (동양사학) |
주요 업적 | 교토 대학 동양사 강좌의 기초 |
주요 저서 | 『지나 상고사』 『청조사통론』 |
특기할 개념 | 야마타이국 기나이설 당송 변혁론 |
2. 생애
1866년 아키타현에서 태어난 나이토 고난은 언론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1907년 봉천에서 만문노당을 발견했다. 같은 해 가노 고키치의 초청으로 교토 제국 대학 동양사학과 창설에 참여했다.
나이토 고난은 당나라 중기에서 송나라 초기 사이의 사회, 정치, 인구 통계학적, 경제적 변화를 분석하여, 이 시기가 중국 역사의 중세(''추세'')와 근세(''킨세이'') 시기 사이의 전환점이라는 "당송 변혁" 이론을 주장했다.
일본 역사에서는 야마타이국이 긴키 지방이 아닌 규슈에 위치했다고 주장했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866년 무쓰국 게마나이정(오늘날 아키타현 가즈노시 도와다게마나이)에서 난부번 번사 나이토 조이치와 요코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이치는 절충학파에 속했다.[3] 본명인 '토라지로'는 아버지 조이치가 요시다 쇼인에게 심취했기 때문에 요시다 쇼인의 통칭인 "토라지로"에서 따와 명명했다.[4]6세에 대학을 4개월 만에 떼고, 7세에 이십사효와 사서를 익혔으며, 13세에는 일본외사를 통독하고 시를 짓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학문을 잘 해도 잘난 체 하지 않고 싸움은 한 번도 한 적 없다. 기특한 아이다'라는 평판을 받았다. 아키타사범학교 입학 후에도 혼자 기독교 교회에 다니며 미국인 선교사 갈스트 스미스에게 만국사 등을 배웠다.
1884년 아키타사범학교를 4년 과정을 2년 반 만에 졸업하고, 10대에 쓰즈레코소학교의 실질적인 교장인 주석훈도가 되었다.[5]
2. 2. 언론 활동
1887년 교토에 상경하여 오우치 세이란의 불교잡지 명교신지 편집에 종사하였고, 이어서 세이란의 「만보일람」과 「대동신보」의 기자를 한 후에, 국수주의 성향의 세이쿄샤에 입사, 기관지 일본인, 아세아(「일본인」의 대리 잡지)의 편집을 하였다.[1] 이후 미카와신문, 오사카아사히신문, 대만일보, 만조보 등에서 편집자로 활동하며 이름을 떨쳤다. 러일전쟁에서는 개전론을 주장했다.2. 3. 교토제국대학 교수 시절
1907년 교토제국대학 문과대학 사학과 동양사학강좌 강사로 취임하고, 1909년 교수가 되었다.[28] 가노 나오키, 구와라 지쓰조(桑原隲蔵)와 함께 '교토학파'를 형성하여 교토대학의 학보(学宝)로 칭해졌으며, 동양사 담당강좌에 20년간 있었다.1910년, 가노 나오키 총장의 추천으로 문학박사[29]가 되었다. 주요 저서 중 하나인 『청조사 통론』(清朝史通論)은 박사호가 관습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박사논문에 상당하는 논고를 써야 한다고 결의하고 집필한 것이어서 이 논문 자체는 박사학위 논문은 아니다.
도쿄제국대학의 시라토리 구라키치와는 '동쪽의 시라토리 구라기치, 서쪽에는 나이토 코난'이라고 칭해졌으며, '실증학파의 나이토 코난, 문헌학파의 시라토리 구라키치'라고도 불렸다. 특히 야마타이국의 위치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야마타이국 기나이설을 주장, 야마타이국 규슈설을 주장한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논쟁을 벌였다.
2. 4. 만년
1926년, 대학교 60세 정년제에 따라 교토제국대학을 은퇴하였고[28] 제국학사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30] 은퇴 후에는 교토부 베하라촌(현재 기즈가와시)에 은거하며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1934년 6월 26일 사망했다. 묘소는 교토 히가시야마의 호넨인에 있다.
3. 학설
나이토 고난은 당송변혁론, 야마타이국 위치 논쟁, 오닌의 난의 역사적 의의 등 크게 세 가지 주요 학설을 주장했다.
- 당송변혁론에서 나이토 고난은 중국사의 시대 구분을 당과 송 사이를 기준으로 크게 나누었다.[15] 그는 당나라 중기에서 송나라 초기 사이에 일어난 사회, 정치, 인구 통계학적, 경제적 변화가 중국 역사의 중세와 근세 시기 사이의 전환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 일본 역사에서, 나이토는 야마타이국이 긴키 지방이 아닌 규슈에 위치했다고 주장했다.
- 나이토 고난은 오닌의 난을 기점으로 일본 사회가 크게 변화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3. 1. 당송변혁론
당송변혁론은 나이토 고난이 주장한 독특한 문화사관으로, 중국사의 시대 구분을 당과 송 사이를 기준으로 크게 나누는 중국사 시대 구분 논쟁의 대표적인 이론이다.[15] 나이토는 진한시대를 상고(上古)로, 후한부터 서진까지를 제1차 과도기로, 오호 십육국 시대부터 당 중기까지를 중세로 설정했다. 당 후기부터 오대 십국 시대를 제2차 과도기로 보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회가 크게 변혁했다고 보았다. 송 이후는 근세(여기서 말하는 "근세"는 현대의 "근대"에 가깝다)이며, 귀족 시대에서 평민 시대로의 변혁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15]이 학설은 나이토 사후 미야자키 이치사다 등 차세대 교토학파 학자들이 발전시켰고, 송 이후 중세설을 주장하는 역연파와의 시대구분논쟁이 전개되었다.
3. 2. 야마타이국 기나이설
나이토 고난은 야마타이국의 위치에 대한 논쟁에서 야마타이국 기나이설을 주장했다. 그는 야마타이국 규슈설을 주장한 도쿄 제국 대학의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동쪽의 시라토리 구라키치, 서쪽의 나이토 고난", "실증학파의 나이토 고난, 문헌학파의 시라토리 구라키치"라고 불릴 정도였다.[6]3. 3. 오닌의 난의 일본사적 의의
나이토 고난은 1921년(다이쇼 10년) 강연 〈오닌의 난에 관하여〉에서 "대체로 오늘날 일본을 알기 위해 역사 연구를 하는 데는 고대 역사를 연구할 필요는 거의 없습니다. 오닌의 난 이후의 역사를 알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발언하였다.[33][34] 이 발언은 일본 중세사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되며,[35][36] 오닌의 난을 기점으로 일본 사회가 크게 변화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3. 4. 『지나론』과 『신지나론』
1914년 간행된 『지나론』은 당시 중화민국 초기의 정치 상황, 특히 위안스카이의 전제를 당송변혁론에 근거하여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이토 고난은 송대 이후를 "평민"의 시대로 규정하고, 위안스카이의 전제 정치가 시대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15][16][17]1924년 간행된 『신지나론(新支那論)』은 위안스카이 사후 군벌 내란과 5·4 운동으로 인한 반일 운동 및 서구화의 과열을 반영하여 『지나론』의 내용을 갱신한 것이다. 나이토 고난은 5·4 운동을 주도한 젊은이들을 서구 사상에 물들어 전통 문화를 파괴하는 "신인"으로 비판했다. 그는 "문화와 예술은 고상한 것, 정치는 저속한 것"이라는 전제하에, 중국인은 문화와 예술에 전념하고, 중국 통치는 일본이나 서구 열강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열강의 중국 침략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이토 고난은 중국을 문화적 선진국으로, 일본과 서구 열강을 후진국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15][16][17]
4. 사후 평가 및 영향
나이토 고난의 학문적 업적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서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그의 '당송변혁론'은 동아시아 역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에서는 『지나론』과 『신지나론』이 침략주의적이었다는 이유로 노하라 시로와 마스부치 다쓰오에게 비판받았다.[18] 한편, 당송 변혁론은 미야자키 시테이 등 교토학파에 계승되어 역연파와의 시대 구분 논쟁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해설서는 조슈아 포겔의 『내등호남 포리티스와 시노로지(內藤湖南 ポリティックスとシノロジー)』(원저 1984년, 일본어 번역 1989년) 정도였다.[17] 미타무라 타이수케의 『내등호남(内藤湖南)』(1972년, 주고 신서)도 있지만, 전반생의 전기가 중심이며, 학문에 대한 해설은 부족했다.[17]
하지만 2000년 전후부터 저작의 복간, 재평가, 고난 연구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으며,[17] 중국에서도 같은 시기부터 연구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19]
5. 영전
- 1924년 2월 15일 종4위[31][9]
- 1924년 훈삼등서보장[32][10]
6. 가족 및 친족
7. 저작
内藤湖南全集|나이토 고난 전집일본어』 (간다 기이치로・内藤乾吉|나이토 겐키치일본어 편) (전14권: 지쿠마 서방, 1969 - 1976, 복간 1996 - 1997.)
# 근세 문학사론, 제갈무후, 누주타주, 잡찬
# 연산초수, 속 누주타주 등
# 「오사카 아사히 신문」 게재 논설 - 1900년 8월부터 1906년 4월까지
# 속 「오사카 아사히 신문」 게재 논설 잡문, 시사론 - 메이지 시대부터 만년까지
# 속 시사론, 청조 쇠망론, 지나론, 신지나론
# 잡찬, 서문, 여행기, 한국 동북 변경고략, 만주 사진첩
# 연기소록, 일명 지나학총고, 독사총록
# 동양 문화사 연구, 청조사통론
# 일본 문화사 연구, 선철의 학문
# 지나 상고사, 지나 중고의 문화, 지나 근세사
# 지나 사학사
# 목도서담, 지나 목록학 등
# 지나 회화사[39], 회화사 잡찬
# 호남 문존, 호남 시존, 화가, 서간, 색인 등
근년에 간행된 저작은 다음과 같다.
- 『일본 문화사 연구』(고단샤 고단샤 학술 문고, 상・하, 초판 1976년, 해설 구와바라 다케오) 중판 다수
- 『선철의 학문』(지쿠마 서방 지쿠마 학예 문고, 2012년, 해설 사토 마사히데)[40]
- 『청조사통론』(헤이본샤 동양 문고, 1992년) 清朝衰亡論|청조 쇠망론일본어을 병록
- 『지나 사학사』(헤이본샤 동양 문고 전2권, 1993년). 각・온디맨드판 2008-2009년
- 『동양 문화사』(주오코론신샤 중공 클래식스, 2004년, 해설 도나미 마모루)[41]
- 『지나론』(분게이슌주 분슌 학예 라이브러리[42], 2013년), 新支那論|신지나론일본어을 병록
- 『중국 근세사』(이와나미 서점 이와나미 문고, 2015년, 해설・주 徳永洋介|도쿠나가 요스케일본어)
- 内藤湖南 未収録文集|나이토 고난 미수록 문집일본어(内藤湖南研究会|나이토 고난 연구회일본어 편, 발행: 河合文化教育研究所|가와이 문화교육연구소일본어/판매: 河合出版|가와이 출판일본어, 2018년). 전집에 미수록된 327편
참조
[1]
서적
The Oxford Illustrated History of Modern China
https://books.google[...]
OUP Oxford
2016-06-16
[2]
문서
戸籍上は[[慶応]]2年[[5月27日 (旧暦)|5月27日]]([[1866年]][[7月9日]])
[3]
웹사이트
岡村敬二「内藤湖南生誕の地 毛馬内を訪ねて」
https://nojimatsuyos[...]
[4]
문서
父の十湾は実際に吉田松陰に会っている。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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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の「十湾」と子の「湖南」は[[十和田湖]]からの命名である。
[6]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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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都帝国大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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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国学士院一覧 昭和2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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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報』第3443号「叙任及辞令」
1924-02-18
[10]
간행물
『官報』第3449号「叙任及辞令」
1924-02-25
[11]
서적
日本文化史研究
https://dl.ndl.go.jp[...]
弘文堂書房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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応仁の乱に就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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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中世の非農業民と天皇
岩波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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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に古代はあったのか
角川学芸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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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応仁の乱―戦国時代を生んだ大乱
中央公論新社
2016-10
[14]
영상
内藤湖南、応仁の乱を論じる
http://ibs-web.nichi[...]
2017-09-26
[15]
간행물
内藤湖南「支那論」のすごさ
2013-12
[16]
서적
近代日本の中国観 石橋湛山・内藤湖南から谷川道雄まで
[17]
서적
支那論
文藝春秋
[18]
웹사이트
内藤湖南と『支那目録学』
http://bunkyoken.kaw[...]
[19]
논문
中国における内藤湖南研究
http://hokuga.hgu.jp[...]
北海商科大学
[20]
문서
世界史こぼれ話1
[21]
문서
内藤湖南
[22]
문서
支那絵画史
[23]
문서
先哲の学問
[24]
문서
日本の名著41 内藤湖南
[25]
문서
2013年10月に創刊、最初の発行書目
[26]
문서
著者は東北大学教員、2017年に『内藤湖南的中国史像』で中国語出版(北京:社会科学文献出版社)。蔵書資料の整備や「全集」復刊もあり、21世紀に入り中国語圏の研究者により研究成果が相次ぎ刊行している。
[27]
문서
호적상 1866년 7월 9일
[28]
인용
京都帝国大学一覧
https://dl.ndl.go.jp[...]
京都帝国大学
[29]
간행물
『官報』第8196号、明治43年10月14日、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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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0-1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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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l.ndl.go.jp[...]
帝国学士院
[31]
간행물
『官報』第3443号「叙任及辞令」
1924-02-18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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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報』第3449号「叙任及辞令」
19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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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大学出版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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岩波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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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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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0
[37]
서적
内藤湖南
[38]
서적
世界史こぼれ話1
[39]
서적
支那絵画史
고분도
1967
[40]
서적
先哲の学問
치쿠마총서
1987
[41]
서적
日本の名著41 内藤湖南
中央公論社
1971
[42]
간행물
2013年10月に創刊、最初の発行書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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