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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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1894년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근대 교육이 시작된 이후, 일제강점기, 미군정 시기의 교수요목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여러 차례의 개정을 통해 변화해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식민 통치를 위한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미군정 시기에는 일제 잔재 청산과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교과중심 교육과정, 경험중심 교육과정, 인간중심 교육과정, 통합중심 교육과정을 거쳐 학생 중심 교육으로 전환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수시 개정을 통해 교육과정이 유연하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 도입되었고,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한국의 근대적인 교육이 시작되었다. 1881년 조선 정부는 국방력 강화를 위해 별기군을 설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서양식 군사 훈련과 함께 외국어 교육과 과학교육이 어느 정도 실시되었다. 별기군의 훈련은 1882년 임오군란으로 중단되었지만, 그 후에도 갑오개혁 전까지 여러 실험적인 시도가 있었다. 민간에서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포교를 위해 의료 및 교육 사업을 추진하면서 광혜원,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을 설립하였는데, 이는 민간이 설립한 최초의 근대적인 교육 기관이자, 훗날 대학교들의 기원이 되었다.
미군정 시대에 급히 만들어진 교과과정은 한국전쟁 이후 전면 개편이 필요했다. 이에 1954년 '교육과정 시간배당 기준령'이 제정되고, 이듬해 새 교육과정이 공포되었다.[2]
2.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1894년 갑오개혁은 근대적인 국가 체제를 도입하면서 이러한 시도들을 국가 중심의 공교육으로 통합시켰는데, 이를 '갑오교육개혁'이라 부르기도 한다. 갑오교육개혁에 따라 국가 교육을 담당하는 학부가 신설되었으며, 1895년에는 소학교와 소학교 교원을 양성하기 위한 사범학교가 생겼다. 이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사립학교가 등장하면서 1900년에는 사립학교법이 제정되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이 일본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한국의 교육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11년 조선교육령을 통해 일제는 한국 교육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1] 일제는 교육에 관한 칙어에 따라 충량한 국민을 육성하고 시세와 민도에 맞게 가르치는 것을 지침으로 삼아, 한국인과 일본인을 차별하는 교육 정책을 실시했다. 보통학교 수업 연한은 4년으로 하고, 고등교육기관은 설치하지 않아 일본 식민 통치에 복종하는 인간과 최소한의 사회적 능력만 갖춘 인간을 양성하고자 하였다.[1] 1919년 3·1 운동 이후, 일제는 식민지 정책을 문화 정책으로 바꾸고 1920년에 1차 조선교육령을 수정하여 보통학교 수업 연한을 4년에서 6년으로 늘렸다.[1]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에서는 일시동인(一視同仁)을 교육 지표로 삼아 일본인과 조선인에게 같은 교육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식민 통치 기반이 완성되었다고 본 일제의 동화 정책에 불과했다.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일제가 한반도 병참기지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개편되었다. 1943년 제4차 조선교육령은 학교 교육을 전시 체제에 맞게 개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1]
조선총독부의 1944년 자료에 따르면, 초등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던 조선 주민은 전체의 13.8%에 불과했다. 이는 교육령에 의한 교육 제도가 조선인의 진정한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1]
1945년 9월부터 1954년 3월까지는 교수요목기의 교육과정이 운영되었다. 해방 이후 38도선 이남에 주둔한 미군정청 학무국은 일제 강점기의 교육과정을 사용하지 말 것을 지시하였으나, 새로운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즉시 내놓지는 못하고 '교수요목 제정위원회'를 조직하여 교수요목을 제정하고 교과서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였다.
교수요목기에는 교과의 지도 내용을 상세히 제시하고, 기초 능력 배양에 힘을 실었으며, 분과주의를 채택하여 체계적인 지도와 지력(知力) 배양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홍익인간''' 정신에 입각하여 애국 애족 교육을 강조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정신 및 생활면에서 제거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2. 1. 조선 후기 · 대한제국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한국의 근대적인 교육이 시작되었다. 1881년 조선 정부는 국방력 강화를 위해 별기군을 설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서양식 군사 훈련과 함께 외국어 교육과 과학교육이 어느 정도 실시되었다. 별기군의 훈련은 1882년 임오군란으로 중단되었지만, 그 후에도 갑오개혁 전까지 여러 실험적인 시도가 있었다. 민간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있었는데, 19세기 말 천주교와 개신교가 포교를 위해 의료 및 교육 사업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세워졌던 광혜원,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은 민간이 설립한 최초의 근대적인 교육 기관으로 볼 수 있으며, 정부 수립 후 볼 수 있는 대학교들의 기원이 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은 근대적인 국가 체제를 도입하면서 이러한 시도들을 국가 중심의 공교육으로 통합시켰는데, 이를 '갑오교육개혁'이라 부르기도 한다. 갑오교육개혁에 따라 국가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인 학부가 신설되었으며, 1895년에는 초등 교육 기관인 소학교와 소학교 교원을 양성하기 위한 사범학교가 생겼다. 이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사립학교가 등장하면서 1900년에는 사립학교법이 제정되었다.
2. 2. 일제 강점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이 일본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한국의 교육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11년 조선교육령을 통해 일제는 한국 교육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1]
조선총독부의 1944년 자료에 따르면, 초등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던 조선 주민은 전체의 13.8%에 불과했다. 이는 교육령에 의한 교육 제도가 조선인의 진정한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1]
2. 3. 교수요목기의 교육과정
1945년 9월부터 1954년 3월까지의 시기이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자 38도선 이남의 한국에는 미군이 주둔하여 군정을 실시하였다. 당시 남한의 교육을 담당한 군정청 학무국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교육과정을 사용하지 말 것을 지시하였으나, 새로운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즉시 내놓지는 못하고 '교수요목 제정위원회'를 조직하여 교수요목을 제정하고 교과서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였다.
교수요목기에는 교과의 지도 내용을 상세히 제시하고, 기초 능력 배양에 힘을 실었으며, 분과주의를 채택하여 체계적인 지도와 지력(知力) 배양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홍익인간''' 정신에 입각하여 애국 애족 교육을 강조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정신 및 생활면에서 제거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당시의 교수요목은 제정 시간이 부족하여 각 교과별로 가르칠 주제를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쳤고, 내용과 수준이 학생들의 지적 능력에 비해 너무 높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교과목별 수업 시간은 교수요목에 준하고 있으나, 교육과정 운영은 학교장에게 융통성을 부여하였으므로,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학교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3.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53년 문교부는 교육법 155조에 따라 교육과정 연구위원회와 각 과 교수요목 제정심의회를 소집, 각급 학교의 시간배당기준표를 작성하여 이듬해 문교부령 35호로 공포하였다.[2]
1949년 제1차 교육과정 개정 이후 1987년~1988년 제5차 교육과정 개정까지 각급 학교별로 여러 차례 개편이 이루어졌다. 제4차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에 매주 1시간의 자유선택 교과시간을 신설하여 종교재단 학교는 종교교육을, 그 밖의 학교는 교장 훈화나 학생 필요에 따른 특별교과활동을 학교장 재량으로 실시할 수 있게 하였다. 이는 광복 후 최초의 일이었다.[2]
3. 1. 제1차 교육과정 (1954~1963)
1954년 4월부터 1963년 1월까지 시행된 제1차 교육과정은 교과중심 교육과정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교육법이 제정됨에 따라, 교수요목이 임시방편으로서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기존의 교과를 바탕으로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가수준 교육과정 체제를 확립하였다.[1] 이 교육과정에서는 학습자의 경험과 생활을 중요시하는 생활중심 교육과정의 개념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사조와 신교육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1]
1차 교육과정은 전쟁으로 파괴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현실 생활을 개선하고 향상시킬 사회 개선 의지를 강조하였으며, 정부 수립 후 제정 및 공포한 교육법의 교육 목적 달성을 목표로 하였다.[1] 또한 반공교육, 도의교육, 실업교육을 강조하고 특별활동 시간을 최초로 배정했다는 특징이 있다.[1]
편제는 교과활동과 특별활동의 두 영역으로 구성되었고, 교과 구성과 시간 배당 기준이 설정되었다.[1] 국민학교의 교과는 국어, 사회생활, 산수, 자연, 체육, 음악, 미술, 실과의 8과목으로 구성되었고, 교과 외에 특별활동 시간도 편성되었다.[1] 도덕교육용 교과서 '초등도의'에 반공 내용을 담아 수업 시간에 활용하도록 하였으나, 도덕 과목이나 별도의 도덕교육 시간은 편성되지 않았다.[1] 또한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으로 교과목을 설정하기 시작하였으며, 인문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의 교과 구성에서 필수 교과는 동일하게 하고 선택 과목을 달리하여 공동의 목표 달성과 각 학교의 개성을 신장시키는 데 노력하였다.[1]
3. 2. 제2차 교육과정 (1963~1973)
1963년 2월부터 1973년 1월까지 시행된 제2차 교육과정은 1차 교육과정 수립 당시 사회의 비정상성과 체제 미흡함을 이유로 경험중심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개정되었다. 2차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을 '학교의 지도 하에 학생들이 가지는 경험의 총체'로 파악하여 자주성, 생산성, 유용성을 내용면에서 강조하였다. 또한 교육과정 운용에 있어 지역성을 강조하여 각 지역사회의 자원을 학습 경험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적용은 지역사회의 실정에 맞도록 재구성하여 융통성과 신축성을 기하도록 하였다.
1차 교육과정에서 교과과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교과의 활동만을 강조한 것과 달리, 2차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일련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교육과정 전개에 있어 체계성을 두어 총론과 각론으로 구성하였으며, 단위제와 과정별로 선택과정을 두어 인문, 자연, 직업과정의 선택과목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개념적인 수준에서 학교 교육을 규정했을 뿐이고, 실제 교육면에 있어서는 여전히 교과중심 교육과정을 진행하였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국민학교 교육과정 편제를 교과, 반공도덕, 특별활동으로 구성하여, 1차 교육과정 시기에 교과서 '초등도의'가 편찬되는 데 그친 도덕교육이 정식으로 학교 교육과정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반공도덕'이라는 과목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교과의 본래 목적인 도덕 교육보다는 반공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반공도덕은 수업시간을 매주 월요일 1교시로 고정했다.
3. 3. 제3차 교육과정 (1973~1981)
1973년 2월부터 1981년 12월까지 시행된 제3차 교육과정은 학문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교국사교육강화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는 국사과를 독립시키고 모든 학교에서 필수 과목으로 할 것을 건의했는데, 이는 3차 교육과정에 반영되었다. 국사 교과서는 국정 교과서가 되었다. 국사 내용에서 국난 극복 측면이 강조되어 '국난극복사'를 별도로 편찬하여 학교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국민학교 교육과정 편제가 교과, 특별활동으로 개편되면서 반공도덕생활 영역은 '도덕' 교과가 되었다. 도덕 과목은 국어보다 앞에 배치되어 국민학교 교과는 도덕, 국어, 사회, 산수, 자연, 체육, 음악, 미술, 실과 9과목이 되었다.[1]
3. 4. 제4차 교육과정 (1982~1987)
1982년 1월부터 1987년 6월까지 시행된 제4차 교육과정은 인간중심 교육으로 이루어졌다. 정부의 과외금지조치에 따라 재학생의 과외 교습과 입시 목적의 학원 수강이 법으로 금지되었다.[1]
당시 국민학교에 통합교과서(교육과정은 각 과목마다 따로 구성)가 도입되어 초등학교 1~2학년에 바른 생활(도덕+국어+사회), 슬기로운 생활(산수+자연), 즐거운 생활(체육+음악+미술)이라는 교과서가 처음으로 나왔다. 국민학교의 주당 수업시간은 1학년이 23시간, 2학년이 24시간, 3학년에 27시간, 4학년이 30시간, 5학년과 6학년은 32시간이었다.[1]
교육과정 전반에서 반공 교육을 강조하여 도덕 교과의 경우 교과서 내용의 50% 이상을 반공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하였고, 국어 교과서의 읽기 제재와 음악 교과서의 노래 부르기 제재에 6.25 전쟁 관련 내용을 삽입하였다.[1]
3. 5. 제5차 교육과정 (1987~1992)
1987년 7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시행된 제5차 교육과정은 통합중심 교육과정으로 이루어졌으며, 과외금지조치가 해제되었다.[1]
1987년 민주화 이후 고시된 교육과정에 따라, 1989년에는 국민학교 1~3학년과 중학교 1학년, 1990년에는 국민학교 4~6학년과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1학년, 1991년에는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1992년에는 고등학교 3학년에 새로운 교과서가 적용되었다.[1]
6.25 전쟁과 반공을 주제로 한 국어과의 읽기 제재, 음악과의 노래 부르기 제재가 새 교과서에서 삭제되고, 민주주의 관련 내용이 늘어났다.[1]
국민학교에서는 한 과목을 여러 교과서로 배우는 체제가 도입되어 3~6학년 교과서가 다음과 같이 분화되었다.[1]
교과 | 교과서 |
---|---|
도덕 | 도덕, 생활의 길잡이 |
국어 |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
사회 | 사회, 사회과탐구 |
산수 | 산수, 산수익힘책 |
자연 | 자연, 실험관찰 |
체육, 음악, 미술, 실과 | 실과, 실습길잡이 |
1~2학년은 통합교과 체제로, 우리들은 1학년(1학년 3월 한 달), 국어, 산수, 바른생활(도덕+사회), 슬기로운 생활(자연), 즐거운 생활(체육+음악+미술)로 구성되었다.[1]
중학교에서는 남학생만 배우던 기술·산업 교과와 여학생만 배우던 가정·가사 교과가 통합되어 기술·가정 교과가 신설되었다. 초기에는 남학교, 여학교, 남녀공학에 따라 다르게 편성되었으나, 1991년 중학교 입학생부터는 구분 없이 기술·가정 교과가 적용되었다.[1]
고등학교에서는 교련 교과의 편찬 주체가 국방부에서 교육부로 변경되었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 1994년부터는 군사훈련 내용이 삭제되고 사회봉사활동으로 대체되었다. 군 간부 출신이 교련 교사가 되는 것이 금지되었고, 부족한 교사 수급을 위해 한시적으로 정년퇴임 교련 교사의 기간제 근무가 허용되었다.[1]
3. 6. 제6차 교육과정 (1992~1997)
6차 교육과정은 21세기 미래상을 위한 교육으로 이루어졌다. 1994년에 대학입학시험이 기존 학력고사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었으며, 1996년에 초등교육기관의 명칭이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었다.[3]지방 교육자치가 부활하면서 지역별 교육과정과 학교별 교육과정이 도입되었다. 지역별 교육과정으로는 초등학교 1학년이 3월 한 달 동안 배우는 '우리들은 1학년' 교과의 교육과정을 전국 각 지역 시도교육청에서 자율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시, 도 교육과정의 내용이 비슷하여 교육과정 자율의 의미가 퇴색하였고, 1997년 제7차 교육과정에서 다시 국가 수준 교육과정으로 바꾸었다.
학교별 교육과정으로는 초등학교에 '''학교재량시간'''을 주당 1시간 씩, 중학교에 주당 3시간 씩 선택 교과(한문, 환경 등)를 편성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996년에 갑자기 초등학교에 영어교과를 도입하여 1997년 3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하게 함으로써 학교재량 시간이 사실상 폐지되었고, 중학교 선택 교과의 경우 대부분의 학교가 기존의 필수 과목이었던 한문을 선택함으로써 학교별 교육과정의 의미가 퇴색하였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여 교육과정에 반영됨으로써 초등학교 6학년 과학 교과에 환경 단원을 추가 신설하였고, 중학교에 환경 교과를 선택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환경 교과를 선택한 중학교는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 산수 (수학) , 자연 (과학) 과목이 수학, 과학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산수 과목의 보조 교과서인 산수익힘책이 수학익힘책으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1~2학년과 3~6학년 교육과정의 연계를 강조하여 바른 생활은 도덕으로, 슬기로운 생활은 사회, 과학, 실과로, 즐거운 생활은 체육, 음악, 미술로 연계됨을 명확히 하였다. 이에 따라 교과 순서가 도덕,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실과''', 체육, 음악[3], 미술로 바뀌었다.
도덕 교과의 수업을 주당 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였고, 교육과정 체계를 기존의 개인생활, 가정과 이웃생활, 사회생활, '''국가와 안보'''생활에서 개인생활, 가정과 이웃생활, 사회생활, '''국가'''생활로 변경하여 공식적으로 도덕 교과에서 반공과 안보 관련 내용을 삭제하였다.
실과 교과를 기존 교육과정에서는 1~2학년 통합교과와의 연계가 없이 4학년부터 배우도록 하였으나, 6차 교육과정에서 슬기로운 생활과 연계하여 3학년부터 배우도록 개정하면서 수업 시간을 주당 1시간으로 줄였고 보조 교과서인 실습 길잡이를 폐지하였다.
도덕 교과와 실과 교과를 1시간 씩 줄이고 주당 1시간의 학교 재량 시간을 신설함으로써 초등학교 3~6학년의 전체 수업 시수가 1시간 줄었으나, 영어교육을 주당 2시간 씩 실시하고 학교 재량 시간을 사실상 폐지함으로써 수업 시수가 기존 교육과정과 똑같아졌다.
3. 7. 제7차 교육과정 (1998~2007)
7차 교육과정은 학생 중심 교육으로 이루어졌다. 국민공통기본교육기간을 설정하여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10년 동안 모든 학교에서 같은 교육을 받도록 하였고, 이후 2년간의 선택중심교육기간에는 선택 교과를 선택해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국어과에는 보충·심화형을, 수학과와 외국어과에는 단계형 교육과정을 채택해 수업할 수 있도록 하였다.[1]2004학년도부터 부분적으로 주 5일 수업제가 정식으로 도입되었다. 2005학년도에는 최초로 매월 4번째 토요일을 대상으로 월 1회 도입되었으며, 2006학년도부터는 매월 2, 4번째 토요일을 대상으로 월 2회로 확대되었다.[1]
3. 8. 제7차 이후 교육과정 수시 개정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7차 교육과정을 마지막으로, 8차 교육과정처럼 교육과정을 전면적 또는 일률적으로 개정하지 않고 수시로 부분 개정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이후 개정에서는 초등학교 3, 4학년 교과서가 새로 만들어졌고, 초등학교 영어 수업 시간이 늘어났다. 중학교 1학년 수학 및 영어 교과서는 단계형 구분이 없어지고 통합되었으며, 수학은 '수학'과 '수학 익힘책', 영어는 '영어'와 'English Activities'로 교과서가 나뉘었다. 국어, 도덕, 역사 교과서는 국정에서 검인정 체제로 바뀌었다. 체육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고, 10학년 과학, 역사 과목은 주당 수업 시간이 한 시간씩 늘었으며, 사회와 역사 과목은 독립되어 시수가 보장되었다.[1]
3. 8. 1. 2007 개정 교육과정
2007 개정 교육과정은 2009 개정 교육과정 문서에서 다루고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기당 이수 과목을 최대 5과목 줄이고 교과 집중이수제를 도입하여 예·체능 등의 과목을 특정 학기에 몰아서 수업하며 학교 자율에 따라 교육과정을 20% 범위 내에서 증감 운영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예·체능을 등급으로 표기하지 않고 우수/보통/미흡의 3단계로 기록한다. 국민공통적 성격이 강한 10학년 사회, 도덕 과목을 폐지하여 심화과목에 편입하거나 중3과정으로 편입하기로 했다. 학년군·교과군을 고려하여 전체 교과 내용을 약 20% 감축했다. 교과별로 특성화된 교실을 마련해 수업하는 '교과교실제', 쪼개진 시간을 블록(block)으로 모아 집중해 가르치는 '집중이수제' 등도 활성화될 전망이다.[1]3. 8. 2. 2009 개정 교육과정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기당 이수 과목을 축소하고, 교과 집중이수제를 도입했으며, 학교 자율 교육과정 운영(20% 범위)을 도입했다. 국민공통적 성격의 10학년 사회, 도덕 과목은 폐지되었다.
3. 8. 3. 2015 개정 교육과정
제공된 소스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고교학점제'에 대한 내용만 담고 있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소스만으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3. 8. 4. 2022 개정 교육과정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특징은 고교학점제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진로,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학점을 취득하여 졸업하는 제도다.[4]참조
[1]
간행물
조선인구조사보고
조선총독부
1944
[2]
서적
교과과정의 개편
[3]
웹사이트 # 출처가 불분명하여 임의로 웹사이트로 지정했습니다.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MBC 창작동요제 등 각종 동요제에서 발표된 노래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
[4]
웹인용
고교학점제 홈페이지
https://www.hscredit[...]
한국교육개발원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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